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구
구(韮)
부추.
「구가(九歌)」
① 고대의 악곡으로, 우(禹) 임금 때의 음악이라고 전한다. 또는 각종의 악곡을 범범하게 지칭하기도 한다.
② 구공(九功)의 덕을 노래한 것이다.
③ 『초사(楚辭)』의 편명이다. 초(楚) 나라 굴원(屈原)이 지은 동황태(東皇太)·운중군(雲中君)·상군(湘君)·상부인(湘夫人)·대사명(大司命)·소사명(小司命)·동군(東君)·하백(河伯)·산귀(山鬼)·국상(國殤)·예혼(禮魂)을 말한다. 왕일(王逸)의 초사장구(楚辭章句)에 의하면, 굴원이 추방당해 완수(沅水)·상수(湘水) 사이의 지역에서 울분에 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속인(俗人)들의 제례(祭禮)와 가무악(歌舞樂)의 사(詞)가 너무 비루(鄙陋)함을 보고 구가의 곡을 지어, 위로는 귀신 섬기는 공경을 펴고, 아래로는 자신의 맺힌 원한을 표현해서 임금에게 풍간(風諫)하였다.
구가개귀순(謳歌皆歸舜)
순(舜) 임금이 요(堯) 임금의 상(喪)을 마치고는 요임금의 아들을 피해 남하(南河)의 남쪽에 가 있을 적에 구가하여 송덕(頌德)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을 구가하지 않고 모두 순임금을 구가(謳歌)하므로, 순임금이 마지못하여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랐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구각(晷刻)
‘짧은 시간’을 말한다. / 인용: 母別子(김성일)
구각가(扣角歌)
가곡(歌曲)의 이름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영척(寗戚)이 소의 뿔을 두드리면서 “내 평생 요순(堯舜)을 만나보지 못하겠네.”라고 한 데서 인용된 말이다. 『사기(史記)』 八十三 「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구각짐(狗脚朕)
① 남북조 시대에 북위(北魏) 말년이 되어 신하가 권력을 잡고 있었다. 그때에 북위의 황제가 짐(朕)이라고 말하니까 그 권력 잡은 신하가 혼자말로 “짐이 무슨 개다리 같은 짐이야.”라 하고, 그 후에 그 황제를 죽였었다.
② 위 효정제(魏孝靜帝) 때 제 문양왕(齊文襄王)이 제위(帝位)를 찬탈하기 직전에 효정제를 대단히 경멸하여 이른 말이다. 구각(狗脚)은 남의 명령을 잘 듣는 것을 뜻하는 말로, 문양왕이 효정제를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효정제에게 술잔을 권했으나 받지 않자, 문양왕이 노하여 효정제에게 말하기를 “짐(朕), 짐(朕), 구각짐(狗脚朕)!”하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 효정제를 주먹으로 때리게까지 한 데서 온 말이다. 『위서(魏書)』 「효정제기(孝靜帝紀)」
구감(狗襤)
한대(漢代)의 근시직(近侍職)이다. 촉(蜀) 나라 사람 양득의(楊得意)가 구감이 되었는데 임금이 「자허부(子虛賦)」를 읽고 대단히 칭찬하였다. 득의(得意)가 “신의 고을 사람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이 부(賦)는 자기가 지은 것이라 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임금이 놀라 사마상여를 불렀다 한다. 『사기(史記)』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구강(九江)
① 대강(大江)이 심양(潯陽)에 이르러 아홉 갈래로 분류되었다는 설(說)을 비롯하여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②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원수(沅水)·점수(漸水)·원수(元水)·진수(辰水)·서수(敍水)·유수(酉水)·풍수(灃水)·자수(資水)·상수(湘水)가 모두 동정호로 합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구강사(九江師)
구강(九江)은 안휘성(安徽省) 일대를 가리키는데, 이곳에서 유방(劉邦)의 군사가 항우(項羽)의 군사를 포위하였었다.
구갱(九坑)
구천. 하늘.
구거(篝車)
구는 대바구니이고 거는 수레이다. 『사기(史記)』 권126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돼지발 하나 술 한 그릇으로 풍년을 기원하기를 ‘곡식이 높은 땅에서는 대바구니에 가득하고[滿篝] 낮고 비옥한 땅에서는 수레에 가득 차게[滿車] 하소서.’라 했다.”라고 한 것에서 인용한 것이다.
구거(鳩居)
그럴듯한 집 한 채도 마련하지 못할 만큼 생활 능력이 형편없다는 말이다. 뻐꾸기는 자기 집도 지을 줄 모르고 항상 까치 둥지 속에 들어가 산다[維鵲有巢 維鳩居之]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작소(鵲巢)」
구거사시(驅車捨矢)
정직한 친구들끼리 종유했음을 비유한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거공(車攻)에 “말 모는 법도를 잃지 않으니, 화살을 놓으면 깨질 듯하여라[不失其馳 舍失如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거태항만(驅車太行晩)
늙은 천리마(千里馬)가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무거운 소금 수레를 끌고 험준한 태항산을 넘어가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백락(伯樂)이 발견하고는 쓰다듬어 주자 천리마가 자기를 알아주는 것에 감격하여 하늘을 우러러보고 길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4
구결(口訣)
한문(漢文)의 구절에 다는 토이다.
구경(九京)
경(京)은 원(原)과 통용되어 구원의 뜻으로 쓰이고, 또는 조상의 묘지(墓地)를 일컫기도 한다.
구경(具慶)
여럿이 함께 경하(慶賀)하는 것을 말하는데, 또는 부모(父母)가 다 생존해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구경(九經)
①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춘추좌전(春秋左傳)』·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주역(周易)』·『시경(詩經)』·『서경(書經)』 등 9가지의 경서를 말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異說)이 있다.
② 『중용(中庸)』 20장에 “정치를 하는 데는 아홉 가지의 떳떳한 법(九經)이 있으니, ‘몸을 닦는 것, 어진 이를 높이는 것, 모든 백성을 자식처럼 볼 것 등이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구경방선여(久敬方善與)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안평중(晏平仲)은 사람들과 잘 사귀도다. 오래도록 서로 공경하는구려(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구경산(丘瓊山)
명(明) 나라 학자 구준(丘濬)을 말한다. 경산(瓊山)은 구준의 출신지명이다. 구준은 특히 전고(典故)에 밝았고 저서로는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 등이 있다.
구경지(九莖芝)
『한서(漢書)』 「선제기(宣帝紀)」에 “함덕전(函德殿) 동지(銅池) 가운데 금지초 아홉 줄기가 자랐다.”고 하였다.
구경휘(具景輝)
경휘(景輝)는 구봉서(具鳳瑞)의 자(字)이다.
구고(九考)
9년에 세 번 고찰한다는 말로 관리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일이다. 『서경(書經)』 「순전(舜典)」
구고(九皐)
지하 구층 언덕의 밑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학명(鶴鳴)」에 “鶴鳴于九皐 聲聞于天”이라 하였다. 이는 실상이 있으면 아무리 숨어있어도 이름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구고(舊故)
한선제는 그의 아버지이며 황태손이었던 유진(劉進)과 함께 한무제의 황태자였다가 무고(巫蠱) 사건으로 피살된 유거의 손자 유병기(劉病己)다. 유병기는 당시 갓난아이로 무고의 사건으로 인해 강보에 싸인 채로 옥에 갇혔다. 한무제가 사람을 보내 당시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모조리 죽이라고 하자 당시 사건의 심리를 담당하던 정위감이었던 병길은 황증손을 죽일 수 없다고 항명하여 유병기는 천운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태자가 간신 강충의 모함에 빠져 피살된 것을 알게 된 한무제는 무고의 사건으로 연루된 사람에게 사면령을 발하자 계속해서 어린 병길을 맡아 양육하다가 외조모에게 넘겨 기르게 했다. 후에 유병기는 소제(昭帝)에게 후사가 없자 황태자로 책봉되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구고(句股)
모두 측량하는 수학(數學)이다. 직각삼각형(直角三角形)을 이르는데, 직각을 이룬 짧은 부분을 구(句)라 하고 긴 변(邊)을 고(股)라 한다.
구고현(句股弦)
직각(直角) 삼각형의 세 변(邊)을 말한다.
구곡(句曲)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산명인데, 양(梁) 나라 때 은사 도홍경(陶弘景)이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이 산에 은거하였었다.
구곡간장(九曲肝腸)
굽이굽이 사무친 마음 속.
구곡주(九曲珠)
아홉 굽이로 꼬불꼬불하게 구멍이 뚫린 구슬. 전설(傳說)에 의하면, 공자(孔子)가 일찍이 진(陳)에서 재액을 당했을 때 구곡주(九曲珠)에 실을 꿰게 되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망설이던 차에 어떤 여인이 비결을 가르쳐 주므로 공자가 곧 깨닫고는 개미허리에다 실을 묶은 다음 그 구멍에 꿀을 묻혀서 개미를 통과하게 하여 실을 꿰었다고 한다.
구공(寇公)
동한(東漢)의 구순(寇恂)이다. 구순이 일찍이 영천태수(潁川太守)를 지냈는데, 그 뒤에 한 광무(漢光武)를 따라 영천에 이르자 백성들이 노상에서 광무의 앞을 막고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구군을 이 영천에 1년만 더 빌려주소서.”라 하였다. 후세에 지방관을 유임시키는 비유로 쓰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卷 16 「구순전(寇恂傳)」
구공(九功)
육부(六府)와 삼사(三事). 6부는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이고, 3사는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이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勸之以九歌”, 『좌전(左傳)』 문공(文公) 7년 조(條)에 “九功之德皆可歌也”라고 각각 보인다.
구공가(九功歌)
우(禹) 임금의 구공을 찬미한 노래이다. 구공은 곧 아홉 가지 기능으로, 수·화·목·금·토·곡(水火木金土穀)의 육부(六府)와, 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의 삼사(三事)를 말한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구공금체(歐公禁軆)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修)의 눈을 노래한 금체시이다. 여럿이 시를 지을 때에 미리 무슨무슨 자(字)를 쓰기를 금하는 시체가 유명하였는데, 그가 지은 ‘눈’ 시의 자주(自註)에 “그때 영주(穎州)에서 지었는데, 옥(玉)·월(月)·이(梨)·매(梅)·연(練)·번(繁)·백(白)·무(舞)·아(鵝)·학(鶴)·은(銀) 등 자를 다 쓰지 말기를 청하였다.”라고 하였다.
구공문창(寇公捫瘡)
구준(寇準)을 가리킨다. 구준이 어릴 적에 어머니에게 상처가 날 정도로 크게 야단맞은 후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중에 훌륭하게 되었으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그래서 언제나 그 상처를 만지며 울곤 하였다. 『기문록(記聞錄)』
구과극이막추(駒過隙而莫追)
세월의 빠름을 말하는 것으로, 이 천지간의 사람의 한 평생이란 흰 망아지(白駒)가 작은 틈(隙)을 지나가는 것과 같이 잠깐이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구과이약(九寡珥約)
매승(枚乘) 칠발(七發)에 “아홉 아들 둔 과부의 귀고리로 거문고의 약(約)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구관(九官)
순임금 때의 아홉 대관(大官), 즉 사공(司空)·후직(后稷)·사도(司徒)·사(士)·공공(共工)·우(虞)·질종(秩宗)·전악(典樂)·납언(納言)이다.
구관명관(舊官名官)
먼저 있었던 관리가 훌륭하였다.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이 낫다.
구관호표(九關虎豹)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사람의 장막이 둘러쳐진 나머지 임금을 직접 만나 바로 잡아 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초사(楚辭)』 「초혼(招魂)」에 “상제(上帝)의 문에 버티고 선 호랑이와 표범, 올라오는 사람들 물어 죽이네[虎豹九關 啄害下人些].”라고 하였다.
구광지(九光芝)
영지(靈芝)의 이름이다. 『포박자(抱朴子)』에 “구광지는 석지(石芝)의 일종으로, 임수(臨水)의 높은 산 절벽 틈에서 나는데, 모양이 마치 주발처럼 생겼고 크기는 한 자를 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구괘(姤卦)
䷫ 천풍구(天風姤)로, 위 5획은 모두 연하였고 아래 한 획만이 끊겨 있다.
구괴저연(歐怪褚硏)
구양순(歐陽詢)의 괴와 저수량(褚遂良)의 연을 말한다.
구구(九衢)
겹겹이 난 가지들. 아홉 갈래가 난 큰 거리인데 도시(都市)를 말한다.
구구(九丘)
고서로서 구주(九州)의 토산품이나 기후 조건 등을 모아 기록한 지리서(地理書)인데,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구구(歐九)
송(宋) 나라의 구양수(歐陽脩)를 가리키는데, 그가 지제주(知滁州)로 좌천되었을 적에 나이 40세로 취옹정(醉翁亭)을 짓고 취옹으로 자호하였다. 「취옹정기(醉翁亭記)」
구구(拘拘)
굽어서 펴지지 않는 모양, 좋은 모양, 사물에 구애되는 모양.
구구(呴呴)
닭이 놀라 우는 소리, 곳집의 신, 말이 부드러운 모양.
구구(仇仇)
뽐내는 모양, 거만한 모양.
구구(九枸)
뿌리가 이리 저리 얽혀 있는 것. 『산해경(山海經)』 해내경(海內經)에 “염장(鹽長)이라는 나라에 건본(建本)이라는 나무가 있는데 그 밑동에는 구구(九枸)가 있다.”라고 하였다.
구구(劬劬)
애쓰는 모양, 바쁘게 수고하는 모양.
구구(區區)
작은 모양, 득의한 모양, 사랑함, 부지런한 모양, 변변하지 못한 마음, 제각각 다름.
구구(具區)
중국 월(越) 나라에 위치한 태호(太湖)를 달리 이른 말이다. 오월(吳越) 사이에 있다.
구구(嘔嘔)
즐거워하는 모양, 즐거워하는 소리의 형용, 부드러운 대화의 형용, 어린 아이의 말소리, 물건이 움직일 때 마찰하여 나는 소리.
구구(甌窶)
지세(地勢)가 높은 곳에 있는 협소한 토지를 말한다. / 인용: 秧歌五章(이학규)
구구사(九九詞)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세속에서 동지(冬至) 다음날부터 구구팔십일일(九九八十一日) 사이에 걸쳐 구구사(九九詞)를 많이 지었다고 하며, 또는 “구구가 다하면 추위도 다하고 복이 다하면 더위도 다한다[九盡寒盡, 伏盡熱盡].”고 하였다.
