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스포라송
공자는 송나라의 후예다. 공자는 분명 송나라 사람이다. 아무리 로스안젤레스에 오래 살았어도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인 것과도 같다. 그러니까 공자는 은나라 사람인 셈이다. 송을 통해 내려오는 은나라 문화전통을 계승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고 노나라 사람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았다. 그러니까 공자의 삶의 입각처(立脚處) 자체가 이미 태생부터 매우 미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은 인물 내면에서 유대교전통의 고수와 유대교전통의 강인한 부정, 그리고 헬레니즘의 보편주의적 언어와 사고가 묘한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동시에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도 바울이 헬레니즘이 만개한 소아시아 이방의 도시, 다소(Tarsus) 속의 유대인 다이애스포라에서 성장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송나라는 이미 은유민(殷遺民)들의 다이애스포라였다.
그런데 공자의 선조는 송에서 또 다시 실패하여 노나라로 이주하였다. 공자의 선조이자 송나라의 대사마(大司馬, 따쓰마, Da Si-ma)였던 공보가(孔父嘉, 콩후우 지아, Kong-fu Jia)의 부인이 아주 미녀였는데, 송나라의 수상에 해당되는 태재(太宰) 화독(華督, 후아 뚜, Hua Du)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여 결국 공보가를 독살하고 그 부인을 차지한다. 공보가의 아들인 목금보(木金父, 무 진후우, Mu Jin-fu)까지 암살하려고 하니까, 목금보는 송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노나라로 도망온 것이다. 이 목금보의 손자가 바로 공방숙(孔防叔, 콩 황수, Kong Fang-shu: 공자의 증조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계는 이중의 다이애스포라생활을 거친 사람들이다. 송나라의 다이애스포라에서 또 다시 노나라의 다이애스포라로 이주한 사람들인 것이다.
춘추전국의 제자백가서에서 ‘송인(宋人)’들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의 질이 악질적인 것이 아니라, 좀 코믹하다. 코믹하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다는 것은 순진하지만 상식의 궤를 일탈한다는 것이다. 『맹자(孟子)』의 ‘조장(助長)’ 이야기의 주인공도 송인이다. 『한비자(韓非子)』의 「오두(五蠹)」편에는 송인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고사로서 그 유명한 ‘수주대토(守株待兎)’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송인의 고사가 인용되고 있는 맥락이다. 한비자는 물론 복고(復古)적 세계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를 상고지세(上古之世), 중고지세(中古之世), 근고지세(近古之世), 당금지세(當今之世)로 나누어 해설한다. 그 시대는 그 시대의 역사적 환경에 따라 그 시대 나름대로 행위의 당위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고지세에는 짐승이 사람보다 더 많았고, 맹금이나 독충이나 독사에 물리는 경우가 많아 나무를 엮어 원두막처럼 올라 살게 만든 사람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유소씨(有巢氏, 여우츠아오 스, You-chao Shi)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무나 풀의 열매, 조개, 전복 따위를 먹었는데 비린내가 심하고 복통이 생계질병이 잦자 불을 발명하여 화식을 하게 해준 사람이 임금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수인씨(燧人氏, 쒜이르언 스, Sui-ren Shi)이다.
