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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15. 오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15. 오

건방진방랑자 2020. 4. 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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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

큰 거북. 봉래산을 등에 지고 넓은 바다에서 논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가(吳歌)

슬프고 상심스러운 정을 읊은 노래를 말하는 데, 대표적인 것이 이백(李白)자야오가(子夜吳歌)이다.

 

오가시(吳家詩)

역시 이옹에게 준 시 중의, “例及吾家詩 曠懷掃氛翳에 보인다.

 

오간(烏干)

백제 온조왕의 신하. 주몽(朱蒙)의 첫 부인에게서 난 유리(類利)가 태자가 되자, 둘째부인의 소생인 온조가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남으로 한산(漢山)에 이르러 백제국을 세웠는데, 온조가 남하할 때 오간 등 10여 인을 데리고 왔다 한다.

 

오강여노기(吳江餘怒氣)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 나라 사람인 오자서(伍子胥)의 한이 남아 있다는 뜻이며, 오강은 전당강(錢塘江)을 말한다. 오자서는 초 나라의 평왕(平王)이 그의 아버지와 형을 살해하자 오() 나라로 도망가서 오왕(吳王)합려(闔廬)를 도와 초 나라를 정벌하여 부형의 원수를 갚았으며, 합려의 뒤를 이어 부차(夫差)가 즉위하자 월() 나라를 정벌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월왕 구천(句踐)이 강화를 요청하자 오자서가 이에 반대하였으나 부차가 허락하였다. 그 뒤 오 나라 태재(太宰) ()가 월 나라의 뇌물을 받아먹고 오자서를 참소하자, 부차가 검을 하사하여 자결하게 하였다. 이에 오자서가 그의 사인(舍人)에게 말하기를, “나의 눈알을 빼어 오 나라 동문(東門)에다가 걸어 놓아 월 나라 사람들이 들어와서 오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라.” 하고는 자결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오왕은 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말가죽 부대에 담아 오강(吳江)에 던져 버렸다. 사기(史記)卷六十六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오갱(吳秔)

중국 강동 지방의 벼로서, 질이 좋은 쌀을 말한다.

 

오거(五車)

혜시(惠施)가 학문이 넓어서 책이 다섯 수레나 되었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오거서(五車書)

다섯 수레의 책이란 뜻으로 책이 많음을 말한다. 당 나라 이의산(李義山)의 시에, “내가 붓을 들면 곧 천자를 지으니, 내가 다섯 수레 책을 읽었는가 의심되네[顧我下筆卽千字 疑我讀書傾五車].”하였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오거지서(五車之書)

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많은 책.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에 실을 만한 책을 읽어야 한다. 장자(莊子)』 「천하(天下)(男兒須讀五車書)

 

오거한우(五車汗牛)

오거서는 다섯 수레에 가득 실을 만한 많은 장서(藏書)를 말하는데, 즉 이 수레를 끌려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리게 된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장자(莊子)』 「천하(天下)

 

오건(烏犍)

물소(水牛)의 별명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바로 관산 내려가 채주로 들어가서, 오건 삼백 마리쯤 한번 사 볼거나[却下關山入蔡州 爲買烏犍三百尾].”하였는데, 자주(自注)그 지방에서 물소가 생산된다.” 하였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20 過新息 留示鄕人任師中

 

오건(烏巾)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여 사는 자가 쓰는 검은색의 두건을 말한다.

 

오격진황닉하비(誤擊秦皇匿下邳)

장량(張良)은 그의 조부와 아버지가 한()나라 정승으로 있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이 한()을 멸망시키자 장량이 원수를 갚으려고 만금(萬金)을 아끼지 않고 역사(力士)를 구하여 진시황이 박량사중(博浪沙中)에 놀러 갔을 때에 역사를 시켜 철퇴로 진시황을 습격하였다가 맞히지 못하고 그릇 다음 수레를 맞혔다. 장량은 망명하여 하비(下邳)에 숨었다.

 

오견(烏肩)

도인(道人)이 한 자리에 오래 앉아서 선()을 닦으므로 어깨에는 까마귀가 집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오경(五更)

나이 많은 늙은이. 삼로오경(三老五更).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

 

오경(五經)

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예기(禮記)ㆍ춘추(春秋).

 

오경(五莖)

전욱씨의 악가로서, 그 뜻은 대체로 전욱씨가 오덕(五德)의 근경(根莖)을 얻었음을 칭송한 것이다

 

오경사(五經笥)

()나라 변소(邊韶)가 제자 수백 명을 교수(敎授)하였는데, 하루는 낮잠을 자고 있으니 제자들이, “배가 뚱뚱하여 낮잠만 잔다.”고 조롱하는 글을 지었다. 변소는 그 글을 보고 글을 짓기를, “뚱뚱한 배는 오경 상자[五經笥].” 하였다.

 

오경선도용(鼇擎仙島聳)

한림원(翰林苑)에 벼슬한 것을 말한다. 전설에 오산(鰲山)은 신선이 산다는 곳인데, 한림원이 청현직(淸顯職)이기 때문에 신선이 되는 것에 비유한 데서 온 말이다. ‘마조상 상경한원 서회시(馬祖常 上京翰苑 書懷詩)’오봉객을 다시 볼 줄 누가 알았으리, 하얀 귀밑머리 바람에 나부끼네[誰知重見鼇峯客 颯颯臨風鬚已星]” 하였다.

 

오계연장리(五溪煙瘴裡)

오계(五溪)는 후한(後漢)마원(馬援)이 남방 만족(蠻族)을 정벌한 산 이름이다. 마원이 남만(南蠻)을 칠 때, 그 지역이 고온 다습하여 독기(毒氣)가 자욱하게 끼었기 때문에, ‘솔개가 날다가도 물속으로 툭툭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仰視飛鳶跕跕墮水中)’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오계자(吳季子)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공자 계찰(季札)을 가리킨다. 열국(列國)에 사신으로 나가 풍속을 살폈으며, 특히 노() 나라에서 각국의 음악을 들어 보고는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평가를 내렸던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31 오태백세가(吳太白世家)

 

오계찰(吳季扎)

춘추시대(春秋時代) ()의 왕자 계찰이 어진 이름이 있어 여러 나라를 역방했으며, ()를 방문하여 주()의 예악(禮樂)을 보고 열국(列國)의 치란(治亂) 흥쇠(興衰)를 알았다.

 

오고(五袴)

다섯 벌의 바지란 말로 고을 수령이 정사를 잘하여 부유(富裕)함을 뜻한 것이다. () 나라 염범(廉范)은 자가 숙도(叔度)였는데, 그가 촉군(蜀郡)의 태수(太守)가 되어 갔을 때 그곳은 옛부터 물자가 풍성하고 집들이 즐비하게 붙어 있었으므로 항상 화재 예방을 위하여 백성들의 밤 활동을 금하여 왔었다. 그러나 서로 숨기기만 할 뿐 화재는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에 염범이 부임하여서는 전번의 금령을 폐지하고 화재 예방책으로 각자 물만을 많이 저장해 두도록 엄히 당부하고 활동을 마음대로 하게 하였던 바 백성들이 기뻐 노래하기를, “염숙도여! 왜 이리 늦게 왔소. 금화(禁火)를 하지 않으니 백성들 활동이 편하여 한평생 속옷() 하나도 없다가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요.” 하였다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염범전(廉范傳)

 

오고가(五袴歌)

백성들이 편안한 가운데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칭송하는 노래이다. 후한(後漢)의 염범(廉范 ()는 숙도(叔度))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나가 불편한 법령을 없애는 등 민생(民生) 위주의 정사를 펼치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염숙도여 어찌 이리 늦게 왔는가. 평생에 속옷도 입지를 못했는데 지금은 바지가 다섯 벌이나 되는구나.(廉叔度 來何暮 平生無襦 今五袴)”라고 한 고사가 전해 온다. 후한서(後漢書)』 「염범전(廉范傳)

 

오고대부(五羖大夫)

백리해(百里奚)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현신(賢臣)으로 불우하게 떠돌아다니다가 잘못 초() 나라에 억류되었는데, 이때 진 목공(秦穆公)이 그의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는 암양[] 가죽 다섯 벌을 초 나라 사람에게 주고 억류된 백리해를 데려와 정승으로 삼았다. 그래서 백리해를 오고대부라고도 한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

 

오고속(五羖贖)

오고는 오고대부(五羖大夫)인 백리해(百里奚)를 말하는데, 백리해가 초() 나라에 잡혀 있을 때 진 목공(秦穆公)이 염소 가죽 다섯 벌로 속()바치고 데려다가 국정(國政)을 맡겼다 한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

 

오고저(五鈷杵)

금강저(金剛杵)라고도 한다. 승려들이 수법(修法)할 때에 쓰는 도구의 하나. 쇠나 구리로 만드는데, 양 끝을 한 가지로 만든 것을 독고(獨鈷), 세 가지로 만든 것을 삼고(三鈷), 다섯 가지로 만든 것을 오고(五鈷)라 한다. ()는 본디 인도의 무기. 금강저는 보리심(菩提心)의 뜻이 있으므로 이를 갖지 않으면 불도 수행을 완성하기 어렵다 한다.

 

오곡불능분(五穀不能分)

오곡도 가릴 줄 모른다. 자로(子路)가 공자의 행방을 묻자, 하조장인(荷蓧丈人)이 공자를 비평하며 한 말이 있다. 논어(論語)』 「미자(微子)

 

오골(傲骨)

남에게 굽히지 않는 자존심 강한 성격이다. 이백(李白)허리 사이에 오골을 갖고 있다[腰間有傲骨]”는 평을 들었다.

 

오관(五官)

사람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으로서, 즉 시각의 눈(), 청각의 귀(), 미각의 입(), 후각의 비(), 촉각의 피부()를 말한다.

 

오관산곡(五冠山曲)

오관산은 고려가요로 효자 문충(文忠)이 지은 것으로 곧, 목계가(木鷄歌)이다. 충이 오관산 밑에 살았는데, 어머니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다. 그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오관산과 서울과의 거리가 30리나 먼 길이었는데도 어머니를 봉양코자 아침에 나갔다가 저물면 돌아오며 정성(定省)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늙어감을 탄식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이제현(李齊賢)이 한시로 번역하되, “나무조각으로 조그마한 수탉을 만들어서 젓가락으로 집어다 벽의 홰에 앉혔네. 이 새가 꼬끼오 울어 때를 알릴 때, 어머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기누나.” 하였다. 고려악사(高麗惡史)』 「악지(樂志)

 

오교(五交)

다섯 가지 사귐. 유준(劉峻)의 광절교론(廣絶交論), “세교(勢交), 회교(賄交), 담교(談交), 군교(軍交), 양교(量交)의 무릇 다섯 가지 교우(交友)를 장사의 물건 팔기와 같다.” 하였다.

 

오교(五校)

오위(五衛) 곧 의흥위(義興衛)ㆍ용양위(龍驤衛)ㆍ호분위(虎賁衛)ㆍ충좌위(忠佐衛)ㆍ충무위(忠武衛)를 이른다.’는 군영(軍營)의 뜻이다.

 

오교장(午橋莊)

() 나라 때의 재장 배도(裵度)가 오교에 지은 별장 이름인데, 대단히 넓은 동산에 화목(花木)이 만여 그루나 되고 호화스럽기로 유명하였다.

 

오구(吳鉤)

()는 칼과 비슷하면서 구부러진 모양의 병기. 오왕(吳王) 합려(闔閭)의 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날이 잘 선 칼을 말한다.

 

오구(奧區)

깊은 지역이라는 뜻으로 나라의 한복판을 말하는데 오구(隩區)라 하기도 한다.

 

오구(隩區)

산이 높고 골이 깊어 풍수지리학상으로 명당인 곳을 가리킨다. 오구(奧區)라고도 한다. 참고로 당 예종(唐睿宗)의 능을 읊은 두보(杜甫)교릉시(橋陵詩)’영원토록 오구와 함께 보전될 곳, 물이며 언덕이며 아스라히 멋지도다[永與奧區固 川原紛眇冥].”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3

 

오구(吳鉤)

허리에 차는 예리한 칼로 칼끝이 활처럼 굽은 만형(彎形)의 도검(刀劍)의 이름이다.

 

오구수왕(吾丘壽王)

한 무제 때 보정(寶鼎)이 발견되자 뭇 신하들이 주대(周代)의 보정을 얻게 되었다면서 축하를 하였는데, 오구수왕이 유독 이의를 제기하면서 하늘이 주() 나라의 덕에 응하여 내주었기 때문에 주정(周鼎)이라고 말하는 것일 뿐이니, …… 일단 지금 나온 이상에는 한()의 보정이라고 해야지 주()를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무제로부터 상을 받은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오구수왕전(吾丘壽王傳)

 

오국거연순이주(五國居然巡二主)

북송(北宋) 정강(靖康) 2년에 금() 나라 군대가 남하하여 송 나라의 수도인 변경(汴京)을 함락시키고 휘종(徽宗)과 철종(哲宗) 두 황제와 황족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건을 말한다.

 

오국성(五國城)

지금의 흑룡강성(黑龍江省) 일대에 있는 성이다.

 

오국지고수(五國之孤囚)

() 나라 휘종(徽宗)이 조그마한 지방 때문에 금() 나라와 강화조약을 어기다가, 금 나라의 침입을 받아서 부자가 포로가 되어, 오국성(五國城) 곧 지금의 회령(會寧)으로 잡혀가서 한 욕을 당하고 죽었다.

 

오궁(五窮)

가난을 맡은 귀신. 한유(韓愈)송궁문(送窮文)나를 궁하게 만든 다섯 가지 귀신이 있으니,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이다.” 하였다.

 

오궤(烏几)

오피궤(烏皮几)의 준말로, 까만 염소 가죽을 덮어 만든 좌구(坐具)나 와구(臥具)로 자그마한 궤안(几案)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 21 조우불득귀양서감림(阻雨不得歸瀼西甘林)검은가죽 씌운 궤 먼지를 털고 나무꾼 목동 노래 즐겨 듣노라[拂拭烏皮几 喜聞樵牧音].”에서 나온 것으로 흔히 고향을 그릴 때 인용한다.

 

오궤온간남곽은(梧几穩看南郭隱)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南郭子綦 隱几而坐 仰天而噓 嗒焉似喪其耦라 하였다.

