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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에 써 준 서문 - 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본문

책/한문(漢文)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에 써 준 서문 - 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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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옛날의 이른바 양자楊子ㆍ묵자墨子ㆍ노자老子ㆍ부처[각주:1]와 같은 유도 아니건만 네 가지 의론이 존재하고, 옛날의 이른바 사ㆍ농ㆍ공ㆍ상도 아니건만 네 가지 신분이 존재한다. 단지 그 숭상하는 바가 같지 않아서일 뿐이건만 서로 헐뜯는 의론을 펼쳐 진 나라와 월 나라가 소원한 것보다 더 소원하고, 그 처한 바가 달라서일 뿐이건만 신분에 차등을 둠이 중화中華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다.

非古之所謂楊佛而議論之家四焉, 非古之所謂士農工商而名分之家四焉. 是惟所賢者不同耳, 議論之互激而異於秦越; 是惟所處者有差耳, 名分之較畫而嚴於華夷.

 

그리하여 그 의론이 다름을 꺼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 하지는 아니하고, 자체가 다름에 구애되어, 서로 접촉은 하면서도 감히 벗 삼으려고는 않는다. 그 사는 마을이 같고 종족[각주:2]이 같으며 언어와 의관衣冠이 나와 저 사이에 별로 다른 것이 없건만 서로 친구 하지 않으니 서로 혼인인들 하겠는가? 서로 벗을 삼지 않으니 더불어 도를 꾀할 수 있겠는가? 이 네 가지 의론과 네 가지 신분이 아득히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진나라와 월나라, 중화와 오랑캐의 관계처럼 만들었으나 지붕을 맞대고 담장을 나란히 한 채 생활하고 있다. 그 습속이 어찌 이리 편협할까!

嫌於形跡則相聞而不相知, 拘於等威, 則相交而不敢友. 其里閈同也, 族類同也, 言語衣冠其與我異者幾希矣, 旣不相知, 相與爲婚姻乎? 不敢友焉, 相與爲謀道乎? 是數家者, 漠然數百年之間秦越華夷焉, 比屋連墻而居矣, 其俗又何其隘也.

이 단락의 문체적 특징은 시시비비를 따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있다. 우리는 이 글 이전에 일곱 편의 연암 글을 읽었지만, 그것은 대개 풍경 묘사나 서사敍事에 특장特長이 있었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어떤 주장을 펼친 글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처럼 논리를 바탕으로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주의ㆍ주장을 펼치는 글을 의론문議論文이라고 한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산문은 의론문과 서사문敍事文이 주요한 두 축을 이룬다. 연암은 서사문을 쓰는 데 특히 귀신같은 재주가 있었지만, 의론문도 아주 잘 썼다.

 

연암은 이 단락에서 당시 조선 사대부들이 사색당파로 나뉘어 자기 당파의 사람이 아니면 혼인 관계도 맺지 않고 친구도 하지 않으면서 서로 헐뜯고 공격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크게 보아 다시 이건만 지나치게 지체를 따져 무반이나 서얼, 중인을 차별하거나 천시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동네에 살면서도 당색과 지체가 다르면 결코 벗으로 사귀지 않는 데 대해 그 습속이 어찌 어리 편협할까!(其俗又何其隘也)라며 탄식하고 있다.

편협할까라는 말은 1단락의 마지막 문장 그 땅덩어리가 참으로 좁다 하겠다(其爲地也亦已狹矣)”좁다와 그 의미가 통한다. 아마도 연암은 조선이 땅덩어리가 좁다 보니 그 사대부적 기습氣習도 편협해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 듯하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조선이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작다

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3. 연암이 홍군이라 호칭하는 이유

4. 항주라는 곳의 문화적 특성

5. 중국 친구와 사귀다 보니 인식이 바뀌네

6. 중국인과의 교류로 우리 홍대용이 달라졌어요

7. 조선의 한계가 중국에 대한 선망을 낳다

8. 외줄타기의 긴장감을 지닌 북학정신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10. 중국인들과 나눈 필담으로 비난받다

11. 홍대용의 필담으로 벗 사귀는 도를 깨닫다

12. 총평

 

 

 

  1. 양자楊子ㆍ묵자墨子ㆍ노자老子ㆍ부처와 같은 유도 아니건만 네 가지 의론이 존재하고(非古之所謂楊ㆍ墨ㆍ老ㆍ佛而議論之家四焉): 당시 조선에 노론老論ㆍ소론少論ㆍ남인南人ㆍ소북小北의 네 당파가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자는 양주라고도 하는데, 전국시대 사상가로 극단적인 이기주의利己主義를 표방했으며, 묵자는 양자와는 달리 반대로 이타주의에 해당하는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했고, 노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였다. 연암은 당시 조선의 사색당파가 이런 사상적 대립도 못 되는 주제에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워 상대방을 헐뜯고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을 비꼬기 위해 이런 말을 햇다. 이 비꼬는 어투에서 서른 살 연암의 패기가 느껴진다. [본문으로]
  2. 종족이 같으며(族類同也): 곧 민족이 같다는 말이다. ‘종족’이라는 말의 원류는 ‘족류族類’이다. ‘민족’이라는 말은 서양어 ‘nation’의 번역어로 근대 일본이 처음 만들어 쓴 용어인데 이후 동아시아에 두루 통용되었다. 전근대 시기에는 ‘민족’이라는 말보다는 ‘종족’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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