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 취
취가오물(醉歌傲物)
두보(杜甫)의 시 중에는 「취시가(醉時歌)」ㆍ「취가행(醉歌行)」 등 취가시(醉歌詩)가 많은데, 이 시들은 특히 세상을 오시(傲視)하는 맛이 풍긴다 하여 이른 말이다.
취가옥관회(吹葭玉管灰)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절후(節候)를 살피는 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갈대 속의 얇은 막을 태워 재로 만든 뒤 그것을 각각 율려(律呂)에 해당되는 여섯 개의 옥관(玉琯) 내단(內端)에다 넣어 두면 그 절후에 맞춰 재가 날아가는 바, 동지에는 황종(黃鍾) 율관(律管)의 재가 난다고 한다.
취가행(醉歌行)
술에 취해 노래한 시를 말하는데, 행(行)은 시체(詩體)의 하나이다.
취각(吹角)
뿔피리를 불다.
취개홍장(翠蓋紅粧)
푸른 연잎과 붉은 연꽃.
취거(觜距)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각각 역량을 뽑내며 선두를 다투는 것을 말한다.
취검(炊劒)
진(晋) 나라 명사(名士)들이 모여서 가장 위태로운 것을 두고 글을 한 귀씩 부르는데 한 사람이 부르기를, “창 머리에 쌀을 씻고 칼머리에 밥짓는다[予頭淅米劍頭炊].”하였다.
취검혈(吹劍吷)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혜자(惠子)가 말하기를 ‘피리를 불면 높게 울리는 소리가 나지만, 칼자루의 구멍을 불면 피-하고 가느다란 소리가 날 뿐이다. 요순(堯舜)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바이지만, 요순을 대진인(戴眞人) 앞에서 말하는 것은 마치 피-하고 가느다란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夫吹筦也, 猶有嗃也. 吹劍首者, 吷而已矣. 堯舜, 人之所譽也. 道堯舜於戴晉人之前, 譬猶一吷也].’ 했다.” 하였다.
취격타호(醉擊唾壺)
“진(晋) 왕돈(王敦)이 매양 취중에 장(壯)한 마음이 쉬지 않누나.”라는 구절을, 위 무제(魏武帝)의 악부(樂府)에 있는 지사(志士)가 늙은 나이에 노래를 읊으면서, 타호(唾壺)를 쳐 장단을 맞추는데 타호의 가장자리가 다 이지러졌다.
취계(취鷄)
닭으로 점치는 것은 뼈나 계란으로 하는데 여러 방법이 있다.
취교(翠翹)
여자의 머리에 꽂아 꾸미는 수식(首飾)인데, 비취(翡翠)의 날개처럼 생겼으므로 취교(翠翹)라 한다.
취교화승(翠翹花勝)
취교(翠翹)는 물총새의 깃으로 만든 부인(婦人)의 수식(首飾)이고, 화승 역시 부인의 머리에 꽂는 채색 조화(造花)를 말한다.
취굴주(聚窟洲)
신선이 사는 십주(十洲)의 하나이며, 거기서 반혼향(返魂香)이 나는데 그 향내가 풍기는 곳에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취락궁(聚樂宮)
일본의 관백(關白)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취량몽(炊粱夢)
황량일취몽(黃粱一炊夢) 혹은 한단지몽(邯鄲之夢)의 고사에 나오는 것처럼 일장춘몽과 같은 덧없는 인생을 끝마쳤다는 말이다.
취령(鷲嶺)
석가(釋迦)가 설법하였다고 하는 인도(印度)의 영취산(靈鷲山)을 가리킨다.
취령산(鷲嶺山)
부처가 설법을 했다는 인도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의 이칭이다.
취막(毳幕)
유목 민족이 거주하는 천막을 말한다.
취만부동(吹萬不同)
각자 타고난 운명에 따라 자초(自招)한 결과인 만큼 다른 외부의 원인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대저 하늘의 피리 소리라고 하는 것은 바람이 불어올 때 만 가지로 서로 다르게 반응하며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자기의 틀이 원인이 되어서 자초하는 것들이니, 그렇게 부르짖도록 하는 어떤 존재가 따로 있어서 그런 것이겠는가[夫天籟者 吹萬不同 而使其自己也 咸其自取 怒者其誰邪].”라는 유명한 표현이 있다.
