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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 22장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 22장

건방진방랑자 2021. 9. 2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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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나를 확장하면 천지만물에까지 이른다

 

 

22장은 아마도 모든 동양고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파라그라프(Paragraph, 단락)일 것입니다. 주자 주()를 보면, 22장은 천도(天道)를 말한 것이고 23은 인도(人道)를 말한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주자는 22장을 자성명(自誠明)’에 대한 것으로 보고 23장을 자명성(自明誠)’에 대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 22장은 ()’의 세계로 보고 23장은 성지(誠之)’의 세계로 본 것이죠. 또한, 23장 맨 처음을 기차(其次)’로 시작하고 있는데, ‘()’에 대해서 성지(誠之)’는 한 레벨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중용(中庸)의 저자는 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구태여 이렇게 나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중용(中庸)의 저자는 이런 구조로 해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에는 몰랐었는데 이런 패러다임을 이제는 알겠어요.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오로지 하늘 아래 더 이상 없는 지극한 성()을 가진 사람만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 자기의 본성을 다 발휘할 수 있게 되면, 타인의 본성 또한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하고, 뭇사람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면 만물의 본성 또한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만물의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면, 하늘과 땅의 변화와 양육을 도울 수 있고, 하늘과 땅의 변화와 양육을 두울 수 있으면 그러한 사람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삼위일체가 된다.
 
天下至誠, 謂聖人之德之實, 天下莫能加也. 盡其性者, 德無不實, 故無人欲之私, 而天命之在我者, 察之由之, 巨細精粗, 無毫髮之不盡也. 人物之性, 亦我之性, 但以所賦形氣不同而有異耳. 能盡之者, 謂知之無不明而處之無不當也. , 猶助也. 與天地參, 謂與天地並立而爲三也. 此自誠而明者之事也.
천하지성(天下至誠)이란 성인의 덕이 실재하는 것으로 천하에 더할 게 없다. 진기성(盡其性)이란 덕이 실제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없으니, 천명(天命)이 나에게 있는 것을 살피고 실행하면 크고 작으며 정밀하고 거친 것이 터럭만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 다른 사람과 사물의 본성이 또한 나에게 있는 성()인데 다만 부여받은 형기(形氣)가 같지 않고 다를 뿐이다. 능진지(能盡之)라는 것은 앎이 밝지 않음이 없고 처리함이 마땅치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은 돕는다는 것과 같다. 여천지삼(與天地參)은 천지와 함께 서서 셋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성()으로부터 명()으로 가는 일이다.
 
右第二十二章. 言天道也.
여기까지가 22장이다. 천도(天道)를 말했다.

 

 

유천하지성 위능진기성(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여기서 지성(至誠)’이란 완벽한 성(), 일체의 사()가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자 주()를 보면, ‘천하(天下)에 지극한 성()은 성인(聖人)의 덕()의 실()함처럼, 인간세에서 더 이상 가할 것이 없는 그런 것[天下至誠 謂聖人之德之實 天下莫能加也]’라고 했습니다. ‘능진기성(能盡其性)’이라고 하는 것은, 주자의 패러다임에서 말한다면 천도(天道)의 경지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성인(聖人)의 경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능진기성 즉능진인지성(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진기성(盡其性)’하고 인지성(人之性)’이 겹치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여기서 능진기성(能盡其性)’은 나에 대한 것이고, ‘인지성(人之性)’은 타인에 대한 것이예요. 나의 완성이 타인의 완성으로, 개인적 구원이 사회적 구원으로 연결되어 나아가야 한다, 즉 보편적으로 확장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천하(天下)의 지극한 성()이면 진기성(盡其性)’이 된다는 것, 이것은 아성(我性)’, ‘나의 성()’입니다.

