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궐 버들 푸르른데
還笑遊人心大躁 | 우습다 벗님네들 마음 너무 조급해 |
一來欲上最高峰 | 단번에 최고봉에 오르려 하는 도다. |
望欲遠時愁更遠 | 멀리 바라보자 하면 근심 더욱 멀어지니 |
登高莫上最高峰 |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지니라. |
앞의 것은 진화(陳澕)의 시이고, 뒤의 것은 정도전(鄭道傳)의 시이다. 같은 운으로 함께 ‘최고봉(最高峰)’을 노래하였다. 정상에 오르려고 기를 쓰고 산을 오른다. 그렇게 정상에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할 것이 아닌가. 왜들 저리 조급하단 말인가. 이것이 진화 시가 말하고 있는 뜻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던가. 그러나 높이 올라 멀리 볼수록 자신의 왜소를 더 깨달을 뿐이니, 굳이 끝장을 보려 하지 말라. 최고봉은 아껴 두라. 이것은 정도전의 말이다.
이 두 사람의 시를 두고 이수광(李晬光)은 이렇게 말한다.
진화의 시는 말이 몹시 박절하여 남은 맛이 없으니 그가 멀리 이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정도전의 시는 마치 만족함을 아는 것 같았으나 나가기를 탐내어 그칠 줄 모르다가 스스로 화를 입었으니 역시 말할 것이 못 된다
陳作太迫無餘味, 其不能遠到宜矣. 道傳似知足者, 而貪進不止, 卒以自禍, 亦不足道也.
그런데 이제현(李齊賢)의 「등곡령(登鵠嶺)」은 다음과 같다.
烟生渴咽汗如流 | 마른 입 입김 불며 땀은 비오 듯이 |
十步眞成八九休 | 열 걸음에 참으로 여다홉 번 쉬어가네. |
莫怪後來當面過 | 뒤 오던 이 앞서감을 괴이하게 생각 말라 |
徐行終亦到山頭 | 느릿 가도 마침내는 산마루에 이를지니. |
그 조급을 모르는 원대한 기상을 볼 수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하나 더 있다. 권필(權韠)이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安得世間無限酒 | 어찌하면 세간의 한없는 술 얻어서 |
獨登天下最高樓 | 제일 높은 누각 위에 혼자 올라 볼거나. |
성혼(成渾)이 이를 듣고, “무한주(無限酒)에 취해 최고루(最高樓)에 오른다 하였으니, 심히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위언(危言)이다.”라고 말하였다. 뒤에 그는 과연 시안(詩案)에 걸려 죽었다. 『시평보유(詩評補遺)』에 나온다.
권필(權韠)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시안(詩案)의 전말은 이러하다. 1611년(광해 3) 봄 전시(殿試)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포의의 선비 임숙영(任叔英)이 대책(對策)에서 외척의 교만 방자함과 후비(后妃)가 정사에 간여함을 직척(直斥)한 글을 올렸다. 이를 본 광해군이 격노하여 그의 과거 급제를 취소하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권필은 분개하여 「문임무숙삭과(聞任茂叔削科)」란 시를 지어 이 일을 풍자하였다.
宮柳靑靑花亂飛 | 대궐 버들 푸르고 꽃은 어지러이 날리는데 |
滿城冠蓋媚春暉 | 성 가득 벼슬아친 봄볕에 아양떠네. |
朝家共賀昇平樂 | 조정에선 입을 모아 태평세월 즐거움 하례하는데 |
誰遣危言出布衣 | 뉘 시켜 포의의 입에서 바른 말 나오게 하였나. |
당시 왕비는 유자신(柳自新)의 딸 유씨였는데, 그의 아우 유희분(柳希奮)ㆍ유희발(柳希發) 등 외척들이 그 권세를 믿고 전횡을 일삼아 원성을 사고 있던 즈음이었다. 때문에 첫 구의 ‘궁류(宮柳)’는 중전 유씨(柳氏)를, ‘청청(靑靑)’은 그 득세의 형용을 뜻하는 것으로 대뜸 받아들여졌다. 또 2구의 ‘춘휘(春暉)’는 임금을 뜻하고, ‘미(媚)’는 임금을 향한 아첨으로 이해되었다.
이듬해 봄 2월에는 또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자의 문서를 조사해 보니, 권필(權韠)의 이 시가 한 관련자의 책 겉장에 써있는 것이 나왔다. 광해군이 읽고는 대노하여 전교하기를, “권필은 도대체 어떤 놈인가? 감히 시를 지어 제멋대로 풍자하였으니, 그 무군부도(無君不道)의 죄가 크다. 마땅히 하나하나 추문(推問)하리라”하였다. 이에 권필은 광해 앞에 끌려 와 홍초(供招)를 받게 되는데, 왕은 극도로 격앙되어 궁유(宮柳)가 외척을 모독한 것이 아니냐며 힐문하였다. 이에 권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임숙영이 전시 대책에서 광망한 말을 많이 하였으나, 신이 이 시를 지은 큰 뜻은 좋은 경치가 이와 같다면 사람마다 뜻을 얻어 행할 일이지, 숙영이 포의로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 같은 바른 말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사옵니다.