구구사기직(瞿瞿思其職)
『시경(詩經)』 당풍(唐風) 「실솔(蟋蟀)」에 “職思其居 好樂無荒 良士瞿瞿”라 하였다.
구구절저(驅九折阺)
국사(國事)를 위하여 멀고 험한 지방의 수령을 지냈다는 뜻이다. 한(漢) 나라 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공래현(邛崍縣)의 구절판(九折坂)을 순시하다가 부모가 끼쳐준 몸으로 이처럼 험난한 곳을 함부로 다니겠느냐면서 되돌아갔는데, 뒤에 왕준(王尊)이 자사가 되어서는 이곳에 당도하여 “왕양은 효자가 되었으니 나는 충신이 되겠다.”라 하고는 마부를 호령하여 말을 몰아 이곳을 통과하였다 한다.
구구평약수(九衢平若水)
포조(鮑照)의 악부시(樂府詩)에 “잔잔한 물처럼 잘 닦인 장안 거리, 높은 궁궐 마치도 구름 속에 떠 있는 듯[九衢平若水, 雙闕似雲浮]”이라는 표현이 있다. 『문선(文選)』 卷28 「결객소년장행(結客少年場行)」
구국간성(救國干城)
나라를 구원(救援)하는 방패(防牌)와 성(城)이란 뜻으로, 나라를 구하여 지키는 믿음직한 군인이나 인물을 비유한다.
구규(九竅)
사람의 몸에 있는 눈·코·입·귀·요도·항문의 아홉 구멍이다.
구금(鉤金)
혁대 끝에 달린 갈고리인데, 일반적인 현상을 무시하고 특별한 경우를 들어 우기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下에, 예(禮)가 식색(食色)보다 본래 중하지만 식색이 예보다 중한 경우로 한 갈고리의 쇠와 한 수레의 깃털의 무게를 비교하는 비유를 들면서 특별한 경우를 예로 들어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것을 반박하였다.
구급문(九級門)
관로(官路)를 말한다. 구급은 제1품(品)에서 9품에 이르는 관리의 등급을 말한다.
구기(九畿)
주대(周代)에 왕기(王畿)를 사방 천 리(四方千里)로 하고, 그 주위를 전후좌우로 각각 5백 리마다 일기(一畿)로 구획하여, 후복(侯服)·전복(甸服)·남복(男服)·채복(采服)·위복(衛服)·만복(蠻服)·이복(夷服)·진복(鎭服)·번복(藩服)으로 한 것을 말한다. 『주례(周禮)』 「직방씨(職方氏)」
구나(驅儺)
세모(歲暮)에 역귀(疫鬼)를 몰아내는 의식이다.
구년(九年)
여러 해의 의미도 있다.
구농(九農)
『주례(周禮)』에 기장·벼·콩 등의 아홉 가지 곡식(九穀)을 말하였다.
구단(九丹)
도가(道家)에서 단사(丹砂)를 아홉 번 고아 만든 선약(仙藥)을 말한다.
구담천해탈(瞿曇闡解脫)
구담(瞿曇)은 범어(梵語) Gāutama의 음역(音譯)으로서 석가(釋迦)의 속성(俗姓)이다. 석가는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성제(四聖諦)와 입멸(入滅) 즉 해탈에 이르는 팔정도(八正道)를 설법하였다. 『아함경(阿含經)』
구당(瞿塘)
협(峽) 이름이며, 3협의 하나, 중국 사천성(四川省) 양자강(揚子江)상류에 있는 아주 험준한 협곡. 양편 절벽 사이에 강물이 노격(怒激)하고 협구(峽口)의 염예퇴(澧預堆)가 강심에 솟아 있어 뱃길이 매우 험악하다.
구당진어염한(鉤黨盡於炎漢)
염한(炎漢)은 곧 한(漢) 나라를 가리키는데, 한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천자가 되었다 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곧 후한영제(後漢靈帝) 때에 선비들과 환관들이 서로 대립하여 동류를 서로 끌어들여 무고하게 해서 선비들을 모조리 학살했던 일을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 「영제기(靈帝紀)」
구당협(瞿塘峽)
장강(長江)의 삼협(三峽) 가운데 하나로, 사천성(四川省) 백제성(白帝城)에 있는데, 강물의 흐름이 아주 빠르고 산세가 몹시 험하기로 유명하여 서촉(西蜀)의 관문(關門)이라고 칭해진다.
구덕(九德)
임금이 행해야 할 아홉 가지 일.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수(水)·화(火)·금(金)·목(木)·토(土)·곡(穀)·정덕(正德)·이용(利用)·후생(厚生)이 잘 닦이고 화하여야 선정(善政)이 된다.”라고 하였다.
구도계명(狗盜鷄鳴)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에 구류되어 죽게 되었을 때, 그의 식객 가운데 한 사람이 진 나라 궁중의 창고에 개처럼 기어들어가 호백구(狐白裘)를 훔쳐와 그것을 진 나라 왕이 총애하는 궁녀에게 뇌물로 주고 일단 풀려난 다음, 말을 달려 도망가다가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 나가지 못할 때 또 다른 식객 하나가 닭울음소리를 내어 다른 닭들이 따라서 일제히 울자 문지기가 날이 새는 줄로 알고 문을 열어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곧 하찮은 재주를 말한다. 『사기(史記)』 卷七十五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 인용: ① 맹상군처럼 사귀라, ② 맹상군을 통해 배운 관계론과 배움의 조건
구두오룡(九頭五龍)
상고시대 인황씨(人皇氏) 이후 태평 성대 십기(十紀) 중의 이기(二紀)에 해당하는 세대로서, 구두는 즉 인황씨의 아들 9형제의 세대를 말하고, 오룡은 바로 그 다음인 오룡씨(五龍氏)의 세대를 말한다.
구등(篝燈)
바람을 막기 위해 불어리를 씌운 등이다.
구랍(舊臘)
음력 섣달(12월)을 납월(臘月)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구랍’은 곧 지난 해 섣달(12월)이란 뜻이다. 객랍(客臘)으로도 쓴다.
구량(九良)
아홉 필의 양마(良馬)이다. 이름은 부운(浮雲)·적전(赤電)·절군(絶群)·일표(逸驃)·자연(紫燕)·녹리총(綠離驄)·용정(龍丁)·인구(驎駒)·절진(節塵)으로 구일(九逸)이라고 불렀다. 『서경잡기(西京雜記)』
구련성(九連城)
만주 압록강 연안에 있는 옛 성. 의주의 맞은편에 있는 작은 촌락으로 한(漢) 때에는 안평구, 당(唐) 때에는 ‘박작성’이라 하였고, 금(金) 때에는 9성을 이어 쌓았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구련우락(鉤連隅落)
사우사락(四隅四落)이 서로 이리저리 연결되는 일을 말한다.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에 “隅落鉤連曲折相對”라고 보인다.
구령(九齡)
① 90세를 말한다. 무왕(武王)이 꿈속에서 천제(天帝)로부터 치아 아홉 개를 받았는데 문왕(文王)이 이는 타고난 수명이 구십 세라고 해몽하였다.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② 꿈에 상제(上帝)가 내게 아홉 살을 더 주었다는 말이 『예기(禮記)』에 보인다.
구령(緱嶺)
① 춘추시대(春秋時代)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피리를 매우 잘 불어서 피리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가 도사(道士)인 부구공(浮丘公)과 숭산(嵩山)에 올라가 30여 년 만에 구씨산(緱氏山)으로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구령은 곧 구씨산을 가리킨다.
②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에 있는 산 이름으로, 구산(緱山),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옛날에 왕자교(王子喬)가 환량(桓良)과 7월 칠석(七夕)에 함께 만났던 곳, 왕자교가 백학(白鶴)을 타고 올라가서 신선이 되었다는 곳이다. 본디는 사람이 도를 닦아서 신선이 되는 곳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을 말한다.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
구령취생(緱嶺吹笙)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진(太子晉)이 본디 생황을 잘 불었었는데, 뒤에 도를 닦아 구지산(緱氏山)에서 신선이 되어 승천(昇天)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구로(劬勞)
어버이의 은혜를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아(蓼莪)」에 “아 애달프다 우리 부모님, 나를 낳아 무진 애를 쓰셨도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고 하였다.
구로(龜老)
은자(隱者)나 또는 노승(老僧)을 가리킨 말이다.
구로(九老)
향산 구로(香山九老)인데, 당(唐)의 백거이(白居易)가 벼슬을 그만두고 나와서 나이 많은 호고(胡杲)·길민(吉旼)·정거(鄭據)·유진(劉眞)·노진(盧眞)·장혼(張渾)·적겸모(狄兼謨)·노정(盧貞) 등 아홉 노인이 낙양(洛陽)에서 결성한 구로회(九老會)라는 시사(詩社)이다. 『당서(唐書)』 「백거이전(白居易傳)」
구로옹(九老翁)
시문(詩文)에 뛰어난 옛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당(唐) 나라 때 시인(詩人) 백거이(白居易)가 노년(老年)의 여덟 친구들과 결성한 구로회(九老會)에 비유한 말인데, 백거이는 그들과 함께 항시 낙양(洛陽)에 모여 놀았다고 한다. 호고(胡杲)·길민(吉旼)·정거(鄭據)·유진(劉眞)·노진(盧眞)·장혼(張渾)·적겸모(狄兼謀)·노정(盧貞) 등 여덟 사람에다 백거이까지 합해서 구로이다.
구로회도(九老會圖)
당(唐) 나라 때 일찍이 태자 소부(太子少傅)를 지내고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한 시인(詩人)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향산(香山)에다 석루(石樓)를 짓고 팔절탄(八節灘)을 개착(開鑿)하고서 향산거사(香山居士)라 자칭하고 그곳에 기거하면서, 모두 나이가 많아 벼슬하지 않는 호고(胡杲)·길민(吉旼)·정거(鄭據)·유진(劉眞)·노진(盧眞)·장혼(張渾)·적겸모(狄兼謨)·노정(盧貞) 등 8인의 노인들과 함께 모여 노닐었으므로, 사람들이 이를 사모하여 구로회도를 만든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서(唐書)』 卷一百十九
구뢰(九牢)
아홉 개의 뢰로서 1뢰는 소·양·돼지의 3생(牲)을 말한다.
구룡전(九龍殿)
주대(周代)의 궁궐이었던 숭화전(崇華殿)이 소각되자 위나라의 명제(明帝)가 복건을 명하면서 구룡전이라고 개칭하였다.
구룡헌기우(龜龍獻奇偶)
귀는 하우씨(夏禹氏) 때 낙수(洛水)에서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는 글을 등에 지고 나온 신귀(神龜)를 말하고, 용은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역시 주역팔괘의 근원이 되는 그림을 등에 지고 나온 용마(龍馬)를 말하며, 기우(奇偶)는 곧 기수와 우수로서 주역의 원리인 음양(陰陽)을 말한다.
구루(傴僂)
곱사등이, 곱추를 지칭하는 말로 병명(病名)으로 등을 구부린 채 펴지 못하는 것이다. / 인용: 花王誡(설총), 渾沌酒歌(정희량), 醉翁亭記(구양수), 柳居士(홍신유)
구루(溝婁)
고을(邑)의 차자(借字)인데, 고구려에서는 성(城)을 말한다.
구루(甌簍)
구루(甌簍)는 병 목같이 높고 협소한 땅이다.
구루(岣嶁)
산봉우리 이름이다. 중국 호남성 형양현(衡陽縣) 북쪽에 위치한 형산(衡山)의 남쪽에 있는 구루봉(岣嶁峯)을 가리키는데, 상수기(湘水記)에 “전설에 의하면 우(禹) 임금이 금간옥서(金簡玉書)를 여기에서 얻었다고 하는데, 여기가 바로 도서(道書)에서 말하는 구루동천(岣嶁洞天)이다.”라고 하였다.
구루(句漏)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36개의 소동천(小洞天) 가운데 22번째의 동천 이름으로 진(晉)의 갈홍(葛洪)이 선도(仙道)를 닦던 곳이다.
구루단사협치천(句漏丹砂愜稚川)
치천(稚川)은 진(晉) 나라 갈홍(葛洪)의 자(字)이고, 단사는 단약(丹藥)의 재료인데, 갈홍이 단사를 얻어 연단(鍊丹)할 목적으로 구루 영(句漏令)을 자원했던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 卷72 「갈홍전(葛洪傳)」
구루동장(句漏銅章)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구루 영(句漏令)을 자청해 나가서 연단(鍊丹)을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72 「갈홍전(葛洪傳)」
구루령(句漏令)
진(晉) 나라 때 도인 갈홍(葛洪)이 신선의 도양법(導養法)을 좋아하여 여러 벼슬을 모두 고사하고, 교지(交趾)에 단사(丹砂)가 난다는 말을 듣고는 연단(煉丹)을 하기 위해 구루령을 자청하여 나갔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卷七十二
구루령사(句漏靈砂)
옛날 갈홍(葛洪)이 선술(仙術)을 좋아하여 교지(交趾)에 단사(丹砂)가 많이 난다는 말을 듣고 그 곳의 구루령(句漏令)을 자원했다 한다.
구루비가(岣嶁碑歌)
구루비(岣嶁碑)에 대한 노래이다. 구루비는 중국 고대 하우씨(夏禹氏)가 9년 홍수를 다스릴 때에 썼던 것으로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이다. 일설에는 우비(禹碑)라고도 한다. 중국 형산현(衡山縣) 운밀봉(雲密峯)에 있는데, 남은 글자가 77자라 한다. 근세에 와서 명(明) 나라 양신(楊愼)의 위조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類選』 十卷下 詩文篇 論詩門
구루산(句漏山)
광서(廣西) 북류현(北流縣)에 있는 산이다. 구루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36 소동천(小洞天) 중의 22 번째 동천인데, 『진서(晉書)』 「갈홍전(葛洪傳)」에 “나이 들어 늙어지자 연단(鍊丹)을 해서 수명을 늘려 볼 목적으로, 교지(交阯)에서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원해서 구루(句漏)의 현령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구루수단계(句漏修丹計)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는 연단(鍊丹)할 목적으로 구루 현령(句漏縣令)을 자청했던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72 「갈홍전(葛洪傳)」
구루약(句漏藥)
몸을 보양하는 좋은 약재(藥材)를 말한다. 구루는 교지(交趾)에 속한 현(縣)의 이름으로, 이곳에서는 좋은 약재가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진서(晉書)』 제72권 / 「갈홍전(葛洪傳)」에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산출된다는 소문을 듣고는 구루 영(句漏令)이 되기를 구하였다.”라고 하였다.
