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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5도 양계, 최충, 양전보수법) 본문

역사&절기/한국사

5부 국제화시대의 고려 - 3장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5도 양계, 최충, 양전보수법)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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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안정의 대가

 

 

전성기 코리아

 

 

1010년 요나라의 2차 침략을 받았을 때 현종은 대장경을 조판할 것을 명했다. 그 의도는 부처의 힘을 빌려 전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거란도 역시 독실한 불교 국가였으니 부처라 해도 과연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난감했을 것이다(이 대장경의 판은 나중에 몽골 침략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전하는 팔만대장경은 몽골 침략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새로 조판한 것이다). 차라리 현종으로서는 나주까지 도망치지 말고 개경에 남아 궁성과 수도의 백성들을 구하는 게 훨씬 당당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대장경의 조판 이외에도 현종은 성종(成宗)이 중단시켰던 거국적 불교 행사인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를 부활시켰으니 불교에 대한 신심이 상당히 깊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불교 국가를 구현하고자 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앞서 본 최승로의 말처럼 불교는 어디까지나 도덕과 신앙의 차원에서 기능할 뿐이고, 국가 체제를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유학이 최고다(세상의 어느 군주가 유학처럼 지배자에게 매력적인 이데올로기를 거부할까?). 현종은 오히려 승려의 과대한 권한을 억제하고, 한림원(翰林院)을 두어 유교 국가 특유의 학자 관료 체제(하권 67쪽 참조)를 도모하는 한편 설총최치원(崔致遠) 등 유학의 위인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제시를 지냈는데, 이것이 문묘종사(文廟從祀)의 시작이다(문묘란 공자의 사당을 뜻하니까 문묘종사란 유교 의례에 따른 제사를 말한다). 그러나 시대는 아직 완벽한 유학 국가가 도래하기에는 일렀고, 현종에게는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었다. 전란이 남긴 결과를 추슬러 고려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새로 얻은 북방의 영토를 포함하여 그는 전국을 5도 양계로 재편함으로써 지방행정구역을 확정했다5도 양계란 양광도(경기도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교주도(강원도), 서해도(황해도)의 다섯 개 도()와 동계와 북계의 두 계()를 가리키는데, 양계는 물론 북변의 국방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편성된 단위다. 이렇게 지방행정구역이 변경되면서 성종 대의 12목도 8목으로 줄었다. 그 과정에서 중앙집권화는 한층 진척되었으나 앞서 말했듯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속현의 수가 많은 현상은 고려 말까지 계속된다. 그런 점에서 고려시대는 내내 조금씩 중앙집권화 작업이 이루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5도 양계의 행정구역은 고려 말까지 유지되다가 조선시대에 들어 1413년 태종이 전국을 우리에게 익숙한 8도로 재편하게 된다.

 

이제 모든 게 안정을 찾았다. 신라시대에도 그랬듯이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은 역시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가 자리를 잡아야만 가능하다. 현종 대에 이르러 대외적으로 국난이 극복되고 대내적으로 제도가 정비되면서 고려 사회는 비로소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맞게 된다. 그래서 뒤이은 덕종(德宗, 재위 1032~34)에서부터 문종(文宗, 재위 1046~83)까지의 약 50년간은 고려 역사상 최고 전성기다. 팍스 코레아나(Pax Koreana)라고나 할까?

 

전성기답게 이 시기의 고려는 정치ㆍ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다원화가 두드러졌다. 신앙으로서의 불교와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유교가 가장 잘 조화를 이룬 것도 이 시기다. 또한 불교와 유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도교도 융성기를 맞아 흔히 유ㆍ불ㆍ선이라 말하는 한반도 전통 사상(실은 그 중 어느 것도 순수한 전통은 못 되지만)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게다가 문화와 예술에서도 신라를 계승하는 전통적인 흐름과 더불어 송나라와 거란의 문화를 수용해서 고려 특유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이 시기는 아마 이후의 역사까지 포함해서 한반도 역사상 가장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시대일 것이다.