취모(醉帽)
왕궁에서 주연(酒宴)이 베풀어진 것을 말한다. 진(晉) 나라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의 야유회에 참석했을 때, 술에 취한 나머지 바람에 날려 모자가 떨어진 것도 몰랐다는 고사가 있다.
취모(吹毛)
칼날 위에 털을 불면 그 털이 끊어지는 날카로운 검. 또 남의 허물을 애써 드러내려고 털을 후후 불어 흠집을 찾아내는[吹毛覓疵] 행동.
취모(吹帽)
환온(桓溫)이 9월 9일에 여러 막료와 함께 용산(龍山)에 올라 잔치할 때 맹가(孟嘉)의 모자가 바람에 날렸으나 흥에 취한 본인은 알지 못하므로 환온이 좌우에 눈짓하여 알리지 말라고 이르고 손성(孫盛)을 시켜 글을 지어 웃겼던 고사이다. 『진서(晉書)』 「맹가전(孟嘉傳)」
취모광(吹帽狂)
풍류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진(晉) 나라 때 풍류로 이름이 높던 맹가(孟嘉)가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때, 중양절(重陽節)인 9월 9일에 환온이 여러 요좌(寮佐)들을 거느리고 용산(龍山)에서 연회를 하였는데, 이때 바람이 불어 맹가가 쓰고 있던 모자가 날려서 땅에 떨어졌는데도 맹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풍류를 즐겼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九十八
취모구자(吹毛求疵)
남의 조그만 잘못을 샅샅이 찾아낸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취모멱자(吹毛覓疵)
털 사이를 불어가면서 흠을 찾음. 남의 결점을 억지로 낱낱이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취미(翠眉)
아름다운 눈썹, 또는 미인의 눈썹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아내를 말한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취미(翠微)
당 나라 시인 두목지가 9월 9일에 취미(翠微)에 올라서 ‘여객휴호상취미(與客携壺上翠微)’라는 시를 지었는데, 취미는 산 기슭이다.
취미상(翠微上)
당 나라 시인 두목지(杜牧之)가 9월 9일에 적은 시에, “손과 더불어 술병을 들고 취미에 올랐다[與客携壺上翠微].”는 구절이 있다.
취발구자(吹髮求疵)
상처를 찾으려고 털을 불어 헤친다는 말이다. 즉 억지로 남의 조그마한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을 말한다.
취방(臭芳)
취는 악명(惡名)을 뜻하고 방은 훌륭한 명성을 뜻한 것으로, 고사성어고(故事成語考)에 의하면, 선(善)을 하면 좋은 명성(芳)을 백세에 남기고, 악(惡)을 하면 만세에 악명(臭)을 남긴다고 하였다.
취백(醉白)
취한 이태백(李太白)이라는 말이다. 송(宋) 나라 한기(韓琦)의 당호(堂號)가 취백당(醉白堂)이었는데, 그 기문(記文)을 쓴 소동파(蘇東坡)의 ‘한위공취백당기(韓魏公醉白堂記)’가 전한다.
취백(翠柏)
푸른 잣(翠柏). 즉 도가(道家)에서 복식(服食)하는 장생불사의 약. 두보(杜甫)의 시에, “푸른 잣은 떫어도 먹는다지만, 밝은 놀로 밥을 어찌 짓겠는가?[翠柏苦猶食 明霞詎堪餐].” 하였다. 『두소릉집(杜少陵集)』 卷二 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
취법어상근득중(取法於上僅得中)
위로 높은 것을 본받아도 중(中)밖에 안 되는데, 그 아래로 본을 뜨면 무엇이 되겠는가 한 옛말이 있다.
취봉노자(鷲峯老子)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말한다. 영취산(靈鷲山)은 인도 마가타국(摩揭陀國) 왕사성(王舍城)에 있는 산 이름으로, 여기에서 석가가 『법화경(法華經)』 등을 설했다고 한다.