구루영(句漏令)
진(晉) 나라 갈홍(葛洪)이 교지(交趾)에서 단사(丹砂)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구루 영(句漏令)을 자청해 나가서 연단(鍊丹)을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72 「갈홍전(葛洪傳)」
구류(九類)
1. 오행(五行), 2. 오사(五事), 3. 팔정(八政), 4. 오기(五紀), 5. 황극(皇極), 6. 삼덕(三德), 7. 계의(稽疑), 8. 서징(庶徵), 9. 오복(五福)의 홍범구주(洪範九疇). 주(周) 무왕(武王)의 물음을 받고 기자(箕子)가 대답한 것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구류(九流)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아홉 종류의 학파이다. 유가류(儒家流)·도가류(道家流)·음양가류(陰陽家流)·법가류(法家流)·명가류(名家流)·묵가류(墨家流)·종횡가류(縱橫家流)·잡가류(雜家流)·농가류(農家流) 등이다.
구륜불파(尻輪不靶)
구륜(尻輪)은 곧 엉덩이가 변화해서 수레바퀴가 된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의하면, 자여(子輿)가 병이 들자 자사(子祀)가 문병을 가서 묻기를 “자네는 그 병을 미워하는가?[女惡之乎?]”하니, 자여가 대답하기를 “아닐세. 내가 어찌 미워하겠는가. 병이 점점 더 심해져서 나의 왼팔이 닭 모양으로 변화하면 나는 밤에 때를 알리라고 요구할 것이요 …… 나의 엉덩이가 수레바퀴로 변화하면 정신을 말(馬)로 삼아 그대로 타고 다닐 것이니, 어찌 멍에를 맬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륵죽(句勒竹)
대를 그릴 때 겹으로 하여 마치 쌍대처럼 하는 것을 말한다.
구리지석궐린순(口裏之石闕嶙峋)
비애(悲哀)로 말미암아 말을 할 수 없다는 비유이다.
구림(球琳)
아름다운 옥을 말한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厥貢惟球琳琅玕”이란 대문이 있다.
구마(丘麻)
『시경(詩經)』 왕풍(王風) 「구중유마(丘中有麻)」를 노래한 편(篇)이 있는데, 서(序)에 이르되, 어진 사람이 쫓겨나므로 국인(國人)이 그를 생각하여 지은 것이라 하였다.
구마간(扣馬諫)
주 무왕(周武王)이 은(殷)의 주왕(紂王)을 칠 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 무왕의 말을 잡고,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 것은 충(忠)이 아니라고 극간(極諫)하던 일을 말한다. 『사기(史記)』 卷61 「백이열전(伯夷列傳)」
구마객(裘馬客)
가벼운 옷을 입고 살진 말을 타는[輕裘肥馬] 사람이란 뜻으로 생활이 호화스럽고 부유한 자를 말한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구마류촌설(鳩摩留寸舌)
섣불리 건의하는 일을 삼가려는 뜻을 부친 것이다. 인도(印度)의 학승(學僧)으로 중국에 건너와 많은 불전(佛典)을 번역한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죽은 뒤 화장(火葬)을 하고 보니, 육신은 모두 불타 없어졌는데도 오직 혀만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 卷95
구마사(求馬肆)
한유(韓愈)가 지은 「위인구천서(爲人求薦書)」에서 “산에 있는 나무와 목장(肆)에 있는 말을, 수천 명의 사람이 매일 와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더라도 그 때문에 좋은 재목, 좋은 말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장(名匠)이나 백락이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 다음에야 그 가치가 결정되므로, 백락이 한 번 돌아보면 그 말의 값이 3배로 뛴다[木在山, 馬在肆, 過之而不顧者, 雖日累千萬人, 未爲不材與下乘也, 及至匠石過之而不睨, 伯樂遇之而不顧然後, 伯樂一顧, 價增三倍].”라고 하였다.
구만리고상(九萬里翶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남극 바다로 옮아 갈 적에 물을 쳐서 3천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나 올라간다[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라고 하였다.
구만비명조(九萬飛溟鳥)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북명(北溟)에서 남명(南溟)으로 옮기려면 물 위로 3천 리를 몰고 가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9만 리 상공으로 높이 떠 날아간다.”라고 하였다.
구망(句芒)
동방의 소양신(少陽神)이다.
구매(歐梅)
송(宋) 나라 때의 구양수(歐陽修)와 매요신(梅堯臣)을 합칭한 말이다. 이들은 시(詩)로써 서로 교분(交分)을 가졌었다.
구맥(九陌)
아흡 가닥의 큰 길. 한(漢) 나라 때 장안(長安) 성안의 길거리 이름으로, 도성의 번화로운 길거리를 말한다.
구맹(鷗盟)
강호(江湖)에 은둔하여 백구(白鷗)와 벗을 삼는 것을 말한다. 황정견(黃庭堅)의 「등쾌각(登快閣)」의 시에 “만리 돌아가는 배에 젓대 부니, 이 마음 백구와 맹세하였네[萬里歸船弄長笛 此心吾與白鷗盟]”라고 하였다.
구맹가한(舊盟可寒)
『춘추좌전(春秋左傳)』 애공(哀公) 12년에 “지금 그대가 반드시 예전의 맹약을 굳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만약 굳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역시 그 맹약을 식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今吾子曰 必尋盟 若可尋也 亦可寒也]”라고 하였다.
구맹급로사(鷗盟及鷺社)
물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갈매기와 백로를 벗으로 삼는다는 뜻으로, 즉 세속을 초월하여 산림에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구맹주산(狗猛酒酸)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진다. 사나운 개 때문에 술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 술맛이 초맛이 되었다. 간신이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아 나라가 쇠퇴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송나라 어느 주막에 술을 만들어 파는 장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되를 속이지 않았고 친절했으며, 술 빚는 실력 또한 훌륭했다. 또한 멀리서도 술집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게 깃발까지 높이 세워 놓았다. 그러나 주막의 술은 도무지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담가 놓은 술은 독째로 시어 버리기 일쑤였다. 고민하던 그 술집 주인은 양천을 찾아가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왜 우리 주막은 장사가 안 됩니까?” 양천이 말하였다 “혹시 당신네 주막의 개가 무서운 게 아니요.” “개가 무서운 것은 사실입니다만, 개가 무서운 것이 술이 팔리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막을 지키는 개가 너무 사납게 짖어대는 바람에 손님들이 들어갈 수 없고, 아이들이 부모의 심부름을 받아도 개가 무서워 들어갈 수 없으니, 최고의 술을 준비해 놓고도 구맹(狗猛)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 것이지요!”라고 하였다 한다. 『한비자(韓非子)』 「외저설우(外儲說右)」 上
구명도생(苟命徒生)
‘구차하게 살아감’을 말한다.
구명전지(丘明傳志)
구명(丘明)은 『좌전(左傳)』의 저자 좌구명(左丘明)을 말하는데, 두예(杜預)가 쓴 춘추좌씨전 서(春秋左氏傳序)에 “변례를 유추해서 포폄의 정신을 바르게 펴고, 두 개의 전 가운데에서 정선하여 이단의 설을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체로 좌구명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함이었다[推變例以正褒貶 簡二傳而去異端 蓋丘明之志也]”라는 말이 나온다.
구명지은(救命之恩)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말한다.
구모(颶母)
회오리바람. 여름에서 가을철로 옮기는 환절기(換節期)에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말한다.
구모토각(龜毛兎角)
『불경(佛經)』에 거북의 털, 토끼의 뿔이란 말이 있는데, 그것은 본시 없는 것이란 말이다. / 유의어: 구모(龜毛)
구목적(龜目赤)
거북의 눈알이 빨갛게 변하면 홍수가 난다는 속설이 있다.
구몽(龜蒙)
구산과 몽산. 산동성(山東省) 태산군(泰山郡)에 있는 두 산 이름이다.
구묘지향(丘墓之鄕)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고향을 말한다. / 유의어: 구묘향(丘墓鄕) / 인용: 流民怨(홍양호)
구문(九門)
옛날 천자(天子)는 구문(九門)이 있었으니, 1은 노문(路門), 2는 응문(應門), 3은 치문(雉門), 4는 고문(庫門), 5는 얼문(臬門), 6은 성문(城門), 7은 근교문(近郊門), 8은 원교문(遠郊門), 9는 관문(關門)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구문규당(求門窺堂)
당(堂)을 거쳐야 방으로 들어가는데 비유한 학문의 차례를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구문장(丘文莊)
문장(文莊)은 명(明) 나라 사람 구준(丘濬)의 시호이다. 자는 중심(仲深). 사람됨이 충후 정직(忠厚正直)하고 학문을 좋아하였다. 저서에는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 등이 있다.
구미(灸眉)
왕돈(王敦)이 곽서(郭舒)에게 “듣건대 그대의 광병(狂病) 때문에 그대의 코를 꼬집고 눈썹 부위에 뜸질을 한다고 하니, 혹 구병(舊病)이 다시 발작한 게 아니냐?”라고 하였다.
구미속초(狗尾續貂)
① 개 꼬리를 담비 꼬리에 이음.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쓸 만한 인격자가 없어 비열한 사람을 고관(高官)에 등용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② 담비의 꼬리가 모자라 개의 꼬리로 잇는다[초부족 구미속(貂不足 狗尾續)]는 데서, 훌륭한 것 뒤에 보잘것없는 것이 잇따름을 말한다. 진(晉)나라의 조 왕륜(趙王倫)과 관련된 고사이다.
구미속초구(狗尾續貂裘)
진(晋)나라 조왕(趙王) 윤(倫)이 잠깐 황제(皇帝)의 위(位)을 찬탈(簒奪)하였을 때에 조정에 벼슬을 함부로 많이 임명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미(貂尾)가 부족하여 개 꼬리로 잇는다.”라고 하였다. 초미는 대관(大官)의 모자(帽子)에 꽂는 것이다.
구미지호재청구(九尾之狐在靑丘)
청구(靑丘)는 우리 나라로,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청구의 산에는 짐승이 있으니 그 모양이 여우와 같은데 꼬리가 아홉 개이며, 어린아이가 우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낸다.”라고 하였다.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으로는 달콤한 소리를 하면서 마음속에 칼을 품는다는 데서, 외면(外面) 으로는 친절한 듯하나 내심(內心)으로는 해칠 생각을 품는 것을 말한다. 구유밀 복유검(口有密 腹有劍)의 준말이다. / 인용: 虎叱(박지원)
구반문촉(毆槃捫燭)
쟁반을 만지고 촛불을 문지르다. 어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하다.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 가지고 태양에 대해 말한다는 뜻으로, 남의 말만 듣고 지레짐작으로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 말라는 말이다. 태어나면서 장님인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어떤 사람에게 물으니, 구리 쟁반처럼 생겼다고 대답하였다. 소경은 집으로 돌아와 쟁반을 두드려 보고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 다른 날 길을 가다가 종소리를 듣고는 쟁반을 두드릴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자, 종을 태양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가 다시 태양은 촛불처럼 빛을 낸다고 하자, 손으로 초를 어루만져 보고는 그 생김새를 기억해 두었다. 뒷날 우연히 피리를 만져보고는 초와 생김새가 비슷했으므로 이번에는 피리를 태양이라고 하였다 한다. 소식(蘇軾)의 「일유(日喩)」
구방견(九方甄)
예전에 말(馬)을 잘 알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구방고(九方皐)
춘추시대(春秋時代) 진(秦) 나라 사람으로 말상을 잘 보았다. 일찍이 백락(伯樂)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진 목공(秦穆公)의 명을 받고 말을 구하러 나갔다가 석달 만에 돌아와서 아뢰기를 “말을 구해 놓았는데 지금 사구(沙邱)에 있습니다.”라 하므로 목공이 “무슨 말인가?”고 묻자 대답하기를 “누른 암말입니다.”라 하여 목공이 사람을 시켜 가 보게 하니, 검은 숫말이었다. 그래서 목공은 화가 나서 백락을 불러 말하기를 “실패하였다. 그대가 추천한 사람은 말의 빛깔과 암컷인지 수컷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말을 잘 안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자, 백락이 말하기를 “구방고가 보는 관점은 천지조화의 심오한 비밀이기에, 정(精)한 것만 취하고 추(麤)한 것을 잊었으며 내실만을 취하고 외모를 잊었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는데, 말이 왔기에 보니 과연 천하의 양마(良馬)였다고 한다. 『열자(列子)』 「설부(說符)」
구방인(九方歅)
춘추시대(春秋時代) 진 목공(秦穆公) 때의 말의 상(馬相)을 신통하게 보았다는 사람이다. 『열자(列子)』 「설부(說符)」 / 유의어: 구방고(九方皐)
구백공(具伯鞏)
백공은 구인기(具仁基)의 자(字)이다.
구백광음(九百光陰)
당시 지방 수령의 임기가 900일이었다.
구범(驅範)
정도(正道)로 살아가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에 “내가 달리고 모든 것을 법칙대로 하니, 날이 저물도록 한 마리 새도 잡지 못했다[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라고 하였다.
구법(九法)
불전어를 일으키는 아홉 가지 기뇌(己惱)·현치(現輜)·(嘗惱)·과거(過去)·현재(現在)·미래증(未來憎) 과거·현재(現在)·미래원(未來爰). 「수호국계주다라니경(守護國界主陀羅尼經)」
구법(九法)
「홍범(洪範)」의 구주(九疇)를 가리킨다.
구변(九邊)
명 나라 때 9개처의 변경(邊境), 곧 요동(遼東)·계주(薊州)·선부(宣府)·대동(大同)·산서(山西)·연유(延綏)·영하(寧夏)·고원(固原)·감숙(甘肅)을 말한다.
「구변(九辯)」
『초사(楚辭)』 편명이다. 굴원(屈原)의 제자인 송옥(宋玉)이 쓴 것으로, 충직(忠直)한 자기 스승이 방축(放逐) 당한 것을 애석하게 여긴 내용이다. 『초사(楚辭)』 「구변(九辯)」
구변구가(九辯九歌)
「구변(九辯)」와 「구가(九歌)」는 모두 우임금의 음악 이름이다. 전설에는 천제(天帝)의 악곡(樂曲)인데 계(啓)가 하늘에 올라가 거기서 훔쳐왔다 한다.
