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
6b-2. 조교(曹交)【조기 주에 의하면 조교(曹交)는 조(曹)나라 군주의 동생이라고 한다. 나라이름으로 성을 삼은 것이고, 그 명(名)이 교(交)이다. 그런데 『좌전』 애공 8년에 보면 조나라는 송(宋)나라 군주에 의하여 멸망된 것으로 명기되어 있다. 따라서 맹자시대에는 조나라는 멸망된 지 오래였다. 혹자는 조나라가 속국으로 존속되었다고 한다. 조교가 조나라 군주의 동생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으나 전체 문맥으로 보아 지체가 높은 사람임에는 분명하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가 맹자에게 물어 말하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요ㆍ순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까?”【‘인개가이위요순(人皆可以爲堯舜)’이라는 말이 맹자의 독특한 학설일 수도 있고, 당대에 흔히 돌아다니던 속담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요ㆍ순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러합니까?’라고 번역될 것이다. 맹자의 이러한 생각은 이미 3a-1에 나타나 있다】 6b-2. 曹交問曰: “人皆可以爲堯舜, 有諸?”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소이다.” 孟子曰: “然.” 조교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문왕의 키가 10척이나 되었다 하고【1척을 대강 20cm 정도 잡으면 되니까 2m가 되는 큰 키이다】,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도 9척의 작지 않은 큰 키인데, 저도 키가 9척 4촌이나 되니 허우대는 큰 놈입니다만【공자의 키가 ‘9척 6촌’이었는데 ‘장인(長人)’으로 유명했으니 조교도 특별히 키가 큰 장엄한 외관을 갖춘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밥만 처먹으면서 쌀독만 축내고 있으니, 과연 어떻게 하면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겠나이까?” “交聞文王十尺, 湯九尺, 今交九尺四寸以長, 食粟而已, 如何則可?”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요ㆍ순이 된다는 것과 키가 크다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요ㆍ순이 되고 싶으면 단지 그러한 의지를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이외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사람이 한 마리의 병아리도 들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곧 무기력한 무력인(無力人)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曰: “奚有於是? 亦爲之而已矣. 有人於此, 力不能勝一匹雛, 則爲無力人矣; 그런데 곧 정신을 차려서 백균(百鈞)【1a-7에 기출. 백균(百鈞)은 한 균이 30근이므로 3,000근에 해당된다. 1균이면 7.2kg. 100균이면 720kg이나 된다. 엄청난 무게이다】의 무게를 들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대단히 기운이 센 유력인(有力人)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힘을 안 쓰면 무력인(無力人) 힘을 발휘하면 유력인(有力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즉, 누구라도 오획(烏獲)【사마천의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보면 진무왕(秦武王) 시절의 역사(力士)로서 오확(烏獲)ㆍ임비(任鄙)ㆍ맹열(孟說) 등이 나온다. 그러나 무왕(武王, BC 310~307 재위)은 맹자보다 후대의 인물이므로 맹자가 진나라의 역사의 이름을 거론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옛날부터 전설적으로 내려오던 오확의 이름을 후대에 진나라의 역사(力士)가 습용(襲用)한 것일 것이다】이 든 짐을 걸머메면 그가 곧 오확이 되는 것일 뿐이외다. 어찌 오확이 따로 있겠습니까? 대저 사람이 어찌하여 요ㆍ순이 되지 못할 것을 걱정한단 말입니 까? 단지 되려고 노력할 생각조차를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 뿐이로 소이다! 今曰擧百鈞, 則爲有力人矣. 然則擧烏獲之任, 是亦爲烏獲而已矣. 夫人豈以不勝爲患哉? 弗爲耳. 어른이 보행할 때에, 자기는 좀 늦게 서행(徐行)하면서 어른 뒤를 보살피면서 따라가면 사람들이 그를 공손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른을 앞질러 진행하면 그를 불손하다고 말합니다. 어찌 서행한다 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겠습니까? 단지 인간들이 하지 않을 뿐이지요【‘못하는 것’과 ‘안하는 것’에 관하여서는 이미 1a-7에 논의가 있다】. 요ㆍ순의 도라는 것은 알고 보면 효제(孝弟)일 뿐입니다. 徐行後長者謂之弟, 疾行先長者謂之不弟. 夫徐行者, 豈人所不能哉? 所不爲也. 堯舜之道, 孝弟而已矣. 그대가 요(堯)의 옷을 입고, 요의 말을 말하고, 요의 행동을 행한다면 그대는 곧 요가 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걸(桀)의 옷을 입고, 걸의 말을 말하고, 걸의 행동을 행하면 그대는 곧 걸이 되는 것입니다.”【沃案: 주석가들이 요(堯)나 걸(桀)이 모두 왕이므로 그들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상하다 하여 추저분한 주석을 달고 있으나, 자유분방한 맹자의 언어의 심볼리즘을 근본적으로 이해 못하는 주석가들의 한심한 논의에 한 줄을 가할 필요조차 느끼질 않는다】 子服堯之服, 誦堯之言, 行堯之行, 是堯而已矣; 子服桀之服, 誦桀之言, 行桀之行, 是桀而已矣.” 조교가 말하였다: “저 교(交)가 추(鄒) 나라 군주를 알현케 되면 관사를 하나 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추나라에 머물면서 선생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옵니다.” 曰: “交得見於鄒君, 可以假館, 願留而受業於門.”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대로(大路)와 같이 명명백백한 것이외다. 어찌 모를 일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단지 진리를 갈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병(病)이로소이다.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서 구해보십시오! 너무도 많은 선생님들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외다.” 曰: “夫道, 若大路然, 豈難知哉? 人病不求耳. 子歸而求之, 有餘師.” |