대저 옛날의 시인은 흥(興)에 기탁하여 풍간한 일이 있었으므로 신이 이를 본받아서, 숙영이 포의임에도 감히 이와 같이 말하였건만 조정에는 바른 말하는 자가 없으므로 이 시를 지어 제공을 규풍하여 힘쓰는 바가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궁류’ 두 글자는 당초 왕원지(王元之)의 「전시서(殿試詩)」 가운데 ‘대궐 버들 삼월 아지랑이 속에 낮게 드리웠네[宮柳低垂三月烟].’란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시를 보는 자가 시 가운데 ‘유(柳)’자가 있는 때문에 바로 외척을 지척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지, 신의 본뜻은 그렇지 않사옵니다.
任叔英殿策, 多發狂言, 身臣作此詩, 大意‘好景如此, 而人人得意而行, 叔英以布衣, 何爲如此危言乎?’
大抵古之詩人, 有托興規諷之事, 故臣欲倣此爲之, 以爲: ‘叔英以布衣, 敢言如此, 而朝廷無有直言者’, 故作此詩, 規諷諸公, 冀有所勉勵矣. ‘宮柳’二字, 初取王元之「殿試詩」‘宮柳低垂三月煙’之句, 而見詩者以詩中有柳字, 故直謂指斥戚里云, 身 臣本情則不然.
이에 왕은 더욱 격노하였고, 혹독한 형벌로 석주를 신문하였다. 당시 대신으로 있던 이덕형(李德馨)과 이항복(李恒福)ㆍ최유원(崔有遠) 등이 역옥(逆獄)과 연루되지 않은 무관한 일로 신문함은 성덕(聖德)에 누가 될 뿐 아니라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두 번 세 번 사하여 줄 것을 울며 논하였으나 왕은 끝내 혹독한 매질을 하여 가두고 말았다. 그날 밤 초주검이 된 그에게 대신들의 간청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함경도 경원 땅으로 귀양 보낸다는 전교가 내렸다. 『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이다.
이튿날 권필은 혹독한 형벌로 인해 들것에 실려 동대문을 나섰다. 그는 평소 몸이 약했던 데다 상처가 심해 바로 발행하지 못하고 동대문 밖 민가에 머물고 있다가 벗들이 권하는 막걸리를 마시고 장독(杖毒)이 솟구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시참(詩讖)이 전해진다. 처음 민가에 머물 때 주인 집 문짝에 시가 한 수 써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三月將盡四月來 | 삼월도 다 가고 사월이 오려는데 |
桃花亂落如紅雨 | 복사꽃만 붉은 비인 양 어지러이 떠지네. |
勸君更進一盃酒 | 그대에게 한 잔 술 다시금 권하노라 |
酒不到劉伶墳上土 | 술도 유령(劉伶)의 무덤 위에는 이르지 못하리니. |
그런데 시를 써놓은 사람이 첫 구의 ‘권(勸)’을 ‘권(權)’으로, 2구의 ‘유(劉)’를 ‘유(柳)’로 각각 잘못 써 놓았다. 이렇게 바꿔 쓰고 보니 그 내용이 흡사 권필(權韠)이 유씨(柳氏)에게 한잔 술을 올리지만 그 술을 유(柳)가 받지 않는 꼴이 되었다. 이를 본 권필은 “이것은 시참이다. 내가 죽겠구나”하고 탄식하였다. 혹은 그가 술에 취해 이튿날 죽자, 주인 집 문짝을 뜯어 시상(尸床)으로 하였는데 그 문짝 위에 이 시가 쓰여 있었다고도 한다. 그때 마침 주인 집 담장 밖에 복사꽃이 반쯤 져서 시 속의 묘사와 방불했었다고 기록이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원근이 기운이 잃었다”고 하였고, 광해 또한 “하룻밤 사이에 어찌 갑자기 죽었단 말인가?”하면서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다. 이항복은 늘 한탄하며 “우리가 정승 자리에 있었으면서 한 사람 권필(權韠)을 능히 살리지 못하였으니, 선비 죽인 책임을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곤 하였다. 대개 이것이 권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의 시말이다. 바른 말을 했다 하여 임금이 매질하여 한 시인의 목숨을 앗아갔던 이 일은 뒤에 인조반정의 한 빌미를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권필이 광해 앞에 끌려가기 며칠 전 「춘일우제(春日偶題)」란 시를 지었는데, 그 시의 내용이 또한 심상치 않았다.
老去仍多病 生涯任陸沈 | 늙어 가매 병만 늘어가는데 생애를 티끌 세상에 내맡겨두네. |
雲山千里夢 霜鬢百年心 | 천리 먼 꿈속엔 구름에 잠긴 산 백년의 마음은 서리 센 살적일레. |
曉雨鶯聲滑 春江柳色深 | 새벽 비에 꾀꼬리 소린 매끄러웁고 봄 강의 버들 빛은 깊어만 가네. |
如何艶陽節 悄悄動悲吟 | 이렇듯 아름답고 좋은 시절에 어찌하여 구슬피 읊조리는가. |
시의 정조로 보아 권필(權韠)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만 여겨진다. 이 시의 5ㆍ6구에서 그는 새벽 비에 씻겨 매끄러운 꾀꼬리의 소리와 봄날 강가에 휘 늘어진 짙은 버들 빛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는 봄날 약동하는 대지의 생기를 노래한 것으로 들리지 않고, 임숙영의 직척(直斥)과 자신의 풍유에도 불구하고 꾀꼬리, 즉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황금의 난무는 더욱 기세가 드세져만 가고 버들 빛, 곧 류씨의 세도와 권세는 한층 도도해져만 가는 현실에 대한 암유(暗喩)로 읽힌다. 그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 시인은 계절의 아름다움에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만 구슬픈 생각에 자조의 나락 속으로 한 없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비명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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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궐 버들 푸르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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