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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228. 용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228. 용

건방진방랑자 2020. 4. 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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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용가(龍家)

금산(錦山) 예현역(禮賢驛)에 용가(龍家)란 할머니가 있었는데, 용가는 그의 아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 노파를 나이 많다 하여 감히 이름 부르지 못하고 아들 이름으로 불렀다. 나이 백 살이 넘도록 튼튼하고 무병(無病)하였다.

 

용가방(龍哥榜)

사람을 조롱하는 벽보(壁報). 조선조 연산군 때, 무뢰배들이 사람을 조롱하는 벽보를 종루(鐘樓)에 붙이고, 그를 용가(龍哥)방이라고 했었다.

 

용강(龍岡)

지명이다. 명 태조(明太祖)가 언젠가 종산(鍾山)에 행차하였다가 용강에서 순화문(淳化門)까지 걸어와서 시신(侍臣)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전답 근처를 지나보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마침 농부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밭 가는 것을 보고는 너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하였다. 연감유함(淵鑑類函)』 「권농(勸農)

 

용강(龍江)

용호(龍湖), 예양강(汭陽江)으로 불리는 전라도 장흥 땅을 흐르는 탐진강의 지류이다. 실제 백광훈(白光勳)의 고향집 앞을 흘러가던 강물이기도 하다. / 인용: 龍江詞(백광훈)

 

용강상산고가람(龍江上山古伽藍)

수종사(水鍾寺)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곳 양수리(兩水里)라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그 양수리를 옛날에는 용나루(龍津)라 하였으므로 여기 용강이라 하였다.

 

용개고문(容蓋高門)

() 나라 우공(于公)이 옥()을 다스리는데, 음덕(陰德)을 많이 쌓고, 집을 지으면 대문을 높고 크게 만들면서, “내 자손중에 반드시 귀한 자가 날 것이니 사마(駟馬)와 높은 일산()이 출입할 만큼 문을 크게 한다.” 하더니, 뒤에 과연 우정국(于定國)이 나서 벼슬이 정위(廷尉)에까지 이르렀다.

 

용건식토(龍巾拭吐)

당 나라 이백(李白)이 장안 저자에서 술에 취해 자다가 갑자기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침향정(沈香亭)에서 모란을 읊은 청평사(淸平詞) 3수를 지을 새, 취한 것을 깨우려고 현종이 친히 수건으로 입가에 토한 것을 훔치었다.

 

용검(龍劍)

땅에 묻혀 하늘의 두우(斗牛) 간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뇌환(雷煥)에 의해 발굴되었다는 용연검(龍淵劍)을 말한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용검사우빈(龍劍射牛頻)

용검(龍劍)은 용천검(龍泉劍)으로,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 나라 때 오() 땅에 붉은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그곳을 파서 이 용천검을 얻었다고 한다.

 

용검직충우(龍劍直衝牛)

용천검(龍泉劍)은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 나라 때 오()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보검을 얻었다고 한다.

 

용견음득설중시(聳肩吟得雪中詩)

() 나라 맹호연(孟浩然)이 경사(京師)에 가던 도중에 눈을 만나 지은 시를 말한다. 이를 두고 송() 나라 소식(蘇軾)또 보지 못하는가, 눈 오는 날 당나귀 탄 맹호연의 그 모습을. 시 읊느라 찌푸린 눈썹 산처럼 옹그린 그의 어깨[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라고 읊은 유명한 시구가 전한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2 贈寫眞何充秀才 / 맹호연의 부경도중우설시(赴京途中遇雪詩)’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迢遞秦京道 蒼芒歲暮天 窮陰連晦朔 積雪滿山川 落雁迷沙渚 飢鳥噪野田 客愁空佇立 不見有人煙

 

용경(容經)

가의(賈誼)의 저서인 신서(新書)의 편명인데, 내용은 곧 지()ㆍ용()ㆍ시()ㆍ언()ㆍ좌()ㆍ행()ㆍ궤()ㆍ배() 등에 있어 동작 절도(動作節度) 등의 법칙에 관하여 서술한 것이다. / 인용: 五學論(정약용)

 

용고(龍膏)

용의 기름. 습유기(拾遺記)연 소왕(燕昭王) 3년에 해인(海人)이 용의 기름 몇 말()을 진상하자, 왕이 등촉(燈燭)으로 사용하여 그 광명이 1백 리까지 비쳤으므로 국민들이 모두 서광(瑞光)으로 여겼다.” 하였다.

 

용광사두전(龍光射斗躔)

용천검(龍泉劍)은 중국의 보검 이름이다. () 나라 때 장화(張華)와 뇌환(雷煥)이 천문(天文)을 살피다가 땅 속에 묻힌 보검의 빛이 두우성을 쏘아 비추는 것을 알고 용천검을 파내었다.

 

용광죽(龍光竹)

소식(蘇軾)이 일찍이 용광사(龍光寺)에 들러서 큰 대를 얻어 견여(肩輿)를 만들었던 고사에서 온 말로, 역시 사찰(寺刹)을 의미한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四十四

 

용괘(龍掛)

음력 5~6월 경, 천둥치고 비 내리는 즈음에 혹 짙은 구름 속으로 마치 굼틀거리는 용처럼 보이는 현상을 이른다.

 

용구(龍龜)

비석을 말한다. 우리나라 풍속에 비석 좌대(坐垈)는 거북 모양으로 새기고 관석(冠石)은 용 모양으로 조각한다.

 

용궁(龍宮)

사찰의 별칭이다. 용왕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하여 바다 속에 큰 전각을 만들었다는 불교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룡왕경(海龍王經)』 「청불품설(請佛品說)

예천군(醴泉郡)의 속현(屬縣)이다.

 

용귀진연구(龍歸晉淵舊)

임금의 죽음을 비유한 말이다. () 나라 때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자루 보검(寶劍)을 풍성현(豐城縣)에서 발굴하여, 하나는 장화(張華)에게 주고 하나는 자기가 가졌었는데, 장화와 뇌환이 모두 죽은 뒤에는 두 자루 보검 또한 연평진(延平津)의 못으로 들어가 두 마리 용이 되어 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진서(晉書)卷三十六

 

용귀탑리류진골(龍歸塔裏留眞骨)

법주사(法住寺) 뜰에 고려 승 자정(慈淨)의 비와 탑이 있다. 자정은 고려 왕자 출신.

 

용기(容璣)

무곡(舞曲) 이름이다.

