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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08. 모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08. 모

건방진방랑자 2020. 4. 18.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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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 유의어: 先大夫人(선대부인), 先慈堂(선자당), 先慈親(선자친), 先妣(선비)

살아 계신 남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 유의어: 慈堂(자당), 大夫人(대부인), 萱堂(훤당), 令堂(영당)

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일컬을 때. / 유의어: 慈親(자친), 母親(모친), 家慈(가자), 家母(가모), 慈闈(자위)

 

모격(毛檄)

모의(毛義)가 받든 부의 임명장(府檄)이란 뜻으로, 어버이 봉양을 위한 벼슬살이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모의가 모친 생존 시에는 부격(府檄)을 받으면 기뻐했으나, 모친 사후에는 일절 벼슬길을 사양했던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39 劉平等傳 序

 

모골송연(毛骨悚然)

아주 끔찍한 일을 당하거나, 볼 때에 두려워 몸이나 털끝이 오싹하여짐을 말한다.

 

모공우(毛空雨)

가랑비를 말한다. 소식(蘇軾)의 동파시(東坡詩)모공이 봄 못에 자욱하다[毛空暗春澤]”하였는데, 그 자주(自注)촉인(蜀人)들이 세우(細雨)를 우모(雨毛)라 한다.”라고 하였다.

 

모공해오(毛公解誤)

모공은 동한(東漢)의 여강(廬江) 사람 모의(毛義)인데 집이 가난하였으나 효자로 일컬어졌다. 남양(南陽)의 장봉(張奉)이 그의 이름을 사모하여 찾아갔는데 그 때 마침 부()에서 그를 안양 영(安陽令)으로 임명하는 격문(檄文)이 당도하였다. 모의가 그 격문을 받아 보고 매우 기뻐하자 장봉이 마음 속으로 비루하게 여겼다. 뒤에 모의는 모친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었고 현량(賢良)으로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장봉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진이는 정말 헤아리기 어렵구나! 지난번 그가 기뻐한 것은 어버이의 봉양을 위해 뜻을 굽힌 것이니, 이른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으면 자리를 가리지 않고 벼슬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39

 

모구(旄丘)

시경(詩經)패풍(邶風)의 편명인데, 즉 앞은 높고 뒤가 낮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여후(黎侯)가 오랑캐로부터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위() 나라에 붙어 있을 때 여() 나라의 신하들이 언덕의 칡덩굴은 어찌 그리도 마디가 길게 뻗었느뇨. ()의 제신(諸臣)은 어찌 그리도 우리를 구하지 않고 늑장만 부리느뇨.[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라는 시를 지어, 위 나라가 자기들을 구해 주지 않는 것을 원망한 데서 온 말이다. / 인용: 達梁行

 

모구갈(旄丘葛)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신자(臣子)들이 나라를 잃고 위() 나라에 부쳐 있으면서, 위 나라가 구원병을 빨리 보내주지 않은 것을 원망하여 모구의 칡덩굴이여 어찌 그리 마디가 길게 자랐는고. 숙이며 백은 어찌 그리 많은 날을 보내는고.[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라고 노래한 데서 온 말이다. 시경(詩經)邶風 旄丘兮

 

모구유갈하다일(旄丘有葛何多日)

마중하러 나오는 사람이 오래도록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경(詩經)패풍(邶風) 모구(旄丘)저 언덕의 칡이여, 어쩜 이리 마디가 긴가. 숙이여 백이여, 어쩜 이리 여러 날이 걸리는가.[旄丘之葛兮 何誕之節兮 叔兮伯兮 何多日也]”라고 한 데서 따온 말이다.

 

모국(牡菊)

씨가 없는 국화. 태워서 재로 만들어 뿌리면 개구리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본초(本草)』 「()

 

모국막경투(毛鞠莫輕投)

[毛鞠]을 던져 참선(參禪)하는 스님을 깨우지 말라는 뜻이다. 고려 때에 특히 격구(擊毬)가 성행하였다.

