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군
군계(群季)
계(季)는 막내라는 뜻이다. 한자엔 백중숙계(伯仲叔季)로 순서를 표시하기도 한다.
군계일학(群鷄一鶴)
많은 닭 가운데 한 마리의 학과 같이, 여러 평범한 사람 가운데 유독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 유의어: 백미(白眉), 태산북두(泰山北斗), 낭중지추(囊中之錐), 철중쟁쟁(鐵中爭爭), 간세지재(間世之材), 계군일학(鷄群一鶴). 계군고학(鷄群孤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군궁귀(群窮鬼)
당(唐) 나라 한유(韓愈)가 자신을 곤궁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다섯 가지를 귀신에 비기어 서술한 「송궁문(送窮文)」에서 온 말로, 지궁(智窮)·학궁(學窮)·문궁(文窮)·명궁(命窮)·교궁(交窮)을 가리킨다.
군령태산(軍令泰山)
군대(軍隊)의 명령(命令)은 태산(泰山)같이 무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군뢰선래(軍牢先來)
중국으로부터 임무를 마친 조선 사행이 돌아올 때 군뢰(軍牢) 한 사람을 선발, 만부(灣府 ; 義州)에 보낸 책문(柵門)에 당도할 일자를 보고케 한다. 보고를 접수한 만부에서는 사행 영접을 위한 모든 의식을 갖추어 지정한 날짜에 미리 책문에 도착하였다가 사행을 맞아 돌아가게 된다. 이때 사행이 만부로 파견하던 군뢰를 ‘군뢰선래’라 한다.
군망(郡望)
관향(貫鄕)을 말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하는 말이다. 범인의 좁은 식견의 비유.
군맹평상(群盲評象)
여러 맹인들이 코끼리를 평한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로,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일부분에만 집착한다. 즉, 식견이 좁아 자기 주관대로 사물을 잘못 판단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① 전쟁터에서 장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제경공(齊景公) 때 진(晉)나라가 아견(阿甄)을 치고 연(燕)나라가 하상(河上)을 침략해 왔다. 제나라 군사는 번번이 패하기만 하자 재상(宰相) 안영(晏嬰)이 양저(穰苴)를 천거(薦擧)했다. 양저는 대장으로 임명되자 임금이 신임하는 사람을 감군(監軍)으로 정해 같이 보내 주면 장병들이 동요하지 않고 자신을 따를 것이라고 했다. 임금은 장가(莊賈)라는 총신(寵臣)을 감군으로 보냈는데 장가가 지위와 임금의 총애(寵愛)를 믿고 군율(軍律)을 어기자 양저는 가차 없이 목을 베어 버렸다. 양저는 소리 높여 군사들에게 말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 총신의 목이 떨어져 나가자 군사들은 충격을 받고 와들와들 떨었다. 이러한 소식이 적진에 알려지자 적은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 양저는 진과 연의 군대를 물리치고 잃었던 땅을 모두 찾았다. 『사기(史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
② 오(吳)나라의 손무(孫武)는 비상시에 대비하여 궁녀들에게 군사훈련을 시키던 중, 두 대장으로 뽑힌 왕의 총희(寵姬)를 명령불복종으로 목을 베려 하였다. 왕 합려(闔閭)가 특사를 급파하여 용서를 청하였으나, 손무는 “신은 이미 명령을 받고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진중에 있을 때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臣旣已受命爲將 將在軍 君命有所不受)” 하고 그 총희의 목을 베자 그때까지 지껄이고 웃으며 장난하던 궁녀들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훈련에 열중하였다 한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 『손자(孫子)』 「구변(九變)」
군보(窘步)
보행이 곤란한다.
군보(軍保)
양인(良人)으로서 신역(身役)을 면제받은 자가 신역을 지는 정병(正兵)의 토지를 대신 경작해주던 제도이다. 뒤에는 이 제도가 역(役) 대신 일정한 쌀(米)이나 베(布)를 바치게 해서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일종의 일두세(人頭稅)였다. 보인(保人)을 군보(軍保) 혹은 인보(隣保)ㆍ보솔(保率)로 부르기도 한다. / 인용: 哀絶陽(정약용)
군복(君復)
송(宋) 나라의 처사(處士) 임포(林逋)의 자인데, 그는 산수가 뛰어난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했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스승·아버지의 은혜는 하나 같다’라는 말이다.
군산(君山)
중국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가운데에 있는 산 이름이다.
