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데 결과는 어차피 ‘실패’이기에 보통 ‘역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맡기면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더욱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라고 결론 내리기 십상이다.
▲ 2월 3일에 열심히 회의를 하고 잠시 쉬는 모습.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자유를 누려봐야 누릴 줄 안다
실패의 경험보다 계속된 성공의 경험을 통해 아이가 자신감을 얻고 더 나은 조건에서 자신의 꿈을 찾도록 하자는 논의가 바로 이런 생각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처럼 ‘돼지엄마’가 극성을 부리고, ‘엄마=학습 매니저’가 각광 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부모의 욕망을 대리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기에 오히려 반대하며, 실패할지라도 더 많은 선택의 자유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거세되었던 자신의 욕망을 찾을 수 있으며, 사라진 자유에 대한 열망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고 자유도 누려 본 아이가 그 자유를 어떻게 하면 누릴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어른의 입장에서 교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못마땅하게 여겨지고 실패가 뻔히 보이는 상황들도 많아서 노심초사하게 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하며 찾아갈 거라 믿는다.
이런 생각으로 2월에만 ‘교사 없는 학교’를 진행하기로 했다. 2012년과 다른 것이라면 그땐 학생들을 팀별로 묶어주고 팀에서 활동하게 했다면, 이번엔 모든 단재학교 아이들이 회의를 하여 함께 커리큘럼을 정하고 3명의 교사도 모두 출근하여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다.
▲ 2016학년도 학사일정을 얘기하기 위해 오전에 모였다.
학사일정 중 봉사활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다
작년엔 ‘50개의 사랑’이라고 꽃을 키워 독거노인에게 배달해주는 봉사활동을 했었다. 화분에 씨앗을 뿌려 꽃을 키웠으며, 꽃이 피자 어르신들의 집까지 날라줬다.
올해엔 그런 봉사활동의 기회를 대폭 확대할 생각으로 한 달에 두 번씩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어 공감대를 키우고, 그렇게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다면 함께 연극을 준비하여 연극무대에 선다거나, 영상자서전이나 영화를 함께 찍어 상영회를 연다거나 하는 활동까지 진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학사일정을 알려줄 때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더니, 대뜸 민석이가 “너무 봉사활동 횟수가 많아요”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민석이의 말을 필두로 아이들도 한두 마디씩 덧붙이며 약간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 50개의 사랑이란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씨를 뿌리는 아이들. 여기서 꽃이 나서 배달해주는 것이다.
강제를 통해 의식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다
아이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를 테면 ‘채소를 전혀 먹지 않던 아이에게, 오늘부턴 한 끼에 채소 두 가지씩은 꼭 먹어야 해’라고 하는 것처럼 너무 급작스럽기 때문이다. 분명히 좋은 활동이라는 것도 알고 그걸 왜 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맘의 준비도 안 되어 있고 누군가가 시켜 억지로 한다면 그에 따라 역효과만 더 날 것이다.
그러기 전에 봉사활동이 ‘특별한 활동’이 아닌 그저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활동’이라 느껴질 수 있도록 경험할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인식은 어떤 강제된 활동을 통해 결코 바뀌지 않는다. 강제는 이미 불편을 감수하며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반감만 사게 된다. 그러니 강제된 활동이 아닌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느낄 수 있도록, 경험하며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일상을 나누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찌 보면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을 이미 경험했던 우리이기에, 대안학교란 장을 열어 ‘교육이란 이름의 폭력’ 아닌 ‘교육을 지워낸 아이들을 살리는 활동’을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다시 교육이란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순간, 그 어리석음을 이런 식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강제가 아닌 자율로, 급작스러운 것이 아닌 천천히 배어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단재학교의 특성 상 반론이 제기됐으니 강제하지 않고 한참동안이나 열띤 토론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선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 들어 남부지방에선 많은 눈이 왔지만, 중부지방은 거의 눈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며 차갑게 얼어버린 동토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방의 풍경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 개학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이 날 아침의 열띤 대화의 장이 아니었나 싶다. 열기가 방 안 가득하니,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한 때를 살아내고 있구나’하는 행복감이 절로 들었다.
▲ 이야기를 시작하니, 정말 많은 눈이 내리더라.
인용
1. 겨울방학에 받은 첫 번째 과제, 날 멸망시킬 태풍
7. 몸이란 타자와 소통하기
10. 치열한 토론의 순간, 우린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12. 두 번째 보드 도전기
13. 민석이의 도전
14. 현세의 도전
16. 여행이 끝나갈 땐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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