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자 시절에 등문공이 장례에 대해 맹자에게 묻다
滕定公薨.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 然後行事.”
定公, 文公父也. 然友, 世子之傅也. 大故, 大喪也. 事, 謂喪禮.
然友之鄒問於孟子.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 曾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齊, 音資. 疏, 所居反. 飦, 諸延反.
○ 當時諸侯莫能行古喪禮, 而文公獨能以此爲問, 故孟子善之.
又言父母之喪, 固人子之心所自盡者. 蓋悲哀之情, 痛疾之意, 非自外至, 宜乎文公於此有所不能自已也. 但所引曾子之言, 本孔子告樊遲者, 豈曾子嘗誦之以告其門人歟? 三年之喪者,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故父母之喪, 必以三年也. 齊, 衣下縫也.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疏, 麤也, 麤布也. 飦, 糜也. 喪禮: 三日始食粥. 旣葬, 乃疏食. 此古今貴賤通行之禮也.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父兄百官皆不欲, 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 不可. 且志
曰: 喪祭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父兄, 同姓老臣也. 滕與魯俱文王之後, 而魯祖周公爲長. 兄弟宗之, 故滕謂魯爲宗國也. 然謂二國不行三年之喪者, 乃其後世之失, 非周公之法本然也. 志, 記也, 引志之言而釋其意. 以爲所以如此者, 蓋爲上世以來, 有所傳受; 雖或不同, 不可改也. 然志所言, 本謂先王之世舊俗所傳, 禮文小異而可以通行者耳, 不謂後世失禮之甚者也.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好, 爲, 皆去聲.
○ 不我足, 謂不以我滿足其意也.
然友復之鄒問孟子.
復, 扶又反.
孟子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必偃. 是在世子.”
歠, 川悅反.
○ 然者, 然其不我足之言. 不可他求者, 言當責之於己. 冢宰, 六卿之長也. 歠, 飮也. 深墨, 甚黑色也. 卽, 就也. 尙, 加也. 『論語』作上, 古字通也. 偃, 伏也. 孟子言但在世子自盡其哀而已.
然友反命. 世子曰: “然. 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知. 及至葬, 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諸侯五月而葬, 未葬, 居倚廬於中門之外. 居喪不言, 故未有命令敎戒也. 可謂曰知, 疑有闕誤.
或曰: “皆謂世子之知禮也.”
○ 林氏曰: “孟子之時, 喪禮旣壞, 然三年之喪, 惻隱之心, 痛疾之意, 出於人心之所固有者, 初未嘗亡也. 惟其溺於流俗之弊, 是以喪其良心而不自知耳. 文公見孟子而聞性善堯舜之說, 則固有以啓發其良心矣, 是以至此而哀痛之誠心發焉. 及其父兄百官皆不欲行, 則亦反躬自責, 悼其前行之不足以取信, 而不敢有非其父兄百官之心. 雖其資質有過人者, 而學問之力, 亦不可誣也. 及其斷然行之, 而遠近見聞無不悅服, 則以人心之所同然者, 自我發之, 而彼之心悅誠服, 亦有所不期然而然者. 人性之善, 豈不信哉?”
해석
滕定公薨. 世子謂然友曰: “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 於心終不忘. 今也不幸至於大故, 吾欲使子問於孟子, 然後行事.”
등나라【등나라는 소국이지만 본시 주 문왕의 아들 숙수(叔繡)가 분봉된 나라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헌원씨의 아들 중에 등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있는데, 그를 시조로 한다. -『맹자, 인간의 길』, 311~312쪽】 정공(定公)이 돌아가시자 세자께서 사부 연우(然友)에게 말했다. “옛적에 맹자께서 일찍이 나와 함께 송(宋)에서 대화했었는데 마음에 끝내 잊지를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불행하게도 크나큰 연고를 당하였으니 내가 스승님을 보내 물은 뒤에 장례일을 진행하겠습니다.”
定公, 文公父也.
등정공은 문공의 아버지다.
然友, 世子之傅也.
연우는 세자의 스승이다.
大故, 大喪也. 事, 謂喪禮.
대고(大故)는 큰 초상이다. 사(事)는 초상의 예다.
然友之鄒問於孟子.
연우가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孟子曰: “不亦善乎! 親喪固所自盡也. 曾子曰: ‘生, 事之以禮; 死, 葬之以禮, 祭之以禮, 可謂孝矣.’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또한 좋지 아니합니까! 친부모의 초상은 진실로 스스로 지극히 하는 것이니 증자께서 ‘살아계실 적에 에(禮)로 섬기고, 돌아가신 후엔 예(禮)로 장사지내며, 예(禮)로 제사지내면 효도한다고 할 만하다.’고 했으니,
諸侯之禮, 吾未之學也; 雖然, 吾嘗聞之矣. 三年之喪, 齊疏之服, 飦粥之食, 自天子達於庶人, 三代共之.”
제후의 예는 제가 배우지 못했지만 제가 일찍이 듣긴 했었습니다. 3년상에 자소의 상복【자소(齊疏): 거친 베로 지은 아랫단을 헌 상복을 말한다】을 입고 미음과 죽을 먹는 것이 천자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의 공통입니다.”