 

용기(龍氣)

용호(龍虎)의 기운이 우러나오는 제왕의 거소라는 뜻으로,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 시대 유비(劉備)제갈량(諸葛亮)으로 하여금 말릉(秣陵) 즉 건업(建業)을 살펴보게 하였더니, 용과 범이 서려 있는 것과 같은 기운이 뻗쳐 나와 제왕의 터전임을 알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156

 

용뇌(龍腦)

용뇌수(龍腦樹)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결정체(結晶體)를 말한다. 본초(本草)

 

용뇌선(龍腦蟬)

양비외전(楊妃外傳)교지국(交趾國)에서 서룡뇌를 진상해 왔는데 그 모양이 선잠(蟬蠶)과 비슷하였 다. 이를 임금이 귀비에게 주었는데 귀비가 몰래 안녹산에게 주었다.” 하였다.

 

용다(龍茶)

용봉차(龍鳳茶), 차 가운데 가장 질이 좋은 차를 말한다.

 

용단(涌湍)

출렁이는 여울물.

 

용당(龍塘)

용당은 동쪽 동산 아래에 고을이 있는데 물은 얕지만 여울물이 빠르게 흐르니 범과 표범 모두 헤엄쳐 건널 수 있어서 나무꾼과 어부는 매번 그들을 조심하고 피한다[龍塘 在府東上東山下 水淺湍駛 虎豹皆泅泳得渡 樵人漁子 每謹避之].” 하였다. / 인용: 虎狼(이학규)

 

용대(容貸)

다른 사람의 죄나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너그러이 이해한다는 뜻이다. / 인용: 善戱謔(이익)

 

용덕(龍德)

임금의 덕을 일컫는 말이다.

 

용도(龍韜)

() 나라 강태공(姜太公)이 지은 병서(兵書)인 육도(六韜) 중의 한 편()이다. 즉 병법(兵法)을 말한 것이다.

 

용도(甬道)

양쪽에 담을 쌓은 길로, 군량을 운반하는 길이다.

 

용도소(龍圖笑)

포용도(包龍圖)는 곧 송() 때 용도각대제(龍圖閣待制)를 지낸 포증(包拯)을 가리키는데, 성품이 워낙 강직하여 그가 조정에서 벼슬하는 동안에는 귀척(貴戚)이나 환관(宦官)들도 감히 발호하지 못하고 그를 무서워하였으며 그가 하도 근엄(謹嚴)하여 웃는 일이 없으므로, 심지어는 사람들이 일컫기를 그가 웃으면 황하수(黃河水)가 맑아질 것이다.”고까지 하였다. 당시 포대제(包待制) 또는 염라포노(閻羅包老) 등으로 불렸으며 우리에겐 포청천으로 알려져 있다. / 인용: 賀燕岩作律詩(박제가)

 

용두(龍頭)

과거 시험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는 것을 말한다.

 

용두객(龍頭客)

과거 시험에 장원(壯元)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용두사미(龍頭蛇尾)

용 머리에 뱀 꼬리. 처음은 좋았다가 갈수록 나빠짐. 또는 시작은 힘차게 하고 끝은 보잘것없는 것을 이른다. 무슨 일을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나중엔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

 

용등삼급(龍登三級)

중국 산서성(山西省) 황하(黃河)의 상류(上流)에 있는 용문(龍門)의 여울이, 매우 물살이 거세어 배가 다닐 수 없고 폭포(瀑布)가 삼단(三段)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용문삼급(龍門三級)이라 하는데, 강해(江海)의 큰 고기들이 모두 이 밑에 모여 이 삼급을 뛰어넘는 고기가 용이 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과시(科試)에 급제한 것의 비유로 쓰인다.

 

용려(龍驪)

용맹한 장수의 별칭이다.

 

용루(龍樓)

대궐의 별칭이다. 한대(漢代) 태자궁(太子宮)의 문으로, 동궁의 처소를 말한다.

 

용릉(舂陵)

고통받는 백성을 말한다. () 나라의 시인 원결(元結)이 도주 자사(道州刺史)로 있을 때 용릉행(舂陵行)을 지어 백성의 참상을 읊었는데, 두보(杜甫)가 이 시를 읽어보고서 감격한 나머지 또 원 사군의 용릉행에 뜻을 같이하며[同元使君舂陵行]’라는 시를 지은 고사가 있다.

장릉(章陵)의 이명(異名)으로, 인조의 생부인 원종(元宗)과 생모인 구씨(裘氏)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능호(陵號)이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제일 하(第一下) 첫머리에 용릉향(舂陵鄕)의 이름을 장릉현(章陵縣)으로 개정한 뒤 대대로 요역(徭役)을 면제하고 풍패(豐沛)에 비해서 손색이 없게 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임금의 아들을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장사정왕(長沙定王)을 봉()하여 용릉후(舂陵侯)로 삼은 고사가 있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영원현조(寧遠縣條)

송 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살던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의 지명으로 주돈이를 가리키며, 밝은 달(霽月)은 광풍제월(光風霽月)의 약칭인데,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를 지으면서 주돈이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한 말이다.

 

용릉유미화(舂陵流美化)

() 나라 시인 원결(元結)이 용릉(舂陵)의 옛 땅인 도주(道州)의 자사(刺史)로 임명된 뒤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도하고는 용릉행(舂陵行)이라는 시를 지어 목민관으로서의 결의를 피력한 고사가 전하는데, 이 시와 서문이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19에 부록(附錄)으로 실려 있다.

 

용린(龍鱗)

쇳조각을 결어 만든 철갑옷이 용의 비늘같다는 것으로 철갑을 말한다.

 

용림처일(容林處一)

자기 분수에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뱁새가 숲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나무 한 가지에 불과하다.” 하였다.

 

용마부도래(龍馬負圖來)

복희씨(伏羲氏) 때 용마(龍馬)가 하수(河水)에서 도서(圖書)를 짊어지고 나왔는데 이것이 ()ㆍ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되었다.

 

용만(龍灣)

의주(義州)의 옛 이름이다.

 

용매(龍媒)

준마(駿馬)를 가리킨다.

 

용면(龍眠)

() 나라 때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 박학(博學)한데다 시()ㆍ서()ㆍ화()에 모두 뛰어났음. 산수(山水)와 불상(佛像), 단청(丹靑)을 잘하였다. 용면산인(龍眠山人). 송사(宋史)』 「문원전(文苑傳)

 

용면거사(龍眠居士)

송대(宋代)의 유명한 화가인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이공린이 치사(致仕)한 뒤 용면산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는 용면거사라고 자호하였다. 이후 화공(畫工)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용무(龍武)

금군(禁軍)의 명칭. () 나라 금군에 좌우용무군(左右龍武軍)이 있었다.

 

용문(龍文)

명검(名劍)인 간장(干將)의 별칭이다.

웅건한 문장(文章)이나 시를 말한다.

