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226. 요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26. 요

건방진방랑자 2020. 4. 29. 18:13
728x90
반응형

226.

 

 

()

대합조개로, 패각(貝殼)은 적갈색임, 장식용, 바둑돌 등으로 쓰인다. 일설(一說)에는 국자 가리비. 또는 조가비로 만든 칼의 장식.

 

()

한착(寒浞)의 아들로, 소강(少康)에게 죽임을 당했다.

 

요가(鐃歌)

군중(軍中)의 악가(樂歌)이다. 말 위에서 연주하여 군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데 사용하고, 황제의 행렬이 출행할 때나, 공신들을 연향할 때, 개선하는 군대를 위해서도 연주한다. / 인용: 原詩(홍석주)

 

요객(要客)

손님을 초청하다라는 뜻이다.

 

요경(瑤京)

도가에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다는 신선의 세계를 말한다. / 유의어: 요대(瑤臺).

 

요고(腰鼓)

허리가 가늘게 생긴 타악기(打樂器)의 하나이다.

 

요공(姚公)

() 나라 성조(成祖) 때의 요광효(姚廣孝)를 말한다. 원래 이름이 도연(道衍)으로 14세 때에 불문(佛門)에 들어갔다가, 태조(太祖)의 넷째 아들인 연왕(燕王) 즉 성조를 도와, 태조의 황태손(皇太孫)으로 제위에 오른 혜제(惠帝)를 축출하고 정난(靖難) 일등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이때 광효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명사(明史)145

 

요곽(寥廓)

텅 비고 끝없이 넓다는 뜻이다. / 인용: 好哭場論(박지원)

 

요광(瑤光)

북두성(北斗星)의 일곱 번째에 있는 별 이름이다.

 

요굴(要屈)

존귀한 자가 비천한 자를 찾아가는 것을 말한다. 행행(行幸)을 함에 있어 법가(法駕)를 타지 않는 것을 요()라 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과 함께 거처하는 것을 굴()이라고 한다.

 

요규(窈糾)

근심의 깊고 먼 것을 말한다. / 인용: 柳居士(홍신유)

 

요극차수봉(䙅襋且誰縫)

시경(詩經)위풍(魏風) 갈구(葛屨)바지춤 달고 저고리깃 달아 좋은 임 입으셨네[要之襋之 好人服之].”를 인용한 것으로 백성들의 딱한 처지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음을 말한다.

 

요금(腰金)

옛날 조정에서 대관(大官)이 허리에 차던 금인(金印) 혹은 금어대(金魚袋)를 말한다. 여기서는 정2품의 품계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요금(瑤琴)

옥으로 장식한 거문고, 곧 거문고의 미칭이다.

 

요금보슬(瑤琴寶瑟)

구슬과 보배로 장식한 값진 금슬(琴瑟).

 

요기(妖氣)

어둡게 드리워진 구름을 말한다.

 

요년(堯年)

요 임금은 수가 117세였다고 한다.

 

요뇨(淖淖)

많음, 수효가 여럿임

 

요뇨(嫋嫋)

약하디 약함, 바람이 솔솔 부는 모양, 감기어 휘도는 모양, 소리가 가늘게 이어져 휘도는 모양, 낭창낭창하고 긴 모양,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양

 

요뇨(騕褭)

하루에 1만 리 혹은 5천 리를 치달린다는 고대 준마(駿馬)의 이름이다.

 

요뇨(嬈嬈)

갸날픈 모양

 

요뇨(撓撓)

어지러워지는 모양

 

요당(坳堂)

장주(莊周)가 지은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한 잔의 물을 움푹 파인 땅바닥에 부어 놓으면 지푸라기가 배처럼 둥둥 떠다닌다[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라는 말이 있다.

 

요당개(坳堂芥)

웅덩이 뜬 지푸라기는 보잘것없는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요당배수개위주(坳堂杯水芥爲舟)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편에 집안에 음푹 판진 곳[坳堂]에다 한 잔 물을 쏟아 놓고 조그마한 풀()로 배를 만들 수 있으나 거기에 잔()을 띄우면 가라앉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요대(瑤臺)

매우 아름다운 누대로 전()하여 신선들이 사는 곳을 말하며, 또한 월궁(月宮)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백(李白)의 청평조(淸平調)군옥산(群玉山)에서 만나지 못하면 요대의 달빛 아래서 만나리하였다.

