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
1장 유머는 나의 생명!
‘스마일[笑笑] 선생’
‘호모 루덴스’가 펼치는 ‘유머와 역설의 대향연’ ―― 만약 『열하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나는 예고편의 컨셉을 이런 식으로 잡을 작정이다. 고전을 중후하게 다루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자(?)들은 마뜩잖아 할 터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유머 없는 『열하일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니.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열하일기』는 유머로 시작하여 유머로 끝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도처에서 유머를 구사한다. 그것은 배꼽잡는 해프닝이 일어날 때만이 아니라, 중후한 어조로 이용후생을 설파할 때, 화려한 은유의 퍼레이드나 애상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때, 언제 어디서나 수반된다. 이를테면 유머는 『열하일기」라는 ‘고원’을 관류하는 ‘기저음’인 셈.
다른 한편, 유머는 익숙한 사유의 장을 비틀어버리거나 아니면 슬쩍 배치를 변환하는 담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연암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러니와 역설, 긴장과 돌출은 모두 ‘유머러스한’ 멜로디 속에서 산포된다. 사람들은 이 유머에 현혹되어 혹은 분노하고, 혹은 깔깔거리느라고 자신들이 이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필드’에 들어갔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유머에 관한 한, 연암은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젊은 날의 우울증을 해학적인 이야기, 재치있는 이야기꾼들을 통해 치유했음을 환기하자. 청년기 이후에도 그런 습속은 고쳐지기는커녕 더더욱 심화되어 갔다.
나는 중년 이후 세상 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 없어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寓言(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지만, 마음은 항상 우울하여 즐겁지가 못했다.
吾中年以來, 灰心世路, 漸有滑稽逃名之意, 而末俗滔滔, 無可與語. 每對人, 輒以寓言笑談, 爲彌縫打乖之法, 而心界常鬱鬰, 無可自樂.
박종채의 『과정록(過庭錄)』 1권의 기록이다. 이런 진술에서 사람들은 흔히 천재들의 고독 혹은 ‘시대와의 불화’ 따위만을 감지할 터이지만, 사실 이건 정반대로 읽어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그는 세상에 대한 불평과 울울한 심사를 골계 혹은 우스갯소리로 드러냈던 것이다.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비분강개하거나 청승가련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골계와 해학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역경과 굴곡을 생에 대한 능동적 발판으로 전환하는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암만큼 유머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 이도 드물다. 이미 밝혔듯이, 연암은 오십줄에 들어서야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아간다. 당쟁에 연루된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암을 자기 당파에 끌어들이려고 다각도로 접근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연암은 “우스갯말로 얼버무리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듯한 태도를 취[先君輒以笑語漫漶若未曉]”함으로써 교묘하게 그 파장으로부터 벗어나곤 했다. 만약 꼿꼿한 자세로 시비를 논하거나 아니면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을 경우, 안 그래도 비방이 끊이지 않았던 그가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한 지인(知人)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연암처럼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만일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상에 위태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을 게야[以燕岩嚴厲之氣像高峻之性格, 若無誠諧一着以彌縫之, 則難乎免於今之世矣].” 그러니 유머야말로 그에게는 ‘난공불락’의 정치적 전술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파간 경쟁에만 그것을 활용한 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도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힘은 들면서도 매듭짓기 어려운 경우에는 문득 우스갯소리를 하여 상황을 완화시킴으로써 분란을 풀곤 했다. 또 일반 백성들을 계발할 때, 심란해하는 친구를 위로할 때도 그는 유머를 다채롭게 구사했다.
언젠가 한 고을의 원님이 되었을 때, 싸움질을 일삼는 평민이 있었다. 한 아전 하나가 몽둥이를 쥐고 들어와 그 평민이 몽둥이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호소하자, 연암은 웃으며 각수장이를 불러오라고 한 뒤, 몽둥이에 이런 글을 새겼다.
噫巨椎 誰所作 | 오호라, 이 큰 몽둥이 그 누가 만들었나? |
曰某甲 酗肆惡 | 아무개가 만들었지. 주정과 행패 |
出乎爾 反乎爾 | 너에게서 나왔으니 너에게로 돌아가야지 |
理莫逭 漢律疻 | 이 이치는 피할 길 없으니 상해죄로 다스릴 일 |
用之掛 里門側 | 이 몽둥이 걸어두세 저 마을 문 곁에다가 |
有不悛 人共擊 | 회개하지 않는다면 함께 이 몽둥이로 때려주세 |
官所許 證此刻 | 사또가 그걸 허락함을 이 글로 증명한다. |
이후 그 평민이 다시는 야료를 부리지 못했다고 한다. 『과정록(過庭錄)』 2권의 이야기이다.
또 한번은 기민(饑民) 구제로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억지로 고충을 참으려면 미간과 이마에 ‘천(川) 자 ㆍ임(任) 자’를 그리게 될 터이니 그러지 말고 그 일을 차라리 즐기라고 위로해준다. 그러면서 자기 말을 들으면, “그대 또한 반드시 입에 머금은 밥알을 내뿜을 것이니, 나를 ‘소소(笑笑)선생’이라 불러도 사양하지 않겠노라”고 덧붙인다. 친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기꺼이 ‘스마일씨(氏)’로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열하일기』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도, 또 가장 많이 삭제ㆍ윤색된 부분도 웃음이 터지는 대목이라는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요컨대 그에게 있어 유머는 중세적 엄숙주의를 전복하면서 매끄럽게 옮겨 다니는 유목적 특이점이자 우발점의 기법이었다.
포복절도(抱腹絶倒)
퀴즈 두서너 가지, 『열하일기』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먹거리는? 술, 『열하일기』에서 돈보다 더 유용한 교환가치를 지닌 물건은? 청심환, 가장 큰 해프닝은? ‘판첸라마 대소동!’이 정도만 맞혀도 『열하일기』의 진면목에 꽤나 접근한 편이다.
그럼 『열하일기』에 가장 자주 출현하는 낱말은? 정답은 포복절도! 여행의 목적이 마치 포복절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연암은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 자신이 남을 포복절도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그 자신 또한 기꺼이 포복절도한다. “내 성미가 본디 웃음을 참지 못하므로, 사흘 동안 허리가 시었다”고 할 때, 그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그래서 연암이 움직일 때마다 ‘웃음의 물결’이 출렁거린다.
열하에서 윤가전, 기려천 등과 허난설헌에 대해 말할 때, 두 사람이 크게 웃었다. “문 밖에 아이놈들이 서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따라 웃는다. 웃음소리만 듣고 따라 웃는 격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놈들이 뭣 때문에 웃는지도 모르면서 덩달아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러다 보니 한참 동안 웃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웃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웃음거리를 만들어낸다. 한 번은 새벽에 큰 비가 내려 시냇물이 불어서 건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부사와 서장관 등 사행단의 수뇌들이 모여 큰 물이 앞을 가로 막아 물 건널 대책을 논하느라 의견이 분분하였다. 연암이 느닷없이 “무어, 뗏목을 맬 것까지야 있소. 내게 한두 척 마상이(馬上伊, 배)가 있는데, 노도 있고 상앗대도 갖추었으나 다만 한 가지가 없소”하니, 주주부가 “그럼, 없는 게 무엇이오?” 한다. 연암은 “다만 그를 잘 저어갈 사공이 없소” 한즉, 모두들 허리를 잡고 웃는다. 아이구, 이런 천하태평!
심양에서 장사꾼들과 사귈 때, 한번은 한 친구가 글씨를 청한다. “한잔 기울일 때마다 한 장씩 써내매 필치가 한껏 호방해진다. (중략) 검은 용 한 마리를 그린 뒤, 붓을 퉁겨서 짙은 구름과 소낙비를 그렸다. 지느러미는 꼿꼿이 서고 등비늘은 제멋대로 붙었고 발톱은 얼굴보다 더 크고 코는 뿔보다 더 길게 그렸더니, 모두들 크게 웃으며 기이하다 한다.” 이렇게, 그는 언제든 웃음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웃음동자’다.
그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다. 보다시피 웃음이란 단조로운 리듬을 상큼하게 비트는 불협화음이요, 고정된 박자의 흐름에 끼여드는 엇박이다. 판소리로 치면, 적재적소에 끼여드는 ‘추임새’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연암은 말의 리듬, 삶의 호흡을 기막히게 터득한, 일종의 ‘예인(藝人)’이다.