 

오귀(烏鬼)

가마우지를 말한다. 남쪽 지방 사람들은 가마우지를 집에서 길러 고기잡이를 하는데, 가마우지의 목을 새끼줄로 묶어 가마우지가 고기를 잡은 다음 삼키지는 못하게 해서 그 고기를 빼앗는다고 한다.

 

오귀(五鬼)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는 다섯 종류의 귀신. 즉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으로 이 다섯 귀신이 붙어다니며 사람을 곤궁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곧 모든 걱정거리 또는 액운을 말한다. 한유(韓愈)송궁문(送窮文)

 

오귀종유(五鬼從愈)

타고난 가난은 면할 수가 없음. ()한유(韓愈)송궁문(送窮文)을 쓰면서, 지궁(智窮)ㆍ학궁(學窮)ㆍ문궁(文窮)ㆍ명궁(命窮)ㆍ교궁(交窮)이상 다섯 궁귀(窮鬼)가 자기를 따르고 있다고 하였다.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

 

오극(鰲極)

삼신산(三神山)은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모두 큰 거북 등 위에 있어서 큰 거북이 움직이는 대로 산이 이동한다고 한다. 그 산이 있는 곳은 대개 동해 바다이다. 그래서 동해가 다한 곳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오극(鰲極)

하늘과 땅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을 말한다. 옛날 여와(女媧)가 자라의 다리를 잘라서 사극(四極)을 세웠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기(史記)』 「삼황기(三皇紀)

 

오극삼조(五劇三條)

복잡한 시가를 표현한 말이다. () 나라 노조린(盧照隣)의 장안 고의(長安古意) 시에 남쪽의 언덕 북쪽의 당()이 북쪽 마을에 연하고 다섯 극()과 세 조()가 세 저자를 끼었다.” 하였다.

 

오금(鰲禁)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이다.

 

오기(五紀)

()ㆍ월()ㆍ일()ㆍ성신(星辰)ㆍ역수(曆數)

 

오기(五技)

순자(荀子)』 「권학(勸學)교룡은 발이 없어도 잘도 나는데, 땅강아지는 다섯 가지 기술을 지녔으면서도 궁하기만 하다[螣蛇無足而飛 鼫鼠五技而窮].”하였는데, 그 주()날 수는 있어도 지붕 위에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나무를 타고 올라갈 수는 있어도 꼭대기까지는 가지 못하며, 헤엄을 치기는 해도 골짜기를 건너가지는 못하고, 구멍을 팔 수는 있어도 몸을 가리지는 못하며, 달릴 수는 있어도 사람보다 먼저 가지는 못하니, 이것을 오기(五技)라고 한다.” 하였다.

 

오기어(吾其魚)

아름답다, ()의 공이여, ()가 아니런들 우리는 물고기가 될 뻔했도다[美哉禹功 微禹 吾其魚乎].” 좌전(左傳)홍수(洪水)를 다스린 ()의 공덕이 아니었더라면 백성들은 물속에 빠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오기종(吳起踵)

오기(吳起)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사람으로 위() 나라에서 벼슬하였는데, 그가 장군이 되어서는 가장 낮은 사졸들과 함께 의식을 같이하면서 부상당한 사졸의 고름을 빨아주는 등 동고동락하자 군사들이 싸움에 임하여서 죽음을 무릅쓰고 진격하였다. 사기(史記)卷六十五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오난설(吳蘭雪)

청 나라 강서(江西) 동향인(東鄕人)인데, 이름은 숭량(嵩梁), 호는 연화박사(蓮花博士) 또는 석계노어(石溪老漁)라고 한다. 내각중서(內閣中書)를 지냈으며 시재(詩才)는 황경인(黃景仁)과 대등하였다. 서실 이름은 향소산관(香蘇山館)이며 저술로는 향소산관집(香蘇山館集)이 있다.

 

오노(烏奴)

오손(烏孫)으로, 서역에 있는 오랑캐이다.

 

오농(吳儂)

광운(廣韻), “() 사람들이 자신들을 아농(我儂)이라 하고 다른 사람을 거농(渠儂)이라 한다.” 하였다.

 

오뇌(懊惱)남녀 간의 사랑이 좌절되어 고뇌하는 내용의 노래로, 본디 악부(樂府)의 오성(吳聲) 가곡 이름이다. 오뇌가ㆍ오농곡(懊儂曲)ㆍ오농곡(懊憹曲)이라고도 한다. / 인용: 懊惱曲(신국빈)

 

오능호(五陵豪)

서울 부호(富豪)의 자제들을 가리킨다. 오릉은 함양(咸陽) 부근에 있는 서한(西漢) 다섯 황제의 능인데, 이곳에 능을 세울 때마다 사방의 부호들을 옮겨 와 살도록 했기 때문에 이런 뜻이 생겼다.

 

오대(烏臺)

한나라 때에 어사대의 앞 나무에 까마귀가 많이 모이므로 오대(烏臺)라 하였다.

 

오대백간(烏臺白簡)

오대(烏臺)는 사헌부의 별칭이고, 백간(白簡)은 탄핵 상소문이다.

 

오대부(伍大夫)

춘추시대(春秋時代) 초 나라의 오자서(伍子胥)를 말한다.

 

오대부송(五大夫松)

진시황(秦始皇)이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을 하고 내려올 적에 폭풍우를 만나 근처의 소나무 아래로 피신하였는데, 그 소나무가 자기에게 공을 세웠다고 하여 오대부(五大夫)에 봉해 준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卷六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오대사(烏臺使)

사헌부에서 보낸 차인(差人)을 말한다. () 나라 어사대(御史臺)에 까마귀가 서식했기 때문에 오대(烏臺)라 불렀던 고사가 있다.

 

오대시안(烏臺詩案)

붕만리(朋萬里)가 편찬한 책 이른다. 소식(蘇軾)이 왕안석의 신법(新法)을 비판하다가 체포되자, 붕만리가 그의 시를 모아서 편찬했다.

 

오대신산(鼇戴神山)

발해(渤海)의 동쪽에 신선이 산다는 영주(瀛州)ㆍ봉래(蓬萊)ㆍ방호(方壺) 등 다섯 산이 있는데, 원래 파도에 밀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래서 상제(上帝)는 책강(策疆)을 명하여 15마리의 큰 자라에게 이들 산을 이고 있게 하였더니, 그 다음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덕(五德)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을 말한다. 한시외전(韓詩外傳) 2머리의 벼슬은 문()이고, 날카로운 발톱은 무()이고, 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용()이고, 먹이를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은 인()이고, 어김없이 새벽의 시간을 알리는 것은 신()이다.” 하였다.

유가에서는 온화, 양순, 공손, 검소, 겸양이고, 법가에서는 지(), (), (), (), ()이고, 불가에서는 怖魔(포마), 乞士(걸사), 淨戒(정계), 淨命(정명), 破惡(파악)이다.

 

오도(於菟)

호랑이의 이명(異名)인데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방언이었다. 좌전(左傳)宣公 四年

 

오도(吾道)

유도(儒道)를 말한다. “吾道 一以貫之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위령공(衛靈公)

 

오도관지(吾道貫之)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노라[吾道一以貫之].”고 공자가 말하였다. 이치로 천하 만사의 이치를 통일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위령공(衛靈公)

 

오도보천추(五道補天陬)

세운(世運)을 되돌이킬 만한 큰 공을 세웠다는 뜻이다. 옛날에 여와(女媧)가 사극(四極)이 폐해지고 구주(九州)가 찢어져서 하늘이 만물을 덮어 주지 못하고 땅이 만물을 실어 주지 못하자, 다섯 색깔의 돌을 녹여서 하늘의 뚫어진 데를 꿰매었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람명훈(覽冥訓)

 

오도비여하지차(吾道非歟何至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나의 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 내가 왜 이런 경우에 이르렀느냐.” 하였다.

 

오도자(吳道子)

() 나라 때의 화가인 오도현(吳道玄)을 말한다. 도자는 곧 오도현의 자이다.

 

오도피우남(吾道被于南)

() 나라 양시(楊時)가 명도(明道) 정호(程顥)에게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명도가 좌객(坐客)들에게 내 도가 남으로 가는군[吾道南矣].” 하였다고 한다. 송사(宋史)428

 

오동시(梧桐詩)

동진(東晉) 때 사마표(司馬彪)가 산도(山濤)에게 준 시. 그 오동시 대략에 높고 높은 오동나무, 남쪽 멧부리에 났구려. 위로는 푸른 구름 위에 치솟았고 아래로는 골짜기를 임했도다. 신세가 외롭고도 위태로워 어디에 내 발을 붙일꼬……반장(班匠)이 날 돌아보지 않고, 아광(牙曠)이 날 알아주지 않으니 어떻게 거문고 비파가 되며 어떻게 좋은 곡조를 뽑으랴. 변화(卞和)가 그윽한 바위 밑에 묻혔으니, 그 누가 좋은 구슬을 증명할꼬.(苕苕梧桐樹 寄生于南岳 上陵靑雲霓 下臨千仞谷 處身孤且危 於何托餘足……班匠不我顧 牙曠不我錄 焉得成琴瑟 何由揚妙曲 卞和潛幽巖 誰能證奇璞)” 하였다.

 

오동일엽(梧桐一葉)

오동 한 잎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 ‘한 가지 구실을 보면 일의 전말을 알 수 있다는 말로 쓰인다.

 

오두(烏頭)

바곳의 덩이뿌리. 성질은 덥고 독성이 있는데 심복통(心腹痛)ㆍ치통(齒痛)등의 치료제로 쓰인다. 뿌리의 모양이 까마귀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토부자(土附子)ㆍ초오(草烏)ㆍ오훼(烏喙)라고도 한다. 제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스승에 비유한다. 사양좌(謝良佐)가 스승 정호(程顥)를 하직하고 돌아갈 때 말하기를 우리들이 조석으로 선생을 따라 행실을 보면 배우고 말씀을 들으면 기억하였으니 비유하자면 사람이 오두(烏頭)를 복용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복용할 때는 얼굴이 윤기가 나고 근력이 강성하지만 갑자기 오두의 힘이 없어지면 장차 어찌될 것인가.” 하였다. 송원학안(宋元學案)卷二十四 상채학안(上蔡學案)

 

오두(五斗)

도연명(陶淵明)오두미 때문에 고을의 작은 관리에게 내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我不能爲五斗米 折腰向鄕里小人].”고 말한 데에서 유래하여 박봉(薄俸)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송서(宋書)93 도잠전(陶潛傳)소식(蘇軾)의 시에 오두미 때문에 수고해도 아직은 머물 만하니, 문 닫고 남 모르는 우울증을 고쳐 보고 싶네[五斗塵勞尙足留 閉關却欲治幽憂].”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5 次韻答邦直子由五首

 

오두(遨頭)

정월부터 4월 사이에 태수(太守)가 들놀이하는 것을 말한다. 노학암필기(老學菴筆記)“419일을 성도(成都)에서 완화일(浣花日)이라 하여 오두연(遨頭宴)두보(杜甫)의 초당(艸堂) 창랑정(滄浪亭)에서 여는데, 성중 사람이 다 나와서 금수(錦繡)가 길을 메웠다.” 하였다. 성도기(成都記)태수(太守)가 두자미(杜子美)의 초당(草堂)에 나와서 놀고 잔치할 때면 사녀(士女)들이 목상(木牀)에서 관람하며 오상(?)이라 하고 태수(太守)는 놀이의 우두머리라는 뜻에서 오두(遨頭)라고 하였다.” 하였다.

촉중(蜀中)의 풍속에 태수(太守)가 놀이하러 나가면 여자들이 길 옆에서 나무 평상에서 구경하는데, 그것을 오상(遨狀)이라 하므로 태수를 오두(遨頭)라 한다. 정월에서부터 나가 놀기를 시작하여 4월이 되면 그만둔다.

 

오두(鼇頭)

큰 자라의 머리에 얹혀 있다는 바닷속의 산 즉 오산(鰲山)을 가리키는데, 여기에는 신선이 산다고 한다.

 

오두관오산(鰲頭冠五山)

오두는 큰 바다자라의 머리라는 뜻으로, 바다자라가 오산(五山)을 머리로 이고 있다는 고사. 열자(列子)』 「탕문(湯問)발해(渤海)의 동쪽에 큰 바다가 있고, 그 바다 가운데 오산이 있다. 오산은 밑둥이 어디에 연결된 곳이 없어 항상 파도에 따라 위아래로 왔다갔다하므로 임금이 큰 바다자라 15마리를 시켜 이 산을 이게 하니, 오산이 비로소 우뚝 서있었다.” 하였다.

 

오두력거(烏頭力去)

오두의 힘이 다한다. 오두는 부자(附子)라는 식물을 말한다.

 

오두미(五斗米)

박봉(薄俸)을 말한다. () 나라 도잠(陶潛)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을 때 군()의 독우(督郵)가 팽택현에 이르자, 아전이 도잠에게 의관을 갖추고 독우를 뵈어야 한다고 하니, 도잠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다섯 말 쌀 때문에 허리를 꺾어 향리의 소인배에게 굽신거릴 수는 없다[我不能爲五斗米折腰向鄕里小兒].”하고는, 즉시 수령의 인끈을 벗어 던지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 「은일전(隱逸傳)도잠(陶潛)

 

오두백(烏頭白)

까마귀 머리가 희어짐.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태자 단()이 진() 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있다가 고국에 돌려보내 주기를 요구하자, 진왕(秦王)이 말하기를 까마귀 머리가 희어지고 말 머리에 뿔이 나면 보내 주겠다[烏頭白 馬生角 乃許耳].”하므로 연단이 하늘을 쳐다보고 탄식하니, 까마귀 머리가 갑자기 희어지고 말머리에도 뿔이 생겨나므로 진왕이 어쩔 수 없이 단을 보냈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돌아갈 기약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燕太子

 

오두변(烏頭變)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태자 단()이 진() 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진왕(秦王)이 무례하게 대하면서 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烏白頭) 말의 머리에 뿔이 나면(馬生角)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풍속통(風俗通)2

 

오두변백(烏頭變白)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진() 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연() 나라 태자 단()이 귀국시켜 줄 것을 간청하자, 진왕(秦王)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말 머리에 뿔이 돋으면 돌려보내 주겠다[烏頭白 馬生角 乃許耳].”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태자 단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자 바로 그런 기적이 나타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연단자(燕丹子)卷上

 

오두연주집(五竇聯珠集)

문재(文才)가 뛰어난 형제의 시문(詩文)을 가리키는 말이다. () 나라 두군(竇群)의 형인 상()ㆍ모()와 아우인 상()ㆍ공()이 모두 낭관(郞官)으로 시문에 뛰어나, 그들 형제의 연주집(聯珠集)이 세상에 유행되었는데, 당시에 이를 일컬어 오두연주(五竇聯珠)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신당서(新唐書)』 「두군전(竇群傳)

 

오두절요(五斗折腰)

도연명(陶淵明)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내 어찌 녹쌀(祿米)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독우(督郵)에게 절을 할 것이냐.” 하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오두해성(五斗解醒)

유령(劉伶)이 술병이 들어 갈증이 심하자 부인에게 술을 구하며 하는 말이 하늘이 유령을 내어 술로 이름을 얻게 했으므로 한 번에 한 곡()씩 마시는데, 닷 말쯤 마시면 술병이 낫는다.” 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오두해정(五斗解酲)

() 나라 유령(劉伶)이 한 번 술을 마시면 한 섬이요 해장할 땐 다섯 말의 술을 마셨다는 五斗解酲의 고사가 전해 온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임탄(任誕)

 

오등(五等)

()ㆍ후()ㆍ백()ㆍ자()ㆍ남() 등 다섯 등급의 작위를 말한다.