 

요대식성(要待識聲)

() 나라 온교(溫嶠)가 일찍이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 환온(桓溫)을 보고 이 애가 기골(奇骨)이다.” 하고, 또 그 울음소리를 듣고는 참으로 영특한 아이다.” 하였다. 진서(晉書)卷九十八 환온전(桓溫傳)

 

요동(撓棟)

주역(周易)대과(大過)대과는 들보가 휜 것이다[大過棟撓].”하였고, 단사(彖辭)들보가 휜 것은 본말이 약한 때문이다[棟撓本末弱也].” 한 데서 온 말이다.

 

요동백탑(遼東白塔)

요양(遼陽)의 구요동성(舊遼東城) 광우사(廣祐寺)에 있는 높이가 수십 장이나 되는 탑인데, ()나라 태종(太宗)이 요동을 경략할 때 울지경덕(尉遲敬德)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요동시(遼東豕)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대단하게 아는 것의 비유. 어양 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군대를 일으켜 부()를 공격하자, 부의 사람이 팽총에게 서한을 보내 꾸짖기를, “옛날 요동에서 돼지가 머리통이 흰 새끼를 낳아 그를 특이한 것으로 생각하고 왕께 바치고는 그 후 하동(河東)을 갔더니 모두가 머리통이 흰 돼지들만 있어 그를 보고 너무 부끄러워했다.” 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주부전(朱浮傳)

 

요동지시(遼東之豕)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요동학(遼東鶴)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신선술(神仙術)을 배워 학이 되어 날아온 것을 말한다. 한 나라 때 요동 사람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그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이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 하였다. 수신후기(搜神後記)

 

요득(療得)요기하다.

 

요락(搖落)

숙살지기(肅殺之氣)가 몰아쳐 나뭇잎이 다 떨어지는 가을철. 조락(凋落)하고 쇠잔한 것을 말한다. () 나라 시인 송옥(宋玉)이 지은 초사(楚辭)구변(九辨) 첫머리에 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초목은 소슬히 낙엽지고 쇠한 모습 바뀌었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요락경상정(搖落更傷情)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시인 송옥(宋玉)구변(九辯)슬프다, 가을 기운이여. 소슬하니 초목은 낙엽 지고 고운 모습 변했도다[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는 표현이 있다.

 

요락일(搖落日)

가을철을 말한다. 초사(楚辭)』 「구변(九辯)슬프다, 가을의 절기여. 쓸쓸히 초목은 낙엽지고 시들어 가는구나[悲哉秋之爲氣也 蕭瑟兮草木搖落而變衰].”라 하였다.

 

요람(搖藍)

유아를 눕히거나 앉혀서 흔들어 유쾌하게 하거나 잠재우는 재롱. 사물이 발달한 처소.

 

요량(遶梁)

옛날 한아(韓娥)가 제() 나라에 갔다가 양식이 떨어지자 옹문(壅門)에 들러 노래를 불러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그가 떠난 뒤로 그 노래의 여음(餘音)이 들보 사이에서 3일간 끊이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노래의 절묘한 여음을 말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요려(繚悷)

근심 어린 마음에 싸여 있다

 

요령(曜靈)

밝음을 가져오는 정령, 해를 말한다. 초사(楚辭)천문(天門)曜靈安藏이라고 하였다.

 

요령(要領)

주지(主旨), 의취(意趣)의 뜻이다.

 

요령부득(要領不得)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요료(漻漻)

높고 먼 모양

 

요료(了了)

슬기로운 모양, 명확한 모양, 마침내, 드디어, 마침, 끝남

 

요료(寥寥)

쓸쓸하고 고요한 모양, 공허한 모양, 수가 적은 모양

 

요림익부동성진(遙臨益部動星辰)

익부(益部)는 촉지(蜀地)인 익주(益州)를 달리 이른 말이다. 후한 때 이합(李郃)이천상(天象)을 잘 관측하였는데, 그가 현()의 후리(候吏)로 있을 적에 조정에서 미복(微服) 차림으로 두 사자(使者)가 내려와 익부에 당도하여 이합의 후사(候舍)에 투숙하였는바, 이때 이합이 하늘을 쳐다보고 두 사자에게 묻기를 두 분이 서울을 출발할 때에 조정에서 두 사자가 파견된 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하자, 두 사자가 서로 놀라며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이합이 별을 가리켜 보이면서 두 사성(使星)이 익주의 분야(分野)를 향하였기 때문에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二

 

요마(幺麽)

작은 것

변변하지 못함. 송순의 문개가(聞丐歌)작디 작은 몸이 변변찮음을 알겠다[區區形骸知么麽].”라는 말이 있다.

 

요매구기(妖魅口氣)

요괴(妖怪)한 입버릇.

 

요명(窈冥)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21에 나오는 말로서 심오하여 측량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요명명(瞭冥冥)

언행이 고결한다. 원대한다. 언행이 고결하여 하늘에 이르다.

