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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어휘사전 - 391. 홰&회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391. 홰&회

건방진방랑자 2020. 6. 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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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 &

 

 

홰홰(翽翽)

퍼덕퍼덕. 날개치는 소리

 

()

30운을 1회라 한다. / 유의어: 원회운세(元會運世)

박자. 리듬.

 

회가(回軻)

안회(顔回)맹가(孟軻)를 합칭한 말이다.

 

회거(回車)

정신을 차려 제 길로 돌아온 것을 말한다. 옛날 음악을 금기시 했던 묵자(墨子)는 고을 이름이 조가(朝歌)라는 것을 알고 수레를 돌렸으며, 효자로 유명한 증자(曾子)는 승모(勝母)라는 이름의 고을을 만나자 수레를 돌렸다는 고사가 전한다. 사기(史記)』 「노중연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

 

회거질어(回車叱馭)

() 나라 왕양(王陽)이 익주 자사(益州刺史)로 부임할 때 공래산(邛郲山)의 구절판(九折阪)을 넘으면서 산길이 너무 험한 것을 보고는 어버이에게 받은 이 몸을 가지고 어찌 이 험로(險路)를 자주 왕래해서야 되겠는가.” 하고 얼마 뒤에 병을 핑계 대고 사직하여 장안으로 수레를 돌렸는데, 뒤에 왕존(王尊)이 익주 자사로 부임할 때에는 구절판에서 마부를 꾸짖으며 말을 힘차게 몰아라. 왕양은 효자지만 왕존은 충신이다.”라고 했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왕존전(王尊傳)

 

회거피조가(回車避朝歌)

음악을 금기로 여겼던 묵자(墨子)가 조가(朝歌)라는 고을을 지나게 되자 이를 피하여 수레를 돌렸다는 회거피조가(回車避朝歌)’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 「추양전(鄒陽傳)

 

회검(會劍)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명검이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합쳐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

 

회계금일(會稽今日)

고향 땅의 태수(太守)가 되었음을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 주매신(朱買臣)이 처음 대단히 곤궁했다가 뒤에 엄조(嚴助)의 천거를 받아 고향인 회계의 태수가 되었는데, 이때 무제가 그에게 부귀(富貴)하여 고향에 가지 않으면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서 회계태수를 제수했었다. 한서(漢書)卷六十四

 

회계산(會稽山)

춘추시대(春秋時代)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대패하여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에 올라가 머물렀던 일이 있다.

 

회계산예(會稽山瘞)

()의 무덤. 우가 순행하다가 회계산(會稽山)에 이르러 붕서했다고 한다. 사략(史略)

 

회계서갑(會稽棲甲)

춘추시대(春秋時代)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 부차(吳王夫差)의 공격을 받고 부초(夫椒)에서 패하여 남은 군대를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올라가 주둔했던 고사에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卷四十一

 

회계선생고사자(會稽先生姑射姿)

종이의 재료인 닥나무() 껍질을 형용한 말이다. 옛날 중국의 회계(會稽) 지방에서 종이를 공물로 바쳤으므로, 한유(韓愈)모영전(毛穎傳)에서 회계의 저 선생과 친하게 벗으로 지냈다[與會稽楮先生友善].”고 하였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서 고야(姑射)는 묘고야산(藐姑射山)의 준말로, 그곳에 거하는 신인(神人)의 피부가 마치 얼음과 눈 같다[肌膚若氷雪]고 하였다.

 

회계정(會稽亭)

회계에 있는 난정(蘭亭)이다.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난정기(蘭亭記)를 짓고 글씨를 썼다. 고문진보(古文眞寶)

 

회계지산음(會稽之山陰)

왕희지(王羲之)를 가리킨다. 회계산은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의 남동쪽에 있는 명산이며, 산음은 산의 북쪽이란 뜻이다.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 “영화(永和) 9년 계축 늦은 봄 초승에 회계산의 산음에 모였다.” 하였다.

 

회계지치(會稽之恥)

전쟁에 진 치욕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회계산(會稽山)에서 싸워 포로로 잡혔다가 굴욕적인 강화를 하고 풀려났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 유사어: 와신상담(臥薪嘗膽)

 

회계천년적(會稽千年跡)

회계산의 구루비(岣嶁碑)를 말하는데 우비(禹碑)라고도 칭한다. 하우(夏禹)가 치수(治水)할 때 각()한 것이라고 전해오는데 모두 70여 자이다.