 

오란(烏闌)

오사란(烏絲闌)의 준말로, 격자(格子)로 묵선(墨線)을 그어 놓은 종이를 말한다.

 

오량(五緉)

배의 돛대 끝에 부착하여 바람의 방향을 살피는 도구이다.

 

오량(五兩)

뱃사람들이 바람의 세기나 방향 등을 알아보기 위하여 배의 돛대 끝에다가 새 깃털을 매단 것을 말한다.

 

오로(梧老)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을 말한다.

 

오로(五勞)

의서(醫書), “사람의 병드는 원인에 오로(五勞)가 있다.” 하였는데, 심로(心勞)ㆍ신로(腎勞) 등 다섯 가지이다.

 

오로봉(五老峯)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에 있는 여산(廬山)의 높은 봉우리인데 붓끝처럼 뾰족하다. 그래서 이백(李白)의 오로봉시(五老峯詩)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으로 벼루의 먹물을 삼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에 내 뱃속의 시를 쓰련다[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하였다. 산 아래에 이백(李白)이 글을 읽던 곳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주희(朱熹)가 강학(講學)을 하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다.

 

오룡(烏龍)

[]의 이름인데 개가 변하여 용()이 되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온 말이다. 교간오필(橋簡贅筆)

 

오류(五柳)

동진(東晉) 때 은사 도잠(陶潛)이 문 앞에 오류(五柳)를 심어 놓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고,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었다.

 

오류문(五柳門)

도잠(陶潛)은 진()의 고사로 자는 원량(元亮). 일찍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이라 했다.” 하였다. 진서(晉書)』 「도잠전(陶潛傳)

 

오류비(五柳扉)

가난한 선비의 집. () 나라 때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팽택 영(彭澤令)을 팽개치고 고향에 돌아와 문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는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면서 시주(詩酒)로 자락(自樂)하였다.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잠(陶潛)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 자신을 말하였는데, 여기에 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며 또한 성명도 모른다. 집가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는 인하여 오류선생이라 호()하였다.” 하였다.

 

오륜(五倫)

유교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다섯 가지 인륜.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오륜(五倫)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도는 친애에 있으며, 임금과 신하 사이의 도리는 의리에 있고, 부부 사이에는 서로 침범치 못할 인륜의 구별이 있으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벗의 사이의 도리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오릉(五陵)

장안(長安)에 있는 한제(漢帝)의 능으로 곧 고조(高祖)의 장릉(長陵), 혜제(惠帝)의 안릉(安陵), 경제(景帝)의 양릉(陽陵), 무제(武帝)의 무릉(茂陵), 소제(昭帝)의 평릉(平陵)을 말하는데, 전하여 오릉이 있는 장안(長安)을 가리킨 말로, 예부터 장안에는 호유(豪遊)하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백거이(白居易)비파행(琵琶行)에 늙은 기녀(妓女)가 옛일을 회상하며, “오릉(五陵)의 소년들이 다투어 비단 머리싸개를 주었나니, 한 곡조 마치면 붉은 비단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쌓였다네.”라고 하여, 장안의 부유한 집 자제들의 사치스런 풍류를 묘사하고 있다.

 

오릉공자(五陵公子)

오릉은 한() 나라 다섯 황제(皇帝)의 무덤으로, 곧 장릉(長陵; 高帝)ㆍ안릉(安陵; 惠帝)ㆍ양릉(陽陵; 景帝)ㆍ무릉(茂陵; 武帝)ㆍ평릉(平陵; 昭帝)인데, 이 무덤이 모두 장안(長安)에 있고 유협(遊俠) 소년들이 여기에 모여 놀았으므로 이들을 오릉공자라 불렀다.

 

오릉사(於陵士)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고사(高士) 진중자(陳仲子)를 가리킨다. 형 진재(陳載)가 제 나라의 공경(公卿)으로 만종(萬鍾)의 봉록을 받고 있었는데, 이를 의롭지 못하다 여겨 처자와 함께 초() 나라로 옮겨 와 오릉(於陵)에서 살면서 오릉중자(於陵仲子)라고 자칭하였다. 초 나라 왕이 그를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도망쳐서 남의 정원지기를 하였다. 고사전(高士傳)卷中 진중자(陳仲子)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오릉유(五陵遊)

장안(長安) 북쪽에 한() 나라 다섯 황제의 능(五陵)이 있었는데, 이 부근에 한 나라의 호협한 소년들이 모여 서로들 즐겼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한서(漢書)92 원척전(原涉傳)

 

오릉중자(於陵仲子)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진중자(陳仲子)를 말한다. 귀족의 자제로 지나치게 청렴결백하여 자기 형이 받은 녹을 의롭지 않은 것이라 하여 먹지 않으며 자기 어머니가 만든 음식도 먹지 않고, 아내와 함께 오릉현으로 가서 자기는 신을 삼고 아내는 길쌈을 하면서 살아갔다.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오리(傲吏)

번잡한 예법 따위에 구속을 받지 않는 관리라는 뜻으로, 팽택(彭澤)도연명(陶淵明)과 칠원(漆園)장자(莊子)를 비유했던 표현이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오리(傲吏)

자질구레한 예법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고위 관원 앞에서도 기가 꺾이지 않는 말단 관리를 말한다. 칠원 리(漆園吏)로 있던 장자(莊子)에게 초() 나라 사신이 와서 재상(宰相)으로 초빙하려 했을 때 장자(莊子)나를 더럽히지 말고 빨리 꺼지라[亟去 無汚我]”고 하여 물리쳤는데, 이를 두고 진() 나라 곽박(郭璞)오리(傲吏)’라고 일컬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

 

오리무중(五里霧中)

5(2)가 안개 속이다. 깊은 안개 속에서 방향을 분간하지 못해 길을 찾기가 어려운 것처럼, 일의 갈피를 잡기 어려움 또는 일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앞길이 아득함을 이름

 

오리성은(傲吏成隱)

일찍이 몽()이란 곳에서 칠원(漆園)의 벼슬아치가 되었던 장주(莊周)를 이른다. 장주가 칠원의 벼슬아치로 있을 때 초 위왕(楚威王)이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 후한 폐백을 주고 재상으로 맞이하려 하자, 장주가 웃으면서 그 사자에게 이르기를 나를 더럽히지 말고 빨리 가거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卷六十三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오립송(五粒松)

오엽송(五葉松)이다. 한 촉에 다섯 잎이 나오는 소나무로, 그 잎을 말한다. 오렵송(五鬣松), 또는 오수송(五鬚松)이라고도 하는데 도가에서 흔히 그 잎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 생식함으로서 익혀 먹는 화식(火食)을 대신한다. 육구몽(陸龜蒙)의 시에 松齌一夜懷貞白 霜外空聞五粒松의 글귀가 있다.

 

오마(五馬)

() 나라 때에 태수(太守)가 타는 마차는 다섯 마리의 말이 끌었으므로, 태수가 타는 마차 또는 태수를 말한다. 매승시(枚乘詩)사군이 남쪽에서 왔는데 오마가 서서 머뭇거리네[使君從南來 五馬立踟躕]”라고 한 시구가 있고, 남사(南史)』 「유원책전(柳元策傳)원책(元策) 형제 다섯 사람이 나란히 태수가 되니, 당시 사람들이 유씨 문앞에 말 다섯 필이 죽 늘어섰다.’라고 했다.” 하였다.

 

오마객(五馬客)

태수(太守) 즉 지방 수령을 말한다. 본래 태수의 수레에는 네 필의 사마(駟馬) 외에 한 필의 말을 더 붙여 주었다고 한다. 청야록(淸夜錄)

 

오마구엄진지고(烏馬久淹秦地苦)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태자 단()이 진() 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진왕(秦王)이 무례하게 대하면서 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烏白頭) 말의 머리에 뿔이 나면(馬生角) 돌려보내 주겠다.”고 말했던 고사가 전한다. 풍속통(風俗通)2

 

오만(烏蠻)

중국 광서성(廣西省)에 있는 여울인 오만탄(烏蠻灘)을 말한다.

중국 사천성(四川省) 남부, 운남성(雲南省) 동북부 등지에 흩어져 사는 남만(南蠻)의 종족 이른다. 또는 그 지역을 가리킨다. 서부 지역은 백만(白蠻)이라 한다. 당서(唐書)』 「남만전(南蠻傳)

 

오만방자(傲慢放恣)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고 방자함

 

오매(烏昧)

고사리의 이칭. 오매초(烏昧草). ()의 범중엄(范仲淹)이 강회(江淮) 지대를 안무시키고 돌아와서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있는 오매초(烏昧草)를 올리면서, 그것을 육궁(六宮)의 척리(戚里)들에게 보임으로써 사치를 억제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산당사고(山堂肆考)

 

오매불망(寤寐不忘)

잠을 깨는 일과 잠을 자는 일(寤寐), 즉 잠을 깨나 자나 잊지 못한다.

 

오매사복(寤寐思服)

자나깨나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오매초(烏昧草)

들보리의 일종. 송 나라 범중엄(范仲淹)이 강회(江淮)지방의 안무사(按撫使)로 나갔다가 조정에 돌아와 가난한 백성들이 먹고 사는 들보리를 천자에게 올리고, 그것을 육궁(六宮)의 귀족들에게 보여주어 사치를 억제하게 할 것을 청하였다는 데서 인용한 것이다. 산당사고(山堂肆考)

 

오명(五明)

오명은양() 나라 때의 궁전(宮殿) 이름이다.

 

오명계(誤鳴鷄)

파리 소리를 닭이 우는 것으로 착각한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제풍(齊風) 계명(鷄鳴)

 

오모(烏帽)

한어대사전(漢語大詞典)검은색 모자. 옛적 귀인의 평상복이었다가 수당 이후엔 많이 서민이 착용함. 은자의 모자다[黑帽. 古代貴者常服, 隋唐後多爲庶民, 隱者之帽].”라고 쓰여 있다. / 인용: 守吾齋記(정약용)

 

오묘(五廟)

제후(諸侯) 나라의 사당. 천자(天子)의 나라는 칠묘(七廟).

 

오묘(五畝)

오묘지택(五畝之宅)을 줄인 말로 농가(農家)의 한 단위(單位)를 말한다. 맹자(孟子)』 「앙혜왕(梁惠王)

 

오묘경상(五畝耕桑)

오묘의 집터에 뽕나무를 심는다[五畝之宅 樹之以桑].”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맹자(孟子)』 「앙혜왕(梁惠王)

 

오묘지택(五畝之宅)

맹자(孟子)』 「앙혜왕(梁惠王)에 나오는 말로, 한 가족이 살 만한 땅과 집을 말한다.

 

오문(午門)

연경 자금성(紫金城)의 정문이다.

 

오문금방(午門金榜)

오문은 궁성의 문을 말하고, 금방은 대과(大科)의 합격자 명단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그가 장원 급제한 것을 가리킨다.

 

오문련(吳門練)

한시외전(韓詩外傳)안회(顔回)가 공자를 시종하여 일관(日觀)에 올라 오문(吳門)의 말()을 바라보고 한 필의 누인 베로 착각하였는데, 공자는 그것을 말이라고 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오문은(吳門隱)

세상이 자기와 맞지 않아 은거생활을 한다. 한나라 때 왕망(王莽)이 정권을 제멋대로 하자, 자진(子眞)이 하루 아침에 처자도 가정도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떠나 오시문졸(吳市門卒)이라고 변성명을 하고 지내다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한서(漢書)卷六十七

 

오문졸(吳門卒)

() 나라 구강(九江) 수춘(壽春) 사람으로, 자는 자진(子眞)이다. 남창위(南昌尉)를 지내다가 그만두고 고향에서 살던 중, 왕망(王莽)이 정권을 휘두르자 처자를 버리고 떠나 성명을 바꾸고 오시(吳市)의 문지기가 되었다 한다. 한서(漢書)卷六十七 매복전(梅福傳)

 

오미(五味)

()ㆍ함()ㆍ신()ㆍ산()ㆍ고()의 다섯 가지 맛.

 

오방(五坊)

() 나라 때 선휘원(宣徽院)에 소속된, 매 등을 기르면서 사냥에 관한 일을 주관하던 다섯 군데의 직소(職所)로서, 즉 조방(雕坊)ㆍ요방(鷂坊)ㆍ골방(鶻坊)ㆍ응방(鷹坊)ㆍ구방(狗坊)이다. 당서(唐書)』 「백관지(百官志)

 

오방(烏榜)

호수(湖水)에서 노는 배를 말한다.

 

오배(鰲背)

큰 자라의 등에 얹혀 있다는 동해(東海)의 신산(神山)을 말한다.

 

오배분운교(鰲背分雲嶠)

섬들이 솟아 있는 것을 가리킨다. 옛날 발해(渤海) 동쪽의 다섯 산이 파도에 떠밀리자 상제가 다섯 마리의 자라로 하여금 이를 떠받치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배신산(鰲背神山)

발해의 동쪽에 산이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므로 상제(上帝)는 서극(西極)으로 흘러갈까 두려워하여 거오(巨鰲)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머리를 쳐들고 등에 이게 하였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백세금(五百裞金)

장사(葬事)를 후히 지냄을 말한다. ()는 사자(死者)에게 입히는 옷과 이불을 이르는데, () 나라 때 주건(朱建)의 모친이 죽었을 적에 열후(列侯) 등 귀인(貴人)들이 세전(裞錢)으로 부조한 것이 모두 오백 금(五百金)이나 되었던 데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四十三

 

오병(五兵)

()ㆍ수()ㆍ모()ㆍ와()ㆍ극() 등 다섯 가지의 무기를 말한다.

