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다시 그림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다. 산수화에서 비가 오는 광경은 어떻게 그리는가? 화면 위에 빗금을 그어 빗줄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그리는가? 학생들이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릴 때처럼 칫솔에 흰 물감을 묻혀 뿌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바람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바람은 없고 비만 올 때는? 비를 그리지 않고, 눈을 그리지 않고, 바람을 그리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비와 바람을 시로 담는 법
왕유(王維)의 저술로 전해지는 「산수결(山水訣)」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오면 천지가 구분되지 않고 동서를 알 수가 없다.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으면, 단지 나무의 가지만 보인다. 비는 오지만 바람이 없으면, 나무 끝이 축 처지고, 행인은 우산이나 삿갓을 쓰고, 어부는 도롱이를 걸친다.” 자! 이 비결을 가지고 다시금 눈에 익은 여러 산수화를 살펴보라.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연암은 「종북소선서(鍾北小選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먼물은 물결이 없고, 먼 산은 나무가 없으며, 먼 사람은 눈이 없다. 그 말함은 가리킴에 있고, 그 들음은 손을 맞잡음에 있다[遠水不波, 遠山不樹, 遠人不目. 其語在指, 其聽在拱].” 먼물과 가까운 물은 파도의 있고 없음으로 구분한다. 산의 원근은 나무의 유무로 드러낸다. 사람의 멀고 가까움은 눈을 그리느냐 그리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화면 속에 두 사람이 나오면, 으레 한 사람은 어딘 가를 가리키고 있고, 한 사람은 손을 맞잡고 있다. 가리키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고, 맞잡은 사람은 듣고 있는 사람이다. 싸구려 산수화를 보면 아득히 먼 산에도 어김없이 소나무가 빽빽히 그려져 있다. 연암의 위 말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효험 있는 처방이다. 이것이 바로 그림에 있어서의 입상진의이다.
이색, 사립문을 닫은 까닭
이제 입상진의(立象盡意)의 거울에 비추어, 시 몇 수를 감상해 보자. 1수 「팔월초십일(八月初十日)」이고 2수 「신흥(晨興)」으로 다음과 같다.
夜冷貍奴近 天晴燕子高 | 차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개인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
殘年深閉戶 淸曉獨行庭 | 남은 해 깊이 문 닫아 걸고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
『소문쇄록(謏聞瑣錄)』에서 한적시(閑寂詩)의 대표적 예로 들고 있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작품이다. 서늘해진 가을 밤, 고양이는 추위를 못 이겨 자꾸 사람 곁을 찾아들고, 하늘 높이 제비는 강남 가는 길을 서두른다. 시인은 고양이와 제비를 빌어 가을이 깊어 감을 말하고 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고양이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외롭고 춥기야 고양이나 나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나뭇잎이 지듯 모든 것들은 훌훌 떠나버리고, 남은 생애도 하잘 것 없어 사립문을 닫아걸었다. 닫아 건 사립 안에서 맑은 새벽 홀로 뜨락을 거니는 시인의 심사는 안으로 잔잔한 서글픔과 허탈함을 담았으면서도, 새벽 공기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러나 세상과 어그러져 닫은 사립문은 밖에서 열기 전에는 스스로도 열 수가 없다. 사립문 속에서는 자신과의 싸움이 있고, 치열한 자기 갱신이 있다.
이제현, 밤새도록 내린 눈을 시로 담다
다음은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의 「산중설야(山中雪夜)」란 작품이다.
