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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0. 관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0. 관

건방진방랑자 2019. 11. 1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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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

불교에서 선()의 힘을 모아 어떠한 달관(達觀)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관가(官加)

가집(加執) 중에서 아전이 수령을 부추겨 가집하는 것을 관가(官加)라 한다.

 

관가(官家)

설원(說苑)』 「지공(至公)…… 오제(五帝)는 천하를 관()으로 삼고, 삼왕(三王)은 천하를 가()로 삼았다.”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을 가리킨 말이다. / 인용: 詰楊吏(허격)

 

관각삼삼(丱角森森)

진시황(秦始皇)삼신산(三神山)에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서시를 시켜서 처녀 총각 5백 명을 데리고 바다에 배를 태워 보내었더니 서시는 바다섬에서 살고 돌아오지 않았다.

 

관개(冠蓋)

사신(使臣)이나 높은 벼슬아치가 타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 또는 수레의 덮개. 높은 벼슬아치가 머리에 쓰는 관()과 해를 가리는 일산(日傘). 높은 벼슬아치들이 타는 수레. 따라서 높은 벼슬아치를 말한다.

 

관개요상연(冠蓋遙相連)

사자(使者)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관개는 사자의 관과 수레의 덮개를 말한다.

 

관거(關渠)

두보(杜甫)의 시에 밭 갈며 살아갈 방도 강구하나니, 그저 세상과 인연만 맺지 않았으면[治生且耕鑿 只有不關渠]”이라는 표현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20 戲作俳諧體 遺悶

 

관견(管見)

소견이 좁다는 뜻이다.

 

관과(灌瓜)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양() 나라의 대부 송취(宋就)가 변경의 현령(縣令)이 되었는데 초() 나라와 접경(接境)이었다. 양 나라의 변정(邊亭)과 초 나라의 변정이 다 외를 심었는데, 날이 가물 때에 양의 변정 사람들은 애써 그 외에 물을 주어 외가 잘 자랐고, 초 나라 사람들은 게을러서 물을 잘 안주니 외가 잘 되지 않았다. 초정(楚亭) 사람이 양정(梁亭)의 그것을 시기하여 밤에 슬그머니 양정의 외를 비틀어 버리니, 양정에서 알고 또한 가서 보복하려 하는지라, 송취가 말하기를 그런 좀스러운 보복을 하지말고 밤에 슬그머니 초정에 가서 그 외에 물을 주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초정의 외가 날마다 잘 되니, 초왕이 듣고 중한 폐물로 사례하고 양왕에게 우호(友好)하기를 청하였다.

 

관관(涫涫)

물이 끓는 모양.

 

관관(悹悹)

의지할 곳이 없는 모양.

 

관관(款款)

충실한 모양, 느린 모양, 혼자 즐기는 모양, 마음속에 바라는 바가 있는 모양. / 인용: 題深院(조신)

 

관관(關關)

화락하게 지절거리는 것. 시경(詩經)주남(周南) 관저(關雎)

 

관광(觀光)

과거에 응시한다는 말로, 주역(周易)나라의 빛을 보아 임금에게 손()이 된다[觀國之光, 利用賓于王].”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관광은 타국(他國)의 광화(光華)를 구경한다는 뜻이다.

 

관괴(菅蒯)

솔새나 띠풀 같은 하찮은 것을 말한다.

 

관군(冠軍)

무공(武功)이 군중(軍中)에 제일가는()사람을 이르는데, 전하여 대장군(大將軍)의 뜻으로 쓰인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諸別將皆屬宋義 號爲卿子冠軍이라고 보인다.

 

관기(管記)

서기(書記)의 속관(屬官)이다.

 

관내후(關內侯)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진()나라의 작위 제도로 한나라가 따랐다. 20등작 중 19등에 해당하는 작위로 20등작인 철후(徹侯, 혹은 열후(列侯))와 함께 후로 호칭되었으나 철후와는 달리 봉국이 없었기 때문에 관내(關內)의 왕성 지역에 거했음으로 붙여진 호칭이다.

 

관녕(管寧)

삼국시대 위()나라 북해(北海) 주허(朱虛) 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인데, 한말(漢末)에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피하여 요동(遼東)에 살면서 제자를 모아 글을 가르치다가 37년이 지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문제(文帝)가 태중대부(太中大夫), 명제(明帝)가 광록훈(光祿勳)을 내렸으나 다 거절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관녕전(管寧傳)

 

관녕목탑(管寧木榻)

삼국 시대 위()의 명사 관녕(管寧)이 항상 검은 모자를 쓰고, 80세가 넘도록 50여 년 동안을 항상 목탑(木榻)에만 꿇어앉아 있었으므로, 그 목탑 위의 무릎 닿은 곳이 모두 구멍이 뚫리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삼국지(三國志)卷十一

 

관녕상혈(管寧床穴)

관녕은 동한(東漢) 말기 사람이다. 난세를 피하여 요동으로 옮겨 살았는데 백모(白帽) 차림에 한 목탑(木榻)만을 사용한 지 37년 만에 목탑은 그 무릎이 닿은 부분에 구멍이 뚫렸다 한다.