취부신기(臭腐神奇)
시비(是非)와 미추(美醜)도 사람의 호오(好惡)에 따라 뒤바뀌게 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에 “좋게 여기는 것을 신기(神奇)하다고 하고, 나쁘게 여기는 것을 취부(臭腐)하다고 하는데, 취부가 변화하면 곧잘 신기가 되고, 신기는 또다시 취부로 바뀌곤 한다. 그러므로 온 천하가 일기(一氣)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취부는 냄새가 나게 썩은 것을 말한다.
취부역신기(臭腐亦神奇)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의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신기함이고 싫어하는 것은 악취와 썩은 것인데, 악취와 썩은 것이 다시 신기한 것으로 변하고 신기한 것이 다시 악취와 썩은 것으로 변한다.”에서 나온 것으로, 자연의 이치로 볼 때 죽은 것이나 사는 것이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취부용(翠芙蓉)
산빛을 말한다.
취부즉신기(臭腐卽神奇)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의 “자기가 아름답게 보는 것은 신기하게 여기고 자기가 증오하는 것은 썩은 것으로 여기는데, 썩은 것이 다시 변해 신기한 것이 되고 신기한 것이 다시 변해 썩은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고르게 하는 것은 하나의 기(氣)인 것이다.”에서 나온 것으로, 인생의 부귀 빈천은 큰 안목으로 볼 때 똑같다는 것이다.
취부타갱(翠釜駝羹)
맛 좋은 식품 이른다. 낙타 등 위의 봉우리 살로 만든 요리. / 유의어: 취부타봉(翠釜駝峯). 『비파기(琵琶記)』 「춘연행원(春宴杏園)」
취사선택(取捨選擇)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가림. 여러 가지 중에서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 잡음
취산(聚散)
모였다 흩어지는 것으로 사람이 만났다가 헤어짐을 말한다.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한 듯이 살다가 꿈을 꾸듯이 죽음. 아무 뜻도 없고, 이룬 일도 없이 한평생을 흐리멍텅하게 살아감.
취석(翠石)
양홍정(楊弘貞)이 백락천(白樂天)에게 푸른 돌 셋을 선사하였다.
취석(醉石)
여산(廬山) 앞을 흐르는 강물 가운데 반석이 있는데, 도연명(陶淵明)이 취하여 이 바위에 누워 잤다 하여 연명취석(淵明醉石)이라 한다. 『주자어류(朱子語類)』 卷一百三十八
취선(翠扇)
청색으로 도장(塗裝)한 궁문(宮門)을 가리킨다.
취성(聚星)
2개 이상의 별이 서로 모인 것, 또는 견우(牽牛)ㆍ직녀(織女)를 말한다.
취성(鷲城)
영산(靈山)의 고호이다.
취성(醉醒)
초(楚) 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온 세상은 흐린데 나 홀로 맑고, 사람들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었으므로[衆人皆醉 我獨醒], 이때문에 추방을 당하였다.”는 말이 있다.
취성당(聚星堂)
당명(堂名).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修)가 여음태수(汝陰太守)로 있을 당시 소설(小雪)에 취성당에 손님을 모아 놓고 금체(禁體)의 시를 지은 일이 있다고 한다.
취소반(吹簫伴)
춘추 때 진목공(秦穆公)이 딸 농옥(弄玉)이 피리를 잘 부는 소사(簫史)를 좋아하여 그에게 시집가 날마다 피리불기를 배워 봉(鳳)을 오게 하여 부부가 봉을 타고 하늘로 올라 신선이 되었다 한다.
취송구(醉松句)
송(宋) 나라 소식(蘇軾)이 서 사군(徐使君)과 함께 금당하(金堂河)에 배를 띄우고 노닐면서 장난삼아 지은 시에 “취하여 소나무 밑 바위에 누웠다가 서로 붙들고 강가의 나루로 돌아가네[醉臥松下石 扶歸江上津]” 한 데서 온 말이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 卷四十四
취수봉패위(醉愁逢覇尉)
평양(平壤)의 고호이다.