 

그런데, “天命之在我者 察之由之 巨細精粗 無毫髮之不盡也 人物之性 亦我之性 但以所賦形氣不同而有異耳고 하는 주자 주()를 보면, ‘아지성(我之性)’, ‘인지성(人之性)’, ‘물지성(物之性)’이라는 세 단계로 나가고 있어요. 그러니깐 나에게서 타인으로 확장되고 타인에게서 물()의 세계, 천지만물의 세계로 확장되어 나가고 있는 거죠. 천하(天下)에 지극한 성()이라야 내 성()을 다 할 수 있는 것이고, 내 성()을 다하면 타인의 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이미 타인과 포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의 세계, 인간의 간()이라는 것은, 타와 나와의 사이를 전제로 할 때에 나는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예요. 그러므로 나의 진성(盡性)’, 나를 진()하는 그것이 타인의 성()을 진()하게 하고, ‘능진인지성 즉능진물지성(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내가 지난 여름 제 2()때 도올서원에 책상을 들여 놓은 후 강의에서 말하기를, 인권(人權)에 대해서 물권(物權), 인성(人性)에 대해서 물성(物性)을 말했습니다. 인권(人權)을 사람이 사람답고자 하는 권리라고 말한다면, 즉 사람이 사람으로서 온전한 모습을 보전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권리라고 한다면, 나무 하나도 자기 모습을 갖고 싶어 하고 천지(天地)로부터 그것을 당연하게 보호받고 싶어 하는 물권(物權)이 있다는 생각이 우리 동양인들에겐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인권(人權)만 생각하고 물권(物權)은 생각지 않아요. 구미(歐美)의 무슨 헌장들이라는 게 말이지 인간의 평등과 권리만을 말하지 물()에 대한 물권(物權)의 보장을 말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나무만 다 짤라봐, 우리는 끝짱나요! 왜냐하면 대기 중에 산소와 탄산가스의 구성이 생물의 생존조건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생물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이 안 되는 대기로 변해버리는 것이죠. 나무가 생장하면서 산소와 탄산가스의 구성을 처리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산소가 좋은 것으로만 알지만 엄청난 독이예요. 산소로 꽉 차 있다가 식물이 출현하면서 대기의 성분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여타 생물의 진화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나무만 없어지면 모든 게 끝나버립니다. 못 살아요.

 

인간존재라는 것은 고립된 인간존재만으로서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인권만 보장받는다고 해서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은 개소리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물()과 인()의 동시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물성(物性)이 나오는 거예요. 인성(人性)에 대해서 물성(物性)! 여러분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책상에 흠집 하나라도 내지 마십시오. 그 책상조차도 자기 모습을 지니고 싶어 합니다. 모든 것에 대해서 물권(物權)을 중시하라, 물권(物權)을 중시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222. 자연을 망치지 말고 화육(化育)에 참여하라

 

 

능진물지성 즉가이찬천지지화육(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란 것은 뭐냐? 전에는 감()으로만 근사하게 잡고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은 에콜로지(ecology)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 존재한다는 방식은 문명의 방식입니다. 야생 곡식만 가지고는 우리가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논을 만들고 쌀을 길러야 하죠. 쌀을 기르는 것은, ‘능진물지성(能盡物之性)’할 때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양사상은 문명의 형태가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런 점에서 서구문명은 실수한 거예요. 서구문명은 이런 동양문명의 기본자세를 우습게 알았거든요.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이런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씨를 뿌린다든가 관개(灌漑)라든가 불을 피워서 취사를 하는 것 등이 천지지화육(天地之化育)’을 돕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금(現今), 인류역사상 가장 큰 위기로 등장한 에콜로지의 문제는, 천지(天地)와 천하(天下)의 조화가 어긋나버렸다는 데에 문제의 근원이 있습니다.

 