 

관능관(觀能觀)

소관(所觀)과 능관. 소는 피동으로, 능은 능동으로 동작하는 것. 관은 마음으로 진리를 관하는 것이다.

 

관단마(款段馬)

걸음이 느린 말, 또는 조그마한 말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관단마와 하택거(下澤車)를 타다.”라 하였고, ()()은 느리다는 뜻이라 하였다.

 

관대(冠帶)

갓을 쓰고 띠를 맴. 즉 예모(禮貌)를 갖춤을 이르는 말이다.

 

관대(觀臺)

대상(臺上)에 옥()을 설치하고서 먼 데를 구경하는 곳. 물견대(物見臺)라고도 한다.

 

관덕택궁(觀德澤宮)

무과(武科) 고시를 말한다. 택궁(澤宮)은 활 쏘는 기예를 시험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주례(周禮)夏官 司弓矢 註 예기(禮記)사의(射儀)활쏘기를 통해 성대한 덕을 볼 수가 있다[射者所以觀盛德也].”라고 하였다.

 

관도(館陶)

()의 이름이다. 중국 하북성(河北省) 남부, 위하(衛河) 서쪽에 있으며 산동성(山東省)과 인접해있다.

 

관도기필억매승(觀濤奇筆憶枚乘)

() 나라 매승(枚乘)이 오객(吳客)과 초 태자(楚太子)의 문답 형식으로 지은 칠발 팔수(七發八首)’에 광릉(廣陵) 곡강(曲江)에 이는 파도의 장관을 멋지게 묘사한 내용이 나온다. 문선(文選)34

 

관도수(官渡樹)

관도의 나무의 나무란 뜻으로. 관도(官渡)는 중국의 하남(河南) 중모현(中牟縣) 동북쪽에 있는 지명이다. 건안(建安) 5(200)조조(曹操)가 관도에서 원소(袁紹)의 군사를 격파하였는데, 당시에 그의 아들 비()가 거기에 버드나무를 심은 뒤 15년이 지나 자기가 심은 나무를 보고 감회에 젖었다는 데서 옛날을 회상하는 전고로 쓰인다.

 

관도위(關都尉)

관문의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들의 장관이다.

 

관도지기(貫道之器)

()를 꿰어 담는 그릇이란 뜻으로, 문장(文章)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이한(李漢)한창려집(韓昌黎集)()문장은 도를 꿰는 기구이다. 이에 깊은 조예가 없이 도에 이른 경우는 있지 않다[文者貫道之器也. 不深於斯道, 有至者不也].”라 하였다. 서거정(徐居正)동문선서(東文選序)에서는 하물며 문장이란 도를 싣는 그릇이다. 육경의 문장은 문식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도에 짝했었다[况文者, 貫道之器. 六經之文, 非有意於文, 而自然配乎道].”라 하였다. / 인용: 청창연담

 

관동곡(關東曲)

송강 정철(鄭澈)이 지은 관동별곡을 말한다.

 

관동류욕기(冠童類浴沂)

공자(孔子)가 여러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증점(曾點)이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관자(冠者) 5, 6, 동자(童子) 6, 7인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가(詩歌)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관등(觀燈)

음력 4월 초 8, 즉 석존(釋尊)의 탄일(誕日)을 기념하는 일로서 집집마다 등()을 다는 등의 행사를 말한다.

 

관란장(觀瀾章)

맹자(孟子)가 도()의 근본이 있음을 말하는 데서 물을 구경하는 데에 방도가 있으니, 반드시 그 급한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관랭광문(官冷廣文)

광문 선생(廣文先生)의 준말이다. 두보(杜甫)가 정건(鄭虔)을 광문 선생이라고 일컬으며 취시가(醉時歌)에서 광문 선생 관직은 유독이나 쌀쌀하다[廣文先生官獨冷].”라고 하였다.

 

관량(關梁)

관문(關門)과 교량(橋梁). 어진 자가 등용되는 길. 초사(楚辭)송옥(宋玉) 구변(九辯)관량이 막혀 통하지 않음이여.”라 하였다.

