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朱文公曰: “原名平, 與楚同姓. 仕於懷王, 爲三閭大夫, 上官大夫, 及靳尙, 妬毁之, 王疏原. 原被讒憂煩, 乃作「離騷」, 上述唐虞三后之制, 下序桀ㆍ紂ㆍ羿ㆍ澆之敗, 冀君覺悟, 反於正道而還己也. 時秦使張儀, 詐懷王, 誘與會武關, 原諫王勿行, 弗聽而往, 爲所脅歸, 卒以客死. 襄王立, 復用讒, 遷原江南, 原復作「九歌」ㆍ「天問」ㆍ「九章」ㆍ「遠游」ㆍ「卜居」ㆍ「漁父」等篇, 冀伸己志, 以悟君心. 終不見省, 不忍見宗國將亡, 遂自沈汨羅淵死.”
○ 淮南王安曰: “國風好色而不淫, 小雅怨誹而不亂, 若「離騷」者, 可謂兼之矣. 蟬蛻於濁穢之中, 以浮游塵埃之外, 推此志也, 雖與日月爭光, 可也.”
○ 宋景文公曰: “「離騷」爲詞賦之祖, 後人爲之, 如至方, 不能加矩, 至圓不能過規矣.”
해석
○ 朱文公曰: “原名平, 與楚同姓.
주문공이 말했다. “굴원은 이름이 평이니 초나라와 동성이었다.
仕於懷王, 爲三閭大夫,
회왕에게 벼슬하여 삼려대부(三閭大夫)가 되었는데
上官大夫, 及靳尙, 妬毁之, 王疏原.
상관대부와 근상(靳尙)이 질투하고 훼방하여 임금이 굴원을 멀리했다.
原被讒憂煩, 乃作「離騷」,
굴원은 참소를 당해 근심하고 번민하여 끝내 「이소」를 지어
上述唐虞三后之制,
위로는 요임금과 순임금과 세 임금(夏, 商, 周)의 제도를 서술했고,
아래로는 걸왕과 주왕과 예와 요의 실패를 서술하여
冀君覺悟, 反於正道而還己也.
임금이 깨달아 정도로 돌아와 자기에게 되돌려주길 바랐다.
時秦使張儀, 詐懷王, 誘與會武關,
이때 진나라는 장의를 시켜 회왕을 속여 무관에서 만나자 유인했고
原諫王勿行, 弗聽而往,
굴원이 임금에게 가지 말 것을 간했지만 듣지 않고 갔다가
爲所脅歸, 卒以客死.
위협에 잡힘 당해 끝내 객사했다.
襄王立, 復用讒, 遷原江南,
양왕이 즉위하여 다시 참소를 듣고 굴원을 강남으로 귀양 보내니,
原復作「九歌」ㆍ「天問」ㆍ「九章」ㆍ「遠游」ㆍ「卜居」ㆍ「漁父」等篇,
굴원은 「구가」ㆍ「천문」ㆍ「구장」ㆍ「원유」ㆍ「복거」ㆍ「어부」 등의 편을 지어
冀伸己志, 以悟君心. 終不見省,
자기의 뜻을 펼쳐 임금의 마음을 깨우치길 바랐지만 끝내 살펴주질 않아
不忍見宗國將亡, 遂自沈汨羅淵死.”
차마 나라가 장차 망하는 걸 볼 수 없다고 해서 마침내 스스로 멱라에 빠져 죽었다.”
○ 淮南王安曰: “國風好色而不淫,
회남왕 안이 말했다. “국풍(國風)은 여색을 좋아했지만 음란하진 않고
小雅怨誹而不亂,
소아(小雅)는 원망하고 비방했지만 어지럽히진 않은데
若「離騷」者, 可謂兼之矣.
「이소」와 같은 경우는 국풍과 소아를 겸했다고 할 만하다.
蟬蛻於濁穢之中, 以浮游塵埃之外,
혼탁하고 더러운 가운데에서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속세의 바깥을 부유했으니
推此志也, 雖與日月爭光, 可也.”
이 뜻을 확충하면 비록 해와 달과 빛을 다툰다고 해도 괜찮다.”
○ 宋景文公曰: “「離騷」爲詞賦之祖, 後人爲之,
송경문공이 말했다. “「이소」는 사부(詞賦)의 시조이니 후세 사람이 그것을 지음에
如至方, 不能加矩, 至圓不能過規矣.”
지극히 바르기에 직각자를 더할 것이 없고 지극히 원만하여 콤파스를 지나치지 않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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