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本論)
1. 라말려초(羅末麗初)의 전기소설(傳奇小說)
한문소설의 연원은 고대 설화 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모습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三國史記)』 그리고 『수이전(殊異傳)』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들 문헌에선 ‘전기(傳奇)’의 양식에 속하는 작품들이 발견된다. ‘전기(傳奇)’란 ‘기이(奇異)를 진술한다’라는 뜻으로 육조시대의 ‘지괴(志怪)’와 구별하여 당대의 개인적 창작물을 지칭하는 말로써, 중국문학사에서는 소설로 다루기도 한다. 이들 작품에는 『김현감호(金現感虎)』 『수삽석남(首揷石枏)』 『조신(調信)』 등이 있다. 『김현감호(金現感虎)』에서는 신분이 낮은 처녀가 귀공자를 연모는 이야기로 전개되며, 『수삽석남(首揷石枏)』이나 『조신(調信)』에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남녀 사랑이 그려진다. 한국문학사에서의 ‘전기소설’의 특징은 첫째, 사대부들에 의한 의도적 개인 창작으로서 전아(全雅)ㆍ미려(美麗)한 문언문(文言文)으로 기술된 단편적 형식의 서사체라는 것이다. 둘째, 봉건사회 속의 사대부, 혹은 귀족계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사건 전개에 있어서 신이(神異)【신이(神異): 비현실적, 환상적 요소나 낭만적 성격】에 의존하고 있다는 한계성이 있다. 또한 전기 소설 작품은 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구성이나 인물의 개성 창조에 있어서는 설화의 단순성을 어느 정도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2. 고려조(高麗朝)의 소설(小說) 문학(文學)
羅末麗初의 과도기를 거치면서 성숙한 문학창작의식은 이른바. 서사문학인 ‘패관문학(稗官文學)’【패관문학(稗官文學): 임금의 정사를 돕기 위하여 가설항담(街說巷談)을 모아 엮은 설화문학(說話文學)】이라는 종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문학양식을 탄생시켰다. 패관문학에는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가 있다. 패관문학은 시문학 작품들에 자신의 독창적인 비평【이인로(李仁老)는 『파한집(破閑集)』에서 ‘용사론(用事論)’을, 이규보는 그의 저서에서 ‘신의론(新意論)’을 펴기도 했다.】을 적은 것으로 고려시대 소설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려조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假傳體’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假傳이란 의인화된 사물의 전기로 아직은 소설이란 격식에 비하면 미흡한 모습이지만, 허구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다. 고려 전기까지의 별개의 소관사였던 사물 다루기와 글쓰기를 함께 잘하는 새로운 담당층이 등장해 문학의 양상이 달라진 증거를 가전(假傳)이 보여준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 2, 120p】. 이들 작품은 각각 돈(孔方傳), 술(麴醇傳, 麴先生傳), 거북(淸江使者玄夫傳), 대나무(竹夫人傳), 지팡이(丁侍者傳), 종이(楮生傳)를 의인화한 것으로, 교훈적인 효과와 풍자가 담겨 있다. 또한 이들의 서사방법으로 열전적인 사전(史傳), 사전(私傳)의 전기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말미에는 ‘사신왈(史臣曰)’, 또는 ‘사씨왈(史氏曰)’이라는 논평이 첨가되어 있다【「林椿」『麴醇傳』 “史氏曰 麴氏之先 有功于民.....”】. 가전체가 비록 사전의 방법에 근거하고 있는 서사체라 할지라도, 이미 역사지향적 서사체로서의 실록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전(假傳)과 전기(傳奇)의 단순비교로 보면 가전은 전기로부터 후대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위축과 퇴보로 볼 수도 있으나,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서사로부터 허구적인 서사체로 가는 변이적(變異的) 지양(止揚) 형태란 관점에서는 오히려 발전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3. 금오신화(金鰲新話)
조선초기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우리나라 소설사에 우뚝하게 솟아오른 획기적 작품이었다. 물론 이렇게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우뚝 솟은 경지를 보여주기까지 많은 작품들이 시행착오를 거쳤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금오신화는 그 이전 소설류들이 미흡했던 많은 부분들을 극복했다. 이러한 까닭에 소설사를 이야기할 때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최초의 소설 작품이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차용주(車溶柱), 한국한문소설사(韓國漢文小說史), (아세아 문학사, 2004), 110p】. 금오신화는 전기소설인 명나라 구우(懼佑)의 『전등신화(剪燈神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금오신화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우리나라 사람을 등장인물로 하였으며, 시대적 배경이 현실적이다. 『만복사저포기』는 고려 말 왜적의 침략을 배경으로 하였고, 『이생규장전』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배경으로 삼았다. 