중고지세에는 물이 많았고 홍수가 잦아 물길을 트고 제방을 쌓아 물을 잘 유통시키는 사람이 제왕 노릇할 수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곤 임금(鯀, 꾼, Gun: 우 임금 아버지)이요 우임금(禹, 위, Yu)이다. 그러나 유소씨가 하던 짓을 우 임금 시대에 하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요, 우 임금이 하던 짓을 땅이 마른 오늘날 하면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선왕지도(先王之道)를 가지고 당세의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망상의 대표적 예로서 송나라 사람의 수주대토 고사를 들고 있는 것이다. 밭을 갈다 우연히 토끼 새끼 하나가 나무에 머리를 박고 목이 뼈서 뒤졌는데 밭가는 일은 하지 않고 계속 나무를 지키면서 또다시 토끼를 얻을 요행만을 기다리고 있는 송인의 어리석음이나 선왕의 정치(先王之政)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송인의 단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 어리석게도 나무를 지키면서 득토(得兎)의 기회만을 기다리는 ‘변통을 모르는 고집’이다. 그러니까 송나라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시대와 변화와 무관하게,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다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지키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이다. 은나라 유민들이 국권을 상실한 절망감과 동시에 가슴에 품었던 은나라 문화에 대한 자부감, 그리고 그들의 제(帝, 띠, Di)【그들의 고유한 하느님, 서양의 데우스Deus와 음이 상통한다는 설도 있다】에 대한 종교적 신앙, 그들만이 보유했던 고도의 문명의 기술 등등은 그들의 삶에 어떤 타협이나 동화의 틈을 주지 않았다. 변통을 모르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어리석음이야말로 다이애스포라 사람들의 타협을 모르는 고지식함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러한 내면의 울분을 외면적으로는 어리석게, 공손하게, 유순하게 표현했다. 노자가 어리석음[愚]을 예찬하고, 절학(絶學)을 찬양하며, 유순함[柔]을 숭상하는, 도(道)적 우주관을 표방하는 내면에는 이 다이애스포라 은도(殷道)의 가치관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도가의 사상도 은유민과의 관련성을 떠나기 어렵다. 그리고 유(儒)의 원래 의미가 유(柔)였다고 하는 『설문(說文)』의 주장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던져주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 4편에는 또 하나의 어리석은 송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송인으로서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술이란 청주나 소주가 아닌 막걸리와 같은 탁주였을 것이다. 술을 너무도 잘 만들고, 손님을 대하는 예의도 매우 정중하고, 뒷말도 속임수 없이 아주 공정하게 재는 사람이었으나 술이 잘 팔리지 않아 술이 쉬어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송인이 동네 현자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너의 집 개가 사나우냐[汝狗猛耶]?”하고 되묻는 것이다. 송인이 “개 사나운 것하고 술 안 팔리는 게 뭔 상관유[狗猛, 則酒何故而不售]?”하고 물으니, 그 현자는 다음과 같이 타이르는 것이다.
술집이란 본시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껴야하는 것이다. 더구나 막걸리를 받아오게 할 때는 사람들이 곧잘 아이들에게 심부름시키기도 하는데, 무서운 개가 짖어대면 딴 집으로 가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개가 사나우면 막걸리가 안 팔릴 수밖에. 쯧쯧, 한비자는 이 고사를 개새끼들(대신大臣) 때문에 유도지사(有道之士)가 국군(國君)에게 접근할 길이 없어 국정이 어지러워지는 딱한 상황에 원용(援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고사는 이 시대의 송인에 대한 인상, 즉 다이애스포라 사람들의 속성들을 관찰해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송인들이 술을 잘 빚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은나라는 술로 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결국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상서 (尙書)』 「주고(酒誥)」에도 잘 나타나 있다. 「주고」는 여러 설이 있으나 주공 단이 어린 동생 강숙을 위나라에 봉할 때 여러모로 걱정되어, 특히 은나라가 술로 망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타이르는 포고문이다. 결국 그것은 주(紂) 일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인하여 전국민이 술독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은허 등지에서 발견되는 찬란한 청동기 예술작품들이 거개 술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은나라사람들에게 스며있던 종교문화가 술과 춤의 세계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디오니소스적 세계였다. ‘술과 항상 같이하지 말라. 여러 나라가 술을 마실 때는 오직 제사 때만 마실 것이니, 덕으로 교류하고 취함에 이르지는 말라[無彞酒, 越庶國飮, 惟祀, 德將無醉].’고 한 문왕(文王)의 고유(告諭)가 반사적으로 은나라의 디오니소스적인 광란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송인은 ‘손님을 대하는 데 예의범절이 매우 정중했으며[遇客甚謹]’, ‘됫박을 재는 데도 매우 공평했다[升槪甚平]’. 송인은 예악(禮樂)에 밝은 사람이었으며, 일상적 행동거지가 매우 겸손하고 은근했다. 됫박이 공평했다는 것은 후덕함과 사리에 정확함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공자의 인격을 추측하는 데 있어서도 우원하게 들리는 것 같지만 이런 자료들은 매우 구체적 도움을 준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집에 맹견을 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부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어떤 독자적 세계를 보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이야기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송인들의 이러한 폐쇄성은, 송인들의 계보를 잇고 있는 서은(庶殷: 은계제족殷系諸族)의 자손 낙양(洛陽) 지역 사람들의 행태를 일부 묘사하고 있는, 육조시대의 작품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북위(北魏) 말기의 양현지(楊衒之)가 불타버린 낙양을 애석해하면서 그 번화한 시절을 그린 명저】에도 잘 그려져 있다.