 

 

 

 

그러나 좋게 말하면 다원화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유한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말도 된다. 전성기의 고려 사회에서 크로스오버와 퓨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곧 당시에 그만큼 지배적인 이념이 없었다는 뜻이다. 문묘종사를 제도화했던 현종이 독실한 불교도이기도 했고 궁궐에서 도교 제사도 지냈다는 사실이 바로 그런 점을 말해준다(물론 그것 역시 왕건이 물려준 유산이다). 이후의 국왕들도 이념적으로 잡탕을 즐긴 점에서는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인 경우가 예종(睿宗, 재위 1105~22)이다. 그는 최초로 경연(經筵)을 도입했고, 팔관회에서 도이장가(悼二將歌)를 읊었으며, 최초의 도관(道觀)인 복원궁을 건립했으니 가히 퓨전의 정수라 할 만한 군주다경연이란 신하가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의하는 걸 말하는데, 조선시대에 들어 더욱 확고한 제도로 자리잡게 된다. 나중에 보겠지만 조선 초기에 경연은 왕권을 제약하는 요소였으나 후기에는 왕권 강화의 한 수단으로 사용된다(특히 영조英祖가 전매특허처럼 써먹었다). 또한 도이장가1120년에 예종이 팔관회에 참가해서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과 김락의 두 장수[二將]를 추도하며 발표한 이 두 가요다(그들은 927년 왕건이 대구에서 후백제와 싸울 때 왕의 목숨을 구하고 전사했다). 마지막으로 도관이란 도교 사원을 가리킨다. 이렇게 예종은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에 심취하고 도교를 장려한 유ㆍ불ㆍ선의 삼위일체격인 군주였는데, 물론 의식적으로 통합을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세 가지 이념 중에 가장 잠재력이 큰 것은 역시 유학이다. 이는 특히 문종의 국가 경영 구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최충(崔沖, 983~1068)을 문하시중(국무총리 격)으로 발탁하고 유교적 국가 체제의 마무리를 맡긴다. 과연 왕이 기대한 대로 최충은 기존의 율령을 정비해서 형법을 체계화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 임무를 완수했으며, 그와 함께 공직 생활도 마무리하고 한반도 최초의 사립학교인 9재학당(九齋學堂)을 열어 유학 이념의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또한 앞에서 말했듯이 전시과(田柴科)를 최종적으로 개정해서 고위직(5품 이상) 관료들에게 수조권이 세습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문종 때인데, 이것 역시 유학 이념에 입각한 체제 정비작업의 일환이다. 유교적 국가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료들의 재정적 안정이 긴요하니까.

 

그런데 경정된 전시과(田柴科)가 완벽하게 기능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실 토지를 측량하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전시과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물론 전통적인 토지 단위인 결()이 있지만 문제는 객관적인 단위가 못된다는 점이다. 원래 1결은 소 한 마리가 나흘간 경작할 수 있는 면적이라고 정해져 있었으나, 이런 기준이라면 아무래도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국가 재정의 총체라 할 토지를 객관적으로 측량하는 단위가 없다면 전시과(田柴科)는커녕 조세 수입에도 차질이 생긴다. 이런 점을 시정하기 위해 문종은 1069년에 양전보수법(量田步數法)을 제정한다. 말 그대로 토지를 걸음[]으로 측량한다는 뜻이다. 그에 따라 1결은 사방 33보의 토지로 확정되었는데, 자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런 대로 최선의 토지 측량법이라 할 수 있겠지만 누구의 보폭으로 재느냐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을 수밖에 없겠다.

 

 

종교의 퓨전 신앙으로서는 불교를, 이념으로서는 유교를 권장한 최승로의 시무 28에서 보듯이 고려는 종교적으로 퓨전 체제였다. 현종은 불교에 심취했고, 문묘종사를 시작했으며, 도교 제사도 올렸으니 말하자면 퓨전의 극치다. 그래도 가장 기본적인 종교를 꼽으라면 역시 불교다. 사진은 높이 18미터로 국내 최대의 석불인 관촉사 은진미륵불상인데, 광종(光宗) 때 건립됐다.

 

 

인용

목차

동양사 / 서양사

전성기 코리아

완성과 동시에 시작된 해체

북방의 새 주인

국왕의 쿠데타

북벌의 망상

삼국사기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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