이 두 작품은 외적의 침략으로 민족 구성원의 삶이 유린당한 사실을 아프게 그려 내었다. 한편 『취유부벽정기』는 옛 도읍 평양을 무대로 삼아, 풍경 속에 민족사의 흐름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이렇듯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인물들은 특이한 체험을 하면서 일상의 희노애락을 더욱 확실하게 경험한다. 그들은 불완전한 보통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둘째, 귀신ㆍ염왕ㆍ염부주ㆍ용궁ㆍ용왕 같은 비현실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현실적인 것의 의미를 생생하게 드러내었다. 비현실적 소재들로 허구화된 이야기 속에는 당시의 지식인 및 민중들이 지녔던 심리적 고통과 사상적 고뇌가 투영되어 있다. 예를 들면 『만복사저포기』의 중심 내용인 귀신과의 결연담은 귀교(鬼交)【최자의 『補閑集』에 나옴】의 이야기를 계승한 측면이 있다. 또한 주인공인 양생은 남원 土姓이어서, 이 소설은 양씨 가문의 설화를 토대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이가원, 조선문학사, (태학사, 1995)】.
셋째, 문어체 문장이나 시는 대상을 서정적으로 미화하고 등장인물의 심리, 사건 전개의 암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작가의 심정적 평가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만복사저포기』에서 여러 여인들의 심리를 각기 다른 시풍 속에 담아낸 것은 문학적 수사의 극치를 이루었다. 우리 문학에서 보면, 시의 삽입은 본래 설화가 문헌으로 정착될 때 이야기의 진행이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장치로 진작에 활용되었다【심경호, 매월당 김시습 금오신화, (홍인출판사, 2002), 41p~43p】.
넷째, 『남염부주지』와 『용궁부연록』은 우리나라 몽유록계(夢遊錄系) 소설(小說)의 효시(嚆矢)로써 의의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금오신화가 완벽한 소설적 기법을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사용한 소설 수법이 아직 미비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대목마다 시를 삽입하여 서정적 수법에 의존하고 있으며, 논설처럼 전개되는 교술적 대목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4. 16세기~19세기 소설사(小說史)
16세기에서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이 시기는 우리나라 소설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특히 18세기~19세기는 소설사에 있어서 인식론적인 전환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대에 소설이 융성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전대부터 수용되었던 중국 명대 소설의 이입과 영향,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양난을 거쳐 영ㆍ정조 시대에 실학이 대두하였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정신사적인 관념으로부터 현실관으로 전환이 이루어졌으며, 그와 동시에 서민의식이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대다수가 이름이 기입되지 않은 무서명(無署名)이었다. 여러 정황으로 살펴볼 때 작가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는 결코 높지 않았으며 그 후원자나 독서층도 주로 중산층이거나 제한된 부녀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엔 국문의 보급으로 인하여 독서대중이 점진적으로 증대될 수 있었다. 이 시기의 국문은 서민이나 여성의 문자이었는데, 이러한 문자의 보급은 독자의 증대와 함께 읽을거리에 대한 수요를 그만큼 증대시킨 결과를 낳았다. 또한 소설의 유통 및 상품화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기업으로서의 경판(京板), 완판(完板), 안성판(安城板) 등의 판본(板本)과, 방각본(坊刻本)이 등장하면서 소설이 필사본이라는 원초적 단계를 넘어서 시장에 진출하는 유통 상품이 된 것이다. 이와 맞물려 세책가(貰冊家)의 등장도 이 시기 소설을 대중화시킨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나온 소설로는 군담류(軍談類) 소설(小說)과 염정소설(艶情小說)을 들 수 있다. 군담계 소설은 『삼국지연의』 등 중국소설의 영향과 임ㆍ병 양난에 의한 전쟁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차용주(車溶柱), 한국한문소설사(韓國漢文小說史), (아세아 문학사, 2004), 122p】. 작품으로는 『임진록』, 『유충렬전』, 『장풍운전』, 『장국진전』 등이 있다. 군담계 소설은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들이지만, 전대 소설의 전기적인 수법과 우연성(偶然性)을 남발하였으며, 주인공의 초인성(超人性)을 그대로 답습하였기에 소설사적 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염정소설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소설이다. ‘애정소설’ 또는 ‘윤리소설’이라고도 불린다. 작품으로는 권필(權韠)의 『주생전』과 작자미상의 『숙영낭자전』, 『백학선전』 등이 있다. 주생전은 금오신화와 홍길동전의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으며, 전대로부터 있어온 몽유록 또는 몽자소설로는 『운영전』이 있다.