 

오복(五福)

다섯 가지 복으로, 오래 사는 것[], 부유함[]ㆍ안락함[康寧]ㆍ미덕을 닦는 것[攸好德]ㆍ늙어서 죽는 것[考終命]이다.

다섯 가지 복으로, 장수(長壽)ㆍ부귀(富貴)ㆍ건강(健康)ㆍ호덕(好德)ㆍ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오복(五服)

친족 관계의 친소(親疏)를 구별하여 3년에서부터 3개월까지 입었던 옛날 상복(喪服)의 제도로, 참최(斬衰)ㆍ재최(齊衰)ㆍ대공(大功)ㆍ소공(小功)ㆍ시마(緦麻)를 말한다.

 

오복번정백육흉(五福翻丁百六凶)

국가가 환란을 당하는 운세를 맞는 바람에 집안 역시 불행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오복은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나오는 말로 수()ㆍ부()ㆍ강녕(康寧)ㆍ유호덕(攸好德)ㆍ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도가(道家)에서 하늘의 재앙을 양구(陽九)라 하고, 땅의 재앙을 백육(百六)이라 하는데, 33백 년마다 작은 재앙이 일어나고, 99백 년마다 큰 재앙이 일어난다고 한다.

 

오봉(梧鳳)

시경(詩經)대아(大雅) 권아(卷阿), “봉황이 우는구나 저 높은 언덕에서, 오동나무 자라누나 저 산의 동쪽에서[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고 하였는데, 이를 인해 후대에는 정교(政敎)가 화협(和協)하여 천하가 태평한 것을 뜻하게 되었다.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의 호이다.

 

오봉루(五鳳樓)

양 태조(梁太祖)가 낙양(洛陽)에 건축한 대단히 큰 누각인데, 전하여 문장(文章)을 잘 지은 대문장(大文章)에 비유한다.

 

오부(五父)

아버지로서 섬겨야 할 다섯 사람으로 실부(實父)ㆍ양부(養父)ㆍ계부(繼父)ㆍ의부(義父)ㆍ사부(師父)이다.

 

오부(烏府)

어사(御史)가 있는 곳. 어사대(御史臺) 즉 어사가 있는 관청이니 즉 현재의 감사원이다. 옛날 어사대(御史臺) 앞 나무에 까마귀가 많이 모였다 하여 이렇게 말한다. 한서(漢書)』 「주박전(朱博傳)

 

오부(五部)

조선시대에 한성(漢城)에다 중()ㆍ동ㆍ서ㆍ남ㆍ북의 오부를 두고, 부에는 49()을 설치하여 소송(訴訟)ㆍ금화(禁火)ㆍ택지(宅地)ㆍ도로(道路) 등의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대전회통(大典會通)吏典

개경(開京)을 동부ㆍ서부ㆍ남부ㆍ북부ㆍ중부의 다섯 구역으로 나누었던 것을 가리킨다.

 

오불관언(吾不關焉)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로,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한다는 뜻이다. 한유(韓愈)가 지은 쟁신론(爭臣論)정치의 득실 보기를 마치 월나라 사람이 진나라 사람의 살찌고 마른 것을 보듯 했다[視政之得失, 若越人視秦人之肥瘠].”라는 말이 있으니, 우리 속담의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표현과 같다.

 

오불효(五不孝)

다섯 가지 불효의 행동. 곧 게으름, 노름과 술을 즐김, 재물을 좋아하고 자기 처자식만 중하게 여김, 환락을 탐미함, 만용(蠻勇)으로 싸우기를 잘함이다.

 

오비(烏椑)

[]의 일종이다.

 

오비(鰲扉)

학사원(學士院)의 별칭으로 학곡을 가리킨다.

 

오비삼척(吾鼻三尺)

오비체수삼척(吾鼻涕垂三尺), ‘내 콧물이 석 자나 흘러나왔다는 뜻으로 콧물이 흘러나와 나의 사정이 곤궁하기 때문에 남의 사정을 돌아볼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순오지(旬五志)

 

오비이락(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짐. ‘공교롭게도 어떤 일이 우연히 같은 때에 일어나 남의 의심을 받게 됨을 비유. / 유의어: 오비이락 파사두(烏飛梨落 破蛇頭)

 

오비일색(烏飛一色)

날고 있는 까마귀가 모두 같은 빛깔이라는 뜻으로, 모두 같은 종류 또는 피차 똑같음을 이르는 말이다.

 

오사(烏絲)

검은 깁. 즉 오사모(烏紗帽)와 같은 말로 한적한 생활을 상징한 말이다. 남사(南史)』 「앙예장(梁豫章)왕종전(王綜傳)()이 형주(荊州)에 있으면서 항상 평복(平服) 차림으로 미행을 했는데, 오사포(烏紗布)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서 밤이면 나다녔다.” 하였다.

오사란(烏絲欄)의 준말로, 즉 책장의 검은 줄로 그어진 선을 가리킨다.

 

오사(五沙)

이정운(李鼎運)의 호이다.

 

오사(五事)

임금이 정치를 하는 데에 있어 다섯 가지의 요건, 즉 첫째 외모(), 둘째 말(), 셋째 보는 것(), 넷째 듣는 것(), 다섯째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많은 사람들 의견을 묻는다는 뜻으로 자ㆍ추ㆍ모ㆍ탁ㆍ순(咨諏謀度詢)을 말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

수령오사(守令五事)의 준말로 수령이 힘써야 할 다섯 가지 일. 고려 우왕(禑王) 1375전야를 넓히고 호구를 늘리고, 부역을 고르게 하고, 송사를 간편히 하며, 도적을 없애는 것[田野闢, 戶口增, 賦役均, 詞訟簡, 盜賦息]’등 다섯 가지 일로 말했으며, 창왕昌王 1388에는 조준(趙浚)의 상소로 도적을 없앤다는 말 대신 학교를 일으키는 것[學校興]’으로 바꾸고 역시 오사를 가지고 주군을 순찰하였다. / 인용: 牧民心書序(정약용)

 

오사(五祀)

제후(諸侯)가 나라를 위해 지내는 다섯 가지 제사. 즉 사명(司命)ㆍ중류(中霤)ㆍ국문(國門)ㆍ국행(國行)ㆍ공려(公厲), 예기(禮記)』 「곡례(曲禮)王制

 

오사(五蛇)

춘추시대(春秋時代) 진 문공(晉文公)을 따라 천하를 주유(周遊)했던 호언(狐偃)ㆍ조최(趙衰)ㆍ위무자(魏武子)ㆍ사공계자(司空季子)ㆍ개지추(介之推) 이 다섯 사람을 이른다. 진 문공을 용()에 비유하여 이들을 다섯 뱀으로 일컬은 것이다.

 

오사십지거비(悟四十之蘧非)

회남자(淮南子)거백옥(蘧伯玉)은 나이 오십에 사십 구 년의 그릇됨을 알았다.[蘧伯玉行年五十 而知四十九年非]” 하였다. 장자(莊子)』 「칙양(則陽), 논어(論語)』 「헌문(憲問)위령공(衛靈公)

 

오사필의(吾事畢矣)

담담히 죽음을 맞는 사람의 마지막이란 뜻의 고사성어다.

 

오산(鼇山)

발해(渤海) 동쪽에 있는 선산(仙山)을 말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산(吾山)

어산(魚山)으로,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산 이름이다.

 

오산(五山)

동해(東海) 가운데 있는, 신선이 산다는 즉 대여(代輿)ㆍ원교(員嶠)ㆍ방호(方壺)ㆍ영주(瀛洲)ㆍ봉래(蓬萊) 다섯 산을 이르는데, 바다의 큰 자라가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다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산(烏山)

오선산(善山)의 고호이다.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의 호이다.

 

오산(鰲山)

청도(淸道)의 고호이다.

큰 자라의 등에 얹혀 있다는 바닷속의 산. 여기에 신선이 산다고 한다.

한림원(翰林院)을 말한다.

 

오삼계(吳三桂)

요동 사람으로 숭정(崇禎) 연간에 무인(武人)으로 등용되어 총병(總兵)을 거쳐 평서백(平西伯)에 봉해지고 산해관(山海關)을 진수했다. 이자성(李自成)이 명경(明京)을 함락시키고 그의 애첩 진원원(陣圓圓)을 잡아가자 오삼계도 청병(淸兵)을 거느리고 산해관으로 들어가 이자성을 격파하여 평서왕(平西王)을 봉받고 운남(雲南)을 진수했다. 강희 황제가 번병(藩屛)을 철폐하려 하자 반기를 들고 천하도초토병마대원수(天下都招討兵馬大元帥)라 자칭하고 운남(雲南)ㆍ귀주(貴州)ㆍ사천(四川)ㆍ호남(湖南)ㆍ광서(廣西) 등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고 그에 호응하는 자도 나와 주()의 황제를 자칭하고 백관을 두는 둥 청실과 맞서온 형국을 조성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손자 오세번(吳世璠)의 대에 와서 청()에 멸망되었다. 자는 장백(長白)이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오상(遨狀)

노는 평상. 오두(遨頭)

 

오상(五常)

()ㆍ의()ㆍ예()ㆍ지()ㆍ신() 또는 오륜(五倫)을 가리킨다. 아버지는 의리로, 어머니는 자애로, 형은 우애로, 아우는 공경으로, 자식은 효도로 대해야 마땅한 길이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리를 업신여기며 외로이 지키는 절개. 서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고고한 절개라는 뜻으로 가을의 국화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화는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꽃이라 하여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기상과 통한다고 보았다.

 

오색대간(五色臺諫)

황이장(黃爾章)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오색사봉곤(五色絲縫袞)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여러 면에서 보필한 것을 비유한 말인 듯하다.

 

오색와황보공(五色媧皇補空)태고 시대에 와황, 즉 여와씨(女媧氏)가 오색(五色)의 돌을 구워 무너진 하늘을 깁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을 지탱할 기둥으로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회남자(淮南子)』 「람명훈(覽冥訓)

 

오색작(五色雀)

봉황의 별칭인데, 단작(丹雀)이 신농씨(神農氏)에게 볍씨를 물어다 주어 농사짓게 했다는 전설도 전해 온다. 습유기(拾遺記)』 「염제신농(炎帝神農)

 

오색필(五色筆)

5가지 색으로 된 붓이란 뜻인데, 문재(文才)가 뛰어난 것을 비유한다. 육조(六朝) 때 강엄은 남조 양()의 문장을 잘하였는데 만년 꿈에 곽박(郭璞)이라는 자가 내 붓을 자네가 가지고 있은 지 여러 해였으니 이제 돌려다오.” 하므로, 품에서 오색필을 내어 돌려주었다. 그 뒤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아름다운 시를 짓지 못하였다. 남사(南史)卷五十九 강엄전(江淹傳)

 

오색화(五色花)

오대(五代) 때 왕인유(王仁裕)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이백(李白)이 어릴 때 그가 사용하는 붓 끝에서 오색 꽃이 피어나는 꿈을 꾼 뒤로 글재주가 뛰어나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하였다.

 

오서(伍胥)

오자서(伍子胥).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오원(伍員)을 가리킨다. 그의 아버지 사()와 형 상()이 모두 초 평왕(楚平王)에게 살해되자 그는 오() 나라로 망명하여 오 나라를 도와서 초 나라를 격파시키고 원수를 갚았는데, 그때 그의 분기(憤氣)가 어찌나 충천(沖天)하였던지, 바다의 파도가 그의 분기에 의해 생긴 것이라 한다. 사기(史記)卷六十六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오서장(鼯鼠長)

날다람쥐는 날기, 나무 오르기, 헤엄치기, 구멍파기, 달리기 등 다섯 가지 장기를 가지고 있으나 모두 서투르다는 뜻으로, 재주는 많아도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된 재주가 없다는 뜻이다.

 

오석호(五石瓠)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나온 것으로 큰 재주는 크게 쓰인다는 것을 비유하여 한 말이다.

 

오선진(汙扇塵)

동진(東晉)때 성제(成帝)의 장인 유량(庾亮)이 서쪽의 지방관으로 있으면서도 조정의 권력을 주무르자 왕도(王導)가 불쾌하게 생각하여 서풍이 불면 그때마다 부채를 들어 바람을 막으며 말하기를 원규(元規)의 먼지가 사람을 더럽히려 하는구나.” 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진서(晉書)卷六十五 왕도전(王導傳)

 

오성(五城)

경성(京城) 안을 중성(中城)ㆍ동성(東城)ㆍ서성(西城)ㆍ남성(南城)ㆍ북성(北城)의 오부(五部)로 나누어 이르는 명칭이다.

 

오성(五星)

금성(金星)ㆍ목성ㆍ수성ㆍ화성ㆍ토성. 이 다섯 별이 동일한 시각 동일한 방향에 나타나는 것을 큰 상서로 여긴다.

 

오성(五性)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성정(性情)으로, ()ㆍ노()ㆍ욕()ㆍ구()ㆍ우()를 말한다.

 

오성(五聲)

오음(五音). ()ㆍ상()ㆍ각()ㆍ치()ㆍ우()를 말한다. 황제(黃帝)가 영륜(伶倫)을 시켜 해곡(嶰谷)에서 대()를 베어 그 빈 구멍의 후박(厚薄)이 일정하게 고른 것만을 잘라서 불게 함으로써, 황종(黃鍾)의 궁()을 만들고, 길고 짜른 열 두 개의 통()을 증손(增損)하여 십이율(十二律)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성(五聲)으로써 문식(文飾)하되 청탁(淸濁)ㆍ고하(高下)로써 구분했다. 이를테면 궁()은 최하(最下) 최탁(最濁), ()은 차하(次下) 차탁(次濁), ()은 청탁ㆍ고하의 사이에 있고, ()는 차고(次高) 차청(次淸), ()는 최고 최청이 이것이다. 통고(通攷)

 

오성(烏城)

화순(和順)의 옛 이름이다.

 

오성(五城)

황제(黃帝) 때에 다섯 곳의 성과 열두 채의 누각을 만들어 신선을 기다렸다는 데서 나온 말로,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시에 天上白玉京 十二樓五星이 있다. 가진 것이 넉넉함을 이른다.

