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심리학, 그리고 공자
세부적인 언급은 회피하겠으나, 싯달타 역시 다원론적 신들의 세계가 교차하는 짙은 종교적 문명권에서 태어났다. 싯달타 이전에 이미 인도문명은 베다문학과 우파니샤드경전을 통하여 단 하나의 근원적인 우주의 실체에 접근하였고, 이미 아트만과 브라흐만이 일체가 되는 심오한 철학사상을 개발했으며, 업(karman)이라든가, 윤회(saṃsāra), 해탈(mokṣa)과 같은 기본개념을 확립했다.
그러나 싯달타의 근원적인 혁명은 인간의 모든 종교적 관심을 비실체화시키고, 모든 신적 존재를 그 존재론적 질곡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데 있다. 싯달타는 신의 존재를 무화(無化)시켰다. 신이라는 존재의 무화는 나라는 존재의 무화이다. 이 나라는 존재의 무화를 불교에서는 안아트만(anātman), 즉 무아(無我)라고 부른다.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집트로부터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페르시아를 거쳐 인더스강계곡을 거쳐 갠지스강역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초자연적 세계의 신성(Divinity)은 탈색되어간 것이다. 붓다에게는 더 이상 신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붓다의 혁명에는 카필라라고 하는 종족사회의 모든 인간의 픽션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틱한 진실성과 동시에 카스트적인 계급이 타파되고 보편적인 제국의 질서가 새롭게 태동되어가는 시대정신이 결합되어 있다. 그가 인간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보편적 자비의 사상을 부르짖게 되는 역사적 정황에는 근대 부르죠아 시민계급의 에토스 형성과 유사한 어떤 디프 스트럭쳐가 숨어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자세한 논의는 도올 김용옥 지음,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195를 보라】.
그러니까 불교에 있어서는 종교란 일종의 심리학에 불과하다. 여기서 말하는 심리학이란 천박한 행동주의적 실험심리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인류역사에 장난질쳐온 모든 신에 대한 담론이 결국 심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다. 신리(神理)는 심리(心理)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의 집착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滅執] 모든 종교적 재앙은 사라질 수가 있다.
종교적 환상과 신적 실체가 실제로는 정치권력과 결탁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싯달타의 혁명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미 인류의 신적 지혜(Divine wisdom)는 갈 수있는 궁극에 도달한 것이다. 다(多)가 일(一)로 진화하고, 일(一)이 제로(Zero)로 진화한 것이다. 아이코노클라즘(Iconoclasm, 성상파괴)을 이야기한다면 싯달타의 아이코노클라즘보다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이고 래디칼(radical, 급진적인)한 것은 없다. 이러한 제로의 평면 위에 우리의 주인공 공자(孔子)는 인문학적 윤리학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쓸 이 책은 공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통관하면서 통감한다. 이집트 수메르지역 저켠에서부터 황하문명의 한 제후국인 노(魯)나라에 이르기까지 2천여 년에 걸친 인류의 지혜의 다양한 발달사의 족적을, 그 한 여파로 시작된 그레코ㆍ로만문명이 서구문명에 그려나간, 오늘날 미국문명에 이르기까지의 2천년의 역사가, 지혜의 다양한 발달의 측면에 있어서는, 아직도 못 미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냉가슴을 치게도 된다. 나의 담론은 거대하다. 그러나 진실을 깨달을 줄 아는 자들은 분명 나의 통관적 담론으로부터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중국문명이 고대문명세계에 있어서 가장 콘템포러리(contemporary, 동시대에 존재한)한 문명이라고 한다면, 공자는 우리에게서 2500년을 격한 인물이 아니라 바로 콘템포러리 사상가이다. 그 충분한 이유는 이제부터 독자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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