아둔함이나 어리석음이란 천재의 특질이다. ‘속이 빈 듯이 보이는 성격(absentmindedness)’이야말로 천재들의 속성이다. 물론 이러한 설화는 주나라 문화권에서 자기들이 멸망시킨 왕조의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자아내기 위하여 지어낸 것이다. 정언약반(正言若反), 우리는 그 말의 반면을 읽어내어야 한다. 경상도왕국이 되면, 전라도사람들을 모멸하는 온갖 설화들이 꾸며진다. 전라도사람들은 거짓말 잘하고, 교활하고, 이중성이 강하다. 그런 이미지를 창출하는 온갖 이야기들이 항담(巷談)을 차지한다. 그러나 전라도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열려있으며, 머리가 좋으며, 판소리나 남도민요가 입증하듯이 예술적이다. 아마도 고도의 문화를 자랑하던 은인의 후예 송인들은 이렇게 정면(正面)과 반면(反面)이 교착(交錯)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서구사회에 있어서 다이애스포라에서 사는 유대인들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도 이와 별 다름이 없다. 유대인들은 폐쇄적이며 깊게 종교적이며 독선적이며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일반적 소견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외 없이 천재적이며, 예술ㆍ과학ㆍ인문 각분야에 인류사회를 리드하는 눈부신 업적들을 쏟아내어 놓았다. 왜 그다지도 유대인들은 천재적인가? 예수로부터 지그문트 프로이드, 칼 맑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촘스키나 아인슈타인, 마르크 샤갈에 이르기까지 왜 이들 민족에서만 집약적으로 천재들이 쏟아지는가? 나는 그 이유는 실로 간단히 설명된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다이애스포라에서 사는 과정을 통하여 어떤 내면적 갈등을 축적해왔으며, 그것은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면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유대인치고 바이링규알(bilingual, 2개 모국어 화자) 아닌 사람이 없다. 유대인치고 박해의식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항상 자신이 지켜야할 내면적 규범과 삶의 외부적 환경이 극심한 콘트라스트(contrast, 대립)와 타협하기 어려운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갈등을 어려서부터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예술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라나게 마련이다. 노나라라는 다이애스포라에서 살던 송인 공자의 유년시절의 삶 자체도 이러한 갈등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이애스포라에서 배출되는 유대인 천재들이라 해서 반드시 유대인의 전통과 인습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맑스에게 있어서나 프로이드에 있어서나 유대인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숭배나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맑스나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유대인은 궁극적으로 해방의 대상이다. 위대한 천재들은 항상 인간을 아토믹한 개인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이나 이기적 권익에 의하여 꽁꽁 묶여있는 그런 절대적 자유의 개인을 그들의 배움의 전제로 삼지 않는다. 맑스는 묻는다. ‘자유(Liberty)란 기껏해야 불간섭(Non interference)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들이 문제시하는 것은 보편적 콤뮤니티의 한 멤버로서, 즉 공민(公民)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냐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해방(political emancipation)은 시민사회(biürgerliche Gesellschaft, Civil Society)의 원자적 구조를 하나도 근원적으로 개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맑스나 프로이드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해방을 넘어서는 인간해방(human emancipation)이다. 유대인전통이야말로 이러한 인간해방에 부정적인 모든 인습의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
맑스나 프로이드가 유대인이면서도 종교적인 폐습이나 율법적 구속에 갇혀 있는 유대인을 비판하는 문제의식과 매우 유사한 의식구조를 우리는 공자의 삶 속에서 발견한다. 공자는 송의 후예로서 송의 모든 종교적ㆍ문화적 인습체계 속에서 성장했지만, 그는 가장 강렬하게 송의 전통을 거부하고, 은의 문화에 반발한다(「팔일」).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郁郁乎文哉! 吾從周.