그런 ‘예인적’ 천재성은 필담을 할 때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먹어치우고, 태우고, 찢어버리는 등 금기의 벽에 도전하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도 연암은 긴장을 이완시키고,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머를 구사한다.
작은 국자로 국물을 뜨기만 했다. 국자는 숟가락과 비슷하면서 자루가 없어서 술잔 같았다. 또 발이 없어서 모양은 연꽃잎 한 쪽과 흡사했다. 나는 국자를 잡아 밥을 퍼보았지만 그 밑이 깊어서 먹을 수가 없기에 학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빨리 월나라 왕을 불러오시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월왕의 생김새가 긴 목에, 입은 까마귀 부리처럼 길었다더군요.” 내 말을 들은 학성은 왕민호의 팔을 잡고 정신없이 웃어댄다. 웃느라 입에 들었던 밥알을 튕겨내면서 재채기를 수없이 해댄다.
時用小勺 斟羹而已 勺如匙而無柄 如爵而無足 形類蓮花一瓣 余持勺試一舀飯 深不可餂 余不覺失笑曰 忙招越王來 志亭問何爲 余曰 越王爲人長頸烏喙 志亭扶鵠汀臂 噴飯嚔嗽無數
간신히 웃음을 그친 다음, 이렇게 물었다. “귀국에서는 밥을 뜰 때에 뭘 씁니까?” “숟가락을 씁니다.” “모양은 어떻게 생겼나요?” “작은 가지 잎과 비슷합니다.” 나는 식탁 위에 숟가락 모양을 그려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더더욱 허리가 부러져라 웃어 제낀다. 「곡정필담(鵠汀筆談)」
志亭問貴俗抄飯用何物 余曰 匙 志亭曰 其形如何 余曰 類小茄葉 因畵示卓面 兩人尤爲絶倒
국자와 숟가락 따위를 가지고 이렇게 즐거워하다니. 마치 사춘기 여고생들 같지 않은가? 이 정도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윤활유 수준이라면, 다음은 다소 무겁고 중후한 경우에 속한다.
윤공은 피곤을 못 이겨 때때로 졸다가 머리를 병풍에 부딪치곤 하였다. (중략) “저 또한 평소 저만의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나 천하 사람들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무언가 탯덩이처럼 가슴속에 쌓여 통 내려가질 않는답니다. 특히 겨울과 여름철이 되면 더욱 괴롭기가 그지없어요. 선생의 기이한 이론도 그런 답답한 심사에서 나온 듯한데, 아닌가요?” (곡정)
公時時睡 以頭觸屛 (中略) “愚有平生獨見之語 而亦不敢向人說道 恐令海內諸公大驚小恠 因此胎得痞結伏積證 冬夏苦劇 正恐先生感成此證?”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우리 둘 다 이 자리에서 남김없이 털어버립시다. 잘하면 몇 년 묵은 병을 약 한 첩 안 쓰고 시원하게 고칠 수 있겠는걸요.” (연암)
“不如此刻道破 收幾年勿藥之效”
그 정도론 설득하기 어렵다고 여겼던지, 이렇게 덧붙인다. “저는 온몸에 가려움증이 나서 배기지 못하겠어요.” 탯덩이와 가려움증! 고도의 정치적 메시지를 암시하는 ‘블랙유머’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의 유머는 팽팽한 긴장을 이완시키는 한편, 검열의 장벽을 넘도록 추동한다. 그럴 때, 유머는 수많은 의미들을 내뿜는 일종의 발광체가 된다.
그의 유머 능력은 「호질(虎叱)」에서 특히 돋보인다. 그는 상점의 벽 위
에 한편의 기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베끼기 시작한다. 동행한 정군에게 부탁하여 그 한가운데부터 베끼게 하고 자신은 처음부터 베껴 내려간다. 주인은 당연히 이상스럽다.
“선생은 이걸 베껴 무얼 하시려는 건가요?” (주인)
“先生謄此何爲?”
“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 모두 허리를 잡고 한바탕 크게 웃게 할 작정입니다. 아마 이 글을 보면 다들 웃느라고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튀어나오고,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줄처럼 툭 끊어질 겁니다.” (연암)
“歸令國人一讀, 當捧腹軒渠, 嗢噱絶倒, 噴飯如飛蜂, 絶纓如拉朽.”
아니,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려고 그런 수고를 감수하다니. 그거야말로 포복절도할 일 아닌가?
요즘으로 치면, 외국 가서 좀 ‘튀는’ 작품 하나 베껴와서 ‘한탕’하겠다는 속셈이거니 할 터이니, 연암 당시에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웃긴다 한들 돈 한푼 안 되는 세상 아닌가. 아니, 돈이 되기는커녕 사대부로서의 체면을 완전 구길 뿐 아니라, 자칫하면 신세 망치기 십상인데.
그러니 이쯤 되면 우리는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포복절도’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웃음을 통해 그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그의 진실일까? 등등. 안 그래도 그동안 이 작품이 연암의 창작이냐 아니냐를 놓고 옥신각신, 왈가왈부, 중언부언해왔는데, 이쯤 되면 정말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연암이 쳐놓은 그물에 영락없이 걸려든 꼴이 된다. 이렇게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그가 겨냥한 바일 테니. 하지만 어쩌랴. 이 유쾌한 그물망을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차라리 그물 속에서 유쾌하게 놀아보는 수밖에.
말의 아수라장
‘워밍업’을 위한 퀴즈 하나 더, 『돈키호테』의 저자는? 세르반테스 정말 그렇다고 믿는가?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하게 있으면 그 사람은 분명, 책을 읽지 않았다. 그럼 세르반테스가 아니냐구? 물론 제자는 세르반테스다. 그러나 『돈키호테』를 읽다보면 원저자가 따로 있고 세르반테스 자신은 마치 번역자인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대목들과 도처에서 마주친다. 처음엔 웃어넘기다가도 같은 말을 자주 듣다보면, 웬만큼 명석한(?) 독자들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2부는 1부의 속편이 아니다. 1부에서 돈키호테가 한 기이한 모험들이 책으로 간행되어 사람들 사이에 널리 유포된 상황이 2부의 출발지점이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자신이 저지른 모험을 확인하기 위한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이처럼 『돈키호테』는 기상천외의 모험담이기 이전에, 파격적인 언어적 실험이 난무하는 텍스트다.
잘 따져보면, 돈키호테는 광인이 아니다. 그의 명징한 이성은 고매하기 이를 데 없다. 기사담이란 기사담은 몽땅 암기하는 놀라운 기억력, 군중들 앞에서 이상과 자유에 대해 설파하는 도도한 웅변술, 치밀한 분석력 등은 거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런 인물이 왜 ‘미치광이’가 되었냐구? 그건 순전히 그가 놓인 ‘자리’ 때문이다. 신부, 이발사 등 이른바 상식적인 인간들의 언어와 속담에 살고 속담에 죽는 시종 산초 판사의 분열적 언어 사이에 놓이는 순간, 돈키호테의 그 영웅적 수사학은 광인의 징표가 되어버린다. 오, 그 배치의 황당함이란,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언어는 단지 용법일 뿐’이라는 것을 돈키호테는 ‘온몸으로’ 증언해주는 것이다.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닌 말들이 펼치는 아수라장, 『돈키호테』의 저력은 무엇보다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점에선 『열하일기』도 만만치 않다.
밤에 여러 사람과 술을 몇 잔 나누었다. 밤이 깊자, 취해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내 방은 정사의 맞은편인데, 가운데를 베 휘장으로 가려서 방을 나누었다. 정사는 벌써 깊이 잠들었다. 몽롱한 상태에서 담배를 막 피워 물었을 때다. 머리맡에서 별안간 발자국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도이노음이요(擣伊鹵音爾幺).” 대답소리가 이상하다. 다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소인은 “도이노음이요.” 이 소란에 시대와 상방 하인들이 모두 놀라 잠이 깼다. 뺨 갈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을 떠밀어서 문 밖으로 끌고 가는 모양이다.
夜與諸君略飮數杯 更鼓已深 扶醉歸臥 與正使對炕 而中隔布幔 正使已熟寢 余方含烟矇矓 枕邊忽有跫音 余驚問汝是誰也 答曰 “擣伊鹵音爾幺” 語音殊爲不類 余再喝 “汝是誰也” 高聲對曰 “小人擣伊鹵音爾幺” 時大及上房廝隷 一齊驚起 有批頰之聲 推背擁出門外
알고보니 그는 밤마다 우리 일행의 숙소를 순찰하면서 사신 이하 모든 사람의 수를 헤아리는 갑군이었다. 깊은 밤 잠든 뒤의 일이라 지금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군이 제 스스로 ‘도이노음’이라 하다니, 정말 배꼽잡을 일이다.