구보거행(句步倨行)
구는 직선이고 거는 곡선인데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보인다. 한 발자국 한 걸음이 법에 맞게 행동함을 뜻하기도 한다.
구복원수(口腹寃讐)
목구멍이 포도청. 살아가기 위해서 아니꼽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를 이르는 말이다.
구복지루(口腹之累)
먹고 사는 데 대한 걱정, 근심.
구빈지례(九賓之禮)
천자가 외국이나 제후의 나라에서 보내온 사자를 맞이할 때 구빈에 해당하는 모든 관원들이 참석하여 행하는 가장 성대한 의례식. 구빈(九賓)이란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부용(附庸), 고(孤), 대부(大夫), 사(士)를 말한다. 구헌례(九獻禮)라고도 하며 고대에 있어서 국가간의 외교상 가장 성대한 의식이다. 9명의 영접관이 구주의 이름 순서에 의해 도열했다가 호명하면 차례대로 나와 사자를 전당으로 인도했다.
구사(九思)
군자의 아홉 가지 생각으로서 즉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기색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얼굴은 공손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말은 충직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은 공경히 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난 것은 물을 것을 생각하고, 분이 나면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계씨(季氏)」
구사일생(九死一生)
여러 차례 죽을 고비에서 헤매다가 겨우 살아남. 꼭 죽을 고비에서 살아남을 이른다.
구산(舊酸)
구일(舊日)의 유산(儒酸)을 이른다. 유산은 빈한한 선비를 지칭한다. 소식(蘇軾)의 시에 “豪氣一洗儒生酸”이라 하였다.
구산(龜山)
① 송(宋) 나라 양시(楊時)인데 사후에 그의 제자였던 육당(陸棠)이 스승을 배반하였다.
②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에 있는데 구령(緱嶺) 또는 구씨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였던 왕자 진(晉)은 직간(直諫)하다가 폐하여 서인이 되었는데 피리 불기를 좋아하였다. 도사(道士) 부구생(浮丘生)이 진을 인도하여 숭고산(嵩高山)에 올라간 지 30여 년에 환량(桓良)을 보고 “7월 7일 나를 구씨산에서 기다리라고 우리집에 고하라.”고 하였다. 그날이 되자 과연 백학을 타고 산봉우리에 머물렀다 한다.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
구산(緱山)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인 왕자교(王子喬)가 피리를 좋아하여 봉황의 울음소리를 잘 냈는데, 그가 신선이 된 뒤 가족을 만나기 위해 잠깐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다시 헤어졌다는 산 이름이다. 『열선전(列仙傳)』 「왕자교(王子喬)」
구산롱(緱山弄)
구산(緱山)은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구지산(緱氏山)의 준말이다.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晉)이 도사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숭산(嵩山)에 올라가 30여년 동안 수도(修道)를 한 뒤, 환량(桓良)이란 사람을 만나 이르기를 “7월 7일에 구지산 꼭대기에서 나를 기다리라고 우리 집에 말해달라.”하고서 그때에 이르러 과연 그가 백학(白鶴)을 타고 산 꼭대기에 앉았었는데, 다른 사람은 바라만 볼 뿐 그곳을 갈 수 없었고, 그는 손을 들어 시인(時人)들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떠나버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열선전(列仙傳)』 上
구산편호학(緱山鞭皓鶴)
주영왕(周靈王)의 태자(太子) 진(晋)이 신선이 되어 후산(緱山)에서 흰 학(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구삼(九三)
『역경(易經)』 「건괘(乾卦)」 구삼의 효사(爻辭)를 말하는데 그 효사에 “군자(君子)가 종일토록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고 조심하면, 처지가 위험하더라도 허물이 없으리라.”라고 하였다.
구삼함(口三緘)
공자(孔子)가 주(周) 나라 태묘(太廟)에 갔을 적에 입을 세 겹으로 봉한(三緘其口) 금인(金人)을 보았는데, 그 등 뒤에 새긴 명문(銘文)을 보니 “옛날에 말조심을 하던 사람이다. 경계하여 많은 말을 하지 말지어다. 말이 많으면 실패가 또한 많나니[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多敗]”라고 써 있더라는 고사가 전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구상신보(扣相信步)
지팡이를 두드리며 익은 걸음으로 감을 이른다. 相은 지팡이.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언행(言行) 매우 유치(幼稚)함을 말한다.
구색(丘索)
삼황(三皇) 오제(五帝)의 책으로, 구색은 팔색 구구(八索九丘)의 약어인데 고서의 뜻으로 쓰인다.
구색전분(邱索典墳)
고대의 서적으로 팔색(八索)·구구(九邱)·삼분(三墳)·오전(五典)을 말한다.
구생(舅甥)
외삼촌(外三寸)과 생질(甥姪)의 사이를 말한다.
구생(緱笙)
봉황이 우는 것 같은 신선의 피리 소리를 말한다.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인 진(晉) 즉 왕자교(王子喬)가 피리 불기를 좋아하여 곧잘 봉황 울음소리를 내곤 하였는데(好吹笙 作鳳凰鳴), 선인(仙人)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선도(仙道)를 닦은 뒤, 30년이 지난 칠월 칠석(七夕)에 구씨산(緱氏山) 정상에 학을 타고 내려와 산 아래 가족들에게 손을 흔든 뒤 떠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열선전(列仙傳)』
구석(仇石)
구지(仇池)의 돌이다.
구석건진공(驅石建秦功)
진시황(秦始皇)이 해상(海上)에 석교(石橋)를 놓고서 거기에 올라 해돋이를 구경하려 하자, 신인(神人)이 그를 위해 수많은 돌을 몰아다가 석교를 놓아주었다 한다. 『술이기(述異記)』
구석유아(九錫幼兒)
구석(九錫)은 특히 공로가 큰 사람에게 천자(天子)가 내리는 아홉 가지 물품이다. 구석은 후한 말기에 황제로부터 구석을 하사받은 조조(曹操)를 가리키고, 유아(幼兒)는 후한 헌제를 가리키는데,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가 끝내 헌제로부터 제위(帝位)를 찬탈하고 헌제를 왕(王)으로 강등시켜 탁록성(濁鹿城)에 봉해 주어 그곳에서 죽게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선(癯仙)
산수간에 숨어 사는 현사(賢士)를 말한다.
구선(久僊)
‘오래도록 신선이 되다’라는 말이다.
구선(臞仙)
몸이 청수(淸瘦)하고 정신이 생동하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선개(九扇開)
한유(韓愈)의 시에 “천문 구선이 서로 맞 열렸네(天文九扇相當開)”라고 하였다.
구선무물아(癯禪無物我)
내 마음속에 너도 없고 나도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 겨우 가냘픈 선(禪)이라는 말이다.
구선와수귤피중(癯仙臥睡橘皮中)
구선(癯仙)은 산수(山水) 사이에 은거하는 선인(仙人)을 가리킨다. 옛날 파공(巴工) 사람이 자기 귤원(橘園)에 대단히 큰 귤이 있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겨 쪼개어 보니, 그 귤 속에 수미(鬚眉)가 하얀 두 노인(老人)이 서로 마주 앉아 바둑을 두면서 즐겁게 담소(談笑)를 나누고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구설수(口舌數)
남의 입에 오르내리며 시비에 휘말리는 일을 말한다. 이때 수(數)는 운수(運數)란 뜻이다.
구성(九城)
고려 때 윤관(尹瓘)이 별무반(別武班)이란 군대를 조직해서 여진족을 정벌하고 함경도 일대에 쌓은 아홉 개의 성을 말한다.
구성(駒城)
용인(龍仁)의 고호(古號)이다.
구성(九聖)
원래 아홉 사람의 성인인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요(堯)·순(舜)·우(禹)·문왕(文王)·주공(周公)·공자(孔子)를 말한다.
구성(鳩性)
자기가 직접 집을 짓지 못하고 까치의 집을 슬쩍 빌려서 사는 시구(鳲鳩), 즉 뻐꾸기의 습성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작소(鵲巢)」에 “까치가 둥지 틀자 뻐꾸기 들어와 살고 있네[維鵲有巢 維鳩居之].”라는 말이 있다.
구성(九成)
악(樂)의 구장(九章)을 다 마침. 음악 아홉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음악 한 곡이 끝나는 것을 일성(一成)이라고 하는데, 한 곡이 끝날 적마다 반드시 소리를 바꾸어서 연주하며, 구성이 되면 음악이 완전히 끝난다.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소소 9곡을 끝내니 봉황이 와서 춤춘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고 하였다.
구성궁(九成宮)
수(隋) 나라의 인수궁(仁壽宮)으로 피서궁(避暑宮)이었으며, 당태종(唐太宗)이 그 궁을 수리하여 피서할 때 이름을 고쳐 구성이라 하였다 한다.
구성운악(九成韻樂)
구성(九成)의 풍악은 아홉 번 연주하는 풍악으로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새도 날아와 춤을 추었다.”라고 하였다.
구소(歐蘇)
송(宋) 나라의 문장가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구소(九騷)
『초사(楚辭)』 중에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의 구장편(九章篇)을 가리키는데,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내침을 받은 후 나라와 임금을 생각하여 지은 것으로, 석송(惜誦)·섭강(涉江)·애영(哀郢)·추사(抽思)·회사(懷沙)·사미인(思美人)·석왕일(惜往日)·귤송(橘頌)·비회풍(悲回風) 등 9편으로 되어 있다.
구소가(九韶歌)
순임금의 음악이다.
구소년(歐蘇年)
구소(歐蘇)는 구양수(歐陽修)와 소동파(蘇東坡)로 모두 66세를 살았다.
구소문자(歐蘇文疵)
구수(鳩首)
머리를 서로 맞댐을 이른다.
구수(灸手)
세력이 있는 사람을 비유함이다. 『신당서(新唐書)』 「최현전(崔鉉傳)」에 “현(鉉)이 좋아하는 사람에 정노(鄭魯)·양소복(楊紹復)·단괴(段瓌)·설몽(薛蒙)이 있었는데 그들과 국사를 의논하므로,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벼슬을 얻으려면 정·양·단·설을 통해야 한다.’고 했다.”라 하였다.
구수회(窶藪詼)
한(漢) 나라 때 동방삭(東方朔)이 해학에 매우 뛰어났는데, 한번은 곽사인(郭舍人)이 그를 시험하기 위하여, 나무에 붙어 있는 기생(寄生)을 보이지 않게 가리고서 이를 동방삭에게 알아맞히라고 하자, 동방삭이 이를 ‘구수’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구수는 곧 동이를 머리에 받쳐 이는 또아리이므로, 곽사인이 그에게 알아맞히지 못했다고 말하자, 동방삭이 말하기를 “나무에 붙어 있으면 기생이지만, 동이 밑에 받치면 또아리가 된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기생이란 곧 나무에 붙어 있는 버섯으로, 그 모양이 또아리처럼 동그랗게 생겼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한서(漢書)』 卷六十五
구수회의(鳩首會議)
여럿이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구순망미(九旬忘味)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공자(孔子)가 제(齊) 나라에서 소소(蘇韶)를 들어 보고는 대단히 도취되어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子在齊聞韶, 三月不知肉味].”고 하였고,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소소를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새가 날아들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다는 말은 곧 음악 연주를 마치는 것을 말한다.
구시(歐詩)
구양수(歐陽修)의 시를 이른다.
구시심비(口是心非)
말로 옳다 하면서 속으로는 비난한다. 겉과 속마음이 다르다.
구신삼함(口愼三緘)
말을 신중하게 한다는 것. 『설원(說苑)』 「경신(敬愼)」에 “공자(孔子)가 주(周)나라에 가서 태묘(太廟)를 보니 오른쪽 계단 곁에 금인(金人)이 있는데 그 입을 세 번 봉하였고 그 등에는 ‘옛날에 말을 삼간 사람이다[古之愼言人也].’라고 새겨 있었다.”고 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주(觀周)」
구실(衢室)
옛날 요(堯) 임금이 백성들의 의사를 물었던 곳이라 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문제기(文帝紀)」
구십춘(九十春)
구십춘광(九十春光)의 준말로 봄의 석 달 구십 일 동안을 말한다.
구십춘광(九十春光)
노인의 마음이 청년같이 젊음을 이른다. 늙어서 마음이 젊은 것, 봄의 석 달 구십 일간.
구안연(鸜眼硯)
구욕안(鸜鵒眼)으로 벼루의 이름인데, 단계석(端溪石)에 백(白)·적(赤)·황(黃)의 점이 구욕새의 눈같이 되었으므로 붙인 이름이다.
구안투생(苟安偸生)
한때의 편안을 꾀하여 헛되이 살아감을 이른다.
구애(九閡)
구천(九天)의 위, 즉 하늘의 밖을 말한다.
구야자(歐冶子)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유명한 검 제작자의 이름이다. 월왕(越王)을 위해 거궐(巨闕)·담로(湛盧)·승사(勝邪)·어장(魚腸)·순구(純鉤)의 5검을 만들고, 초왕(楚王)을 위해 용연(龍淵)·태아(泰阿)·공포(工布)의 3검을 만들었다 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鍊金歐冶子”라는 것이 보인다.
구약방(九籥方)
구약(九籥)에 들어 있는 단약방문(丹藥方文)을 말한다. 구약은 아홉 개의 대롱인데, 이 대롱에는 단약방문이 들어 있는 책들을 갈무리하였다 한다.
구약현하(口若懸河)
입에서 나오는 말이 경사가 급하여 쏜살같이 흐르는 강과 같다는 말로, 말을 끊지 않고 청산유수 같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중국 서진(西晉) 말의 학자인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깊은 사색을 즐겼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는 노장의 학설에 심취하여 집필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가 지은 『장자(莊子)』 주(註)는 현존하는 『장자(莊子)』의 주석서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며 그 이외에도 『논어(論語)』나 『장자(莊子)』에 관한 저서가 있었다. 당시 그에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특히 남들과 청담을 즐기기를 좋아했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왕연(王衍) 역시 노장철학에 심취해서 세속적인 잡사를 비루하게 여기고 초연하게 살며 청담이나 즐기던 진나라의 귀족 명사였는데 그는 곽상을 칭찬하여 “곽상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마치 산 위에서 곧장 떨어지는 물줄기와 같이 거침이 없어 막히는 법이 없다[口若懸河].”고 하였다. 이때부터 구약현하(口若懸河)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 한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구양(求羊)
구중(求仲)·양중(羊仲). 한(漢) 나라 때 고사(高士). 장허(蔣詡)란 사람이 두릉(杜陵)에 은거해 살면서 이 두 사람과 친하게 지냈다 한다. 『몽구(蒙求)』 「장허삼경(蔣詡三經)」
구양(九陽)
① 하늘과 땅의 맨 끝.
