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광자(狂者)와 견자(獧者)와 향원(鄕原)
7b-37. 맹자의 수제자인 만장이 여쭈었다: “공자님께서 주유(舟遊) 말기 진(陳)나라에서 고생하고 계실 적에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찌하여 내 돌아가지 아니 할까보냐! 돌아가자! 돌아가자! 내 나라 노나라로 돌아가자! 나의 향리의 아이들은【집주본에는 ‘오당지사(吾黨之士)’로 되어 있지만, 감본(監本), 급고각본(汲古閣本)에 의하여 ‘오당지사(吾黨之士)’로 바꾸었다】 뜻이 크고 박력이 있으며 거칠지만 진취(進取)【나아가 대도(大道)를 취함】적이다. 나는 나의 옛 동지들을 잊을 수가 없구나!’【주희는 ‘불망기초(不忘其初)’를 ‘불능개기구(不能改其舊)’라고 했는데, 소자들이 옛 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풀었다. 나는 조기를 따랐다. 조기는 공자가 옛 고향의 친구들을 사모하는 정취로 풀었다. 이상의 내용은 『논어(論語)』 5-21, 그리고 「세가」에 나온다】. 공자께서는 진(陳)나라에 있으시면서 왜 고향 노(魯)나라의 광사(狂士, 과격한 선비)들을 그리워하신 것일까요?” 7b-37. 萬章問曰: “孔子在陳曰: ‘盍歸乎來! 吾黨之士狂簡, 進取, 不忘其初.’孔子在陳, 何思魯之狂士?”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단다: ‘과ㆍ불급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인물을 얻어 더불어 할 수가 없을 바에야 차라리 나는 광자(狂者)【沃案: 이것은 요즈음 우리가 생각하는 광기(madness)와는 다르다. 구체적인 단계를 밟아 합리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삶의 태도가 있는 사람이다. 호방형 인간】나 견자(獧者)【『논어(論語)』 13-21에서는 ‘견(獧)’은 ‘견(狷)’으로 표기된다. 견자는 융통성 없이 올곧기 만한 사람이다. 강직형 인간】와 더불어 할 것이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행하지 아니 해야 할 것은 의연히 하지 않는 바가 있는 확실한 인물들이다. 공자께서 어찌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인물을 원치 않으리시오마는 그러한 훌륭한 인물을 얻을 수 없을 바에야 그 차선의 인물들을 생각하신 것이다.” 孟子曰: “孔子, ‘不得中道而與之, 必也狂獧乎! 狂者進取, 獧者有所不爲也.’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 만장이 여쭈었다. “선생님! 감히 여쭙겠사옵나이다. 어떤 인물이라 야 광자(狂者)라 일컬을 수 있겠나이까?” “敢問何如斯可謂狂矣?”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금장(琴張)【조기와 초순은 공자의 제자인 자장(子張)을 가리킨다고 했고, 주희는 명이 뢰(牢)이며 자가 자장(子張)인 인물로서 공자의 제자인 전손사(顓孫師)와는 별도의 인물이라고 했다. ‘금장(琴張)’은 오직 『좌전』 소공(昭公) 20년조와 『장자』 「대종사(大宗師)」편에 나오는데 이 인물은 실제로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안 나오는 사람이며 지금 상고할 길이 없다】ㆍ증석(曾晳)【증자의 아버지라고 하는 증석에 대한 맹자의 평가는 낮다. 영풍무우(詠風舞雩)의 주인공 증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ㆍ목피(牧皮)【불명, 『논어(論語)』 「옹야」 편에 나오는 ‘맹지반(孟之反)’이 아닐까 하는 설도 있으나 확증이 없다】와 같은 인물이 공자께서 말씀하신자이다.” 曰: “如琴張, 曾晳, 牧皮者, 孔子之所謂狂矣.” 만장이 여쭈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광(狂)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요? 광(狂)의 속성을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何以謂之狂也?”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들은 뜻이 커서 효효연(嘐嘐然)【말이 거 뜻과 대한 구라끼가 있는 모습의 형용】하게 말하기를, ‘옛 사람은, 옛 사람은……’하면서 옛 성현을 잘 팔아먹지만, 그들의 실제행동을 공평하게 잘 살펴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 광자(狂者)를 얻기도 쉬운 일이 아니니, 그들을 얻지 못할 바에야,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면 수치스럽게 여겨 절대로 하지 않는 강직한 인물이라도 얻어 더불어 할 수밖에 없으니 그들이 곧 견자(獧者)이다. 견자는 광자의 다음 가는 인물들이다. 曰: “其志嘐嘐然, 曰: ‘古之人, 古之人.’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 또 공자님께서는 이와 같은 중요한 말씀을 하시었지: ‘아~ 내집 문앞을 지나가면서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지 아니 하여도 내가 조금도 유감이 없는 놈들은 좁은 향촌에서 군자인 체 폼잡고 사는 향원(鄕原)놈들밖에는 없을 꺼야! 향원(鄕原)! 이놈들이야말로 덕(德)을 도둑질하고 해치는 위선자들이지!’【『논어(論語)』 17-13】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鄕原, 德之賊也.” 만장이 여쭈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향원(鄕原) 소리를 듣게 되나요?”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향원(鄕原)이라는 놈들은 자기들 자신은 치사하게 살면서도 광자(狂者)를 향해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말과 뜻만 거대하여 효효연(嘐嘐然)하면서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아니 하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아니 하느뇨? 그러면서 뭔 쥐뿔이라고 옛 사람, 옛 사람은 하고 뇌까리느냐!’하고 야단치고, 또 견자를 향해서는, ‘너희들은 어찌하여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도 아니 하고, 사람들로부터 따스한 느낌을 받을 수 없도록 독불장군처럼 걸어가기만 하느뇨?’하고 야단친다. 그러고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과 더불어 살 뿐이다. 