 

요묘(要䏚)

아름답고 오묘한다.

 

요묘묘(瞭杳杳)

언행이 고결한다.

 

요무성(了無聲)

전혀 소리가 나지 않다. ‘()’전혀’, ‘전연의 뜻이다.

 

요봉(堯封)

요 임금 때 백성들의 풍속이 아름다워져서 집집마다 모두 덕행(德行)이 있어 정표(旌表)할 만하였던 것을 가리킨다.

중국의 강역(疆域)을 가리킨다. 요 임금 때 순()에게 명해서 천하를 순시하여 12주를 만들고 12개의 큰 산에다가 봉토(封土)를 쌓고 제사 지내게 했다고 한다.

 

요봉(堯峯)

() 나라 왕완(汪琬)의 호이다.

 

요봉문필(堯峯文筆)

요봉(堯峯)은 왕완(汪琬)의 호이다. () 나라의 문장가였는데, ()에 능하였다.

 

요부(姚怤)

당대(唐代)의 사람. 장적(張籍)이 요부에게 준 시에, “그대 지금 하위에 있거니, 무슨 수로 뜻을 펼 것인가. 백발에도 문장력은 젊어, 그대 이 나라 현량 되리[君今直下位 志氣安得揚 白髮文思壯 才爲國賢良].”라고 하였다. 패문운부(佩文韻府)姚怤

 

요부(堯夫)

() 나라의 학자 소옹(邵雍)의 자, 호는 강절(康節). 주역(周易)의 수리(數理)를 좋아하여 태극(太極)을 우주의 본체로 보았는데 상수(象數)의 학문을 중시하였다. 낙양(洛陽)에 거의 30년이나 살면서 거처하는 곳을 안락와(安樂窩)로 명명하고 스스로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고 불렀다. 저서로는 관물편(觀物篇)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등이 있다. 송사(宋史)427 소옹전(邵雍傳)

 

요부관물(堯夫觀物)

요부(堯夫)는 송() 나라 도학자 소옹(邵雍)의 자(), 그의 저서에 관물편(觀物篇)이 있다.

 

요부수미시(堯夫首尾詩)

요부(堯夫)는 송 나라 소옹(邵雍)의 자. 수미시는 곧 그가 지은 수미음(首尾吟)이란 시를 가리키는데, 이 시는 모두 135수나 되는바, 매수(每首)마다 첫 구절과 끝 구절이 모두 요부는 시읊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堯夫非是愛吟詩]”로 되어 있어 수미(首尾)에 동일한 구절을 쓰고 있다. 격양집(擊壤集)卷二十

 

요부하사음(堯夫何事吟)

요부는 바로 송() 나라 때의 도학자인 소옹(邵雍)의 자인데, 소옹의 하사음(何事吟)낚시질은 잘못 생살의 권한을 쥐게 되고 바둑 두는 건 가끔 전쟁의 마음을 일으키네 좋은 술 한 잔으로 애오라지 건강 보호하노니 숲 아래서 때로는 혹 스스로 마신다오[釣水誤持生殺柄 著棋間動戰爭心 一盃美酒聊康濟 林下時時或自斟]”하였다. 격양집(擊壤集)卷三

 

요사(姚姒)

순임금()임금을 가리킴. ‘()’는 우순(虞舜) 성이고, ‘()’는 하우(夏禹) 성이다. / 인용: 皇華集序(이정구)

 

요사(遙思)

오래 생각하다.

 

요산요수(樂山樂水)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의 준말로 지혜있는 자는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의리에 밝고 산과 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 한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옹야(雍也)

 

요서지일지(鷯棲只一枝)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뱁새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사람이 각각 자기 분수에 만족함을 비유한 것이다.

 

여소(蓼蕭)

시경(詩經)소아(小雅)의 편명인데, 이 시는 제후들이 주() 나라 천자에게 조회하였을 적에 천자가 그들에게 사랑과 은혜로써 주연(酒宴)을 베풀며 연주한 악가이다.

 

요송(謠誦)

남들이 못 잊어 노래하고 외움. 전하여 재덕이 훌륭한 인품. 도홍경(陶弘景)의 좌선공비(左仙公碑), “궤범(軌範)을 후세에 남기고, 그를 위해 요송(謠誦)을 만들 만한 자가 지금으로 끝이 났다.” 하였다.