 

모군봉격희(毛君奉檄喜)

모군(毛君)은 후한(後漢) 시대의 모의(毛義). 어머니는 늙고 집은 가난했던 모의가 어느 날 뜻밖에 수령(守令)으로 부르는 부()의 격소(檄召)를 받고는 희색이 만면하여 그를 본 이들이 모두 그를 천히 여겼었는데, 그 후 어머니가 죽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나 끝내 응하지 않아 사람들이 그때서야 그의 진의를 알고 감탄했다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69

 

모군정려(毛君鼎呂)

사신으로 가서 국가의 체모를 중하게 한 것을 말한다. 모군은 조() 나라의 모수(毛遂)를 가리키고, 정려는 구정(九鼎)과 대려(大呂), () 임금이 만들었다고 하는 솥과 종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조 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모수를 데리고 초왕(楚王)과 교섭하러 갔는데, 초왕에게 합종(合縱)의 이해(利害)를 말하였으나 한나절이 다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모수가 칼을 빼들고 단상으로 뛰어 올라가 초왕을 위협해서 드디어 합종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조 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도 중하게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사기(史記)76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모기령(毛奇齡)

청 나라 절강(浙江) 소산(蕭山) 사람으로 자는 대가(大可)이다. 음률(音律)에 밝고 많은 책을 섭렵하였으며 경학에 조예가 깊다고 자부하였으나 남을 공격하길 좋아하여 딴 사람이 이미 말해놓은 것은 반드시 논박하였다. 234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모당(帽餳)

모자를 쓴 엿이란 뜻으로, 즉 의관(衣冠)을 갖춘 사람의 형상이기는 하나, 엿처럼 유연하여 매사에 무능함을 비유한 말이다.

 

모두(旄頭)

28(宿) 가운데 하나인 묘성(昴星)을 가리키는데, 이 별은 호()를 관장하는 별이다. 그 별이 밝으면 천하의 옥송(獄訟)이 공평함을 뜻하고 어두우면 옥송이 함부로 다루어짐을 말한다고 한다. 사기(史記)』 「천관서(天官書)

 

모두미(矛頭米)

위태롭다는 뜻이다. () 나라 환온(桓溫)의 위어(危語)창 머리서 쌀 씻고 칼 머리서 밥 짓는다[矛頭淅米劍頭炊].”라 하였다.

 

모두성(旄頭星)

별 이름이다. 이 별이 떨어지면 적장이 죽는다 하였다.

 

모두성(旄頭星)

별 이름이다. 이 별이 나타나면 변경(邊境)에 전쟁이 일어난다 하였다.

 

모두성(旄頭星)

별 이름인데, 이 별의 빛이 밝으면 천하의 옥송(獄訟)이 평정되고, 빛이 어두우면 형벌(刑罰)이 범람하게 된다고 한다.

 

모류비(慕類悲)

()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초은사(招隱士)곰이며 원숭이들, 동류 사모하며 슬피 우누나[獼猴兮熊羆 慕類兮以悲].”라는 구절이 있다.

 

모린차생만(慕藺嗟生晩)

인상여(藺相如)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의 현상(賢相)이었는데, () 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는 그를 사모하여 자기의 이름을 상여라고 고치고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

 

모모(姆姆)

맏동서, 남편의 형의 아내를 부르는 말이다.

 

모모(毷毷)

번민하는 모양이다.

 

모모(某某)

아무개 아무개’, ‘누구누구를 말한다.

 

모모(暮暮)

저녁때마다.

 

모모(嫫母)

황제(黃帝)의 넷째 비()의 이름이다. 무척이나 추부(醜婦)였지만 부덕(婦德)이 훌륭하였다 한다. 전하여 추녀(醜女)의 뜻으로 쓰인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모사(蝥絲)

모는 풀뿌리를 잘라먹는 벌레 이름이고, 사는 곧 거미줄과 같이 벌레가 뽑아내는 줄을 말한다.

 

모사호로(模寫葫蘆)

호로병을 놓고 그대로 모사하는 것으로, 아무런 변화나 개작이 없이 단순히 모방하는 것을 이른다.