 

용문(龍門)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에 있는 산. 남한강 줄기가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명망이 높은 인물의 저택을 뜻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이응(李膺)의 집을 찾아와 마루에 오르도록 허락을 받으면, 모두 용문에 올랐다[登龍門].”고 하면서 영광스럽게 여겼던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황하(黃河) 상류에 위치한 곳으로 잉어가 이곳을 뛰어올라야 용()이 된다고 하는데, ‘사람의 출세를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의 이응(李膺)이 조정이 날로 어지러워지고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때 남달리 탁월한 식견을 지녀 천하에 그 이름이 높았는데, 선비들 가운데 혹시 그의 허여와 접대를 받은 자가 있으면 용문에 올랐다는 칭호가 붙었다. 후한서(後漢書)卷六十七 이응전(李膺傳)

용문은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에 있는 나루인데 이곳은 물이 험하여 고기들이 올라오지 못한다. 이때문에 강에서 몰려온 큰 고기떼가 용문에 모여 올라오려 하는데 만일 올라오면 용이 된다 한다.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의 서쪽에 있는 산 이름으로, 옛날에 () 임금이 치수(治水)할 적에 이 용문산이 하수(河水)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으므로 파내었다고 한다.

용문처사(龍門處士) 남격(南格). 동강(東岡), 언경(彦經)의 아들로서 조식(曹植)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영도의 동쪽 성문

용문은 황하의 급류가 쏟아져 내리는 협곡으로, 옛날 우 임금이 즐풍목우(櫛風沐雨)하며 홍수를 다스릴 적에 용문을 뚫었다는 기록이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에 나온다.

 

용문객(龍門客)

훌륭한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용문(龍門)은 성망(聲望)이 높은 사람에게 비유한 말인데, 후한(後漢) 때 이응(李膺)이 고사(高士)로 명망이 높아, 누구든지 그로부터 한 번 접견(接見)만 받으면 세상에서 그 접견받은 사람에게 용문에 올랐다고 일컬은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

 

용문구배(龍文龜背)

()의 모양이 앞은 기린(麒麟), 뒤는 사슴, 뱀의 머리에 고기 꼬리, 용의 무늬에 거북의 등[龍文龜背] 오색이 있다. 설문(說文)

 

용문얼(龍門櫱)

옛날 용문에 큰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뿌리가 강물에 씻겨서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상태였던바, 이를 베어서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문선(文選)卷三十四 칠발(七發)

 

용문염예(龍門灩澦)

촉중(蜀中)에서 나오는 양자강(揚子江)의 상류에 삼협(三峽)을 지나오는 중간에 물결이 험한 곳이다.

 

용문점액(龍門點額)

이마에 상처를 입음. 물고기가 용문에 오르려다 바위에 부딪쳐 이마에 상처를 입고 떠내려간다는 뜻으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용문점액어(龍門點額魚)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해만 당한다. 잉어가 용문(龍門)을 통과하면 용이 되지만 통과를 못하면 바위에 이마만 부딪치고 돌아온다고 한다. 수경(水經)』 「하수주(河水注)

 

용문호(龍門好)

후한(後漢) 때의 명사 이응(李膺)이 평소에 함부로 교제를 하지 않아 혹시 그의 접대를 받은 자가 있을 때는 세상 사람들이 용문에 올라간 자라고 예찬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덕행(德行)

 

 

용미(龍尾)

() 나라 궁궐 함원전(含元殿)의 용도(甬道)인 용미도(龍尾道)를 말한다.

용미도(龍尾道)의 준말로 조정의 복도를 말한다.

흡주(歙州)에서 생산된다는 가장 품질이 뛰어난 연석(硯石)의 이름이다.

 

용미도(龍尾道)

() 나라 함원전(含元殿) 앞의 복도 이른다.

 

용미봉탕(龍尾鳳湯)

맛이 썩 좋은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미새(龍尾璽)

용미 옥새는 용의 꼬리 모양을 조각한 옥새, 또는 질이 좋기로 이름난 중국 용미산에서 나는 검은 돌로 만든 옥새라.

 

용미옥형(龍尾玉衡)

흐르는 강물을 높은 지대로 인양하는 용미거(龍尾車)와 깊은 샘물을 자아올리는 옥형거(玉衡車). 농정전서(農政全書)

 

용박고음(聳膊孤吟)

소식(蘇軾)의 시에 그대는 또 보지 못하는가, 눈 속에 나귀 탄 맹호연(孟浩然). 어깨는 산처럼 치켜 들고 눈썹 잔뜩 찌푸린 채, 멋진 시구 생각하며 신음하는 저 모습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이라는 명구(名句)가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2 贈寫眞何充秀才

 

용방(龍榜)

용호방(龍虎榜)으로, 회시(會試)에 급제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정원(貞元) 8년에 구양첨(歐陽詹), 한유(韓愈), 이강(李絳) 23인이 육지(陸贄)의 방()에 합격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용호방이라고 칭하였다. 신당서(新唐書)文藝傳下 歐陽詹

 

용방(龍逄)

()나라 충신. 관용방이 하걸(夏桀)의 학정을 보고, “임금을 뵈오니 위석(危石)의 관을 쓰고, 춘빙(春氷)을 밟는 격이다.” 하니 걸이 포락(炮烙)의 형벌을 받게 하였다.

 

용방비간(龍逄比干)

용방(龍逄)은 하() 나라 걸왕(桀王)의 신하인 관룡방(關龍逄)을 말하고, 비간(比干)은 은() 나라 주왕(紂王)의 신하인데, 둘 다 충신으로서 그 무도한 걸왕과 주왕을 간하다가 모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용백(龍伯)

거인(巨人)을 말한다. 발해(渤海)의 동쪽에 대여(岱輿), 원교(圓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선산(仙山)을 떠받치고 있는 여섯 마리의 큰 자라를 용백국의 거인이 낚시질하여 한꺼번에 다 낚아서 이를 짊어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자, 대여와 원교 두 산이 북극으로 흘러가서 큰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옛날 용백국(龍伯國)에 큰 사람이 있어 키가 30길이 되는데, 몇 걸음에 오산(五山)에 이르러 한 번에 여섯 마리의 거오(巨鼇)를 낚았다고 한다.

 

용백국(龍伯國)

전설 속에 나오는 나라로, 여기에는 거인들이 산다고 한다.

 

용백인(龍伯人)

열자(列子)』 「탕문(湯問)용백의 나라에 큰 사람이 있으니 몇 걸음도 안 되어 오산에 이르고 한 번 낚으면 여섯 자라를 잡는다.”고 하였다.