 

요수수통매(燎鬚隨痛妹)

누이의 병을 몸소 간호함을 말한다. ()의 이적(李勣)은 복야(僕射)의 높은 지위에 있었는데도 그의 누이가 앓자, 반드시 몸소 불을 지펴 죽을 쑤어 먹였는데 한번은 그만 수염을 태우고 말았다. 신당서(新唐書)』 「이적전(李勣傳)

 

요순갑(堯舜甲)

요순의 갑년이란 태평한 시대의 회갑이란 뜻이다.

 

요슬(瑤瑟)

아름답게 옥으로 장식한 비파.

 

요시(遼豕)

옛날에 요동에 돼지가 있었는데 머리가 흰 새끼를 낳았으므로, 기특히 여겨 임금께 바치려고 가다가 하동(河東)에 이르러 보니, 거기 돼지는 모두 흰 것이어서 부끄러워 돌아왔다는 내용이 한서(漢書)에 보인다. 하찮은 재주를 뽐냄에 비유한 것이다.

 

요심충(蓼心蟲)

사람의 기호(嗜好)가 각기 다르다는 뜻이다. 초사(楚辭)』 「방초기(芳草記)초사에 여뀌의 대공을 갉아먹는 벌레는 해바라기로 옮길 줄을 모른다.’ 했는데, 이는 여뀌의 맛은 맵고 해바라기의 맛은 단데도 벌레들은 제가 좋아하는 것에만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옮길 줄을 모르는 것이다.” 하였다.

 

요아정(蓼莪情)

효자(孝子)가 부모의 봉양을 뜻대로 하지 못하여 슬퍼하는 정을 이른다. 시경(詩經)소아(小雅) 육아(蓼莪)저 장대한 풀을 쑥인 줄 알았더니, 쑥이 아니고 다른 풀일세. 불쌍하신 우리 부모님, 날 낳으시느라 수고하셨네[蓼蓼者莪 匪莪伊蒿 哀哀父母 生我劬勞].” 한 데서 온 말이다.

 

요아채(蓼芽菜)

가장 이른 봄에 나오는 야채인데, 소식(蘇軾)의 원일시(元日詩)봄 쟁반의 요아채는 보기가 기쁘구나[喜見春盤得蓼芽]”하였다.

 

요아편(蓼莪篇)

() 나라 왕부(王裒)시경(詩經)소아(小雅) 육아(蓼莪)슬프다 우리 부모, 나를 낳아 얼마나 고생하셨나.(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대목을 읽을 때마다, 참형(斬刑)을 당한 부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곤 하였으므로, 수업받는 문인들이 아예 육아편을 폐()하려고 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서(晉書)孝友 왕몽전(王濛傳)

 

요야(遙夜)

긴 밤

 

요야공근궁토궤(遼野空勤躬土簣)

당 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다가 안시성(安市城) 전투에서 패한 뒤 철수하면서 이곳을 지날 적에 진창에 길이 막혀 전진할 수가 없었다. 이에 군사들을 시켜서 흙과 나무로 진창을 메우게 하였는데, 태종도 직접 흙과 나무를 등에 지고 날라서 메웠다고 한다. 신당서(新唐書)220 동이열전(東夷列傳)高麗

 

요양(遼陽)

중국 요령성(遼寧省) 안에 있는 고을 이른다. 진한(秦漢) 시대에는 요동군(遼東郡)을 두었고, () 이후로는 고구려(高句麗)에 속했었는데, 당 고종(唐高宗)이 고구려와 싸워 이기고는 그곳에다 요양현을 두었음.

 

요역(堯曆)

요 임금의 역서는 요 임금의 뜰에 명협(蓂莢)이란 서초(瑞草)가 나서 매달 15일 경에는 하루에 한 잎씩 피고, 16일부터는 한 잎씩 떨어지므로, 이것을 보아 역서(曆書)를 만들었다 한다.

 

요열(搖悅)

마음이 산란하고 놀라다

 

요와증(饒瓦甑)

공자가 진채(陳菜)에서 포위를 당하여 7일 동안을 굶다가 와증(瓦甑)의 밥을 받아먹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재액(在厄),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요요(嫋嫋)

가을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모양.

 

요요(堯堯)

매우 높은 모양

 

요요(喓喓)

벌레 우는 소리

 

요요(曜曜)

빛나는 모양

 

요요(擾擾)

어지러운 모양, 소란한 모양, 부드러운 모양

 

요요(姚姚)

예쁨, 아리따움

 

요요(嶢嶢)

위태한 모양, 산이 높은 모양, 뜻이 높은 모양

 

요요(夭夭)

젊고 용모가 아름다움, 낯빛이 화기가 있는 모양, 하늘이 죽임

 

요요(橈橈)

휘는 모양, 연약한 모양

 

요요(搖搖)

흔들리는 모양, 안착하지 못하는 모양

 

요요(遙遙)

흔들리는 모양.

