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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4. 갈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4. 갈

건방진방랑자 2019. 8. 2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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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갈

 

 

()

중국 서북방에 있는 소수 민족이었는데, ()와 같은 족속으로 취급된다.

 

갈갈(暍暍)

병든 사람이 열이 심한 모양이다.

 

갈갈(揭揭)

긴 모양, 높은 모양이다.

 

갈건(葛巾)

칡넝쿨로 만든 관이다. 도연명(陶淵明)은 술이 익으면 갈건을 가지고 술을 거르고 다시 닦아서 머리에 썼다 한다. 송서(宋書)』 「도잠전(陶潛傳)/ 유의어: 갈건통음(葛巾痛飮)

 

갈건한대북창면(葛巾閑對北窓眠)

갈건 쓰고 한가로이 북창 아래 잠들다. 도연명(陶淵明)의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이라 하였다.

 

갈고(羯鼓)

① 『갈고록(羯鼓錄)갈고는 모양이 칠통(漆桶)과 비슷하며 그 밑에는 아상(牙床)을 받쳐 놓고 두 개의 막대기로 치는데, 높은 누각(樓閣)과 새벽 경치와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아주 좋은 배경이다. 명황이 이를 가장 좋아하여, 봄비가 막 개고 경치가 아름다울 적에는 손수 갈고를 가지고 난간에 올라 마음껏 치곤 했다.”라 하였다. 광기(廣記)작은 전정(殿亭) 안에 버들꽃과 살구꽃이 피려고 할 적에는 임금이 갈고를 가지고 마음껏 쳤는데, 그 곡()춘광호(春光好)’라 했으며 버들꽃과 살구꽃이 활짝 핀 모습을 돌아보고는 손을 들어 가리키고 웃으면서 이 같은 놀이야말로 나를 하늘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어디 될 말이냐.’라 했다.”라고 하였다.

만족(蠻族)이 사용하던 북의 일종으로, () 위에 놓고 북채로 양면을 친다.

서방의 갈()이라는 부족(部族)이 치는 북이다. 그것이 중국으로 들어와서 유행되는데, 그 중에도 현종이 제일 잘 쳤다. / 인용: 達梁行(백광훈)

 

갈고최(羯鼓催)

갈고(羯鼓)는 상고 때 갈족(羯族)의 악기로서 북의 일종이다. 당 현종(唐玄宗)이 갈고를 좋아하여 내정(內庭)의 난간에 앉아 갈고를 칠 때 뜰 밑에는 버들꽃과 살구꽃이 금방 벌어지고 있었는데, 현종이 그것을 가리키며 웃으면서 궁인(宮人)에게 말하기를 이 한 가지 일은 나를 조물주라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다는 데서 갈고를 쳐 꽃이 피길 재촉하였다는 고사가 생겼다.

 

갈관(鶡冠)

산박쥐 깃으로 만든 관인데, 천인(賤人)들이 썼으므로 곧 천인을 가리킨 것이다.

할단새의 깃으로 장식한 관 이름이다. 할단새는 꿩과에 속하는 새로서 용감하여 싸우면 죽을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날 무관(武官)이 쓰는 관의 장식에 그 깃을 썼다.

 

갈관박(褐寬博)

()은 모포(毛布)이고, 관박(寬博)은 헐렁한 옷으로, 갈관박은 천한 자가 입는 옷을 말한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갈관자(鶡冠子)

책 이름이다. 저자 미상. 내용은 도가(道家)의 일에다 형명(刑名)에 관한 것이 섞였으며 19편으로 되어 있다.

 

갈구(葛屨)

칡으로 만든 여름에 신는 신발이다. / 인용: 端川節婦詩(김만중)

 

갈달(噶噠)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다.

 

갈도(喝道)

관원이 출입할 때에 벽제(辟除)하는 것을 갈도(喝道)라 한다.

 

갈등(葛藤)

칡과 등나무가 얽히듯이 까다롭게 뒤엉켜 있는 상태, 즉 일이나 인간관계가 까다롭게 뒤얽혀 풀기 어려운 상태를 가리킨다. 혹은 개인의 정신 내부에서 두 가지 상반되는 생각이 벌이는 충돌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얽힌 망상(妄想).

 

갈량려(葛亮廬)

갈량(葛亮)제갈량(諸葛亮)을 가리킨 것인데. 양양(襄陽)의 융중(隆中)에서 초려(草廬)에 살았으므로 이른 말이다. 삼국지(三國志)卷三十五

 

갈뢰(曷懶)

땅 이름인데 지금 함경도 남북지대이다.

 

갈류(葛藟)

칡이나 등나무 등덩굴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데, 시경(詩經)주남(周南) 규목(樛木)남쪽에 교목이 있으니, 갈류가 얽혔도다라 한 데서 온 말로, 후비(后妃)의 덕이 아주 훌륭하여 중첩(衆妾)들을 포용하는 것이 마치 교목에 수많은 갈류가 얽혀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갈마(羯磨)

불가의 말로 신((()에 의하여 지어지는 죄업(罪業)을 말한다.