 

오성루(五城樓)

도성의 궁궐을 뜻하는 시어이다.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곤륜산(崑崙山)5개의 금대(金臺)가 서 있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십주기(十洲記)

 

오성십이루(五城十二樓)

신선들이 사는 천상의 옥경(玉京)5성과 12루가 있다고 한다. 이백의 시에 天上白玉京 十二樓五星이 있다. 가진 것이 넉넉함을 이른다.

 

오성전세취기분(五星前歲聚箕分)

오성은 금성ㆍ목성ㆍ수성ㆍ화성ㆍ토성. 기성(箕星)은 이십팔수(二十八宿)의 하나로 기성 분야는 우리나라에 해당하는데 이 오성이 만나는 별의 분야에는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난다 하므로, 우리나라에 인재가 많음을 말한 것이다.

 

오성칠정(五性七情)

오성(五性)은 여러 설이 있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타고난 다섯 가지 본성으로 인()ㆍ의()ㆍ예()ㆍ지()ㆍ신()을 말하고, 칠정(七情)은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으로서 희()ㆍ노()ㆍ애()ㆍ구()ㆍ애()ㆍ오()ㆍ욕()을 말한다. 백호통(白虎通)卷三 情性예기(禮記)』 「예운(禮運)

 

오손(烏孫)

() 나라 서역국(西域國)의 이름인데, 그 종족은 돌궐족(突厥族)이라고도 한다. () 나라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 서역 조(西域條)오손의 무리가 놀라 신첩(臣妾)이 되기를 청하자 흉노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에 바빴다.”는 기사가 있다.

 

오손공주(烏孫公主)

본래 한() 나라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이다. 흉노(匈奴)의 일족인 오손왕 곤막(昆莫)이 사신을 보내와 구혼하자 무제(武帝)는 세군을 공주로 단장하여 시집보냈다. 한서(漢書)卷九十六下 서리전(徐摛傳)

 

오손마상탄(烏孫馬上彈)

오손은 한() 나라 강도왕 건(江都王建)의 딸인 오손 공주(烏孫公主)를 말하는데, 무제(武帝) 때에 그를 서역(西域)인 오손국(烏孫國)에 시집보내자, 그가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 가게 된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음악에 밝은 사람을 시켜 비파를 만들어 타게 하였는데, 그 소리가 무척 애원성(哀怨聲)이 많았다 한다. 오손 공주란 오손국에 시집을 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석숭(石崇)』 「왕명군사(王明君辭)

 

오손마상한궁정(烏孫馬上漢宮情)

오손공주(烏孫公主)가 한궁(漢宮)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오손왕(烏孫王)에게 시집을 가는 공주가 말 위에서 비파를 타게 하여 심정을 달랬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석숭(石崇)明君詞 序

 

오쇠의(吾衰矣)

논어(論語)』 「술이(述而)나는 이제 쇠로(衰老)하였다. 다시는 꿈속에서 주공(周公)을 뵐 수 없게 되었다[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하였다.

 

오수(鰲峀)

거대한 자라 등에 실려 바다에 떠 있다는 전설상의 봉래산(蓬萊山)을 가리킨다.

 

오수(聱叟)

원결은 당 숙종(唐肅宗) 때 사람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번구(樊口)에 숨어서 호를 오수(聱叟)라 하였다. 당서(唐書)卷一百四十三

 

오수(螯叟)

()의 필탁(畢卓)이 게()를 좋아했다 하여 그를 이르는 듯하다.

 

오수의(五銖衣)

()는 극히 작은 단위의 중량(重量)인데, 이는 곧 선인(仙人)이 입는 옷이라 한다.

 

오숙우(吳肅羽)

숙우(肅羽)는 오숙(吳䎘)의 자()이다. 인조 12년 명() 나라 사신 황손무(黃孫武)의 접반사(接伴使)로 가도(椵島)에 갔다가 돌아오던 도중 송도(松都)에서 죽었다.

 

오시(五時)

부처님의 50년간 설교를 시간적으로 판단한 것으로서 화엄시(華嚴時)ㆍ아함시(阿含時)ㆍ방등시(方等時)ㆍ반야시(般若時)ㆍ열반시(涅般時)를 말한다.

 

오시상(五時裳)

시절에 따라 바꿔 입는 다섯 가지 옷으로서, 봄에는 푸른 옷, 여름에는 붉은 옷, 늦여름에는 누른 옷, 가을에는 흰 옷, 겨울에는 검은 옷 등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여복지(輿服志)도포(道袍)는 오시(五時)의 색깔을 따른다.” 하였다.

 

오시졸(吳市卒)

() 나라 때의 은사 매복(梅福)을 가리킨다. 매복은 평소 글이나 읽고 심성 수양하는 것만을 일삼다가, 왕망(王莽)이 전정(專政) 할 때에 이르러 하루아침에 갑자기 처자를 버리고 구강(九江)으로 가버렸는데, 뒤에 어떤 사람이 그를 회계(會稽)에서 만나보니, 그는 성명을 고치고 오 나라 시장의 문졸이 되어 있었다. 한서(漢書)卷六十七

 

오신(五辛)

고기와 같이 불제자가 먹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의 매운 채소. 마늘ㆍ부초ㆍ파ㆍ달래ㆍ흥거(興渠), 오훈(五葷)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채소. 일반적으로는 부추[]ㆍ염교[]ㆍ파[]ㆍ마늘[]ㆍ생강[]을 말하는데, 도가(道家)나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오신은 각기 종류가 다르다.

 

오신(五辰)

서경(書經)고도모(皐陶謨)오신을 돌보아 온갖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에서 나온 것으로 금ㆍ목ㆍ수ㆍ화ㆍ토의 다섯 시기인데, 곧 사계절을 말한다.

 

오신반(五辛盤)

본초(本草)정월 초하루에 맵고 연한 나물 다섯 가지를 먹는데, 이는 새해를 맞는 뜻이다.” 했고 척언(摭言)에는 안정군왕(安定郡王)입춘(立春) 날에 오신반을 만들고 황감(黃柑)으로 술을 빚어 동정춘색(洞庭春色)이라 하였다.” 했다.

 

오신반(五辛槃)

풍토기(風土記)원단(元旦)에는 총()ㆍ산()ㆍ구()ㆍ육호(蓼蒿)ㆍ개자(芥子)를 섞어서 먹는데 영신(迎新)의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오신채(五辛菜)

파ㆍ마늘ㆍ부추 등 다섯 가지 신채(辛菜)를 말하는데, 중국의 풍속에는 원단(元旦)이 되면 신년(新年)을 맞이하는 뜻에서 이 다섯 가지 신채를 섞어 먹었던 데서 온 말이다.

 

오신흑(鰲身黑)

신산(神山)이 바다 물결에 떠밀려 다니자, 상제(上帝)가 거대한 자라들로 하여금 그 산들을 떠받치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십금신(五十金身)

금상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에 있는 53개의 불상(佛像)을 말하는 것으로 인도(印度)에서 문수대사(文殊大師)가 삼억가(三億家)의 금()을 모아 순금(純金)으로 불상을 만들어서 부처와의 인연(因緣)이 깊은 금강산으로 보냈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오십모심(五十慕深)

지극한 효성. ()50세에도 효가 지극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의 줄임말이다.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음. 피차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같다는 뜻이다. 맹자와 양혜왕과의 대화에서 유래. 전쟁터에서 어떤 자는 50보를 후퇴하고 어떤 자는 100보를 후퇴했는데, 50보를 후퇴한 자가 100보를 후퇴한 자에게 더 멀리 도망간 것은 비겁한 것이라고 비웃자, 맹자는 이 예를 들면서 둘 다 후퇴했으므로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

 

오십시지비(五十始知非)

춘추(春秋)시대에 거백옥(蘧伯玉)이란 현인(賢人)50살이 되어 49년의 그른 것을 알았다 하였다. 장자(莊子)』 「칙양(則陽), 논어(論語)』 「헌문(憲問)위령공(衛靈公)

 

오십인수희(五十人隨喜)

화엄경(華嚴經)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도()를 구하여 남방으로 다니며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방문하였다. 수희(隨喜)는 남의 착함을 따라서 기뻐한다는 뜻이다.

 

오십희연활(五十希延活)

이는 공자가 이르기를 나에게 수 년만 더 살게 해 준다면 오십 세에 주역(周易)을 배워서 큰 허물을 없게 할 수 있을 것이다[加我數年,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 한 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

 

오씨(吳氏)

() 나라의 학자 오징(吳澄)을 가리키는데, 주자가 중시한 도문학(道問學)보다는 상산(象山)이 내세운 존덕성(尊德性)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육씨(陸氏)의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아구부신(敖兒久負薪)

오아는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나라의 명재상 손숙오(孫叔敖)의 아들이란 뜻이다. 손숙오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이 가난하여 떠돌아다니다가 우맹(優孟)이 초 장왕(楚莊王)의 마음을 움직여 벼슬이 주어졌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六 골계열전(滑稽列傳)

 

오아목석장(吳兒木石腸)

오아(吳兒)는 진() 나라 때 오() 땅의 은사(隱士)인 하통(夏統)을 가리킨다. 일찍이 낙양(洛陽)의 물 위에서 가충(賈充)과 어울려 노닐 적에, 가충이 미녀들을 실은 배를 하통의 배 주위로 세 겹이나 둘러싸게 하였으나, 하통이 여전히 단정하게 앉아 미동(微動)도 하지 않자, “이 오아(吳兒)는 정말 목인(木人)이요 석심(石心)이다.”라고 탄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진서(晉書)94 은일전(隱逸傳)」 「하통전(夏統傳)

 

오아석(吳兒石)

중국 진() 나라 때 가충(賈充)이 하통(夏統)을 보고 이 오 나라 소년은 석인 목장(石人木腸)이다.” 했다. 진서(晉書)』 「하통전(夏統傳)

 

오아속(烏雅束)

오아(烏雅)는 화살인데 50개를 속이라 한다.

 

오아초로(吳兒楚老)

강동(江東) 사람이기 때문에 오초(吳楚)라고 말한 것이다.

 

오아층(五牙層)

() 나라 때 대장군 양소(楊素)가 영안(永安)에 있을 때 큰 군함을 건조하여 오아(五牙)’라 명명하고 그 위에 오층루(五層樓)를 설치한 데서 온 말이다. 북사(北史)』 「양소전(楊素傳)

 

오악(五惡)

순자(荀子)』 「유좌(宥坐)에도, “5()에 도절(盜竊)이 참예하지 않는다.” 하였다. 5악은 첫째 심달이험(心達而險), 둘째 행벽이견(行辟而堅), 셋째 언위이변(言僞而辯), 넷째 기추이박(記醜而博), 다섯째 순비이택(順非而澤)으로 되었다.

 

오악(五岳)

동악 태산(東岳泰山)ㆍ서악 화산(華山)ㆍ남악 형산(衡山)ㆍ북악 항산(恒山)ㆍ중악 숭산(崇山)이다.

 

오악(五嶽)

중국의 다섯 명산으로, 숭산(嵩山)ㆍ태산(泰山)ㆍ화산(華山)ㆍ형산(衡山)ㆍ항산(恒山)을 말한다.

다섯 개의 명산.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동쪽의 금강산(金剛山), 서쪽의 묘향산(妙香山), 남쪽의 지리산(智異山), 북쪽의 백두산(白頭山), 중앙의 삼각산(三角山)을 가리킨다.

 

오악사독(五嶽四瀆)

다섯 가지 큰 산과 네 가지 큰 물을 가리키는데, 중국에서는 동악(東嶽)인 태산(泰山), 서악(西嶽)인 화산(華山), 남악(南嶽)인 곽산(霍山)·, 북악(北嶽)인 항산(恒山), 중악(中嶽)인 형산(衡山)을 오악이라 하였으며, 양자강(揚子江), 황하(黃河), 회수(淮水), 제수(濟水)를 사독이라 하였다.

 

오악유(五岳遊)

() 나라의 고사(高士) 상장(向長)이 자녀들을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 집안일을 완전히 정리한 뒤에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일에 상관하지 말라(勿復相關)고 분부하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돌아다니며 오악(五岳) 등을 유람하다가 생을 마쳤다고 한다. 고사전(高士傳)후한서(後漢書)83 逸民列傳 向長

 

오악타시종결원(五嶽他時終結願)

후한 상자평(向子平)이 건무(建武) 중에 자녀의 혼가(婚嫁)를 끝마치고 오악(五嶽) 명산에 구경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음. 고사전(高士傳)

 

오안(五眼)

모든 법의 사리(事理)를 관조하는 5종의 눈. 곧 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ㆍ법안(法眼)ㆍ불안(佛眼).

 

오야(汚邪)

웅덩이 진 하지전(下地田)이다.

 

오야만거(汚邪滿車)

사기(史記)』 「골계열전(滑稽列傳)낮은 지대의 수확은 수레에, 높은 지대의 수확은 다래끼에 차도록 해 달라고 기원한다[甌窶滿篝, 汚邪滿車].” 하였다.

 

오야원(烏夜怨)

당 나라 백거이(白居易)자오야제(慈烏夜啼)란 시에 까마귀의 효성을 노래하여, “자애로운 새가 그 어미 잃고, 까악까악 구슬피 우누나. 밤낮으로 날아가지 않고, 해가 지나도록 옛 숲을 지키네. 밤이면 밤마다 한밤중에 우니, 듣는 이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 자애로운 새여, 자애로운 새여! 새 가운데 증삼이로다[慈烏失其母 啞啞吐哀音 晝夜不飛去 經年守故林 夜夜夜半啼 聞者爲沾襟……慈烏復慈烏 烏中之曾參].”하였다.

 

오야제(烏夜啼)

남조 송(南朝宋)의 임천왕(臨川王) 유의경(劉義慶)이 지은 것이다. 유의경이 죄를 받아 폐()해졌을 때 그의 기첩(妓妾)이 밤에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고 다음 날 그가 사면될 것을 예측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어 이 곡을 지었다 한다.

남조(南朝) () 때 왕의경(王義慶)이 지은 가사명으로, 왕의경이 죄를 받아 폐해졌을 때, 그의 기첩(妓妾)이 까마귀가 밤에 우는 소리를 듣고는, 이튿날 반드시 그가 사면될 것을 예측했는데, 다음날 과연 그가 사면되었으므로, 이 일을 주제로 하여 왕의경이 이 곡을 지었다 한다.

