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총평
1
공인 이씨가 열여섯에 시집올 때는 꽃다운 얼굴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내내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녀의 파리하고 핏기 없는 얼굴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기품 있는 여인이었으리라. 아픈 몸을 일으켜 빙긋이 웃으며 “이는 제 오랜 꿈인 걸요(是吾宿昔之志)”라고 말하는 데서 그녀의 인간 됨됨이와 기품이 느껴진다.
2
이 글은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 집안에 시집 온 여성에 대한 ‘실록實錄’이라 할 만하다. 연암 외에도 빈사처貧士妻의 생애를 기록한 문인들은 상당수 있다. 하지만 연암의 이 글처럼 그런 여성의 내면 풍경과 심리 상황까지 냉철하게 그려 보인 글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연암은 가난 때문에 사대부 집안의 한 여성이 절망과 낙담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묘파해놓고 있다.
3
우리가 기억하는 연암가의 여자들은 공인 이씨 외에도 연암의 큰누이, 연암의 아내 등이 있다. 이 세 여인은 모두 빈사貧士의 처로서, 신산한 삶을 살다 죽었다.
연암의 아내는 1787년 51세로 세상을 떴다. 연암은 친구 유언호의 도움으로 1786년 처음으로 선공감 감역이라는 말단 벼슬을 하나 얻어 하게 된다. 연암의 아내는 연암이 벼슬을 얻은 지 1년 만에 세상을 떴으니 그녀 역시 가난 속에 고생만 실컷 하다 죽었다 할 만하다. 연암은 평소 아내의 인품을 존경했으며, 아내가 죽자 애도하는 시 20수를 지었다. 그리고 이후 재혼하지 않았다. 연암은 첩도 둔 일이 없다. 재혼도 하지 않고 첩도 두지 않은 연암의 이런 태도는 당시로서는 퍽 이례적인 일이다.
연암의 이런 태도는 이 글이 보여주듯 집안의 여성들을 보면서 연암이 느껴 온 미안한 마음 및 감사하는 마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어찌 생각하면 연암의 형수나 아내와 같은 여인들의 고생 위에 연암이 존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연암을 기뻐하는 자, 이 여인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4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은 이 글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유순하다’거나 ‘바르고 정숙하다’거나 ‘부지런하고 검소하다’는 등의 글자는 단 한 자도 없지만, 선조를 받들고 살림살이를 하는 공인恭人의 모습이나 자애롭고 온순한 그 덕성을 마치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떠올릴 수 있다. 요컨대 지극히 진실하고 지극히 맑은 글이라, 읽으면 슬프게 사람을 감동시킨다(無一婉嫕莊淑勤儉等字, 而恭人之奉先御家友慈和順之德, 像想如見. 要是至眞至潔之文, 讀之悽惋動人).”
또 이런 평도 남겼다.
“옛날 공자의 제자인 원헌原憲은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요즘 가난한 선비 집 규방의 아낙들에겐 가난이 곧 병이고 병이 곧 가난이 되니, 이 둘은 얽히고설킨 채 뒤엉켜 있으니 도무지 풀 수가 없다. 백 사람이 같은 증세이고 천 사람이 한결같은 병증病症인데, 간혹 진찰 끝에 그 원인을 알아내더라도 그것을 풀이해놓은 묘방妙方이 없고, 비록 뭐라고 풀이해놓은 묘방이 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처방할 명의名醫가 없다. 동전을 끈에 꿰어 비단구렁이처럼 똬리를 틀어 놓고 비단을 상자에 담아 두고 곡식을 창고에 들여놓은 후 그것들에 손을 한 번 갖다 대기만 하면 아픈 것이 씻은 듯이 싹 없어지고, 눈을 들어 그것들을 한 번 보기만 하면 심장을 보補하고 비위를 돋우어 다 죽게 되었다가도 도로 살아난다. 이것이 바로 가장 좋은 약이다. 사슴의 뿔을 자르고 갓난아이 모양의 신령한 산삼이 있다 해도 이들 부인의 병을 고치는 데는 아무런 효험이 없을 것이다(昔原憲言, 貧也非病, 近世寒士, 閨閤中人, 貧則是病, 病則是貧, 纏綿膠漆, 莫可解釋. 百家同證, 千人一祟, 往往診察, 得其源因, 而無妙文, 爲之詮錄, 雖有詮錄, 如此妙文更無, 國醫爲之處方. 鑄銅貫綖, 若繡蟒蟠, 布帛開箱, 米糓入倉, 以手一摩, 痛苦如失, 擧目一見, 補心歸脾, 起死回生. 斯爲上藥. 鹿頭截茸, 神葠如嬰, 瘳此婦人, 如水投石, 此出藥王菩薩, 救苦眞經.).”
한편, 김택영은 이 글에 대해 “메마른 제목을 가지고 윤택한 글을 지었다. 생동감이 있는 데다가 글 끝에 와서 기세가 갑자기 꺾이는 수법을 보여주니, 대체 이 어떤 솜씨란 말인가?”라고 평한 바 있다.
▲ 전문
인용
10. 유언호가 명을 짓다
1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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