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중국인과의 교류로 우리 홍대용이 달라졌어요
홍대용이 체험한 1766년 초봄의 이 만남은 이후 홍대용이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며, 한중 교류사에서도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홍대용은 귀국 후 박지원과 함께 이른바 ‘북학’에 제창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흔히 오해되고 있듯, 홍대용의 사상적 고취가 고작 북학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홍대용은 그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 즉 그는 오랜 숙고를 거쳐, 진리의 배타적 독점성을 주장하던 당대의 주자학에서 벗어나 양명학, 서학西學, 불교, 노장老莊, 묵가 등 모든 이단 사상도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징심구세澄心求世’, 즉 인간의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바,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그 장점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인간 중심주의, 자기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과 다른 존재의 경계, 나와 남의 경계, 이 종족과 저 종족의 경계, 지구와 다른 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공생과 공존, 호혜互惠의 철학을 구축해내기에 이른다.
그것은 중국 측의 ‘중화주의=중국 중심주의’와 조선 측의 ‘조선 중화주의=조선 중심주의’, 이 양자를 근사하게 깨뜨려 버리고 전혀 새로운 이론적 대안을 모색한 의의를 갖는다. 그것은 또한 자기 존재에 대한 정당한 긍정과 발견이면서 동시에 자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른 존재, 즉 타자를 향해 자신을 열고 손을 내미는 그런 성격의 철학이라 요약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철학은 인간과 자연, 한 인간과 다른 인간, 하나의 종족과 다른 종족이 서로 이해하고 자신을 낮추며 서로 평등한 눈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홍대용이 제기한 이 평화의 메시지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당대 동아시아의 어떤 사상가에게서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고, 21세기인 지금 보더라도 여전히 진취적이고 매력적이다. 홍대용의 이런 철학은 『의산문답』이라는 책을 통해 완성되었다.
한편 한중 교류사에서도 홍대용은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홍대용의 이 만남이 선례가 되어 이후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북학파의 여러 인물들이 중국에 가 중국인들과 교유하게 되며, 이런 현상은 19세기로 이어진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라든가 추사의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그 좋은 예다. 이 두 사람은 당대 중국의 저명한 문인ㆍ학자들과 폭넓은 친교를 맺었으며, 이는 홍대용이나 박지원이 교유했던 중국인들이 별로 명망 있는 사람이 못 되었던 점과 큰 대조가 된다. 중국의 명망가들과 접촉하면서 그들과 시를 수창酬唱하거나 그들의 글씨나 그림을 얻어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경향은 박지원의 문생인 박제가(1778년 이래 네 차례 중국에 갔다) 등에서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열두 번이나 중국을 드나든 역관 출신 이상적과 같은 문인에 이르러 가히 그 절정에 이른다고 할 만하다.
이상적은 국내의 중인 출신 문인들과는 거의 친교를 맺지 않은 반면 중국의 문인 및 석학들과 광범한 교유를 맺어 그들에게서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저명한 문인ㆍ학자들과 시를 수창하거나 편지를 주고받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 이상적은 급기야 자신의 문집을 북경에서 간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은 요새 말로 하면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 할 만한 일이니, 긍정적으로 봐야 할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당시는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이었으니, 중국에서 인정받고 통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 전문
인용
2. 조선의 습속이 편협하다
9. 청나라의 땅과 인민과 학술과 문화는 옛 중국 그대로다
1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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