 

오양승상(誤羊丞相)

강남(江南) 사는 어느 재상이 본초(本草) 촉도부(蜀都賦)를 읽으면서 그 주()준치(鱒鴟; 토란의 별칭)는 토란()이다.”라고 한 우()자를 형태가 비슷한 양()자로 잘못 보고, 어떤 사람이 양육(羊肉)을 주자 승상은 유식한 체 준치 준 것을 사례한다.”고 회답하였다.

 

오양피(五羊皮)

춘추시대(春秋時代) 백리해(百里奚)가 진() 나라의 짐승 기르는 사람에게 자신을 팔아, 소를 먹여주고 오양의 가죽을 품삯으로 받아 이를 가지고 진 목공(秦穆公)에게 찾아가 벼슬을 요구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만장(萬章),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

 

오어(吳語)

남방(南方)의 방언을 가리킨다.

 

오언(五言)

()ㆍ의()ㆍ예()ㆍ지()ㆍ신() 오덕(五德)에 맞는 말로, 즉 임금에게 간하는 말을 말한다.

 

오언성(五言城)

오언시(五言詩)에 통달했음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오언시에 능하여 오언장성이라 한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卷一百九十六 진계전(秦系傳)

 

오언율시(五言律詩)

한시(漢詩)의 한 체. 여덟 구로 되어 있으며, 한 구가 다섯 자로(子路)된 것을 오언 율시(五言律詩), 일곱 자로 된 것을 칠언 율시(七言律詩)라 한다.

 

오언장성(五言長城)

오언시(五言詩)를 잘 짓는 것이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바랄 수 없는 일임을 비유하는 말이다. () 나라 시인 유장경(劉長卿)이 특히 오언시(五言詩)에 능하여 스스로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고 했던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 「은일전(隱逸傳)진계(秦系)

 

오여온(吳汝穩)

호는 낙애(洛厓)이고, 죽유(吳澐) 오운(吳澐)의 큰아들이다.

 

오여완(吳汝完)

여완(汝完)은 오준(吳竣)의 자이다.

 

오여확(吳汝擴)

여확(汝擴)은 오단(吳端)의 자()이다.

 

오연루의토만두(烏鳶螻蟻土饅頭)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장자(莊子)가 죽을 무렵에 제자들에게 후장(厚葬)을 하지 말도록 이르자, 제자가 말하기를 까마귀와 솔개가 선생님의 시체를 파먹을까 염려됩니다.” 하니, 장자(莊子)가 말하기를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되니, 저쪽에서 빼앗아다가 이쪽에 주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치우친가.”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

 

오연루의하분별(烏鳶螻螘何分別)

장자(莊子)가 죽을 때에 제자들이 어떻게 할까고 물으니, “갖다가 들에 버려라.” 하므로, “그러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됩니다.” 하니, “땅 속에 묻으면 개미와 땅강아지의 밥이 된다. 어느 것의 밥이 되기는 일반이니, 까마귀의 먹을 것을 빼앗아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였다 한다.

 

오염(吳鹽)

제염(製鹽)의 이름으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금이다.

 

오염촉마(吳鹽蜀麻)

오의 소금(吳鹽)과 촉의 삼(蜀麻)은 다 명품들로서 당()의 제오기(第五琦)가 숙종(肅宗)에게 청하여, 강회(江淮)에다 조용사(租庸使)를 두고 이것들에 대한 조세를 받아들이자고 하였다. 王海 食貨 貢賦 唐賦役法

 

오염촉시(吳鹽蜀枲)

오에서 나는 소금과 촉에서 나는 모시를 이른다. 모두 질이 좋기로 천하에 유명하였다.

 

오엽(五葉)

오가(五家)로 나누어진 참어(讖語). 전등록(傳燈錄)』 「달마장(達磨章)에 달마가 전법(傳法)한 게문(偈文)을 들어 한 꽃이 오엽으로 갈라져 열매가 자연히 이뤄진다[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하였는데, 이는 곧 오가에 대한 참어로 여기서는 참선을 말한 것이다.

 

오엽삼아(五葉三椏)

인삼(人蔘)을 이른다. 본초(本草)에 의하면, 인삼이 막 난 것은 한 가장귀에 다섯 잎새이고, (4,5) 후에는 두 가장귀가 생기고, 10년 후에는 세 가장귀가 생긴다고 하였다.

 

오영(吳詠)

() 나라 지방의 노래로 남방의 청악(淸樂)을 말한다.

 

오오(敖敖)

긴 모양, 많은 사람이 남을 비방하는 모양, 거만한 모양

 

오오(嗚嗚)

노래 부르는 소리, 슬픈 소리의 형용

 

오오(午午)붐비는 모양, 잡답한 모양

 

오오(嗷嗷)

시끄럽게 부르는 소리, 슬픔에 젖은 뭇 사람의 소리, 여러 사람이 꾸짖고 비난하는 소리, 기러기의 우는 소리 / 인용: 兎山村舍 錄田父語(서거정)

 

오오(娛娛)

유쾌하게 즐기는 모양

 

오옥취당도(五玉聚當嵞)

뭇 신하들이 자기 직책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오옥(五玉)은 옛날 제후들이 천자께 조회할 때 갖는 신부(信符)로서, ()은 환규(桓圭), ()는 신규(信圭), ()은 궁규(躬圭), ()는 곡벽(穀璧), ()은 포벽(蒲璧)을 지녔음. 여기서는 삼공(三公)ㆍ육경(六卿)의 당로자들이 각기 왕명에 순응하여 맡은바 직를 잘 살핀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오와(吳娃)

() 나라 지방의 미녀(美女)를 특별히 일컫는 관용어이다.

 

오왕내원화(吳王內苑花)

오왕의 원내의 꽃이란 귀가(貴家)의 딸이나 희첩(姬妾)을 의미한다.

 

오왕서시(吳王西施)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오왕 부차(夫差)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보낸 미녀 서시를 받아들여 음일로 날을 보내다가 월 나라에게 멸망당한 고사가 있다.

 

오왕원내화(吳王苑內花)

오왕의 원내의 꽃이란 귀가(貴家)의 딸이나 희첩(姬妾)을 의미한다.

 

오왜상조오호파(吳娃尙阻五湖波)

오호(五湖)서시(西施). “()가 망한 후 월()의 서시가 범려(范蠡)와 함께 오호(五湖)에 떠가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서시가 막혀 오지 못하는 것에 꽃을 비유하였다.

 

오우천월(吳牛喘月)

()나라의 소가 더위를 두려워해서 달을 보고도 해인 줄 알고 헐떡인다. ‘지레 짐작으로 공연한 일에 겁을 내어 걱정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오운(烏雲)

먹구름. 여기서는 검은 구름처럼 짙은 머리.

 

오운(五雲)

오색구름이 머문 곳은 본디 신선이 사는 곳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여기서는 제왕의 처소인 대궐을 미화하여 선경(仙境)에 비유한 말이다. / 인용: 伐木行(성현)

오색(五色)을 띤 상서로운 구름으로 제왕의 기운을 상징한다.

 

오운만리몽(烏雲萬里夢)

송 나라 채양(蔡襄)이 꿈속에서 天際烏雲含雨重 樓前紅日照山明 崇陽居士今何在 靑眼看人萬里情이라고 지은 시를 소식(蘇軾)이 썼는데 그 진본을 옹방강이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탁본하여 추사에게 보냈다.

 

오운지진(烏雲之陣)

까마귀가 흩어지는 것처럼, 또 구름이 모이는 것과 같이 모임과 흩어짐이 계속되면서 변화가 많은 진법(陣法)을 말한다.

 

오운향(五雲鄕)

임금이 계신 곳을 말한다.

 

오원기(五苑奇)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에 크게 기근(饑饉)이 들자, 응후(應侯) 범수(范睢)가 소왕(昭王)에게 청하기를 오원(五苑)의 채소와 밤() 등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소서[五苑之草著蔬菜·橡果·棗栗, 足以活民, 請發之].” 하였다. 한비자(韓非子)卷十四 외저설(外儲說)右下

 

오원자(烏圓子)

고양이의 별명이 오원자(烏圓子)이다

 

오월(吳越)

중국 남부지역을 말한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적대 관계에 있던 오()나라 군사와 월()나라 군사가 한 배에 타게 되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이가 좋지 못한 사람끼리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행동을 같이 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오월유피구(五月猶披裘)

한시외전(韓詩外傳)10권에, “()의 연릉계자(延陵季子)가 제()에서 노닐 적에 땅에 금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목자(牧者)를 불러서 그것을 주어 가지게 하였다. 그러자 목자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대는 높은 데 있으면서 낮은 데를 보고, 모습은 군자인데 말은 야비한가. 나는 임금이 있어도 그의 신하가 되지 않고 벗이 있어도 벗으로 삼지 않으며, 더운 때를 당해서도 갖옷을 입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찌 금을 주워 가질 자이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오월춘추(吳越春秋)

책 이름이다. () 나라 조엽(趙曄)이 편찬한 것으로 총 10권이며, 내용은 소설(小說)과 흡사한다.

 

오위(五緯)

()ㆍ목()ㆍ수()ㆍ화()ㆍ토()5()을 말한다.

 

오위(五衛)

이조(李朝)의 병제(兵制), 중앙에 용양위(龍驤衛) 등의 오위제도가 있었는데, 도총관(都摠管)이 통솔한다.

 

오유(遨遊)

멋대로 놀다.

 

오유선생(烏有先生)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子虛오유 선생(烏有先生무시공(無是公) 등 세 가공인물을 등장시켜 자허부(子虛賦)를 지었는데,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 인용: 答李仲存書(박지원), 髮僧菴記(박지원), 不移堂記(박지원)

 

오유자(烏有子)

오유(烏有)는 어찌 있겠느냐는 뜻인데, 오유자(烏有子)는 실제로 없는 공상적(空想的)인 인물로 쓰는 것이다.

 

오윤(五閏)

당 나라와 송 나라의 중간에 후량(後梁)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한(後漢)ㆍ후주(後周)의 오대(五代)가 있었다.

 

오융(汙隆)

추함과 융성함, 즉 흥망성쇠를 말한다. / 인용: 昭代風謠序(오광운)

 

오음(梧陰)

윤두수(尹斗壽)의 호()이다.

 

오음(五陰)

팔고(八苦)의 하나인 오음성고(五陰盛苦)를 가리킨다. 오음은 오온(五蘊)과 같은 것으로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을 가리키는데, 곧 중생을 이루어 놓은 이 오음이 치성(熾盛)하여서 일어나는 고통을 말하며, 또 오음이 뭇 괴로움을 담았다고 하기도 한다.

 

오음(五音)

음률의 기본이 되는 궁()ㆍ상()ㆍ각()ㆍ치()ㆍ우()를 말한다.

 

오의(吳醫)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46세 때 사직하고 하향하던 중 태인(泰仁)에 이르러 병세가 심해지자 선조가 보낸 어의(御醫) 오변(吳忭)을 말한다. 고봉은 의원이 미처 도착하기 전에 죽었다. 고봉집(高峯集)年譜

 

오의(烏衣)

제비의 별칭이다.

 

오의왕사연(烏衣王謝燕)

오의(烏衣)는 제비의 이명. () 나라 때 왕씨(王氏)ㆍ사씨(謝氏)의 귀족(貴族)들이 살던 오의항(烏衣巷)에 많았기 때문에 이름이다. () 나라 유우석(劉禹錫)의 오의항시(烏衣巷詩)주작교 가에 들풀이 꽃피었는데, 오의항 입구에 석양이 비꼈네. 옛날 왕씨 사씨 당 앞의 제비가 심상한 백성 집에 날아드누나[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한 데서 온 말이다.

 

오이(五餌)

흉노(匈奴) 회유책으로 한()의 가의(賈誼)가 제안했던 방법의 하나. 즉 흉노가 만족할 수 있는 융숭한 예우와 후한 상으로 그들의 눈ㆍ귀ㆍ입ㆍ배ㆍ마음(目耳口腹心)을 낚는 미끼로 쓰자는 것이었음. 한서(漢書)』 「가의전찬(賈誼傳贊)

 

오이소(五餌疎)

흉노(匈奴)를 회유(懷柔)한 계책으로 이(), (), (), (), ()을 만족시켜 주는 것을 말한다. 서한(西漢)의 가의(賈誼)가 흉노의 눈과 귀와 입과 배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다섯 가지 미끼(五餌)를 던져 그들을 회유해야 한다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신서(新書)4 흉노(匈奴)

 

오인(五印)

천축국에 동ㆍ서ㆍ남ㆍ북ㆍ중앙 다섯 나라가 있으니, 지금 5인도이다.”라는 말이 괄지지(括地志)에 보인다.

 

오일경조(五日京兆)

() 나라 때 장창(張敞)이 경조윤에 임명되었을 때, 그가 며칠 못 가서 해임될 것을 알고 적포연(賊捕掾) 서순(絮舜)이분은 지금 오일경조(五日京兆)일 뿐이다.”고 했던 데서 온 말로, 관직에서 단시일에 해임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오일사천사(五日斜川事)

도연명(陶淵明)이 정월 5일에 천기(天氣)가 화창하고 풍물(風物)이 아름답자 두세 명 이웃과 함께 사천(斜川)에 놀러 나가 시를 읊은 고사를 말한다. 도연명집(陶淵明集)2 遊斜川 幷序

 

오일유기박채남(五日幽期薄采藍)

시경(詩經)소아(小雅) 채록(采綠)에 의하면, 행역(行役)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여 부른 노래로 아침 내내 쪽풀을 캤지만, 행주치마도 다 안 차네. 닷새만 되면 온다더니, 엿새가 되어도 오지를 않네[終朝采藍 不盈一襜 五日爲期 六日不詹].” 한 데서 온 말인데, 전하여 친구를 사모하는 뜻으로 쓴다.

 

오자(五子)

도학(道學)의 정종으로 일컬어진 송() 나라의 다섯 유자(儒者)인 주돈이(周敦頤)ㆍ정호(程顥)ㆍ정이(程顥)ㆍ장재(張載)ㆍ주희(朱熹)를 이른다.

 

오자(吳子)

전국(戰國) 시대 오기(吳起)가 저술한 병서(兵書)이다.

 

오자(五齊)

나물을 잘게 썰어 요리한 다섯 종류의 술안주로 맛좋은 음식이다.