취아(翠娥)
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취염이(炊扊扅)
옛날 백리해(百里奚)가 미천했을 때 집이 몹시 가난하여 그 아내가 문빗장을 뜯어서 밥을 지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
취옥(炊玉)
타관살이의 고생스러움을 이른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초(楚) 나라에서의 생활을 말하건대, 밥은 옥(玉) 보다 비싸고, 땔나무(炊)는 계수나무보다 비싸다[楚國之食貴于玉, 薪貴于桂].”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취옹(醉翁)
송(宋) 나라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의 별호(別號). 여릉(廬陵) 사람으로 자(字)는 영숙(永叔)이다. 말년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했으며, 시문(詩文)은 한유(韓愈)ㆍ이백(李白)ㆍ두보(杜甫)의 장점을 합쳤다는 칭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취옹정기(醉翁亭記)」ㆍ「추성부(秋聲賦)」 등이 특히 애송(愛誦)되었다.
취옹정(醉翁亭)
송 나라 때 구양수(歐陽修)가 제주지(滁州知)로 있을 적에 지은 정자 이름인데, 구양수가 스스로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지었다.
취우(驟雨)
‘소나기’를 말한다. 『노자(老子)』 23장 / 인용: 민들레 읽기 모임엔 따뜻함이 있다
취우(吹竽)
전국시대(戰國時代) 제 선왕(齊宣王) 때에 수백 인의 악공(樂工)을 모집하였는데, 남곽처사(南郭處士)가 피리를 불지도 못하면서 끼어 들어 대접을 잘 받다가, 선왕이 죽고 민왕(湣王)이 즉위한 뒤 한 사람씩 나와서 악기를 연주하게 하자 도망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上
취우(翠羽)
비취의 깃으로 뛰어난 보배이다.
취우(聚麀)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을 말하는바, 『예기(禮記)』 「곡례(曲禮)」 上에, “오직 금수만은 예의가 없으므로 부자간에 취우한다.” 하였는데, 그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注)에, “취(聚)는 같이한다는 뜻이며, 사슴의 암컷을 우(麀)라고 한다.” 하였다.
취우만구영(吹竽謾求榮)
제왕(齊王)이 피리(竽)를 듣기를 좋아하여 피리 잘 부는 사람 삼백 명을 길러 매일 함께 불게 하였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실제로 피리 불 줄을 모르면서 피리를 입에 물고 부는 형용만 하고 녹을 받아먹었다. 한 번은 한 사람씩 각각 피리를 불게 하니, 그 사람은 도망하였다.
취우비성랑(吹竽備省郞)
제왕(齊王)이 피리(竽)를 좋아하여 피리 부는 자 3백 명에게 녹을 먹이며 함께 피리를 불게 하니, 그 중에 한 사람은 사실은 피리를 불 줄 모르면서 다른 사람 속에 섞여서 피리를 부는 척하고 녹을 먹고 있다가, 하루는 3백 명에게 각각 피리를 불게 하니 그 사람은 도망하였다.
취우혼처총허명(吹竽混處摠虛名)
제(齊) 나라 임금이 피리(竽)소리 듣기를 좋아하여 매일 피리를 불고 녹을 먹는 사람이 3백 명이나 되었다. 어느 한 사람은 실지로 피리를 불 줄은 모르면서 매일 3백 명 속에 끼어서 피리를 부는 척하고 녹을 먹다가 하루는 한 사람씩 불게 하니 곧 도망하고 말았다.
취웅장(取熊掌)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에 “고기도 먹고 싶고 곰 발바닥도 먹고 싶지만 모두 먹을 수 없다면 고기를 버리고 곰 발바닥을 취할 것이며, 생명도 보전하고 싶고 의리도 하고 싶지만 두 가지 다 어려울 경우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겠다.” 한 말에서 인용하였다.