 

요원지화(燎原之火)

무서운 기세로 타는 벌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미처 막을 사이 없이 퍼지는 세력을 형용하는 말이다.

 

요위(姚魏)

옛날 낙양(洛陽)의 요씨(姚氏) 집에서 길렀던 모란꽃의 별칭인 요황(姚黃)과 위씨(魏氏) 집에서 길렀던 모란꽃의 별칭인 위자(魏紫)를 합칭한 말이다.

 

요인(徭人)만인(蠻人)의 일종이다. 후산총담(後山叢談)널리 산골짜기에 사는 것을 요인이라 하고, 물의 배 위에서 사는 것을 연인(蜒人)이라 하고, 섬 위에서 사는 것을 여인(黎人)이라 한다.” 하였다.

 

요잠(裊簪)

()ㆍ한() 시대의 벼슬 이름인 잠뇨(簪裊). 여기서는 중요한 지위를 말한다.

 

요잠(瑤簪)

산봉우리가 마치 비녀처럼 솟아 있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요장(瑤漿)

()은 옥()이다. 요옥(瑤漿)은 미음이 옥과 같은 백색인 것이다.

 

요전(堯典)

상서(尙書) 첫머리의 편명. 희화력(羲和曆)은 당우(唐虞) 때의 역상(曆象)을 맡은 관원인 희씨와 화씨가 만들었다는 달력이다. 상서(尙書)』 「요전(堯典)

 

요전가학(腰錢駕鶴)

소원을 다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원을 말하는데 어떤 이는 양주자사(揚州刺使)하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돈 많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학 타기를 원하였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말하기를 허리에 돈 10만 관을 차고 학 타고 양주 상공을 날고 싶다.” 하였다. 사문유취(事文類聚)後集卷四十二 羽蟲部, 고문진보(古文眞寶)卷二 녹균헌(綠筠軒)

 

요전과학(腰錢跨鶴)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일을 원하는 일종의 몽상(夢想)을 말한다. 세 사람이 각자 자신의 소원을 말하면서, 양주 목사(揚州牧使)가 되는 것과 거부(巨富)가 되는 것과 학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거론하였는데, 뒤늦게 한 사람이 와서 그 말을 듣고는 나의 소원은 허리에 십만 관의 돈을 두르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날아가는 것이다[腰纏十萬貫 騎鶴上揚州].”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은운(殷芸)의 소설(小說) 6권에 실려 있다.

 

요전뢰(繞殿雷)

과거 급제자를 창방(唱榜)하는 날에 맨 처음 재상(宰相)이 그의 성명(姓名)을 보고 아무라고 말하면, 이로부터 계하(階下)로 전해 가면서 소리를 일제히 호창하게 되는데, 이때에 그 소리가 궁전을 진동시키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요전평장(堯典平章)

요전(堯典)서경(書經)의 첫 편인데, ()의 사실을 적은 것이다. 그 중에 백성(百姓)을 평장(平章)한다는 말이 있다. 평장은 평화롭고 밝게 한다는 뜻이다.

 

요절복통(腰折腹痛)

너무나 우스워서 허리가 끊어지고 배가 아픈 것 같은 느낌

 

요제(褭蹄)

장자(莊子)』 「마제편(馬蹄篇)의 별칭으로,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생활을 말한다.

 

요조(窈窕)

요규(窈糾)로 아득히 멀어 시름에 잠겨 있는 것이다. 시경(詩經)진풍(陳風) 월출(月出)달이 떠서 환하거늘, 아름다운 사람 예쁘기도 하도다. 어이하면 그윽한 시름을 펼꼬, 마음에 애태우기를 심히 하노라[月出皎兮 佼人僚兮 舒窈糾兮 勞心悄兮].”하였다.

 

요조(繞朝)

춘추(春秋)시대 때에 진() 나라 사회(士會)가 망명하여 진() 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 뒤 진() 나라에서 다시 사회(士會)를 불러 쓰려다가 싸움이 나서 두 나라 군수가 하수(河水) 양쪽에서 대진하게 되었다. 강화(講和)의 대표로 사회를 보내라고 청하니, () 나라 요조(繞朝)라는 사람이, “사회가 가면 오지 않을 것이니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나 진() 나라에서는 마침내 사회를 보내기로 하였다. 출발할 때에 요조(繞朝)가 사회에게 채찍을 주면서, “자네는 진() 나라에 사람이 없다 하지 말라. 내 꾀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 하였다.

 

요조숙녀(窈窕淑女)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요조(窈窕)는 고상하고 정숙함을 말한다.