‘오종주(吾從周)!’ 이 한마디에는 공자의 삶을 지배하는 줄기찬 긴장, 공자의 이데아와 현실 사이의 황량한 암곡과도 같은 갈등구조가 숨어 있다. 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여기서 말하는 주는 곧 송(은)의 거부다. 공자가 비록 하(夏)를 같이 이야기하지만 그에게 하는 실제로 큰 의미가 없다. 그에게 관념화되어 있는 것은 송과 노, 은과 주의 긴장감이다.
공자는 송인으로서 노나라에 살았다. 노나라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그것은 바로 은을 정복한 왕조 주나라의 문물을 완성한 주공(周公, 저우 꽁, Zhou Gong, the Duke of Zhou), 무왕의 정복으로부터 성왕의 과도기적 제패(制覇)에 이르기까지의 주문화 초기정착의 모든 측면을 완성한 이상적인 패러곤, 그 주공이 분봉된 곳이었다. 노는 곧 주문화를 가장 정통적으로 정착시키고 보존한 문명인 것이다. 성왕은 주공을 신하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주공의 사후에도 성왕은 주공에게 천자의 모든 예우를 다했다. 그리고 노나라에 있는 주공의 사당, 즉 태묘(太廟, 타이마오, Tai Miao)에는 천자의 예악을 허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왕실의 교제(郊祭)를 노나라에서 올렸다. 따라서 노나라에는 은의 종교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주(周)의 600년 인문전통이 가장 정통적으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송인(宋人)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아이덴티티를 철저히 노인(魯人)으로 규정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장성한 이후의 의식구조다. 다시 말해서 그의 의식 속에서 송이 노에 대해 대자적으로 분열을 일으킨 이후의 사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곧 자기가 송인이라는, 바로 그 자신의 속성을 거부하는 안티테제의 정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부정(Self-negation)은 성인의 길의 출발이다. 공자는 분명 ‘성인의 후예[𦔻人之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인이란 ‘무속집안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성인은 곧 ‘개비’다. 그가 17세 때까지 자모(慈母) 안씨녀의 슬하에서 자라났다면, 외가의 훈도 속에서 성장하였다면, 그것은 곧 그가 송의 적통 속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주의 적통을 이은 노나라라 해도 은ㆍ주혁명시에는 이 지역은 주나라의 영역이 아니라 은나라의 영역이었다. 산동지역의 용산(龍山, 롱산, Long-shan)문화로부터 이리강(二里岡, 얼리깡, Er-li-gang)문화를 거쳐 은허 지역에 이르는 상문화 영역 속에 이 지역은 속해 있었다. 주나라는 섬서성의 황토고원지대에서 유래한 서방의 신흥세력이었다. 그것은 마치 은나라를 로마제국에 비유한다면 주나라는 게르만 야만족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치세력은 주나라 사람들이었지만, 피통치인민들은 대체로 은나라 문화습속에 젖어 있었다. 그러니까 공자의 부계나 모계나 모두 은나라의 후예로 보는 것은 발달된 오늘날의 고고학의 성과로 볼 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자의 삶이란 곧 송의 ‘개비’적 성격으로부터 노의 ‘비개비’적 성격으로 근원적 전환을 시도하는 모험적 삶이었다. 은이라고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를 탈피하여 주라고 하는 아폴로적 세계로 진입하려는 근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니체가 희랍비극정신을 말하면서 디오니소스적 세계와 아폴로적 세계의 융합을 말했다면 공자야말로 그러한 융합의 구현체였다.
그것은 곧 공자의 삶에서 최초로 우리가 의미론적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성인(聖人, Sage)이 구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의 삶은 곧 종교적 성인(개비)으로부터 도덕적ㆍ문화적 성인(비개비)에로의 탈바꿈(transformation)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샤만적 충동(shamanic impulse)으로부터 도덕적 인격의 구현(moral incamation)으로의 도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송에서 노로의 전화, 은문화에서 주문화로의 비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주의 상징적 구현체가 곧 주공(周公, the Duke of Zhou)이었다. 니체는 물론 이러한 전화(轉化)를 혐오할 것이다. 그러나 잘 뜯어보면 공자의 삶에는 니체가 그리워하는 디오니소스적 음악성과 해방감, 그 합창과 보편적 가치(universalia ante rem: 음악은 사물 이전의 보편이라는 뜻)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이지성과 기독교의 신화성과 노예도덕이 결합된 그러한 질식과 질곡의 방향은 아니었다(니체, 『비극의 탄생』, 책세상 니체전집, 2-125).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되었도다! 주공을 꿈에 다시 보지 못함이여(「술이」).