5. 연암(燕巖) 소설(小說)
조선 후기 영정시대의 실학파 문학가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그의 실학사상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을 바탕으로 독특한 한국 한문소설의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는 법고창신(法古創新)【法古創新: 옛 것을 법으로 삼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오랜 권위를 누리던 고정관념을 깨고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작문 태도이다.】이라는 작문법을 내세우며 옛 것에 대한 답습만을 일삼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무엇이든지 표현하려면 복고적 사고방식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의 독창적 견해는 당시로서는 특이한 사상과도 같았기에 정조는 ‘문체반정(文體反正)’을 통하여 그를 단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독특하며 독창적인 사상은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옥갑야화(玉匣夜話)』에 수록된 소설들을 통하여 나타난다.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는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배합하면서 서술시점을 다양화해서 기존의 관념을 타파하고 현실을 재인식하는 수법을 썼다【조동일, 한국문학통사3, (지식산업사, 2004), 215p】.
연암의 한문소설은 작품이 지닌 현실고발과 풍자에 의거하여 ‘풍자소설’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 작품은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당시의 관념적, 인습적 질곡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였다. 또한 그의 소설은 서술형태상 액자소설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흔히, 『허생전』 운운하는 작품의 명칭도 엄격히 따지면 『옥갑야화』라고 일컬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순환액자로 된 옥갑야화의 7개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양반전』은 신분사회의 동요를 희극적으로 제시한 것이며, 『허생전』은 양반전과 비슷하나, 무역상인의 등장이란 점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양반전』의 양반은 신분적으로 우월한 특권을 궁핍 때문에 매매해야 하는 지경이지만, 이 작품의 허생은 오히려 당당하게 부자의 돈을 꾸어서 매점매석의 상술로 치부함으로써, 양반도 장사를 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는 오기와 긍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박지원은 당대의 관습화되고 형식 위주의 양반문화와 허식적 시대착오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허생전』에서는 도시상업사회의 상인계급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고 있다. 허생이 찾아가 거금을 빌린 변부자(卞富者)는 근세 이전의 대표적인 상인으로 나중에 허생이 돈을 돌려주며 “재물로써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그대들이나 할 일이지, 만냥이 아무리 중한들 어찌 도를 살찌게 했단 말인가[以財邈面君輩事耳, 萬金何肥於道哉]”라고 말하며 상인들의 올곧지 않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우롱한다.
풍자의 궁극적인 목표를 서민의식의 옹호에 맞추고 있어서 연암소설에 나타난 서민의식의 부각은 이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리고 연암은 실천이념의 반영으로 실학사상 특히 이용후생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한 풍자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최후의 목표점으로 이상세계의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조병주 외, 한문학사, (새문사, 2004), 491p】.
인용
Ⅰ. 서론
Ⅱ. 본론
1. 羅末麗初의 傳奇小說
2. 高麗朝의 小說 文學
3. 金鰲新話
4. 16세기~19세기
5. 燕巖 小說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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