② 해를 말한다.
구양(裘羊)
한(漢) 나라의 은사(隱士) 장후(蔣詡)와 유독 친하게 지냈던 구중(求仲)과 양중(羊仲)을 말한다. 구(求)는 구(裘)의 고자(古字)이다.
구양공(歐陽公)
송(宋) 나라의 학자 구양수(歐陽脩)를 이른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저서에는 『신당서(新唐書)』·신오대사(新五代史)·육일시화(六一詩話) 등이 있다. 일찍이 「창승부(蒼蠅賦)」를 지어 파리를 미워하기도 하였다.
구양애소(歐陽愛蘇)
구양수(歐陽修)가 소식(蘇軾)의 재능을 인정한 것이다. 소식이 재주와 학식을 겸비했다 하여 구양수가 그를 비각(祕閣)에 추천하였다. 『송사(宋史)』 卷三百十九
구양영숙(歐陽永叔)
영숙(永叔)은 송(宋)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의 자(字)이다. 그는 일찍이 『신당서(新唐書)』를 찬했는데, 여기에 측천무후를 당기(唐紀)에 그대로 넣었다. 이는 한 혜제(漢惠帝)가 죽은 다음, 여후(呂后)가 직접 정치를 했는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 여후기(呂后紀)가 있는 것을 따른 것이다.
구양이십구(歐陽二十九)
대가족주의인 중국의 옛 풍습으로 한 집안 여러 종형제(從兄弟)를 통틀어서 번호로 부르는 호칭이다.
구양현(歐陽玄)
원(元) 나라 용생(龍生)의 아들로서 문장에 능했으며, 벼슬은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호는 규재(圭齋)이며 문집(文集)이 전해진다.
구어사전(求魚舍筌)
도구가 있어야만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통발이란 것은 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게 된다[荃者所以在魚, 得魚而忘荃].”라 하였다.
구어상이현(求魚賞餌懸)
상을 내걸고 군사를 모집한다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경순전(耿純傳)에 “달콤한 미끼로 중한 상을 내걸어야 사람을 모을 수 있다.”라 하였다.
구억산(九嶷山)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순임금이 순수를 나왔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영원현은 광동성과 인접해 있는 호남성 남쪽에 있는 산으로 상수(湘水)의 발원지이다.
구언교서(求言敎書)
임금이 신하의 직언(直言)을 구하는 교서를 이른다.
구업(口業)
불가(佛家)의 용어로, 입으로 짓는 죄업(罪業)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 가운데 하나로 망어(妄語)·기어(綺語)·악구(惡口)·양설(兩舌)을 말한다.
구여장물취(姤女壯勿取)
『주역(周易)』 구괘(姤卦) 괘사(卦辭)에 “구는 여자가 다섯 남자를 상대할 정도로 기운이 센 괘다. 이런 여자는 아내로 맞아들이면 안 된다[姤 女壯 勿用取女].”라는 말이 나온다.
구여주송(九如周頌)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의 시에 ‘여(如)’ 자가 아홉 개가 들어 있다.
구여지축(九如之祝)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 “하늘이 그대를 보정하사, 성하지 않은 것이 없는지라, 산과 같고 언덕 같으며, 뫼와 같고 큰 언덕 같으며, 냇물이 한창 이르는 것과 같아서, 더하지 않은 것이 없도다. 달이 가득 찬 것 같고, 해가 돋은 것 같으며, 남산같이 장수하여 이지러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으며, 송백같이 무성하여 그대에게 모든 것이 길이 무성하리로다[天保定爾 以莫不興 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以莫不增 如月之恒 如日之升 如南山之壽 不騫不崩 如松柏之茂 無不爾或承].”라고 아홉 가지의 예를 들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이른바 ‘구여지축(九如之祝)’이 나온다.
구여현인처즉무과(久與賢人處則無過)
오랫동안 현인과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짐. 오랫동안 현인과 함께 머물면 때를 씻어내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구역(九域)
구주(九州)와 같은 뜻으로 중국 전체를 가리킨다.
「구역(九罭)」
『시경(詩經)』 빈풍(豳風)의 편명으로 주공(周公)을 찬미한 시인데, 동방(東方) 사람들이 주공이 떠나지 말기를 바라는 뜻이다.
구역(丘役)
농지 1구(丘)에서 내는 군마(軍馬) 한 필과 소 세 마리를 이른다. 옛날 전쟁에 사용하는 병거(兵車)와 사냥에 사용하는 전거(田車)와 일반인이 승용하는 승거(乘車)는 모두 말이 끈 반면, 큰 짐수레는 소가 끌었다.
구역(驅役)
① 벼슬살이를 하며 분주히 살다. 부리다. 혹사시키다. 반악(潘岳)의 시 「재회현작(在懷縣作)」에 “벼슬살이 두 고을 다스렸으나, 백성 위한 선정 하나 베푼 것 없네[驅役宰兩邑, 政績竟無施].”라고 읊었다.
② 사람이나 가축을 함부로 몰아서 부림. 이희보의 「전옹가(田翁歌)」라는 시에서 “배 골았지만 부려먹기 더욱 바쁘게 하네[腹虛驅役愈忙忙].”라고 말했다.
구역(九譯)
여러 차례 통역을 거쳐야만 말이 통한다는 뜻으로, 매우 먼 변방의 이국(異國)을 말한다. 『사기(史記)』 卷123 「대원열전(大宛列傳)」 / 인용: 與人(박지원)
구역위령(九譯威靈)
아홉 차례나 통역을 해야 겨우 중국에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서역의 먼 나라들을 모두 정복했다는 말이다.
구연(九淵)
소호씨의 악가로서 그 뜻은 대체로 소호씨의 덕이 심원(深遠)함을 칭송한 것이다.
구연(狗緣)
진(晋) 나라 주건평(朱建平)이 상술(相術)에 능통한데 응거(應璩)를 보고 “자네가 63세에 액운(厄運)이 있을 터인데 그보다 일년 전에 자네 눈에 흰개(白狗) 한 마리가 보이고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응거(應璩)가 62세에 과연 문득 흰 개가 보이는데, 옆의 사람은 보지 못하였다. 응거는 놀고 즐기다가 일 년 뒤에 죽었다.
구연수(龜演數)
옛날 우(禹) 임금이 홍수(洪水)를 다스릴 적에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등에 글을 지고 나왔는데, 하나에서 아홉까지의 수(數)가 벌여 있으므로 우 임금은 이것을 보고서 부연(敷衍)하여 구주(九疇)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자가 주 무왕(周武王)에게 말한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라 한다. 『주례(周易)』 傳, 『서경(書經)』 「홍범서(洪範序)」
구열신유적(舊列薪猶積)
섶을 쌓는 데 있어 나중에 쌓는 것을 위에 올려놓듯이 나중에 벼슬한 자가 전임자보다 중용되고 전임자는 항상 미관말직에 있는 채 중용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에 “급암이 무제(武帝)에게 ‘폐하께서 군신(群臣)을 등용하는 것이 마치 섶을 쌓는 것과 같아, 나중의 것이 맨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陛下用群臣如積薪耳, 後來者居上].’라 했다.”고 하였다.
구염(瞿灩)
물결이 험난하여 배가 다닐 수 없는 곳을 이른다. 사천성(四川省)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협곡이름이다. 구당협(瞿唐峽)과 염예퇴(灩澦堆).
구염거사(臞𩑺居士)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별호이다.
구영(九嬰)
물과 불을 뿜어내는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다.
구영과이후진(苟盈科而後進)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뜻이다. “근원이 좋은 물은 밤낮을 끊임없이 흘러서 구덩이에 가득 찬 뒤 전진하여 사해(四海)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離婁)」ㆍ「진심(盡心)」 上
구영윤(舊令尹)
공명을 탐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초(楚)의 영윤(令尹)인 자문(子文)이 영윤의 직을 세 번씩이나 맡았다 그만두었다 했는데, 그는 그때마다 기뻐하는 빛도, 불평해하는 빛도 보이지 않고 구임 영윤으로서 신임 영윤에게 영윤이 하는 직사(職事)를 상세히 일러주었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구오(句吳)
오(吳) 나라로 구(句)는 오 지방의 초발성(初發聲)이다. 태백(太伯)은 주 태왕(周太王)의 『장자(莊子)』로 아우인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인계하기 위하여 도망쳐 오(吳)에 거하였는데 뒤에 주 무왕(周武王)이 천하를 통일한 다음 그의 자손을 오 나라에 봉해 주었다.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구오(丘吾)
옛날 효자의 이름이다. 공자(孔子)가 제(齊) 나라에 가다가 도중에서 슬피 울고 있는 자를 발견하고 다가가서, 그대는 누구이며 우는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구오자(丘吾子)라는 사람인데, 내 일생에 세 가지 잘못이 있어 그를 슬퍼하는 것이다. 내가 소년 시절 학문을 좋아하여 천하를 주류하다가 뒤에 돌아오자 우리 어버이께서 돌아가셨는데 그것이 한 가지 잘못이었고, 성장한 후에 제(齊) 나라 임금을 섬겼었는데 임금이 교만하고 사치하도록 신하 노릇을 제대로 못했으니 그것이 두 가지 잘못이었으며, 내가 일생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지금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으니 그것이 세 가지 잘못이었다.” 운운하고 드디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致思)」
구오(九五)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서 구오(九五)는 제왕을 상징한다.
구오복(九五福)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아홉 번째는 오복이니(九五福), 수(壽)와 부(富)와 강녕(康寧)과 유호덕(攸好德)과 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라 하였다.
구옥(鳩玉)
구옥장(鳩玉杖)의 준말로, 원래는 나라에서 80, 90세 된 노인에게 내리는, 머리에 비둘기를 새긴 젓가락을 말하는데, 머리에 비둘기를 새긴 노인의 지팡이 즉 구장(鳩杖)을 이르기도 한다.
구완(九畹)
「이소(離騷)」에 “난초를 자라게 하는 구완(九畹)이다.”라 하였는데, 이것은 난초 심은 동산을 말한 것이다.
구왕(九王)
청나라 태조(太祖)의 열넷째 아들 예충친왕(睿忠親王) 도르곤(多爾袞)의 별칭으로, 태종의 아홉째 동생이라는 뜻이다. 태종이 죽자 어린 세조(世祖)를 즉위시키고 섭정왕(攝政王)이 되었으므로 섭정친왕(攝政親王)이라고도 부른다. 『청사고(淸史稿)』 卷218 「제왕(諸王)」 4 / 인용: 女史行(이규상)
구욕(鸜鵒)
구멍 속에서 서식하는 새로 노(魯)에는 없는 조류였는데, 노 소공(魯昭公) 25년에 그 새가 노에 나타나 둥우리를 틀었으므로 그를 이상히 여겨 춘추(春秋)에 “구욕이 와서 둥우리를 틀었다[有鸜鵒來巢]”라고 기록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 昭公 二十五年
구욕안창(鸜鵒眼蒼)
구욕(鸜鵒)은 구욕새이고, 파란 눈은 연석(硯石) 위에 둥근 형체의 반점이 있는 것을 말한다. 당 나라 유공권(柳公權)이 벼루를 논하기를 “물 고이는 곳에 적·백·황색의 점이 있는 것을 구욕안(鸜鵒眼)이라 한다.”라 하였다.
구욕하소(鸜鵒何所)
노(魯) 나라 동요(童謠)에 “구욕새가 와서 둥우리를 틀고 살면, 공(公)이 건후(乾侯)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구욕새는 북방의 새로서 본디 굴을 파고 사는 새인데, 남쪽 노나라 지역으로 침입해 둥우리를 틀고 살면 이것이 군신(君臣) 간에 이변이 있을 전조(前兆)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좌전(左傳)』 昭公 二十五年
구용(苟容)
구차하게 영합하다.
구용(九容)
군자가 가져야 할 아홉 가지 태도. 발걸음은 무겁게, 손가짐은 공손히, 눈은 단정히, 입은 그친 듯이, 소리는 고요히, 머리는 곧게, 기상은 엄숙히, 서있을 때는 덕성스럽게, 얼굴빛은 장중하게 가지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옥조(玉藻)」
구우(舊雨)
’雨’는 ‘友’와 동음이므로 벗의 뜻으로 쓰인다. 두보(杜甫)의 「시소서(詩小序)」에 “늘 그러하듯 수레와 말 타고 오던 친구들 중 옛 친구들은 왔지만 지금의 벗들은 오지 않았네[尋常車馬之客, 舊友來, 今雨不來]”라고 하였다.
구우(歐虞)
당(唐) 나라 때의 서가(書家)인 구양순(歐陽詢)과 우세남(虞世南)을 가리킨다.
구우래금우(舊雨來今雨)
두보(杜甫)가 장안의 여관에서 병이 나서 “평소의 친구들이 전에는 비가 와도 찾아왔는데, 지금은 비가 오니 찾아오지 않는구나.”라고 한탄한 데서, 구우(舊雨)는 옛 친구를, 금우(今雨)는 새 친구를 말한다.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九) 마리 소(牛) 가운데 한 개의(一) 털(毛). 소 아홉 마리에서 털 하나가 빠진 정도라는 뜻으로,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것을 이른다. 사마천(司馬遷), 「보임안서(報任安書)」 / 유의어: 창해일속(滄海一粟)
구원(丘園)
황폐한 초야로서 은거하는 자가 머무는 곳을 말한다. 『역(易)』 분괘(賁卦)에 “구원을 꾸민다(賁于丘園)”라 하였는데, 순상(筍爽)의 주(註)에 “간(艮)은 산(山)이고 진(震)은 임(林)이다. 그 정위(正位)를 잃고 산림에 있으면서 언덕배기를 다듬어 채마밭을 만드니, 은사(隱士)의 상(象)이다.”라고 하였다.
