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낙
낙가산(洛伽山)
남해(南海)의 보타 낙가산(普陀洛伽山)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머물고 있다 한다.
낙강(樂康)
‘편안하다’는 뜻이다.
낙건(洛建)
정자(程子)와 주자를 말한다. 정자는 낙양(洛陽)에서 살고 주자는 복건(福建)에서 살았으므로 한 말이다.
낙계기남(樂啓期男)
공자(孔子)가 태산(泰山)에서 영계기(榮啓期)가 녹구(鹿裘)를 입고 새끼 두르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무엇이 그리 즐거우냐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하늘이 만물을 내매 사람이 가장 귀한데 내가 사람이 되었으니 한 가지 낙이고,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데 내가 남자가 되었으니 두 가지 낙이고, 사람이 나서 일월을 보지 못하고 강보에서 죽는 자가 많은데 내 나이 90이니 이것이 세 가지 낙이다.”라고 하였다. 『열자(列子)』 「천서(天端)」
낙극생비(樂極生悲)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김을 말한다. 유사한 표현으로 興盡悲來(흥진비래)라는 말이 있고, 반대되는 표현으로는 否極泰來(비극태래; 답답함이 다하면 편안(便安)함이 옴) 苦盡甘來(고진감래; 고통(苦痛)이 지나가면 기쁨이 옴)라는 말이 있다.
낙극애생(樂極哀生)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
낙노(酪奴)
차[茶]의 별명이다.
낙노(駱盧)
왕발(王勃)·양형(楊炯)과 함께 시문(詩文)이 뛰어나 초당(初唐) 사걸(四傑)로 이름난 낙빈왕(駱賓王)과 노조린(盧照鄰)이다.
낙담상혼(落膽喪魂)
쓸개가 떨어지고 혼을 잃음. 몹시 놀라 정신이 없음을 말한다.
낙락(落落)
뜻이 커서 세상과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즉 정도를 걷는 것이 세상과 부합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낙락단여박(落落斷如剝)
박괘(剝卦)는 위 한 획만이 이어져 있고 아래 다섯 획은 모두 끊겨 있다. 이것은 산이 박괘처럼 위만 연하여져 있고 아래는 딱 끊긴 것을 말한 것이다[䷖].
낙락장송(落落長松)
가지가 축축 길게 늘어지고 키가 큰 소나무를 말한다.
낙락천성야향신(落落天星夜向晨)
벗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새벽하늘의 별에 비유한 것이다.
낙랑(樂浪)
경북 경주 지역 일대의 옛 지명으로 기원전 57년에 6촌(村)이 연합하여 고대국가를 형성하였다. 수도명과 국명을 금성이라 하였고 국호를 서라벌, 사로, 사라로 했다. / 인용: 祖江行(신유한)
낙랑우어(樂浪鰅漁)
우어[鰅]는 표피에 무늬가 있는 고기로 낙랑(樂浪)의 동이(東暆)에서 난다고 한다. 『설문(說文)』
낙말(洛襪)
낙신(洛神)의 버선. 낙신은 태고 시대 복희씨(伏羲氏)의 딸이 낙수(洛水)에 빠져서 신이 된 것을 말한다. 온정균(溫庭筠)의 「연화(蓮花)」에 “응당 낙신의 물결 위의 버선이라, 지금도 연꽃술에 향진이 풍기네.”라 하였다.
낙매(落梅)
적악곡(笛樂曲)의 이름이다. 즉 관산낙매곡(關山落梅曲)을 말한다.
낙매곡(落梅曲)
매화락(梅花落)으로, 옛날의 적곡(笛曲) 이름이다. 진(晉) 나라 환이(桓伊)가 젓대를 잘 불어 낙매화곡을 지었다 한다.
낙매조(落梅調)
악곡(樂曲)의 이름이다. 이백(李白)의 시에 “강성(江城) 오월에 매화(梅花)가 지네.”라 하였다.
낙매풍(落梅風)
5월에 불어오는 계절풍을 말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제97권에 “5월에는 낙매풍이 불어오는데, 강회(江淮) 지방에서는 신풍(信風)이라고 한다.”라 하였다.
낙매화(落梅花)
적곡(笛曲)의 이름이다. 진(晉) 나라 때 환이(桓伊)가 적(笛)에 뛰어나 낙매화곡을 지었다고 한다.