盖甲軍 每夜巡檢一行所宿處 自使臣以下點數而去 每値夜深睡熟 故不覺也 甲軍之自稱擣伊鹵音 殊爲絶倒
우리나라 말로 오랑캐를 ‘되놈’이라 한다. 갑군이 ‘도이’라고 한 것은 ‘도이(島夷)’의 와전이고, ‘노음(鹵音)’은 낮고 천한 이를 가리키는 말, 즉 조선말 ‘놈’의 와전이요, ‘이요(伊幺)’란 웃어른에게 여쭙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람이 알아듣도록 ‘되놈이요’하고 말했던 것이다. 갑군은 여러 해 동안 사신 일행을 모시는 사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말을 배웠는데, ‘되놈’이란 말이 귀에 익었던 모양이다. 한바탕 소란 때문에 그만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벼룩에 시달렸다. 정사역시 잠이 달아났는지 촛불을 켜고 새벽을 맞았다. 「도강록(渡江錄)」
我國方言 稱胡虜戎狄曰擣伊 盖島夷之訛也 鹵音者 卑賤之稱 爾幺者 告於尊長之語訓也 甲軍則多年迎送 學語於我人 但慣聽擣伊之稱故耳 一塲惹鬧 以致失睡 繼又萬蚤跳踉 正使亦失睡 明燭達曙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 사람들을 낮춰 말하는 ‘되놈’이라는 욕설이 마치 보통명사처럼 전이되어 청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이노음’이라고 부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언어도 물을 건너면 이렇게 황당한 변칙적 전도가 일어나는 법이다.
반대 케이스도 있다. 역졸이나 구종군 따위가 배운 중국말 가운데 고린내, 뚱이 등이 있다. 고린내는 냄새가 심하다는 뜻인데, 고려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아 발에서 나는 땀내가 몹시 나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뚱이는 ‘동이(東夷)’의 중국음으로 ‘물건을 잃었을 때, 동이가 훔쳤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나쁜 냄새가 나면, ‘아이, 고린내’하고, 어떤 사람이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될 때에는, ‘아무개가 뚱이야[不識此 聞臭之不善則稱高麗臭 疑人偸物則稱某也東夷]” 한다. 이처럼 대개의 여행기가 그렇듯이 『열하일기』에는 이질적인 언어들이 일으키는 충돌이 곳곳에서 속출한다.
연암은 특히 언어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말들이 부딪히는 장면들을 예의주시한다. 「피서록(避暑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보기에 ’중국 사람들은 글자로부터 말 배우기로 들어가고[中國因字入語]‘, 조선인들은 ’말로부터 글자 배우기로 옮겨 가므로 중화와 이적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 인하여 글자를 배운다면 말은 말대로 글은 글대로 따로 되는 까닭이다[我東因語入字 故華彛之別在此 何則 因語入字則語自語書自書].‘ 예를 들면 천자문을 읽을 때, 한날천(漢捺天)이라고 한다면, 이는 글자 밖에 다시 한 겹 풀이하기 어려운 언문이 있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이 애당초에 ‘한날’이란 무슨 말인 줄을 알지 못하니, 더군다나 천을 알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경전을 익히는 데 있어 이중적인 문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경서를 익히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있다. 중국인들은 이른바 ‘글 외기’와 ‘강의하는 것’, 두 길이 있다. 처음 배울 때는 그저 사서삼경의 장구만 배워서 입으로 외고, 외는 것이 능숙해진 다음 스승께 다시 그 뜻을 배우는 걸 ‘강의’라 한다. 설령 죽을 때까지 강의하지 못하더라도 입으로 익힌 장구가 곧 날로 상용하는 관화(官話)가 된다. 그러므로 ‘세계 여러 나라 말 중에서도 중국말이 가장 쉽다[其實中國婦人孺子 皆以文字爲語 故雖目不識丁 而口能吐鳳]’.
언어에 대한 이런 식의 판단은 다른 부분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연경에 들어간 뒤에도 사람들과 더불어 필담을 해보면 모두 능란하지 않은 이가 없었으며, 또 그들이 지었다는 모든 문편들을 보면 필담보다 손색이 있었다. 그때 비로소 우리나라에 글짓는 사람이 중국과 다른 것을 알았으니, 중국은 바로 문자로써 말을 삼으므로 경(經)ㆍ사(史)ㆍ자(字)ㆍ집(集)이 모두 입 속에서 흘러나오는 성어(成語)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글을 짓는 자는 어긋나서 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를 가지고, 다시 알기 어려운 사투리를 번역하고 나면 그 뜻은 캄캄해지고 말은 모호하게 되는 것이 이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중성이 문명을 습득하는 데 적지 않은 장애가 된다고 간주한다. 이런 견해는 북학파 공통의 것이었고, 그 가운데 박제가(朴齊家)는 특히 과격하여 문명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어를 공용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어쨌든 조선어와 중국어, 두 언어 간 차이들은 수많은 해프닝을 일으키는데, 그중 압권이 다음 사건이다.
호행통관(護行通官) 쌍림(雙林)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호행통관이란 사신단을 호위하는 임무를 띤 청나라 관리다. 일종의 ‘보디가드’인 셈. 그러나 말이 ‘호행’이지 쌍림은 책문에 들어선 지 열흘이 되도록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조선말도 불분명한 데다 급하면 도로 북경말을 쓰고 으스대며 뻐기기 좋아하는, 좀 덜떨어진 인물이다. 첫 대면한 자리에서 연암은 그와 말대꾸를 하기 싫어 종이를 꼬아서 코를 쑤시는 등 딴청을 부렸다. 무시당한 쌍림이 ‘열받아서’ 나가버리자 일행들이 그와 사이가 나쁘면 앞으로 좀 재미없을 거라고 연암에게 귀띔한다. 연암도 왠지 께름칙하여 마음을 바꿔먹고 약간의 친절을 베푼다. 거기에 감동한 쌍림이 연암과 장복이를 자기 수레에 태워주는 선심을 쓴다(역시 좀 덜떨어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장복이를 불러서 오른편에 앉히고는, “내가 조선말로 묻거든 너는 관화로 대답하거라” 한다. 이렇게 해서 둘 사이의 국경을 넘는 희한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꼴을 지켜본 연암의 총평. 「일신수필(馹汛隨筆)」에 나온다.
쌍림의 조선말은 마치 세 살 먹은 아이가 ‘밥줘’를 ‘밤줘’하는 수준이고, 장복의 중국말은 반벙어리 말 더듬듯, 언제나 ‘에’ 소리만 거듭한다. 참, 혼자 보기 아까웠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명색이 통관이라는 쌍림의 조선말이 장복의 중국말보다 못하다. 존비법을 전혀 모를뿐더러, 말 마디도 바꿀 줄 모른다.
一個東話的三歲兒索飯 似覓栗 一個漢語的 半啞子稱名 常疊艾 可恨無人參見 雙林東話 大不及張福之漢語 語訓處 全不識尊卑 且不能轉節
대화 내용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너, 우리 아버지를 본 적이 있느냐[你見吾父主麽]?” (쌍림, 이하 ‘쌍‘)
“칙사 나왔을 때 보았소이다[出敕時 吾瞧瞧了].” (장복, 이하 ‘장‘)
“우리 아버지 눈깔이 매섭지 않더냐[吾父主眼孔裏妖惡]?” (쌍)
“푸하하하. 하긴 마치 꿩 잡는 매의 눈깔 같더구먼요[如拿雉之鷹眼].”(장)
“너, 장가 들었냐[你入丈否]?” (쌍)
“집이 가난해서 여직 못 들었습죠[家貧未聘].”(장)
“하이고, 불상, 불상, 참말 불상하다[不祥].”(쌍)
“의주에 기생이 몇이나 되느냐[義州妓生幾個]?” (쌍)
“한 40~50명은 될 걸요[也有三五十個].” (장)
“물론 이쁜 기생도 많겠지[多有美的麽].” (쌍)
“이쁘다 뿐입니까. 양귀비 같은 기생도 있고, 서시(西施) 같은 기생도 있습지요[奢遮的 道甚麽 也有楊貴妃等物也 有西施等物].”(장)
“고렇게 이쁜 애들이 많았는데, 내가 칙사 갔을 때엔 왜 통 안 보인거지[有如此妓生 而出敕時 何不現身]?” (쌍)
“만일 보셨다면 대감님 혼이 구만 리 장천 구름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을 겁니다요. 그리하여 손에 쥐었던 돈 만냥일랑 홀랑 다 털리고 압록강은 건너지도 못했을걸요[若一看見時 大監們魂飛九霄雲外 手裡自丟了萬兩紋銀子 渡不得這鴨綠江來哩].”(장)
“내 다음번 칙사를 따라 가거든 네가 몰래 데려와라[吾前頭隨敕時 你能悄悄地引來了].” (쌍)
“아이쿠! 그건 안 됩니다요. 들키면 목이 달아납죠[不完了 有人覺時 開頭也].” (장)
허무 개그, 이렇게 희희덕거리며 30리를 갔다. 연암이 보기에 장복이의 중국말은 겨우 책문에 들어온 뒤 길에서 주워들은 데 불과한데도 쌍림이 평생 두고 배운 조선말보다 더 낫다. 이유는 역시 우리말보다 중국말이 쉽기 때문이다.