 

관련(官聯)

각관(各官)이 서로 협조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관령(關令)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윤희(尹喜)를 말하는데, 그가 함곡관 윤(函谷關尹)을 지냈기 때문에 관령이라고 칭한 것이다. 윤희는 일찍이 노자(老子)와 교유(交遊)하였는데, 관윤자(關尹子)를 그가 저술하였다고도 한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관령현풍(關令玄風)

관령은 진() 나라 함곡관(函谷關)을 지키던 윤희(尹喜)를 가리킨다. 그는 함곡관을 지키다가 노자(老子)를 만나 그의 학설을 듣고 관윤자(關尹子)를 지었다 한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관룡봉(關龍逢)

하나라 걸왕(桀王)의 어진 신하로서 걸왕의 황음무도한 짓을 보다 못해 자주 간하다가 걸왕의 분노를 사서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은 살해당하였다

 

관매역(觀梅易)

()의 소옹(邵雍)이 저술한 매화수(梅花數)를 이른 것이다. 소강절(邵康節), 역수일촬금(易數一撮金)

 

관면(冠冕)

벼슬아치를 말한다.

 

관명(鸛鳴)

시경(詩經)빈풍(豳風) 동산(東山)개미둑에 황새 우니 방안에서 아낙이 한탄하네[鶴鳴于垤 婦歎于室]”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황새는 물을 좋아하므로 날씨가 흐릴 기미가 있으면 운다고 한다.

 

관명우질(鸛鳴于垤)

시경(詩經)빈풍(豳風) 동산(東山)황새가 개미둑에서 울거늘 아내는 집에서 탄식하며[鸛鳴于垤 婦歎于室]”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비가 오려면 구멍에 사는 것이 먼저 알기 때문에 개미가 먼저 나오는데, 황새란 새는 개미집에 가서 개미를 잡아먹으며 운다고 하였다.

 

관목비자음(灌木悲自吟)

관목(灌木)은 본래 떨기나무를 뜻하나, 시경(詩經)주남(周南) 갈담(葛覃)편에 黃鳥于飛 集于灌木이라 한 것을 따서 꾀꼬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관반반(盼盼)

() 나라 상서(尙書) 장건봉(張建封)의 첩인데, 가무와 시를 잘하였다. 장 상서가 죽은 뒤에 반반이 십 년이 넘도록 개가하지 않으니 백거이(白居易)가 시를 보내어 왜 따라 죽지 않느냐고 물었다. 반반이 울면서 첩이 죽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우리 남편이 첩을 사랑하여 따라 죽게 했다 하면 깨끗한 덕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였다.”고 말하고 백거이의 시를 화답한 후 열흘을 먹지 않다가 죽었다 한다. 전당시화(全唐詩話)

 

관벽송연(管碧松煙)

먹은 소나무 연기[松煙]로 제조한다. 맹주(孟州)는 먹의 산지(産地)로서 군수가 감독하여 먹을 만들어서 나라에 바쳤다.

 

관보(關輔)

관중(關中)의 삼보(三輔), 즉 우부풍(右扶風좌풍익(左馮翊경조윤(京兆尹)을 가리키는데, 전하여 도성과의 가까운 지역을 이른 말이다.

 

관부기시(灌夫棄市)

관부는 한대(漢代)의 무장(武將)으로, 무제(武帝) 때에 오() 나라를 쳐 용명을 떨쳤으나, 뒤에 실세(失勢)한 두영(竇嬰)과 날마다 교유(交游)했으며, 위인이 호협(豪俠)하고 강직(剛直)하여 술주정을 잘했다. 뒤에 승상전분()의 좌석에서 주정을 부리며 좌중을 욕하여 분의 노여움을 사서 온 가족이 처형되었다.

 

관비회(管飛灰)

예전에 갈대 태운 재를 율관 속에 넣어 밀실에 두고 기후(氣候)를 조사하였는데, 추위가 닥치면 재가 난다 한다. 고사성어고(古事成語考)』 「세시(歲時)동지(冬至)가 되면 갈대의 재가 날고 입추(立秋)가 되면 오동잎이 떨어진다.”라고 한 말이 있다.

 

관사(關祠)

삼국(三國) 때의 관우(關羽)를 모신 사당이다. / 인용: 嬰處稿序(박지원)

 

관사수능료(官事誰能了)

() 나라 양제(楊濟)가 부함(傅咸)에게 자식이 바보 같아야만 관청의 일을 면할 수가 있으니, 관청 일은 누구라도 쉽게 면할 수가 없는 법이다[生子癡 了官事 官事未易了也].”라고 글을 보낸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47 부함전(傅咸傳)

 

관산(冠山)

장흥(長興)의 별호이다.

