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②
때마침 국부군(國府軍, 국민당의 군대)이 상하이와 난징을 점령한 것은 장제스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마뜩잖은 합작을 피해 그는 상하이로 옮겨 우한 정부와 딴살림을 차렸다. 그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저장(浙江)의 한 재벌이 그에게 경제적 지원을 보장했다. 게다가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일본의 5개국이 공동성명을 통해 공산당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장제스는 날개를 달았고, 왕징웨이의 우한 정부는 초조해졌다. 장제스와 결탁할까, 아니면 그에게 등을 돌리고 공산당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까? 그러나 공산당이 후베이와 후난에서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실시하자 왕징웨이는 장제스와 손을 잡았다. 결국 공산당은 국민당에서 이탈해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로써 4년간에 걸친 어색한 밀월, 1차 국공 합작은 끝났다.
우한 정부가 기어들고 공산당이 당을 떠나자 장제스는 국민당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다. 한껏 고무된 그는 국민당의 통일을 중국의 통일로 연장하고자 했다. 국부군은 총공세로 북벌에 나서 불과 2개월 만에 20년간 중국 북부를 지배했던 북양군벌을 모조리 무찌르고 베이징을 점령했다. 10년간의 이상한 ‘남북조시대’가 끝났다. 통일을 이룬 장제스는 드디어 새 중앙 정부를 수립했다. 난징을 수도로 했기 때문에 이것을 난징 정부라고 부른다.
한편 지하로 들어간 중국공산당은 난징 정부의 노골적인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1927년 하반기에 몇 차례 봉기를 일으켜 해륙풍 소비에트와 광둥 코뮌 같은 소비에트 체제를 건설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국부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실패했다. 그해 9월 마오쩌둥은 공산당 중앙의 명령에 따라 추수봉기(秋收蜂起, 추수기의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가 크게 실패하고 정치국원의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그 실패는 마오쩌둥에게 더없이 귀한 약이 되었다.
작전도 실패하고 당 중앙에서도 쫓겨난 참담한 신세로 마오쩌둥는 겨우 1000명가량의 잔여 병력만 이끌고 징강산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그 덕분에 본의 아니게 몇 개월의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시기의 정치 실험을 통해 그는 장차 중국의 지도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얻게 된다.
마오쩌둥은 징강산에 장시(江西) 소비에트를 건설하고 사회주의적 토지 혁명을 실시했다. 모든 토지를 몰수한 다음 농민들의 가족 수에 따라 재분배하는 것이었는데,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라는 공산주의 원칙의 구현이었다. 그것도 적지 않은 성과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중국 혁명의 주력군이 될 홍군(紅軍)을 창설했다는 점이다.
국부군과 달리 공산당의 군대는 농민이 주축이었다. 자발적으로 모인 병사들이었으므로 사기는 높았으나 정규적인 군사 훈련을 받지 못했고 군의 핵심이라 할 군기가 서 있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그들에게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프롤레타리아 정신에 따른 엄격한 규율을 제정해 홍군이라는 정식 군대로 조련했다. “인민에게서 바늘 하나, 실 한 오라기도 얻지 않는다.”라는 홍군의 강고한 규율은 이때 정해진 것이다.
국민당의 극심한 탄압에 움츠러든 공산당은 근본적인 노선을 재정비해야 했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급은 노동자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사회를 경제적으로 지탱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상황은 달랐다. 중국은 전통적인 농업 국가였고 농민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다. 근대적 공업이 발달하면서 노동계급도 성장했지만 아직 농민에 비하면 힘에서나 세력에서나 미치지 못했다.
이론(마르크스주의)과 현실(중국적 상황)이 다른 만큼 공산당의 노선도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처음에는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아 공산당이 탄생했으므로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중심이 있었으나 점차 중국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농촌을 근거지로 삼아야 한다고 믿은 마오쩌둥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인 리리싼(李立三, 1896~1967)이 이끄는 당 지도부에 불만을 품었다. 그러던 차에 당 지도부가 붕괴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 상하이의 장제스 부하들은 희색이 만면한 데 반해 장제스(오른쪽)는 그렇지 않은 표정이다. 하기야 중국의 대권을 꿈꾸는 그가 난징 정권의 수반 정도에 만족할 리 없다. 그는 특유의 뚝심으로 우한 정부를 박차고 나와 결국에는 우한 정부까지 휘하에 끌어들였다. 사진의 장제스는 국공합작 따위에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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