쌍림과 장복이는 그래도 최소한의 소통이 되는 경우지만, 다음의 경우는 아예 완전 불통의 상황이다. 연암이 어떤 상점에 들어가 상점 주인 및 한 청년과 함께 대화를 시도했으나, 연암은 중국어가 안 되고, 두 청년은 한자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세 사람이 정좌한즉 천하에 더할 나위 없는 병신들이다. 다만 서로 웃음으로 껄껄거리고 지나가는 판이다[三人鼎坐 集天下之癈疾 而互以大笑彌縫].” 청년이 만주글자를 쓸 때 주인은 옆에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소[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하자, 연암은 “나는 만주 글을 모르오[吾不會滿字].” 하니, 청년은 “배운 것을 때로 복습하면 어찌 즐겁지 않겠소[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한다. 연암은 “그대들이 『논어』를 이처럼 잘 외면서 어찌 글자를 모르나[君輩能誦論語 何爲不識字]?” 하니, 주인은 “남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군자가 아니겠소이까[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한다. 『논어』 첫장 ‘학이편’의 그 유명한 트리아드(triad, 세 구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를 맥락도 없이 그저 읊조린 것이다.
연암은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그들이 외운 ‘학이편 석 장’을 글로 써 보였으나,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멍하니 들여다볼 뿐이다. 한문에는 완전 ‘깡통’이었던 것이다. 결국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눈 게 아니라 독백을 한 셈이다. 이럴 수가! “이윽고 소낙비가 퍼부어서 옆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하기에 좋으나, 둘이 다 글을 모르고 나 역시 북경말에 서툴러서 어쩌는 수 없다[旣而大雨暴霔 傍無他喧 政合穩譚 而兩人者旣不識一字 余又官話極疎 無可奈何].”
영화로 치면 세 명의 남자가 소낙비 내리는 마루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는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돈키호테가 그랬듯이, 연암 또한 이런 배치하에서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날리는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이 순간, 여행은 상이한 문법과 체계를 지닌 언어들이 충돌하는 아수라장이 된다. 연암은 이 아수라장의 연출자인 동시에 뛰어난 리포터다.
아, 보너스로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 하나 더. 20세기 최고의 작가 보르헤스의 작품 중에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이 있다. 20세기의 작가 피에르 메나르가 『돈키호테』를 다시 쓴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메나르는 ‘뼈를 깎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돈키호테』의 몇 페이지를 그대로 베껴놓은 작품을 완성한다. 보르헤스는 이 작품이 원텍스트에 비해 ‘거의 무한정할 정도로 풍요롭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황당한 궤변의 논거는? 세르반테스가 구사한 언어는 동시대의 평범한 스페인어지만, 20세기 프랑스 작가 메나르가 시도한 문체는 17세기 스페인의 고어체라는 것. 좀 괴상한 방식이긴 하나, 시대적 배치가 달라지면 동일한 언어도 전혀 다른 의미를 발산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세르반테스와 보르헤스, 그리고 연암 박지원, 이들은 모두 ‘언어가 배치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탁월하게 간파한 ‘삼총사’다.
정진사와 득룡 스케치
이제 독자들도 장복이와 창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히 낯이 익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연암의 시종들이라서가 아니다. 만약 연암이 그들을 그저 그림자처럼 끌고 다니기만 했다면, 장복이와 창대는 벌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 행동, 생김새까지 눈에 삼삼하도록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었다. “한참 서성거리다 몸을 돌이켜 나오는데 장복을 돌아보니 그 귀밑의 사마귀가 요즘 더 커진 듯했다.” 귀밑의 사마귀까지 캐치하는 놀라운 관찰력. 그래서 그들은 별볼일 없는 인물이지만 출현하는 장면마다 강렬한 악센트를 부여한다. 이름하여 ‘빛나는 엑스트라.’
누구든 그렇다. 연암과 함께 움직이면, 혹은 연암의 시선에 나포되면 누구든지 ‘익명의 늪’에서 돌연 솟아올라 그만의 특이성을 분사한다.
연암이 한참 장황한 벽돌론을 설파할 때 말 위에서 졸다가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잠만 못하다”고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했던 정진사, 그에 대한 이런 스케치도 참 재미있다. 「관내정사(關內程史)」에 나온다.
정진사는 중국말이 서투른 데다 또 이가 성기어서 달걀볶음을 매우 좋아하므로, 책문에 들어온 뒤로 하는 중국말이라고는 다만 초란 뿐이다. 그나마 혹시 말할 때 발음이 샐까, 잘못 들을까 걱정하여, 가는 곳마다 사람을 만나면 ‘초란’하고 말해보아 혀가 잘 돌아가는지를 시험한다. 그 때문에 정을 ‘초란공’이라 부르게 되었다.
鄭君漢語甚艱 且齒豁 偏嗜炒鷄卵 入柵以後 所肄漢語 只是炒卵 猶患出口齟齬 入耳聽瑩 故到處向人 輒呼炒卵二字 以試其舌頭利澀 因此號鄭爲炒卵公
이 짧은 멘트만으로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상당히 자주 출현하는 편인데도 장복이나 창대에 비해서도 성격이 뚜렷하지 않다. 개성이 없는 게 그의 ‘개성’인 셈이다. 연암의 농담에 어리숙하게 넘어가거나, 아니면 연암의 도도한 변증에 뒷북치는 소리를 하는 게 주로 그가 맡은 역할이다.
득룡은 가산(嘉山) 출신으로 14살부터 북경을 드나든 지 30여 차례나 되는 인물이다. 중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수완이 뛰어나 곤란한 일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사행이 있을 때마다 그가 중국으로 도주할까 염려하여 미리 가산에 통첩하여 그의 가속(家屬)을 감금해둘 정도로 국가적으로 공인된 수완꾼이다. 그걸 확인시켜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강을 건넌 뒤, 국경이 되는 책문을 통과할 때 득룡이 청인(淸人)들 과 청국관원에게 선사하는 예물을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인다. 봉황성의 교활한 청인들이 가짓수를 덧붙여 뜯으려는 수작인데, 만약 이때 어설프게 처리하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고, 다음해엔 그게 전례가 되어버린다. 사신들은 이 묘리(妙理)를 모르고 다만 책문에 들어가는 게 급해서 반드시 역관을 재촉하고 역관은 또 마두(馬頭)를 재촉하여 폐단의 유례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득룡이 청인 백여 명이 둘러서 있는 한가운데로 불쑥 나서며, 다짜고짜 그중 한 명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이렇게 을러댄다.
뻔뻔하고 무례한 놈 같으니라구! 지난해에는 대담하게도 이 어르신네 쥐털 목도리를 훔쳐갔지. 또 그 작년엔 이 어르신께서 주무시는 틈을 타서 내 허리에 찼던 칼을 뽑아 칼집에 달린 술(綬)을 끊어갔었지. 게다가 내가 차고 있던 주머니를 훔치려다가 들켜 오지게 얻어터지고 얼굴이 알려지게 된 놈 아니냐!