낙매화곡(落梅花曲)
진(晉) 나라 환이(桓伊)가 만든 적곡(笛曲)을 가리킨다.
낙모(落帽)
용산낙모(龍山落帽)의 준말이다. 진(晉) 나라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이 용산(龍山)에서 9월 9일에 막료 부하들을 전부 불러 잔치를 열어 즐길 때, 그의 참군(參軍) 맹가(孟嘉)의 모자가 바람에 불려 땅바닥에 떨어졌으나 맹가는 술에 취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환온은 손성(孫盛)에게 그것을 주제로 맹가를 조소하는 글을 짓게 하고 맹가는 또 즉석에서 그에 화답하였는데, 맹가의 문장이 너무도 아름다워 모든 사람이 감탄하였다. 『진서(晉書)』 卷九十八 「맹가전(孟嘉傳)」
낙모지신(落帽之辰)
진(晉) 나라 맹가(孟嘉)가 중구일(重九日)에 환온(桓溫)을 따라 용산(龍山)에 올라가서 술을 마시고 노닐 적에 바람이 불어 맹가의 갓이 땅에 떨어지자, 환온이 좌우 사람들에게 시켜 글을 지어 이를 조롱하게 하니, 맹가가 이때 대답으로 지은 글이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진서(晉書)』 卷九十八 「맹가전(孟嘉傳)」
낙모풍(落帽風)
문사(文士)의 풍모가 소탈하고 생각이 민첩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진(晉) 나라 때 환온(桓溫)이 중양절(重陽節)에 맹가(孟嘉)와 함께 용산(龍山)에서 술잔치를 벌였다. 이때 바람이 불어서 맹가의 모자가 떨어졌는데도 맹가는 모르고 있었다. 환온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도록 눈짓을 하였다. 잠시 뒤에 맹가가 변소에 가자 환온은 그 모자를 주워 맹가의 자리에 가져다 두고 손성(孫盛)에게 시를 지어서 조롱하게 하였다. 맹가가 돌아와서 그 시에 답하는 시를 지었는데, 시가 몹시 뛰어나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다 탄복하였다. 『진서(晉書)』 卷98 「맹가전(孟嘉傳)」
낙모풍류(落帽風流)
진(晉)의 환온(桓溫)이 중구일(重九日)에 여러 막료(幕僚)를 데리고 용산(龍山)에 올라 연회할 때 바람이 불어 맹가(孟嘉)의 모자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흥취가 도도해진 그는 전혀 알지 못한 채 여느 때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낙목한천(落木寒天)
낙엽진 나무와 차가운 하늘. 곧, 추운 겨울철을 이른다.
낙민(洛閩)
낙(洛)은 정이(程顥), 민(閩)은 주희(朱熹)를 말한다.
낙민루(樂民樓)
함흥부(咸興府) 성천강(城川江) 가에 있던 정자 이름이다.
낙반소(樂飯疏)
가난한 생활에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물밥 먹고 물 마시며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飯素食 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라 하였다.
낙백(落魄)
실의와 불행으로 곤궁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지행(志行)이 보잘것없는 것을 이른다. 『사기(史記)』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에 “家貧落魄(가빈낙백)”이란 것이 보인다.
낙봉(駱峯)
조선조 문신인 신광한(申光漢)의 호이다.
낙부(樂夫)
홍명원(洪命元)의 자(字)이다.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운 나머지 촉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반어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데, 타향을 떠도는 나그네가 산수 유람하면서 고향이나 집을 생각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낙빈(雒嬪)
낙수(洛水)의 여신, 하백의 아내이다. 수신으로 이름은 복비(宓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복희의 딸인데 낙수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어 낙수의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시인들은 그녀에게 최고의 찬사와 칭송의 글을 적었다.
낙사(洛社)
송(宋) 나라 구양수(歐陽修), 매요신(梅堯臣) 등이 낙양에서 조직한 시사(詩社), 혹은 문언박(文彦博),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이 조직한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낙사기영회(洛社耆英會)
송나라 때 문언박(文彦博), 부필(富弼), 사마광(司馬光) 등 낙양의 나이가 많은 자 13명이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서로 즐긴 낙양기영회(洛陽耆英會)를 가리킨다. 『송사(宋史)』 「문언박전(文彦博傳)」에 “문언박이 부필, 사마광 등 13인과 더불어서 백거이(白居易)의 구로회(九老會)고사(故事)를 따라 술을 마시면서 시를 읊으며 즐겼는데, 나이의 순서에 따라 자리를 정하고 관직의 높고 낮음은 따지지 않았다. 이를 낙양기영회라 하였는데, 호사자들이 모두들 부러워하였다.”라 하였다.