군산투귀신(君山鬪鬼神)
군산(君山)은 상산(湘山)이다. 진시황(秦始皇)이 배를 타고 상산사(湘山祠)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건너지 못하였다. 진시황이 묻기를 “상군(湘君)은 어떤 신(神)인가?”하니, 대답하기를 “요 임금의 딸이자 순 임금의 처입니다.”하였다. 진시황이 매우 노하여 상산의 나무를 모조리 베어 벌거숭이 산으로 만들었다. 『통감절요(通鑑節要)』 卷3 「후진기(後秦紀)」
군상지언장굴지청호(君上言將掘地聽乎)
권력에 비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임금의 말은 땅을 파고 들어가 들어야 하는가’라는 권력에 비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재상의 말을 엎드려 들어야 한다면 임금의 말씀은 땅을 파고 들어가 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서, 고려시대 주열(朱悅)의 말이다. 『고려사(高麗史)』 卷106 「주열전朱悅傳」
군섭(君涉)
고부천(高傅川)의 자(字)이다.
군세(裙帨)
오얏꽃의 희고 깨끗한 모양을 형용한 말로, 한유(韓愈)의 이화시(李花詩)에 “큰 여인과 향기 높은 부인이 사방에 나열하여 흰 치마와 마전한 수건이 서로 등차가 없구나[長姬香御四羅列, 縞裙練帨無等差].”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五
군숙오주가(群叔誤周家)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 무왕(周武王)의 아우요, 주공(周公)의 형들로 『사기(史記)』에 이르되, 무왕이 붕어하고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린 탓에 주공이 섭정하니 관·채가 나라에 말을 퍼뜨리되 “공이 장차 어린애에게 이롭지 못하리라[管蔡流言放國曰 公將不利於孺子].”해서 주공이 황공하여 동도로 피했더니, 뒤에 성왕이 주공을 맞아 돌아오매 그들이 모반하였다. 왕이 주공에게 토벌을 명하여 그들을 잡아 죽였다. 『사기(史記)』 「관채세가(管蔡世家)」
군신비약(君臣祕藥)
아주 좋은 약이라는 뜻이다. 병을 다스림에 있어 주약(主藥)과 보조약(補助藥)이 있는데, 군(君)은 곧 주약이고 신(臣)은 곧 보조약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
오륜(五倫)의 하나로, 임금과 신하에게는 의(義)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군실가액망(君實加額望)
군실은 송 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자이고, 가액은 두 손을 이마에 대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식의 하나이다. 사마광이 신종(神宗) 때 재상으로 재직하던 중 1084년 3월에 황제가 승하하여 대궐에 들어가 임곡(臨哭)하였는데, 대궐을 경비하는 군사들이 그를 바라보고 모두 두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말하기를 “이분은 사마 상공(司馬相公)이시다.”하였다 한다. 『송사(宋史)』 卷三百三十六 「司馬光傳」
군액(軍額)
군인의 수효, 군인의 머릿수. / 인용: 軍丁歎(정민교)
군옥(君沃)
관원(灌園) 박계현(朴啓賢)의 자(字)이다.
군옥당(群玉堂)
신선의 거처를 말한다. 서왕모(西王母)가 군옥산(群玉山)에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목천자전(穆天子傳)」 卷2
군옥봉(群玉峯)
군옥산(群玉山)은 신선이 사는 곳인데 총석정을 여러 옥봉우리라 하여 거기에 견준다.
군옥산두가학래(群玉山頭駕鶴來)
군옥산은 신선인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다는 곳으로 신선이 되어 올 것이라는 뜻이다. 이백(李白)의 청평조(淸平調) 시에 “만일 군옥산 머리에서 만나지 않으면 마침내 요대를 향하여 달 아래서 만나리[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라고 하였다.
군왕침과(君王枕戈)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은 거적자리에서 창을 베고 잠을 잔다.”는 말이 『예기(禮記)』에 있는데,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吳)나라에 항복하여 굴욕(屈辱)을 당한 뒤에 나라에 돌아와서 범려(范蠡)·대부종(大夫種)과 함께 국력(國力)를 길러서 도리어 오나라를 멸하고 패업(覇業)을 성취하였다.
군웅할거(群雄割據)
많은 영웅(英雄)들이 각지에 자리잡고 서로 세력을 다툼을 이른다. 한 시기에 여기저기에서 일어난 영웅들이 제각기 한 지방을 차지하고 제 마음대로 위세를 부리는 일을 말한다.
군위강강(君爲綱綱)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다’라는 말로 삼강(三綱) 중 하나이다.
군위병졸(軍威兵卒)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를 왕래할 때 이를 호위하게 하기 위해 각 고을에서 차출하는 군졸을 말한다.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한다. 삼강(三綱)의 하나로, 임금은 신하의 모범(模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군자(君子)
원래 봉건사회에서 다음 왕이 될 태자(太子:임금의 아들)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반적으로 학식과 덕망을 갖춘 학자나 현인을 의미하게 되었다.
군자개과(君子改過)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군자(君子)의 허물은 일식·월식과 같아서 그 허물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보고, 조금 뒤에 곧 고쳐질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고 한 말이 있다.
군자군(君子軍)
후한 때에 공융(孔融)이 정현(鄭玄)을 위하여 고밀현(高密縣)에 한 향(鄕)을 특별히 세우고자 하면서 “옛날 제(齊) 나라에서 사향(士鄕)을 두고 월(越) 나라는 군자군을 두었으니, 모두 현인(賢人)을 특별히 대우했던 것이다.”라 하였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이다.
