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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09. 목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09. 목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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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

요임금이 전국을 12주로 나누고 그 지방장관을 목()이라고 불렀다. 이어서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 구주(九州)로 다시 나누었다.

 

목가(木稼)

목빙(木氷) 혹은 수가(樹稼)라고도 하는데, 나무의 물방울이 추위로 얼어붙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현인(賢人)이나 고관(高官)이 죽는다는 속설(俗說)이 있었다. 왕안석(王安石)이 한기(韓琦)의 죽음을 애도한 시에 목가를 달관이 두려워한다고 들었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철인이 세상을 떠났구나[木稼曾聞達官怕 山頹今見哲人萎].”라는 구절이 있는데, 한기가 죽던 해에 목가의 현상이 발생했고 그 전해에 화산(華山)이 무너졌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 석림시화(石林詩話)卷上

 

목가산(木假山)

산 모습과 흡사한 나무 그루터기를 말한다.

 

목가재하거(木稼災何遽)

현인(賢人)의 죽음을 가리킨다. 목가(木稼)는 상설(霜雪)이 내려 나무에 붙어 있다가 추운 날씨에 응결되어 얼음으로 변하는 것을 말하는데, () 나라 신종(神宗) 때에 초목이 모두 목가의 현상을 보인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한기(韓琦)가 죽었던 고사가 있다. 청상잡기(靑箱雜記)

 

목간(木簡)

고대에는 목간에 글을 썼다.

 

목강(木强)

성격이 곧고 강한 것을 말한다.

 

목객(木客)

남강기(南康記)산간에 목객이 있어 형체는 완전한 사람인데 다만 새 발톱을 지니었다. 높은 나무에 깃드는데 일명 산정(山精)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산중(山中)에 사는 일종의 괴물(怪物)로서 모양은 소아(小兒)처럼 생겼고, 걷고 앉고 옷 입은 것 등이 사람과 다를 바 없는데, 특히 근체시(近體詩)를 읊기 좋아한다고 한다. 소식(蘇軾)의 건주팔경도시(虔州八境圖詩)누가 공산을 향해 명월을 희롱하는고 산중의 목객이 시 읊을 줄을 안다오[誰向空山弄明月 山中木客解吟詩].”라고 하였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十六

 

목거사(木居士)

나무를 깎아 만든 신상(神像)을 말한다.

고목(古木)이 자연적으로 인형(人形)처럼 생긴 것을 사찰(寺刹)에 안치해 둔 것을 이르는데, 한유(韓愈)의 제목거사시(題木居士詩)물불에 타고 씻긴 게 몇 해인지 알 수 없는데 밑둥은 두면 같고, 중둥은 몸통과 같구나, 우연히 이것을 목거사라 일컬어 놓으니 문득 복을 구하는 사람이 한도 없구려[火透波穿不計春 根如頭面榦如身 偶然題作木居士 便有無窮求福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한창려집(韓昌黎集)卷九

 

목격도유존(目擊道猶存)

눈이 닿기만 하면 도가 있다[目擊而道存矣].”라고 한데서 나온 것으로, 눈에 들어오는 자연의 온갖 경관이 다 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목경지환(木梗之患)

나무 인형의 근심이라는 말로, 타향에서 죽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진()나라 소왕(昭王)의 초청으로 진나라에 가려고 하자 소대(蘇代)라는 빈객이 제가 이곳으로 오면서 흙으로 만든 인형과 나무로 만든 인형이 서로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흙 인형에게 말하기를,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면 사람들은 너를 부수어 무너진 곳을 막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흙 인형이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흙에서 생긴 자이니 무너진 곳을 막다가 나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뿐이다. 너는 정원에 있던 복숭아나무인데 깎여 나무 인형이 되었다. 폭우가 내려 물이 불면 너는 반드시 둥둥 떠내려가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천하를 노리는 강한 나라이고,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진나라로 들어간다면 혹 나무 인형의 화를 입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今秦四塞之國也, 有虎狼之心, 恐其有木梗之患].”라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맹상군은 진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멈추었다. 사기(史記)

 