 

모산(茅山)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산으로, () 나라 때 모영(茅盈), 모충(茅衷), 모고(茅固) 형제가 이 산에서 도를 닦았다.

 

모생고(毛生股)

하우씨가 홍수를 다스리는 동안에는 정강이 털이 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모생전국사(毛生戰國士)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조() 나라의 평원군(平原君)모수(毛遂)를 데리고 초왕(楚王)과 교섭하러 갔는데, 초왕에게 합종(合縱)의 이해(利害)를 말하였으나 한나절이 다 되도록 결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모수가 칼을 빼들고 단상으로 뛰어올라가 초왕을 위협해서 드디어 합종에 대한 약속을 받아 내었다. 그러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조 나라를 구정(九鼎)이나 대려(大呂)보다도 중하게 만들었다[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라고 하였다. 사기(史記)76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모서반(毛序班)

모인(毛寅)을 말한다. 서반은 중국의 관직 이름이다.

 

모석(矛淅)

창끝으로 쌀을 일고 칼끝으로 불을 땐다[矛頭淅米劍頭炊].”는 말을 줄인 것으로, 만일에 대비하여 소홀함이 없이 함을 말한다. 진서(晉書)顧顗之傳

 

모설역양도아수(毛薛亦讓屠兒手)

모설은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신릉군(信陵君)의 문객인 모공(毛公)과 설공(薛公)을 가리키며, 도아(屠兒)는 백정으로 역사(力士) 주해(朱亥)를 가리킨다. 신릉군의 누이는 조()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부인이었는데, 조 나라가 진() 나라의 침략을 받자, 구원을 청했으나 위왕(魏王)이 듣지 않으므로 신릉군은 후생(候生)의 계략을 써, 백정이던 주해로 하여금 장군 진비(晉鄙)를 철퇴로 처죽이게 한 다음 그 군사를 빼앗아 거느리고 조 나라를 구원하여 크게 진군(秦軍)을 무찔렀다. 사기(史記)張耳陳餘傳·信陵君傳

 

모소언(暮召偃)

언은 한 무제(漢武帝) 때 제국(齊國)의 주보언(主父偃)을 가리킨다. 주보언이 주역(周易)춘추(春秋)를 비롯하여 백가서(百家書)에 통했으나 일찍이 제((() 등지에서 융숭한 대우를 받지 못하자, 위 장군(衛將軍:위청(衛靑))을 통해 무제(武帝)에게 알현(謁見)을 요청하였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직접 궐하(闕下)에서 상서(上書)한 끝에 왕으로부터 저물녘에야 소견(召見)을 받아 국가에 대해 중대한 일을 아뢰고 나서 대번에 등용되었던 고사인데, 주보언의 모책(謀策)을 받아들여 한() 나라가 크게 안정되었다. 한서(漢書)卷六十四 주부언전(主父偃傳)

 

모수유중조(毛遂猶重趙)

모수는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평원군(平原君)의 문객(門客)인데, 그는 평소에 아무런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다가, 마침 진() 나라가 조 나라를 공략할 때를 당하여 평원군이 문객 20명을 데리고 초왕(楚王)에게 구원병을 요청하러 갈 적에, 모수는 자청하여 그 중 가장 말석에 끼어 초 나라에 갔던바, 초왕과 평원군과의 회동 결과가 지지부진함을 보고는 그가 직접 초왕을 면대하여 당장에 일을 해결해 냈던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76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모수자천(毛遂自薦)

자기가 자신을 추천함을 말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가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는 초나라와 반진(反秦) 연합군을 결성하고자 했다. 좋은 수가 없던 상황에서 모수(毛遂)가 스스로를 천거하여 평원군(平原君)을 따라 초()나라에 가 망설이는 초왕을 칼자루로 위협하고 논리적으로 구슬리어 합종(合從)의 협약을 맺게 한 고사가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유래된 고사이기도 하다. 사기(史記)76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 유의어: 모수천(毛遂薦)