這個潑皮好無禮 往年大膽 偸老爺鼠皮項子 又去歲 欺老爺睡了 拔俺腰刀 割取了鞘綬 又割了俺所佩的囊子 爲俺所覺送 與他一副老拳 作知面禮
그때 애걸복걸 싹싹 빌면서 나더러 목숨을 살려주신 부모 같은 은인이라 하더니만, 오랜만에 왔다고 이 어르신께서 네 놈의 상판을 몰라보실 줄 알았느냐? 겁대가리 없이 이 따위로 큰소리를 지르고 떠들다니. 요런 쥐 새끼 같은 놈은 대가리를 휘어잡아서 봉성장군 앞으로 끌고 가야 돼! 「도강록(渡江錄)」
這個萬端哀乞 喚俺再生的爺孃 今來年久 還欺老爺 不記面皮好大膽高聲大叫如此 鼠子輩拿首了鳳城將軍
그러자 여러 청인들이 모두 용서해줄 것을 권한다. 그중에서도 수염이 아름답고 옷을 깨끗이 입은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득룡의 허리를 껴안고 “형님, 화 푸세요[請大哥息怒].” 하고 사정한다. 득룡이 그제야 노여움을 풀고 빙그레 웃으면서 “내가 정말 동생의 안면만 아니었다면 이 자식 쌍판을 한 방 갈겨서 저 봉황산 밖으로 내던져버렸을 거야[若不看賢弟面皮時這部 截筒鼻一拳 歪在鳳凰山外].” 한다. 복잡하게 꼬인 상황이 단방에 처리된 것이다.
물론 득룡의 말은 몽땅 거짓말이다. 말하자면, 청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이름하여 ‘살위봉법(殺威棒法)’, 도둑의 덜미를 미리 낚아채 기세를 꺾는 것으로 중국무술 십팔기(十八技)의 하나다. 연암은 이 장면을 마치 손에 잡힐 듯 화끈하게 재현해놓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득룡이는 독자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중국 상인들과의 우정
중국인 친구들에 대한 터치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중국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저 그런 인물들이지만, 연암이 연출하는 ‘필드’ 안에 들어오는 순간, 빛나는 엑스트라가 된다.
예속재(藝粟齋)는 골동품을 다루는 점포로 수재(秀才) 다섯 명이 동업을 하는데, 모두 나이가 젊고 얼굴이 아리따운 청년들이다. 또 가상루(歌商樓)는 먼 곳에서 온 선비들이 운영하는 비단점이다. 연암은 가상루에 들러 사람들을 이끌고 예속재로 가기도 하고, 예속재의 친구들을 꼬드겨 가상루로 가기도 한다. 연령은 10대에서 4, 50대까지 걸쳐 있다. 그런데도 다들 동갑내기들처럼 허물이 없다. 「속재필담(粟齋筆談)」과 「상루필담(商樓筆談)」은 그들과 주고받은 ‘우정의 향연’이다.
연암이 그들과 접선하는 코드는 매우 단순하다. 붓글씨와 필담.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배생이 또 빈 필첩을 꺼내며 써주기를 청한다. 짙은 먹물을 부드러운 붓에 찍어 쓰니 자획이 썩 아름답게 되어, 내 스스로도 이렇게 잘 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여러 사람들이 크게 감탄과 칭찬을 하는 바람에 술 한잔에 글씨 한 장씩 쓰곤 하니, 붓 돌아가는 모양이 마음대로 종횡무진 누빈다. 밑에 있는 몇 장에는 아주 진한 먹물로 고송괴석을 그리니, 모두들 더욱 기뻐하고 종이와 붓을 다투어 내놓으며 빙 둘러서서 써주기를 청한다.
裴生又出空帖 請書墨 濃毫柔 字畫大佳 余亦不自意如此 諸人大加稱賞 一觴一紙 筆態恣橫 下方數頁 以焦墨畵古松恠石 諸人益喜 爭出紙筆 環立求書
붓 하나로 이렇게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다니.
가끔 음악도 곁들인다. 그들이 연암을 위해 비파를 뜯어주기도 하고, 연암이 그들을 위해 「후출사표(後出師表)」 따위를 소리내어 읽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밤새 노닐다보면 새벽닭이 울고, 연암과 친구들은 교의(交椅, 의자)에 걸터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 코를 골며 잠이 든다. 훤히 동틀 무렵에야 놀라 일어나면 모두들 서로 걸상에 의지하여, 베고 눕기도 하며, 혹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연암은 홀로 두어 잔 해장술을 기울이고는 사관으로 돌아온다.
연암은 이 과정에서 최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이국 장사치들의 인생살이를 듣고 거기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이렇게 묻는다. 대체 무엇 때문에 부모처자와 떨어져 천만 리 먼 타향에서 장사치로 떠도는가?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장사꾼이 되지 않을 경우, 늙고 병들어 죽을 때까지 불과 좁은 고장을 한걸음도 떠나지 못한 채 마치 여름 벌레가 겨울엔 나오지 못하듯이 이 세상을 마칠 테니, 그렇다면 차라리 하루 빨리 죽느니만 못할 거라고, 그래서 남들은 비록 장사를 하류로 치지만, 유유히 사방을 다니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뜻에 맞는 대로 나아가고 물러설 수 있으며, 방편을 따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니 장사치로 떠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유목민(nomad)’의 자유에 대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돋보이는 건 장사치들의 우정론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난 노마드들에게 친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우정’이야말로 인생의 최고덕목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연암과 나이, 국경, 신분을 넘는 진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좋은 바람이 불어와 덕망 높은 선생을 우러러 뵙고 촛불을 밝혀 마음껏 토론하니, 어찌 꿈엔들 생각이나 해본 일이겠습니까. 이는 실로 하늘이 맺어준 아름다운 만남이라 할 것입니다.” 천생연분이라고? 이틀밤의 정담으로 만리장성을 쌓은 듯, 애틋하기 그지 없다.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좀 심한 거 아니냐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연애가 특별한 감정으로 공인(?)된 건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이다. 도시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이 ‘개인’으로 파편화되면서 이른바 내면 이니 자의식‘이니 하는 기제들이 특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오직 연애만이 그 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는 표상의 전도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우정을 비롯한 다른 종류의 윤리적 관계들은 모두 이 연애의 주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에 있어서 우정은 절대 연애의 보완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를 위해 생을 송두리째 바치는 숱한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충이나 효 같은 도덕적 정언명령과도 전혀 다른 종류의 ‘윤리적 테제’였다. 가장 드높은 파토스를 수반하는 공명과 촉발의 기제, 그것이 우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과 연암이 지금 나누고 있는 정서적 교감은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헤어지는 대목은 그야말로 한 폭의 수묵화다. 그날 아침 심양을 떠날 때 가상루에 들리니, 배생이 홀로 나와 맞고 또 한 친구는 마침 잠이 깊이 들었다. 연암은 손을 들어 배를 작별하고 예속재에 이르니, 전생과 비생이 나와 맞는다. “목수환(목춘)이 한 청년을 데리고 왔다. 청년의 손에는 포도 한 광주리가 들려 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예물로 포도를 가지고 온 모양이다. 나를 향하여 공손히 읍한 뒤에 가까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는데 마치 알고 지낸 듯 친밀한 느낌이다. 하지만 갈 길이 바빠 이내 손을 들어 작별하고 점방을 떠나 말을 탔다. 그러자 청년은 말 머리에 다가와 두 손으로 포도 광주리를 받쳐 들었다[穆春携一少年 手持一籃葡萄 蓋少年爲見余 持葡萄作面幣也 少年向余肅揖 前執余手 如舊交 但緣行忙 因擧手作別 出舖乘馬 少年至馬首 雙手捧過葡萄籃子 「성경잡지」].” 연암은 말 위에서 한 송이를 집어든 뒤, 손을 들어 고마움을 표하고 길을 떠났다. 얼마쯤 가다 돌아보니 여러 사람이 여전히 점방 앞에서 연암이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다. ‘청년의 이름이 라도 물어볼걸’, 연암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국 문인들과의 우정
중국 장사치들과의 만남이 아름답고 애틋한 ‘우정의 소나타’라면, 선비들과의 교제는 일종의 ‘지적 향연(symposium)’이다. 고금의 진리, 천하의 형세, 민감한 정치적 사안들을 두루 망라하는 색채로 비유하면 전자는 경쾌한 블루 톤에, 후자는 중후한 잿빛 톤에 해당될 것이다.
연암은 서울을 떠나는 순간부터 중원의 선비들과의 만남을 준비한다.
내가 한양을 떠나서 여드레 만에 황주에 도착하였을 때 말 위에서 스스로 생각해보니, 학식이라곤 전혀 없는 내가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중국에 들어갔다가 위대한 학자라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의견을 교환하고 질의를 할 것인가 생각하니 걱정이 되고 초조하였다.