목계(木鷄)

나무로 만든 닭. 학문이 깊고 소양이 순수한 자 또는 머리 놀림이 둔하고 행동이 민활하지 못한 자를 일러 나무닭[木鷄]이라고 하였다. 옛날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이 임금을 위해 투계(鬪鷄)를 길렀던바, 이를 기른 지 10일 만에 왕이 싸울 만한 닭이 되었느냐고 묻자, 기성자가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지금 공연히 사나운 척하며 제 기운만 뽐내고 있습니다[未也, 方虛驕而恃氣].”라고 하였는데, 그 후로도 10일 만에 한 번씩 왕이 계속 물어 맨 마지막인 네 번째 물었을 적에는 기성자가 대답하기를 이제는 거의 되었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이 닭은 조금도 태도를 변치 않아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과 같습니다. 이제는 이 닭의 덕이 온순해져서 다른 닭이 감히 덤비지 못하고 달아나 버립니다[幾矣, 雞雖有鳴者, 已無變矣, 望之似木雞矣, 其德全矣. 異雞無敢應者, 反走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달생(達生)

 

목계가(木鷄歌)

고려가요 중의 효자 문충(文忠)이 지은 유명한 당계곡(唐鷄曲), 곧 오관산곡(五冠山曲). 충이 오관산 밑에 살았는데, 어머니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다. 그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오관산과 서울과의 거리가 30리나 먼 길이었는데도 어머니를 봉양코자 아침에 나갔다가 저물면 돌아오며 정성(定省)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늙어감을 탄식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이제현(李齊賢)이 한시로 번역하되 나뭇조각으로 조그마한 수탉을 만들어서 젓가락으로 집어다 벽의 홰에 앉혔네. 이 새가 꼬끼오 울어 때를 알릴 때, 어머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기누나.”하였다. 고려악사(高麗惡史)』 「악지(樂志)

 

목공(木公)

보통 금모(金母), 즉 서왕모(西王母)와 병칭되는 선인(仙人)의 이름이다.

 

목과건상(木瓜乾象)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건은 하늘이요, 둥근 것이요, 임금이요, 아비요, …… 목과이다[乾爲天爲園爲君爲父 …… 爲木果]”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주역(周易)의 과() 자를 여기서는 과() 자로 전용하였다.

 

목교지실(目巧之室)

눈짐작으로 대충 지은 누옥(陋屋)이란 뜻으로, 자신의 집에 대한 겸칭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문옥(問玉)눈짐작으로 대충 지은 집에도 서남쪽 모퉁이의 존장(尊丈)이 거처하는 곳과 주인이 오르내리는 동쪽 계단이 있는 법이다.[目巧之室 則有奧阼]”라는 말이 나온다.

 

목궁지천주(牧宮之天誅)

()무왕(武王)이 주()를 정벌한 것. 무왕이 주를 치려하면서 목야(牧野)에서 군병들에게 서사(誓辭)를 하였기 때문에 한 말이다. 서경(書經)牧誓

 

목난(木難)

보석(寶石)의 이름으로 목난주(木難珠)의 준말이다.

 

목노(木奴)

감귤(柑橘)의 별칭이다. 양양(襄陽) 이형(李衡)이 가족 몰래 무릉(武陵) 용양주(龍陽洲)에 감자(柑子) () 그루를 심어 두었다가 죽을 때에 아들에게 말하기를 용양주에 천두(千頭) 목노(木奴)가 있으니 해마다 비단 수천 필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그 나무에서 생산하는 것이 종에게서 받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목당강한(目唐綱漢)

옛 사람이 한() 나라와 당() 나라의 정치를 비교하고 논평하여 한은 대강(大綱)이 발랐고, 당은 만목(萬目)이 베풀어졌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물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목덕(木德)

목은 동방(東方)에 해당하므로 즉 봄을 말한다.

 

목도(木道)

나무로 만든 뗏목을 가리킨다. 주역(周易)』 「익괘(益卦)큰 냇물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고 한 것은 목도가 이에 행하는 것이다[利涉大川 木道乃行].”라고 하였다.