낙산(駱山)
서울 동대문과 동소문 사이에 있는 산 이름이다.
낙산사(洛山寺)
낙산(洛山)은 원래 범어(梵語)인 보타락가(補陀洛伽)의 준말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항상 머무르는 곳을 말한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1년(671)에 의상(義湘)이 당(唐) 나라에서 귀국한 뒤에, 관세음보살의 진신(眞身)이 낙산 동쪽 바닷가 굴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친견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이 절을 창건하였다 한다.
낙생(洛生)
영가(詠歌)의 일종으로 낙하 서생(洛下書生)이 읊던 성조(聲調)인데, 동진(東晉) 때의 명사(名士)들이 이 영가를 매우 좋아하였다.
낙생영(洛生詠)
진(晉) 나라 때의 낙하(洛下) 서생(書生)들의 읊조림을 이른다. 사안(謝安)은 본시 코가 맹맹하였는데, 코 메인 소리로 낙생영(洛生詠)을 읊조리자, 다른 사람들은 코를 가리고 그것을 모방하였다.
낙생음(洛生吟)
시문을 읊는 것을 말한다. 동진(東晉)의 낙양(洛陽) 서생들이 중탁(重濁)한 소리로 시문을 읊곤 하였는데, 사안(謝安)이 축농증을 앓아 그에 방불한 소리를 잘 내었으므로, 혹 그를 본뜨려고 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코를 막고 소리를 내었다는 ‘사안낙생영(謝安洛生詠)’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아량(雅量)」
낙서(駱西)
숙종 때의 화가 윤덕희(尹德熙)의 호이다. 자는 경백(敬伯), 본관은 해남(海南), 두서(斗緖)의 아들로 맹영광(孟永光)의 영향을 받아 말과 신선을 잘 그렸다.
낙서(洛西)
장만(張晩)의 호이다. 호고(好古)는 그의 자이다.
낙서(洛書)
하우씨(夏禹氏)가 치수(治水)할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있었다고 하는 글로서 『서경(書經)』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된 것이다.
낙서수(洛書數)
낙서(洛書)의 숫자는 45이다.
낙성(落星)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이 지은 누각이다. 지금의 강소성 남경(南京) 동북쪽 10리에 있다. 서기 232년에 계림원(桂林苑)에 3층의 누각을 지었다는 기록이 금릉지기(金陵地記)에 보이는데, 이것이 그 누각이다. 유성이 가까이 떨어질 만큼 높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낙송(駱宋)
당(唐) 나라 때의 시인(詩人) 낙빈왕(駱賓王)과 송지문(宋之問)을 아울러 일컬은 말이다.
낙수(洛水)
낙수의 신(神)을 말한다. 복희씨(伏羲氏)의 딸 복비(宓妃)가 낙수에 빠져 죽어 신이 되었다 한다. 『한서(漢書)』 「음의(音義)」
낙수본(落水本)
송 나라 조맹견(趙孟堅)의 난정낙수본을 말한다. 조맹견이 가지고 가던 도중 탔던 배가 뒤집혔는데 사공의 도움으로 간신히 구하였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수이재(落水彝齋)
조자고(趙子固)의 낙수난정본(落水蘭亭本)을 말한다.
낙신(洛神)
복비(宓妃)를 말한다. 복희씨(伏羲氏)의 딸로, 낙수(洛水)에 빠져 죽어 그곳의 귀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唐) 나라 온정균(溫庭筠)의 시 「연화(蓮花)」에 “분명코 물결 위에 낙신의 버선 자국, 지금껏 연꽃 잎새 버선 향기 묻어나네[應爲洛神波上襪 至今蓮蕊有香塵]”라는 구절이 있다.
낙신지비생별(樂新知悲生別)
고시(古詩)에 “즐거움은 새로 서로 아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고, 슬픔은 생이별보다 더 슬픔이 없다[樂莫樂於新相知 悲莫悲於生別離]”라 하였다.