구원(九原)
무덤을 말한다. 진(晉) 나라 경·대부(卿大夫)의 무덤이 모두 구원산(九原山)에 있었으므로 후세에 이를 인하여 무덤을 구원이라 칭한다. / 인용: 李忠武公龜船歌(황현)
구원가작(九原可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단궁(檀弓)」 下에 “조문자(趙文子)가 숙예(叔譽)와 함께 구원(九原)을 구경하는데 문자는 죽은 자가 만약 다시 살아난다면 나는 누구와 더불어 돌아갈꼬.”라고 하였다.
구원유란수(九畹幽蘭秀)
1원(畹)은 12묘(畝), 굴원(屈原)의 「이소경(離騷經)」에 “나는 이미 난초를 구원에 심었고 다시 혜초(蕙)를 백묘에 심었다(予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고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구원유향(九畹幽香)
굴원(屈原)이 “내 이미 구완에 난초를 심었고 또 백묘(百畝)에 혜초(蕙草)를 심었노라[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고 하였는데 후세에 이를 난초를 심는 고사로 삼았다. 『초사(楚辭)』 「이소(離騷)」
구원지자란(九畹之紫蘭)
『초사(楚辭)』에 구완(九畹)의 난초란 구절이 있다. 밭 30묘(畝)가 한 완(畹)이다. 후세의 문인(文人)들은 구완을 난초 심는 밭으로 쓴다.
구월(甌粤)
남쪽 월(越) 나라 지방의 부족 국가 이름이다.
구월(甌越)
지명으로, 지금의 광동성 지방이다.
구월산(九月山)
구월산에 환인(桓因), 환웅(桓雄), 환검(桓儉)을 모신 삼성사(三聖祠)가 있다.
구월수의(九月授衣)
『시경(詩經)』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칠월에 화성이 흐르는데 구월에 옷을 준다[七月流火 九月授衣].”라고 하였는데, 이는 더위가 가고 서리가 내려 추워지기 때문에 옷을 주어 겨울을 지내게 한 것이다.
구유(仇猶)
구유(仇由)로,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일대에 있었던 춘추시대(春秋時代) 때의 소국(小國)인데, 지백에 의해 멸망되었다. 『사기(史記)』 卷71 「저리자감무열전(樗里子甘茂列傳)」
구유(呴濡)
애처롭게 여겨 알뜰살뜰 보살펴 주는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물이 바짝 말라 물고기들이 땅바닥에 처하게 되면, 서로들 김을 내뿜어 축축하게 해 주고 서로들 거품으로 적셔 준다[相呴以濕 相濡以沫]”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구유(臞儒)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하는 청수(淸瘦)한 유자(儒子)를 말한다.
구유밀복유검(口有蜜腹有劒)
겉으로는 상냥한 체 남을 위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해칠 생각을 갖고 있다. 줄여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 한다. / 유의어: 소리장도(笑裏藏刀).
구유조(拘幽操)
금조(琴操) 이름으로, 원사(元詞)는 주 문왕(周文王)이 유리(羑里)에 갇혀 있으면서 지은 것이라 한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
구유철부(呴濡轍鮒)
『장자(莊子)』 「천운(天運)」에 “샘이 마르면 고기들이 서로 뭍에 있으면서 거품으로 서로 적시어 준다[泉涸, 魚相與處於陸, 相呴以濕].”고 한 데서 온 말로, 비가 오래 옴으로 인하여 길바닥에 여기저기 근원 없는 물들이 괴어 있음으로써 붕어가 거기서 임시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말한 것인데, 전하여 사람의 곤궁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구육일(歐六一)
구양수(歐陽脩)를 말한다. 육일(六一)은 구양수의 호이다.
구율(彀率)
율(率)은 율(律)과 같이 읽는데, 구율은 활을 당기는 도(道)를 이른다. 『맹자(孟子)』 「진심(盡心)」에 “활쏘기의 고수인 예는 실력 없는 사수를 위해 활 당기는 기준을 바꾸지 않는다[羿不爲拙射 變其彀率].”이라고 보인다.
구음(姤陰)
소인의 모함을 받아 해를 당했다는 말이다. 『역경(易經)』 천풍후괘(天風姤卦)에 “초육(初六)이 음인데 구이(九二)의 강한 양(陽)에 눌려 있으므로, 가만히 있으면 길하고 나아가면 흉하다. 소인이 군자를 해치지 않으면 길하지만 형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군자는 깊이 주의해야 한다.”라 하였다.
구의(九疑)
중국 호남(湖南)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산으로, 그 산의 아홉 골짜기의 생김새가 서로 비슷하여 보는 사람이 착각을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의(摳衣)
옷자락을 걷어든다는 것은 자기의 옷자락을 걷어들고 어른의 뒤를 따라간다는 뜻으로, ‘스승을 모신다’는 말로도 쓰이고, ‘공경’을 표시하는 말로도 쓰인다. / 인용: 觀魚臺小賦(이색)
구의경기탁(舊衣經幾濯)
임금은 옷을 새 것만 입고 다시 빨아 입지 않았는데, 검소한 임금은 헌 옷을 빨아 입은 이가 있었다.
구의봉(九疑峯)
중국 남방에 구의산(九疑山)이 있는데, 구봉(九峯)이 서로 비슷하여 분별할 수 없이 의심스러우므로 붙여졌다. 사람의 마음이 헤아리기 어려움을 구의산에 비한다.
구의산(九疑山)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주명(朱明)·석성(石城)·석루(石樓)·아황(娥皇)·순원(舜源)·여영(女英)·소소(蕭韶)·계림(桂林)·자림(梓林) 등 아홉 봉우리의 산으로 모두가 모양이 같이 생겨서 보는 사람이 누구나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을 내게 되므로 구의(九疑)라 이름하였다 한다. 일명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순(舜) 임금의 무덤이 있다 하며 옆에 소상강이 있다. 순 임금은 순행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죽었는데, 그의 이비(二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소상강을 건너지 못하여 남편의 시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슬피 울다가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한다.
구의함장(摳衣函丈)
구의(摳衣)는 옷을 걷어 예를 표하는 방법이고, 함장(函丈)은 스승의 자리와 자기 자리 사이에 한 길의 여지(餘地)를 둔다는 뜻이다. 모두 스승을 최대한 존경하는 방법들이다. / 인용: 上李學士書(임춘)
구이(九二)
『주역(周易)』의 「건괘(乾卦)」에서 구이(九二)는 제왕이 즉위하기 전을 상징한다.
구이(九夷)
동방(東方)의 오랑캐가 9종이 있다는 말로, 견이(畎夷)ㆍ어이(於夷)ㆍ방이(方夷)ㆍ황이(黃夷)ㆍ백이(白夷)ㆍ적이(赤夷)ㆍ현이(玄夷)ㆍ풍이(風夷)ㆍ양이(陽夷)라고도 하고, 현도(玄菟)ㆍ낙랑(樂浪)ㆍ고려(高麗)ㆍ만식(滿飾)ㆍ부유(鳧臾 부여(扶餘)임)ㆍ색가(索家)ㆍ동도(東屠)ㆍ왜인(倭人)ㆍ천비(天鄙)라고도 한다. / 인용: 五學論(정약용)
구이가거(九夷可居)
구이(九夷)는 동이(東夷)의 아홉 부족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일찍이 그곳이 군자가 살고 있기 때문에 가서 살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바가 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소인배의 학문을 말한다. 들은 풍월 격으로 아무런 연구성이 없는 천박한 학문, 들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금방 남에게 말하는 천박한 학문을 이른다[小人之學也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閒則四寸, 曷足以美七尺之軀哉!]. 『순자(荀子)』 「권학(勸學)」
구익부인(鉤弋夫人)
임금의 어머니를 가리킨다. 구익부인은 한 무제의 총비(寵妃)로 소제(昭帝)의 생모이다. 『사기(史記)』 「외척세가(外戚世家)」
구인(龜印)
금인구뉴(金印龜紐)로 곧 거북 무늬 끈이 달린 금 인장이다. 한(漢) 나라 때 승상(丞相)과 대장군(大將軍) 및 열후(列侯)와 황태자(皇太子)가 금인구뉴를 찼다. 『한구의(漢舊儀)』 補遺
구인공휴일궤(九仞功虧一簣)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될 곳에서, 손을 빼기 때문에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을 비유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구인기유종정리(救人豈有從井理)
공자(孔子)의 제자 재아(宰我)가 인(仁)을 하다가 피해를 당할까 염려하여 “인자(仁者)는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고 하면 따라 들어가겠습니까[井有人焉. 其從之也]?”라고 묻자, 공자는 대답하기를 “어찌 그렇겠는가. 군자는 가긴 하여도 함께 빠지지는 않는다[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구인득인(求仁得仁)
『논어(論語)』 「술이(述而)」 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구인득인 우하원호[求仁得仁, 又何怨乎]?’로 ‘그들이 어진 것을 구함으로 해서 어진 것을 얻었는데, 구태여 원망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의미이다.
구인득인(救仁得仁)
자신이 원하거나 갈망하던 것을 얻었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고죽군의 아들인 백이(伯夷)와 숙제 두 형제는 서로 왕위 계승을 사양했다. 어느 날 그들은 덕이 있다고 소문난 문왕(文王)을 섬기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문왕은 이미 죽고 아들 무왕(武王)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때 무왕은 선왕의 유언에 따라 상나라 주왕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이와 숙제는 토벌을 만류하며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무기를 들고 전쟁을 하는 것은 아들 된 자의 도리가 아닙니다[父死不葬, 爰及幹戈, 可謂孝乎?].”라고 말하였다. 무왕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전쟁에서 승리한 무왕은 만류하던 그들을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강태공(姜太公)이 나서 변호를 한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를 비판하며 수양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주나라 땅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고사리를 캐먹고 살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공자(孔子)는 이들의 행동을 두고 “백이와 숙제는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들이 인을 구하려고 한 끝에 인을 얻었으니 무슨 한이 있겠는가[伯夷ㆍ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求仁得仁, 又何怨乎?].”라고 평가를 하였다.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
구인만(九仞巒)
아홉 길은 아주 높은 것을 형용한 말로, 높은 산을 쌓음에 있어서는 흙 한 삼태기만 부족해도 공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이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구일육룡(驅日六龍)
여섯 필의 용.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육룡을 타고 하늘에 휘몰아 다닌다[時乘六龍以御天].”라고 한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다.
구자마모(九子魔母)
흉측하고 사나워 보기에 무서운 여자. 배담(裵談)이라는 사람이 불법을 독실이 믿었는데, 자기 아내가 어찌나 사납고 질투가 심한지 자기 아버지보다 더 무서워하였다. 그가 자기 아내를 두고 남에게 말하기를 “나는 우리 아내가 세 번 무섭게 보였는데, 젊었을 적에 생보살(生菩薩) 같아서 무서웠고, 아들 딸들이 앞에 가득했을 때는 구자마모(九子魔母) 같아서 무서웠고, 나이 50~60세가 되어 분단장이라도 살짝 할라치면 푸르뎅뎅 거무튀튀한 게 악독한 귀신(鳩槃茶) 같이 보여 무섭더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본사시(本事時)』 「조희(嘲戲)」
구자산(具茨山)
옛날 황제가 신인(神人) 대외(大隗)를 만나기 위해 구자산(具茨山)을 들어갔다는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구자평(九子萍)
마름의 일종이다. 월령통고(月令通考)에 “마름이 물에 떠 있으면서 하루 저녁에 아홉 자식을 낳으므로, 구자평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구장(廐將)
군마를 관장하는 직책이다.
구장(九章)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의 편 이름이다.
구장(鳩杖)
대신이 “나이 70이면 임금이 옥장(玉杖)을 하사하고, 80·90엔 한 자(尺) 길이의 옥장을 주되 끝에 비둘기를 새기니, 비둘기는 먹이 먹는데 체하지 않는 새인지라, ‘노인에게 음식 조심하라.’고 하는 뜻이다.
구장(龜腸)
마음이 세상과 잘 조화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詩)의 한 짝은 대(對)를 이루지만 한 구는 대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예로 육구몽(陸龜蒙)의 “격류와 침석만 말하였을 뿐[但說激流幷枕石] 선복과 구장은 말하지 않았네[不辭蟬腹與龜腸]”라는 시가 있다. 『서계총화(西溪叢話)』
구장(璆鏘)
옥의 소리, 쟁그렁하는 의성어이다.
구장(鳩杖)
원로대신(元老大臣)이 70이 되어도 조정에 있어야 할 때에 임금이 우대하여 궤(几; 기대는 안석)와 장(杖; 지팡이)을 내린다. 노인의 지팡이 머리에 비둘기(鳩)를 새기는 것은 풍속통(風俗通)에 “한고조(漢高祖)가 항우(項羽)에게 패하여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비둘기가 그 위에서 울고 있으니 추적하는 군사가 의심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가 임금이 된 뒤에는 비둘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지팡이에 비둘기를 새겨 노인들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구장(九章)
임금의 면복(冕服)에 놓는 아홉 가지의 수이다. 의(衣)에는 산·용·화(火)·화충(華蟲)·종이(宗彝)의 다섯 가지, 상(裳)에는 마름·분미(粉米)·보(黼)·불(黻) 등 네 가지를 수놓았다.
구저(韭葅)
부추로 담근 김치를 이른다.
구전(苟全)
구전성명(苟全性命)의 준말로, 그저 몸이나 보존한다는 뜻이다.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신(臣)은 본디 포의(布衣)로 남양(南陽)에서 몸소 밭 갈며, 난세에 몸이나 보존해 왔을 뿐, 제후(諸侯)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臣本布衣, 躬耕南陽, 苟全性命於亂世, 不求聞達於諸侯].”라고 하였다.
구전(口傳)
벼슬아치를 주의(注擬)할 때 승정원을 통하여 아뢰고서 낙점(落點)을 받는 일을 말한다. 원래 관원을 임명할 때는 으레 대궐에 나아가 주의를 하고자 낙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인데,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이런 격식을 생략하고 이조판서가 직접 승정원으로 하여금 아뢰게 하여 낙점을 받는 것을 이른다.
구전(九殿)
선조 때 일본에서 조선에 번갈아 사신을 보내오던 9명의 제후로서, 국왕전(國王殿)·전산전(畠山殿)·대내전(大內殿)·경극전(京極殿)·세천전(細川殿)·좌무위전(左武衛殿)·우무위전(右武衛殿)·갑비전(甲斐殿)·소이전(小二殿) 등이다.