해로(海路)를 말한다. 주역(周易)』 「익괘(益卦)단사(彖辭)큰 물을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목의 도가 이에 행해짐이라[利涉大川 木道乃行].”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독가(牧犢歌)

아내 없이 혼자 사는 홀아비의 심경을 읊은 노래를 말한다. 고대에 목독자라는 사람이 나이 쉰에 아내 없이 혼자 살다가 장끼와 까투리가 사이좋게 나는 것을 보고 치조비(雉朝飛)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고금주(古今注)』 「음악(音樂)

 

목독자(牧犢子)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사람. 나이 50에 아내가 없었는데, 나무하러 들에 나갔다가 장끼와 까투리가 함께 나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치조비조(稚朝飛操)를 지었다. 목독자는 독목자(犢沐子)라고도 한다.

 

목란(木蘭)

옛날 여자를 말한다. 북위(北魏) 사람이라고도 하고 수() 나라 사람 또는 당() 나라 사람이라고도 하여 일정치 않다. 그는 늙은 아버지를 대신, 종군(從軍)하여 공을 이루었다 한다. 그가 지었다는 목란사(木蘭辭)는 당 나라 위원보(韋元甫)의 작이라는 설도 있다.

주자집주(朱子集註)목란은 나무 이름이다. 본초에서 껍질은 계수나무와 같고 향기가 나며 모양은 남수와 같고 높이는 몇 길이에 껍질을 제거하면 상하지 않는다.[木蘭, 木名. 本草皮似桂而香, 狀如南樹, 高數仞, 去皮不死.’]”라 했다.

 

목란사(木蘭詞)

옛 악부(樂府) 이름이다다. 목란(木蘭)이라는 여인이 늙은 아버지 대신 남장(男裝)을 하고 그 아버지 이름으로 12년을 종군(從軍)한 사실을 기록한 내용의 가사이다. 고악부(古樂府)』 「목란사(木蘭辭)

 

목란선(木蘭船)

목란(木蘭)이란 나무로 배를 만든다.

 

목란원(木蘭院)

당 나라 왕파(王播)가 과거(科擧)에 오르기 전에 양주(楊州)의 절에 있으면서 중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그 뒤에 왕파가 절도사(節度使)가 되어 그 절에 놀러 가서 목란원(木蘭院)에서 시를 짓기를 “20년 전에 이 원()에 놀 적에 목란꽃이 피고 원()이 처음 이룩되었는데, 오늘날 그때 다니던 곳에 거듭 이르니 나무는 늙어 꽃이 없고 중은 흰 머리로세[二十年前此院遊 木蘭花發院新修 如今再到經行處 樹老無花僧白頭].”라 하였다.

 

목란주(木蘭舟)난주. 보통 작은 거룻배를 가리킬 때 쓰는 시어(詩語)이다.

 

목로비(牧老碑)목은(牧隱) 이색(李穡)이 나옹을 위하여 쓴 비이다.

 

목로사규재(牧老師圭齋)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소시(少時)에 원 나라에 들어가서 제과(制科)에 응시했는데, 이때에 시관(試官)으로 있던 규재(圭齋) 구양현(歐陽玄)이 목은의 글을 보고 이제는 의발(衣鉢)을 동국(東國)에 전하게 되었다.”하면서 높이 칭찬하고 장원(壯元)으로 합격시켰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데, 고려 때에는 당시 시관과 급제자 사이에는 사제(師弟)의 분의(分誼)가 있었다.

 

목릉(穆陵)

경기도 양주(楊州)에 있는 동구릉(東九陵)의 하나로, 선조(宣祖)와 그 왕후의 능이다.

 

목리(木李)

오얏. 시경(詩經)』 「모과(木瓜)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아름다운 옥으로 보답합니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 하였다. / 인용: 소화시평 하권50, 소화시평 하권90

 

목만어팔준(穆滿馭八駿)

목만은 주목왕(周穆王)을 말한 것이다. 사요취선(史要聚選) 제왕(帝王)목왕의 이름은 만(滿)이요 소왕(昭王)의 아들인데,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온 천하를 주류했으며 도룡주(屠龍州)에서 말을 물 먹였다.”라고 하였다.

