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자의 은둔했던 현자들에 대한 평가
18-8. 일민(逸民)으로서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와 우중(虞仲)과 이일(夷逸)과 주장(朱張)과 유하혜(柳下惠)와 소련(少連)을 들 수 있다. 18-8. 逸民: 伯夷ㆍ叔齊ㆍ虞仲ㆍ夷逸ㆍ朱張ㆍ柳下惠ㆍ少連.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자신의 생각을 비굴하게 낮추지 아니 하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일 것이다.”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ㆍ叔齊與!” 또 유하혜(柳下惠)와 소련(少連)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자신의 생각을 낮추기도 하고 몸을 욕되게도 하였으나, 그 말이 윤리에 들어맞고 행동이 사려에 합치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훌륭하다 할 것이다.” 謂: “柳下惠ㆍ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또 우중(處仲)과 이일(夷逸)을 평하시어 말씀하시었다: “숨어 살면서 세속적인 말은 하지 않았으며 몸이 깨끗함에 들어맞았고 폐(廢)함이 권도(權道)에 들어맞았다.” 총결(總結)지어 말씀하시었다: “나는 이들과는 다르다. 나는 고정적으로 가(可)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없고, 고정적으로 불가(不可)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없다.” 謂: “虞仲ㆍ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
앞의 세 장에서 공자의 유랑시대의 에피소드가 영상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고래의 유명한 일민(逸民) 7명을 소개한 후 그들의 삶의 자세를 평론하고 최종적으로 자기의 삶의 자세를 밝힘으로써 앞세장의 에피소드에 나타난 공자의 입장을 한층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확고한 편집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일민(逸民)이란 고주에 ‘절개 있는 행동이 초일한 사람들[절행초일자야(節行超逸者也)]’라고 하였고, 신주에는 ‘일(逸)’은 ‘세태에서 빠져나와 은일하게 산다[유일(遺逸)]’, ‘민(民)’은 ‘벼슬을 하지 않았음을 일컫는다[무위지칭(無位之稱)]’이라 하여, 우리 옛말의 처사(處士)와 비슷하게 해석하였다. 실제로 여기 열거된 사람은 7인이지만 공자가 코멘트를 가한 것은 6인뿐이다. 주장(朱張)이 빠져있다. 왕필(王弼)은 주장(朱張)은 자(字)가 자궁(子弓), 순자가 공자에 비견한 인물이며, 진퇴ㆍ취사 의 도가 공자와 거의 합치하기 때문에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王弼曰: “朱張, 字子弓. 荀卿以比孔子. 今序六人, 而闕朱張者, 明取舍與己合同也.”]. 별로 신빙성 없는 말일 것이다.
백이와 숙제에 관해서는 5-22, 7-14, 16-12에서 충분히 논의되었다. 유하혜에 관해서는 15-13, 18-2에서 언급되었으나 소련(少連)에 관해서는 알려진 사적이 없다. 『예기』 「잡기」 하편에 ‘소련(少連)’과 ‘대련(大連)’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거상(居喪)을 잘했는데, 사흘 동안 게으름이 없었고, 석 달 동안 해이함이 없었으며, 일년 동안 비애로왔고, 삼 년 동안 근심 속에서 살았다고 했다. 동이(東夷)의 자식이라 했으니, 동방예의지국 조선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기사이이의(其斯而已矣)’는 ‘이것뿐이다’라는 식으로 번역하는데 그것은 맥락을 무시한 오역이다. 이런 단순한 번역 때문에 『논어』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돋보인다’는 뜻이다.
다음의 우중(虞仲)은 「태백」 제1장에서 소개된 바 있는 오태백(吳泰伯)의 동생 중옹(仲雍)이다. 동생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하여 형만(荊蠻) 지방으로 은거해버린 인물이다. 오태백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왕위에 올랐다. 훌륭한 인물이다. 이일(夷逸)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은거방언(隱居放言)’의 ‘방(放)’을 ‘마구 지껄인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방(放)’은 ‘치(置)’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방치(放置)’라는 말을 쓰듯이 ‘놓아둔다’는 뜻이다. ‘말을 놓아둔다’ 즉 말에 대한 관심이 없이 말 그 자체를 방치해둔다는 뜻이다. 포함의 주가 그렇게 되어 있다[放, 置也. 不復言世務也].【‘방(放)’은 놓아둔다는 뜻이다. 자꾸 구질구질하게 세상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지막의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도 모두 애매하게 해석하고 마는데, 공자는 ‘가(可)’ ‘불가(不可)’를 초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미 얽매임이 없다는 것이다. 고정적인 ‘가’에의 집착도 없고, 고정적인 ‘불가(不可)’에의 집착도 없다.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벼슬할 만한 상황이 못 되면 벼슬하지 않는다. 출처진퇴가 자유롭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앞의 주제와 동일하다. 이미 ‘일민(逸民)’이라는 장자적 이미지를 초극한 자이언트로서의 공자의 이미지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왕필(王弼)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無)’는 인간의 언어로써 언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노자(老子)는 항상 ‘무(無)’를 말하기 때문에 유(有)에 머물러 있는 인간이고, 공 자는 ‘무’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진실로 무(無)를 체득한 자이다라고.
그런데 이 장은 또 『맹자』 「만장」 하 제1장의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드시 「만장」 하 제1장과 같이 놓고 보아야 이 『논어』라는 텍스트의 성격이 드러난다. 「만장」은 이 장에 대한 주석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장에서 말하려고 하는 테마가 오히려 「만장」에서 더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백이(伯夷)는 성(聖)의 청자(淸者)요, 이윤(伊尹)은 성(聖)의 임자(任者)요, 유하혜(柳下惠)는 성(聖)의 화자(和者)이며, 공자(孔子)는 성(聖)의 시자(時者)라는 말은 유명한 말이다.
『논어』 본 장의 ‘일민(逸民)’이라는 말 때문에, 『후한서』에 「일민전(逸民傳)」이, 『진서(晋書)』에 「은일전(隱逸傳)」이 생겨났으며, 그 후의 정사에도 그 시대의 일민을 기록하게 되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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