 

용백조거오(龍伯釣巨鰲)

발해(渤海)의 동쪽에 깊은 골짜기가 있는데, 그 안에 대여(岱輿), 원교(圓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선산(仙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바다에 떠 있으므로 항상 조수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므로 상제(上帝)가 사방으로 떠내려갈까 걱정스러워서 열다섯 마리의 자라로 하여금 머리를 들어 떠받치고 있게 하였는데, 3교대로 하여 6만 년마다 한 번 교대하게 하였다. 이에 다섯 선산이 비로소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한 번 낚시질을 하여 여섯 마리의 자라를 잡아서 이를 짊어지고 그 나라로 돌아가자, 대여와 원교 두 산이 북극으로 흘러가서 큰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용비(龍飛)

주역(周易),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飛龍在天].”는 괘효(卦爻)가 있는데, 이것은 임금되는 괘()이다.

 

용사(龍沙)

총령(葱嶺) 근처에 있는 사막인 백룡퇴(白龍堆)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변경 밖의 먼 지역을 가리킨다. 후한서(後漢書)』 「반초전(班超傳)()총설을 활보하고 용사가 지척 사이였다.(坦步葱雪咫尺龍沙)”고 한 데서 인용된 말이다. 그는 본시 큰 뜻이 있어 붓()을 던져 버리고 서역(西域)에 출정(出征)하였다가 그곳의 도호(都護)가 되어 부족(部族)들을 안무시켰고 그곳에 있은 지 31년 만에 돌아왔다.

 

용사(龍蛇)

걸출한 인물들을 가리킨다.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숙향(叔向)의 모친이 깊은 산 큰 못에는 용사(龍蛇)가 나게 마련이다. 저 여자가 아름다우니, 나는 그가 용사와 같은 아들을 낳아 너희들을 해칠까 두렵다.” 하였는데, 그 주에 용사란 비상한 물()을 말한다.” 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襄公 21

사납게 대드는 흉악한 무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간과를 제멋대로 휘두르면서, 참담하게 용사가 대든다마는[干戈雖橫放 慘憺鬪龍蛇].”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 주()간과(干戈)와 용사(龍蛇)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4 喜晴

용과 뱀. 불인어록(佛印語錄)범인(凡人)과 성인(聖人)이 함께 사는 것이 마치 용과 뱀이 한데 섞여 있는 것과 같다.” 하였다. 이는 서로가 해치지 않았다는 비유이다.

 

용사(龍梭)

중국 진() 나라 때의 도간(陶侃)이 어렸을 때, 뇌택(雷澤)에서 그물질하다가 북을 하나 건져 벽에 걸어 놓았더니, 잠시 후에 천둥치고 비가 내리면서 그 북이 절로 용으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는 고사가 있다. 진서(晉書)』 「도간전(陶侃傳)

 

용사경몽(龍蛇驚夢)

용사는 지지(地支)의 진사(辰巳)에 해당하는데, 진사년에는 현인(賢人)이 죽는다는 데서 온 말이다. 후한 때 정현(鄭玄)이 어느날 밤에 꿈을 꾸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일어나거라, 금년은 태세가 진()에 있고, 내년은 태세가 사()에 있다.” 하므로, 꿈을 깨고 나서 참서(讖書)로 맞추어 보고는 자기가 죽을 줄을 알았는데, 과연 그해에 죽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정현전(鄭玄傳)

 

용사구참(龍蛇舊讖)

용사(龍蛇)는 진년(辰年)과 사년(巳年)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올해는 진년이고 내년은 사년이다.”라는 공자의 꿈을 꾸고 나서 그해에 죽었다는 고사에 연유하여 현인(賢人)의 죽음을 말하는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후한서(後漢書)』 「정현전(鄭玄傳)

 

용사루(龍蛇壘)

용사(龍蛇)는 비범한 인재를 말하기도 하고, 병기의 창을 가리켜 말하기도 한다. 여온(呂溫)이 창을 하사받고 사례하는 글에 무고(武庫)의 용사가 갑자기 누항에 날아왔다고 한 말이 있다.

 

용사비등(龍蛇飛騰)

용과 뱀이 나는 것과 같이 글씨가 힘찬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용사새상미인수(龍沙塞上美人愁)

용사는 총령(蔥嶺) 근처에 있는 사막인 백룡퇴(白龍堆)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변경 밖의 먼 지역을 가리킨다. () 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宮女)왕소군(王昭君)이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황제의 총애를 입지 못하다가 궁중 화가(宮中畫家)의 농간에 의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흉노의 땅으로 갈 적에 비파를 들고 변방 땅을 지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서(漢書)94흉노전(匈奴傳)

 

용사세(龍蛇歲)

후한(後漢)의 대유(大儒) 정현(鄭玄)이 죽을 때의 고사이다. 정현의 꿈에 공자(孔子)가 나타나 이르기를 빨리 일어나라. 금년은 용해이고 내년은 뱀해이니라.” 하였는데, 잠을 깨어 그 말을 비결로 맞춰보고 자기가 죽을 것을 알았으며 그해 6월에 죽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三十五 정현전(鄭玄傳)

 

용사원(龍沙怨)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의 선우(單于)에게 시집가면서 슬퍼한 고사를 말한다. 용사는 총령(蔥嶺) 근처에 있는 사막인 백룡퇴(白龍堆)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변경 밖의 먼 지역을 가리킨다. () 나라 원제(元帝) 때 궁녀(宮女)인 왕소군이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황제의 총애를 입지 못하다가 궁중 화가(宮中畫家)의 농간에 의해 흉노(匈奴)의 선우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흉노의 땅으로 갈 적에 비파를 들고 변방 땅을 지나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한서(漢書)94흉노전(匈奴傳)

 

용사적자(龍蛇赤子)

지방 장관이 정사를 공적(公的)으로 행하느냐 사적(私的)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백성이 어린아이처럼 따르기도 하고 용사처럼 흉악하게 대들기도 한다[一以爲赤子 一以爲龍蛇]는 말로, 한유(韓愈)운주계당시서(鄆州溪堂詩序)’에 나오는 말이다.

 

용사참(龍蛇讖)

진년(辰年)이나 사년(巳年)에는 현인(賢人)이 죽는다고 하는 예언을 말한다. 후한(後漢) 정현(鄭玄)이 꿈속에서 진년(辰年)이라고 일깨워 주는 공자(孔子)의 말을 듣고서 자기가 죽을 것을 알았다는 고사가 전해 오고 있다.

 

용사행장(用舍行藏)

뜻을 얻어 세상에 도를 행하고, 물러나 은거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써 주면 도를 행하고 버리면 도를 간직한 채 숨는 그 일을 오직 안회(顔回) 너와 나만은 할 수가 있다[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라고 한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용산(龍山)

() 나라 맹가(孟嘉)가 황온(桓溫)의 참군(叅軍)이 되었더니, 99일에 온이 용산에 놀때 요좌(僚佐)가 다 모였는데, 바람이 가의 모자를 불어 떨어뜨리니, 가가 깨닫지 못하였다. 온이 손성(孫盛)에게 명하여 글을 지어 조롱하고, 가가 또한 글을 지어 대답하니 그 글이 심히 아름다웠다.