구전(區田)
적의한 지역을 가려 전(田)을 만들어 종곡(種穀)함을 이른다.
구전금단(九轉金丹)
아홉 차례나 제련해서 만든 도가(道家)의 선단(仙丹). 진(晉)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 금단(金丹)에 의하면 “먹으면 신선(神仙)이 되는 금단에는 삼년 먹으면 신선이 되는 일전지단(一轉之丹)에서부터 사흘만 먹으면 곧 신선이 되는 구전지단(九轉之丹)에 이르는 아홉 종류의 금단이 있다.”라 하였다. 이를 구전환(九轉丸) 또는 태청신단(太淸神丹)이라고도 한다.
구전단(九轉丹)
아홉 번 제련한 단약(丹藥)이라는 뜻으로, 이를 복용하면 3일 만에 신선이 된다고 한다. 『포박자(抱朴子)』 金丹 「구전단(九煎丹)」
구전문사(求田問舍)
부칠 논밭을 구하고 살 집을 물음. 곧, 국가 대사에는 뜻이 없고 일신상 이익에만 마음을 씀을 이르는 말이다.
구전문사(求田問舍)
원대한 뜻을 버리고 집안일만 경영하는 사람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유비(劉備)가 허사(許氾)에 대해서 “그대는 국사의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서 …… 오직 전답과 가옥에 대한 일만 구하고 있다[君有國士之名 …… 而求田問舍].”고 비판한 고사가 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진등전(陳登傳)」
구전지훼(求全之毁)
몸을 닦고 행실을 온전히 하다가 오히려 남에게서 듣는 비방을 이른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구전진금단(九轉眞金丹)
‘신선이 되는 약’을 말한다.
구절(九節)
구절포(九節蒲)의 준말로, 창포(菖蒲)의 별칭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
아홉 번 꺾이는 양의 창자처럼 험하고 꼬불꼬불한 산길. 길이 매우 험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구절장(九節杖)
마디가 아홉인 지팡이. 신선이 짚는 지팡이. 「신선전(神仙傳)」
구절판(九折坂)
중국 공래산(邛郲山)에 있는 험한 고개 이름이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영경현(榮經縣) 서쪽에 있는데 산길이 아주 험하여 오르는 자는 회곡(廻曲)하여 아홉 번 접어들어야 마침내 오르게 된다고 한다. 한(漢) 나라 사람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어 이곳을 지나다가 길이 하도 험하여 탄식하면서 수레를 돌려 되돌아갔다고 한다.
구절포(九節蒲)
창포의 일종으로, 마디가 조밀하므로 이렇게 이른다.
구점(口占)
시(詩)를 초(草)하지 않고 즉석에서 입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
구점제주(九點齊州)
중국의 구주(九州)를 말한다. 제주(齊州)는 중국, 아홉 점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구주가 아홉 점의 연기처럼 작게 보인다는 뜻이다. 이하(李賀)의 몽천(夢天) 시에 “멀리 제주를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인 듯 큰 바다가 한 잔 물 쏟아놓은 것처럼 작게 보이네.”라고 하였다.
구정(毬庭)
격구(擊毬)를 하는 크고 넓은 마당을 말한다. 격구는 장(杖)으로 공을 쳐서 우열을 겨루는 무술 또는 유희로서, 고려 시대 때부터 있었다.
구정(九鼎)
하(夏) 나라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에서 쇠를 거두어들여 주조한 솥이다. 하(夏)‧은(殷) 나라 이후로 천자의 보물로서 보전되었으며, 두 개의 손잡이와 세 개의 발이 달렸다고 한다. 주왕조(周王朝) 때에 없어졌다고 한다. / 인용: 與人(박지원), 檄黃巢書(최치원), 後石鼓歌(소식),
구정륜몰(九鼎淪沒)
구정(九鼎)은 삼대(三代) 때 전국(傳國)의 보배를 지칭하는 말인데, 즉 나라가 매우 위태로움을 비유한 말이다.
구제(構第)
두 글자 모두 사람이 살아가는 집을 뜻하는 글자이다.
구제궁(九梯宮)
『신증동국여지승람』 권51 평안도(平安道) 「평양부(平壤府)」에 “동명왕(東明王)의 궁으로 예전에 영명사(永明寺) 안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권29 「궁실지(宮室志)」 성궐(城闕) 등 다수의 문헌에 관련 사실이 보인다. / 인용: 浮碧樓記(성현)
구조(九條)
중이 입는 가사(袈裟)에 7조(條)니 9조니 하는 구별이 있는데, 9조가 제일 높은 것이다. 가사는 수전(水田)처럼 된 무늬로 만들었으므로 수전의(水田衣)라 한다.
구졸(鳩拙)
비둘기의 무능함을 말하는데, 비둘기는 집을 짓는 재주가 없어 까치가 지어놓은 집에서 산다고 한다. 『시경(詩經)』 소남(召南) 「작소(鵲巢)」에 “까치가 지은 집에 비둘기 사는도다[維鵲有巢 維鳩居之]”라고 하였다.
구주(勾住)
구류(勾留)와 같은 말이다.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勾留醉客夜徘徊”라 하였다.
구주(瞿州)
서방의 땅이름이다.
구주(句注)
산서성 대현(代縣) 서북에 있는 산이름으로 지금의 안문산(雁門山)을 말한다.
구주(舊注)
주자(朱子) 이전에 있었던 주석. 즉 왕일(王逸)의 주를 말한다.
구주(九疇)
① 천제(天帝)가 우(禹) 임금에게 주어 천하를 다스리게 했다고 하는 아홉 가지의 대법(大法)으로, 바로 낙서(洛書)를 말한다.
②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대법(大法). 『서경(書經)』의 홍범구주(洪範九疇)로 기자(箕子)가 이를 주 무왕(周武王)에게 전해주었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구주(九州)
중국을 말한다. 옛날 중국 전역을 9주로 나눴던 데에서 나온 말이다. 그 구분은 기록된 책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다. 상서(尙書) 「우공(禹貢)」에서는 ‘아홉 주의 이름은 기(冀), 예(豫), 청(靑), 서(徐), 양(揚), 형(荊), 연(兗), 양(梁), 옹(雍)이다.’라고 했다.
구주부구주(九州復九州)
전국(戰國) 시대 추연(騶衍)의 학설(學說)에 “구주 밖에 또 구주가 있다.”라 하였다.
구주지학(九疇之學)
구주(九疇)의 학문은 『서경』에 전해 오는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의미한다. 홍범구주는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뒤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만든,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조항의 대법(大法)을 말한다. 은나라가 망하게 되자 기자가 이것을 주 무왕에게 전해 주었고, 기자는 또 조선에 봉해져서 교화를 널리 폈다고 한다. 그 아홉 조항은 오행(五行), 오사(五事), 팔정(八政), 오기(五紀), 황극(皇極), 삼덕(三德), 계의(稽疑), 서징(庶徵) 및 오복(五福)과 육극(六極)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 팔조(八條)의 교화는 기자가 지었다고 하는 고조선의 법률을 말하는 것으로, 팔조금법(八條禁法)이라고도 한다. 그 가운데 현재 전해지는 것은 사람을 죽인 자는 목숨으로 배상한다[相殺償以命],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 보상한다〔相傷以穀償〕,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는다[相盜者沒爲其家奴婢]는 3개 조항 등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卷127 刑考 「형제(刑制)」 팔조지교(八條之敎)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이설이 있다. / 인용: 浮碧樓記(성현)
구주출청락(龜疇出淸洛)
우(禹)가 치수할 때 낙수(洛水)에서 신기한 거북이 나왔는데, 그 거북의 등에 하나에서 아홉까지 문양이 상하 좌우로 나열해 있어 우가 그 문양을 본떠 차례대로 엮어서 구주(九疇)를 만들고 그를 일러 낙서(洛書)라고 하였다고 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구준(衢罇)
거리에 놓아둔 술통.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마시기에 편리하도록 항간(巷間)에 설치한 술통이란 뜻으로, 즉 인망(人望)을 얻는 데 비유한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요칭훈(繆稱訓)」에 “성인의 도는 마치 거리 가운데 놓아 둔 술통과 같아서 지나는 사람마다 자유로이 떠 마시는데, 많고 적은 것은 다르지만 각기 자기의 양에 알맞게 먹으니, 이러므로 한 사람을 얻는 것이 백 사람을 얻는 것이다[聖人之道 猶中衢而置尊邪 過者斟酌 多少不同 各得其所宜 是故得一人 所以得百人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준(丘濬)
명대(明代)의 문신이며 대학자. 자는 중심(仲深)이다. 『명사(明史)』 卷一百八十一
구준지응선매골(求駿祗應先買骨)
좋은 말을 사려면 죽은 말의 뼈라도 사야 한다는 것으로 간절히 현자(賢者)를 구하는데 쓰는 말이다. 옛날 연 소왕(燕昭王)은 제(齊)에게 패망한 뒤에 왕위에 올라 어진 사람을 구하여 제 나라에 보복하려 하였다. 이에 곽외(郭隗)에게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여 줄 것을 청하였더니 곽외는 “옛날 어떤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千里馬)를 사려고 하였으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연인(涓人; 환관)을 시켜 천리마를 구하긴 했으나 말은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연인은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五百金)을 주고 사왔더니 이 소문을 듣고 1년이 못되어 천리마가 3마리나 이르렀다 합니다. 만일 왕께서 진정 어진 사람을 구하신다면 저부터 먼저 쓰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곧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구중(彀中)
화살이 미치는 범위 이내라는 뜻으로, 전하여 사람을 농락하는 술중(術中)의 의미로 쓰인다. 장중과 같은 뜻이다.
구중(九重)
① 대궐을 가리킨다. 천자가 거처하는 곳은 도성의 문이 아홉 겹이므로 일컫는 말이다. 『초사(楚辭)』 「구변(九辯)」에 “어찌 임금을 사모하지 않으리오마는, 대궐문이 아홉 겹인 것을...”이라 하였다.
② 하늘. 구천. 예부터 하늘에는 구중이 있다고 하였다.
구중(求仲)
한 애제(漢哀帝)때 단정하고 청렴하기로 이름났던 사람이다. 당시 그의 벗 장후(蔣詡)가 왕망(王莽)이 섭정을 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외부와 통하는 길 세 가닥을 터놓고 하나는 자기가, 나머지는 그들이 각기 다니는 길로 삼아 서로 왕래하며 살았다 한다.
구중궁예적(彀中窮羿的)
유궁후 예(有窮后羿)는 하(夏) 나라 태강(太康) 시절 유궁(有窮) 땅의 임금으로 활을 잘 쏘았는데,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예(羿)의 사정거리 안에 노닐면서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자가 화살을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命)이라 할 수밖에 없다[游於羿之彀中. 中央者, 中地也 ; 然而不中者, 命也].”라고 하였다.
구중단(溝中斷)
제기(祭器)를 깎으면서 생긴 나무 부스러기가 도랑 속에 버려진다는 말로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나오는 비유이다.
구중맥(丘中麥)
『시경(詩經)』 왕풍(王風)에 「구중유마(丘中有麻)」라는 편이 있고 그 편내에 구중유맥(丘中有麥)이라는 구절도 있는데, 이 시는 주(周)의 장왕(莊王)이 현명하지 못하여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 현자들을 생각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구중심처(九重深處)
문이 겹겹이 달린 깊은 대궐. 임금이 사는 궁궐을 이르는 말이다. 깊숙한 곳. / 유의어: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중양중(求仲羊仲)
한(漢) 나라의 은사(隱士)들이다. 장후(蔣詡)가 두릉(杜陵)에 은거할 때 오직 구중·양중 두 사람과만 노닐었다고 한다. 『삼보결록(三輔決錄)』
구중자황(口中雌黃)
‘입안에 자황이 있다’라는 말로 실수한 말을 즉시 정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뜻이 바뀌어 근거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비평할 때 이 말이 쓰인다.
구지(仇池)
① 산 위에 못이 있다는 중국의 산 이름인데, 산속에 99천(泉)이 있는 등 도원경(桃源境)과 같다는 이야기가 소동파(蘇東坡)의 ‘화도화원(和桃花源)’이라는 시의 서문에 인용되어 나온다.
② 산의 이름이다. 중국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산으로 사방이 절벽인 그 정상에는 1백 경(頃)쯤 되는 못이 있는데, 거기를 오르려면 서른여섯 굽이의 반도(盤道)를 거쳐야 오른다고 한다. 『송서(宋書)』 「저호전(氐胡傳)」
구지(九地)
한쪽 구석에 치우쳐져 있는 땅으로, 변경을 말한다.
구지등(九枝燈)
아홉 가닥으로 갈라져 마치 시렁처럼 각각 얹혀 있는 촛대의 받침대를 구름 잎새가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구지부득(求之不得)
아무리 구하고자 해도 얻을 수가 없다.
구지욕지(鸜之鵒之)
노(魯) 나라 소공(召公) 때에 구지욕지(鸜之鵒之)라는 동요(童謠)가 있었는데, 구욕(鸜鵒 새 이름)을 말한 것이다.
구지즉재(求之則在)
소동파(蘇東坡)의 글에 “신령이 세상에 유통(流通)되는 것이 마치 물이 땅속에 있음과 같아서 어디에는 있고 어디에는 없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이라도 깊이 파면 다 통하여 나온다.”라고 하였다.
구지천금(購之千金)
천금의 현상금을 걸다.
구지혈(仇池穴)
① 산 이름인데, 산에 동서의 두 문이 있고, 산 위에 1백 경(頃) 가량의 못이 있어 이 이름이 생겼다. 두보(杜甫)의 시에 “영원한 구지혈이여, 안으로 소유천에 통했네.”라는 글이 있다.
② 산이나 언덕 등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연못의 물을 말한다. 중국 감숙성(甘肅省) 성현(成縣) 서쪽에 구지산(仇池山)이 있는데, 산 위에 수지(水池)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구진(鉤盡)
갈고리로 걸어 발을 걷다.
구진(鉤陳)
① 자미궁(紫微宮) 밖의 군대를 상징하는 별자리 이름으로, 대궐의 근위병(近衛兵)을 말한다.
② 자미원(紫微垣)에 있는 여섯 개의 별로 대제(大帝) 정비(正妃)와 천자의 육군(六軍) 장군을 상징한다.
