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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에 써 준 서문 -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본문

책/한문(漢文)

「중국인 벗들과의 우정」에 써 준 서문 -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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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 우리나라에서 항주까지는 거의 만 리이니 홍군은 이제 다시는 세 선비를 만나볼 수 없으리라. 그런데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 친구 하지 않더니 지금 만 리나 먼 곳에 있는 사람들과 교유하고 있고,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같은 종족이면서도 서로 사귀지 않더니 지금 다시는 만나볼 수 없는 살마들을 벗 삼고 있으며, 접때 자기 나라에 살 땐 언어와 의관이 같아도 서로 벗 삼지 않더니 지금 갑자기 서로 말도 다르고 옷차림도 다른 사람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니 어떻게 된 일일까?

嗟呼吾東之去吳幾萬里矣, 洪君之於三士也, 不可以復見矣. 然而向也居其國, 則同其里閈而不相知, 今也交之於萬里之遠; 向也居其國, 則同其族類而不相交, 今也友之於不可復見之人; 向也居其國, 則言語衣冠之與同而不相友也, 迺今猝然相許於殊音異服之俗者, 何也?

 

홍군은 서글픈 표정으로 이윽히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에 사람이 없어 벗을 사귈 수 없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실로 지경地境에 국한되고 습속에 구애되어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았사외다. 지금의 중국이 옛날의 중국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저 옛날 중국의 선왕先王[각주:1]들이 만든 옷이 아니라는 걸 난들 왜 모르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나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어찌 요 임금, 임금, 임금, 임금,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 공자孔子가 밟던 땅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들이 사귀는 선비는 어찌 제, , , , , , , 땅의 넓은 견문과 멀리 노닌 경험을 지닌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읽는 책은 어찌 삼대三代[각주:2] 이래 사해四海 만국萬國에서 나온 온갖 서적이 아니겠습니까? 제도는 비록 변했어도 도의道義는 바뀌지 않거늘, 이른바 옛날의 중국이 아니라고 한 그곳에 어찌 그 백성은 될지언정 그 신하는 되지 않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저들 세 선비가 나를 볼 때 중화와 오랑캐의 구별이라든가 의론이나 지체가 다른 데 대한 거리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번거로운 법도를 깨뜨리고 자잘한 예절도 치워 버리고는 진정眞情을 드러내고 간담을 토로했으니 그 크고 너른 마음이 쩨쩨하게 명예나 권세나 이익의 길에서 아득바득하는 치들과 어찌 같다고 하겠습니까?”

洪君愀然爲間曰: “吾非敢謂域中之無其人而不可與相友也, 誠局於地而拘於俗, 不能無鬱然於心矣. 吾豈不知中國之非古之諸夏也, 其人之非先王之法服也. 雖然, 其人所處之地, 豈非堯舜禹湯文武周公孔子所履之土乎; 其人所交之士, 豈非齊蜀博見遠遊之士乎; 其人所讀之書, 豈非三代以來, 四海萬國極博之載籍乎. 制度雖變, 而道義不殊, 則所謂非古之諸夏者, 亦豈無爲之民而不爲之臣者乎? 然則彼三人者之視吾, 亦豈無華夷之別而形跡等威之嫌乎? 然而破去繁文, 滌除苛節, 披情露眞, 吐瀝肝膽, 其規模之廣大, 夫豈規規齷齪於聲名勢利之道者乎?”

이 단락의 두 번째 문장은 저 앞의 5편의 글과 호응한다. 즉 이 문장은 앞에 기술된 2단락의 논의와 홍대용이 중국에 가서 친구를 사귄 일을 서로 연결 짓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바로 뒤에 길게 이어지는 홍대용의 말을 이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방법적 질문에 해당한다. 비록 이 문장은 연암이 직접 홍대용에게 묻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질문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 단락은 하나의 물음과 하나의 대답이라는 문답체 구성을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홍대용이 대답한 말 중 나는 우리나라에 사람이 없어 벗을 사귈 수 없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실로 지경地境에 국한되고 습속에 구애되어 답답한 마음이 없지 않았사외다(吾非敢謂域中之無其人而不可與相友也, 誠局於地而拘於俗, 不能無鬱然於心矣)”에서 지경에 국한되고1과 호응하는 말이고, “습속에 구애되어2과 호응하는 말이다. 홍대용은, 지금의 중국이 오랑캐인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이고, 그래서 그 인민들이 입고 있는 옷이라든가 하고 있는 변발이 원래 한족漢族의 고유한 것이 아니긴 하나, 그럼에도 그 인민들이 밟고 있는 땅은 옛날의 그 중국이고 선비는 옛날의 그 선비이며 학술과 문화 역시 옛날의 중국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비록 어쩔 수 없이 청나라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기는 해도 청나라에 신복臣服(=신하가 되어 복종함)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없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만주족이 중국을 점거했다고는 하나 그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의연히 옛 중국의 그것이라는 논리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바로 북학의 기저논리基底論理라는 점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조선이라는 땅덩어리가 너무 작다

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3. 연암이 홍군이라 호칭하는 이유

4. 항주라는 곳의 문화적 특성

5. 중국 친구와 사귀다 보니 인식이 바뀌네

6. 중국인과의 교류로 우리 홍대용이 달라졌어요

7. 조선의 한계가 중국에 대한 선망을 낳다

8. 외줄타기의 긴장감을 지닌 북학정신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10. 중국인들과 나눈 필담으로 비난받다

11. 홍대용의 필담으로 벗 사귀는 도를 깨닫다

12. 총평

 

  1. 중국의 선왕: 중국 고대의 성인들을 가리킨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 탕임금, 문왕, 무왕, 주공 등이 그런 인물이다. [본문으로]
  2. 삼대三代: 중국 상고시대의 세 나라인 하夏 나라, 은殷 나라, 주周 나라를 가리킨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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