 

용산고회(龍山高會)

() 나라 환온(桓溫)99일에 여러 명사(名士)들과 더불어 용산에 올라 놀았다.

 

용산금연(龍山錦筵)

용산은 안휘성(安徽省) 당도현(當塗縣) 동남쪽에 있는 산. () 나라 환온(桓溫)은 일찍이 중양절(重陽節)을 맞이하여 그의 막료(幕僚)와 함께 이 산에 오른 적이 있으므로 중양절 모임을 용산지회(龍山之會)라 부르게 되었다.

 

용산낙모(龍山落帽)

() 나라 때 맹가(孟嘉)가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적에 환온(桓溫)99일에 용산(龍山)에서 주연을 베풀었을 때 바람이 불어 맹가의 두건이 땅에 떨어졌으나 맹가가 몰랐는데, 환온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게 하고 그의 행동을 보고자 하였다. 맹가가 한참 후 변소에 간 동안 환온이 모자를 주어다 그 자리에 두고 손성(孫盛)에게 명하여 맹가를 조롱하는 글을 지어 맹가의 좌석에 붙여 두게 하니, 맹가가 돌아와 보고 곧바로 화답했는데 그 글이 매우 아름다워 모두 찬탄하였다 한다. 진서(晉書)』 「맹가전(孟嘉傳)

 

용상(龍象)

()와 행()을 겸비한 고승(高僧), 즉 선지식(善知識)을 가리키는 말인데, 물에 사는 동물로서는 용, 육지에 사는 동물로서는 코끼리가 힘이 가장 세다 하여 여기에 비유한 말이다.

 

용상쌍림(龍象雙林)

용상은 물속의 용과 육지의 코끼리가 힘이 가장 세다는 데서, 즉 지행(智行)이 겸비한 고승(高僧)을 비유한 것이고, 쌍림은 사라쌍수(沙羅雙樹)의 숲이란 뜻으로, 전하여 사찰을 이른 말이다.

 

용상이부(龍翔吏部)

()의 풍당(馮唐)을 가리킨 것 같다.

 

용상회(龍象會)

고승(高僧)이 설법(說法)하면서 부처에게 공양하는 법회(法會)를 말한다.

 

용새(龍塞)

() 나라 때 흉노의 지명인 용성(龍城)인데, 일반적으로 변경 밖의 먼 지역을 가리킨다.

 

용성(龍城)

남원(南原)의 옛 이름이다.

함경도 경성(鏡城) 북쪽 30리 지점에 있다.

 

용성(容成)

거울을 이른다. () 나라 때 사공도(司空圖)의 용성후전(容成侯傳)에서 온 말이다.

 

용성(墉禜)

여자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한다.

 

용성걸교문(龍城乞巧文)

()유종원(柳宗元)이 걸교문(乞巧文)을 썼는데, 용성(龍城)은 곧 유주(柳州)를 말한다. 전하여 훌륭한 문자를 말한다.

 

용성위계(龍城爲界)

용성은 지금의 수성(輸城)으로, 태종 때에 경원(慶源)에 부()를 설치하고 동북 방면을 경영하였는데, 세종 때에 여진족의 내습(來襲)이 그치지 않자 경원부를 용성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다.

 

용손(龍孫)

용녀(龍女)의 후손이라는 고려의 왕씨(王氏)를 가리킨다.

준마(駿馬)의 별칭이다.

 

용수(龍樹)

불멸(佛滅) 700년에 남천축(南天竺)에서 난 보살(菩薩). 마명(馬鳴)의 제자인 가비마라존자(迦毘摩羅尊者)의 제자. 크게 불법(佛法)을 넓혔고, 저작(著作)이 많다.

 

용수(用修)

양신(楊愼)의 자()이다.

 

용수(龍鬚)

포도덩굴의 새순.

 

용수봉래삼장보(龍手捧來三藏寶)

현세(現世)에 불법(佛法)이 행하여지지 못할 때에는 용궁(龍宮)에서 불교의 경전을 수호한다고 하는데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에 가서 이것을 가지고 왔다는 전설을 말한 것이다.

 

용수탐주호(龍睡探珠好)

장자(莊子)』 「열어구(列御寇)에 나오는 비유로, 대가(大家)의 시를 보고 그 작법(作法)을 배워 남몰래 실력을 키워 나가는 것은 괜찮다는 말이다.

 

용순(龍輴)

임금의 관을 실은 수레로, 수레의 끌채에 용 그림을 그렸다.

 

용슬이안(容膝易安)

이 말은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이라고 보이는데, 만족할 줄 알면 겨우 무릎을 용납할 정도의 조그만 방이라도 편안하다는 뜻이다.

 

용시(龍漦)

용의 침(涎沫)이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 나라가 망할 무렵에 두 신룡(神龍)이 대궐의 뜰에 내려와 있다가 용은 죽고 그 침만 남아 있으므로 그것을 독()에다 수장해 두었었다. 그 후 하 나라가 망하자 그 독이 주 나라로 넘어왔으나 감히 누구도 열어보지 못하였고, 여왕(厲王)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열어보니 그 침이 뜰에 흘러내려 현원(玄黿)이 되었는데 후궁(後宮)의 동첩(童妾)이 지나다가 그것을 보고 난 뒤에 임신하여 포사(褒姒)를 낳았다.” 하였다. 뒤에 포사는 유왕(幽王)의 총희(寵姬)가 되었는데 결국 그로 인하여 주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용신(龍神)

불교에서 말하는 8부중(部衆)의 하나인 용속(龍屬)의 왕()으로, 바다에 살며 비와 물을 맡고 또 불법(佛法)을 수호한다고 한다.

 

용안(龍顔)

황제의 훌륭한 얼굴을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는 상모(相貌)가 뛰어나 코가 높고 용의 얼굴이었다.[隆準龍顔]’ 한다.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記)

 

용안일각(龍顔日角)

용안ㆍ일각은 태평천자(太平天子)가 될 상이다.

 

용야전(龍野戰)

주역(周易)』 「곤괘(坤卦)용이 들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르도다[龍戰于野 其血玄黃].” 하였는데, 군웅(群雄)이 일어나 천하를 쟁탈(爭奪)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용약(踊躍)

. 좋아 날뛰어 기뻐한다. 펄쩍 뛰어 기세 좋게 나아감.

