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밖에도 김지대(金之岱), 곽예(郭預), 홍간(洪侃), 이장용(李藏用) 등이 각종 시선집(詩選集)에 여러 편의 시작(詩作)을 남긴 시인들이며 그 가운데서도 김지대(金之岱)의 「유가사(瑜伽寺)」(七律), 곽예(郭預)의 「상련(賞蓮)」(七絶), 이장용(李藏用)의 「강수(江樹)」(七律) 등은 모두 명편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김지대(金之岱, 1190 명종 20~1266 원종 7, 초명 仲龍)는 섬교한 시풍(詩風)을 보인 시인으로 특히 요체(拗體)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그의 대표작 「유가사(瑜伽寺)」를 보인다.
寺在煙霞無事中 | 절은 안개와 노을 고요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
亂山滴翠秋光濃 | 들쑥날쑥 푸른 물 든 산 가을빛 무르익었네. |
雲間絶磴六七里 | 구름 사이 비탈진 육칠리 산길 |
天末遙岑千萬重 | 하늘가에 아득한 묏부리 천겹 만겹이네. |
茶罷松簷掛微月 | 차 들고 나자 솔처마에 초승달 걸리고 |
講闌風榻搖殘鐘 | 설법 끝나자 시원한 평상에 종소리 흔들리네. |
溪流應笑玉腰客 | 시냇물 웃으리라 패옥 찬 나그네를 |
欲洗未洗紅塵蹤 | 홍진의 자취 씻으려 해도 씻지 못하는구나 |
고려중기는 송시학(宋詩學)이 소단(騷壇)을 지배하던 때이지만, 이 작품은 정지상(鄭知常)의 「개성사팔척방(開聖寺八尺房)」를 연상케 할 만큼 섬교하기만 하다. 한시(漢詩)에서는 사찰(寺刹)ㆍ누정(樓亭)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거니와 이 시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유가사(瑜伽寺)의 경계(境界)에서 읊고 있다. 세상의 먼지를 씻으려 해도 씻지 못하는 벼슬아치의 처지를 자조(自嘲)하고 있다.
김지대(金之岱)는 요체(拗體)에 능하여 정지상(鄭知常)의 깊이 법(法)을 체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련(頸聯) 상구(上句)의 ‘미(微)’는 측성(仄聲)을 둘 자리인데 평성(平聲)을 쓰고 ‘괘(掛)’를 측성(仄聲)으로 써 구(救)한 것이 한 보기가 될 것이다.
또 ‘욕세미세홍진종(欲洗未洗紅塵蹤)’은 정지상(鄭知常) 「변산소래사(邊山蘇來寺)」의 일구(一句) ‘고경적막영송근(古徑寂寞縈松根)’과 같이 ‘측측측측평평평(仄仄仄仄平平平)’의 독특한 구율(句律)로 되어 있다. 한편 서거정(徐居正)은 함련(頷聯) 하구(下句)에서 ‘천만중(千萬重)’이라고 한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출구(出句)의 ‘칠팔(七八)’은 지나치게 상세하여 잘못이라고 하였다. 『동인시화(東人詩話)』 권상 27에는 ‘육칠(六七)’이 ‘칠팔(七八)’로 되어 있다.
곽예(郭預, 1232 고종 19~1286 충렬왕 12, 자 先甲)는 자신의 풍류를 시로 제작한 것이 많다. 「상련(賞蓮)」이 대표적인 경우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기도 하다.
賞蓮三度到三池 | 연꽃 보러 세 번이나 삼지에 왔는데 |
翠盖紅粧似舊時 | 푸른 잎 붉은 꽃이 옛날과 같네. |
唯有看花玉堂老 | 꽃 구경하는 옥당의 어떤 늙은이 |
風情不减鬢如絲 | 풍정은 줄지 않았으나 귀밑털은 흰 실같네. |
작자의 질탕한 기상을 한 눈으로 읽게 하는 작품이다. 귀밑에 흰 털이 나도록 연꽃 구경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자가 한림(翰林)으로 있을 때 비가 오면 항상 맨발로 우산을 들고 용화원(龍化院) 숭교사(崇敎寺)에 있는 연못에서 연꽃을 완상(玩賞)하였다 한다. 후인(後人들)이 그의 풍치(風致)를 높이 여겨 이 일을 ‘우중상련(雨中賞蓮)’이라 하고 화시(和詩)를 지은 것이 많다. 최해(崔瀣)의 「추자곽밀직예상련시운(追次郭密直預賞蓮詩韻)」과 민사평(閔思平)의 「동국사영익재운(東國四詠益齋韻)」 중의 네번째 수 「곽한림우중상련(郭翰林雨中賞蓮)」이 그런 것이다.
홍간(洪侃, ?~1304 충렬왕30, 자 平甫, 호 洪厓)은 고시(古詩)에 능하여 「고안행(孤雁行)」(七古), 「난부인(嬾婦引)」(七古)과 같은 명작을 남겼다.
「난부인(嬾婦引)」은 다음과 같다.
雲窓霧閣秋夜長 | 구름 창 안개 문에 가을밤 깊었는데 |
流然寶帳芙蓉香 | 술 달린 비단 장막에 부용(芙蓉)이 향기롭다. |
吳歌楚舞樂未央 | 오초(吳楚)의 노래와 춤 즐거움이 다하지 않아 |
玉釵半醉留金張 | 옥비녀 꽂은 이 여인 취하여 귀공자들을 잡네. |
堂上銀缸虹萬丈 | 당 위의 은등잔에는 무지개 만발하고 |
堂前畫燭淚千行 | 당 앞의 촛불은 눈물이 천 줄이네. |
珠翠輝光不夜城 | 주취(珠翠)의 광명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는데 |
月娥羞澁低西廂 | 달은 부끄러워 서쪽 행랑에 나직하네. |
誰得知 | 누가 알리오? |
貧家懶婦無襦衣 | 가난한 집 여인네 유의(襦衣) 없는 줄을 |
紡績未成秋雁歸 | 길쌈도 마치기 전에 가을 기러기 돌아간다. |
夜深燈暗無柰何 | 밤은 깊고 등불 어둡지만 어쩔 수 없구나. |
一寸願分東壁輝 | 동쪽집 한치 불빛을 나눠 주기 바라네. |
고체(古體)에서 애용하는 고사(故事)의 사용도 최대한으로 억제하여 처려(淸麗)한 홍간(洪侃)의 시작(詩作)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장편(長篇)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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