 

요조숙녀군자호구(窈窕淑女君子好逑)

행실과 품행이 고운 여인은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요조책(繞朝策)

() 나라의 대부(大夫) 요조가 진인(晉人)들의 이간책(離間策)을 알아차렸던 고사를 말한다.’채찍은 말채찍을 뜻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책모(策謀)를 가리킨다. 좌전(左傳)文公 十五年

 

요조편(繞朝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진() 나라의 사회(士會)가 진() 나라로 망명 가 있었는데, () 나라에서는 진()에서 사회의 계책을 쓸까 두려워하였다. 이에 계책을 써서 사회를 진() 나라로 돌아오게 하였는데, 사회가 돌아올 때 진() 나라의 요조가 사회에게 채찍을 주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우리 진() 나라에 인물이 없다고 여기지 말라. 나는 진() 나라의 계책을 알고 있다.” 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文公 13

 

요존(堯尊)

요 임금의 술동이. 곧 성군이 하사한 술이라는 것이다.

 

요좌(遼左)

요동(遼東)의 왼쪽으로 곧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요주(遼柱)

요동(遼東)의 화표주(華表柱), () 나라 때 요동 사람 정령위(丁令威)가 학이 되어 날아와서 앉았던 곳이다.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요동으로 돌아와 화표주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은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라고 하였다. 수신후기(搜神後記)

 

요중개구양묘음(搖中開口揚妙音)

혀를 나무로 만든 큰 방울로 목탁(木鐸)이다. 고대에 법령을 반포할 때 이를 흔들어 알렸기 때문에 모종의 정책이나 학설을 선양한 사람의 비유로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공자를 비유한 것이다. 논어(論語)』 「팔일(八佾)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를 목탁으로 삼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요지(瑤池)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신선의 거주지로, 일찍이 서왕모(西王母)가 주목왕(周穆王)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목천자전(穆天子傳)3

 

요지(瑤池)

곤륜산(崑崙山) 위에 있다는 신화 속의 못 이름인데, 서왕모(西王母)가 주목왕(周穆王)을 영접하여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전설이 전해 옴. 목천자전(穆天子傳)3

 

요지부동(搖之不動)

흔들어도 꼼짝 아니하고 움직이지 않음.

 

요지연(瑤池宴)

요지는 하늘에 있는 못이요, 그 못 위에는 반도(蟠桃)라는 복사가 있는데,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열린다는 것이다. 그 복사가 익으면 서왕모(西王母)가 큰 연희를 열어서 많은 신선들을 초대한다고 한다.

 

요지원심목(腰肢怨心目)

명산 승지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과 눈의 욕구 때문에 그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통받는 쪽은 허리와 팔다리 등 육체이므로 한 말이다.

 

요지유(繞指柔)

손가락에 두를 수 있다는 말로 지극히 유약함을 말한다. 문선(文選)유공증노심시(劉琨贈盧諶詩)어찌 생각했으랴, 백 번 달군 강철이 손가락에 두를 수 있도록 부드러워짐을[何意百鍊鋼 化爲繞指柔].”하였다.

 

요지종(瑤池種)

요지(瑤池)는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선경(仙境)으로 선녀(仙女)인 서왕모(西王母)가 여기에 산다고 하는데, 이곳에 천 년 만에 한 번씩 꽃이 피고 열매가 여는 반도(磻桃)가 있다고 하므로 이른 말이다.

 

요천(蓼川)

남원(南原)에 있는 천명(川名)이다.

 

요천일(寥天一)

휑하게 빈 곳으로 너무 적요하여 하늘과 일반이라는 뜻이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요천일재(寥天一齋)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자연의 질서에 순응하여 변화해 가면서 마침내 적요한 하늘의 일자(一者)에 동화해 들어간다[安排而去化 乃入於寥天一].”라고 하였다.

 

요첩(瑤牒)

후비 등을 책봉하고 칭송하는 글발을 적어 새긴 간책(簡冊)으로 옥책(玉冊) 등을 말한다.

 

요체(拗體)

율시(律詩)나 절구(絶句)로서 평측(平側)을 따지지 않은 것. ()는 비뚤어지고 꼬부라진 것인데, ()에 요체(拗體)란 것은 음운(音韻)이 보통의 시와 다른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 시인으로는 정지상(鄭知常)의 작품이 106,7은 요체에 속하는데, 녹양폐호팔구옥 명월권렴삼사인(綠揚閉戶八九屋 明月捲簾三四人) 등의 글귀가 그런 것이다.