余離我京八日 至黃州 仍於馬上 自念學識固無藉手 入中州者 如逢中州大儒 將何以扣質 以此煩寃
그래서 예전에 들어서 아는 내용 중 지전설과 달의 세계 등을 찾아 매양 말고삐를 잡고 안장에 앉은 채 졸면서 이리저리 생각을 풀어내었다. 무려 수십만 마디의 말이, 문자로 쓰지 못한 글자를 가슴속에 쓰고, 소리가 없는 문장을 허공에 썼으니, 그것이 매일 여러 권이나 되었다. 비록 말이 황당무계하긴 하나, 이치가 함께 붙어 있었다.
遂於舊聞中 討出地轉月世等說 每執轡據鞍 和睡演繹 累累數十萬言 胷中不字之書 空裏無音之文 日可數卷 言雖無稽 理亦隨寓
말 안장에 있을 때는 피로가 누적되어 붓을 댈 여가가 없었으므로, 기이한 생각들이 하룻밤을 자고 나면 비록 남김없이 스러지긴 했지만, 이튿날 다시 가까운 경치를 쳐다보면 뜻밖에 기이한 봉우리가 나타나는 듯 새로운 생각이 샘솟고, 돛을 따라 새로운 세계가 수시로 열리는 것처럼, 정말 긴 여정에 훌륭한 길동무가 되고 멀리 유람하는 길에 지극한 즐거움이 되었다. 「곡정필담(鵠汀筆談)」
而鞍馬增憊 筆硯無暇 奇思經宿 雖未免沙蟲猿鶴 今日望衡分外奇峰 又復隨帆劈疊無常 信乎長途之良伴 遠游之至樂
물론 예상과 달리 그런 만남은 연경이 아니라, 열하에서 이루어졌다. 「곡정필담」이 그 보고서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텍스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곡정 왕민호인데, 그는 강소성 출신으로 54세가 되도록 과거에 응하지 않은 재야선비이다. 그에 대해 연암은 이렇게 평한다. 그는 “진실로 굉유(宏儒)요 괴걸(魁傑)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종횡반복이 많았다[彼固宏儒魁傑 然多縱橫反覆].” “더러는 동쪽을 가리키다가 서쪽을 치고[或有指東擊西]”, “나를 치켜 올리면서 동시에 억눌러서 말을 꺼내게 했으니, 굉장히 박식하고 말을 좋아하는 선비라 이를 만하다. 하지만 백두(白頭)인 채 궁한 처지로 장차 초목으로 돌아가려 하니 정말 슬픈 일이다[以觀吾俯仰 以導余使言 可謂宏博好辯之士 而白頭窮邊 將歸草木 誠可悲也].”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그를 보며, 연암의 심정 또한 착잡했던 모양이다.
왕민호 외에도 무인 출신 선비인 학지정, 황제의 시벗이자 고위급 관직에 있는 윤가전, 강희제의 외손인 몽고계 파로회회도(破老回回圖) 등이 열하에서 사귄 친구들이다. 대개 성격들이 엇비슷한 편인데, 이들 그룹 가운데 ‘튀는’ 인물이 하나 나온다. 추사시라는 ‘광사(狂士)’가 그다. 생긴 건 멀쩡한데 유교, 불교, 도교를 넘나들며 난감한 질문만 골라 하고, 기껏 대답하면 냉소로 일관하는 ‘비분강개형’ 인물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귀국은 불교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나요[貴國佛敎 始於何代]?”
“귀국의 사대부들은 세 가지 교 가운데, 무엇을 가장 숭상합니까[貴國士大夫於三敎中 最崇何敎]?”
“귀국에서도 예전에 신승(神僧)이 있었나요. 그 이름을 듣고 싶습니
다[貴國古亦有神僧 願聞其名].” 「황교문답(黃敎問答)」
연암으로서는 참 난처한 질문이다. 유교 중에서도 가장 교조적인 주자학을 신봉하고, 게다가 소중화(小中華)임을 자처하는 조선의 선비에게 웬 불교?
우리나라가 비록 바다 한 귀퉁이에 있긴 하지만, 풍속은 유교를 숭상하여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선비와 걸출한 학자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선생이 묻는 바는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승에 관한 것이로군요. 우리나라 풍속은 이단의 학문을 숭상하지 않아 신승이 없기 때문에 실로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敝邦雖在海隅 俗尙儒敎 往古來今 固不乏鴻儒碩學 而今先生之問 不及於此 乃反神僧之是詢 弊邦俗不尙異端之學 則固無神僧 在固不願對也
이렇게 침착하게 답하자, 이번에는 느닷없이 유학자들을 마구 비판한다.
지금의 학자들은 죽어도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한번 학문이라는 영역을 싸잡아쥐면 더욱 육경이라는 벽돌을 쌓아서, 보루를 견고하게 만들어놓고는 때때로 여러 사람의 말을 바꿔치기해 자신의 깃발을 새것처럼 꾸밉니다. 절반은 주자의 학문을 따르고, 절반은 그 반대 학파인 육상산의 학문을 따르면서 모두가 한 학파에 숨어들어서 머리를 내밀었다가 숨었다가 하는 모습이 마치 호숫가 갈대숲의 도처에 숨어서 출몰하는 도적놈과 같습니다. 책의 좀벌레나 뒤지던 사람을 양성해서 성(城)이나 사직에 붙어사는 쥐새끼나 여우처럼 만들어서는 고증학이란 학문을 가지고 붙어살게 합니다.
今之儒者 亡不出境 兜攬釆地 益築六經 以堅其壁壘 時換群言 以新其旌旗 半朱半陸 俱爲逋主 頭沒頭出 遍是水泊 養蠧魚爲狐鼠 則攷證爲其城社
반면에 잘 달리는 준마를 억눌러서 느려터진 둔마를 만들어 놓고는 훈고학이라는 학문을 가지고 그 입에 재갈을 채워 찍소리도 못하게 만듭니다. 혹 여기에 반발하여 단단히 무장을 하고 깊숙이 쳐들어가 공격을 하다가는 도리어 공격과 겁탈을 당하여, 그 형세가 결국에는 말에서 내려 결박을 당하고 두 무릎을 땅에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유학자라는 사람은 아주 두렵습니다. 겁이 납니다. 겁이 나요. 저는 평생 유학을 배우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抑騏驥爲鴑駘 則訓誥爲其鉗橛 或有懸軍深入 反遭攻刦 其勢不得不下馬受縛 雙膝以跪 今之儒者 絶可畏也怕也怕也 敝平生 不願學儒也
자못 논리가 엄정하고 치밀하다. 육상산은 주자와 동시대 철학자로 훗날 양명학이라 불리는 학설의 원조로 추앙되는 인물이다. 주자의 성리학에 맞서 ‘심(心)’을 테제로 표방한 까닭에, 그의 학문을 ‘심학’이라고도 부른다. ‘반은 주자요, 반은 육상산’이라는 말은 서로 입장이 대립되는 두 학설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당시 유학자들의 얄팍한 처세술을 나름대로 짚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게 진심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여기에 동조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또 앞에서 던진 물음들과 이 진술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처럼 그는 “성인도 욕하고 부처도 욕하여, 저 하고 싶은 대로 실컷 욕을 해대야만 분이 풀리는[罵聖罵佛 惟意所欲 痛罵一頓]” 그런 유의 인물이다. 그러니 연암 같은 노련한 인물로서도 맞장구를 쳐야 할지, 냉담하게 무시해야 할지 몰라 영 헷갈릴밖에. 그럼에도 연암은 그의 괴팍함을 잘 참아내는 한편, 그의 개성을 낱낱이 묘파해놓았다. 추사시 역시 『열하일기』를 장식하는 개성있는 엑스트라들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중국 아이와의 우정
그 숱한 엑스트라들 중에 아역이 없을 리 없다. 호삼다(胡三多)라는 꼬맹이 친구가 바로 그다. 나이는 열두 살, 얼굴이 맑고 깨끗하며 예도에 익숙하다. 일흔세 살된 노인과 함께 곡정 왕민호에게 글을 배운다. 매일 새벽이면 삼다는 노인과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와선 곡정을 뵙는다. 곡정이 바쁠 때면, 노인은 즉시 몸을 돌려 동자인 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의를 받고선 간다. 돌아가선 여러 손자들에게 다시 배운 바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어린 삼다를 동학(同學) 혹은 아우라 부른다. 연암은 이들 짝궁을 보고, “늙은이는 젊은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젊은이는 늙은이를 업신여기지 않[老者不恥 稚者不侮]”는 변방의 질박한 풍속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한번은 부사가 삼다에게 명하여 복숭아를 시로 읊게 하였더니 운을 청하여 그 자리에서 지었으되 문장과 이치가 두루 원만하여 붓 두 자루를 상으로 내렸다. 또 한번은 통관 박보수의 덩치가 엄청나게 큰 노새가 뜰 가운데서 마구 달음질치는 것을 보고 삼다가 재빨리 나가 그 턱밑을 구슬러 목줄띠를 쥐고 가니, 노새가 머리를 숙인 채 굴레를 순하게 받는다.