낙안(落雁)
한(漢)나라 왕소군(王昭君)은 재주와 용모를 갖춘 미인이었다. 한나라 원제는 북쪽의 흉노과 화친을 위해 왕소군을 선발하여 선우와 결혼을 하게 하였다. 집을 떠나가는 도중 그녀는 멀리서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를 보고 고향생각이 나 금(琴)을 연주하자 한 무리의 기러기가 그 소리를 듣고 날개 움직이는 것을 잊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낙암(樂菴)
고봉이 44세 때인 1570년 2월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광주로 돌아와 고마산(顧馬山) 남쪽에 지은 서재의 이름이다. 퇴계 이황(李滉)이 고봉에게 보낸 서찰 가운데 “가난하면 더욱 도를 즐길 수 있다[貧當益可樂]”에서 취하였으며 퇴계가 그 기문(記文)을 짓고 현판을 썼다고 한다. 『고봉집(高峯集)』 「연보(年譜)」
낙양(雒陽)
원래는 ‘낙(洛)’이란 한자로 쓰지만 한(漢) 나라는 화덕(火德)으로 천하를 다스렸기 때문에, ‘낙(洛)’의 ‘수(氵)’를 꺼려 ‘낙(雒)’으로 썼던 것이다. / 인용: 회음후열전
낙양(洛陽)
일본의 산성주(山城州)를 가리킨다. 일본에는 세 개의 도읍이 있는데, 첫째가 산성주이고, 둘째가 대판(大阪)이고, 셋째가 강호(江戶)이다.
낙양성시(洛陽城市) 중국의 낙양과 장안(長安)은 오랫동안 수도(首都)가 되었으므로 이르는 말이다.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훌륭한 글을 다투어 베끼느라 종이의 수요가 늘어 값이 오르다.’라는 고사에서 유래, 문장이 훌륭함을 칭찬하는 말이다. 책의 평이 좋아 매우 잘 팔림을 이른다. 진(晋) 나라 좌사(左思)가 10년이나 걸려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洛陽)사람들이 다투어 그 글을 베꼈으므로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고사가 있다.
낙양지귀(洛陽紙貴)
서진(西晋)의 문학자 좌사(左思)가 「제도부(齊都賦)」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洛陽) 사람들이 너도나도 베꼈기 때문에 낙양의 종이가 모자라 비싸진 고사에서 유래 되었다. 저서가 많이 팔리는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낙엽귀근(落葉歸根)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어도 끝내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옛말에 “나무가 천 길 높이 자라지만, 잎새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간다.”라 하였다.
낙영(落英)
‘떨어지는 꽃’을 말한다. / 유의어: 낙화(落花), 낙홍(落紅).
낙예십순(洛汭十旬)
하(夏)의 임금 태강(太康)이 낙예(洛汭)에 놀러 가서 백일(百日)이나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한다.
낙월(駱越)
고대 만이족(蠻夷族)의 이름으로, 운남(雲南)과 귀주(貴州) 일대에 살았다. 옛날 백월(百越)의 하나로 지금의 전금계(滇黔桂) 등 여러 성(省) 사이에 있었다.
낙월공량구(落月空樑句)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인 「몽이백(夢李白)」에 “달빛이 들보에 가득하니 그대의 얼굴을 보는 듯[落月晩屋梁 猶疑見顔色]”이라 하였다.
낙월만옥량(落月滿屋樑)
두보(杜甫)가 친구 이백(李白)을 생각하는 시인 「몽이백(夢李白)」에 “떨어지는 달이 들보에 가득하니, 그대의 안색을 보는가 의심하네[落月滿屋樑猶疑見顔色]”라는 구절이 있다.
낙읍(洛邑)
상주(尙州)를 낙읍이라 하였는데, 낙동강(洛東江) 고을이란 말이다.
낙읍문원(洛邑問袁)
후한(後漢) 원안(袁安)의 고사이다. 마침 큰 눈이 내려 길(丈)이 넘게 쌓였는데, 낙양 영(洛陽令)이 순찰 차 나왔다가 그의 문 앞에 당도해 보니 드나든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었으리라 여기며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니, 그가 뻣뻣이 누워 있었다. “왜 나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큰 눈이 내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었으니 나 혼자만 남에게 도움을 구할 수 없다.”라고 대답하였다 한다.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말한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낙이사촉(樂而思蜀)
타향(他鄕)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눈앞의 즐거움에 겨워 근본을 잊게 될 때를 비유하기도 한다.