 

모순(矛盾)

창과 방패. 이는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을 말한다.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어 그것을 자랑하여 말하기를 내 방패의 견고함은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을 자랑하여 말하길, ‘내 창의 날카로움은 뚫지 못할 것이 없다.’라 하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뚫으면 어떻게 되오?’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한다.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 유의어: 모순지설(矛盾之說), 자가당착(自家撞着), 모순당착(矛盾撞着)

 

모시(毛詩)

시경(詩經)의 별칭이다. 모씨(毛氏)가 전한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나라 때 노국(魯國) 사람인 모형(毛亨)이니, 혹은 조국(趙國) 사람인 모장(毛萇)이니 하여 학자에 따라 그 주장이 다르다. / 인용: 毛詩序

 

모신(毛甡)

모기령(毛奇齡)의 초명이다. 그는 주자를 심히 공격했으며 이불(李紱) 역시 주자를 반대했었다.

 

모심곽(茅尋郭)

서로 알아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모는 모용(茅容), 곽은 곽태(郭泰)이다. 모용이 나이 40이 넘도록 공부는 못하고 농사일만 하였는데, 하루는 밭을 갈다가 비가 와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곽태가 보았더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걸터앉아 거드름을 피우는데, 모용은 혼자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를 달리 보고 서로 사귀기 시작했고, 이어 그에게 학문을 익히도록 권하여 결국 성취를 시켰던 것이다. 후한서(後漢書)卷九十八

 

모아(暮雅)

석양의 갈가마귀를 말한다.

 

모암(慕庵)

김극일(金克一)의 호이다.

 

모야(某也)

() 나라 사마광(司馬光)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후인들이 장차 그 이름들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아무는 충성스러웠고, 아무는 간사했으며, 아무는 정직했고, 아무는 부정했다[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曲].’고 하리니, , 두렵지 않겠는가.”한 데서 온 말이다.

 

모영(毛穎)

붓의 이칭(異稱)이다. 모영전(毛穎傳)

 

모영부중서(毛穎不中書)

붓도 닳으면 글씨를 쓸 수 없음을 이른다. 한유(韓愈)모영전(毛穎傳)에서 닳아진 붓을 일러 나는 일찍이 그대가 글씨를 쓰기에 적합하다고[中書]여겼더니, 그대가 이제는 글씨를 쓰기에 적합하지 못한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모용(茅容)

동한(東漢) 진류(陳留) 사람으로 자는 계위(季偉)이다. 당시의 명사 곽태(郭泰)가 그의 집에서 하룻밤을 잤는데 이튿날 새벽에 닭을 잡는 것을 보고 자기를 대접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였으나 닭은 그의 어머니에게 드리고 나물밥을 함께 나눠 먹었다. 곽태는 그를 훌륭하게 여겨 글을 배우도록 권해 마침내 덕이 높은 선비가 되었다 한다.

 

모용수(暮容垂)

중국을 점령하여 남북조 시대가 되었다.

 

모우조운(暮雨朝雲)

저녁 비 아침 구름은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송옥(宋玉)고당부(高唐賦)에 나온 말이다. 초 회왕(楚懷王)이 고당(高唐)에서 놀 적에 꿈속에 한 부인이 나타나 말하기를 첩은 무산(巫山)의 남쪽 험난한 산등성이에 사는데 이른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물녘에는 비가 됩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흔히 규중의 부인을 그릴 때 인용한다.

 

모운(暮雲)

친구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두보(杜甫)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위수 북쪽엔 봄 하늘의 나무요, 강 동쪽엔 날 저문 구름이로다. 어느 때나 한 동이 술을 마시며 거듭 함께 글을 자세히 논해 볼꼬[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 何時一樽酒 重與細論文].”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모운춘수(暮雲春樹)

멀리 떨어진 친구를 그리워하는 말이다. 두보(杜甫)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시에 위북(渭北)엔 봄철나무, 강동(江東)엔 저녁구름[渭北春天樹 江東日暮雲]”이라 하였다.