紙被生寒佛燈暗 | 홑이불 한기 들고 불등은 희미한데 |
沙彌一夜不鳴鐘 | 사미는 밤새도록 종조차 울리잖네. |
應嗔宿客開門早 | 나그네 일찍 문 연다 응당 투덜대겠지만 |
要看庵前雪壓松 | 암자 앞 눈이 소나무 누른 모습 보아야겠네. |
깊은 산에 자리 잡은 암자에 손님이 찾아 들었다. 궁벽한 암자라 식구라야 스님과 심부름하는 사미승 둘이 고작인데, 예기치 않던 손님을 맞아 군불도 때지 않은 법당에다 잠자리를 마련했던 모양이다. 얇은 이불로 스물스물 스며드는 한기에 손님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인이 잠 못 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미승이 종을 울리지 않은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등 희미한 법당 한 구석에서 추위에 떨고 있으려니, 날이 어서 새었으면 하는 바램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사미승 녀석은 따뜻한 제 방에서 잠만 쿨쿨 자느라 종을 울리지 않으니 깜깜한 밤에 나그네는 도무지 시각을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춥고 괴로운 밤이 지나고 터오는 먼동이 나그네는 어느 때보다 반가웠겠다. 내다보니 밤새 흰 눈이 내려 천지는 은세계로 변해 있었다. 소담스런 눈에 덮여 눈뜨는 물상들의 조촐한 모습에 이끌린 나그네는, 간밤의 추위와 불면도 까맣게 잊고 탄성 속에 밖으로 나선다. 3구는 문을 나서면서 나그네가 혼자 하는 독백이다. 밤새 잠만 잔 사미승 녀석은 이른 새벽부터 나그네가 부산을 떨어 아침잠을 깨운다고 투덜대겠지. 네 녀석이 뭐라건 말건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설경만은 꼭 보아야겠노라는 말이다. 산중 경치에 익은 사미승이야 그깟 눈이 온댔자 눈 치울 일이 귀찮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속세의 나그네야 어디 그런가. 나그네와 어린 사미승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이 시의 흥취는 속세의 시간이 멈춰선 눈 온 아침 겨울 산사의 고즈넉한 정경과, 이를 바라보는 시인의 약간은 들뜬 시선 사이에서 내밀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날 향해 핀 꽃을 얘기하다
春風忽已近淸明 | 봄바람 문득 이미 청명이 가까우니 |
細雨霏霏晩未晴 | 보슬비 보슬보슬 늦도록 개이잖네. |
屋角杏花開欲遍 | 집 모롱이 살구꽃도 활짝 피어나려 |
數枝含露向人傾 | 몇 가지 이슬 머금고 날 향해 기울었네. |
그리하여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위 시는 권근(權近)의 「춘일성남즉사(春日城南卽事)」이다. 청명이 가까워진 어느 봄날 성남의 소묘이다. 굳이 ‘두목(杜牧)’의 “청명시절우분분(淸明時節雨紛紛)”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 시절에는 꽃 소식을 재촉하는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신다. 이른바 행화(杏花)의 시절이 온 것이다. 가을날의 근심이 덧없이 스러진 청춘의 꿈을 애상(哀喪)하는 허탈한 독백이라면, 봄날의 근심은 근심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설레임을 동반한다. 늦도록 개지 않고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뜨락으로 그는 내려선다. 집 모롱이 살구꽃은 망울이 부퍼, 이제 막 꽃망울을 일제히 터뜨릴 기세다. 그 위에 봄비의 빗방울이 얹히니, 꽃가지는 그만 제 무게를 못 이겨 기우뚱하다. 4구의 ‘향인경(向人傾)’, 즉 ‘날 향해 기울었네’는 말은 사실 ‘날 향해 인사하네’의 뜻이다.
향기를 시에 담다
古寺門前又送春 | 옛 절 문 앞에서 또 봄을 보내니 |
殘花隨雨點衣頻 | 남은 꽃, 비를 따라 옷을 점 찍네. |
歸來滿袖淸香在 | 돌아올 제 맑은 향내 소매에 가득하여 |
無數山蜂遠趁人 | 무수한 산벌들이 먼데까지 따라오네. |
임억령(林億齡)의 「시자방(示子芳)」 셋째 수이다. 봄이 떠나는 옛 절 문 앞. 시인은 봄비에 젖어 숲을 걷는다. 가는 봄과 지는 꽃잎, 거기에 어우러진 이끼 낀 옛 절의 모습. 비는 내리고, 걷는 옷깃 위로 자꾸 묻어나는 꽃잎. 이러한 몇 개의 겹쳐진 장면 속에 봄을 보내는 울적한 심사는 어디에도 없다. 꽃잎이 묻은 소매이니 맑은 향기가 가득하고, 벌은 꽃으로 오인하여 잉잉거리며 쫓아온다. 가는 봄에 져버린 꽃은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어 벌을 몰고 돌아오는 것이다.
네 구 가운데 어디에도 시인의 정은 드러남이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서술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 많은 이야기가 독자에게 건네지고 있고, 그 경물 속에 몰입하면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그 숲 속을 거니는 듯한 흥취를 만끽한다. 벗과 헤어져 있음을, 봄이 떠나감을, 떠나감으로 헤어짐으로 인식치 아니하고, 꽃잎이 묻은 소매로 내가 꽃이 되고 봄이 되는 인식의 갱신에서 시인은 몰아의 희열 속으로 빠져든다.
▲ 정선(鄭敾), 「우여춘수(雨餘春水)」, 18세기, 18X23.5cm, 고려대박물관.
눈 없는 두 사람이 버들 아래 서 있다. 한 사람은 어딘가를 가리킨다. 물에는 물결이 없고, 먼 산에 나무가 없다.
인용
1. 싱거운 편지
2. 왜 사냐건 웃지요
4. 내 혀가 있느냐?
5. 어부가 도롱이를 걸친다
'책 > 한시(漢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시미학, 보여주는 시인 당시와 말하는 시인 송시 -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0) | 2021.12.05 |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6. 청산 위로 학이 날아간 자취 (0) | 2021.12.05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4. 내 혀가 있느냐? (0) | 2021.12.05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3. 언덕에 오르려면 뗏목을 버려라 (0) | 2021.12.05 |
한시미학, 언어의 감옥, 입상진의론 - 2. 왜 사냐건 웃지요 (0)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