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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발승암 기문 -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본문

책/한문(漢文)

발승암 기문 -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건방진방랑자 2020. 4. 1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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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내가 동으로 금강산을 유람할 적이다. 골짝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써 놓은 게 보였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깊이들 새겨 놓아 작은 틈도 없었으니 마치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깨가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교오의 묘지에 빽빽이 들어선 무덤 같기도 했다. 옛날에 새긴 이름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새로 쓴 이름은 붉은 글씨가 환히 빛났다. 깎아지른 듯한 천 길 벼랑의 바위 위에 이르매 날아가는 새 그림자도 없었으며 오직 金弘淵김홍연이라고 새긴 세 글자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심 참 이상하다고 여기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로부터 관찰사의 위세란 족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을 만큼 대단하고, 또 저 양봉래楊蓬萊 같은 이는 기이한 경치를 좋아하여 그 발자취가 이르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감히 이런 곳에 이름을 새기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저기다 이름을 새긴 자는 대체 누구기에 석공石工으로 하여금 다람쥐나 원숭이와 목숨을 다투게 한 걸까?”

余東遊楓嶽. 入其洞門, 已見古今人題名, 大書深刻, 殆無片隙, 如觀場疊肩, 郊阡叢墳. 舊刻纔沒苔蘚, 新題又煥丹硃.

至崩崖裂石, 削立千仞, 上絶飛鳥之影, 而獨有金弘淵三字. 余固心異之曰: “古來觀察使之威, 足以死生人, 楊蓬萊之耽奇, 足跡無所不到, 猶未能置名此間. 彼題名者誰耶? 乃能令工與鼯猱爭性命也.”

과정록에 따르면, 박지원은 29세 때인 1765년 가을에 유언호ㆍ신광온申光蘊 등의 벗들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단락은 연암이 김홍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처음 알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 문장 서술은 독자에게 잔뜩 호기심과 궁금증을 품도록 만들고 있다. 연암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인적이 미치기 어려운 높디높은 곳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은 김홍연이라는 자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왜 그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남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은 걸까? 이름을 새긴다는 것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이름이란 무엇인가?

 

독자는 이 단락의 도입부가 보여주는 어조에 특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잠시 그 대목을 보자.

 

 

골짝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옛사람과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바위에 써 놓은 게 보였는데 큼지막한 글씨로 깊이들 새겨 놓아 작은 틈도 없었으니 마치 장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적거려 어깨가 부딪는 것 같기도 하고 교외의 묘지에 빽빽이 들어선 무덤 같기도 했다.

 

 

특히 진하게 표시한 부분은 해학적 느낌을 자아낼 뿐만 아니라, 약간 비아냥거리며 비틀어서 말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골짜기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고금의 사람들이 바위에다 온통 새까맣게 이름들을 새겨 놓았는데, 저마다 큼지막하고 깊이들 새겨 놓았다는 것, 그래서 그것은 마치 장터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을 연상하게도 하고, 빽빽이 들어선 무덤을 연상하게도 한다는 것. 이 연상 자체에 이름 새기기에 대한 연암의 부정적 시선이 스며들어 있다. 말하자면 연암은 이게 대체 무슨 짓들이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방금 인용한 구절 뒤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옛날에 새긴 이름은 이끼에 덮여 있었고, 새로 쓴 이름은 붉은 글씨가 환히 빛났다(舊刻纔沒苔蘚, 新題又煥丹硃).” 연암은 이 문장으로써 무엇을 말하려고 한 걸까? 그것은 곧, 사람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겨 불멸을 꾀하지만 이는 부질없는 짓일 뿐이며, 이름을 새긴다고 해서 시간의 마모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는 그러한 메시지가 극히 암시적인 수준에서 제시되어 있을 뿐이지만, 뒷 단락에서는 이 점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이 단락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선명한 대조를 보인다. 보통 사람들은 골짜기 입구의 새기기 쉬운 곳에 다닥다닥 이름들을 새겨 놓은 데 반해, 김홍연은 새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 고절孤絶한 곳에다 홀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겨 놓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이런 대조를 통해 김홍연이 결코 녹록한 인물이 아님을 슬쩍 시사하고 있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부질없는 짓

2. 가는 산마다 보이는 그 이름

3.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

4. 가뭄의 단비처럼 제공된 김홍연의 개인정보

5. 왠지 남 같지 않다 했더니

6. 왈짜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7. 이름이 곧 존재라는 착각

8. 이름이 남길 바라는 허망함에 대해

9. 이름에 집착하는 유교, 그 너머

10. 김홍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백동수

11. 9년 만에 실제로 만나게 되다

12. 늙어서도 이름에 집착하며 기문을 부탁하다

13. ()에 드러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

1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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