 

관산곡(關山曲)

관산월(關山月)의 곡을 말한다. 관산월은 한() 나라 악부(樂府)의 횡취곡(橫吹曲) 이름으로, 대부분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슬픈 정을 읊은 것이다.

 

관산구곡보(關山舊曲譜)

() 나라의 횡취곡(橫吹曲)이라고 하는 악부(樂府) 속의 관산월(關山月) 곡조를 말하는데,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이 고향을 떠나 오래도록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관산명월(關山明月)

관산월(關山月)을 가리킨다. () 나라 악부(樂府)의 횡취곡(橫吹曲) 이름으로, 대부분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슬픈 정을 읊은 것이다.

 

관산월(關山月)

() 나라 악부(樂府)의 횡취곡(橫吹曲) 이름으로, 대부분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병사들의 슬픈 정을 읊은 것이다.

 

관산평수(關山萍水)

() 나라 왕발(王勃)등왕각서(滕王閣序)관산은 넘기 어려운데, 누가 길 잃은 사람을 슬퍼해 줄꼬. 부평초가 물에서 서로 만나듯 하였으니, 모두가 타향의 길손들일세[關山難越 誰悲失路之人 萍水相逢 盡是他鄕之客]”라는 구절이 나온다.

 

관상진인식진기(關上眞人識眞氣)

관상(關上)의 진인(眞人)이란 함곡관 윤(函谷關尹)인 도사 윤희(尹喜)를 말한다. 주 나라가 쇠미해지자, 노자(老子)가 주 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함곡관을 지나려고 할 적에 앞서 함곡관 윤 윤희가 천기를 보고 성인이 그곳을 지나갈 줄을 미리 알고서 기다리고 있다가, 과연 노자가 청우(靑牛)를 타고 그곳을 지나므로, 노자에게 제자(弟子)의 예를 갖추고 저서(著書)를 해주기를 부탁하여 노자로부터 오천여언(五千餘言)도덕경(道德經)를 받았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관새(款塞)

새문(塞門)에 와서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관색명(貫索明)

옥사(獄事)가 번다해짐을 말한다. 관색은 모두 구성(九星)으로 이루어진 별 이름인데, 천문지(天文志)에 의하면, 이 관색 구성이 모두 밝으면 천하에 옥사가 번다해진다고 하였다.

 

관생(觀生)

주역(周易)』 「관괘(觀卦)나의 생을 관찰하여 진퇴한다[觀我生, 進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관선(館選)

분관(分館), 즉 문과(文科) 급제자들을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에 배치하는 인사 행정을 말하는데, 승문원의 괴원 분관(槐院分館)을 으뜸으로 치고 성균관의 국자 분관(國子分館)을 다음으로 여겼으며 교서관에 분관되는 것은 다들 꺼렸다.

 

관성(關城)

변방의 요새지를 가리킨다.

 

관성(管城)

붓의 일명이 관성자(管城子)이다. 한유(韓愈)모영전(毛穎傳)에 보인다.

 

관성자(管城子)

()의 별칭이다. 한유(韓愈)가 붓·먹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쓴 모영전(毛穎傳)에 보인다.

 

관소(管蕭)

춘추시대(春秋時代) 제 환공(齊桓公)의 현상(賢相) 관중(管仲)과 한 고조(漢高祖)의 현상 소하(蕭何)를 합칭한 말이다.

 

관수재관란(觀水在觀瀾)

맹자(孟子)』 「진심(盡心)물을 보는 데에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출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도()의 근본이 있다는 뜻이다. / 유의어: 관수지유술(觀水之有術)

 

관수필관란(觀水必觀瀾)

모든 일은 높은 경지의 것부터 체험을 해 봐야 그 나머지의 사상(事象)을 바르게 평가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바닷물의 큰 것을 본 자에게는 여타의 작은 물들은 물이라고 할 것이 못된다. 물을 보려면 반드시 큰물부터 보아야 한다.”라는 대목에서 인용된 말이다.

 

관슬(貫蝨)

기창(紀昌)이 작은 것이 크게 보이고 희미한 것이 뚜렷하게 보인 뒤에 활 쏘기를 배우라는 스승 비위(飛衛)의 말에 따라 털끝에 서캐를 잡아매어 창문 사이에 드리워 두고 그것만 바라보는데 날짜가 지날수록 차츰 크게 보이다가 3년이 지나자 수레바퀴 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그때서야 활을 당겨 쏘아 서캐의 심장을 꿰뚫었는데 서캐를 매어단 털이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관시(關市)

왜관개시(倭館開市)를 말한다. 왜관개시는 세종조 때 처음 시작되었다가 그 이후 삼포왜란(三浦倭亂)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관심(觀心)

불가(佛家) 용어로서, 좌선하는 법으로서 자기 마음의 본성(本性)을 분명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만법(萬法)의 주체로서 어느 한 가지 일도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을 관찰하면 일체의 사리(事理)를 깨칠 수 있다고 한다.