 

목매(木魅)

숲 속의 요괴(妖怪), 고목이 변해서 된다는 속설이 전한다.

 

목목(穆穆)

조용한 모양, 심원(深遠)한 모양. 천자(天子)의 용모와 거둥을 말한다. 시경(詩經)주송(周頌) 문왕(文王)

 

목민지관(牧民之官)

백성을 기르는 벼슬아치라는 뜻으로 고을, 원등 외직 문관(外職文官)을 통칭하는 말이다.

 

목배(木杯)

나무로 만든 술잔이다.

 

목불식정(目不識丁)

눈을 뜨고도 고무래 자를 알지 못함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와 같은 의미로, 일자무식(一字無識)의 까막눈을 가리키는 말이다. / 유의어: 일자무식(日字無識), 어노불변(魚魯不辨), 문맹자(文盲者), 맹자단청(盲者丹靑)

 

목불인견(目不忍見)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음. 또는 그러한 참상이나 꼴불견을 말한다.

 

목빙(木冰)

추운 날씨에 비, , 서리 등이 나무에 엉겨 붙어 결빙하면서 빚어내는 각종 모양들을 말한다.

 

목상좌(木上座)

불가(佛家)에서 지팡이를 가리킨 말이다.

 

목생(穆生)

전한(前漢) , 초 원왕(楚元王)이 세자로 있을 적에 노() 나라 사람인 목생(穆生)과 함께 부구백(浮丘伯)에게 시()를 수학했는데, 뒤에 자기가 왕이 되고 나서는 목생을 중대부(中大夫)로 삼았다. 초 원왕은 목생을 좋아하여 항상 그와 함께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목생은 본디 술을 즐기지 않으므로 항상 단술[]을 마련했다. 한서(漢書)卷三十六 초원왕전(楚元王傳)

 

목서(木犀)

수목(樹木)의 이름인데, 목서의 꽃은 향기가 매우 강렬하며, 꽃이 봄에 피는 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것도 있으며, 사계(四季)에 피는 것도 있고, 달마다 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목석거(木石居)

깊은 산중 생활을 표현한 말이다. 맹자(孟子)』 「진심(盡心)() 임금이 깊은 산중에서 살 적에는, 나무나 돌과 함께 거처하였으며[與木石居] 사슴이나 멧돼지와 노닐었다.”는 말이 나온다.

 

목석수전해(木石誰塡海)

공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싶지 않음을 말한다.

 

목성(目成)

눈이 맞다.

 

목송비홍구왕패(目送飛鴻口王覇)

공부에 전념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두 사람이 바둑을 배우는 데 있어 한 사람은 거기에 전념하여 배우고, 한 사람은 비록 가르침을 받기는 하나 한쪽으로 홍곡(鴻鵠)이 오거든 활로 쏘리라.’는 생각을 가질 경우, 비록 같이 배워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목송일비홍(目送一飛鴻)

변방의 군막(軍幕)으로 떠나는 벗을 전송하는 절실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 나라 혜강(嵇康)이 종군(從軍)하는 그의 형 희()를 전송하면서 지은 시 증수재입군(贈秀才入軍)’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보내고, 오현금을 손으로 탄주하리라[目送歸鴻 手揮五絃].”라는 구절이 나온다. 문선(文選)24혜강의 자()는 숙야(叔夜)이다.

 

목숙(苜蓿)

거여목. 콩과의 월년초로, 가축의 사료로 쓰이며 나물로도 먹는다. 원산지는 대완(大宛)인데 말이 잘 먹는다. () 나라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으로 사신갔다가 돌아올 적에 포도와 함께 목숙의 종자를 가져다가 목숙원(苜蓿園)을 만들고 우마(牛馬)의 사료로 사용하였다.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

 

목숙반(苜蓿盤)

변변찮은 채소 반찬. 초라한 밥상을 말한다. 목숙은 거여목으로 말이나 소의 먹이로 쓰는 풀의 이름이다.

