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노수신의 지명과 관직명, 이름을 사용한 새로운 시
1. 우리말로 된 단어와 속담을 끌어들여 ‘이속위아(以俗爲雅)’를 실천하기도 함.
1) 이색(李穡)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서거정은 『동인시화(東人詩話)』 하권 59번에서 ‘이색의 시가 힘이 있고 범상하지 않지만, 그의 시를 잘못 배우면 자칫 비리하고 조야한 데 떨어질 우려가 있다[牧隱長篇. 變化闔闢縱橫古今. 如江漢滔滔波瀾自濶. 奇怪畢呈. 然喜用俗語. 學詩者. 學牧隱不得. 其失也流於鄙野]’고 경계한 바 있음.
2) 실제 이색(李穡)의 시 중에 예술성이 높지 못한 작품이 상당수가 있음.
2. 조선시대 문인들은 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꺼렸으며 지명조차 시어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1) 당나라 시와 비슷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조선 중기에는 우리 지명을 꺼리는 경향이 더욱 강해짐.
2) 삼당 시인 중 한 명인 최경창(崔慶昌)은 우리 지명이 중국에 미치지 못해 시를 지을 때 우리 지명을 시어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김.
3) 조위한(趙緯韓) 역시 우리 지명이 시에 들어가면 우아하지 못하다고 보았음.
4) 허균(許筠)은 조선의 지명과 같은 속어도 시어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학산초담(鶴山樵談)』ㆍ『성수시화(惺叟詩話)』 54번에서 노수신(盧守愼)의 「신씨정 회무회보제(愼氏亭 懷無悔甫弟)」라는 시를 예로 들며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잘 다듬기만 하면 점철성금에 해가 될 것이 없다고 함.
3. 노수신(盧守愼)의 「신씨정 회무회보제(愼氏亭 懷無悔甫弟)」
路盡平丘驛 江深判事亭 | 길은 평구역에서 끝나고 강은 판사정에서 깊어진다. |
登臨萬古豁 枕席五更淸 | 오르니 만고가 확 트여 잠자리는 한 밤 중에도 맑구나. |
露渚翻魚鳥 金波動月星 | 이슬 내린 강에서 물고기와 새가 노닐고 금빛 물결에 달과 별이 일렁이네. |
南鄕雙淚盡 北闕寸心明 | 남쪽 고향 생각에 두 눈물은 말랐지만 북쪽 궁궐의 일편단심은 분명쿠나. |
1) 이 작품은 다시 벼슬길에 나선 오십대의 작품임.
2) 광나루 동쪽에 평구역이 있었고 인근 한강에 판사정 혹은 신씨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향의 아우를 그리워하면서 쓴 작품.
3) 육로로 평구역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배를 갈아타기 위해 잠시 쉬면서 판사정에 오름.
4) 판사정에서 바라보니 천고의 세월에 아랑곳하지 않고 풍광이 광활한데 그곳에서 한숨 자고 나니 더욱 시원하다.
5) 그곳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보니 더욱 고향이 그리워 눈물이 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거듭 사직의 상소를 올렸지만 조야에서 명망이 높은 노수신을 임금이 놓아주진 않음.
6) 1연 ~4연까지 모두 대를 했고 전체적인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러움.
4. 우리의 지명을 시에 쓴 예들.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 |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
寓庵初被酒 箭串晩乘風 | 우암에서 막 술에 취해, 살꽂이에서 늦게 바람을 쐬노라. |
細雨靈通寺 斜陽滿月臺 | 가랑비 영통사에 내리고, 비낀 해 만월대에 비치네. |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