사람과 좋게좋게 지내면서 좋은 평판만 들으면 그만이다. 이와 같이 엄연(閹然)【어둠게 가리는 모습】하게 자기를 숨기고 세속에 알랑방귀 뀌는 자가 향원이다.” 孔子曰: ‘過我門而不入我室, 我不憾焉者, 其惟鄕原乎!’鄕原, 德之賊也.” 曰: “何如斯可謂之鄕原矣?” 만자(萬子)【조기의 접해본 주소본은 모두 ‘만자(萬子)’로 되어있다. 이 장의 ‘만장(萬章)’은 원래 모두 ‘만자(萬子)’였을 것이다. 주희집주본은 ‘만장(萬章)’으로 되어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가 여쭈었다: “한 동네사람들이 모두 원인(原人)【‘향원(鄕原)’의 ‘원(原)’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말】, 즉 점잖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어딜 가나 다 점잖은 사람일 것이온데, 어찌하여 공자님께서는 덕을 도둑질하는 나쁜 놈들이다라고 혹평하신 것이오니이까?” 萬子曰: “一鄕皆稱原人焉, 無所往而不爲原人, 孔子以爲德之賊, 何哉?”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이 악질적인 위선자들은 도무지 비리(非理)를 잡아내려고 해도 잡아낼 수가 없고, 트집을 잡으려 해도 트집잡힐 꺼리가 없도록 반지르르하게 포장되어 있다. 타락한 세속에 너무도 잘 동화하며, 오염된 세계와 너무도 잘 타협하며, 처신하는 것이 매우 충신(忠信)스럽게 보이고, 행동하는 것이 매우 염결(廉潔)한듯이 보이니 대중들이 모두 그들을 기뻐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자신의 모든 것이 옳다고만 믿고 있다. 그런데 이놈들은 결코 요ㆍ순의 도에는 들어갈 수가 없는 놈들이니 그래서 ‘덕지적(德之賊)’ 즉 덕을 해치는 도둑놈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曰: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汙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 ‘德之賊也’. 공자님께서 또 말씀하시었다: ‘진실한 인간이라면 같은 듯하면서 같지 아니한 사이비(似而非)를 제일 싫어한다. 우리가 가라지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沃案: 이후 6개의 병문(騈文)은 모두 같은 듯하면서 같지 아니한 사이비이기 때문에 진실한 것을 해친다는 사례로 든 것이다】. 우리가 교묘한 아세(阿世)의 재기(才氣)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의(義)를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입만 살아있는 재빠른 말솜씨를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신(信)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성(鄭聲)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간색(間色)인 자색(紫色)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색(正色)인 주색(朱色)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향원(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구분키 어려운 사이비 이기 때문에, 인간세의 덕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논어(論語)』 17-18 참조】 孔子曰: ‘惡似而非者,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군자는 일시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만고에 영원한 상도(常道)로 돌아갈 뿐이로다. 항상스러운 도가 바르게 서면 뭇 백성이 모두 흥기(興起)하게 될 것이요, 뭇 백성이 일어서게 되면 향원(鄕原)과 같은 음흉한 사특함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君子反經而已矣. 經正, 則庶民興; 庶民興, 斯無邪慝矣.” |
한국민족을 향해 지금 여기서 외치고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향원(鄕原)’이란 결국 모든 시대에 있어서의 보수(保守, 기존의 가치관에 안주함)를 의미하는 것이다. ‘향원(鄕原)’보다는 차라리 광방(狂放)한 인물이나 견개(狷介)한 인물을 선호하겠다는 공자의 말씀은 유교가 얼마나 보수를 싫어하고 진취, 즉 사회변혁을 선호하는가 하는 것을 웅변적으로 역설하고 있다. 공맹사상의 본질은 모든 ‘고루함’을 타파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인(仁)한 대동(大同)의 사회, ‘여민동락(與民同樂)’의 평등사회를 구현하는 데 있다. 이 인정(仁政)의 과업에 가장 방해를 주는 것이 바로 향원(鄕原)의 존재이다. 맹자가 일생을 통하여 얼마나 뼈저리게 느꼈으면 향원에 대한 혐오의 느낌을 여기 『맹자』 전편의 대단원에 이토록 강렬하게 쏟아부었겠는가? 맹자의 일생은 향원들과의 투쟁이었다. 나의 일생도 학문ㆍ사상ㆍ정치ㆍ언론ㆍ예술의 향원들과의 투쟁이었다. 학문의 에이ㆍ비ㆍ씨를 모르는 자들이 석학임을 자처하고, 인문학의 기초적 가치를 구성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경제를 운운하니 이것 참 어찌하면 좋을손가!
맹자나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위선’이다. 나의 일평생을 지배한 것도 우리 사회의 모든 위선과의 투쟁이었다. 동ㆍ서양의 고전을 한 줄도 제대로 읽을 줄도 모르는 자들이 다 아는 척하고, 작문의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자들이 문장가인체하고, 철학의 입문서도 제대로 읽지 않은 자들이 철학을 운운하고, 남북문제의 기본 가닥도 모르는 자들이 남북문제를 치리(治理)하고, 인류사의 기본대세를 모르는 자들이 국운을 예견하고, 정치의 기본관념과 실천강령이 없는 자들이 제세(濟世)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으니 도대체 이 향원들의 위선을 어찌할 셈인가! 내 지금 아무 말도 할 말이 없다! 위선을 저주하는 맹자의 적극성, 그 진취성의 엄준(嚴峻)한 모습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경복의 찬탄을 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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