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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395. 후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95. 후

건방진방랑자 2020. 6. 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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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

이수(里數)를 기록한 토대(土臺), 한 후는 5리를 말한다. 정자통(正字通)“10리는 쌍후(雙堠), 5리는 척후(隻堠)이다.” 하였다.

 

후경(後勁)

뒤를 맡은 정병(精兵)을 말한다. 좌전(左傳)선공(宣公) 22년에 中權後勁이 있다.

 

후과(侯瓜)

() 나라 광릉(廣陵) 사람인 소평(召平)이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었는데, 진 나라가 망한 뒤에 집이 가난하여 장안(長安)의 성 동쪽에 오이를 심어 생활하였다 하여 나온 말이다. 사기(史記)卷五十三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후관(侯館)

원래 관망용 소루(小樓)를 말하는데, 보통 왕래하는 관원이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역관(驛館)을 가리킨다.

 

후관이양월(候管移良月)

초겨울 시월달이 돌아왔다는 말이다. 옛날에 절후(節候)를 알기 위해 대나무 통(竹管) 속에 갈대막을 태운 재를 채워 놓았는데, 절기가 돌아오면 해당되는 대나무 통 속의 갈대 재가 저절로 들썩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고 한다. 양월은 10월의 별칭이다. 후한서(後漢書)志第1 율력지(律曆志)

 

후교(後交)

자세히 알아 본 뒤에 맺는 교분(交分). () 나라 왕통(王通)의 중설(中說) 위상(魏相)군자는 먼저 가려 뽑은 다음에 교분을 맺고[君子先擇而後交] 소인은 먼저 교분을 맺고 나서 가려 뽑기 때문에 군자는 허물이 적고 소인은 원망이 많아지게 된다.” 하였다.

 

후락(後樂)

천하의 근심거리를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뒤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말을 줄인 것으로, () 나라 범중엄(范仲淹)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온다.

 

후래(後來)

그 지역의 지방관으로 부임한 우수한 후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래삼배(後來三杯)

술자리에서 뒤 늦게 온 사람에게 먼저 권하는 석 잔의 술.

 

후령(緱嶺)

주 나라 왕자진(王子晉)이 신선이 되어 후령(緱嶺)에서 학을 타고 갔다.

 

후리(候吏)

도로(道路)에 빈객(賓客)을 전송하고 맞이하는 아전을 말한다.

 

후망(厚亡)

노자(老子)944, 많이 쌓아 놓으면 무너지는 것도 엄청나다[多藏必厚亡]는 말이 있다.

 

후명(後命)

유배형을 받은 죄인에게 다시 賜藥을 내리는 일을 말한다.

 

후목분장(朽木糞牆)

썩은 나무에 조각하거나 부패한 벽토에 흙칠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쓸모 없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하고 혼란한 세상을 비유하기도 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

공자의 제자 재여(宰予)가 낮에 잠을 자자, “썩은 나무에는 무엇을 새겨 볼 수가 없다[朽木不可雕也].”공자(孔子)가 평한 일화가 전한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후문(侯門)

귀인(貴人)의 저택을 일컫는 말이다.

 

후문건절(後門建節)

옛날 장군(將軍)이 환군(還軍)할 적에 맨 뒤에 국문(國門)을 들어오는 것을 공()으로 삼은 데서 온 말이다.

 

후문치자(候門稚子)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어린애는 문에서 기다리고 술은 통에 넘치누나.”란 말이 있다.

 

후미석독(厚味腊毒)

국어(國語)』 「주어(周語)하편에 맛좋은 음식에는 심한 독이 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후미실석독(厚味實腊毒)

국어(國語)』 「주어(周語)맛 좋은 음식에는 실로 극독물이 들어 있다[厚味寔腊毒].”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후미(厚味)는 중한 녹봉(祿俸)을 비유한 말이다.

 

후백(侯伯)

후작(侯爵)과 백작(伯爵)이다.

 

후보(候補)

어떤 벼슬자리에 결원(缺員)이 있을 때 그 자리에 나아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후삭육마(朽索六馬)

몹시 위태로운 것을 말한다.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 “만백성을 대함에 썩은 고삐로 여섯 마리 말을 몰듯이 두려움을 느낀다.” 하였다.

 

후산(侯狦)

() 나라 때의 흉노(匈奴)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의 이름인 계후산(稽侯狦)의 준말이다.

 

후삼만호(侯三萬戶)

한나라의 장량(張良)이 유방(劉邦)을 도와 항우(項羽)를 쳐서 천하를 통일하는 공을 세우고서도 명철보신(明哲保身)하여 3만 호 되는 유후(留侯)로 봉해진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卷五十五 유후세가(留侯世家)

 

후색(朽索)

서경(書經)내가 만백성에 임함에 송구함이 썩은 밧줄로 여섯 말()을 제어함 같다[予臨非民 懍乎若朽索之馭六馬].” 하였다.

 

후생(侯生)

() 나라의 저명한 학자 양웅(揚雄)의 제자인 후파(侯芭)를 말한다.