대화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라는 것은, 어차피 문명에 사는 인간이지만 그 문명을 천지자연의 순환체계 안에서 운영하라는 생각이 동양사상에는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천지자연이라는 체계, 스스로 그러한 천지의 체계를 하나의 원금, 캐피탈(Capital, 자본)로 계산한다면 이 원금은 순환하는 체계예요. 천지자연 자체는 순환하며, 순환하니까 순환과정에서 소출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찬천지지화육(贊天地之化育)’이란,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원금에 대해서 이자가 생기는, 이 이자 속에서만 문명을 운영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자를 먹고 살던 놈들이 20세기 현대문명에 이르러서 드디어 원금을 깎아 먹기 시작했죠? 원금을 깎아 먹으면 이자 소출이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몽땅 뒈지는 거예요. 모든 게 끝나버립니다. 원금에 대한 이자의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삼의(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여기 ()’이라는 글자는 동참한다는 도 될 수 있고 주자 주()에서처럼 석 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면 구조가 천ㆍ지ㆍ인 삼재(三才)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것은 주역(周易)계사(繫辭)사상과 동시대의 패러다임입니다. ‘()’()’()’이 합해서 삼(동시에 참)이 된다는 거예요. ((()이 하나의 트라이아드(triad, 삼발)로서 고정된 안정적 구조를 형성하는 그러한 문명의 구조를 벗어나지 말자는 것입니다. 재생들 중에서 지난번에 내 집에 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내 집도 중용(中庸)의 사상을 가지고 설계를 한 거예요. 중간 층 ()의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고, 아래 층 ()의 공간에서는 먹고, 맨 윗 층 ()의 공간에서는 내가 집필하고 또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고, 이런 천((()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내 집, 이게 문명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천((()의 구조 속에서 동양문명을 생각해야 해요.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점입니다.

 

유천하지성 ··· 가이여천지삼의(惟天下至誠 ··· 可以與天地參矣)’

이 글은, 대학교 다닐 때 맨 처음 읽으면서 명쾌하게 다가선 것은 아니었지만, 나로선 감흥이 참으로 컸었습니다. 왠지 그렇게 큰 감흥이 일렁였어요!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영원히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숙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데, 참 큰 일이예요. 무슨 개지랄을 해도 문명을 운영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문명은 에너지이다! 전기, 난방, 수도 등등이 이게 모두 문명이고 에너지 아닙니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문명의 형성과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동력원은 궁극적으로 태양 에너지의 변형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무슨 육갑을 떤다고 해도 천지의 구조, 중용(中庸)은 깨지지 않아요. 우리가 연료 또는 여러 가지 재료로 쓰고 있는 나무, 석탄, 석유 등도 태양에너지가 동화작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또는 그 변형이잖아요? 나무는 곧 태양인 거죠. 다 태양이 변한 것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모든 생명은 존재가능하지 않다! 모든 생명은 태양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천((()이라는 구조는 절대로 변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단 하나인 지구! 이 위에 우리는 살고 있고, 단 하나뿐인 태양! 이것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인간은 함부로 까불고 있어요. 지구를 다 써먹고 다 해쳐먹고 난 다음에는 인공위성을 만들어가지고 지구를 탈출해서 어디 다른 행성에 가서 살겠다고 생각하는 놈들, 이런 놈들은 참 웃기는 자식들입니다. 제아무리 갤럭시(Galaxy)가 존재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인간에게 말짱 헛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그곳으로 가냐, 이 빌어먹을 놈들아! 그건 넌센스다! 도대체 수십억만년 위대한 진화의 결정체인 이 아름다운 천지를 두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이 망할 자식들아!

 

인간은 어디 딴 데로 갈 수도 없고, 이 지구만큼, 이 천((() 삼재(三才)의 구조만큼 아름다운 자연은 그 어디에도 다시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전자오락 게임 속의 현란함처럼 마구 이 세상이 굴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X세대라면 이것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착각도 너무 심한 황당한 착각이예요. 이런 현상은 순전히 자본주의, 상업주의 전자산업에 꼴린 놈들, 황당한 환상을 심어 줌으로써 자기들 장사를 해쳐먹으려는 나쁜 놈들이 장난질을 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 나쁜 놈들의 장난질이 세상을 망쳐먹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천((()의 구조를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이 구조를 떠나서는 자멸의 길밖에는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가이찬천지지화육 즉가이여천지삼의(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라는 이 메시지는 그야말로 영원할 수밖에 없는 진리인 겁니다. 이걸 모르고 함부로 까불고들 있는데, 이런 인류의 방종은 내 몸을 망쳐버리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는 만대(萬代)의 가능성을 흉칙스럽게 변질시키거나 깡그리 지워버리게 되는, 실로 섬뜩하고 가공할 현상(내 몸의 오염에 의한 DNA 변형이나 또는 직접적으로 겪는 죽음)을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21
핵심
내용
천도
(天道)
22 24 26     30 31 32 33
전편
요약
인도
(人道)
23 25 27 2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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