 

모유격(茅游擊)

() 나라 장수 모국기(茅國器)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우리나라에 나와 유격장(游擊將)으로서 전공을 많이 세웠다.

 

모의(毛義)

동한(東漢) 여강(麗江) 사람인데, 효행이 있어 조정에서 안양령(安陽令)을 삼았는데, 그 어머니가 죽자 관()을 버리고 갔다. () 나라 장봉(張奉)이 모의(毛義)가 고상(高尙)한 선비라는 이름을 듣고 찾아갔더니, 마침 모의를 벼슬로 부르는 글이 왔는데, 모의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장봉은 그것을 보자 모의를 비루한 사람이라 하고 와 버렸다. 그 뒤에 모의가 그 어머니가 죽고 난 뒤에는 아무리 벼슬을 주어 불러도 다시 나오지 아니하고 한평생을 숨어서 살았다. 그때에야 장봉이 감탄하기를 그가 전일에 부름을 받고 기뻐한 것은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몸을 굽힌 것이니, 어진 사람의 하는 일을 심상한 사람으로서는 과연 헤아릴 수 없구나[非尋常之可測].”라고 하였다.

 

모의격(毛義檄)

동한(東漢)의 효자 모의(毛義)가 집안이 빈한하여 모친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다가 수령의 임명장을 받들고서(奉檄)그지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모친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관직을 그만두고서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39 劉平等傳 序

 

모의반징격(毛義攀徵檄)

() 나라 때 모의(毛義)가 절행(節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장봉(張奉)이 찾아갔는데, 들어가자마자 모의를 수령으로 초청하는 부격(府檄)이 와서, 이를 받은 모의가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므로 장봉은 실망하고 돌아왔던 바, 그 뒤 모의는 어머니가 죽어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상을 치르고는, 다시는 불러도 나가지 않으므로, 그제서야 장봉이 감탄하기를 훌륭한 인물은 측량하기가 어렵구나. 전에 기뻐한 것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가 늙으면 가리지 않고 벼슬을 한다는 것이로구나.”라고 하였다 한다.

 

모의희(毛義喜)

벼슬길에 나아가는 기쁨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여강(廬江) 사람 모의는 어려서 집이 가난했는데, 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긴다고 소문이 났다. 안양위(安陽尉)가 되었을 때 남양(南陽) 사람 장봉(張奉)이 그의 이름을 흠모하여 찾아갔다. 얼마 동안 함께 앉아 있을 때 마침 부에서 공문이 왔는데, 모의를 현령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의는 공문을 받들고 어머니에게 가서 고하였는데, 좋아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장봉은 이를 천하게 여기고서 그곳을 떠났다. 그 뒤에 모의는 어머니가 죽자 벼슬을 내던지고 상복을 입었으며, 여러 차례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장봉이 탄식하기를 현자는 참으로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날에 모의가 좋아했던 것은 어머니를 위해서 그랬던 것이다. 이는 대개 집은 가난하고 부모는 늙어서 아무 관직이나 가리지 않고 벼슬한다는 것이다.”하였다. 동관한기(東觀漢記)』 「모의전(毛義傳)

 

모인(慕藺)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한다는 말로, 현명한 사람을 경모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모자(毛子)

동한(東漢) 여강(廬江)의 효자 모의(毛義)이다. ()에서 수령을 삼겠다는 격()을 보내자 모의는 그 격을 받들고 희색이 만면했었는데,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죽으니 벼슬을 버리고 공거(公車)로 불러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三十九 유평등전서(劉平等傳序)

 

모자영리토계비(茅茨影裏土階卑)

()임금이 천자가 되어서도 모옥(茅屋)에 거처하고 흙으로 뜰을 만들었다.

 

모자토계(茅茨土階)

생활을 매우 검소하게 함을 지칭한 말이다. 모자는 모자불전(茅茨不剪)의 준말로, 지붕을 띠로 이고서 끝을 베어 가지런하게 하지 않는 것이고, 토계는 토계삼등(土階三等)의 준말로, 흙으로 뜰을 쌓되 세 계단만 쌓는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묵자(墨子)가 요순(堯舜)의 덕행을 높여 말하기를 토계는 세 계단이었고 모자를 베지 않았다[堂高三尺, 土階三等, 茅茨不翦, 采椽不刮].’고 했다.”라고 하였다.