 

목식이시(目食耳視)

음식물을 보기 좋게 차려서 맛은 상관없이 눈에만 들게 하고, 옷을 맞고 안 맞고는 신경 쓰지 않고 보기 좋게 입어서 칭찬하는 말을 들어 귀만 만족하려 한다. 겉치레만을 취하여 생활이 헛된 사치에 흐름을 한탄하는 말이다.

 

목실환(木實患)

나무 열매도 동이 난다는 것으로, 청고한 생활을 말한다.

 

목아란파(木鵝卵破)

나무로 만든 거위 알은 생명력이 없어 부화(孵化)될 수 없는 것인데, 이 말은 어느 불가사의한 경지에 도달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목안(木鴈)

장자(莊子)』 「산목(山木)편에 “‘어제 산중에서 본 나무는 부재(不材)로써 그 천수[天年]를 다 마쳤는데, 오늘 주인의 안()은 부재로써 죽으니, 선생은 장차 어디에 처하시렵니까?’고 제자가 물으니, 장주는, ‘(부재(不材)의 사이에 처하겠다.’고 대답했다[昨日山中之木 以不材得終其天年 今主人之鴈 以不材死 先生將何處 莊子笑曰 周將處乎材與不材之間].”라고 하였다.

 

목안간(木雁間)

난세의 재앙을 피해 목숨을 보전할 도리에만 구차하게 몰두하고 있다는 말이다. 산에 있는 큰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도끼에 찍히는 재앙을 면하고, 반면에 울지 못하는 거위[]는 쓸모가 없다고 하여 요리상에 오르는 것을 보고서, 장자(莊子)의 제자가 처신의 도리를 물으니, 장자(莊子가 웃으면서 나는 ()와 부재(不材) 사이에 있으련다.”라고 대답한 이야기가 전한다. 장자(莊子)』 「산목(山木)

 

목앵부(木罌艀)

나무로 만든 통 여러 개를 얽어 쭉 한 줄로 띄우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물을 건너는 장치이다.

 

목야(牧野)지금의 하남성 기현(淇縣) 부근에 있었던 땅 이름으로 이곳에서 제후들을 규합한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의 주왕과 결전을 벌여 승리하였다. 주왕은 녹대(鹿臺)에 몸을 던져 불에 타 죽고 천하는 주나라의 것이 되었다.

 

목야(牧野)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기현(淇縣) 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주 무왕(周武王)이 은() 나라에 반란을 일으킨 제후들과 군사를 합하여 주왕(紂王)의 군사를 이곳에서 대파하였다고 한다. 서경(書經)목서편 서(牧誓篇 序)무왕(武王)이 융거(戎車) 3백과 호분(虎賁) 3백 인을 거느리고 목야(牧野)에서 싸울 적에 목서(牧誓)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목야지사(牧野之師)

주 무왕(周武王)이 은주(殷紂)를 쳐서 목야에서 싸울 때에 군사가 3천이었다.

 

목야호(木野狐)

() 원회(元懷)의 무장록(撫掌錄)섭도(葉濤)가 바둑을 좋아함에 왕개보(王介甫)가 시를 지어 준절히 꾸짖었으나 끝내 그만두지 않았다. 바둑 두는 자가 흔히 일을 폐하여 대개 다 업을 잃게 되므로 사람들이 바둑판을 지목하여 목야호(木野狐)라 했다.”라고 하였다.

 

목어(木魚)

불가(佛家)에서 쓰는 법기(法器)로 방목탁()이라고도 하는데, 길이 1미터 가량 되게 나무로 잉어처럼 만들어 속을 비우고 비늘을 새겼다. 독경(讀經예불(禮佛죽반(粥飯) 기타 무슨 일이 있어 승려를 모이게 할 때 이것을 두들겨 소리를 낸다. 주희(朱熹)의 시에 죽과 밥 어느 때나 목어를 함께 할까[粥飯何時共木魚].”라고 하였다.

 

목어액순(目語額瞬)

눈으로 말을 하고 이마로 깜짝거린다.