 

회계회인(會稽懷印)

() 나라 때에 주매신(朱買臣)이 일찍이 파직을 당하고 나서 회계군(會稽郡)의 수저승(守邸丞)에게서 기식(寄食)을 했었는데, 뒤에 주매신이 회계 태수가 되어서는 예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인끈을 품속에 감추고서 도보로 군저(郡邸)에 들어가니, 회계군 아전들이 한창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침내 주매신이 방으로 들어가 수저승과 밥을 먹고는 인끈을 약간 드러내자, 수저승이 앞으로 다가와서 자세히 보니 바로 회계 태수의 인장이었으므로, 관아의 모든 아전들이 처음에는 비웃다가 나중에는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는 고사에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고향의 지방관이 되어 감을 비유한 것이다. 한서(漢書)卷六十四

 

회광(回光)

도가(道家)의 수련법(修鍊法)의 하나인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준말이다.

 

회귤(懷橘)

() 나라의 육적(陸績)이 여섯 살 때 구강(九江)에서 원술(袁術)을 만나 보았는데, 원술이 귤을 내어 먹게 하였다. 육적이 귤 세 개를 가슴 속에 품고 가지고 가다가 하직인사를 할 때 땅에 떨어졌다. 원술이 웃으면서 육랑(陸郞)은 빈객으로 와서 귤을 숨겨 가지고 가는가?”하니, 육적이 꿇어앉으면서 가지고 가서 어머니께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니, 원술이 몹시 기특하게 여겼다. 삼국지(三國志)吳志 卷57 육적전(陸績傳)

 

회귤도위지(淮橘渡爲枳)

남쪽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회수 북쪽에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고 한다.

 

회극(回極)

하늘을 말한다. 초사(楚辭)후어(後語) 6 구탄(九歎) 원사(怨思)아홉 신명을 하늘에 불러모은다[徵九神於回極].”고 하였다.

 

회근(回巹)

회혼(回婚)과 같은 뜻으로 혼인한 지 61년이 되는 해를 말한다.

 

회금점슬(回琴點瑟)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비유한 말이다. 안회는 도시락밥 한 그릇, 물 한 그릇으로 누추한 시골에 살면서도 도를 즐기는 마음을 변치 않았고, 증점(曾點)공자(孔子)가 일찍이 그의 뜻을 물었을 때 대답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관자(冠者) 56인과 동자(童子) 67인으로 더불어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읊으며 돌아오렵니다.”고 하였다. 논어(論語)』 「선진(先進)

 

회남(淮南)

중국 하남성 동백산(桐柏山)에서 발원하는 회수(淮水) 이남의 땅. 그 이북을 회북(淮北)이라 하는데 회남의 유자가 회북으로 가면 탱자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② 『회남자(淮南子)를 가리킨 말이다.

 

회남객(淮南客)

닭을 미화한 말이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선약(仙藥)을 먹고 승천하였는데, 그 약 찌꺼기를 주워 먹은 개와 닭도 모두 승천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회남계(淮南桂)

회남은 한()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을 말한다. 그가 지은 초은사(招隱士)노래에, “계수나무 떨기로 자라누나 산골 깊은 곳에. 꼿꼿하고 굽은 가지 서로서로 얽히었네[桂樹叢生兮山之幽 偃蹇連卷兮板相繚].”라 하였다. 초사(楚辭)卷八

 

회남계견(淮南鷄犬)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어 승천(昇天)할 때, 그가 먹다가 남긴 선약(仙藥)을 핥아먹고 뒤따라 하늘로 올라갔다는 개와 닭들로, 권세에 빌붙어 아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논형(論衡)』 「도허(道虛)

 

회남목낙장년비(淮南木落長年悲)

회남은 회남왕 유안(劉安)으로, 그가 지은 회남자(淮南子)낙엽지자 장년이 슬퍼한다[木落長年悲]”하였다.