甚矣, 吾衰也。久矣, 吾不復夢見周公.
공자가 과연 은나라 역사나 주나라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우리가 명료하게 알 길이 없다. 공자는 사가로서 하(夏)【그 전승을 보유한 나라는 기(杞)】나 은(殷)【그 전승을 보유한 나라는 송(宋)】의 역사를 캘려고 할 때 그 ‘문헌(文獻)’이 부족하다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팔일(八佾)」 9), 엄밀한 실증적 사가로서 그 문명의 실제적 정황에 관하여 논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인식의 틀을 독백하고 있는 것이다. 은과 주는 직접적으로 대비된 언명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논어』에 기술된 공자의 로기온 전반에 걸쳐 어떤 관념적 틀로서 깔려있는 것이다. ‘주감어이대(周監於二代)’라고 말한 것을 보면, 공자는 주를 하ㆍ은의 장단점을 이미 창조적으로 변용시키고 포섭한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시(詩)란 공자에게 있어서는 언어를 의미했다. 공자의 언어는 곧 ‘노래’ 였던 것이다. 여기서의 ‘노래’란 가장 원초적인 의미에 있어서, 곧 무당의 가사다. 우리의 개명한 삶은 곧 노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노래는 흥이요 바람이요 언어다. 그것은 개비의 신적 중얼거림이다. 예(禮)의 핵심은 무당의 상례(喪禮)였다. 그것은 죽음의 제식이었다. 악(樂)은 단순히 악기연주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곡이요 창작이요, 문명의 창조행위다. 그것은 삶의 영감의 완성이다. 공자의 삶은 ‘시ㆍ례ㆍ악’이 세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문제의식은 바로 어떻게 은적인 시례악을 주적인 시례악으로 전환시키느냐에 달려있었다.
공자의 개비적 삶, 안씨녀 슬하의 가풍, 그것은 전통적 성인(무당)의 삶이었다. 그것은 바로 송인의 문화였다. 부계ㆍ모계를 막론하고 어떤 송문화의 전통 속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무당의 삶은 죽음의 삶이다. 죽음의 사제로서, 죽음을 영위하는 삶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은(殷)은 ‘죽음의 문화’요, 주(周)는 ‘삶의 문화'였다. 은문명의 순장묘나, 방대한 청동기문화가 실증하듯이 그것은 술의 문화요, 제식의 문화요, 죽음의 문화인 것이다. 은문화는 바카이들이 들판에서 동산에서 삼현육각에 맞추어 유오이(Euoi)를 외치며 오르기아(orgia)의 광란의 축제를 벌리는 것과도 같은 ‘취함의 문화’다. 그러나 주문화는 ‘깨임의 문화’다. 주왕실은 바로 은문화의 취함을 깨우게 함으로서 성립한 것이다. 은나라가 그 얼마나 술에 빠져 국정을 그르쳤는가 하는 것은 주공의 작으로 전하는 「주고(酒誥)」에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주공의 문제의식은, 무분별한 종교적 광기에 빠져있는 은문화의 상태로부터 탈피하여, 어떻게 합리적 문아(文雅)의 덕성으로 인간을 살려내느냐 하는데 있었다. 주공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하향적 제(帝, 띠, Di)의 축을 상향적 천(天, 티엔, Tian)의 축으로 전환시키느냐 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천심(天心)은 곧 민심(民心)이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경복이나 화려한 장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집단적 도덕성이야말로 새로운 통치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은(殷) | 주(周) |
죽음의 문화 | 삶의 문화 |
취함의 문화 | 깨임의 문화 |
무분별한 광기 | 합리적 문아(文雅) |
하향적 제(帝) | 상향적 천(天)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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