 

모장(毛嬙)

서시(西施)와 함께 고대 미인으로 손꼽히던 여인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모적(蟊賊)

모는 뿌리를 잘라먹고 적은 줄기를 갉아먹는 해충을 말한다.

 

모전(慕羶)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양고기가 개미를 좋아하지 않아도 개미들이 좋아서 달려드는 것처럼[蟻慕羊肉] 순 임금이 노린내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舜有羶行] 백성들이 좋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모전의(慕羶蟻)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양고기가 개미를 사모하도록 하지 않았는데도 개미가 양고기를 사모하는 것은 양고기에서 노린내가 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모절(旄節)

일종의 신표(信標)인데 한쪽의 군정(軍政)을 맡은 장관이나 사명을 띤 신하가 소지하는 정절(旌節)이다.

 

모주(牟珠)

모니(牟尼) 구슬. 즉 마니(摩尼)의 보주(寶珠)인데 용왕(龍王)의 뇌에서 나온 것으로 청정옥(淸淨玉)이라 이른다.

 

모중령(毛中令)

붓을 지칭하는 말이다.

 

모참승전비(貌慙勝戰肥)

노자(老子)31전쟁이란 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니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고, 전쟁을 해서 이겼더라도 기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상례(喪禮)를 치르는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 以喪禮處之].”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모추(毛錐)

모추자(毛錐子), 붓의 이칭(異稱)이다. 오대사(五代史) 사홍조전(史弘肇傳)사홍조가 큰 뜻을 품고 있으면서 일찍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조정을 안정시키고 화란을 평정하는 데는 긴 창과 큰 칼만 있으면 되지 붓(毛錐子)을 어디에 쓰겠는가[安朝廷 定禍亂直須長槍大劍 若毛錐子安足用哉].’라고 하니, 삼사사(三司使) 왕장(王章)이 말하기를 붓이 없으면 군부(軍賦)를 어떻게 모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하자, 사홍조가 아무 말도 못했다.”라고 하였다. 新五代史 卷30 漢臣傳 史弘肇傳

 

모추자(毛錐子)

붓의 별칭이다.

 

모친(母親)

살아 계신 자신의 어머니를 말한다.

 

모토(茅土)

천자가 제후를 봉할 때 흰 띠에 황토를 하사하는 것을 말한다.

 

모한보한구(謀漢報韓仇)

장량(張良)의 조부와 아버지가 모두 한()나라의 정승이었으므로 진시황(秦始皇)이 한()나라를 멸망시키자 장량은 원수를 갚으려고 진시황이 지방에 놀러 나온 때에 역사(力士)를 시켜 저격(狙擊)하였다가 실패하고, 진시황이 죽은 뒤에 난이 일어나자 한왕(韓王)을 새로 세웠다가 한왕(韓王)항우(項羽)에게 맞아 죽었다. 장량은 한왕(漢王) 유방(劉邦)을 도와서 진() 나라와 항우를 멸하고 천하를 얻게 하였다.

 

모호기(蝥弧旗)

·방패와 호시성(弧矢星)을 그린 깃발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정백(鄭伯)의 기()였는데, 영고숙(潁考叔)이 이 깃발을 들고 적군의 성벽에 먼저 올라간 고사가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隱公 11

 

모호기고숙(蝥弧欺考叔)

전쟁에서 남 먼저 적을 용감하게 무찌른 것을 비유한 말이다. 모호는 춘추시대(春秋時代) 제후(諸侯)가 사용하던 기() 이름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정백(鄭伯)이 허()를 칠 적에 영고숙(穎考叔)이 정백의 기인 모호를 가지고 맨 먼저 적의 성 위에 올라갔었다. 좌전(左傳)隱公 十一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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