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금ㆍ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낸 무관이 지은 시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하지만 또한 천승千乘 제후의 나라이고, 신라와 고려가 비록 보잘 것 없었지만 민간에는 아름다운 풍속이 많았다. 그럴진대 그 방언을 글로 적고 그 민요를 노래한다면 절로 문장을 이루어 참된 마음이 발현될 것이다. 남의 것을 그대로 답습함을 일삼지 않고 서로 빌려와 꾸지 않고, 지금 현재에 편안해 하며 삼라만상에 나아감은 오직 무관의 시가 그러함이 된다. 左海雖僻, 國亦千乘, 羅麗雖儉, 民多美俗, 則字其方言, 韻其民謠, 自然成章, 眞機發現. 不事沿襲, 無相假貸, 從容現在, 卽事森羅. 惟此詩爲然. |
이상 살펴본 연암의 이야기는 이렇다. 배울 것을 배워라. 옛 것이라고 무작정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절하지 않은 옛 것은 도리어 지금 것에 치명적인 해악이 될 뿐이다. 조선은 산천 풍기가 중국과 다르고, 말과 노래가 한나라나 당나라와는 같지가 않다. 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데도 무조건 중국의 법만 따르고 한나라 당나라의 체제만을 고집한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무관의 참 모습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것은 한 여름에 담비 갖옷을 입고 진땀을 흘리면서 그래도 멋있지 않느냐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후추를 통째로 삼키면서도 정작은 아무 맛도 모르는 꼴과 방불치 아니한가? 이는 마치 진흙 덩어리 앞에서 얼이 빠져 정신을 놓고 벌벌 떨고 있는 어른들의 우스꽝스런 꼴이 아닌가? 다르게는 진나라 땅에서 진나라 백성을 다스리려면 진나라의 법도대로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격이요, 제 아무리 초나라 습속이 귀신을 숭상한다 해도 군자는 그렇게 영합하는 법이 아니라고 나무라는 격이나 진배없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런 가락이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기眞機이다. 조선이 비록 궁벽한 땅이라고는 해도 천승千乘의 나라요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니, 그 말과 노래가 또한 볼만한 점이 없지 않다. 공연히 제 것도 아닌 중국 것에 정신을 팔고, 지금 것 아닌 옛날 것에 마음이 쏠려 자연스러움도 잃고, 진기眞機마저 잃고 만다면 그것은 앵무새의 흉내일 뿐 시라 할 수가 없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여 눈앞의 삼라만상을 보일 듯이 그려낸 무관의 시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참된 시가 아니겠는가?
▲ 전문
인용
2. 동심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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