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백발삼천장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 흰머리 풀어 헤쳐 삼천 장 됨은 근심으로 이다지 길어진 걸세. |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 해맑은 거울 속 그 어디메서 가을 서리 얻었는가 아지 못게라. |
첫 구로 너무나도 유명한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중 한 수이다. 추포(秋浦)는 가을날의 물가가 아니라 양자강 연안 안휘성(安徽省) 귀지현(貴池縣)의 옛 지명이다. 황숙찬(黃叔燦)은 『당시전주(唐詩箋注)』에서 “거울에 얼굴을 비추다가 백발을 보자 갑자기 느낌이 일어 차례도 없이 곧장 말하여 이처럼 돌올하게 되었다.”고 하여, 어느 날 우연히 거울을 비쳐보다가 문득 희어진 머리털을 발견하고, 그 놀란 마음을 삼천장의 길이로 환치하여 다짜고짜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돌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열었다고 하였다. 흔히 이 시의 주제는 ‘탄로(嘆老)’로 새기는데 고금의 이론(異論)이 없는 듯하다. 1ㆍ2구와 3ㆍ4구를 뒤집은 돌기(突起)의 포치(布置)도 주목되거니와, 머리털을 무려 3천장이라는 어마어마한 길이와 연결시킴으로써 한시의 수사적 과장을 말할 때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나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의 구절과 함께 거론되는 명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는 이러한 단순한 풀이에 얼마간 의문을 가지고 있다. 「추포가(秋浦歌)」는 모두 17수의 연작시인데, 위 시는 제 15수이다. 당시 실의 속에 장안을 떠나 추포(秋浦) 땅을 전전하고 있던 이백(李白)은 대낮에도 흰 원숭이만 끽끽 울어대는 이곳의 황량하고 적막한 풍광 속에서 인생의 신산(辛酸)과 우수(憂愁)를 곱씹고 있었다. 제 1수의 첫 구절은 “추포(秋浦)는 언제나 가을 같아서, 쓸쓸히 근심에 잠기게 하네[秋浦長似秋, 蕭條使人愁].”라 하였고, 제 2수도 “추포(秋浦)의 잔나비 밤 시름겨워, 황산(黃山)도 머리가 희게 다 세네[秋浦猿夜愁, 黃山堪白頭].”라 하였다. 또 제 4수에서는 “잔나비 울음은 백발을 재촉하여, 머리털 온통 모두 희게 세었네[猿聲催白髮, 長短盡成絲].”라 하였으니, 추포(秋浦)란 고장이 시인에게 지울 길 없는 삶의 근심을 일깨워 두 어깨를 짓누르는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제 12수에서는 “강물은 마치도 흰 비단 같고, 물과 하늘 맞닿아 평평하도다. 밝은 달빛 타고서 노닐 만 해라. 꽃 보며 술 배에 올라타리라[水如一疋練, 此地卽平天. 耐可乘明月, 看花上酒船].”라 하여, 달빛 받은 수면은 마치 흰 깁을 펼쳐 놓은 듯 곱고, 강물은 하늘과 맞닿아 끝간 데를 알 길 없는 황홀한 추포(秋浦)의 달밤을 노래하였다. 송강(松江)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달빛 아래 경포호의 매끄러운 수면을 ‘십리(十里) 빙환(氷紈)을 다리고 고쳐 다려’로 표현했던 것과 방불한 의경이다. 이어지는 13수에서도 “맑은 물은 흰 달을 깨끗이 씻어, 달 밝자 백로가 날아오르네[淥水淨素月, 月明白鷺飛].”라 하여 역시 달밤의 경물을 해맑게 묘사하였다. 그러고 나서 문제의 15수가 나오는데, 그렇다면 1구의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시인의 머리털이 아니라, 달빛을 받아 흰 깁을 펼쳐 놓은 듯 길게 흘러가는 추포(秋浦)의 강물 줄기로 보아야 옳지 않을까? 안 그래도 시름에 겨워 있던 시인은 좀 전에 흰 깁 같다던 강물을 굽어보다가 문득 ‘네 머리도 나처럼 희게 세었구나’하는 탄식을 떠올렸던 것이다. 모곡풍(毛谷風)은 『당인오절선(唐人五絶選)』에서 3구의 명경(明鏡)은 바로 추포(秋浦)의 한 지명인 ‘옥경담(玉鏡潭)’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위 시의 주제를 ‘탄로(嘆老)’로 보아 1구를 극도의 과장으로 이해했는데, 달빛 찬란한 밤 배 위에서 강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다가 흰 머리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럽다. 흰 달빛 아래 무슨 흰 머리털이 비친단 말인가. 요컨대 위 시는 달빛 받아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다가, “강물아! 너는 무슨 근심이 그리 깊어 기나 긴 머리칼이 희게 물들었느냐. 명경(明鏡)과도 같다는 옥경담(玉鏡潭) 강물 위에 웬 서리가 이리도 내렸더란 말이냐.”며 내뱉은 탄식으로 보아야 옳겠다. 만일 달빛 아래 배를 타고 노닐던 시인이 갑자기 품에서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뜨악하여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을 외쳤다면 이 얼마나 싱거운 일이냐. 그러고 보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란 표현은 흰 강물을 ‘백발(白髮)’에 견준 그 발상의 참신을 높이 살 일이지, ‘삼천장(三千丈)’의 과장에 역시 중국 사람은 못 말려하고 혀를 내두를 일은 아닌 듯싶다. 이백(李白)이 쳐 놓은 언어의 그물에 고금의 독자들이 다 걸려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제 15수만 따로 똑 떼어 회자되다 보니 그랬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젠가 고려대 이동환(李東歡) 교수와 대화하던 중 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의 곡해에 대해 화제가 미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교시(敎示)를 정리해 본 것이다.