또 어느 날은 정사가 창을 비켜 앉았을 제, 삼다가 그 앞을 지나치기에 정사가 그를 불러 환약과 부채를 주었더니 삼다가 절하고 사례하면서 이내 정사의 성명과 관품을 풀었다(「경개록」). 귀엽고 당돌하기 짝이 없다. 연암도 홀딱 반했던가보다. 삼다를 묘사하는 그의 필치에 애정이 뚝뚝 넘쳐흐르는 걸 보면.
주인공은 바로 ‘나’
이처럼 장쾌한 편력기답게 『열하일기』에는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연 도드라진 인물은 연암 자신이다. 그는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심리를 미세한 부분까지 아낌없이 드러내 보인다. 불타는 질투심과 호기심, 우쭐거림, 머쓱함 등, 그 생동하는 파노라마는 이 편력기에 강렬한 색채를 부여한다.
여행이 시작되고 얼마 있다 그는 꿈을 꾼다. 밤에 조금 취하여 잠깐 조는데, 몸이 홀연 심양성 안에 있다. 꿈속에서 보니 궁궐과 성지와 여염과 시정들이 몹시 번화ㆍ장려하다. 연암은 “이렇게 장관일 줄이야! 집에 돌아가서 자랑해야지[余自謂壯觀]”하고 드디어 훌훌 날아가는데, 산이며 물이 모두 발꿈치 밑에 있어 마치 소리개처럼 날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야곡(冶谷, 서울 서북방 동리) 옛 집에 이르러 안방 남창 밑에 앉았다. 형님(박희원)께서, “심양이 어떻더냐[瀋陽如何]?” 하고 묻자, 연암은 “듣던 것보다 훨씬 낫더이다[勝於所聞]” 하고 대답한다. 마침 남쪽 담장 밖을 내다보니, 옆집 회나무 가지가 우거졌는데, 그 위에 큰 별 하나가 휘황히 번쩍이고 있다. 연암이 형님께, “저 별을 아십니까[識此星乎]?”하니, 형님은 “글쎄. 잘 모르겠구나[不識其名]” 한다. “저게 노인성(老人星)입니다[此老人星].” 하고 답하고는 일어나 절하고, “제가 잠시 집에 돌아온 것은 심양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여행길을 따라가야겠어요[吾暫回家中 備說瀋陽 今復追程耳].” 하고는 안문을 나와서 마루를 지나 일각문을 열고 나섰다. 머리를 돌이켜 북쪽을 바라본즉, 길마재 여러 봉우리가 역력히 얼굴을 드러낸다.
그제야 퍼뜩 생각이 났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나 혼자 어떻게 책문을 들어간담? 여기서 책문이 천여 리나 되는데,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꼬, 큰소리로 고함을 치며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문 지도리가 하도 빡빡해서 도무지 열리지를 않는다. 큰 소리로 장복이를 불렀건만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질 않는다. 힘껏 문을 밀어 젖히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忽自大悟曰 “迂闊迂闊 吾將何以獨自入柵” 自此至柵門千餘里 誰復待我停行乎 遂大聲叫喚 不勝悔懊 開門欲出 戶樞甚緊 大叫張福 而聲不出喉 排戶力猛 一推而覺
마침 정사가 나를 불렀다. “연암!” 비몽사몽간에 이렇게 물었다. “어, 어 …… 여기가 어디오?” “아까부터 웬 잠꼬대요?” 일어나 앉아서 이를 부딪치고 머리를 퉁기면서 정신을 가다듬어본다. 제법 상쾌해지는 느낌이다. 「도강록(渡江錄)」
正使方呼燕巖 余猶恍惚應之 問曰 “此卽何地” 正使曰 “俄者夢囈頗久矣” 遂起坐敲齒彈腦 收召魂神 頓覺爽豁
이 꿈의 에피소드에는 연암의 심리가 다양하게 투영되어 있다. 처음 연행에 나선 설레임과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거기에 더해 책문을 넘을 때의 두려움 등, 연암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속내를 두루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연암이 유머를 구사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까닭에 『열하일기』가 펼쳐 보이는 유머의 퍼레이드에는 늘 연암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소한 충돌과 코믹 해프닝은 헤아릴 수도 없거니와, 그 가운데 몇 개만 소개해본다. 만화를 보듯 그냥 즐기시기를!
상갓집 사건과 기상새설 사건
먼저 상갓집 해프닝, 연암이 십강자(十扛子)에 이르러 쉬는 사이에 정진사, 변계함 등과 함께 거리를 거닐다가 한 패루(牌樓)에 이르렀다. 그 제도를 상세히 구경하려 할 즈음에 요란스런 음악이 시작된다. 정과 변, 두 사람은 엉겁결에 귀를 막고 도망치고, 연암 역시 귀가 먹을 것 같아서 손을 흔들어 소리를 멈추라 하여도 영 막무가내로 듣지 않는다. 다만 할끔할끔 돌아보기만 하고 그냥 불고 두드리고 한다. 호기심이 동한 연암은 상갓집 제도가 보고 싶어 따라가니, 문 안에서 한 상주가 뛰어나와 연암 앞에 와 울며 대막대를 내던지고 두 번 절하는데, 엎드릴 땐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일어설 땐 발을 구르며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그러고는 “창졸에 변을 당했사오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사옵니다[].” 하고, 수없이 울부짖는다. 상주 뒤에 5, 6명이 따라 나와 연암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얼떨결에 문상객이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상주를 위로하고, 음식까지 대접받고 나온다. 돌아와 일행들에게 고하니, 모두들 허리를 잡는다[余爲言俄刻吊喪之禮 皆大笑].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다음, ‘기상새설(欺霜賽雪)’ 사건, 심양의 시가지를 거닐 때, 한 점포 문설주에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네 글자가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연암은 마음속으로 ‘장사치들이 자기네들의 애초에 지닌 마음씨가 깨끗하기는 가을 서릿발 같고, 또한 흰 눈빛보다도 더 밝음을 스스로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做個賣買的 自衒其本分心地皎潔 與秋霜一般 乃復壓過他白白的雪色]’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전당포에서 필법을 자랑하기 위해 액자로 다는 현판에 ‘欺霜賽雪’ 네 자를 썼는데, 처음 두 자를 쓸 땐 환호하다가 막상 다 쓰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토라지는 연암. “하긴, 이런 작은 촌동네에서 장사나 하는 녀석이 심양 사람들 안목을 어찌 따라가겠냐? 무식하고 멍청한 놈이 글자가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겠어[小去處做賣買的 惡能及瀋陽諸人 這個麤莽漢 那知書字好否]?”하고, 투덜거리며 가게를 나온다.
다음날 달빛이 훤한 밤에 한 점방에 들어간다. 탁자 위에 남은 종이가 있기에 남은 먹을 진하게 묻혀 ‘신추경상(新秋慶賞)’이라 써 갈겼다. 그중 한 사람이 보고 뭇사람들을 소리쳐 부른다. 연암이 쓴 글씨를 보더니 차를 내온다, 담배를 붙여 권한다, 분주하기 짝이 없다. 으쓱해진 연암은 주련(柱聯)을 만들어 칠언시 두 수를 써준다. 와아~ 사람들의 환성소리, 술에 과일대접까지 받은 연암은 갑자기 생각하기를 ‘어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 넉 자를 썼다가 주인이 돌연 안색이 나빠졌단 말이야. 오늘은 단연코 그 치욕을 씻어야겠다[昨日當舖所書欺霜賽雪四字 舖主怎地不悅 吾當爲前日雪耻也]’하고는 점포에 다는 액자로 ‘기상새설’을 써준다. 그러자 주인이 “저희 집에선 부인네들 장식품을 매매하옵고 국숫집은 아니옵니다[俺舖專一收賣婦人的首飾 不是麪家].” 한다. 아뿔사! ‘기상새설(欺霜賽雪)’이란 국숫집 간판이었던 것이다. 그 의미도 심지가 밝고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국숫가루가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뜻이었던 것. 비로소 실수를 깨달았지만, 연암은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말한다. “나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저 시험삼아 한번 써본 것이오[我已知道了 聊試閒筆耳].” 「성경잡지(盛京雜識)」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사건은 잘 짜여진 한 편의 꽁트다. 시간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을뿐더러, 그 사이에 연암의 심리적 상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토라졌다 다시 으쓱대고, 속으로 뜨끔하고, 하지만 또 응큼하게 치고 등등. 자신의 심리변화를 이렇게 세밀하게 재현하는 사람의 심리는 대체 어떤 것일까?