 

관씨삼귀(管氏三歸)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관중(管仲)이 축조한 삼귀대(三歸臺)라는 누대(樓臺), 시문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화려하기만 하고 법도를 무시한 참람한 느낌마저 든다는 것을 암시한 표현이다. 논어(論語)』 「팔일(八佾)管氏有三歸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관아재(觀我齋)

숙종 때 사람 조영석(趙榮祏)의 호이다. ··화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란 칭호를 받았다.

 

관악(管樂)

환공(桓公)을 도와 제() 나라를 패국(覇國)으로 만들었던 관중(管仲)전국시대(戰國時代) 연 소왕(燕昭王)의 상장군(上將軍)으로서 조(() 5개국 연합군을 거느리고 제 나라 70여 성()을 공략하여 연 나라에 소속시켰던 악의(樂毅)인데, 삼국 때 제갈량(諸葛亮)이 일찍 자신을 관악에 견주었다.

 

관안(管晏)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명재상인 관중(管仲)안영(晏嬰)의 병칭이다.

 

관약(管鑰)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뜻을 펴지도 못한 채 강화 부윤(江華府尹)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말이다. 관약은 국도(國都)를 방어하는 중요한 요새지로, 강도(江都)를 가리킨다.

 

관어(觀魚)

춘추(春秋)에 노() 나라 임금이 당()에 가서 관어(觀魚)하는 것을 그 신에게 간하였다.

 

관영(管寧)

중국 삼국(三國) 때의 고사(高士)이다. 관영은 삼국 시대 위() 나라 북해(北海) 주허(朱虛) 사람으로 자는 유안(幼安)이다. 어려서 화흠(華歆)과 자리를 함께 하여 글을 읽다가 화흠이 문밖에 지나가는 벼슬아치를 보러 가자 관영은 즉시 그와 자리를 나누어 앉아 그를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한말(漢末) 황건적의 난 때 요동(遼東)으로 피난하여 항상 검은 모자에 굵은 베옷을 입고 은거(隱居)하였다. 따르는 자가 매우 많았으며 관영의 덕화에 백성들이 감화되어 다투거나 송사하는 일이 없었다. 난이 평정되자 3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 조정에서 여러 번 벼슬을 내렸으나 다 사양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十一 고사전(高士傳)

 

관영(灌嬰)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76년에 죽었다.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 였던 수양(睢陽) 출신으로 처음에는 비단장수였다가 한고조를 따라 종군하여 항우(項羽)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워 영음후(穎陰侯)에 봉해졌다. 고조가 죽고 여씨들이 발호하자 진평, 주발 등과 함께 평정하고 한왕조를 안정시킴으로써 태위(太尉)가 되었고, 후에 승상(丞相)의 자리에 올랐다.

 

관영탑(管寧榻)

() 나라 황보밀(皇甫謐)고사전(高士傳)관영조(管寧 條)에 의하면, 관영이 55년 동안 나무로 만든 탑상(榻牀)에 앉아 있었는데, 단정한 자세를 한번도 잃은 적이 없었으므로, 무릎 닿는 곳에 모두 구멍이 뚫렸다[榻上當膝皆穿]고 한다.

 

관예찬영(貫蕊餐英)

화심(花心)을 꿰고 꽃으로 밥 짓는다.

 

관왜궁(館娃宮)

() 이른다. 오왕(吳王) 부차(夫差)서시(西施)를 총애하여 거처하게 했던 궁이다.

 

관요(寬饒)

() 나라 합관요(蓋寬饒)를 말하는데, 성품이 강직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한서(漢書)卷七十七

 

관용방(關龍逄)

고대 하걸(夏桀)의 충신이다. 하걸이 주색(酒色)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직간(直諫)하다가 끝내 피살되었다. 십팔사략(十八史略)』 「하기(夏紀),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

 

관우(關右)

함경도 지방을 말한다.

 

관원옹(灌園翁)

농부가 되었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상군전(商君傳)조량(趙良)이 상군(商君)을 보고 말하기를 그대의 위태로움이 아침 이슬과 같으니, 빨리 십오도(十五都)에 들어가 비() 땅에 관원(灌園)하지 않겠는가?’라 하였다.”고 하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관원은군자(灌園隱君子)

옛날에 오릉중자(於陵仲子)는 숨어살면서 남의 채소밭에 물을 주었다.

