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②
다음에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착빙행(鑿氷行)」이란 작품을 들어본다.
季冬江漢氷始壯 | 늦겨울 한강 흐르는 물 얼음이 꽁꽁 얼어붙는데 |
千人萬人出江上 | 사람들 천이야 만이야 강가로 몰려나온다. |
丁丁斧斤亂相斲 | 땅땅 망치질 도끼질 얼음 짜개는 소리 |
隱隱下侵馮夷國 | 저 아래 물귀신 나라까지 우릉우릉 울려서 들리겠구나. |
斲出層氷似雪山 | 짜개어 포개놓은 얼음 설산을 방불케 하나니 |
積陰凜凜逼人寒 | 쌓여진 한기 오싹오싹 사람의 뼛골에 시리네 |
朝朝背負入凌陰 | 아침마다 얼음짐 등에 지고 빙고 속으로 |
夜夜椎鑿集江心 | 저녁마다 두드리고 짜개고 강 가운데 모여들 있다네. |
晝短夜長夜未休 | 해는 짧고 밤은 긴지라 밤에도 일손을 못 놓으니 |
勞歌相應在中洲 | 노동요 주고받는 소리 모래톱을 떠나질 않네. |
(중략) | |
滿堂歡樂不知暑 | 대청마루 넘치는 환락에 더위도 잊을 지경인데 |
誰言鑿氷此勞苦 | 얼음 저장하는 괴로움 누가 생각해서 말하랴? |
君不見 | 당신들 보지 못했소? |
道傍暍死民 | 길가에 더위먹어 죽어가는 백성들 |
多是江中鑿氷人 | 강에서 얼음 짜개던 사람들 바로 그네들 아닐런가. 『農巖集』 卷之一 |
이 시는 추운 겨울에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고역(苦役)을 테마로 다룬 것이다. 지금 서울의 동빙고동과 서빙고동이란 지명은 그때 채취한 얼음의 저장고가 있던 데서 유래하였다. 위의 시적 화폭에는 수많은 인부들이 나와서 노고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시의 후반에서 더운 여름날 시원한 전각에 앉아 얼음의 감각을 즐기는 정경을 제시한다. 노동하는 사람 따로, 노동의 결과를 향유하는 사람 따로의 사회 모순이 두 화폭으로 대조되고 있다. “길가에 더위 먹어 죽어가는 백성들 / 강에서 얼음 짜개던 사람들 바로 그네들 아닐런가[道傍暍死民 多是江中鑿氷人]”라는 끝맺음으로, 부조리의 예리한 각인을 찍고 있다.
이 「착빙행(鑿氷行)」은 앞의 「대동강(大同江)」과는 달리 인간의 삶의 정황을 드러내면서 사회 모순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사회 모순은 비록 현실적이긴 하지만 현실 자체로, 객관적으로 제시된 것이라기보다 시인의 비판적 의식 속에서 도출된 것이다. 그리고 위의 시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인간들을 비록 등장은 시켰지만 하나의 개별화된 인간으로, 구체적으로 포착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판 위에서 고역하는 모습이 화면에 펼쳐지긴 하는데 누구를 만나서 그 누구의 남다른 사연을 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사회시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서정시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