진시황(秦始皇) 때의 방사이다. 진시황(秦始皇)의 명을 받아 같은 방사인 석생(石生) 등과 함께 선인(仙人)의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러 간 적이 있었다.

 

후생가외(後生可畏)

후생은 뒤에 태어난 사람, 후배, 젊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후생은 두려워할 만한다. 후배는 선배들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후배가 나이 40~50이 되어도 세상에 이렇다 할 명성이 알려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별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후생입도사(侯生入屠肆)

전국(戰國) 시대 신릉군은 위()나라 공자(公子)인데, 성문(城門)에 문지기 노릇하는 후생(侯生)이란 노인이 어진 사람이란 말을 듣고, 연회(宴會)에 초대하기 위하여 신릉군이 친히 영접하러 가서 수레에 태우고 오는데, 중도에서 후생이, “내가 친한 사람 주해(朱亥)라 하는 자가 백정들 가운데 있는데 잠깐 같이 들러서 갑시다.” 하고 신릉군이 수레를 끌고 그리로 갔다. 후생은 그 사람과 일부러 오랫동안 서서 이야기하니 같이 간 하인들이 모두 후생을 가만히 욕하였다. 그러나 신릉군은 말고삐를 잡고 더욱 공손하였다. 후일에 마침내 후생과 주해의 도움으로 조()나라를 구()하는 공을 이루었다.

 

후설(喉舌)

목구멍과 혀로, 모두 말하는 중요한 기관이므로 중요한 정무(政務)의 쓰임을 비유한 말이다. 왕명을 출납하는 요직을 말한다. 시경(詩經)대아(大雅) 증민(烝民)왕의 명을 출납하니 왕의 후설이다[出納王命, 王之喉舌]” 하였다. / 인용: 麴先生傳(이규보)

 

후승(後乘)

임금의 수레 뒤를 따르는 종신(從臣)이라는 뜻으로, 즉 조정 안의 신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후시(後市)

연복(延卜). 조선 중기 연경(燕京)에 파견되었던 사행이 귀환할 때 그들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수백필의 쇄마(刷馬)편을 이용하여 의주(義州)에서 물화(物貨)를 수집한 봉성(鳳城)의 장사치들이 복물(卜物)을 운반 매매하는 것을 말한다.

 

후시(後時)

좋은 때를 잃다는 뜻이다.

 

후신고(後薪高)

뒤에 벼슬길에 나왔으나 앞에 나온 사람보다 벼슬이 더 높음. 한 무제(漢武帝) 때에 신진(新進)들의 벼슬이 선배보다 높이 오르는 자가 많으니 급암(汲黯)이 아뢰기를, “폐하(陛下)의 사람 쓰는 것은 섶()을 쌓는 것과 같아서 뒤에 오는 것이 위에 올라갑니다.” 하였다. , 휴효위(劉孝威) 원시(怨詩)후신이 따라서 다시 높이 쌓였구나[後薪隨復積].” 하였다.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후실유선성(後實逾先聲)

선성(先聲)은 먼저 소문을 내어 적의 기세를 꺾어 놓는 것이고, 후실(後實)은 뒤에 실속있게 대비책을 강구해 놓는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꺼워 수치스러움을 모름. 뻔뻔스러움.

 

후영중일언(侯嬴重一言)

후영(侯嬴)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은사(隱士)로서 신릉군(信陵君)의 빈객이 되었는데, 신릉군이 조()를 구원할 때 진비(晉鄙)를 죽여 병부(兵符)를 빼앗은 뒤 한단(邯鄲)의 포위를 풀게 하였다. 이때 연로하여 직접 따라가지 못하고 기일을 따져 자결함으로써 전송하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사기(史記)卷七十七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후예(后羿)

() 임금 때 활을 잘 쏘던 사람인데, 때마침 해가 열 개나 떠서 초목이 시들고 백성들이 굶게 되자, 후예를 시켜 아홉 개의 해를 쏘아 떨어뜨리게 하였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

 

후예사일(后羿射日)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의 기록에 의하면, 요 임금 때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나타났다 한다. 태양은 본래 생명의 원천이지만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공중에 떠오르자 강물이 고갈되고, 경작지가 갈라지면서 농작물이 다 말라죽는 등, 과다한 햇빛은 모든 것을 구워 태워버려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멸종될 지경에 처했다. 그러자 천제(天帝)는 예(羿)라는 신을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이 같은 난리를 피우는 태양을 잘 타이르도록 하였다. 후예는 화살을 매긴 활의 시위를 당겨 숨을 죽이고 정신을 모으더니 단숨에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트렸다. 지구상의 기후는 정상을 회복하였다. 후예가 다시 독사와 맹수를 쏘아 죽이자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꾸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후예는 민중을 위해 해를 제거해준 영웅이다.

 

후원년(後元年)

인생의 한 세대가 새로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장(堠墻)

적정(敵情)을 살피기 위하여 흙으로 쌓은 보루(堡壘)를 말한다.