 

요초(潦艸)

()’()’의 잘못인데 요초는 일이 조솔(粗率)함을 말한다. 주자의 훈학재규(訓學齋規)寫字未問工拙如何 且要一筆一畫嚴正分明 不可老艸라 하였다.

 

요초(妖草)

담배(南靈草)의 별칭이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던 사람이 끊으려 하나 좀처럼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요초(妖草)’라고도 하였다.

 

요초(瑤草)

선경에서 자란다는 진기한 풀.

 

요편(瑤編)

보배로운 책이라는 뜻으로 진경을 수식하는 말이다. 진경은 노자(老子)장자(莊子)열자(列子)등 도교(道敎)의 책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신선술에 관한 책을 가리킨다. 난참은 신선이 타는 수레를 말하고, 자명은 구중(九重)의 하늘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시 부용성(芙蓉城)’, “왔다 갔다 삼세 동안 공연히 육신을 단련하며, 결국은 황정경 잘못 읽고 신선이 되고 말았어라. 하늘문 밤에 열리면 영혼을 통째 날리나니, 백일에 구름 수레 다시 탈 게 뭐 있으랴. 천 겁을 간다 한들 세상 인연 없어질까, 떨어져 내리는 비취 우의(羽衣) 처연히 남는 향기로다[往來三世空鍊形 竟坐誤讀黃庭經 天門夜開飛爽靈 無復白日乘雲輧 俗緣千劫磨不盡 翠被冷落凄餘馨].”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6

 

요포(瑤圃)

아름다운 동산으로 신선이 사는 곳. 초사(楚辭)』 「섭강涉江청룡 타고 백룡 몰고서 나는 중화와 요포에서 놀리라[駕靑虯兮驂白螭 吾與重華遊兮瑤之團]” 하였다.

 

요하(遼河)

옛 이름은 구려하(句驪河)인데, 길림(吉林) 살하령(薩哈嶺)에서 발원(發源)하는 동요하(東遼河)와 내몽고(內蒙古) 백분산(白岔山)에서 발원하는 서요하가 요령(遼寧) 창도현(昌圖縣) 고산둔(靠山屯) 부근에서 합쳐진 다음에 요하라고 불린다. 그곳에서 서남쪽으로 꺾어져 반산만(盤山灣)을 통해 바다로 들어간다.

 

요하(穾廈)

겹으로 된 큰 집, .

 

요하(么荷)

연실(蓮實) 속에 박힌 연 싹[蓮芽], 즉 연심(蓮心)을 이르는데, 황정견(黃庭堅)의 공상식련유감시(贛上食蓮有感詩)연실의 크기가 손가락만한데 좋은 맛 나누어라 인자한 어머니 생각나네 …… 열매 속엔 요하가 있으니 소아의 주먹처럼 말려 있구나 …… 연심은 정히 절로 쓰니 쓴 것을 먹고 어찌 달 수 있으랴[蓮實大如指 分甘念母慈 …… 實中有么荷 拳如小兒手 …… 蓮心政自苦 食苦何能甘]”하였고, 진초(陳樵)의 죽지사(竹枝詞)에는 첩의 마음은 흡사 연심처럼 쓰기에 요하만 먹고 연은 먹지 않는다오[妾心恰是荷心苦 只食么荷不食蓮]”하였다.

 

요하황금요계자(腰下黃金饒季子)

전국시대(戰國時代)소진(蘇秦)이란 사람인데, 그는 한때에 여섯 나라 정승이 되어서 여섯 나라에서 봉급으로 받는 황금이 많다고 하여, 그 가족들이 모두 아첨을 올렸다는 말이 있다.

 

요학(遼鶴)

() 나라 때 신선술을 닦아 학으로 변해서 고향인 요동(遼東)에 돌아왔다는 정령위(丁令威)를 가리킨다. 그 전설에 의하면, 1천 년 만에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간혹 화학삼천세(化鶴三千歲)’라는 표현 등으로 시구에 등장하기도 한다. 정령위가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그 뒤 천 년이 지난 뒤에 학이 되어 요동에 돌아와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새여 새여 정령위여, 집 떠난 지 천 년 만에 오늘에야 돌아왔네. 성곽은 의구한데 사람들은 아니로세. 어찌 신선 아니 배워 무덤이 총총하뇨.”라고 하였다. 수신후기(搜神後記)

 

요학기시환(遼鶴幾時還)

요학은 학이 되어 요동(遼東) 고향으로 돌아온 정령위(丁令威). 그는 영허산(靈虛山)에서 선수(仙術)을 배웠는데, 뒤에 학으로 변하여 요동의 아문(衙門) 기둥에 앉았다 한다. 수신후기(搜神後記)

 

요합(姚合)

() 나라 시인. 요합은 요소감(姚小監) 또는 요무공(姚武功)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요해(遼海)

요동 반도(遼東半島)의 서해를 가리킨다.