 

오자서(伍子胥)

춘추시대(春秋時代) 초 나라 사람으로 오() 나라에 망명하여 오왕(吳王)을 위해 월() 나라를 급히 치라고 극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오히려 태재 비(太宰嚭)의 참소에 의해 자결하라는 명이 내려지자, 죽음에 임하여 유언하기를 내 눈을 뽑아서 오 나라동문(東門) 위에 걸어놓아라. 월 나라가 쳐들어와 오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리라.” 하고 죽었는데, 오왕이 그 말을 듣고 대노하여 그의 시체를 말가죽 부대에 담아 강물에 띄워버렸다. 후에 오 나라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 강가에 사당을 세워 그를 제사지내고 인하여 그 산을 서산(胥山)이라 명명하였다. 그런데 뒤에 오 나라는 끝내 월 나라에게 멸망당하고 오왕 부차 또한 월 나라 지역인 용동(甬東)에 잡혀가 있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춘추 시대의 초()나라 사람. 이름은 원(). 초나라의 태자소부(太子少傅) 비무기(費無忌)의 모함으로 아버지 오사(吳奢)와 형 오상(伍尙)이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처형당하자 오나라로 망명한다. 9년 후 오왕 합려를 도와 초나라의 도읍 영()으로 쳐들어가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어 300대나 매질하고 나서야 원한을 풀었다고 한다. 사기(史記)卷六十六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오자수(伍髭鬚)

무식한 자가 오자서(伍子胥)를 오자수로 잘못 쓴 것을 말한다.

 

오자인초(誤字因草)

초서로 인해 글자가 그릇됨.

 

오작희(烏鵲喜)

오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기쁨을 말한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두 별이 일 년에 한 번 칠월 칠석(七夕)에 만날 때 까막까치가 은하수에 다리를 놓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월령광의(月令廣義)七月令 註

 

오잡조(五雜俎)

고악부의 이름으로, 수구(首句)를 편명으로 삼은 것인데, 후인들이 그 체를 모방함으로 인하여 일종의 시체(詩體)가 된 것이라 한다

 

오잡조(五雜組)

시체(詩體)의 한 가지. 옛 악부(樂府)의 하나로 삼언(三言)으로 된 구() 여섯을 한 수로 하고, 맨 머리구로 편() 이름을 한다. 문체명변(文體明辯)』 「잡체시(雜體詩)

 

오장(五漿)

다섯 집에서 음료수를 준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열자(列子)가 길을 가다가 열 집 음식점에서 마실 것을 사먹었는데, 이중 다섯 집에서는 그를 존경하여 사기도 전에 먼저 주었다.” 하였다.

 

오장군(烏將軍)

돼지의 별칭이다.

 

오장육부(五臟六腑)

내장의 총칭.

 

오재(五材)

육도(六韜) 용도(龍韜)에 나오는 용()ㆍ지()ㆍ인()ㆍ신()ㆍ충()으로, 무덕(武德)을 가리킨다.

 

오정(五丁)

산을 옮기고 만균(萬鈞)을 들 수 있었다는 촉왕(蜀王)의 역사(力士) 다섯 사람을 가리킨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진 혜왕(秦惠王)이 촉을 정벌할 목적으로 오석우(五石牛)를 만든 다음 꼬리 밑에 황금 덩어리를 놔두고 황금 똥을 내놓는 소라고 선전하고 촉왕에게 가져가라고 하자, 촉왕이 오정역사(五丁力士)에게 끌고 오도록 명령을 하며 촉도(蜀道)를 뚫도록 하였으므로, 진 나라가 그 길을 통하여 멸망시켰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수경(水經)沔水 注

 

오정(五鼎)

소ㆍ양ㆍ돼지ㆍ물고기ㆍ순록을 담아 제사 지내는 다섯 개의 솥을 말하는데, 전하여 높은 작위에 있는 사람의 미식(美食)의 뜻으로 쓰인다.

부귀(富貴)한 생활이란 말인데, ()는 제사에 삼정(三鼎)으로 하고, 대부(大夫)는 오정(五鼎)으로 한다.

 

오정(五精)

()ㆍ화()ㆍ금()ㆍ목()ㆍ토() 오행의 정기를 말한다.

 

오정력사(五丁力士)

신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역사(力士), 험준하기로 유명한 촉도(蜀道)를 닦았다고 한다. 수경(水經)注 沔水

 

오정식(五鼎食)

소ㆍ돼지ㆍ양ㆍ물고기ㆍ사슴 등 다섯 종류의 육미(肉味)를 갖춘 음식으로서, 풍성하게 대접하는 것. 고관(高官)의 후록(厚祿)을 말한다.

 

오정오산(鰲頂五山)

오산(五山)은 동해(東海) 가운데 있는, 신선이 산다는 즉 대여(代輿)ㆍ원교(員嶠)ㆍ방호(方壺)ㆍ영주(瀛洲)ㆍ봉래(蓬萊) 다섯 산을 이르는데, 바다의 큰 자라가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에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오정팽(五鼎烹)

() 나라 주보언(主父偃)이 일찍이 말하기를, “남자가 살아서 오정(五鼎)으로 먹지 못하면 죽을 때에 오정(五鼎)을 삶기겠다.” 하였다. 높은 벼슬한 사람은 오정으로 먹는 것이요, 솥에 삶는 것은 사형(死刑)이다.

 

오제(五齊)

옛날 술 만드는 법인데, 청탁(淸濁)을 분간하여 5등을 만든 것이다. 주례 천관 주정에, “오재(五齊)의 이름을 변()하는데, 1은 범재(汎齊), 2는 예재(醴齊), 3은 앙재(盎齊), 4는 제재(緹齊), 5는 침재(沈齊)하였다.

 

오제(五帝)

황제(黃帝)ㆍ전욱(顓頊)ㆍ제곡(帝嚳)ㆍ요()ㆍ순()이라고도 하고, 소호(少昊)ㆍ전욱ㆍ제곡ㆍ요ㆍ순이라는 등 여러 말이 있다.

 

오조(午曹)

()가 말()을 뜻하는 데서 유래하여 사마(司馬) 즉 병조(兵曹)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오조사정(烏鳥私情)

까마귀가 자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이듯 그처럼 부모를 모시는 지극한 효심을 이르는 뜻의 고사성어다.

 

오족(烏足)

질경이(車前草) 풀 속에 울서(鬱棲)라는 벌레가 들어가 있으면 오족(烏足)이라는 풀로 변한다고 한다. 열자(列子)』 「천서(天瑞)

 

오종(五宗)

불교 대승(大乘)의 오종(五宗)은 천태종(天台宗)ㆍ화엄종(華嚴宗)ㆍ법상종(法相宗)ㆍ삼론종(三論宗)ㆍ율종(律宗) 등이다.

 

오종(五鐘)

청종(靑鐘)ㆍ적종(赤鐘)ㆍ황종(黃鐘)ㆍ경종(景鐘)ㆍ흑종(黑鐘)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이 또한 오음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오주기주철(誤鑄幾州鐵)

()이란 글자는 착오(錯誤) 즉 잘못이라는 말인데, 착도(錯刀)라 하여 돈을 주조한 일이 있음을 혼용하여 온 중국 9개 주()의 철을 모아도 그런 착()은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있으니, 착도와 착오를 교묘하게 이용한 말이다.

 

오주천리월(吳洲千里月)

이백(李白)이 강동(江東)으로 가는 장 사인(張舍人)이란 벗을 보내며 지은 시 송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오주(吳洲)에서 달을 보거든 천리 밖에서 날 생각해 주오.” 하였다.

 

오중은(吳中隱)

오시문졸(吳市門卒)의 약칭으로 오현(吳縣) 저자의 문지기인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는 것을 말한다. () 매복(梅福)왕망(王莽)이 나라의 권력을 독단하자 처자를 버리고 숨어 성명을 바꾸고 오현 저자의 문지기가 되었다는 설에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六十七

 

오지간수옥(烏止干誰屋)

시경(詩經)소아(小雅) 정월(正月)가련한 우리들 누구에게서 녹을 받으려나, 저 까마귀 누구의 집에 앉을는지[哀我人斯 于何從祿 瞻烏爰止 于誰之屋].” 하였는데, 이는 장차 나라를 잃게 된 신민(臣民)들이 슬퍼하여 지은 시로서, 누구의 집에 앉을지 모르는 까마귀처럼 누구를 따라 살게 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오지비유(烏知非有)

거짓 직함을 띠고 가면서 참 직함인 체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오래도록 빌리고서 돌아가지 않으니, 어찌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알겠는가[久假而不歸 惡知其非有也].”하였는데, 그에 대한 주자(朱子)의 주에, “이름을 훔치고 일생을 마쳐서 참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알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오지수이원무종(五芝雖異元無種)

담배도 영지(靈芝)처럼 신령한 약효를 발휘한다는 말이다. 오지(五芝)는 선약(仙藥)으로 꼽히는 다섯 종류의 영지이다. 후한서(後漢書)馮衍傳下 注 원문의 元無種王侯將相 寧有種乎의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사기(史記)』 「진섭세가(陳涉世家)

 

오진(五辰)

오행(五行)이 작용하는 사계절이라는 뜻이다. 서경(書經)』 「고요모((臯陶謨)백관들이 사시(四時)에 순응하여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진다[百工惟時 撫于五辰 庶績其凝].”라는 말이 나온다.

 

오질(吳質)

() 나라 사람인데 공융(孔融)ㆍ왕찬(王粲) 등과 함께 건안칠재자(建安七才子)로 불렸다.

() 나라 사람. 일명(一名)은 강(). 그는 선술(仙術)을 배워 함부로 굴다가 그 벌()로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 베는 일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오차(烏次)

장흥의 옛 이름이다.

 

오찰(吳札)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공자 계찰(季札)을 말한다. 각 제후국을 사신으로 순방하면서 예악을 논하는 등 박학하고 통명한 식견을 선보이며 현인의 명성을 떨쳤다.

 

오창(吳閶)

중국 강소(江蘇) 오현(吳縣) 성곽의 여섯 개 성문 중 서북문인 창문(閶門)을 가리킨다. 창문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오 나라 왕 합려(闔閭)가 세운 것이다.

 

오창공(梧牕公)

오창(梧牕_은 박동량(朴東亮)의 호이다.

 

오창문슬(午窓捫蝨)

혜강(嵇康)이 산도(山濤)에게 보낸 편지에, “나는 게을러 목욕하지 않아 몸에 늘 이[]가 있다.” 하였다. 절교서(絶交書)

 

오채(五菜)

아욱ㆍ콩잎ㆍ부추ㆍ파ㆍ달래 등 다섯 가지 나물. 곧 각종 나물을 말한다.

 

오채필(五彩筆)

뛰어난 시문(詩文)의 재질을 말한다. 남조(南朝) 때 강엄(江淹)이 꿈속에서 곽박(郭璞)에게 오채필을 돌려 준 뒤에는 멋있는 글이 나오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 남사(南史)』 「강엄전(江淹傳)

 

오천(烏川)

여말(麗末)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지칭한 말로, 그의 본관인 연일(延日)의 이칭이 오천이다.

 

오천공(烏川公)

정몽주(鄭夢周)를 가리킨다. 정몽주는 고려 우왕(禑王) 3(1377)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오천문(五千文)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를 말한다.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노자의 성은 이씨(李氏), 이름은 이(), ()는 담()이다. 그는 주() 나라에 오랫동안 있다가 주 나라가 쇠퇴하자 마침내 서쪽으로 가다가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는데, 관령(關令)으로 있던 윤희(尹喜)선생께서 은퇴하시려거든 부디 저에게 글을 저술하여 물려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노자는 마침내 상ㆍ하편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주로 도덕에 관한 뜻으로 총 5천 글자를 써주고 갔다.” 하였다.

 

오천어(五千語)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를 가리킨다.

 

오천장(五千章)

노자의 도덕경(道德經)를 말한다. 도덕경이 모두 오천여 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오천축(五天竺)

인도를 가리킨다. 고대 인도의 구역은 동천축ㆍ남천축ㆍ서천축ㆍ북천축ㆍ중천축의 5부분으로 나뉘었다[指古印度. 古代印度的區域分爲東天竺南天竺西天竺北天竺中天竺五大部分].

 

오체(吳體)

시체(詩體)의 하나. 즉 오중(吳中)의 시체를 말한다.

 

오체투(五體投)

불교식 절은 오체를 땅에 던지듯 하는데, 사지(四肢)와 머리를 오체(五體)라 한다.

 

오촉(烏蠋)

()과 같음.

 

오총구(五總龜)

5인의 박식(博識)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거북은 장수하여 천년 만에 다섯이 함께 모이는데, 무엇이든 물어 보면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므로, () 나라 때에 박식하기로 이름이 높았던 안원손(顔元孫)ㆍ위술(韋述)ㆍ하지장(賀知章)ㆍ육상선(陸象先)ㆍ은천유(殷踐猷) 5인을 오총귀라 불렀던 데서 온 말이다. 당서(唐書)』 「은천유전(殷踐猷傳)

 

오추(吳趨)

가곡 이름이다. 오인(吳人)이 자기들의 풍토를 노래한 것이다.

 

오추(梧楸)

오동과 가래나무.

 

오출빙(五出氷)

오출은 꽃잎이 다섯으로 이루어진 매화를 말하고, 빙은 또한 매화를 추운 때에 핀다 하여 빙기(氷肌)ㆍ빙혼(氷魂) 등으로 일컫는 데서 온 말이다.

 

오측체(五仄體)

측성(仄聲)의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오언시를 말한다.

 

오칠포(烏漆浦)

오칠(烏漆)은 안장(鞍裝)의 별칭이다. 송사(宋史) 여복지(輿服志)자라원편(紫羅圓鞭)에 오칠안(烏漆鞍)”이라는 말이 있다.

 

오쾌(伍噲)

상대방을 자신과 동렬(同列)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 나라 때 한신(韓信)이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어 강후(絳侯) 주발(周勃)이나 영음후(穎陰侯) 관영(灌嬰) 등과 동렬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던 차에 번쾌(樊噲)를 찾아갔는데, 번쾌는 이미 무양후(舞陽侯)에 봉작되었으면서도 한신에 대하여 무릎을 꿇은 채 맞이하고 전송하면서, “대왕께서 신의 집에 왕림하여 주시니 영광스럽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한신이 문밖으로 나오며 웃으면서 이르기를, “나는 이에 번쾌 등과 같은 동렬이다.” 하였다. 사기(史記)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오타운(五朶雲)

아름다운 서체(書體)를 말한다. 신당서(新唐書)』 「위척전(韋陟傳), “陟常以五采牋爲書記 使侍妾主之其裁答受意而已 皆有楷法 陟惟署名 自謂 所書陟字 若五朶雲 時人慕之 號郇公五雲體라 보인다. 순공은 당() 나라 위척(韋陟)의 봉호이고, 오타운은 마치 다섯 송이 꽃처럼 아름다운 구름이란 뜻인데, 위척이 일찍이 자기 글씨를 오타운과 같다고 자칭한 데서 온 말이다.