 

목여의(木如意)

나무로 만든 중의 지팡이이다.

 

목옹(牧翁)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가리킨다. 이색의 묘가 한산(韓山)의 가지현(加知峴)에 있다.

 

목와(木瓦)

명황잡록(明皇雜錄)귀비의 아우 괵국부인(虢國夫人)에 대한 임금의 총애가 대단한 터이라 위사립(韋嗣立)의 집을 탈취하여 그 당()을 넓혔는데 뒤에 다시 위씨에게로 반환되었다. 어느 때 큰 바람에 나무토막들이 굴러서 당위로 떨어졌으나 기와가 조금도 파손되지 않았기에 살펴보니 다 단단한 나무로 조각된 기와였다.”라고 하였다.

 

목우경(睦禹卿)

우경은 목장흠(睦長欽)의 자()이다.

 

목우무전(目牛無全)

이는 극도의 경지에 이른 것을 비유한 것이다. 문혜군(文惠君)이 포정(庖丁)에게 묻기를 그대는 어찌 그리도 소를 잘 잡는가?”하니, 포정이 대답하기를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이므로 이미 기술의 경지를 벗어났습니다. 제가 처음에 소를 잡을 때 소 몸만 보이다가 3년이 지나자 소 몸이 세부적으로 나뉘어 보였고 지금에 와서는 마음속으로 보지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목우유마(木牛流馬)

제갈량(諸葛亮)이 위()와 싸울 때 험준한 산길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썼다는 나무 소와 딸딸이말이다. 그 제작법(촌법)이 그의 집()에 자세히 적혀 있으나, 그 작용은 알 수 없다.

 

목우파(牧牛派)

고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계파를 말한다.

 

목은(牧隱)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이색(李穡)의 호이다. 자는 영숙(穎叔)이다. 그는 이제현(李齊賢)에게 수학하여 성리학에 밝았고, 그의 문하에서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같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목이(木耳)

버섯의 일종. 죽은 뽕나무 등에 많이 나는데 사람의 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이름하였다.

 

목인석심(木人石心)

의지가 굳어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목작약(木芍藥)

이백집(李白集)서에 개원(開元) 시대에 목작약을 좋아하기 시작하여 침향정(沈香亭)앞에 심었다. 마침 꽃이 만발하자 임금은 소야거(炤夜車)를 타고 귀비는 보련(步輦)으로 뒤를 따라 구경했다.”라고 하였다. 이백집(李白集)청평조(淸平調) 일절(一絶)명화와 미인 둘이 서로 좋아하니, 길이 군왕의 웃음 띤 눈길 사로잡았네[名花傾國兩相歡 長得君王帶笑看].”라 하였고, 또 천보유사(天寶遺事)임금이 귀비를 가리켜 말할 줄 아는 꽃[解語花]이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목재(木災)

관목에 글자를 새겨서 책을 인쇄하는 것을 가리킨다.

 

목재(牧齋)

명 나라 전겸익(錢謙益)의 호이다. 만력(萬歷) 때 진사에 급제하여 예부 시랑을 지냈고 당시에 문장가로 이름났다.

 

목재처(牧齋妻)

원래 아내가 없음. 목재(牧齋)는 옛 제()의 처사(處士) 목독자(牧犢子)를 말한다. 목독자는 나이 50이 넘도록 아내가 없었는데, 들에 나무하러 나갔다가 암꿩·수꿩이 사이좋게 노는 것을 보고 마음에 느끼는 바 있어 치조비(雉朝飛)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늙어 아내 없는 자를 일러 목독(牧犢)이라고 하는 전고(典故)가 생겼다. 고금주(古今注)音樂

 

목저(牧猪)

돼지를 사육하는 비천한 일을 이른다. () 나라 때 도간(陶侃)이 일찍이 자기 속관(屬官) 가운데 술 마시고 잡기(雜技)를 즐기는 자들을 징계하기 위하여 술그릇과 놀음 기구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버리고 말하기를 놀음이란 목저노(牧猪奴)들이 하는 유희(遊戲)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목저노(牧猪奴)

도박꾼의 별칭이다. 돼지나 소를 먹이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목적(木賊)

만호(萬戶)를 일컫는 말이다. 명종 때 만호들이 부임하는 날부터 군졸들을 수탈하기로 마음먹기 때문에 시속에서 만호를 목적이라고 하였다.