술 마시기 사건
다음은 ‘코믹 액션’의 일종이다. 열하에 도착해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한 술집에 들어선다. 마침 몽고와 회자 패거리들이 수십명 술집을 점거하고 있다. 오랑캐들의 구역에 동이족(東夷族) 선비가 느닷없이 끼어든 꼴이 된 셈이다. 워낙 두 오랑캐들의 생김새가 사납고 험궂어 연암은 후회막심이나 이미 술을 청한 뒤라 괜찮은 자리를 골라 앉았다. 연암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넉 냥 술을 데우지 말고 찬 것 그대로 가져오게 한다.
심부름꾼이 웃으면서 술을 따라 가지고 오더니 작은 잔 둘을 탁자 위에 먼저 벌여놓는다. 나는 담뱃대로 그 잔을 확 쓸어 엎어버렸다. “큰 술잔으로 가져 와!” 그러고는 큰 잔에다 술을 몽땅 따른 뒤, 단번에 주욱 들이켰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酒傭笑而斟來 先把兩小盞 鋪卓面 余以烟竹 掃倒其盞 叫持大鍾來 余都注一吸而盡
눈이 휘둥그레진 오랑캐들. 중국은 술 마시는 법이 매우 얌전해서 비록 한여름에라도 반드시 데워 먹을뿐더러, 술잔은 작기가 은행알만 한 데도 오히려 조금씩 홀짝거려 마시는 게 보통인데, 찬술을 큰 잔에 몽땅 붓고 ‘원샷’해버렸으니 깜짝 놀랄밖에, 물론 연암은 자신의 이런 행동이 ‘허장성세(虛張聲勢)’임을 꿰뚫어 보고 있다. “내가 넉 냥이나 되는 찬술을 단숨에 들이켜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들을 겁주기 위해 부러 대담한척한 것일 뿐이다. 솔직히 이건 겁쟁이가 호기를 부린 짓이지 용기있는 행동은 아니다[一吸四兩 所以畏彼 特大膽如是 眞怯而非勇也].” 한껏 폼을 잡긴 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몽고, 회자 패거리들은 이제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기보다 호기심이 동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이때다 싶어 술값을 치르고 유유히 빠져나오려는 연암에게 돌발적 사태가 발생한다. 몇명이 다가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한번 앉기를 권하고는 그중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비워서 그를 붙들어 앉힌 것이다. 연암의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무리 중 한 명이 술 석 잔을 부어 탁자를 치면서 마시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이 마당에서 꼬리를 내릴 수는 없다. 한 번 더 ‘오버액션’을 하는 도리밖에.
나는 벌떡 일어나 사발에 남은 차를 난간 밖으로 휙 내버린 다음, 거기다 석 잔을 한꺼번에 다 부어 단숨에 쭈욱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즉시 몸을 돌려 한 번 습한 뒤 큰 걸음으로 후다닥 층계를 내려왔다. 머리끝이 쭈뼛하여 누군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황급히 한참을 걸어 큰길까지 나와서야 비로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락 위를 쳐다보니,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왁자했다. 아마도 나에 대해 떠들어대는 모양이다.
余起潑椀中殘茶於欄外 都注三盞 一傾快嚼 回身一揖 大步下梯 毛髮淅淅然 疑有來追也 出立道中 回望樓上 猶動喧笑 似議余也
‘터프가이’ 혹은 황야의 무법자가 따로 없다. 하지만 속으로 덜덜 떨고 있는 걸 오랑캐 패거리들이 알았다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는 몽고, 회자 오랑캐들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연암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 더더욱 배꼽을 잡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서도 궁금증이 동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멋지게 오랑캐들의 기를 죽였다고 하면 그만일 것을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자신의 심리적 표정을 노출시키는 연암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저 웃기려고? 아님 심오하게 보이려고??
판첸라마 대소동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판첸라마 대소동!’이다. 천신만고 끝에 열하에 도착한 일행에게 또 하나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판첸라마를 만나 예를 표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춘추대의(春秋大義)’로 무장한 그들로선 만주족보다 더 망측한 서번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벼락’이었다.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당번 역관들은 허둥지둥 분주하여 술이 덜 깬 사람들 같았다. 비장들은 공연히 성을 내며 투덜거렸다. 거 참, 황제의 분부가 고약하기 짝이 없네. 망하려고 작정을 했나.”라는 극단적 발언이 오고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연암은 무얼 했던가?
나야 한가롭게 유람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참견할 없을 뿐더러 사신들 또한 내게 자문 같은 걸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에 나는 내심 기꺼워하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이거 기막힌 기회인 걸.’
余以閒散從遊 凡於使事得失 毫無關涉 而亦未甞諮諏相及 是時余腹裏暗自稱奇曰 此好機會也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권점을 치며 속으로 생각을 요리조리 굴려보았다. ‘좋은 제목이로다. 이럴 때 사신이 상소라도 한 장 올린다면,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나라를 빛낼 텐데. 한데, 그리 되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치려나? 아니지. 이건 사신의 죄니, 그 나라에까지 분풀이를 할 수야 있겠는가. 그래도 사신이 운남이나 귀주로 귀양살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야. 그렇다면 차마 나 혼자 고국으로 돌아갈 수야 없지. 그리 되면 서촉과 강남 땅을 밟아 볼 수도 있겠군. 강남은 가까운 곳이지만 저기 저 교주나 광주 지방은 연경에서 만여 리나 된다니, 그 정도면 내 유람이 실로 풍성해지고도 남음이 있겠는걸.’
又以指尖圈空曰 好題目也 是時使臣 若復呈一疏 則義聲動天下 大光國矣 又自語曰 加兵乎 曰 此使臣之罪也 豈可移怒於其國乎 使臣滇黔雲貴不可已也 吾義不可獨還蜀 江南地吾其踐兮 江南近矣 交廣距燕京萬餘里 吾遊事 豈不爛漫矣乎也哉
나는 어찌나 기쁜지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동편 행랑 아래에서 건량마두 이동을 불러냈다. “이동아, 얼른 가서 술을 사오너라. 돈일랑 조금도 아끼지 말고, 이 이후론 너랑 영영 작별이다.”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余暗喜不自勝 直走出外 立東廂下 呼二同 乾糧馬頭名 曰 趣買沽酒來 爾無慳錢 從此與爾別矣
오, 이 기상천외의 유머! 앞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듯이, 이 일로 인해 조선사행단이 얼마나 심각한 곤경에 처했던가? 또 돌아온 뒤에도 공식보고서에는 올리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판첸라마가 하사한 금불을 받아온 데 항의하여 성균관 유생들이 ‘집단행동’을 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연암은 이 와중에 ‘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여행을 구상하느라 여념이 없다. ‘호모 루덴스’ 혹은 ‘어린이 – 되기’
이런 식의 ‘유영(遊泳)’이 가능하려면 자신을 아낌없이 던질 수 있는 당당함이 요구된다. 자의식 혹은 위선이나 편협함이 조금이라도 작용하는 한, 이런 식의 태도는 불가능하다. 웃음이란 기본적으로 자아와 외부가 부딪히는 경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이,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웃음이야말로 그 꽃들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 유머 행각들은 어떤 대상과도 접속할 수 있는 유목적 능력, 혹은 자신을 언제든 비울 수 있는 ‘무심한 능동성’의 소산에 다름아니다. 말하자면, 그는 비어 있음으로 해서 어떤 이질적인 것과도 접속할 수 있었고, 그 접속을 통해 ‘홈 파인 공간’을 ‘매끄러운 공간’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 위에서 종횡무진 뛰어놀았다. 마치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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