취위나식고장군(醉尉那識故將軍)
취위는 ‘술취한 패릉위(覇陵尉)’를 말하고, 옛 장군이란 곧 한(漢) 나라 때의 명장 이광(李廣)을 말한다. 이광이 패전의 죄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서인(庶人)이 되어 집에 있을 때 하루는 밤에 단기(單騎)를 타고 나가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 패릉정(覇陵亭)에 이르자, 패릉위가 술에 취하여 이광을 꾸짖으며 못 가게 하므로, 이광이 말을 타면서 “내가 옛 이 장군(李將軍)이다[故李將軍].”고 말하니, 패릉위가 말하기를 “현재의 장군도 밤에 다닐 수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밤에 다닌단 말입니까[今將軍尙不得夜行, 何乃故也].” 하고는, 억지로 이광을 패릉정 아래서 자고 가게 하여 봉변을 주었던 고사이다. 『사기(史記)』 卷一百九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취유(翠綏)
물총새의 깃으로 꾸민 진귀한 갓끈.
취유(取楡)
유화(楡火)는 느릅나무에서 취한 불을 말하는데, 옛날에 봄철에는 느릅나무ㆍ버드나무의 불을 취하고, 여름에는 대추나무ㆍ살구나무의 불을 취하는 등 계절마다 나무를 바꾸어 불을 취했던 데서 온 말이다. 『주례(周禮)』 夏官 司爟
취유(臭蕕)
악취나는 풀. 훈초(薰草)의 대칭으로서 소인에 비유됨.
취음(醉吟)
백락천(白樂天)이 스스로 취음선생(醉吟先生)이라 호(號)를 지었다.
취일(就日)
① 요(堯)의 덕이 지극하매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가기를 해(日)에 나아가듯 하고 바라기를 구름 같이 한다.” 하였다.
② 태양(日)은 임금의 상(象)이므로 임금을 우러러 가까이하는 것을 말한다.
취자생(娶訾生)
돼지 띠라는 말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의 “孟春之月 日在營室”의 주(注)에 “취자는 해차(亥次)의 호(號)이다.”라고 하였다. 취자(娶訾)는 ‘추자(娵訾)’ 혹은 ‘추자(諏訾)’와 통용한다.
취장(翠丈)
취미(翠微) 신재식(申在植)을 이른다.
취전(聚羶)
장자(莊子)는, 양고기는 개미떼를 그리워하지 않지만 개미떼들은 누린내 나는 양고기에 모여드는 것을 말하여, 순(舜)을 양고기에, 순을 따르던 백성들을 개미떼에 비유하였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
취제(吹虀)
징갱취제(懲羹吹虀)의 준말로, 『초사(楚詞)』에 “뜨거운 국을 경계하다가 생채도 입으로 불게 된다[懲於羹而吹虀兮]”란 데서 나온 말로 즉 ‘두려워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한다’는 뜻이다. / 인용: 懊惱曲(신국빈)
취증(翠曾)
갑자기 나는 모양.
취진(驟進)
‘급히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취처생자(娶妻生子)
양(陽)인 율(律)이 음(陰)인 여(呂)와 교합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뜻으로, 즉 삼분손익(三分損益)의 법칙에 따라, 양률이 음률을 낳을 때는 하생(下生)이라 하여 3분의 1을 덜어 주고, 을률이 양률을 낳을 때는 상생(上生)이라 하여 3분의 1을 더해 주는데, 예를 들면 황종(黃鐘)의 길이가 9촌인 경우, 황종이 임종(林鐘)을 낳는 것은 하생이 되어 임종의 길이가 6촌이 되고, 임종이 태주(太簇)를 낳는 것은 상생이 되어 태주의 길이가 8촌이 되는 유로써 서로 생(生)하는 것을 말한다.
취탈화(醉脫靴)
이백(李白)이 어전에 취해 있을 때 환관 고 역사(高力士)가 당 명황(唐明皇)의 명으로 그의 신을 벗겨 준 일이 있었는데 역사가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다가 양귀비(楊貴妃)에게 “그가 지은 청평악사(淸平樂詞) 가운데 가련 비연의신장(可憐飛燕倚新粧)이란 구절은 한(漢) 나라의 여우 같은 조비연(趙飛燕)을 귀비에 비유하여 모욕한 것이다.”고 참소하여 그의 출세를 저지시켰다는 고사이다.