 

관월사(貫月査)

배를 말한다. 습유기(拾遺記) 당요(唐堯)요 임금이 황제 자리에 오른 지 30년 되던 해에 큰 나무 등걸이 서해 바다에 떠 있었는데, 등걸 위에서 빛이 발하여 낮에는 밝다가 밤에는 사라졌다. 등걸은 항상 사해(四海)를 떠돌아 다녔는데, 12년마다 하늘을 한 바퀴 돌았다.”라고 하였다.

 

관유안(管幼安)

유안(幼安)은 삼국(三國) 시대 위() 나라 관영(管寧)의 자이다. 그는 천성이 고결하여 벼슬에 뜻이 없었고,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피하여 요동(遼東)으로 옮겨 살면서 시서(詩書)를 강하고 예의(禮儀)를 논하며 일생을 마쳤다.

 

관윤(關尹)

() 나라 관령(關令) 윤희(尹喜)를 말한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관윤오천언(關尹五千言)

관윤은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함곡관윤(函谷關尹)을 지낸 윤희(尹喜)를 말하는데, 노자(老子)가 서역(西域)에 갈 때 도덕경(道德經)오천언(五千言)을 그에게 주었다 한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관이불천(盥而不薦)

정성껏 공경함을 말한다. 주역(周易)』 「관괘(觀卦)손 닦고 천드리지 않음 같으면 믿음직하여 백성들이 우러러보리라[觀盥而不薦有孚顒若].”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사에서 첫 술잔을 올려 강신(降神)한 뒤부터는 아무래도 정성이 처음만 같지 못하므로 한 말이다.

 

관이오(管夷吾)

춘추시대(春秋時代) 제 환공(齊桓公)의 재상이다. 그의 공로로 환공은 패후(覇侯)가 될 수 있었다. 자가 중()이라서 흔히 관중(管仲)이라 부른다.

 

관인대도(寬仁大度)

마음이 너그럽고 인자하며 도량이 넓음을 이른다.

 

관잉십순(官剩十旬)

삼국 때 위() 순상(荀爽)이 포의(布衣)로부터 일어나 95일에 삼공에 이르렀다.

 

관자(管子)

삼국 시대 때 위() 나라 사람인 관녕(管寧)으로, 황건적(黃巾賊)의 난리 때 요동(遼東)으로 몸을 피하였는데, 학문이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으며, 문제(文帝)와 명제(明帝)가 벼슬을 내려 불렀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11

관중의 저서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관중의 업적을 중심으로 하여 후대의 사람들이 썼고,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한대(漢代)에 걸쳐서 성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머리말에는 86편이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10편과 1()가 빠져 있다. 내용은 법가적(法家的) 색채가 농후하고, 때로는 도가적(道家的)인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에 한서(漢書)에서는 도가(道家), 수서(隋書)에서는 법가(法家)에 넣고 있다. 정치의 요체(要諦)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가르치며, 신명(神明)을 공경하도록 하는 세 가지 일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일이 으뜸이라고 하였다. 부민(富民입법(立法포교(布敎)를 서술하고 패도정치(覇道政治)를 역설(力說)한다.

 

관자재(觀自在)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이명(異名)으로, 모든 사리(事理)에 아무런 장애가 없이 환히 달관(達觀)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관잠(冠簪)

관과 비녀로 문명과 예의의 상징인데 곧 중국을 말한다.

 

관잠칠사(官箴七事)

훌륭한 수령이 갖춰야 할 일곱 가지 조목, 즉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을 말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吏典 考課

 

관저(關雎)

왕과 왕후의 금슬 좋은 덕을 이른다. 관저는 시경(詩經)주남(周南)의 편명인데, 여기에서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금슬 좋은 덕을 노래하였다. 내용은 關關雎鳩 在河之洲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轉轉反側 參差荇菜 左右采之 窈窕淑女 琴瑟友之 參差荇菜 左右芼之 窈窕淑女 鍾鼓樂之라는 것으로 320구이다.

 

관저재하주(關雎在河洲)

관저(關雎)시경(詩經)주남(周南) 관저(關雎)의 편명. 이는 문왕(文王) 후비(后妃)의 덕을 상징한 것이다.

 

관저풍화(關雎風化)

시경(詩經)국풍 주남(周南) 관저(關雎)주 문왕(周文王)과 그 후비(后妃)의 성덕(盛德)을 읊은 시로, 임금의 금슬 좋은 덕이 아랫사람에게 이름을 말한다.

 

관적사(觀寂寺)

황해도 곡산군 멱미면 마하리 오륜산(五倫山)에 있는 절이다.