군자도장진(君子道長辰)
동지(冬至)를 말한다. 『역(易)』 복전(復傳)에 “양은 군자의 도이니 군자의 도가 소극(消極)했다가 다시 자라난다.”라 하였다.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로, 『논어(論語)』 「학이(學而)」에선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나므로 孝弟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라는 말이 있다.
군자본우위(君子本憂違)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용(龍)의 덕을 지니고 숨어사는 사람은 숨어살면서도 걱정이 없고 남이 옳게 여기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서, 즐거우면 행하고 걱정되면 가 버린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곧 군자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로 군자는 한 가지 일에만 능하지 않고, 모든 일을 다 겸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군자삼락(君子三樂)
『맹자(孟子)』 「진심(盡心)」 上에서 말한 군자(君子)의 세 가지 즐거움. 곧,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천하의 뛰어난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 유의어: 삼락(三樂).
군자오거하류(君子惡居下流)
이 대문은 『논어(論語)』 「자장(子張)」 편에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이라 보인다. 하류(下流)는 지형의 낮은 곳이니, 온갖 더러운 것이 모이는 곳이다.
군자우(君子芋)
토란의 일종으로 크기는 두괴(斗魁)만하다 한다. 『광지(廣志)』
군자원포주(君子遠疱廚)
군자는 푸줏간과 부엌을 멀리해야 한다는 말로, 심성을 어질고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무섭거나 잔인한 일을 하는 것을 해서도 안 되며 봐서도 안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군자유(君子儒)
『논어(論語)』 「옹야(雍也)」에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고 하였다.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군자(君子)에게 삼락(三樂)이 있는데, 천하에 왕(王)이 되는 것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 말은 『맹자(孟子)』 「진심(盡心)」 上에 “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 하였다.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
군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물과 같다. 즉, 군자의 사귐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담박하기 때문에 영구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군자표변(君子豹變)
표범의 털이 가을이 되면 새로 나와 훨씬 아름답게 되는데, 훌륭한 사람은 잘못을 깨달으면 곧 고치는 것이 표범의 가죽과 같다는 비유로 시대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태도나 생각을 바꾸는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
군자향(君子鄕)
당 태종(唐太宗)이 김춘추(金春秋)의 말을 듣고는 “참으로 군자의 나라이다[誠君子之國也]”라고 감탄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41권 「김유신(金庾信)」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군자는 사람들과 친화하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 곧 대인관계에 있어 중용의 덕을 지켜,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편당)을 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로(子路)」
군저(群狙)
뭇 원숭이인데, 저(狙)는 곧 저격(狙擊)의 뜻을 취한 것이다. 유자(孺子)가 노래하기를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고 하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소자(小子)들아, 들어 보아라.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게 되니, 물이 스스로 취한 것이다[小子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
군평(君平)
① 정두경(鄭斗卿)의 자(字)이다.
② 한(漢) 나라 때 사람 엄군평(嚴君平)으로 이름은 준(遵)이다. 점을 잘 쳐서 사람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하루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언제나 점괘를 빙자하여 사람들에게 충효(忠孝)와 신의(信義)를 가르쳤고 하루 생계가 마련되면 발을 내리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한다. 또한 나이 90이 넘게 살면서 그 지조를 바꾼 일이 없었다 한다. 『한서(漢書)』 卷72
③ 한(漢) 나라 엄준(嚴遵)의 자로(子路),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점을 치던 사람인데, 매일 점을 쳐서 하루 먹을 만큼만 벌면 즉시 문을 닫고 들어앉아서 『노자(老子)』를 읽거나 저술을 하였으며, 관원들과는 교제하지 않았고 종신토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태평어람(太平御覽)』 卷509
군평기세(君平棄世)
군평은 한(漢) 나라 때 촉(蜀)의 은사 엄준(嚴遵)을 말한다. 군평은 그의 자이다. 그는 끝내 세상에 나가지 않고 성도(成都)의 시장에서 복서(卜筮)를 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였으며, 『노자(老子)』를 전공하여 생도들을 가르치고 십여만 언(言)의 노자지귀(老子指歸)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한서(漢書)』 卷七十二
군평첨윤(君平詹尹)
한(漢) 나라의 엄군평(嚴君平)과 초(楚) 나라의 정첨윤(鄭詹尹)으로, 점을 잘 치는 사람을 말한다.
군후(君侯)
원래는 열후(列侯)로서 승상이 된 자를 가리켰는데, 뒤에 와서는 달관(達官) 귀인(貴人)을 뜻하는 말로 되었다. 『해여총고(陔餘叢考)』 「군후(君侯)」
군희욕(群豨浴)
비가 올 징조를 말한다. 돼지는 본디 비 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날이 오래도록 비가 오려면 돼지들이 나가서 물을 건넌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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