취포(吹布)
불법(佛法)을 깨우쳐 주는 것을 말한다. 『전등록(傳燈錄)』에 “도림선사(道林禪師) 밑에 있던 시자(侍者) 한 사람이 다른 곳으로 떠나가려 하였다. 선사가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하고 묻자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불법을 배우려 한다.’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사가 ‘그러한 불법은 여기에도 있다.’ 하고는 조금 있다가 자신의 몸에서 포모(布毛)를 따내어 그것을 입으로 불어 계시하여 주었는데, 그는 마침내 불법을 깨달았다. 그래서 당시에 그를 가리켜 포모시자(布毛侍者)라 하였다.” 했다.
취향(醉鄕)
① 음주도취(飮酒陶醉)의 생활을 즐기는 은자의 거소를 말한다. 당(唐) 나라 은자인 왕적(王績)이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을 본떠 지은 취향기(醉鄕記)가 유명하다. 왕적(王績) 취향기(醉鄕記)에 “그 고장은 중국에서 몇 천 리나 되는데, 그 땅이 넓어 가이없고, 그 기운이 화평하며 회(晦)ㆍ삭(朔)ㆍ현(弦)ㆍ망(望)도 없다.” 하였다.
② 취중의 경지를 이상향(理想鄕)에 비겨서 한 말이다. 왕적(王績) 취향기(醉鄕記)에 “취향은 중국과의 거리가 몇 천리인지 모른다. 토지는 광대하지만 구릉(丘陵)이 없으며 그곳의 기후는 화평하여 회삭 한서(晦朔寒暑)가 없고, 풍속이 대동(大同)하여 읍락(邑落)이 없음은 물론 사람들도 매우 청렴하다.” 하였다.
취향기(醉鄕記)
당(唐) 나라 왕적(王績)이 지은 문장. 『당서(唐書)』 왕적전(王績傳)에, “績著醉鄕記 以次劉伶酒德頌”이라고 보인다.
취향후(醉鄕侯)
술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당(唐) 나라 때 왕적(王績)이 「취향기(醉鄕記)」를 지어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를 이었는데, 당인(唐人)의 시에 “만일 유령을 술의 황제로 삼는다면 또한 의당 나를 취향후로 봉해야 하리[若使劉伶爲酒帝 亦須封我醉鄕侯].”하였다.
취허(吹噓)
취우(吹竽)와 같은 말로, 자격도 없이 벼슬자리를 채우고 있으면서 국록(國祿)을 축내고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남곽처사(南郭處士)가 피리 부는 실력도 없으면서 삼백 인이 합주할 때에는 시늉만 하며 그 자리에 끼어 있다가, 한 사람씩 독주하게 하자 그만 줄행랑을 놓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內儲說)」 上
취허력(吹噓力)
사람을 천거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수서(隋書)』 「유림전(儒林傳)」에 “침뱉으면 마른 물고기도 살릴 수 있고, 한번 불면 깃 떨어진 새도 날게 할 수 있다.” 하였다.
취헌(翠軒)
박은(朴誾)의 호가 읍취헌(揖翠軒)으로 박은의 서재를 말한 것이다.
취혼초부득(醉魂招不得)
성로(成輅)는 정철(鄭澈)의 문인으로 시명(詩名)을 떨쳤는데, 서인(西人)인 정철이 실각당한 뒤로는 더욱 세상에 뜻이 없어 술로만 세월을 보내었다. 그러면서 늘 말하기를 “병들어 앓지 않고 취해 누운 상태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그 소원대로 어느 날 술 취해 누워서 그대로 죽었다고 한다.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下
취홍원(聚紅院)
연산군 때에 흥청악(興淸樂)이 모여 있던 곳을 말한다.
취화(翠華)
① 비취(翡翠)의 깃으로 장식한 천자(天子)의 기(旗). 또는 천자(天子)의 일산(日傘).
② 푸른 깃털 장식의 깃발 혹은 수레로, 대가(大駕)나 제왕의 대칭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취화춘(翠華春)
취화는 비취로 꽃 모양을 만들어서 장식한 깃발로, 천자의 깃발을 가리킨다. 두보(杜甫)가 이 시를 지을 당시에 천자가 낙양으로 천도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천자의 깃발이 와서 봄기운이 살아나듯 화기가 돌기를 기대하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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