 

관적인(觀寂忍)

()은 진리(眞理)를 관찰하는 것이다. ()은 마음이 적정(寂靜)한 것이고, ()은 세속의 괴로움과 즐거움에 참아서 동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불법에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육도(六度)가 있는데, 여기의 관()은 지혜요, ()은 선정이고, ()은 인욕에 해당되는 것이다.

 

관절(關節)

세력 있는 당로자(當路者)에게 빌붙어 벼슬을 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관정(灌頂)

여러 부처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물로써 보살의 정수리에 붓는 것. 등각(等覺)보살이 묘각위(妙覺位)에 오를 때에 부처가 그에게 관정하여 불과(佛果)를 증득(證得)케 한다.

 

관존민비(官尊民卑)

관리는 높고 귀하며,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관주(觀周)

공자(孔子)가 주() 나라 서울을 관광(觀光)하고 주()의 옛 문화를 찬미하기를 내가 이제야 주공(周公)의 성인(聖人)임과 주()의 왕()된 것을 알겠노라.”라 하였다.

 

관주악(觀周樂)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계찰(季札)이 상국(上國)을 역방하면서 당세의 이름난 사대부들과 교유를 맺고, () 나라에 들러 주() 나라의 음악을 들어 보고는 열국(列國)의 치란흥망을 알았다고 하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31

 

관주오계자(觀周吳季子)

계자(季子)춘추시대(春秋時代)의 연릉 계자(延陵季子) 계찰(季札)로서, () 나라에 사신으로 가 주() 나라의 음악을 살펴보고 열국(列國)의 치란 흥망을 알았다고 한다. 사기(史記)31

 

관중(關中)

감숙성(甘肅省) 동부의 산지(山地)에서 발원(發源)하여 섬서성(陝西省) 중부를 흐르는 위수(渭水; 황하의 큰 지류) 유역의 평야(분지)를 가리킨다. 옛부터 정치군사상의 요지로서 주()()()()나라는 이곳을 중심지로 삼았다.

 

관중(管仲)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부국강병책을 써서 이적(夷狄)을 물리치고 주() 나라 왕실을 높이면서 천하를 일광(一匡)했던 명신(名臣)이다. 사기(史記)62

 

관중규표(管中窺豹)

대롱 구멍으로 표범을 보면 표범의 털 무늬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겨우 그 일부분의 무늬 밖에 보지 못하므로, 전하여 소견의 좁음을 비유한다.

 

관중유(灌仲孺)

중유는 관부(灌夫)의 자()이다.

 

관중증사제공구(管仲曾射齊公鉤)

()관중(管仲)이 처음에는 공자 규(公子糾)를 섬기면서 환공(桓公)과 싸워 환공의 혁대고리를 쏘아맞춘 적이 있었는데, 뒤에 포숙아(鮑叔牙)의 추천으로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루었다. 사기(史記)62 관안열전(管晏列傳)

 

관중지천(管中之天)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본다는 말이다. 곧 소견이 좁은 것을 이른다.

 

관진(觀津)

한나라 때 기주자사부(冀州刺史部) 신도군(信都郡) 무읍(武邑)에 속한 고을로 지금의 하북성 무읍현 경내다.

 

관집(鸛集)

벼슬길에 오를 길조(吉兆)라는 뜻이다. 후한서(後漢書)』 「양진전(楊震傳)어느 날 양진의 강당(講堂) 앞에 황새가 전어(鱣魚) 3마리를 물고 날아들었는데, 도강(都講)이 말하기를 전어는 경대부(卿大夫) 옷의 상징이요 셋은 삼태(三台)를 본받은 것이니, 선생님은 앞으로 높은 벼슬에 오를 것입니다.’라 했다.”고 하였다.

 

관차(官差)

예전에, 관아에서 파견하는 군뢰, 사령 따위의 아전을 이르던 말이다. / 인용: 戊子秋哀丐者(송규빈)

 

관채유언(管蔡流言)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주 무왕(周武王)의 아우요, 주공(周公)의 형들로 사기(史記)에 이르되, 무왕이 붕어하고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린 탓에 주공이 섭정하니 관·채가 나라에 말을 퍼뜨리되 공이 장차 어린애에게 이롭지 못하리라[管蔡流言放國曰 公將不利於孺子]”라고 해서 주공이 황공하여 동도로 피했더니, 뒤에 성왕이 주공을 맞아 돌아오매 그들이 모반하였다. 왕이 주공에게 토벌을 명하여 그들을 잡아 죽였다. 사기(史記)』 「관채세가(管蔡世家)

 

관추명성장(鸛鶖鳴聲長)

비가 올 것 같은 분위기를 묘사한 것으로 길 떠나는 고달픔을 암암리에 의미하고 있다. 장차 비가 오려 하면 물을 좋아하는 왜가리가 좋아서 운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시경(詩經)빈풍(豳風) 동산(東山)

 

관포지교(管鮑之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때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두터운 우정(友情)을 얘기한 것으로,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交友)관계를 말한다. 사기(史記)62 관안열전(管晏列傳)/ 유의어: 관포의(管鮑義), 관포정(管鮑情), 관포(管鮑)

 

관풍(觀風)

관찰사(觀察使)는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기 때문에 관풍이라 한 것이다.