주석가들은 『맹자』라는 서물에서 맹자 이외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급적이면 평가절하해서 얕잡아 보거나 초라하게 만들려고 애쓴다. 그래서 여기 마지막의 맹자의 멘트에 대해서도 맹자가 거절의 의사를 밝힌 것처럼 해석한다. 주희도 조교라는 인간이 좀 삐딱하고 어른을 섬기는 예도 부족하고 도를 구하는 마음이 독실하지 않아 맹자가 그의 수업을 거절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불설의 교회[不屑之敎誨]’라고 단정짓는다. 나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아마도 이 장 전체의 맹자의 말 중에서 마지막 구절이 가장 명언이요, 가장 진실한 아름다운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한다. 맹자의 주제는 인간이면 누구나 요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인간평등관은 서구에서는 근대의 ‘천부인권설(theory of natural rights)’ 이후에나 생겨난 관념이다. 물론 서구에서는 인간의 자연권을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실정법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맥락에서는 매우 구체적이고 철저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맹자에게도 매우 철저한 인간평등론의 관념이 있다. 그리고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소유권을 인정하며, 왕을 갈아치울 수 있는 혁명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요ㆍ순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도덕적 선의 주체성을 인간보편에게서 확립하려는 맹자의 노력이다. 인간의 도덕적 완성은 인간의 자발성으로만 가능하며, 어떻게 하면 그 자발성을 촉발할 수 있는가에 관해 맹자는 끊임없는 관심을 쏟는다. 맹자의 결론은 결국 이것이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라는 신념을 어떻게 인간에게 주입시키는가? 이것이 그가 말하는 교육이며, 모든 선각자들의 의무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멘트는 매우 상징적이다. 맹자는 진리를 독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표방한 것이다. 맹자가 꼭 가르쳐야만 사람이 요ㆍ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요ㆍ순이 될 수 있다는 자각, 그 자각만 있다면 진리는 대로(大路)처럼 내 앞에 펼쳐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어찌하여 구차스럽게 추나라에 관사를 빌려 나에게 배우겠다는 것이오? 이러한 충고는 거절이 아닌 최대의 독려이며 더 많은 사람을 계발시키고자 하는 맹자의 교인(敎人) 방법론이다. 조교의 태도는 매우 진지했고 훌륭했다. 주희 가 맹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오히려 진지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하겠다.
요임금의 옷을 입고, 말을 말하고, 행동을 행하면 곧 요임금이 된다는 주제는 7a-36에도 다른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다. 율곡이 처가와의 인연으로 황해도 해주지역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39세 때 황해도 관찰사 로 부임하여 있으면서 해주와의 인연이 더욱 깊어졌다. 41세 때 병조참지(兵曹參知)를 사직하고 그 이듬해 정축년(1577)에 석담(石潭)으로 돌아가 강학하면서 해주향약(海州鄕約)을 만들고, 또 은병정사(隱屛精舍)를 지어 후학을 계도하였다. 그해 12월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몽매함을 깨우치는 비결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는 아주 간결한 다이제스트북을 하나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후세에 초학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게 된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는 명저이다. 그 첫 장이 「입지(立志)」인데, 젊은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뜻을 세우는 일이라는 취지로 머리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처음 배우는 이는 모름지기 먼저 뜻을 세워야 하는데,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써 스스로 기약하여야 하니, 한 터럭도 자신을 얕잡아 보거나 물러나 핑계대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 대저 보통사람과 성인이 그 본래의 성(性)은 하나이다. 기질에 청탁수박(淸濁粹駁)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진실로 알고 실제로 행동하여 오랜 습관을 씻어버리고 그 성(性)의 처음 모습을 회복하면 털끝만큼을 더 보태지 않더라도 나에게 선이 이미 구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뭇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성인이 되는 것을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께서 ‘성선(性善)’을 말씀하시고, 말끝마다 요순을 칭하여 우리의 성이 선하다는 것을 실증하여 말씀하시기를,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찌 맹자께서 우리를 속이셨겠는가?
初學先須立志, 必以聖人自期,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 蓋衆人與聖人, 其本性則一也. 雖氣質不能無淸濁粹駁之異, 而苟能眞知實踐去其舊染, 而復其性初, 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 衆人豈可不以聖人自期乎? 故孟子道性善,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 豈欺我哉!
율곡이 얼마나 『맹자』에 정통했는가,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에게 얼마나 전달하려고 애절하게 맹자의 요의(要義)를 전달하려고 애썼는가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율곡의 훈도가 남아, 해주지역에서 우리민족사의 절망적 시기에 우국지사들이 쏟아져나온 것이다. 안중근, 노백린, 김구, 박은식, 조명하 등등 참으로 경이로운 거목들이 우리 역사의 체통을 지켰다. 안중근만 해도 인간적인 허술함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어찌 그를 요순을 뛰어넘는 성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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