 

용양(龍陽)

남색을 용양(龍陽)이라 한다. 이것은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 나라에 행신(幸臣) 용양군(龍陽君)이 있어서 이로 인해 이름된 것이다.

 

용양(龍驤)

만곡(萬斛)이나 싣는 큰 배를 가리킨다. () 나라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오() 나라를 정벌할 적에 일찍이 큰 배를 만들어서 정벌하였다. 진서(晉書)42 왕준열전(王濬列傳)

 

용양군(龍陽君)

위왕(魏王)이 남색(男色)인 용양군과 함께 배를 타고 낚시질하는데 용양군이 고기 십여 마리를 낚고는 눈물을 흘렸다. 위왕이 왜 우는냐고 묻자 신이 처음 고기를 낚으매 매우 기뻐했지만 다음에 낚은 고기가 더욱 컸으므로, 신은 먼저 낚은 고기를 곧 버리고 싶었습니다. 신이 지금은 대왕의 침석(枕席)을 받들고 있지만 천하에는 미인(美人)이 많은지라 신이 대왕의 사랑하심을 받고 있음을 알면 모두 대왕에게 올 것입니다. 그러면 신도 앞에 낚은 고기와 같이 버려지게 될 것이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했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

 

용양만곡(龍驤萬斛)

용양은 진 무제(晉武帝) 때의 용양장군 왕준(王濬)을 말하고, 만곡선은 대단히 큰 배를 가리키는데, 왕준이 일찍이 무제로부터 오()를 정벌하라는 명을 받고, 사방이 20()에 무려 2천 여명의 군사를 태울 수 있는 큰 배를 건조하여 오 나라를 쳐서 크게 승리했었다. 진서(晉書)卷四十二

 

용양목노(龍陽木奴)

목노(木奴)는 감귤(柑橘)의 별칭인데, () 나라 단양태수(丹陽太守) 이형(李衡)이 용양현의 모래섬 20리 지경에 감귤나무를 심어놓고, 임종시에 자식에게 이르기를 우리 마을에 목노 천 그루가 있으니, 의식(衣食)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용어(龍魚)

고래를 가리키기도 하고, 인어(人魚)를 가리키기도 한다.

② 『산해경(山海經)용어는 일각(一角)으로 이어(鯉魚)와 같은데 능()에 처하며 능히 구름을 타고 상승하여 구역(九域)을 비등(飛騰)한다.” 하였다.

 

용어서호(龍魚鼠虎)

이태백(李太白)의 시에 있는 말인데, 임금이 신하에게 압제받는 것이 용이 고기()가 되는 것이요, 권력이 신하에게 돌아간 것은 쥐가 호랑이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용언(龍堰)

평양(平壤)에 있었던 고궁(古宮) 이름이다.

 

용언궐(龍堰闕)

고구려 때 궁궐. 삼국유사(三國遺事)

 

용여(龍輿)

왕의 수레를 가리킨다.

 

용여(溶與)

요란하다. 물이 성한 모양.

 

용여(容與)

주저주저 멈칫하는 모양. / 유의어: 유예(猶豫)

 

용연(龍淵)

용연은 초() 나라 보검의 이름으로 일명 용천(龍泉)이라고도 한다. () 나라 무제(武帝) 때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가 감돌자 장화(張華)가 뇌환(雷煥)에게 부탁하여 예장(豫章)의 풍성현(豐城縣)에서 용천과 태아(太阿) 두 검을 파내었다고 한다. 진서(晉書)36

 

용연(龍涎)

향유고래의 위() 분비물의 일종인데 다른 종류의 향물(香物)과 배합하면 향의 농도가 진해져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므로 진귀한 향료로 취급된다. 범수(汎水)ㆍ삼사((滲沙)ㆍ어식(魚食) 등 별칭이 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말한다.

 

용열(容悅)

남의 마음을 영합(迎合)하여 억지로 기쁜 모양을 하는 짓. 즉 아첨.

 

용옥설(舂玉屑)

옥가루를 찧는다는 것은 설법이 옥가루처럼 출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용용(容容)

구름이 생겨나는 모양, 변동하는 모양, 대주를 따라 움직임, 세류에 따라 흐름, 구차스럽게 세상에 인정을 받고자 하는 모양, 우러러 바라는 모양, 날아오르는 모양

 

용용(傛傛)

근심스럽고 불안한 모양, 사물에 익숙해진 모양, 질병으로 편하지 못한 모양

 

용용(舂容)

문장력이 웅장하고 전아(典雅)함을 말한다.

 

용용(溶溶)

큰 물이 흐르는 모양, 마음이 넓고 누굿한 모양, 파도가 넘실거리는 모양. 문장의 기세.

 

용용(庸庸)

평범한 모양, 사용함, 미세한 모양, 수고하는 모양, 쓸 만한 사람을 씀, 공적있는 사람을 칭찬하고 이에 보답함

 

용운(用韻)

남의 시를 화답하면서 운을 차례 그대로 하는 것을 차운(次韻)이라 하고, 그 운을 쓰되 차례를 바꾸는 것을 용운(用韻)이라 한다.

 

용유동(龍游洞)

함양(咸陽) 남쪽으로 40리 지점에 있다.

 

용음(龍吟)

용의 울음 소리. 거문고 또는 피리의 소리를 일컫기도 한다.

 

용음호소(龍吟虎嘯)

용ㆍ범ㆍ연()ㆍ홍()ㆍ화후(火候)는 모두 신선이 되려는 수련(修煉)에 관한 용어(用語)들이다.

 

용음호소(龍吟虎嘯)

장형(張衡)귀전부(歸田賦), “()에서 용처럼 읊고, 산 언덕에서 범처럼 휘파람분다.”는 구절이 있다.

 

용의(用意)

마음을 쓰다 또는 마음의 준비.

 

용의주도(用意周到)

마음 씀이 두루 미쳐 빈틈이 없음. 준비성이 치밀하다.

 

용작대환검(龍雀大鐶劍)

백 번 단련한 강철로 만든 칼로서, () 나라 혁연발발(赫連勃勃)이 아꼈던 보검이라고 한다. 진서(晉書)』 『혁연발발대기(赫連勃勃載記)

 

용잠(龍潛)

주역(周易)』 「건괘(乾卦)잠겨 있는 용(潛龍)’에서 나온 말로, 제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때를 말한다.

 

용장(龍藏)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세상을 떠난 지 6백 년 뒤에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감춰져 있는 화엄경(華嚴經)를 가져 왔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용장방란(容長芳蘭)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실속 없이 겉모양만 꾸몄던 것을 알고 실망한 것을 말한다. 초사(楚辭)』 「이소(離騷)내가 향초라 여겨 의지했는데, 알맹이는 하나 없고 겉만 번지르르[余以蘭爲可恃兮 羌無實而容長].”라 하였다.