③ 별(星) 이름인데, 장군(將軍)과 삼공(三公)을 맡은 별이다.
④ 제왕(帝王)의 후궁(後宮)의 별칭이다.
⑤ 중국 하남(河南)에 있는 구진루(鉤陳壘)로서, 옛날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할 때 8백 제후가 모였던 곳이라 한다. 「수경(水經)」 「하수(河水)」 注
구진(句陳)
성좌(星座)의 이름으로, 후궁(後宮)을 상징한다. / 유의어: 구진(勾陳)
구진(九鎭)
함경북도 국방의 요지에 두었는데 이후에 행정을 관할하는 고을이 되었다. 경성(鏡城)ㆍ길주(吉州)ㆍ명천(明川)ㆍ회령(會寧)ㆍ무산(茂山)ㆍ종성(鍾城)ㆍ온성(穩城)ㆍ경원(慶源)ㆍ경흥(慶興)의 아홉 고을을 말한다. / 인용: 臨溟大捷歌(홍양호)
구진(九眞)
한(漢) 나라가 지금의 안남(安南) 하내(河內) 이남과 순화(順化) 이북에 설치하였던 군명(郡名)이다.
구진린(九眞麟)
구진(九眞)은 나라 이름이다. 한(漢) 나라 선제(宣帝) 때 구진국(九眞國)에서 기린을 바쳤다. 『연감유함(淵鑑類函)』 卷四百二十九 獸部 麟
구진익위(鉤陳翊衛)
구진(鉤陳)은 자미원(紫微垣) 안에 위치하며 북극성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름이다.
구진현무(鉤陳玄武)
하늘의 자궁(紫宮)과 북궁(北宮)에 있는 별 이름으로, 제왕의 의장대(儀仗隊) 및 우림군(羽林軍)을 가리킨다.
구천(九泉)
구원(九原)과 같은 뜻으로 지하(地下)를 가리킨다.
구천(九遷)
하루에 아홉 번을 옮긴다는 뜻으로 매우 빠르게 승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漢) 나라 초공(焦贛)이 지은 역림(易林)에 “한(漢) 나라 차천추(車千秋)가 하루에 아홉 번이나 그 관직을 옮겼다.”라 하였다.
구천(九天)
① 깊고 먼 곳으로 황제의 궁궐에 비유한다.
② 『여람(呂覽)』 「유시(有始)」에 “하늘을 아홉 방위로 나누는데, 중앙을 균천(鈞天), 동방을 창천(蒼天), 서방을 호천(昊天), 남방을 염천(炎天), 북방을 현천(玄天), 동북방을 변천(變天), 서북방을 유천(幽天), 서남방을 주천(朱天), 동남방을 양천(陽天)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구천구지(九天九地)
‘하늘에서 땅까지의 사이’를 말한다.
구천세(九千歲)
구천 살에 이르도록 영화를 누리라는 뜻이다.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에게, 천자에게 쓰는 ‘만세’ 대신 ‘구천세’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다.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권신(權臣)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나 아부의 뜻이 강하다.
구첨(句尖)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구부러진 벌레가 다 나오고, 초목의 뾰족한 싹 다 터나온다[句者畢出 萌者盡達]”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한유(韓愈)의 고한시(苦寒詩)에는 “마침내 황천의 속에 숨은 맹아의 구첨까지 꺾으려 하네[遂令黃泉下 萌芽夭句尖]”라고 하였다. 『한창려집(韓昌黎集)』 卷四
구촉(龜燭)
거북과 촛불을 말한다. 거북점을 치고 어둔 곳에서의 촛불처럼 의심이 깨끗이 풀렸다는 말이다.
구추(九雛)
붕의 새끼가 아홉 마리라는 뜻이며, 붕은 하늘 높이 천 길을 난다 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구추(九推)
임금이 친히 쟁기를 수레에 싣고 나가서 적전을 갈 적에 임금은 쟁기를 잡고 세 번을 밀고, 삼공(三公)은 다섯 번을 밀며, 경(卿)과 제후(諸侯)는 아홉 번을 민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구출불구반(俱出不俱返)
초 소왕(楚昭王)이 오(吳) 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달아나다가 신 한 짝이 벗겨져서 잃어버렸는데, 소왕이 30보(步)쯤 가다가 되돌아가서 그 신을 찾아 신으므로, 좌우에서 묻기를 “어찌 신 한 짝을 그렇게 아끼십니까?”라 하니, 소왕이 이르기를 “초나라가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내가 어찌 신 한 짝을 아끼겠는가. 다만 함께 나갔다 함께 돌아오지 못함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구치(驅馳)
‘적을 무찌르기 위하여 말을 달리는 것’을 말한다.
구치제갈(驅馳諸葛)
구치(驅馳)는 남의 일로 분주히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이로부터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촉한을 위해 분주히 노력할 것을 승낙하였습니다[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라고 하였다.
구탈(甌脫)
흉노(匈奴)들의 말로, 한(漢) 나라 때 흉노족과 접경한 지역의 요새지에 세운 초소(哨所)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태수정(歐太守亭)
송 나라 구양수(歐陽修)가 저주(滁州)에 태수(太守)로 갔을 때 취옹정(醉翁亭)에 놀면서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지었다.
구태의연(舊態依然)
옛 모양 그대로이다. 새로운 것을 따라 가지 않고 옛날에 하던 방식이나 절차를 따라만 하는 사람이나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파(九派)
황하의 아홉 개의 지류(支流)를 말한다.
구평중(寇平仲)
평중은 송(宋) 나라 구준(寇準)의 자(字)이다.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졌으므로 구내공(寇萊公)이라고도 불려진다.
구폐(韝蔽)
팔을 걷어 올리고 앞치마를 걸친 모습으로 천한 자를 의미한다.
구폐려명(狗吠驢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의 비평’을 뜻하는 말이다.
구포(九苞)
봉황의 깃에 나타나는 아홉 종류의 빛을 이른다. 봉(鳳)은 구포(九苞)가 있는데, 포(苞)는 포함하였다는 뜻이다. 1은 입에는 명(命)을 포하였고, 2는 마음이 도(道)에 합하고, 5는 채색이 빛난다는 등의 아홉 가지가 있다 한다.
구포단혈봉(九苞丹穴鳳)
단혈에 사는 아홉 가지 색깔의 깃을 가진 봉황을 이른다.
구하(九河)
황하(黃河)의 맹진(孟津) 북쪽에 흘러들어오는 아홉 줄기의 강이다
구하결궤(九河決潰)
우(禹)가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에 결궤(決潰)된 아홉 하수를 치수(治水)하였다 한다.
구하상(九霞觴)
송 태종(宋太宗)이 만든 곡조의 이름이다. 『송사(宋史)』 「음악지(音樂志)」
구하착소(九河鑿疏)
우(禹) 임금은 9년 홍수(洪水)를 다스려 큰 공을 세웠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 “구하(九河)가 물길로 간다[九河旣道]”라고 하였는데, 구하는 9개의 하(河)를 말한다.
구학(丘壑)
일구일학(一丘一壑)의 준말로 은거지(隱居地)를 말한다. 『한서(漢書)』 「서전(敍傳)」 상(上)의 “한 골짜기에서 고기를 낚고 …… 한 언덕 위에서 소요를 한다[漁釣於一壑 …… 棲遲於一丘]”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학(溝壑)
①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가 구렁에 시체가 던져지더라도 한스럽게 여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下에 “지사는 구학의 뜻 잊지를 않고 용사는 언제나 목 떨어질 각오를 한다[志士不忘在溝壑 勇士不忘喪其元]”라고 하였다.
② 백성들이 기아(饑餓)에 시달려 죽은 후에 시체가 골짜기에 뒹군다는 말로, 민생고에 시달리다 죽은 백성의 시체가 놓이는 장소를 표현한 말이다.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下에 “흉년과 기근에 자네의 백성이 늙고 삐쩍 말라 시체가 구덩이와 골짜기에 뒹굴고, 장정은 흩어져 사방으로 떠난 자가 몇 천명이던가[凶年饑歲, 子之民, 老羸轉於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라는 말이 나오고, 송순(宋純)의 「전가원(田家怨)」에서는 “애달피 애통하더라도 구제 당하지 못해 골짜기엔 공연히 시체만 쌓여간다네[哀哀不見救 丘壑空積屍]”라는 말이 있다.
구학(緱鶴)
구씨산(緱氏山)의 학으로, 중국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남쪽에 있는 구씨산 꼭대기에서 주 영왕(周靈王)의 태자 왕자진(王子晉)이 7월 7일 흰 학을 타고 가족과 작별한 뒤 날아갔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열선전(列仙傳)』
구학장고황(丘壑藏膏肓)
당나라 처사 전암(田巖)이 산중에 숨어사는데 고종(高宗)이 찾아가서 “무슨 낙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신은 천석(泉石)의 고황(膏肓)입니다.”라 하였다 한다.
구한감우(久旱甘雨)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다가 내리는 단비’를 말한다.
구해(九垓)
원래 구천(九天) 또는 중국의 구주(九州)를 가리키는데, 「천지(天地)」의 사이를 말하기도 한다.
구향(舊鄕)
선인의 고장을 말한다.
구허(呴噓)
몸속의 공기를 내뿜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는 심호흡인데, 도가(道家)의 선술(仙術)의 일종이다.
구현금(九絃琴)
‘아홉 줄로 된 거문고’를 말한다.
구형국지화(救荊國之禍)
기원전 632년 당진(唐晉)과 초(楚) 사이에 벌어진 성복대전(城濮大戰)에서 당진국을 도와 초나라 세력의 북진을 저지한 것을 말한다. 기원전 633년 겨울 진(陳), 채(蔡), 정(鄭) 등의 위성국을 이끈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송나라의 위급함을 당진국에 알려 구원을 요청했다. 해가 바뀐 다음 해에 선진(先軫)의 계책을 채용한 당진국은 섬진(陝秦) 및 제(齊) 양국과 항초동맹을 체결했다. 진목공은 그의 아들 영(甯)에게 군사를 주어 참전하여 당진군을 구원하도록 했다. 그해 여름 당진, 송, 제, 섬진 등의 4국 연합국은 성복에서 초군과 회전한 결과 대승을 거두고 송나라를 구원하고 초나라의 북진을 저지시켰다. 구형국지화(救荊國之禍)란 형국(荊國), 즉 초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송나라를 구원했다는 뜻이다. 성복에서 초군을 대파한 것은 진나라 재상이었던 백리해(百里奚)와는 크게 관계가 없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당진국과 그 장수 선진의 활약으로 인한 것이다. 또한 당진국의 군주를 처음 세운 것은 진목공 9년 중에 있었던 일이고, 초나라의 군사를 물리치고 송나라를 구한 것은 진목공 28년에, 진나라 군사가 동쪽의 정나라를 공격했던 일은 진목공 33년의 일로써 모두 24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구호(九虎)
아홉 마리의 범으로 원호문(元好問)의 「기양시(岐陽詩)」에 “탐탐하는 구호 진 나라 관문을 호위하네[耽耽九虎護秦關]”라고 한 말이 있는데, 곧 황제의 궁궐이 깊고 호위가 삼엄함을 말한 것이다.
구호(口號)
시제(詩題)의 하나. 글자로 쓰지 않고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곧장 읊조린다는 뜻이다. 양 간문제(梁簡文帝)의 ‘앙화위위신유후순성구호(仰和衛尉新渝侯巡城口號)’에서 비롯되어, 당(唐)에 와서 성행하였다.
구화(九華)
호중구화석(壺中九華石)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호중구화시서(壺中九華詩序)에 “호구(湖口) 사람 이정신(李正臣)이 이석(異石)을 가졌는데 아홉 봉우리가 영롱 완전(宛轉)하여 창령(窓櫺)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1백 금(金)으로 그것을 사서 구지석(仇池石)과 짝을 지으려 했는데 남쪽으로 옮기게 되어 미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을 호중구화라 함과 동시에 시로써 기록한다.”라 하였다.
구화규(九花虯)
당 나라 때의 명마(名馬) 이름으로, 온몸에 구화의 무늬가 있으므로 이렇게 칭한다.
구화전(九華殿)
궁전 이름이다. 후조(後趙)의 석호(石虎)가 창건했는데, 하남성(河南省) 임장현(臨漳縣)의 서쪽에 있다.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라는 말이다.
구화투신(救火投薪)
불을 끈답시고 땔나무를 던진다. 폐해(弊害)를 없애려고 한 행위가 폐해를 조장하게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구환(九還)
신선되는 약에 소환단(小還丹)·대환단(大還丹)이 있는데, 대환단은 아홉 번 순환(循環)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 한다.
구환단(九還丹)
아홉 차례 달인 단약(丹藥)으로, 이를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구황곡(求凰曲)
사마상여(司馬相如)의 금가(琴歌)이다. 남자가 그의 배우자를 구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구후(嫗煦)
‘후후(嘔呴)’와 같은 말이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이들은 모두 자신을 수양해서 아랫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백성을 어루만졌다[是皆修其身, 以下傴拊人之民].”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석문(經典釋文)』에 ‘구부(傴拊)는 후후(嘔呴)와 같으니 기른다는 뜻이다.’라고 한 데 나오는 말이다. 이 말은 ‘후구(煦嫗)’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천지의 기가 교합하고 음양이 잘 조화되어 만물을 따뜻하게 감싸서 길러 준다. 그런 뒤에 초목이 무성해진다[天地訢合, 陰陽相得, 煦嫗覆育萬物, 然後艸木茂].”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구후(九侯)
주왕(紂王) 때 삼공의 한 사람으로 지금의 하북성 임장현(臨漳縣)에 봉해진 제후이다. 구후는 은(殷) 나라 주(紂) 때의 제후(諸侯)였는데, 주의 비행을 간하자, 주가 노하여 구후를 젓 담가 죽였다. 『사기(史記)』 「은본기(殷本紀)」
구흡서강수(口吸西江水)
『전등록(傳燈錄)』에 “양주(襄州) 방거사 온(龐居士蘊)이 마조(馬祖)에게 참알(參謁)하여 묻기를 ‘만법(萬法)과 더불어 짝을 하지 않으면 이 무슨 사람입니까?’라 하니, 마조가 답하기를 ‘네가 한 입으로 서강수(西江水)를 다 들이마시게 되면 너에게 일러주리라.’고 하자, 거사는 그 한 마디 말에 곧 깨달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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