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그때의 지금인 옛날 -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본문

책/한문(漢文)

그때의 지금인 옛날 -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0. 3. 31. 14:24
728x90
반응형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자패가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무관懋官의 시를 지음은. 옛 사람을 배웠다면서 그 비슷한 구석은 보이지를 않는구나. 터럭만큼도 비슷하지 않으니, 어찌 소리인들 방불하겠는가? 촌사람의 데데함에 편안해하고, 시속時俗의 잗단 것을 즐거워하니 지금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

子佩曰: 陋哉! 懋官之爲詩也. 學古人而不見其似也. 曾毫髮之不類, 詎髣髴乎音聲. 安野人之鄙鄙, 樂時俗之瑣瑣, 乃今之詩也, 非古之詩也.

영처고이덕무가 젊은 시절 지은 시문을 모은 것이다. ‘영처嬰處는 영아嬰兒와 처녀處女를 가리키는 말이니,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스러운 생각을 담은 글이지만, 처녀처럼 순진한 수줍음을 지녀 남에게 보여주기는 부끄럽다는 뜻으로 붙인 제목이다.

자패子佩는 앞서본 낭환집서蜋丸集序에서도 나온 인물인데 누군지는 분명치 않다. 앞서는 말똥구리의 말똥 이야기가 좋다며 호들갑을 떨고 자기 시집의 제목으로 하겠다던 그가, 이덕무의 시집 영처고를 보고는 대뜸 왜 옛 사람을 배웠다면서 옛 사람과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느냐고 시비를 붙여온다. 그저 써 놓은 내용이라고는 오로지 촌사람의 비루함과 시속時俗의 자질구레한 것만 가득 들어있으니, 이를 어찌 옛 사람의 시와 한 자리에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요컨대는 왜 옛날의 시를 쓰지 않고 지금의 시를 쓰느냐는 것이다.

 

 

내가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볼만 하겠다. 옛날로 말미암아 지금 것을 보면 지금 것이 진실로 낮다. 그렇지만 옛 사람이 스스로를 보면서 반드시 스스로 옛스럽다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보던 자도 또한 하나의 지금으로 여겼을 뿐이리라. 그런 까닭에 세월은 도도히 흘러가고 노래는 자주 변하니, 아침에 술 마시던 자가 저녁엔 그 장막을 떠나간다. 천추만세는 지금으로부터가 옛날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것은 옛날과 대비하여 이르는 것이요, 비슷하다는 것은 저것과 견주어 하는 말이다. 대저 비슷한 것은 비슷한 것이요 저것은 저것일 뿐, 견주게 되면 저것은 아닌 것이니, 내가 그 저것이 됨을 보지 못하겠다. 종이가 이미 희고 보니 먹은 따라서 희어질 수가 없고, 초상화가 비록 닮기는 해도 그림은 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余聞而大喜曰: 此可以觀. 由古視今, 今誠卑矣. 古人自視, 未必自古. 當時觀者, 亦一今耳. 故日月滔滔, 風謠屢變, 朝而飮酒者, 夕去其帷, 千秋萬世, 從此以古矣. 然則今者對古之謂也, 似者方彼之辭也. 夫云似也似也, 彼則彼也. 方則非彼也, 吾未見其爲彼也. 紙旣白矣, 墨不可以從白, 像雖肖矣, 畵不可以爲語.

그러자 그 말을 바로 받아 연암은 오히려 너스레를 떨고 나온다.

그래! 정말 자네의 말과 같다면 그거야 말로 볼만하겠군. , 한 번 따져나 보세. 옛날로 말미암아 지금 것을 본다면 지금 것이 보잘 것 없기야 하지. 그렇지만, 그 옛날도 당시에는 또 하나의 지금이었을 뿐이라네.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마땅히 보잘 것 없는 지금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오늘 우리가 아마득히 올려다 보듯 옛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세월은 쉬임 없이 흘러가 버리고, 노래도 변하고 문장도 변하고, 사람들의 기호나 취향도 자꾸 바뀌게 마련일세. 오늘 아침에 역사의 무대 위에서 술 마시며 즐겁게 노닐던 자들도 저녁이 되면 그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나. 그럴진대, 진정한 의미의 옛날이란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다시 생각해 보세. 지금 우리가 옛날이라 생각하는 것들은 그때의 지금이었을 뿐이라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노래가 먼 훗날까지도 옛날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우리보다 앞선 옛날’, 박제화된 그때’ ‘거기를 맹목적으로 추수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하는 것이 백번 옳지 않겠나? 그래야만 나의 지금은 또 훗날의 옛날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너무도 분명하고 간단한 이치건만,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니 안타깝단 말일세.

자네는 무관의 시를 두고 옛날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으니, 이것은 지금에 끝날 뿐 결코 옛날은 될 수 없다고 했지? ‘지금이란 것이 무언가? ‘옛날과 상대하여 하는 말일세. 비슷하다는 것은 무언가? ‘저것이것을 견주어 하는 말일세. ‘지금이 없고서야 옛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마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필요한 것이지. 이미 비슷하다는 말 속에는 진짜가 아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가? 그러니 비슷해지려고만 해서는 끝내 진짜가 될 수 없는 것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그 옛날이란 것이 또 다른 어떤 옛날과 닮은 것이었던가? 자네가 그 옛날을 높이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그들도 자신보다 앞선 옛날을 잘 흉내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을 걸세. 두보 이전에 두보와 같은 시인이 있었던가? 한유韓愈의 문장은 어떤 옛날을 본받았더란 말인가? 구양수歐陽脩는 한유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지금 보면 두 사람의 글은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네. 그렇다면 구양수가 한유에게서 배운 것은 무어란 말인가?

내 눈에 저것이 좋게 보인다 해서 내게 있는 이것을 버려두고 저것만 뒤쫓다 보면 결국 저것도 될 수 없고 이것마저 잃게 되고 말 걸세. 종이가 희니까 먹은 검은 것을 쓰게 되는 것이야. 만약 종이가 검다고 한다면 흰 먹을 써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이 바뀌면 표현도 달라지게 마련이고, 내용이 달라지면 그것을 담는 그릇도 변화해야 하는 것이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옛날만 좋다고 외쳐대고 지금 것은 유치하다고만 한다면, 흰 종이 위에 흰 먹으로 글씨를 쓰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나? 그 사람과 꼭 같이 닮게 그린 초상화도 결국 그 사람처럼 말하거나 생각할 수는 없단 말일세. 지금 사람이 옛 사람과 꼭 같이 닮겠다고 설쳐대는 것은 결국 그림더러 말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과 무에 다르겠나? 무관의 시가 옛날의 시가 아니라 지금의 시라 한다면, 그거야 말로 정말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지금 사람의 할 일이 옛 사람의 그림자만 따라다니는데 있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9911

0110

12122

13120

한시미학산책

우리 한시를 읽다

소화시평이 준 공부의 변화

교보문고의 5만 년된 나무 테이블 알아?

1. 무관의 시는 옛날의 시가 아닌 지금의 시

2. 동심으로 돌아가자

3. 지금ㆍ여기의 이야기를 담아낸 무관이 지은 시

4. 동심으로 돌아가자, 처녀로 돌아가자

5. 동심의 중요성을 외친 이지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