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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6.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③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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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서사시,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 - 6.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③

건방진방랑자 2021. 8. 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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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선왕조의 체제적 모순의 심화와 서사시의 출현

 

 

우리는 여기서 서사시적 상황의 발견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그것은 첫째, 이조사회의 기본적 모순이 심화된 현상이다. 앞서 이미 역사적으로 언급하고 시적 내용으로 확인한 바다.

둘째는, 이에 인민들 자신이 생존의 마당에 부딪치고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현상이다.

 

체제편의 과도한 수탈에 맞서 인민의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방도는 이모저모 모색할 수 있었겠으나 첩경은 포망(逋亡)의 길이었다. 체제의 질곡으로부터 이탈한다든지, 거기서 나아가 무장항전(武裝抗戰)을 벌이는 방식이다. 군도 형태의 저항은 뒤의 단계이다. 저 유명한 홍길동ㆍ임꺽정은 바로 그 무렵에 농민저항의 지도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김시습의 기농부어(記農夫語)의 등장인물은 국가기구와 양반계급에게 당했던 부당한 일을 직접 고발하고 있다. 송순의 문인가곡(聞隣家哭)의 이웃집 할멈은 집이 파괴되고 남편과 자식이 옥중에 갇혀있다. 물론 폭력적인 가렴주구(苛斂誅求) 때문이다. 작중의 는 이 억울한 사실을 나라에 보고해서 선처를 받도록 하겠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할멈은 이웃집 어르신네 무슨 말씀을, 시방 저를 놀리시나요?[隣家丈人還余侮]”라고 머리를 가로젓는 것이다. 폭력과 불의의 사태를 자신이 실컷 체험함으로써 회의의 감정을 일으킨 것이다. 앞의 기농부어(記農夫語)에서 농부는 마지막으로 나라님께 호소해보고자 하였다. 이 할멈은 나라님의 성덕에 무조건 감격하는 어리석은 백성이 이제는 아니다. 그리고 문개가(聞丐歌의 노인은 비록 허리춤에 동냥자루를 찼지만 그 거지 시름없고 애걸 않고 구걸하는 소리조차 의젓한데[不憂不哀乞語傲]”로 묘사될 만큼 비굴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出門揮杖歌復高

지팡이 흔들고 문을 나서 노랫소리 다시 높으니

白首意氣何軒昂

백수노인의 의기는 어찌 저리도 헌앙한가!

 

 

시인은 노인의 이 헌앙(軒昂. 奮起하는 모습)한 태도를 달관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전망해보자면 성장하는 민중 현상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체제 모순의 심화, 거기에 맞서 생존을 위해 고투하는 인민의 형상은 바로 서사시의 내용이다. 바꾸어 말하면 역사 현실을 반영하기에 적절한 형식으로 서사한시가 선택된 것이다. 당시 서사 장르로 소설은 아직 전기적(傳奇的)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전통적인 시 양식에서 틀을 찾을밖에 없었다. 우리가 그때 역사 현실을 서사시적 상황의 발전으로 규정한 소이연이다.

 

여기서 다시 고려할 점은 서사시적 상황의 발전을 서사시 형식으로 포착했던 인식 주체에 대해서다. 그 인식 주체, 서사한시의 창작 주체는 사대부 시인들이다.

 

앞서 영웅 서사시로 주목했던 동명왕편(東明王篇또한 사대부 문학의 맹아기의 성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런데 이규보는 우리 문학사에서 을 최초로 진지하게 의식했던 시인이기도 하다. 대농부음(代農夫吟)1수를 보자

 

 

帶雨鋤禾伏畝中

비맞으며 기심 매느라 논바닥에 엎드려 있으니

形容醜黑豈人容

그 형상 오죽할까 사람 꼴 아니로다.

王孫公子休輕侮

왕손 공자 귀하신 분네들 우리를 얕잡아보지 마오

富貴豪奢出自儂

당신네 누리는 부귀 호사 우리들 손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농부의 거친 외모를 유한적 미감(美感)으로 경멸하지 말라는 주장에서 새로운 미학적 지향을 엿볼 수 있다. 당신네 누리는 부귀 호사 우리들 손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富貴豪奢出自儂]”라는 외침 가운데 체제 모순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다. 사대부다운 애민의식이다. ‘농부를 대신해서 읊음이란 제목이 그렇듯, 시인은 농민의 열악한 사정을 동정한 나머지 그들을 대변하려는 뜻을 보였던 것이다.

 

이 같은 시인의식은 이후 전개된 사대부 문학의 내면에 주입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말엽에는 애민시의 범주가 신생의 사대부 문학에서 특이한 부분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거기서 빼어난 작품으로 손꼽히는 윤여형(尹汝衡, 14세기 전반기 시인)상율가(橡栗歌)같은 경우 구성의 일부로 서사성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서사적 지향을 보인 정도다. 서사시의 본격적 출현은 역시 역사의 다음 단계, 조선왕조가 자기모순을 노정한 시대, 서사시적 상황의 발전을 기다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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