 

용재(容齋)

중종(中宗) 때의 상신(相臣) 이행(李荇)의 호로, 택당(澤堂)의 고조(高祖)이다. 남곤(南袞)이 정승에 임명되면서 대제학의 면직을 청하자, 중종이 이어받을 만한 자를 추천하라고 하였는데, 이행(李荇)이 매우 합당하긴 하나 품계(品階)가 낮다고 하자, 중종이 그를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특진시켜서 수() 대제학으로 임명하였다. ()는 품계에 비해 관직이 높을 경우에 벼슬 이름 위에 붙여 일컫던 말이다. 참고로 대제학은 정2품의 관직이다.

 

용재공(容齋公)

용재(容齋)이행(李荇)의 호이다. 박은(朴誾)과 절친하게 지냈던 벗으로서, 그의 시를 모아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냈다. 이식(李植)은 바로 그의 현손(玄孫)이다.

 

용저(龍猪)

용과 돼지. 즉 준수한 사람과 노둔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사람의 지혜롭고 어리석음이 몹시 다름을 말한 것인데, 한퇴지(韓退之)의 시에, “30세에 골격이 이루어지면, 하나는 용 되고 하나는 돼지 되네. 묻노니, 왜 그리 되는고. 배우고 안 배움이로다.” 한 구절이 있다.

 

용저(舂杵)

방아를 찧을 때 힘을 북돋우기 위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오고 대부(五羖大夫) 백리해(百里奚)가 죽었을 때에는 진나라의 남녀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으며, 어린아이들은 가요(歌謠)를 부르지 않았고, 방아를 찧는 자들은 방아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것이 오고 대부의 덕이다.” 하였다. 사기(史記)卷六十八 상군열전(商君列傳)

 

용절(龍節)

왕명을 받들어서 사신으로 나가는 자가 가지고 가는 용을 그려 넣은 부절(符節)이다. 주례(周禮)』 「지관(地官)장절(掌節)산국(山國)엔 호절(虎節), 토국(土國)엔 인절(人節), 택국(澤國)엔 용절(龍節)을 쓴다하였다.

 

용정(龍庭)

북쪽 지방의 별칭이다. 본래 흉노(匈奴)의 선우(單于)가 천지의 귀신에게 제사지냈던 장소로 오랑캐 땅을 가리킨다.

 

용정(龍旌)

사신(使臣)이 들고 가는 깃발을 말한다.

 

용정(龍旌)

용을 그린 깃발로, 고대에 왕의 의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용정(龍亭)

궁내(宮內)의 전정(殿庭)이다.

 

용정(龍井)

()의 별칭이다.

 

용정점(龍睛點)

글 가운데 요점을 드러냄을 말한다. 수형기(水衡記)장승유(張僧繇)가 금릉(金陵) 안락사(安樂寺)에서 네 마리 용을 그리면서 눈동자를 그리지 않고 말하기를 그리면 곧 날아갈 것이다하였다. 사람들이 믿지 않고 강요해서 찍게 했더니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용이 날아가 버렸다.” 하였다.

 

용제(龍蹄)

오이()의 별칭이다.

 

용조(容祖)

택당(澤堂)의 고조(高祖)인 용재(容齋) 이행(李荇)을 말한다.

 

용졸존도(用拙存道)

()을 써서 도()를 보존한다는 의미다.

 

용종(龍種)

서역(西域)에서 생산되는 준마(駿馬)이다.

 

용주(龍舟)

용 모양을 장식한 큰 배로, 황제가 타는 배를 말한다.

 

용주금람(龍舟錦纜)

수양제가 운하(運河)를 통해 강남(江南)을 순행(巡行)할 때, 자신은 용주에 타고 소후(蕭后)는 봉모(鳳艒)에 태운 뒤, 돛과 닻줄을 모두 비단으로 만들게 하고는, 장장 200여 리에 걸쳐 수백 척의 배로 자신을 뒤따르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수서(隋書)24 식화지(食貨志)

 

용즉행사즉장(用則行捨則藏)

논어(論語)』 「술이(述而)나를 써 주면 세상에 도를 행하고 나를 버리면 세상을 떠나 은둔한다[用之則行 舍之則藏].”는 공자의 말이 실려 있다.

 

용지(龍池)

대궐 안에 있는 연못 이름으로 궁중을 가리킨다.

 

용지(龍墀)

대궐 뜨락으로 임금을 가리킨다.

 

용진(龍津)

용지(龍池)로 당 현종(唐玄宗)이 태자로 있을 때의 저택에 있었던 못 이름이다.

 

용천(龍天)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한다는 팔부(八部)의 이류(異類) 가운데 용중(龍衆)과 천중(天衆)을 합칭한 말, 또는 용수(龍樹)와 천친(天親)의 병칭(倂稱)으로 쓰기도 한다. 이들을 그린 사찰의 탱화(幀畵)를 가리키기도 한다.

 

용천갑중음(龍泉匣中吟)

전욱(顓頊)이 예영(曳影)이라는 명검을 써서 사방을 정벌하였는데, 그 검을 사용하지 않고 상자 속에 보관하고 있을 때에는 용과 범이 신음하는 듯한 소리[如龍虎之吟]가 새어 나왔다고 한다. 습유기(拾遺記)』 「전욱(顓頊)

 

용천검(龍泉劍)

중국의 보검 이름으로, 용연검(龍淵劒)을 말한다. () 나라 때 오() 땅에 자색 기운이 하늘의 우수(牛宿)와 두수(斗宿) 사이로 뻗치는 것을 보고 장화(張華)가 보검을 얻었다고 한다.

 

용천관(龍泉館)

황해도 서흥도호부(瑞興都護府) 용천역(龍泉驛)곁에 있는 관원(館院).

 

용천팔부(龍天八部)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장(神將). 곧 천()ㆍ용()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闥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喉羅迦).

 

용철고비(勇撤皐比)

주자(朱子)의 장횡거화상찬(張橫渠畵像贊) 중 한 구절. 횡거(橫渠)는 송() 나라의 유학자 장재(張載)의 호이다. 그는 주역(周易)을 강()할 때 호피(虎皮)를 깔고 앉아 강했었는데, 정자(程子) 형제가 찾아와 함께 주역(周易)을 논한 후 다음 날로 호피를 걷어치우고 제자들에게, “이정(二程)주역(周易)에 워낙 밝아서 내가 따를 수 없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이 고사를 말한 것이다.

 

용촌(榕村)

() 나라 이광지(李光地)의 호인데, 학문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다.

