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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3. 초기의 대가들(김종직)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전기의 다양한 전개 - 3. 초기의 대가들(김종직)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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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직(金宗直, 1431 세종13~1492 성종23, 季昷孝盥, 佔畢齋)은 도교(道學)의 연원계보(淵源系譜)에서 보면 고려(高麗)성리학(性理學)을 조선조에 이어준 학자(學者)이며, 정치사적(政治史的)으로는 영남사림(嶺南士林)의 사종(師宗)이기도 하다. 일문(一門)이 선산(善山)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 김숙자(金叔滋)길재(吉再)로부터 정몽주(鄭夢周)의 이학(理學)을 이어받아 아들 김종직(金宗直)에게 전()할 수 있었으며 김종직(金宗直)은 다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을 거쳐 조광조(趙光祖)에까지 학통(學統)을 전수(傳授)하게 된다. 그리고 김종직(金宗直)은 출생지가 밀양(密陽)이므로 이러한 지연(地緣)에 힘입어 영남(嶺南) 사류(士類)의 종장(宗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집(文集)점필재집(佔畢齋集)에는 성리학(性理學)에 관한 문자(文字)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그의 학문적(學問的) 경향이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주안(主眼)으로 삼는, 실제 방면에서 치중하였던 것임을 짐작케 하는 수편의 향교기(鄕校記)만 남기고 있을 뿐이다. 이황(李滉)이 그를 가리켜 평생토록 한 일이 문장에 있을 뿐이라고 논평(論評)한 바와 같이 그가 영채(英彩)를 발()한 것은 사장학(詞章學)이다. 흔히 서거정(徐居正)의 시()김종직(金宗直)의 문()을 나란히 일컫기도 하지만, 후세 평가(評家)로부터 칭예(稱譽)를 받은 것은 시(). 신흠(申欽), 청창연담(晴窓軟談)의 말과 같이 그의 시()가 일시(一時)의 으뜸임에는 틀림없다.

 

그도 효용론(效用論)을 개진(開陳)하여 경술문장일도관(經術文章一道觀)’을 말하고 있지만 정도전(鄭道傳)과 같이 거칠지는 않았다. 경전(經典)이 곧 문장(文章)이기 때문에 경술(經術)과 문장(文章)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했다. ‘시서육예(詩書六藝)가 다 경술(經術)이요 시서육예(詩書六藝)의 글이 바로 문장(文章)’이라 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때문에 그는 윤선생상시집서(尹先生祥詩集序)에서 경전(經典)과 문장(文章)의 관계를 초목(草木)에 비유하여 뿌리가 튼튼하면 잎과 열매는 저절로 무르익고 충실해진다는 것이다.

 

 

서거정(徐居正)동문선(東文選)에 대항하기 위하여 동문수(東文粹)청구풍아(靑丘風雅)를 편찬할 때의 김종직(金宗直)은 분명히 시인(詩人)이요 문인(文人)이다. 이때까지도 소단(騷壇)의 습상(習尙)송시학(宋詩學)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김종직(金宗直)은 당시(當時)의 풍상(風尙)에서 멀리 떨어져 엄중(嚴重)ㆍ방달(放達)한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성현(成俔)김종직(金宗直)청구풍아(靑丘風雅)를 가리켜 조금이라도 호방(豪放)한 듯한 것은 버리고 수록하지 않았으니[稍涉豪放者, 棄而不錄]’이라 한 것도 그의 시관(詩觀)송시학(宋詩學)의 호방(豪放)한 기격(氣格)을 사실상 극복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후대(後代)의 비평(批評) 가운데서도 차천로(車天輅)신흠(申欽)은 그의 선사사(仙槎寺)가운데서 다음의 구()를 들어 비평을 가했다.

 

鶴飜羅代蓋 龍蹴佛天毬

()은 신라시대의 지붕에 날고 용()은 불천(佛天)의 공을 찬다.

細雨僧縫衲 寒江客棹舟

보슬비 내리는데 중은 누더기를 깁고 차가운 강에는 길손이 노를 젓네.

 

방달(放達) 방원(放遠)함을 칭도(稱道)하고 있으며,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25에서 이 시의 세우승봉납(細雨僧縫衲)’을 들어 유독 당()에 핍근(逼近)하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25에서 차제숙강(差祭宿江)(五律)학명청로하 월출대어도(鶴鳴淸露下, 月出大魚跳)’를 가리켜 당인(唐人)의 고처(高處)에 모자람이 있겠는가라 반문하고 있으며 신륵사(神勒寺)【「夜泊報恩寺下 贈住持牛師 寺舊名神勒或云甓寺 睿宗朝改創極宏麗賜今額」】의 다음의 구()26에서 들어 비평을 가했다.

 

上方鍾動驪龍舞

상방(上方)의 종()이 울리니 여룡(驪龍)이 춤추고

萬竅風生鐵鳳翔

일만 구멍에서 바람이 나오니 철봉(鐵鳳)이 난다.

 

이 구()를 특히 홍량(洪亮)ㆍ엄중(嚴重)하다고 하여 우주(宇宙)에 기둥을 받치는 구()라고 칭도(稱道)하고 있다.

 

 

웅혼(雄渾)ㆍ호방(豪放)으로 일세(一世)에 이름을 드날린 이규보(李奎報)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의 시작(詩作) 가운데에서도 호방(豪放)한 것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는 작품들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선발하지 않았으며 또한 완려(婉麗)ㆍ신경(新警)한 것도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완려(婉麗)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온 이규보(李奎報)하일즉사(夏日卽事)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정몽주(鄭夢周)의 칠언율시(七言律詩) 가운데서도 정주중구 한상명부(定州重九 韓相命賦)중구일제익양수이용명원루(重九日題益陽守李容明遠樓)등도 모두 질탕(跌宕)ㆍ호방(豪放)한 작품으로 후세의 칭송을 받았지만 역시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는 뽑아주지 않았다.

 

김종직(金宗直)의 시작(詩作)은 선발책자(選拔冊子)에 뽑히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30수를 넘거니와 그 가운데서 특히 차제천정운(次濟川亭韻)(七絶),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五絶), 낙동역(洛東驛)(五律), 불국사(佛國寺)(五律), 차청심루(次淸心樓)(七律), 박숙보은사하증주지우사(泊宿報恩寺下住持牛師)(七律), 복룡도중(伏龍途中)(七律), 한식촌가(寒食村家)(七律), 봉대곡(鳳臺曲)(五古), 영금강산간일출(營金剛山看日出)(七古), 삼월이십삼일입경(三月二十三日入京)(五律) 10여편이 각종 시선집(詩選集)에서 모두 선발되고 있어 편수로 따지면 서거정(徐居正)을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代表作)으로 꼽히는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는 다음과 같다.

 

桃花浪高幾尺許

도화 뜬 물결이 몇자나 높았길래

狠石沒頂不知處

낭석(狼石)은 꼭지가 잠기어 있는 곳을 모르겠네.

兩兩鸕鷀失舊磯

쌍쌍이 나는 물새는 옛집을 잃고

銜魚飛入菰蒲去

고기 물고 문득 수초 사이로 들어가네.

 

허균(許筠)성수시화(惺叟詩話)26에서 이 작품을 가장 높은 것으로 평()하고 있거니와 애써 꾸미거나 호기(豪氣)를 부리지 않은 그의 엄중(嚴重)’을 높이 산 것임에 틀림없다 할 것이다. 물론 전편에 우의(寓意)가 짙게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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