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부와 시간
공부의 원의와 희랍인의 아레떼
현재 중국인이 사용하고 있는 백화적 표현에서 ‘꽁후우(나의 씨케이시스템으로 표기한 ‘쿵후’)’는 쿵후라는 좁은 무술의 개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 단련을 통하여 달성하는 모든 신묘한 경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면, 선반공이 쇠를 정교하게 깎는다든가, 용접공이 철판 용접을 감쪽같이 해낸다든가, 서예인이 능란하게 붓을 휘두른다든가, 어느 학동이 암산을 귀신같이 한다든가, 도축업자나 요리사가 식칼을 자유자재로 놀린다든가 하는 것을 중국인들은 ‘타더꽁후우뿌추어(他的工夫不錯, 그 사람, 공부가 대단하다)’라고 표현한다. 희랍철학에서 덕(德)이라는 것을 ‘아레떼(aretē)’라고 표현하는데, 아레떼는 바로 칠예(七藝)의 모든 방면에서 한 인간이 신체적ㆍ정신적 단련을 통하여 달성하는 탁월함(excellence)을 의미한다. 공부와 아레떼는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영화 [와호장룡]을 보면 무술과 공부가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를 알 수 있다.
도와 덕
우리가 흔히 듣는 옛 한석봉의 고사에서 한석봉이 학업을 중단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모친이 어두운 밤중에 떡을 써는 장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모친이 도마 위에서 떡을 써는 것과 아들이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것은 동일한 ‘공부’의 경지로서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판소리 소리꾼들이 득음을 하는 수련을 ‘소리공부’라고 하는데, “갸는 공부가 되얏서”라고 내뱉는 소리꾼의 명제는 바로 ‘공부’라는 말의 원의를 충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도덕(道德)’이라는 말을 서양말의 모랄리티(morality)에 해당되는 말로서 의식 없이 쓰고 있는데, ‘도덕’이라는 말은 본시 노자(老子)의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은 도(道)와 덕(德)의 합성어이다. 『도덕경』 51장에 보면, ‘도는 생(生)하는 것이고 덕은 축(畜)하는 것이다[道生之, 德畜之]’라는 함축된 명제가 있다. 도는 생생(生生)하는 천지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라면 덕이란 그 천지의 생생지덕을 몸에 축적해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는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이다. 그것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교육이란 축적해 나가는 과정, 즉 덕(德)의 측면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도가 자인(Sein)이라면 덕은 졸렌(Sollen)이다. 축적이란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시간의 예술이다. 이것은 교육의 모든 주체가 철저히 시간성에 복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에는 ‘선험적 자아’는 부재한 것이다.
▲ 공부에 중요한 건, 축적해 나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공부와 시간
‘공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어느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기 위하여 “시간(짬) 있니?”라고 말하는 것을 현대 중국어로 표현하면, “니여우메이여우꽁후우(你有沒有工夫)?”가 된다. 다시 말해서 ‘공부’는 디시플린(=아레떼)을 의미하는 동시에 시간(時間)ㆍ틈[暇]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공부’가 반드시 시간을 요한다는 철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성의 선험적 구성이나 비시간적 깨달음이 아니다. 그것은 축(畜)되어야만 하는 덕(德)이다. 그 덕이 바로 교육이요, 우리가 말하는 도덕(morality)의 핵을 형성하는 것이다.
공부는 관념상의 변화가 아닌 몸의 단련
예수의 산상수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 5:28)” 생각만으로 이미 간음죄를 범하였다는 것인데, 사실 한 인간의 내면적 상상에 관해서는 우리가 측량할 길이 없다. 정죄란 그것이 사회적 행위로 표현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행동 이전의 사유에 대하여서도 도덕성을 요구하였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 여자를 음탕하게 쳐다보는 것이 나의 몸의 요구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저 여자를 음탕하게 쳐다보지 않는 것은 마음속에서 상상하고 지우는 관념적 변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몸의 공부(쿵후), 즉 몸의 단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기나긴 시간을 통하여 공부를 축적해 나갈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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