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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3.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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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3.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③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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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시에 있어서 서정시와 서사시

 

 

이번에는 신광수(申光洙, 1712~1775)채신행(採薪行)을 보기로 한다. 특별한 작품이라기보다 짧기 때문에 편의상 인용하는 것이다.

 

 

貧家女奴兩脚赤 가난한 집의 계집종 맨발의 두 다리로
上山採薪多白石 산에 가서 나무를 하려니 차돌멩이 뽀족뽀족
白石傷脚脚見血 차돌에 부딪혀 다리에 피가 흐르는데
木根入地鎌子折 나무뿌리 땅에 박혀 낫이 뎅겅 부러졌다네.
脚傷見血不足苦 다리 다쳐 흐르는 피 괴로워할 겨를이나 있나요.
但恐鎌折主人怒 오직 두려운 건 부러진 낫 주인에게 야단맞을 일이로다.
日暮戴新一束歸 나무 한 단 머리에 이고 해 저물어 돌아오니
三合粟飯不䭜飢 한 덩이 조밥이야 허기진 뱃속 기별도 안 가는데
但見主人怒 주인의 야단 잔뜩 맞고
出門潛啼悲 문밖에 나와서 남몰래 훌쩍인다.
男子怒一時 남자의 성냄은 한때지만
女子怒多端 여자의 성냄은 열 두 때라네.
男子猶可女子難 샌님의 꾸중은 들을 만해도 마님의 노여움 견디기 어려워라.

 

 

이 시는 가난한 양반댁에서 종노릇을 하는 한 소녀의 삶을 그린 내용이다. 앞의 두 시편에서 살펴본 바와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여기에 있다.

 

첫째는 개별화된 인물의 등장이다. 계집종 그리고 샌님과 마님, 이렇게 세 사람이 시폭(詩幅)에 출연하고 있다. 우리는 주인공 소녀의, 하필 가난한 댁에서 종노릇을 하기 때문에 어린 여자 몸으로 산에 가서 땔나무를 해야 하는 특수한 사정을 보며, 또 그녀의 남몰래 훌쩍이는 소리까지 듣는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상전이라도 한번 야단을 치고 마는 샌님과 야단이 끝이 없는 마님의 성격 차이까지 드러난다. 인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둘째는 사건의 진행이다. 주인공 소녀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다리를 다치고 낫을 부러뜨린다. 작중에서 사건의 발단인데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소녀는 자기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돌볼 새도 없이 부러진 낫을 걱정한다. 과연 허기진 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 앞에 떨어진 것은 주인 내외의 호된 야단이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문밖에 나와서 훌쩍이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이 되고 있다. 비록 짧은 편폭(篇幅)이지만 거기에 시작과 끝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진 것이다.

 

채신행(採薪行)은 이처럼 객관적 배경 속에 특정한 인물이 등장하며, 또 그로 인해 사건이 일어나서 마무리되는 서사구조로 짜여 있다. 시인은 무슨 뜻으로 이 시를 썼을까? 문면(文面)에 표명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누구나 주인공 소녀의 고달픈 처지에 애련의 감정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바로 시인이 의도한 주체사상이다. 이처럼 주체사상이 주관화=서정화되지 않고 현실을 제시하는 가운데 암시되어 있다.

 

채신행(採薪行)에 견주어 앞의 착빙행(鑿氷行)은 현실 비판의 강도가 오히려 높고 사회성의 표출이 두드러진 편이다. 다만, 채신행(採薪行)에서는 구체적 형상을 그려 보여 느낄 수 있게 된다. 채신행(採薪行)의 특징적 성격은 지금 서사시로 파악하고 있는 그것이다.

 

이학규(李學逵, 1770~1835)영남악부(嶺南樂府)서문에서 그 본사를 서술해서 그 진정을 드러낸다[叙其本事 達其眞情]”고 밝힌 바 있다. 어떤 사건을 서술함으로써 거기 담긴 진실을 표출한다는 뜻이다. 서사시의 특징을 요약한 말이다.

 

여기서 서사시란 희랍적 서사시(Epic)는 아니다. 영웅 서사시라기보다 차라리 민중 서사시에 속할 것이요, 표현 수법 또한 낭만주의적이라기보다는 현실주의적이다(물론 낭만적 색채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고대적 문학의 전형은 조선왕조 시대에서 형성될 단계도 아니겠는데, 이 서사한시는 요컨대 조선적인 것이다.

 

 

대동강(大同江) 착빙행(鑿氷行) 채신행(採薪行)
서정성을 드러냄 삶의 정황 드러냄 개별화된 인물의 등장
고도의 정제된 언어로 표현 구체적인 사연은 등장하지 않음 사건의 진행
  현실의 비판 강도 높음, 사회성 표출이 두드러짐 구체적 형상을 그려 보여 느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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