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5. 당시 성향의 대두(이주&신종호)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5. 당시 성향의 대두(이주&신종호)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9:34
728x90
반응형

 5. 당시(唐詩) 성향의 대두

 

 

고려 중기에 이르러 만당(晩唐)의 섬미(纖靡)를 거부하고 기호의활(氣豪意豁)소식(蘇軾)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소단(騷壇)200여년 동안 송시(宋詩)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습상(習尙)은 달라진 것이 없었으며 다만 정이오(鄭以吾)이첨(李詹) 등이 당시(唐詩)의 풍기(風氣)를 보였을 뿐이다. 서거정(徐居正)의 아성(牙城)에 도전한 김종직(金宗直)에 이르러 스스로 호방(豪放)과 신경(新警)을 멀리하고 엄중(嚴重)ㆍ방원(放遠)한 시세계를 구축하면서 당시(唐詩)의 영역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중종 연간에 시업(詩業)이 크게 떨치면서 황진(黃陳)의 시풍(詩風)이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박은(朴誾)이행(李荇) 등이 이로써 소단(騷壇)을 크게 울렸다. 그러나 김종직(金宗直)의 문하(門下)에서 나온 이주(李胄)를 비롯하여 신종확(申從濩)ㆍ강혼(姜渾)정희량(鄭希良)박상(朴祥) 등이 당시(唐詩)의 풍격(風格)을 숭상하여 각각 다양한 시작(詩作)들을 남겼다.

 

이들을 뒤이어 신광한(申光漢)김정(金淨)ㆍ김식(金湜)기준(奇遵)최수성(崔壽峸)나식(羅湜)임억령(林億齡)김인후(金麟厚) 등도 모두 당역(唐域)에 드나들고 있었으며 선조대(宣祖代)의 시단(詩壇)을 대표하는 노수신(盧守愼)은 특히 노두(老杜)의 격력이 있어 호소지(湖蘇芝) 삼가(三家)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주(李胄, ? ~1504 연산군10, 胄之, 忘軒)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처형을 당했다.

 

그의 시()는 특히 성당(盛唐)의 풍격(風格)이 있다 하여 허균(許筠)의 아낌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통주(通州)(五律)를 비롯하여 즉사요체(卽事拗體)(七律), 차안변루제(次安邊樓題)(七律) 등이 모두 명편(名篇)으로 알려져 있다. 통주(通州)는 다음과 같다.

 

通州天下勝 樓觀出雲霄 통주(通州)는 천하의 승지(勝地), 다락이 구름 위에 솟았네.
市積金陵貨 江通楊子潮 저자에는 금릉(金陵)의 물화(物貨) 쌓여 있고 강물은 양자강(揚子江)의 밀물과 통하네.
寒雲秋落渚 獨鶴暮歸遼 층층 구름은 가을 물가에 떨어지고, 외로운 새는 저녁에 요동(遼東)으로 돌아가네.
鞍馬身千里 登臨故國遙 말 타고 천리에 온 몸, 높은 곳에 오르니 고국이 아득하네.

 

이 시()는 이주(李胄)가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갔다가 통주문루(通州門樓)에 올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균(許筠)은 특히 성운(聲韻)에 관심을 보여 이를 노두(老杜)의 청운(淸韻)이라 하였으며 왕맹(王孟)에 핍근(逼近)한 작품이라 하였다【『國朝詩刪에서는 老杜淸韻이라 하고, 성수시화(惺叟詩話)28에서는 王孟逼近한 것이라 했다. 그곳 중국 사람들이 이를 현판에 걸어놓고 그를 독조모귀요선생(獨鳥暮歸遼先生)’이라 칭송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명편(名篇)이다.

 

 

신종호(申從濩, 1456 세조2~1497 연산군3, 次部, 三魁堂)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며, 종제(從弟) 용개(用漑)ㆍ광한(光漢) 등 일문(一門)이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상춘(傷春)(七絶), 무제(無題)(七絶), 정월망도중여자군도옥하교(正月望都中女子群渡玉河橋)(七律) 등은 모두 풍류가 넘치는 작품들이다. 특히 상춘(傷春)같은 작품은 그 기교가 섬세하여 그의 시세계를 당풍(唐風)으로 논하기에 충분하다. 정월망도중여자군도옥하교(正月望都中女子群渡玉河橋)는 다음과 같다.

 

露浥瓊花萬萬條 만 그루 가지마다 이슬이 매화꽃을 적시고,
香風吹送玉塵飄 향기로운 바람은 흰 꽃잎을 날려 보내네.
不隨月姊歸蟾闕 항아를 좇아 월궁으로 가지 않고,
共學天孫度鵲橋 직녀를 흉내내어 까치 다리를 건너네.
一夜宜男成吉夢 한 밤내 사내아이 낳는 길몽을 꾸려고,
千金買笑薦春嬌 천금으로 웃음을 사도록 교태를 부리네.
明朝十里天街上 내일 아침 십리 서울 거리에는,
多少行人拾翠翹 행인들이 머리꾸미개를 꽤나 줍겠지.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제목이 정월십육일도중여자군도옥하교(正月十六日都中女子群渡玉河橋)로 되어 있다. 우리 민속의 다리밟기 풍속을 시화한 것이다. 선녀들의 사연으로 현실의 풍습을 찬미한 함련(頷聯)을 허균은 특히 아름답다 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