낙인(烙印)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낙일도제천(落日到諸天)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어 산 정상 능선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음을 말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諸天合在藤蘿外 昏黑應須到上頭”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12 涪城縣香積寺官閣
낙일욕몰현산서(落日欲沒峴山西)
이백(李白)의 「양양가(襄陽歌)」에 “석양빛이 현산 서쪽에 지려 한다[落日欲沒峴山西]”라 했고, 또 “진 나라 양공의 한 조각 빗돌거북 머리 이지러져 이끼가 끼었네[晉朝羊公一片石 龜頭剝落生莓苔]”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진 나라 양호(羊祜)가 남하(南夏)에 있을 때에 오(吳) 나라 사람들이 감히 그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었고, 죽은 후에 양양 사람들이 그를 위해 비를 세웠는데, 그 비를 보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므로, 두예(杜預)가 타루비(墮淚碑)라 이름지었다.”라 했고, 또 “한수(漢水)를 멀리 바라보니 오리 머리처럼 푸르러, 포도주가 막 괴는 빛 같구나[遙看漢水鴨頭綠 恰似葡萄初醱醅]”라고 한 글귀가 있다.
낙장(駱漿)
타락죽(駝駱粥)을 말하며, 소나 양의 젖에 쌀을 갈아 만든 무리를 넣고 끓인 죽을 말한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낙재(樂齋)
신익성(申翊聖)의 호이다.
낙전(樂全)
신익성(申翊聖)의 당호(堂號)이다.
낙전공(樂全公)
낙전(樂全)은 신흠(申欽)의 아들인 신익성으로, 선조(宣祖)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진 신익성(申翊聖)의 호이다.
낙전공자(樂全公子)
선조(宣祖)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한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을 말한다.
낙전도위(樂全都尉)
선조(宣祖)의 딸 정숙옹주(貞淑翁主)와 결혼해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진 신익성(申翊聖)을 가리킨다. 그의 호가 낙전당(樂全堂)이다.
낙점(落點)
조선시대에 관리를 임명하는 제도이다. 2품 이상의 대관(大官)을 선임할 때 후보자 세 사람을 적어 왕에게 추천하면, 왕이 그 중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 뽑는 일을 가리킨다. 경쟁 상대가 여럿 있는 중에 어떤 직책에 임명되거나 당선되는 일 등을 가리킨다.
낙정하석(落穽下石)
함정에 빠진 사람에게 다시 돌을 던진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구해 주기는커녕 도리어 더 심하게 괴롭힘, 남의 환란(患亂)에 다시 위해(危害)를 줌을 말한다.
낙제(絡蹄)
낙(絡)은 말의 가슴에 매는 줄을 말하고, 제(蹄)는 말의 발굽을 말한다.
낙조토홍(落照吐紅)저녁 햇빛이 붉은색을 토해 냄. 매우 붉은 석양(夕陽)을 나타낸다.
낙중(洛中)
낙양(洛陽)이다.
낙중삼하(洛中三夏)
‘장안의 세 명의 하(夏)’라는 뜻으로 숙종(肅宗) 때 사람들이 서로 우의가 도타운 이광하(李光夏)·권상하(權尙夏)·민진하(閔鎭夏) 세 사람을 가리켜 일컫던 말이다.
낙지론(樂志論)
후한(後漢)의 명사(名士) 중장통(仲長統)의 원림(園林)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심경을 읊은 짧은 글이다.
낙진계명(落盡階蓂)
월말(月末)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명아주는 전설 속에 나오는 일종의 상서로운 풀인 명협(蓂莢)으로, 이 풀은 매달 1일부터 15일까지는 잎이 하루에 하나씩 피고 15일 이후로는 매일 잎이 하나씩 지며, 작은 달에는 마지막 한 잎이 시들기만 하고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죽서기년(竹書紀年)』 卷上
낙천근(駱千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좌참장(左參將)의 직위로 조선에 원병나온 명장 낙상지(駱尙志)의 근력이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나 천근이나 되는 물건을 들어 올렸으므로 붙은 별명이다.
낙천신(洛川神)
낙수의 신은 복비(宓妃)인데, 위(魏) 나라 조조의 아들 조식이 낙수를 건너면서 미인 견씨(甄氏)를 사념(思念)하여 복비를 빗대어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다.