 

후정옥수(後庭玉樹)

노래 이름을 뜰(後庭)과 나무(玉樹)에 비유한 것이다. 진 후주(陳後主)가 매양 빈객을 불러 장귀비(張貴妃) 등을 데리고 잔치하고 여러 귀인(貴人)에게 시를 짓도록 하여 그 중에서 잘된 것을 뽑아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곡조를 만들었는데, 뒤에 옥수ㆍ후정 2곡으로 나뉘었다.

 

후정화(後庭花)

진 후주(陳後主) 때의 가곡명(歌曲名)으로, 후주가 연회를 베풀 적에 귀인(貴人)ㆍ여학사(女學士)ㆍ압객(狎客) 등으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여, 그 중 가장 잘 된 것을 뽑아 악곡(樂曲)을 붙이고 아름다운 여인을 선발, 이를 노래부르고 춤추게 하면서 즐겼는데 그 중 한 곡이 바로 이 후정화이다.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라는 악곡의 내용은 뒤뜰에 아름다운 나무 꽃이 폈지만 꽃은 펴도 다시 오래가지 않아요[玉樹後庭花, 花開不復久]’라고 한다. 진서(陳書)』 「황후전(皇后傳)/ 인용: 登潤州慈和寺(최치원), 金陵懷古(유우석)

 

후제(后帝)

요임금을 말한다. 두예(杜預)의 주에, “후제는 요이금이다[后帝 堯也]”라 하였다.

 

후조(後凋)

소나무와 잣나무를 말한다. 논어(論語)』 「자한(子罕)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송백이 끝까지 시들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라고 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종(候鍾)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말한다.

 

후직(后稷)

뒤에 주()의 시조(始祖)이자 요()의 신하로서 백성에게 농사짓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 강희(姜姬)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밟고 느낌을 받아 그를 잉태하여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게 여겨 좁은 골짝에다 내다버렸으나 지나가는 마소들이 그를 밟지 않고 피해 갔다. 그리하여 다시 얼음판 위에다 버렸더니 이번에는 새가 와서 날개로 덮어주는 것이었다. 그를 이상히 여겨 다시 주워다 기르면서 그의 이름을 기()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사기(史記)卷四 주본기(周本紀)

 

후진(後塵)

사람이 지나간 뒤에 피어난 먼지라는 말로, ‘후배라는 뜻이다.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에게 보낸 이백에게 부치다[寄李白]백일에 깊은 궁전에 오니 청운의 길에 후진이 가득해라.[白日來深殿, 靑雲滿後塵.]”라고 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前集 卷3 / 인용: 雙明齋詩集序(이인로)

 

후천(後天)

황제(皇帝)가 만든 역을 말한다.

 

후천도(後天圖)

문왕(文王)이 그렸다고 하는 팔괘방위도(八卦方位圖). 복희(伏羲)의 선천도(先天圖)에 대한 말로 천지 이치의 변화를 나타내 놓은 것.

 

후천앵(後薦櫻)

한여름 이후라는 뜻이다. 예기(禮記)』 「월령(月令), “천자(天子)는 중하(仲夏)의 달에 앵두를 침묘(寢廟)에 올린다.” 하였다.

 

후청호(侯鯖護)

후정(侯鯖)은 오후정(五侯鯖)의 준말이고, 호는 한 성제(漢成帝) 때 사람 누호(婁護)인데, 누호가 성제의 외삼촌들인 왕씨(王氏) 5()가 선사한 어육(魚肉)을 합쳐 요리하여 진기한 음식을 만들었다 한다. ()은 물고기와 육고기를 합쳐 요리한 맛좋은 음식이다. 서경잡기(西京雜記)卷二

 

후토(后土)

토지를 맡은 신을 말한다.

 

후파(侯芭)

한 나라 거록(鉅鹿) 사람. () 나라의 저명한 학자 양웅(揚雄)으로부터 태현경(太玄經)와 법언(法言)을 전수받은 사람 이름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양웅에게 문자를 배우러 오는 이들만 이따금씩 주효(酒肴)를 싸 들고 찾아오곤 하였는데, 거록(巨鹿) 사람 후파(侯芭)만은 항상 양웅을 따라다니며 극진히 모셨고, 양웅이 죽은 뒤에는 분묘(墳墓)를 세우고 삼년상을 지내기까지 하였다 한다. 한서(漢書)87 양웅전(揚雄傳)

 

후파수태현(侯芭守太玄)

() 나라 때 후파(侯芭)양웅(揚雄)을 지극히 모신 결과, 양웅으로부터 태현경(太玄經)와 법언(法言) 등의 저술을 물려받아 지키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87 양웅전(揚雄傳)

 

후황가수(后皇嘉樹)

귤나무를 말한다. 후황은 후토(后土)와 황천(皇天)으로, 천지(天地)를 가리킨다.

 

후회막급(後悔莫及)

잘못을 저지르고 뒤늦게 뉘우쳐도 이미 때가 늦어 미칠 수가 없음.

 

후후(喣喣)

선웃음을 치는 모양, 아첨하여 웃는 모양

 

후후(姁姁)

즐기는 모양, 상냥한 말씨, 화락한 모양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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