10자로 표현된 유학자의 자세
이와 비슷한 경우가 하나 더 있다. 병주(幷州)에 얽힌 이야기가 그것이다. 타관 땅을 떠돌며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를 되뇌이다가도, 막상 고향 언덕에 서서 변해 버린 산천을 바라보노라면, 또 노산의 노래처럼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닐래라’의 탄식은 금할 수 없는 법이다. 조선 중기의 시인 권필(權韠)은 그의 「술회(述懷)」시의 서두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建德豈吾土 幷州非故鄕 | 건덕(建德)이 어찌 내 살 땅이리 병주(幷州) 또한 고향 아닐세. |
여기 나오는 건덕(建德)과 병주(幷州)는 땅 이름인데, 그 속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건덕(建德)은 『장자(莊子)』 「산목(山木)」에 나오는 도가적 이상향의 이름이다. 그 나라 백성은 어리석고 소박하며 욕심이 적다고 했다. 남에게 베풀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예의(禮義)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천지를 마음껏 다니면서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대인의 유토피아이다. 병주(幷州)는 당(唐) 나라 때 시인 가도(賈島)에 얽힌 고사가 있다. 그는 본래 함양(咸陽) 사람이었는데, 오래동안 병주(幷州)에 살면서 늘 고향 함양을 그려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강을 건너 함양에 오고 보니, 이제는 도리어 병주가 그리워지더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면, 병주(幷州)는 흔히 ‘제 2의 고향’이란 의미로 나와 있다. 가도(賈島)는 승려 생활을 하였는데, 퇴고(推敲)의 고사가 인연이 되어 만난 한유(韓愈)의 권유로 환속하여 벼슬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므로 권필(權韠)이 위 시에서 건덕(建德)도 내 땅이 아니고, 병주(幷州)도 내 고향이 아니라고 한 것은, 한때 도불(道佛)에 탐닉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유자(儒者)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열 자 안에 담긴 함축이 깊고 깊다.
병주지정(竝州之情)
후대 ‘병주지정(幷州之情)’의 고사를 낳게 한, 가도(賈島)가 병주(幷州)를 떠나면서 지은 「도상건(度桑乾)」이란 시를 보자.
客舍幷州已十霜 | 병주 땅 객사에서 십년 세월 보내며 |
歸心日夜憶咸陽 | 돌아가고픈 맘, 밤낮으로 함양을 생각했네. |
無端更渡桑乾水 | 뜬금없이 다시금 상건수를 건너서 |
却望幷州是故鄕 | 병주를 바라보니 이 또한 고향일래. |
십년 세월 동안 고향 함양(咸陽)을 밤낮으로 그리며 돌아갈 꿈을 키워 왔는데, 이제 다시금 상건수(桑乾水)를 건너고 나니 도리어 병주(幷州)가 고향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서울 사는 사람은 언제나 전원의 목가적 풍광(風光)을 사모한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가면 며칠이 못 되어 다시 도회의 번화한 풍광과 따뜻한 커피 한잔이 그립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서울과 시골의 중간쯤에 사는 것은 어떨까? 가도(賈島)의 이 시가 널리 회자되어,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 시인 마쓰오 바쇼오(松尾芭蕉, 1644~1694)는 다음과 같은 하이꾸(俳句)를 남겼다.
가을 십년에
도리어 에도(江戶) 쪽을
가리키는 고향
십여 성상의 에도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떠나는데, 문득 되돌아보니 고향인 이하(伊賀)를 향한 설레임보다 에도를 향하는 애틋한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사연이다.
그런데 바로 병주(竝州)와 관련된 고사의 인용은 옛 사람들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흥미롭다. 요점만 먼저 말하면, 상건수(桑乾水)는 병주(竝州)와 함양(咸陽) 사이를 흐르는 강이 아니다. 오히려 병주(幷州)의 북편으로 흐르는 강이다. 말하자면 시인은 상건수를 건넘으로 해서 함양에 온 것이 아니라, 함양에서 오히려 더 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고향 함양을 밤낮으로 간절히 그리다가, 고향에 돌아가기는커녕 상건수를 건너 그 반대편으로 더 멀어지고 보니, 이제 병주를 바라보며 오히려 위안을 삼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니 고향에 돌아갈 날은 그 언제일 것인가? 이것이 시인이 위 시에서 전달하려고 한 본 뜻이다. 왕세무(王世懋)의 『예포힐여(藝圃擷餘)』에 나온다.
이수광(李晬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살펴보니 당(唐) 나라 때 상건도독부를 설치하였는데 병주(竝州)의 북쪽에 있었다. 이제 상건수를 건넜다고 했으니, 함양(咸陽)에서 더욱 더 멀어진 것이다[按唐置桑乾都督府, 在幷州北. 今日渡桑乾水, 則去咸陽益遠矣].”라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에서 이 작품이 애초에 가도(賈島)가 아닌 유조(劉皂)의 작품이며, 제목도 「도상건(渡桑乾)」이 아닌 「여차삭방(旅次朔方)」으로 밝혀졌다.
과연 두 곳 지명과 연관하여 상건수의 위치를 비정해 보면, 지금까지 위 시에 대한 고금의 착각이 자못 통쾌하기도 하려니와, 이미 병주(幷州)란 말은 망향(望鄕)과 그에 따른 모순 심리의 정운(情韻)이 담뿍 담긴 말이 되어, 이제 와서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설복시키기가 용이치 않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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