齊, 音資. 疏, 所居反. 飦, 諸延反.
○ 當時諸侯莫能行古喪禮,
당시의 제후는 옛 상례를 행하지 않았는데
而文公獨能以此爲問,
문공이 홀로 이것을 물었기 때문에
故孟子善之.
맹자가 좋게 여긴 것이다.
又言父母之喪, 固人子之心所自盡者.
또한 ‘부모의 초상은 진실로 자식 마음에 스스로 다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蓋悲哀之情, 痛疾之意, 非自外至,
대개 슬픔의 정과 애달프게 여기는 뜻이 밖으로부터 이르는 게 아니니
宜乎文公於此有所不能自已也.
마땅히 문공이 여기에 스스로 그만둘 수 없는 게 있었으리라.
但所引曾子之言,
다만 증자(曾子)의 말을 인용한 것은
本孔子告樊遲者,
본래 공자가 번지(樊遲)에게 말해준 것이니,
豈曾子嘗誦之以告其門人歟?
아마도 증자가 일찍이 외워 문인들에게 말해준 것일 것이다.
三年之喪者, 子生三年,
3년상이라는 것은 자식이 태어난 지 3년이 된 후에
然後免於父母之懷. 故父母之喪, 必以三年也.
부모의 품을 벗어나므로 부모의 초상은 반드시 3년 동안 한다는 것이다.
齊, 衣下縫也.
자(齊)는 옷 아래가 꿰매진 것이니,
不緝曰斬衰, 緝之曰齊衰.
꿰매지 않은 건 참최복(斬衰服)이라 하고 꿰매진 건 자최복(齊衰服)이라 한다.
疏, 麤也, 麤布也.
소(疏)는 거칠다는 것이니, 거친 삼베라는 것이다.
飦, 糜也.
전(飦)은 죽이다.
喪禮: 三日始食粥. 旣葬, 乃疏食.
상례에 ‘3일에 처음 미음을 먹고 이미 장사지냄에 곧 거친 밥을 먹는다’라고 했으니,
此古今貴賤通行之禮也.
이것이 고금의 귀천에 공통된 예다.
然友反命, 定爲三年之喪.
연우가 돌아와 세자께 말씀드리니, 3년상을 하기로 결정하셨다【삼년 국상은 맹자 및 공문(孔門)으로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는 위대한 승리의 사건이었다. 전국시대의 공리주의적 분위기에서 이것은 너무도 이례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맹자, 인간의 길』, 312쪽】.
父兄百官皆不欲, 曰: “吾宗國魯先君莫之行, 吾先君亦莫之行也, 至於子之身而反之, 不可. 且志曰: 喪祭從先祖.” 曰: “吾有所受之也.”
그런데 부형과 백관들이 하려 하지 않으며 말했다. “우리의 종주국인 노나라의 선군(先君)께서도 행하지 않았고 우리의 선군도 또한 행하지 않았으니, 당신께서 상황에 이르러 그걸 뒤집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기록에 ‘상례는 선조를 따른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전해 받았기 때문입니다.”
父兄, 同姓老臣也.
부형은 동성(同姓)의 나이든 신하다.
滕與魯俱文王之後, 而魯祖周公爲長.
등나라와 노나라는 다 문왕의 후예지만 노나라 시조인 주공이 맏아들이니
兄弟宗之, 故滕謂魯爲宗國也.
형제가 그를 종주로 삼았기 때문에 등나라는 노나라를 종주국으로 삼았다고 한 것이다.
然謂二國不行三年之喪者,
그러나 두 나라가 3년상을 행하지 않은 것은 후세에 잃은 것이지
乃其後世之失, 非周公之法本然也.
주공의 법이 본래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志, 記也,
지(志)는 기록이니,
引志之言而釋其意. 以爲所以如此者,
옛 기록의 말을 인용하고 그 뜻을 해석해보면 ‘이와 같이 하는 이유는
蓋爲上世以來, 有所傳受; 雖或不同, 不可改也.
대저 상대(上代) 이래로 전수받아 비록 혹 같진 않으나 고칠 수는 없다.’라는 말이다.
然志所言, 本謂先王之世舊俗所傳,
그러나 기록에서 말한 것은 ‘선왕 세대의 옛 풍속이 전해진 것으로
禮文小異而可以通行者耳,
예문(禮文)이 조금 차이나나 통용할 수 있을 뿐이니,
不謂後世失禮之甚者也.
후세에 예를 잃음의 심한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謂然友曰: “吾他日未嘗學問, 好馳馬試劍. 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 恐其不能盡於大事, 子爲我問孟子.”
연우에게 말했다. “저는 지난날에 일찍이 학문하지 않고 말 달리며 칼을 시험하길 좋아했는데 이제 부형과 백관이 나를 만족스러워하질 않으니, 큰일을 다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스승이 나를 위해 맹자께 물어봐주십시오.”
好, 爲, 皆去聲.
○ 不我足, 謂不以我滿足其意也.