 

관풍사(觀風使)

왕명을 받들어 지방을 순시하며 풍속과 기강을 살펴 처치하는 관원, 즉 어사(御史)를 말한다.

 

관한경(關漢卿)

호는 기재수(己齋叟), () 대도(大都) 사람이다. 잡극 두아원(竇娥寃), 구풍진(救風塵) 등의 작자이다.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를 명대의 어떤 사람은 관한경이 지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왕실보가 짓고 관한경이 이었다고 한다.

 

관해소당요(觀海笑堂坳)

맹자(孟子)』 「진심(盡心)바다를 본 이에게는 웬만한 물은 양에 차지 않는다(觀於海者難爲水)”는 말이 있고,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움푹 패인 땅 바닥(坳堂)에 한 잔의 물을 부어 놓으면, 지푸라기야 배처럼 둥둥 뜨겠지만 잔을 놓으면 바닥에 붙어 버릴 것이니, 이는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관향(貫鄕)

시조(始祖)의 고향. (), 본관(本貫), 선향(先鄕). 호적이 소재하는 본적(本籍), 원적(原籍)과는 다르다.

 

관헌(灌獻)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하는 것을 말한다.

 

관현(冠縣)

문경(聞慶)의 고호이다.

 

관형(關荊)

()의 화가(畫家) 관동(關仝)과 형호(荊浩)를 이른다.

 

관혼상제(冠婚喪祭)

성인 의식(冠禮), 결혼 의식(婚禮), 장례 의식(喪禮), 제사 의식(祭禮) 이를 통틀어 4(四禮)라 한다.

 

관홍뇌락(寬弘磊落)

마음이 너그럽고 신선하여 작은 일에 거리끼지 아니한다. / 유의어: 뇌락지상(磊落之象), 호연지기(浩然之氣).

 

관황(官黃)

모란(牧丹)의 별칭이다.

 

관회(管灰)

사물이 점점 피어오름을 비유하는 말이다. 진서(晉書)』 「율력지(律曆志)갈대 속의 막()을 태운 재를 관() 속에 넣어 두면, 동지에 그 재가 동쪽을 향하여 난다.”라는 말에 대한 주에 이는 동지가 되면 일양(一陽)이 생겨 천기(天氣)가 점점 길어진다는 것을 말한다.’라 하였다.

 

관회증비백(管灰曾飛白)

이는 회관(灰管)을 관회로 바꾸어 쓴 것인데 옛날 22개의 율관(律管)에 갈청의 재를 담아 놓고 시기의 변화를 조사한 기구이다. 진서(晉書)』 「율력지(律曆志)또 시일(時日)은 해의 그림자에 맞추고 지기(地氣)는 회관에 맞춘다. 그러하기 때문에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루면 그림자가 제때에 이르고 율기(律氣)가 호응하면 갈청의 재가 날린다.”고 하였는데, 시기가 이미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관회허(管灰噓)

옛날에 율관(律管)에 갈대를 태운 재를 넣어서 계절이 지날 때마다 날리게 했다 한다. 이 회관(灰管)은 해시계(日晷, 圭影)와 함께 고대에 절기 변화를 측정하던 기구이다. 동지(冬至)가 지나면 음기(陰氣)가 끝나고 양기(陽氣)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관휴(貫休)

오대(五代)의 중으로, 속성은 강씨(姜氏), 자는 덕은(德隱), 불상을 잘 그리고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시를 잘 지었다. ()의 임금 왕건(王建)은 그를 존대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불렀었다.

 

관휴재하주(關睢在河洲)

주 문왕(周文王)이 덕이 있으므로, 봉황이 그 도읍의 기산(岐山)에서 울었다 하여 시경(詩經)의 첫 편 관저편(關雎篇)에 있는데 관관(關關)한 저구(雎鳩) 새가 하수의 언덕에 있다[關關雎鳩, 在河之洲].”라 하였다. 그것은 부부(夫婦)의 화합함을 읊은 시()로써 주 문왕의 덕화를 칭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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