 

회남소산(淮南小山)

산림(山林)에 은거하려는 뜻을 말한다. () 나라 때 회남왕 안(淮南王安)이 천하의 준걸들을 모아 시를 짓게 한 뒤 시경(詩經)의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를 본떠 소산(小山)과 대산(大山)으로 시를 분류하였는데, 소산에 속하는 초은사(招隱士)라는 시 속에 굴원(屈原)을 흠모하며 산택(山澤)에 은거하려는 뜻이 담겨 있는 데에서 유래된 고사이다. 초사(楚辭)8 초은사(招隱士)

 

회남자(淮南子)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과 그의 문객들이 편찬한 잡가서로서, 그 안에는 아주 많은 고대 신화가 보존되어 있다. 본래 도()를 논한 내편(內篇) 21, 잡설(雜說)을 실은 외편(外篇) 33, 도합 54편이었는데, 산일(散佚)되고 지금 전하는 것은 내편이라 한다. 이 책은 찬자가 그의 빈객(賓客) 방술지사(方術之士)를 동원하여 도교(道敎)에 촛점을 두고 종횡무진으로 논한 백과전서류의 책이라 한다. 주석서(註釋書)에는 후한 고유(高誘)의 주()가 있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子部

 

회남초은어(淮南招隱語)

조정의 소명(召命)을 말한다. () 나라 회남왕(淮南王) ()이 옛 풍도를 좋아하여 숨어사는 천하의 위걸(偉傑)들을 불러모으자, 모두 그 덕을 사모하여 그에게 모여든 뒤 자칭 소산(小山) 대산(大山)이라고 일컬었는데, 초사(楚辭)에 나오는 이 초은(招隱) 시는 회남 소산왕(淮南小山王)의 작품이라고 한다.

 

회남총계(淮南叢桂)

초사(楚辭)가운데 회남소산왕(淮南小山王)이 지은 초은사(招隱士)계수가 총생함이여, 산의 깊은 곳일레[桂樹叢生兮山之幽].” 하였다.

 

회남한(淮南恨)

나이가 들어서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낙엽 지자 장년이 슬퍼한다[木落長年悲].”하였다.

 

회대(恢台)

4월을 말한다. 초사(楚辭)구변(九辨)收恢台之孟夏兮라 하였다.

 

회동관(會同館)

() 나라에서 외국의 사신(使臣)을 접대하던 집이다.

 

회동무원(懷東武園)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15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원제(原題)청주의 길가에서 폭설을 만나 동무원정이 생각나기에, 시 한 수를 지어 교대하러 온 공주한에게 부치다[大雪靑州途上 有懷東武園亭 寄交代孔周翰]’이다.

 

회동습역소(會童習役所)

연산군 때 각사(各司)의 나이 어리고 영리한 종들을 뽑아서 궐문 밖에 번갈아 있게 하였는데 이를 회동습역소라 했다. 그리고 훈동관(訓童官)이란 관리로 그들을 인솔하고 귀뚜라미, 잠자리 등의 곤충을 잡아 바치게 하였다.

 

회랭(灰冷)

불교의 용어로, 즉 아무 욕심도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회령령(會寧嶺)

요동의 연산관(連山關)과 낭자산(狼子山)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회로(回老)

() 나라 때의 도사(道士)로서 팔선(八仙)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 여동빈(呂洞賓)을 가리킨 것으로, 소식(蘇軾)유효숙회호구시(劉孝叔會虎邱詩)에 나타나 있고, 또 소식의 회선생과호주시(回先生過湖州詩)에 의하면, 소식의 당시에 회도인(回道人)이라 자칭한 은사(隱士)도 있었는데, 여기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자세하지 않다. 소동파집(蘇東坡集)卷十一, 十二

 

회로동안일(晦老同安日)

회로(晦老)는 회암(晦庵)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심경부주(心經附註) 3권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내가 소년 시절에 동안에 있으면서 밤에 종소리를 들었는데, 그 한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이 마음은 벌써 제멋대로 다른 생각을 하려고 달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철저히 반성한 끝에, 학문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뜻을 전일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嘗記少年時在同安 夜聞鍾聲 聽其一聲未絶 此心已自走作 因是警省 乃知學爲須是致志].”라는 주희의 말이 실려 있다.

 

회록(回祿)

불귀신 이름인데, 보통 화재의 뜻으로 쓰인다.

 

회맹비색(晦盲否塞)

()는 달이 없는 그믐이고 맹()은 눈이 먼 봉사이며 비()는 숨이 막히는 것이고 색()은 냇물이 막히는 것으로, 사람의 양심과 학문이 어두워지고 행해지지 않음을 말한다.