 

갈매(渴梅)

위나라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와 싸워 패하여 달아날 적에 수하 군사들이 갈증이 나서 견디지 못하므로 조조는 일부러 말하기를 얼마 안 가면 매림(梅林)이 있다[前有大梅林].”라고 하니 군사들이 그 말을 듣고 입에 침이 돌아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

 

갈불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공자(孔子)가 산동성 사수현의 동북쪽에 있는 도천이란 샘을 지날 때 목이 말라 고통을 겪었지만 천한 이름의 샘물을 마시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마시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갈상유민(曷喪遺民)

() 나라의 유민을 가리킨다. 갈상은 하() 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이 매우 무도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천하(天下)를 가진 것은 마치 하늘이 태양을 가진 것과 같으니, 저 태양이 없어져야 내가 없어질 것이다.”라 했으므로, 당시에 그의 학정(虐政)을 원망하던 백성들이 이 태양은 언제나 없어질런고, 내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자[時日曷喪 予及女偕亡].”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서경(書經)』 「진서(湯誓),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갈석(碣石)

산 이름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돌아서 황하로 들어갔다.(夾石碣石 入于河)”고 하였고, 공안국(孔安國)은 다만 바닷가에 있는 산(海畔山)’이라고 하였다. 소재지에 대해서는 하북(河北열하(熱河산동(山東)등 여러 설이 있다.

원래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 북쪽에 있는 갈석산을 말하나 소진이 말하는 갈석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의하면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있다고 했다. 구문현은 지금의 하북성 호성(蒿城) 서북에 있는 태항산맥 줄기에 해당한다.

 

갈석궁(碣石宮)

연 소왕(燕昭王)이 추연(鄒衍)을 위해 지어 준 궁 이름이다.

 

갈석산(碣石山)

중국 하북(河北) 창려(昌黎) 서북방에 있는 산 이름이다.

진시황(秦始皇)이 자신의 공덕비를 새겨놓았다는 산 이름이다.

 

갈심진(渴心塵)

그동안 애타게 보고 싶은 그리운 정을 참고 있다가 다시 한 번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다는 말이다. 마음속의 먼지라는 표현은, () 나라 노동(盧仝)이 함희(含曦)라는 승려를 세 번이나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마음 태우며 돌아오자니 가슴속에 먼지와 티끌만 풀풀 나는구려[渴心歸去生塵埃].”라는 시구를 남긴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갈원(葛院)

진위(振威)의 속원(屬院)’을 말한다.

 

갈이천정(渴而穿井)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판다는 뜻으로, 일을 미리 준비하여 두지 않고 임박하여 급히 하면 이미 때가 늦어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유의어: 임갈굴정(臨渴掘井).

 

갈절루탄(葛節屢誕)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임금이 오랑캐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위() 나라로 가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을 적에 그의 신하들이 고국에 가지 못하고 타국에 오래 있게 됨을 한탄하여 부른 노래에 높은 언덕의 칡넝쿨은 마디가 어이 그리도 넓게 자랐는고[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패풍(邶風) 모구(旄丘)/ 인용: 達梁行(백광훈)

 

갈족(羯族)

오호(五胡) 가운데 하나로, 흉노(匈奴)의 별종(別種)이다. 북방의 오랑캐를 가리킨다.

 

갈지진충(竭知盡忠)

지혜를 다하고 충성을 다하다라는 말이다.

 

갈천(葛天)

태고적 임금인데 도잠(陶潛)五柳先生傳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라고 한 구절이 있으며 무위(無爲)로 천하를 다스렸다 한다. / 유의어: 갈천폐(葛天幣)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을 말려 고기를 얻는다.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갈홍(葛洪)

동진의 도사. 강소(江蘇) 사람. 자는 치천(雉川), 호는 포박자(抱朴子)이다, 소갈선옹(小葛仙翁)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학으로 유학(儒學)을 배웠으나 신선술(神仙術)에 통달한 재종조부(再從祖父) 갈현(葛玄)의 영향을 받고 갈현의 제자 정은(鄭隱)으로부터 연단(煙丹)의 비술(祕術)을 전승하였다. 동진의 시조(元帝)가 진(; 西晉)나라 승상으로 있을 때 무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만년에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를 채광하여 선약(仙藥)을 만들었다고 한다. 평소부터 갈홍을 흠모하던 광주 자사(廣州刺史) 등악(鄧嶽)스승을 찾아 멀리 떠날까 하네.”라고 쓴 전갈을 받고 급히 달려가 보니 앉은 채로 죽은 갈홍의 얼굴색은 살아 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입관(入棺)할 때의 시체도 부드럽고 가벼웠다고 한다. 그래서 세인은 61세로 세상을 떠난 갈홍이 껍데기인 시체만 남겨 놓고 신선이 된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저서로는 신선의 도를 설()한 내편(內篇)과 정치도덕을 논한 외편(外篇)의 포박자, 신선전(神仙專) 등이 있다.

() 나라 사람. 그는 선도(仙道)를 좋아하여 단약(丹藥)을 만들려 하였는데, 구루(句漏)에 좋은 단사(丹砂)가 난다는 말을 듣고 조정에 청하여 구루령(句漏令)으로 가기를 자원한 일이 있었다.

 

갈홍구령(葛洪求令)

진대(晉代) 사람. 호는 포박자(抱朴子). 도적을 평정한 공으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으나 신선의 도양술(導養術)을 좋아하여 교지(交趾)에 단사(丹沙)가 난다는 말을 듣고, 그 영()이 되기를 자원하여 나부산(羅浮山)에 들어 연단(煉丹)하였다.

 

갈홍천(葛洪川)

다시 서로 만나기를 약속한다는 말이다. () 나라 때 이원(李源)이 친구인 고승(高僧) 원택(圓澤)과 함께 삼협(三峽)에 이르렀을 때, 원택이 후세에 갈홍천(葛洪川) 가에서 다시 서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는데, 그로부터 12년 뒤에 그가 과연 약속대로 재생(再生)하여 갈홍천 가에 있는 천축사(天竺寺)의 삼생석(三生石)에서 다시 서로 만나게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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