낙천안토(樂天安土)
『예기(禮記)』 「애공문(哀公問)」에 “안토(安土)하지 못하면 낙천(樂天)하지 못하고, 낙천하지 못하면 완전한 인격을 이룰 수가 없다.”라 하였는데, 명(明) 나라 왕정상(王廷相)은 신언(愼言) 작성편(作聖篇)에서 “어디에 있든 편안한 것을 안토라 하고, 어떤 일을 하든 편안한 것을 낙천이라 한다.”라 하였다.
낙천재목가삼년(樂天栽木可三年)
백낙천(白樂天)이 3년 임기의 충주 자사(忠州刺史)로 부임한 뒤에 “앞으로 충주에서 보내야 할 삼년 세월, 복숭아며 살구 심어 꽃이나 볼까 하오[忠州且作三年計 種杏栽桃擬待花]”라는 구절의 시를 지었다. 『백락천시집(白樂天詩集)』 卷18 「종도행(種桃杏)」
낙촉예(洛蜀裔)
정직한 학자들을 이른다. 송 철종(宋哲宗) 때 낙양(洛陽)의 정이(程顥)을 선두로 한 낙당(洛黨), 촉(蜀)의 소식(蘇軾)을 선두로 한 촉당(蜀黨)이 있었다. 거기에 삭방(朔方)의 유지(劉摯)를 선두로 한 삭당(朔黨)을 합쳐 원우삼당(元祐三黨)이라고 불렀다. 『소학감주(小學紺珠)』 「명신류(名臣類)」 下
낙타고좌(駱駝高坐)
양털에 융(絨)을 섞어서 낙타 모양으로 짠 양탄자이다.
낙포연교패(洛浦捐交佩)
『초사(楚辭)』 「구가(九歌)」에 “나의 결(玦)을 강중에 버리고, 나의 패옥을 예포에 버리리라[捐余玦兮江中 遺余佩兮醴浦]”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낙폭(落幅)
낙방(落榜)한 시권(試卷). / 유의어: 낙권(落卷).
낙폭전(樂幅錢)
과거의 시관(試官)이 합격자 발표 후, 묵권(墨卷)을 모아 팔아 얻는 돈을 말한다.
낙하(落霞)
당 나라 문인(文人) 왕발의 글에 “떨어지는 놀이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난다[落霞與孤鶩齊飛]”라는 이름난 구절이 있다.
낙하고목(落霞孤鶩)
낙하(落霞)는 지는 노을을 말하고 고목(孤鶩)은 외로운 따오기를 말한다. 당(唐) 나라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지는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나란히 날고 가을 강물은 긴 하늘과 함께 한빛일세[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 하였는데, 이 구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으로 오늘날까지 일컬어진다.
낙하구(落霞句)
글 가운데 아주 뛰어나게 잘된 경구(警句)를 지칭한 말이다. 당(唐) 나라 왕발(王勃)이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었는데, 그 중에서 “나직한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세[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 한 것이 가장 세인(世人)들에게 경구로 불려지기 때문이다.
낙하음(洛下吟)
영가(詠歌)의 일종으로 낙하서생영(洛下書生詠)의 약칭으로, 둔탁한 콧소리로 글을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낙하서생(洛下書生)이 음영(吟詠)하던 성조(聲調)인데, 특히 진(晉) 나라의 명사(名士)들이 이것을 즐겨 지었다고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아량(雅量)」
낙하지비(落霞之飛)
당(唐) 나라 문장가 왕발(王勃)의 고사이다. 함형(咸亨) 3년에 염 백서(閻伯嶼)가 홍주 목사(洪州牧使)가 되어 등왕각(滕王閣)에서 큰 잔치를 베푸는데, 미리 그 사위에게 글을 짓게 하여 자랑하려 하므로 아무도 글을 짓는 이가 없었다. 발이 마침 아버지의 임소(任所)에 가다가 풍랑을 만나 이곳에 정박하여 참석했는데 그가 가장 어린 소년으로서 서슴지 않고 글을 지으니 임공이 성내어 아전을 시켜 그 글을 엿보고 아뢰게 했는데, 아뢸 적마다 놀라워하였다. “떨어지는 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난다[落霞與孤鶩齊飛]”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염공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는 고사가 있다. 『고문진보(古文眞寶)』 「등왕각서(滕王閣序)」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가는 봄의 경치, 또는 쇠잔영락(衰殘零落)한 상황을 말한다. 이 말은 남녀 사이에 서로 그리는 정이 있다는 비유로도 쓰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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