 

요해이가(遼海移家)

요해(遼海)는 요동의 해변. 북해(北海) 주허(朱虛) 사람인 관녕(管寧)이 후한(後漢) 말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요동으로 가서 37년 동안 문도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며 살았다.

 

요행(徼幸)

운좋다, 다행이다

 

요행장원(僥倖壯元)

중종 12년 정축문과(丁丑文科)에서 허관(許寬)이 예전 사람이 지은 문장을 훔쳐서 한 구절도 고치지 않고 베꼈는데도 장원이 되자 사람들이 기롱하여 부른 말이다.

 

요현(么絃)

육기(陸機)의 문부(文賦)絃么而徽急이 있고, 주석에 설문해자(說文解字)么 小也를 인용하였다.

 

요협(瑤莢)

명협. 요 임금 때 있었다는 상서로운 풀 이른다. 매월 초하루부터 잎 하나씩 돋아나 보름이 되면 열 다섯 잎이 나오고 16일부터는 다시 하나씩 떨어져 그것으로 날짜를 계산하였다 하여 책력의 별칭으로 쓰인다.

 

요형(遼夐)

멀고 아득하다

 

요화(瑤華)

신마의 옥 같은 꽃.

 

요확(寥廓)

넓고 큰 모양. 광원. 텅 비다, 허전하다

 

요환유이(瑤環瑜珥)

형제가 훌륭함을 말한다. 창려집(昌黎集) 전중소감마군묘지(殿中小監馬君墓誌)여자 스승이 어린아이를 안았는데, 예쁘고 빼어남이 아름다운 구슬과 같다[幼子娟好靜秀, 瑤環瑜珥].” 하였다.

 

요황(姚黃)

모란화(牡丹花). 아름다운 모란꽃의 종명(種名)이다.

 

요황(要荒)

요복(要服)과 황복(荒服)의 합칭으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지방을 말한다.

 

요황위자(姚黃魏紫)

구양수(歐陽修) 목단보(牡丹譜)전사(錢思)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모란(牡丹)은 꽃 중의 왕이다.’ 하지만, 지금 요씨(姚氏)의 집에 있는 노랑꽃(姚黃)은 참으로 꽃 중의 왕이라 할 만하고 위씨(魏氏)의 집에 있는 자주꽃(魏紫)은 왕후라 할 만하다.’ 하였다.” 했다.

 

요황위자(姚黃魏紫)

두 종류의 진기한 모란꽃인데, 요황은 송() 나라 때 요씨(姚氏)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서 재배한 천엽황화(千葉黃花)이고 위자는 오대(五代) 때 위인보(魏仁溥)의 집에서 재배한 천엽홍화(千葉紅花)이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모란꽃에 비유한다.

 

요황위자(姚黃魏紫)

모란의 이름이다. 구양수(歐陽修)의 모란기(牧丹記)요황은 천엽황모란(千葉黃牧丹)인데 민간의 요씨의 집에서 나온 것이고, 위자는 천엽육홍화(千葉肉紅花)인데 위상(魏相) 인보(仁溥)의 집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다.

 

요황위자(姚黃魏紫)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낙양모란기(洛陽牡丹記)서민인 요씨(姚氏)의 집 모란은 일천 개 이파리에 노란 꽃(千葉黃花)이 피고 위상 인부(魏相仁溥)의 집 모란은 일천 개 이파리에 붉은 꽃(千葉紅花)이 피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요황 위자(姚黃魏紫)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요황화(姚黃花)

낙양(洛陽) 요씨(姚氏)의 집에서 난 명화(名花)인 황모란(黃牡丹)을 말한다. () 나라 때 정승이적(李迪)이 처음으로 이 요황화를 임금께 바쳤다 하여, 소식(蘇軾)의 시에 낙양의 상군은 충효가문 사람이라. 또한 요황화를 바친 것이 어여쁘도다[洛陽相君忠孝家 可憐亦進姚黃花].” 하였다.

 

요휘(瑤徽)

거문고를 말하는데, 요주(瑤柱)에 줄()을 매었다는 말이다.

 

 

인용

목차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어휘놀이터 > 어휘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휘사전 - 228. 용  (0) 2020.04.29
어휘사전 - 227. 욕  (0) 2020.04.29
어휘사전 - 225. 외  (0) 2020.04.29
어휘사전 - 224. 왜  (0) 2020.04.29
어휘사전 - 223. 왕  (0) 2020.04.2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