 

용촌학사(榕村學士)

용촌(榕村)은 이광지(李光地)의 호이다. 그는 정주학(程朱學)을 계승하여 청초(淸初) 이학(理學)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용추(龍雛)

용의 새끼란 뜻이다.

죽순(竹筍)을 가리킨다.

 

용추(龍湫)

중국 절강성(浙江省) 안탕산(雁蕩山)에 있는 거대한 폭포 이름이다.

 

용출부모(湧出父母)

진안(鎭安)에 있는 마이산(馬耳山)이 두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본래의 명칭은 용출봉(湧出峯)이었고, 또 동쪽에 있는 것을 부봉(父峯), 서쪽에 있는 것을 모봉(母峯)이라고 했던 것인데, 조선 태종(太宗)이 일찍이 남쪽에 행행하여 이 산 아래 이르러서 관원(官員)을 보내 제사를 지내고, 그 모양이 말의 두 귀와 같다 하여 명칭을 마이산으로 고쳐 주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용퇴(龍堆)

서역(西域)의 천산(天山) 남쪽에 있는 사막(沙漠)인즉 백룡퇴(白龍堆)의 준말이다.

모래 섬(沙洲)을 가리킨 말이다. 두보(杜甫)의 과동정호시(過洞庭湖詩)교실은 청초에 둘러싸였고 용퇴는 흰 모래에 가리웠네[蛟室圍靑草 龍堆隱白沙].”하였다. 두소릉집(杜少陵集)卷二十三

중국 신강성(新疆省)의 동쪽 천산(天山)의 남쪽에 있는 사막(沙漠) 이름으로, 먼 변방을 말한다.

 

용투(龍𧳑)

(𧳑)’는 미성(尾星)을 말한다. 일월(日月)이 용투의 궤도에 닿으면 하력(夏曆)의 시월이 된다. 국어(國語)』 「초어(楚語)

 

용파(舂簸)

곡식을 방아에 찧은 다음 키로 까부는 것으로 정미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용포(龍袍)

곤룡포로 임금을 말한다.

 

용피골(龍皮滑)

() 나라 이덕유(李德裕)가 자신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에서 여름에 주연(酒宴)을 베풀 때, 황금 항아리에 담은 물로 백룡피(白龍皮)를 적셔 놓으니 한기(寒氣)가 일어나면서 서늘해졌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이덕유(李德裕), 극담록(劇談錄)

 

용필기어무용(用必期於無用)

무용(無用)은 참으로 유용(有用)이 된다.”장자(莊子)의 사상에서 나온 말이다.

 

용하변이(用夏變夷)

중국 문물제도를 따름으로써 종전에 젖어 있던 오랑캐 인습을 변혁시킴.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용향(龍香)

좋은 먹 이름이다.

 

용향위가보(龍香韋家寶)

삼국(三國) 시절에 위탄(韋誕)이 좋은 먹을 만들었다고 한다.

 

용호(龍戶)

광동성 등지의 바닷가에 거주하면서 어업(漁業)을 영위하는 종족(種族)의 이름인데, 전하여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어민(漁民)들의 집을 이르기도 한다.

 

용호(龍胡)

황제(黃帝)가 수산(首山)의 구리를 채굴하여 형산(荊山) 아래에서 종()을 다 만들었을 때, 용 한 마리가 턱수염을 늘어뜨려(有龍垂胡髥) 황제를 영접해 태운 뒤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때 다른 소신(小臣)들이 턱수염을 부여잡고 함께 올라가려고 하는 바람에, 수염이 뽑혀 땅으로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한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용호(龍湖)

정호(鼎湖)의 이칭. 황제(黃帝)가 형산(荊山)에서 솥을 만들어 그 솥이 이루어지자 용을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뒷사람이 그곳을 정호, 또는 용호라 한 데서 온 말로, 곧 제왕의 붕어(崩御)를 말한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

 

용호(龍虎)

도가(道家)의 수련하는 법에 관한 용어로 수화(水火)와 같은 말인데, 곧 심신을 수련하는 법을 말한다.

풍수지리가에서 말하는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를 말한다.

도가(道家)의 추환법(抽換法). 수화(水火)를 이른다.

 

용호기(龍虎氣)

왕기(王氣)를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에게서 용호(龍虎)의 기운이 배어 나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吾令人望其氣 皆爲龍虎 成五采 此天子氣也 急擊勿失이라 하였다.

 

용호방(龍虎牓)

회시(會試)에 급제한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방이다. 명사(名士)들이 동시에 급제함을 이른다. () 나라 정원(貞元) 8년에 구양첨(歐陽詹), 한유(韓愈), 이강(李絳) 23인이 육지(陸贄)의 방()에 합격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인재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용호방이라고 칭하였다.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

 

용호상박(龍虎相搏)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움. 서로 만만치 않은 상대끼리 겨루는 모양

 

용호풍운(龍虎風雲)

주역(周易)』 「건괘(乾卦)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니, 성인이 일어나자 만물이 우러러본다[雲從龍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고 하였는데, 이는 명철한 임금과 현명한 신하가 서로 의기 투합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용화(龍火)

화성(火星)을 말하는데, 가을철에는 서남쪽에 보인다고 한다. 동방 7(宿) 중의 심수(心宿)로서, 이 별이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화기(火氣)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용화회(龍華會)

미륵보살이 성불(成佛)한 후, 중생을 제도하는 법회(法會). 미륵보살은 567천만 년 후에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고, 화림원(華林園)에 모인 대중에게 경을 설하되 첫 번째 설법에서 아라한을 얻을 이가 96, 2회의 설법에서 아라한을 얻을 이가 94, 3회의 설법에서 아라한을 얻을 이가 92억이라고 한다.

 

용황(龍荒)

흉노(匈奴)를 가리킨다. 흉노들은 용성(龍城)에서 하늘을 제사하므로 이렇게 이른다.

 

용후(龍喉)

대언(代言)은 곧 후세의 승지(承旨)인데 임금의 말()을 출납(出納)하므로 후설(喉舌)의 벼슬이라 한다. 그것은 임금의 목구멍과 혀처럼 말()을 낸다는 뜻이며, ()은 임금을 가리킨다.

 

용후(龍吼)

태평어람(太平御覽)』 「인세설(引世說)왕자 교(王子喬)의 무덤을 도굴했을 때 오직 칼 한 자루만이 들어 있었는데 이를 가져가려 하자 용호(龍虎)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냈으므로 감히 취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으며, 이백(李白)독록편(獨漉篇)에도 벽에 걸린 칼 한 자루 때때로 용의 울음, 코끼리 자르지 못한 채 이끼만 끼어 가는구나[雄劍挂壁 時時龍鳴 不斷犀象 繡澁苔生].”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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