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영(李春英, 1563 명종18~1606 선조29, 자 實之, 호 體素齋)은 성혼(成渾)의 문인으로서 시문으로 자호(自豪)한 문장가이다. 이춘영은 여러 제가의 시문을 다독(多讀)하여 시문을 지음에도 정련에 힘쓰지 아니하였다. 또한 그의 시문은 부려(富麗)함을 전상(專尙)하여 시격이 높지는 않지만 시재가 도도하고 호한(浩汗)하여 스스로 일가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의 호한함과 정련에 힘쓰지 아니함은 도리어 그의 시가 번쇄하고 난잡한 데로 나가게도 하였다.
신흠(申欽)은 「체소집서(體素集序)」에서 그의 글은 제자(諸子)와 소식(蘇軾)의 글들을 가슴 속에 융합하여 창일한 기운으로 쏟아내는 것이 마치 봄에 저절로 꽃이 피고, 고였던 물이 터져나가는 듯하다고 평하였다.
이춘영은 1590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정철(鄭澈)의 건제문제(建諸問題)에 연루되어 함경도 삼수(三水)로 귀양을 갔다. 배소(配所)로 가는 도중에 철령을 넘으면서 지은 「적행(謫行)」은 『기아(箕雅)』와 『대동시선(大東詩選)』에 선발되고 있으며 『체소집(體素集)』에는 제명(題名)이 「철령(鐵嶺)」으로 되어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夜發銀溪驛 晨登鐵嶺關 | 밤에 은계역을 떠나 아침에 철령관을 오른다. |
思親雙鬢白 戀關一心丹 | 어버이 생각에 귀밑털 희어지고 임금님 그리움에 촌심(寸心)이 붉다. |
客路連三水 家鄕隔萬山 | 나그네 길은 삼수(三水)로 이어지고 고향은 만 겹 산에 막히었네. |
未應忠孝意 蕪沒半途間 | 충효(忠孝)의 뜻 다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묻히고 말았네. |
오언(五言)이기 때문에 기운이 더욱 힘차게 실리고 있는 작품이다. 처음부터 강개(慷慨)에 흐르고 있지만, 전편에 달리는 기상을 느끼게 하고 있어 이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 은계역은 철령으로 가는 도중의 역참으로 강원도 회양에 속해 있다. 유배가는 참담한 심정보다 충효의 포부를 펴지 못하는 현실에 상심하고 있다.
다음은 이춘영(李春英)의 「영보정(永保亭)」【원제 「湖西水營挹翠軒之詩」】 시 4수 중의 제3수다.
雉堞縈紆樹木間 | 성곽은 나무와 물에 에둘려 있고 |
金鼇頂上壓朱欄 | 금빛 자라 머리 위에 붉은 난간이 누르고 있네. |
月從今夜十分滿 | 달은 오늘밤을 좇아 십분 가득차고 |
湖納晩潮千頃寬 | 호수는 만조를 받아들여 천 이랑이나 넓네. |
酒氣全禁水氣冷 | 술기운은 냉랭한 물기운을 이기고 |
角聲半雜江聲寒 | 나팔 소리는 차가운 강물 소리와 뒤섞였네. |
共君相對不須睡 | 그대와 함께 마주하여 모름지기 잠들지 않고 |
待到曉霧淸漫漫 | 새벽 안개가 아득히 개는 것을 기다리리. |
영보정(永保亭)은 충청남도 보령군에 있는 정자로 수군절도사의 병영 안에 있다. 정자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많이 찾던 곳으로 일찍이 해동(海東)의 강서시파(江西詩派)로 알려진 박은(朴誾)이 이곳에 와서 「영보정(永保亭)」시 4수를 지어 그 승경을 기렸다. 허균(許筠)은 이춘영(李春英)의 「영보정(永保亭)」은 박은(朴誾)의 「영보정(永保亭)」을 모의한 것으로 운조(韻調)가 박은(朴誾)에 비하여 한 단계 낮으나 호탕(豪宕)하고 방사(放肆)한 풍격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함련은 수사기교가 극치를 이루고 있으면서 호탕한 기상도 함께 읽게 해주는 부분이다. 성색(聲色)과 원근(遠近)의 대비를 통하여 실경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시인의 오탕(傲宕)한 기개가 잘 드러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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