 

오토(於菟)

호랑이의 별칭인데, () 나라 육유(陸游)후우탄(後寓嘆)’이라는 시에 천 년 동안 동해 바다 메우려는 정위새요, 소를 잡아먹으려는 사흘 된 범이로다[千年精衛心平海 三日於菟氣食牛]”라는 구절이 있다.

 

오토(烏兎)

()는 해를 금오(金烏)라 하고 토()는 달을 옥토(玉免)라 한 것이다.

해 속에 있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와 달 속에 있는 토끼로 해와 달을 대신하여 쓴다.

 

오투육(烏偸肉)

아전이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길가에서 밥을 먹을 때 까마귀가 고기를 훔쳐갔다는 고사가 있다. / 유의어: 도방리고오투육(道傍吏苦烏偸肉)

 

오패(五伯)

춘추시대(春秋時代) 일시적으로 제후(諸侯)의 맹주(盟主)가 되었던 다섯 사람. 곧 제 환공(齊桓公). 진 문공(晉文公)ㆍ진 목공(秦穆公)ㆍ송 양공(宋襄公)ㆍ초 장왕(楚莊王)을 이른다.

 

오평체(五平體)

평성(平聲)의 글자로만 이루어진 오언시(五言詩)를 말한다.

 

오포(烏哺)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까마귀는 다 자란 다음 어미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는 효조(孝鳥)라 하여 반포조(反哺鳥)라고도 한다.

자식이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는 것을 말한다. 까마귀는 효도를 아는 새로 제 어미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 봉양한다 한다. 문선(文選)속성보망시(束晳補亡詩)숲에서 우는 늙은 까마귀, 자식에게 먹이를 받아먹누나.” 하였다.

 

오풍십우(五風十雨)

기후가 매우 순조로운 것. 또는 세월이 평화로움.

 

오피(烏皮)

검은 염소 가죽을 깐 은궤(隱几)를 말한다. 두보(杜甫)의 시에 금관성 서쪽 초당 생활 빈궁하지만, 오피 궤안(几案) 있으니 돌아가고 싶어라[錦官城西生事微 烏皮几在還思歸].”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13 將赴成都草堂 途中有作 先寄嚴鄭公 5

 

오피궤(烏皮几)

앉을 때 몸을 기대는 궤안(几案)으로 검은 염소 가죽으로 덮은 것이다. 한유(閑遊)한 생활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오하(吳下)

소주(蘇州) 일대를 말한다.

 

오하(五花)

() 나라 때 말갈기를 세 갈래로 잘라 만든 것은 삼화(三花), 다섯 갈래로 잘라 만든 것은 오화(五花)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말의 털 색깔이 얼룩얼룩한 것을 오화마(五花馬)라고 한다.

 

오한(敖罕)

() 나라 때 내몽고(內蒙古)의 한 부락(部落) 이른다.

 

오합지졸(烏合之卒)

까마귀를 모아 놓은 듯한 군사.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보잘것없는 군사들의 모이다.

 

오합지중(烏合之衆)

까마귀 떼와 같이 모인 무리. 갑자기 모았기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규칙도 없고 통일성도 없는 군중. / 유의어: 오합지졸(烏合之卒)

 

오행(五行)

()ㆍ목()ㆍ수()ㆍ화()ㆍ토(), 또는 이와 관련이 있는 육십 갑자(六十甲子) 등을 가리킨다.

 

오현(烏縣)

오산현(烏山縣)의 준말로 충청남도 예산(禮山)의 고호(古號)이다.

 

오현금(五絃琴)

() 임금이 일찍이 만들었다는 거문고 이름인데, 이 거문고를 타면서 남풍시(南風詩)를 노래하였는바, 그 시에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들의 노염을 풀 만하도다 남풍이 제때에 불어옴이여 우리 백성들의 재물을 많이 쌓으리로다(南風之薰兮 可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변악해(辨樂解)

 

오현금(五絃琴)

순 임금이 탔다는 것으로 다섯 줄로 된 거문고이다.

 

오호(惡呼)

야인(野人)들의 말을 취음한 것으로 없다는 뜻이다.

 

오호(烏號)

양궁(良弓)의 이름이다.

 

오호(五湖)

중국 오() 나라와 월() 나라 지방의 호수 이름인데, 그것이 태호(太湖)라느니, 구구(具區)ㆍ요격(洮滆)ㆍ팽려(彭蠡)ㆍ청초(靑草)ㆍ동정(洞庭)이라는 등 학자에 따라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말기에 월 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 구천(句踐)을 도와 오 나라를 멸망시킨 뒤에 물러나 조각배를 타고 오호로 떠나 숨어버렸다는 데서 흔히 은둔하는 곳의 대명사로 쓰인다. 사기(史記)卷一百二十九 화식열전(貨殖列傳)

 

오호궁(烏號弓)

옛날의 명궁(名弓). 뽕나무가지로 만들었다는 질 좋은 활의 이름이다.

 

오호도(嗚呼島)

한 고조(漢高祖)항우(項羽)를 죽이고 천하를 통일하자 제왕(齊王) 전횡(田橫)이 손 5백 명을 데리고 동해 바다의 섬 속에 들어가 있었다. 고조가 사람을 보내어 전횡을 부르기를, “오면 왕후(王侯)로 봉할 것이요, 오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어 쳐서 죽이리라.” 하니, 전횡이 오다가 낙양(洛陽)30리를 못 미쳐서 말하기를, “내가 한왕(漢王)과 같이 왕이라고 칭하다가 이제 와서 한왕의 신하가 될 수 없다.” 하고, 목을 찔러 자살하니, 섬 속에 남아 있던 손 5백 명이 그 소식을 듣고 일시에 모두 자살하였다. 그러므로 그 섬을 오호도(嗚呼島)라고 부른다.

 

오호일가하인재(五湖一舸何人在)

() 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가 월왕(越王)을 도와 오() 나라를 멸망시키고 나라를 회복시킨 뒤에 벼슬을 그만두고는 일엽편주(一葉片舟)를 타고 오호(五湖)로 나가 성명(姓名)을 모두 바꾸고는 숨어살았던 고사가 전한다. 오월춘추(吳越春秋)10 구천벌오외전(句踐伐吳外傳)

 

오호주(五湖舟)

범려(范蠡)가 공을 이룬 뒤에 미인 서시(西施)를 싣고 오호(五湖)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

 

오호춘(五湖春)

두보(杜甫)의 시 봉증소이십사군(奉贈蕭二十使君)에 자신이 일찍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났다는 뜻으로, “대궐에서 일찍이 참마(驂馬)를 멈추니, 기러기 돌아오는 오호(五湖)의 봄이로세.” 하였다.

 

오호풍(五湖風)

월 상국(越相國) 범려(范蠡)가 오()를 멸하여 공을 이룬 뒤 벼슬을 사양하고 오호에 놀았다.

 

오화(烏靴)

관원이 신던 흑색 구두를 말한다.

 

오화(五花)

오화마(五花馬)의 준말로, 청색(靑色)ㆍ백색(白色) 등의 반문(斑文)이 있는 말을 가리킨다.

중서사인(中書舍人)의 별칭이다. () 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 군국왕사(軍國王事)가 있으면, 중서사인들이 각각 자기의 소견을 가지고 이것저것 적어서 제출하는데, 글자의 모양이 꽃처럼 되었으므로 이를 오화판사(五花判事)라 한다. 직림(職林)

 

오화전(五花甎)

오색 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그것을 깔아놓은 대궐뜰을 가리킨다.

 

오화총(五花驄)

말의 갈기털을 다섯 잎 꽃무늬 모양으로 다듬어서 장식한 말이다.

 

오회(寤懷)

깨어나 근심하다.

 

오회(吳會)

오군(吳郡)과 회계군(會稽郡)을 연칭(連稱)하여 오회라 하는데, 본디 오군 송강(淞江)의 농어가 유명하다.

 

오회장한흥(吳會張翰興)

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서 먹는 즐거움을 말한다. 오회(吳會)는 중국 회계군(會稽郡)의 오현(吳縣)과 회현(會縣)의 병칭이다. () 나라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 들어가서 동조연(東曹掾) 벼슬을 하다가,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인 오중(吳中)의 순채국과 농어회(鱸魚膾) 생각이 나서 곧장 사직하고 돌아간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92

 

오후(五侯)

()ㆍ후()ㆍ백()ㆍ자()ㆍ남()으로, 현달한 관원의 집안을 가리킨다.

한 성제(漢成帝)의 외삼촌이 되는 평아후(平阿侯) 왕담(王譚), 성도후(成都侯) 왕상(王商), 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 곡양후(曲陽侯) 왕근(王根), 고평후(高平侯) 왕봉시(王逢時) 등 다섯 사람으로, 같은 날에 봉작되었으므로 세칭 오후라 한다. 그들은 외인(外人)과는 왕래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서로 시새워가면서 산해진미만 먹으며 음식과 거처에 극도의 사치를 하였다. 한서(漢書)卷九十八 원후전(元后傳)

 

오후가(五侯家)

권세가(權勢家)들의 집을 말한다.

 

오후구택만창태(五侯舊宅謾蒼苔)

역시 인생의 허무함을 뜻하는 말이다. 오후는, 한 성제(漢成帝)의 외척(外戚)으로 후()에 봉해진 다섯 왕씨(王氏) 즉 평아후(平阿侯) 왕담(王譚)ㆍ성도후(成都侯) 왕상(王商)ㆍ홍양후(紅陽侯) 왕립(王立)ㆍ곡양후(曲陽侯) 왕근(王根)ㆍ고평후(高平侯) 왕봉시(王逢時)를 가리키는데, 이들은 황실(皇室)의 외척으로 음식과 거처에 극도의 사치를 하였다.

 

오후봉(五侯封)

후한(後漢) 왕씨(王氏)가 오후(五侯)를 모두 봉하니, 그날에 누른 안개가 사면에 온종일 꽉 끼었다.

 

오후정(五侯鯖)

서로 맞지 않은 여러 집의 어물(魚物) 육류(肉類)를 한데 넣어 끓인 열구자(悅口子)를 말한다. 전한(前漢) 성제(成帝) 때 소위 왕씨 오후(王氏五候)인 평아후(平阿候)ㆍ성도후(成都候)ㆍ홍양후(紅陽候)ㆍ곡양후(曲陽候)ㆍ고평후(高平候)가 서로 시기하고 세력 다툼을 하여 빈객(賓客)들도, 이 집에 출입하는 자는 저 집을 가지 못하고 하였는데, 유독 누호(婁護)라는 자는 다섯 집을 다 드나들면서 비위를 맞추고 그 각 집에서 가져온 반찬을 한 데 넣어 끓여 잡탕을 만들어 먹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일러 오후잡탕(五候鯖)이라 하였다 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

 

오후지관(五侯池館)

()나라 성제(成帝)가 그의 외숙 왕담(王譚) 등 다섯 사람을 동일(同日)에 후()로 봉하여 오후(五侯)라 칭하는데, 여기서는 부귀한 집안이라는 말이다.

 

오후청(五侯鯖)

()은 산해의 진미를 섞어 끓인 음식을 말한다. 한 성제(漢成帝) 때 다섯 국구(國舅)로서 같은 날 똑같이 제후(諸侯)에 봉해진 즉 왕담(王潭)ㆍ왕근(王根)ㆍ왕립(王立)ㆍ왕상(王商)ㆍ왕봉시(王逢時) 등 오후의 집을, 누호(婁護)라는 사람이 차례로 드나들면서 각 집의 진기한 반찬을 얻어내어 이를 섞어서 끓여 손님을 접대했는데, 이것을 오후청이라 한다.

 

오훈(五葷)

고기와 같이 불제자가 먹지 않아야 할 다섯 가지의 매운 채소. 마늘ㆍ부초ㆍ파ㆍ달래ㆍ흥거(興渠), 오신(五辛)이라고도 한다.

 

오흥(吳興)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현() 이름으로, 여기서는 중국 남쪽 지방을 가리킨다.

유오흥(柳吳興), 즉 오흥 태수(吳興太守)를 두 번이나 역임한 남조 양()의 시인 유운(柳惲)을 가리킨다.

오흥 땅에 살았던 원() 나라의 저명한 서화가(書畫家) 조맹부(趙孟頫)를 가리킨다.

회계(會稽)의 고호(古號)이며 명필 왕희지를 가리킨다.

 

오흥법(吳興法)

서예에 있어 조맹부체(趙孟頫體)를 이르는 말로, 조맹부가 오흥(吳興) 사람이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오희(吳姬)

()의 미녀. 옛 시에 많이 인용됨.

 

오희(五噫)

가사(歌詞) 끝에 탄식하는 뜻으로 희() 자를 붙인 것을 말한다. 후한 때의 은사였던 양홍(梁鴻)은 경사(京師)를 지나면서 수많은 토목공사에 백성들이 시달림을 받는 것을 보고서 비통한 뜻을 담아 다섯 마디로 된 마디 끝마다 ()’자를 써서 오희가(五噫歌)를 지었는데 숙종(肅宗)은 그 내용을 보고 슬퍼하여 찾으려 하였으나 그는 끝내 만나지 않았다.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

 

오희가(五噫歌)

후한(後漢) 때 맑은 지조의 소유자 양홍(梁鴻)이 경사(京師)를 지나가며 5()의 시를 지었는데, 구절마다 모두 ()’로 끝냈으므로 오희가(五噫歌)’로 불리게 되었다. 건축 공사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달픔을 비통하게 읊은 노래로서, 저 북망을 오름이여, 슬프다! 서울을 돌아봄이여, 슬프다! 궁실이 드높음이여, 슬프다! 사람들의 수고로움이여, 슬프다! 아득한 미앙궁이여, 슬프다![陟彼北芒兮 噫 顧覽帝京兮 噫 宮室崔嵬兮 噫 人之劬勞兮 噫 遼遼未央兮 噫]”라고 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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