8. 지금 말고 나중에 그만두겠다
3b-8. 송나라의 정책을 담당하고 있었던 송나라의 대부 대영지(戴盈之)【3b-6의 대불승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크다. 송나라의 수상격의 인물일 수도 있다】가 맹자가 제시한 왕도의 정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씀하시는 정전법의 10분의 1 조세제도의 실행과 관소의 관세, 그리고 시장의 물품세의 철폐【1a-7, 2a-5, 3a-3 등에서 언급】는 금년에는 아직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올해는 우선 약간만 경감해주고, 내년의 상황을 기다 려서 전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3b-8. 戴盈之曰: “什一, 去關市之征, 今茲未能. 請輕之, 以待來年, 然後已, 何如?”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지금 여기 이웃집 닭들을 매일 한 마리씩 도둑질하는 습벽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누군가 그에게 ‘여보시오! 그것은 군자가 할 짓이 아니오’라고 타이르자, 그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았소: ‘그럼 도둑질하는 마리 수를 우선 경감하겠습니다. 한 달에 한 마리씩만 도둑질하고, 내년의 상황을 기다려서 전면적으로 훔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과연 이러한 논리가 합리적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무엇이든 그것이 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내년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孟子曰: “今有人日攘其鄰之雞者, 或告之曰: ‘是非君子之道.’曰: ‘請損之, 月攘一雞, 以待來年, 然後已.’如知其非義, 斯速已矣, 何待來年.” |
다시 한 번 맹자의 찬연한 논리와 그 비유의 적절함과 시중(時中)의 레토릭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이장은 짧지만 맹자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설파하는 프라그먼트로서 방명(芳名)이 드높다. 많은 주석가들이 오히려 대영지의 논리가 정당하며, 맹자의 논리는 관념적인 강변일 뿐이라고 현학의 허세를 부리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도덕적 결단과 국가재정에 관한 논의는 동일한 차원의 논리로 환원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적 사회과학의 세뇌를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 수긍하는 논리이다. 또한 실무적 실행 프로세스와 정책의 원칙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고 말할 것이다. 시행착오의 효용성을 고려하면서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맹자는 그러한 실무적 제반상황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그가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사태에 관한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비도덕적인 사회악의 제거라는 절박한 과제상황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착취로 인하여 매 일매일 국민의 삶이 피폐해가고 있고, 매일매일 노약자의 시체가 도랑에 쌓여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의 주장은 하루가 시급한 문제이다. 이것은 마치 열차 기관사가 그의 의도와는 달리 열차가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순간 진로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과도 같은 문제이다.
우리 주변에서 정의로운 법안이 실무적 합리성을 핑계로 하여 항상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맹자의 논리는 고금을 막론하고 실천되어야만 하는 통의라고 할 것이다. 현실과의 타협은 불의의 근절과는 관계없는 타성으로 흘러가게 마련인 것이다.
‘여지기비의(如知其非義), 사속이의(斯速已矣)’라는 이 맹자의 말은 우리 삶과 사회적 차원을 하나로 관통하는 정언명령이라 할 것이다. 그것이 비 임을 안다면 지금 당장 멈추어라!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지연을 정당화하는 수준의 논리로써 사회악의 만연을 계속 정당화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다. 4대강정비사업, FTA, 남북문제의 경직, 공익사업의 사유화, 대재벌기업중심의 경제운영, 서민들의 생활고 증가, 양극화의 심화 등등의 문제를 놓고 우리는 대영지와 같은 고민을 하면 안 된다. 맹자의 벼락같은 결단이 필요할 때이다.
21세기에는 오히려 ‘사회과학을 도덕화(the moralization of social sciences)’하는 정치가 가장 위대한 효율성을 발현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우리 사회의 죄악에 관하여 더 이상 쌩쥐 같은 변명은 하지 말자!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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