불아형(不我足)은 나로서 그 뜻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然友復之鄒問孟子.
연우는 다시 추나라로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復, 扶又反.
孟子曰: “然. 不可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 聽於冢宰.’ 歠粥, 面深墨. 卽位而哭,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必偃. 是在世子.”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합니다.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습니다. 공자께서 ‘임금이 돌아가시면 총재에게 명령을 듣는다.’라고 했으니, 미음을 마시고 얼굴이 심하게 검어져 자리에 나아가 곡을 하면 백관과 관리들이 감히 슬퍼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솔선수범했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좋아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더 심하게 좋아하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세자에게 달려 있다.
歠, 川悅反.
○ 然者, 然其不我足之言.
연(然)이란 나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을 옳게 여긴 것이다.
不可他求者, 言當責之於己.
불가타구(不可他求)라는 것은 마땅히 자기에게서 꾸짖어야 한다는 말이다.
冢宰, 六卿之長也. 歠, 飮也.
총재(冢宰)는 육경(六卿)의 우두머리다. 철(歠)은 마신다는 것이다.
深墨, 甚黑色也. 卽, 就也.
심묵(深墨)은 심히 검은 얼굴빛이다. 즉(卽)은 나아간다는 것이다.
尙, 加也. 『論語』作上, 古字通也.
상(尙)은 더한다는 뜻이니, 『논어(論語)』에선 ‘상(上)’으로 나오며, 고자(古字)로 통한다.
偃, 伏也.
언(偃)은 눕는다는 것이다.
孟子言但在世子自盡其哀而已.
맹자는 다만 세자가 스스로 슬픔을 지극히 하는 데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然友反命. 世子曰: “然. 是誠在我.” 五月居廬, 未有命戒. 百官族人可謂曰知. 及至葬, 四方來觀之, 顔色之戚, 哭泣之哀, 弔者大悅.
연우가 돌아와 말해주니 세자께서 “그러합니다. 참으로 저에게 달려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고 5월에 임시 천막에서 살며 명령과 경계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백관과 가족들이 ‘예를 알도다’라고 말했고 장례 지낼 때에 이르러선 사방에서 와서 보니 안색이 근심스럽고 곡함이 서글퍼서 조문하는 사람들이 크게 반겼다.
諸侯五月而葬,
제후는 5개월의 장례 지내고【빈소는 실제로 뼈를 묻기 전의 초분과도 같은 것이다. 천자는 7개월, 제후는 5개월, 대부는 3개월로 정해져 있다. 빈에서 장으로 진행된다. 그 기간 동안만 초옥에 거하는 것이다. -『맹자, 사람의 길』 311쪽】
未葬, 居倚廬於中門之外.
장례지내지 않을 때엔 중문 밖의 임시 천막에 산다.
居喪不言, 故未有命令敎戒也.
초상 때에 말하지 않기 때문에 명령과 경계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可謂曰知, 疑有闕誤.
가위왈지(可謂曰知)란 궐문(闕文)이나 오자(誤字)가 있는 듯하다.
或曰: “皆謂世子之知禮也.”
혹자는 ‘모두 세자가 예를 안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 林氏曰: “孟子之時, 喪禮旣壞,
임지기(林之奇)가 말했다. “맹자 당시에 초상의 예는 이미 사라졌지만
然三年之喪, 惻隱之心, 痛疾之意,
3년상의 측은지심과 아파하는 뜻은
出於人心之所固有者, 初未嘗亡也.
사람 마음의 고유한 곳에서 나와 애초에 일찍이 사라지지 않는다.
惟其溺於流俗之弊, 是以喪其良心而不自知耳.
오직 풍속의 폐단에 빠졌기 때문에 양심을 잃어 스스로 알지 못했을 뿐이다.
文公見孟子而聞性善堯舜之說,
문공은 맹자를 보고 성선(性善)과 요순의 말을 듣고
則固有以啓發其良心矣,
진실로 그 양심이 확 트였기 때문에
是以至此而哀痛之誠心發焉.
이에 이르러 애달파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발동했던 것이다.
及其父兄百官皆不欲行, 則亦反躬自責,
그러나 부형과 백관이 모두 행하고자 하지 않음에 이르러선 또한 몸을 반성하여 자책하고
悼其前行之不足以取信,
예전의 행동이 믿음을 얻기엔 부족했음을 슬퍼하며
而不敢有非其父兄百官之心.
감히 부형과 백관을 비난하는 마음이 없었다.
雖其資質有過人者, 而學問之力, 亦不可誣也.
비록 자질은 남보다 뛰어남이 있더라도 학문의 공력은 또한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及其斷然行之, 而遠近見聞無不悅服,
단언컨대 그것을 행함에 이르러선 모든 이가 보고 듣고 감복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則以人心之所同然者, 自我發之,
사람 마음이 함께 그러한 것을 나로부터 발휘하여
而彼之心悅誠服, 亦有所不期然而然者.
저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진실로 감복하여 또한 그러하길 기약하지 않아도 그러한 것이다.
人性之善, 豈不信哉?”
본성이 선하다는 것이 어찌 참이 아니리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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