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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11. 서사시의 표현형식: 형상화의 특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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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11. 서사시의 표현형식: 형상화의 특징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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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사시의 표현형식: 형상화의 특징

 

 

(3) 형상화의 특징

 

새삼스런 물음 같지만 하필 서사시를 쓴 이유는 어디 있었을까? 그것은 당대의 실사를 포착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에 대한 인지, 전달의 기능을 중시한다면 굳이 시 장르를 선택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인식의 기능으로 치면 산문 쪽이 훨씬 적합한 형식이다. 그리고 서사의 디테일을 따진다면 서사시는 소설 장르에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서사시 중에 같은 내용이 산문 형식으로 씌어진 사례가 더러 있다. 홍성민의 매어옹행(賣魚翁行)을 짓고 또 산문으로 매어옹행답(賣魚翁行答)을 썼으며, 정약용 또한 천용자가(天慵子歌)와 함께 장천용전(張天慵傳)을 남겼다. 한 작가가 동일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와 산문의 상이한 형식으로 표출한 경우다. 이건창한구편(韓狗篇)은 자기 동생이 지은 한구문(韓狗文)을 보고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광정의 향랑요(薌娘謠)와 최성대의 산유화녀가(山有花女歌)는 유명한 향랑고사에서 같이 취재한 작품이다. 이광정 자신이 따로 전 장르로 임열부향랑전(林烈婦薌娘傳)을 짓기도 했거니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데 또 거듭해서 그 이야기를 시로 쓴 이유는 무엇일까?

 

허격(許格, 1607~1690)일환가(一環歌)는 바로 앞에 붙인 서문에서 이미 사실의 전말을 기록해두고 있다. 시는 사실 인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여기서 단적으로 증명된다. 이건창은 한구편(韓狗篇)에서 이르기를 사가는 기술을 중시하는데 / 새기고 기리는 일 시인에게 달렸노라[史家重紀述, 銘頌在詩人]”고 역사가와 시인의 임무를 변별하고 있다. 사실의 전달, 산문적 기술은 원래 역사가(산문가로 보아도 좋다)의 영역이다. 반면 시인의 고유한 임무는 운문적 명송(銘頌)’, 새기고 기리는 일로 규정한다.

 

 

季弟從西來 示我韓狗文 막내 아우 서도(西道)에서 돌아와 나에게 한구문을 보여준다.
讀過再三歎 此事誠罕聞 읽어가다 두 번 세 번 감탄하니 참으로 듣기 희한한 일이로세.

 

 

이처럼 한씨집 개의 이야기를 희한하고 기특하게 여긴 나머지, 시인의 임무인 새기고 기리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 이 한구편(韓狗篇)을 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예찬해서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사실의 구체적 서술이 있어야 실감도 주고 감명도 주게 될 터이다. 한구편(韓狗篇은 바로 이 점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작품의 제23부는 서사 조직의 부분인바, 한씨집 개의 이야기를 자상한 곡절까지 곁들여 들려주어 인정에 깊이 와 닿고 호소력이 크다.

 

정약용은 황해도의 곡산부사로 있을 시절에 장천용이란 기인형의 인물을 만나보고 비상히 매력을 느껴 쓴 것이 문제의 천용자가(天慵子歌)장천용전(張天慵傳)이다. 이 두 작품을 읽어보면 동일한 대상을 그려냈음에도 내용 특색이 같지 않음을 느낀다. 장천용전(張天慵傳)에서는 그를 처음 대면하는 경위가 상세히 언급된 반면 그의 첫 인상은 간단히 처리하고 있다. 그런데 천용자가(天慵子歌)의 그 장면을 보면 이러하다.

 

 

天慵子來叩闑 천용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大聲叫我與官逢 싸도 좀 만나자고 큰소리로 외쳐댄다.
直躡曾階入重閤 돌계단 뛰어올라 중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赤脚不襪如野農 맨발에 붉은 정강이 들에서 일하다 온 농부 꼴이더라.
不拜不揖箕踞笑 읍도 절도 하지 않고 두 다리 뻗고 앉아
但道乞酒語重重 거듭거듭 하는 말이란 술 달라는 소리뿐

 

 

이처럼 그를 대면하게 된 사연은 일체 생략해버리고 대뜸 천용자 찾아와서 문 두드려로부터 그가 등장하는 모습과 행동을 묘사해서 인상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도 주인공의 성격이나 그가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드러내는데 역시 음조와 색채를 강렬하게 때로 과장적 필치까지 구사한다. 그 인물의 형상을 각인하는 데 가장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다름 아닌 시 본연의 새기고 기리는 일에 충실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명송(銘頌)’이란 개념에 포괄될 작품은 실상 그다지 많지 않다. 서사시의 내용은 오히려 분노하고 슬퍼하거나 지탄하고 징험을 삼아야 할 그런 것들이 다수로 생각된다. 이에는 풍자의 개념이 적용되는 것 같다. 원래 시는 미자(美刺)’의 기능으로 존재 의미를 가졌었다. 이 고전적 미자의 개념에 비추어 명송()’의 범주에 속한다면 풍자는 곧 ()’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서사시를 쓴 동기는 명송과 풍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풍자와 명송은 방향은 서로 다르지만 시적 기능의 양면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명송이건 풍자건 각기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형상의 각인에 치력(致力)하는 것은 서사시 본연의 특성이다. 허격이 쓴 일환가(一環歌)는 권력의 주변에서 자행된 농간을 고발한 내용이다. 양민의 여자를 강탈하고 이 범행을 무마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부려 법도를 문란케 하는 사건의 경과는 앞에 붙인 산문적 기술로 다 밝혀져 있다. 운문적 서술에서는 서사를 기조로 삼고 있으나 그 서사 문맥 속에 풍자적 기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귀여운 딸을 빼앗는 것이 사건의 핵심인데, 대감께 바치기 위한 내막이었음이 운문적 서술에서 비로소 폭로된다. 산문의 정태적 기록보다 운문의 율동적인 어조에 의해서보다 충격적이 되고 경종이 울려지게 됨은 물론이다.

 

형상화는 서사시에서 고유한 수법은 아니다. 다만 모순이 심화하고 어려움이 가중되고 변전하는 현실 속에서 고통을 겪는 민중의 삶과 고상한 기품을 세운 실천의 모습, 이런 현상들을 보고도 못 본 체한다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거니와, 인지하는 것만으로 그만두어도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사태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자면 서사가 필요하며 나아가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데는 형상의 각인이 효과적이다. 때문에 서사시는 형상화에 특색이 있게 되는 것이다.

 

 

  풍자(諷刺) 명송(銘頌)
공통점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형상의 각인에 치력함.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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