 

목천(木天)

개다래나무, 즉 목천료(木天蓼)를 말한다.

 

목천(木天)

당 나라 비서각이 가장 높고 크므로 그것을 목천(木天)이라 하였다.

 

목천(木天)

목천서(木天署)의 준말, 즉 학사(學士)의 거소인 한림원(翰林院)의 별칭으로 춘추관(春秋館)을 가리킨다.

 

목천자(穆天子)

() 나라 제5대인 목왕으로 팔준마(八駿馬)를 얻어 서쪽으로 순수하면서 돌아갈 줄을 몰랐다 하는데, 평택(苹澤)에서 노닐 적에 날씨가 매우 추워지면서 눈이 내리는 가운데 얼어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3()의 시를 지어 백성을 애도하였다고 한다. 목천자전(穆天子傳)5

 

목청(穆淸)

미덕(美德)으로 교화(敎化)를 이루는 것을 이른다.

 

목탁(木鐸)

승려가 독경이나 염불을 하거나 사람들을 모이게 할 때에 두드려 소리를 내도록 한 물건이다. 나무를 둥글넓적하게 깎아 속을 파내어 만들며 손잡이가 달려 있다. 세상 사람을 깨우쳐 인도할 만한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불교가 전래되기 수 천년 전부터 목탁(木鐸)을 사용했다. 옛날에는 달력이 귀했으므로 백성들이 절기(節氣)에 따른 농사일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통치자는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을 백성들에게 알렸는데 이때 사용했던 것이 목탁(木鐸)이다. 그 일을 맡은 관리는 매년 봄만 되면 커다란 방울을 치면서 시내(市內)를 돌아다녔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이 모여 들면 봄이 왔으니 씨를 뿌려라고 알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 방울 속의 혀가 나무로 돼 있었으므로 목탁(木鐸)이라고 했다. 물론 쇠로 된 것은 금탁(金鐸)이라고 했는데 주로 군대 내에서 명령을 하달할 때 사용하였다. 후에 불교가 전래되고 절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목탁(木鐸)은 사찰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 역시 원래는 식사(食事)나 염불 시간 등 공지 사항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백성들을 교화(敎化), 인도하는 자를 목탁(木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공자(孔子)였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목탁이삼하환자(木鐸二三何患子)

논어(論語)』 「팔일(八佾)하늘이 장차 부자(夫子)로 목탁(木鐸)을 삼아 온 세상을 일깨워 주도록 할 터인데 여러분은 무엇을 걱정하느냐[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하였다.

 

목탕경(睦湯卿)

탕경은 목대흠(睦大欽)의 자이며, 강릉 부사(江陵府使)를 지냈다.

 

목필화(木筆花)

신이화(辛夷花)의 다른 이름이다. 초사(楚辭)』 「구가(九歌)신이화가 막 피어날 적에는 모양이 붓과 비슷하므로 북인(北人)들이 목필화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목하무우전(目下無牛全)

기술이 뛰어나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감각만을 가지고서도 훌륭하게 알아맞힌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신이 처음 소를 잡을 적에는 보이는 것이 소가 아님이 없었는데, 3년 뒤에는 일찍이 온전하게 보이는 소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목확(木玃)

()은 동방(東方)에 해당하니 목확은 갑신(甲申)의 딴 이름이다.

 

목후(沐猴)

원숭이의 일종이다. 목후는 미후(獮猴)로 초 나라의 방언(方言)이다.

 

목후이관(沐猴而冠)

원숭이가 사람의 관()을 썼다는 말로, 표면은 근사하게 꾸몄지만 속은 난폭하고 사려가 모자람조급하고 사나운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項王欲東歸曰 富貴不歸故鄕 如繡衣夜行 誰知之者說者曰 人言 楚人沐猴而冠耳 果然이라고 보인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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