 

회명(晦明)

해가 져서 날이 밝을 때까지. 낮과 밤. 초목이 무성함, 조상(凋傷).

 

회문(回文)

시사(詩詞)의 별체(別體)이다.

 

회문(廻文)

직금 회문(織錦廻文)의 준말이다. 시체(詩體)의 하나로서 시중(詩中)의 자구(字句)가 서로 회환(廻環)하여 뜻이 통하게 된 것이다. 이 시체는 진() 나라 두도(竇滔)의 처() 소씨(蘇氏)로부터 시작되었다. 소씨는 속문(屬文)에 능하여 그 남편 두도가 진주 자사(秦州刺使)에서 유사(流沙)로 귀양가자 소씨는 840자로(子路)된 회문선도시(廻文旋圖詩)를 지어 보냈는데, 그 내용이 무척 처절하였다 한다. 진서(晉書)』 「두씨처소씨전(竇氏妻蘇氏傳)

 

회문금(回文錦)

여인이 낭군에게 보내는 시문을 말한다. 전진(前秦)의 여인 소혜(蘇蕙)가 유사(流沙)에 가 있는 낭군 두도(竇滔)를 그리워하며 비단을 짜서 회문선도시(回文旋圖詩)’를 보낸 고사가 있다.

 

회문시(廻文詩)

시사(詩詞)의 별체(別體)로 회문(回文)이라고도 하는데, () 나라 때 소백옥(蘇伯玉)의 아내가 지은 반중시(盤中詩)에서 비롯되었으며, 전진(前秦)의 두도(竇滔)의 아내가 선기도(璿璣圖)를 지으면서 체제가 크게 갖추어졌다. 이 시체는 시구(詩句)를 바둑판의 눈금처럼 배열하여 끝에서부터 읽거나 또는 중앙에서 선회(旋回)하여 읽어도 시가 되며, 평측(平仄)과 운()이 서로 맞는다. 소식(蘇軾)의 제직금화시(題織錦畫詩)봄이 늦으니 꽃은 지고 벽초만 남았는데, 차가운 밤 달은 오동나무에 반쯤 걸려 있네.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 따라가니 변성에 해 저문데, 성긴 발에 비 뿌리니 수각이 비었어라[春晩落花餘碧草 夜涼低月半枯桐 人隨遠雁邊城暮 雨映疏簾繡閣空].” 하였는데, 이 시를 거꾸로 읽으면 동() 자 운이 변하여 진() 자 운이 되며 뜻이 통하고 평측이 모두 맞는다.

 

회문집구(回文集句)

위에서 내려 읽거나 아래에서 치읽거나 다 말이 되는 시체(詩體)의 한 가지. () 나라 소백옥(蘇伯玉)의 처()가 지은 반중시(盤中詩)가 발단이 되었고, 전진(前秦)두도(竇滔)의 처()가 선기도(璿璣圖)를 지음으로써 체제가 크게 갖추어졌다. 그 굴곡(屈曲)하여 문()을 이룬 것은 반중시의 유항(遺響)이요, 반복 왕환하여 좌우로 서로 통하는 것은 선기도의 제작이다. 지금은 문인들의 유희(遊戱)로 되었다. 집구(集句)는 옛사람들이 지어 놓은 글귀를 모아서 시를 만드는 것이다.

 

회문체(廻文體)

시사(詩詞)의 별체(別體)로 회문(回文)이라고도 하는데, () 나라 때 소백옥(蘇伯玉)의 아내가 지은 반중시(盤中詩)에서 비롯되었으며. 전진(前秦)의 두도(竇滔)의 아내가 선기도(璿璣圖)를 지으면서 체제가 크게 갖추어졌다. 이 시체는 시구(詩句)를 바둑판의 눈금처럼 배열하여 끝에서부터 읽거나 중앙에서 선회(旋回)하여 읽어도 시가 되며 평측(平仄)과 운()이 서로 맞는데, 여기서는 뜻만 통할 뿐, 운은 맞지 않는다. / 유의어: 직금체(織錦體).

 

회박상월(懷璞傷刖)

춘추시대(春秋時代) ()의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옥덩이를 얻어 초의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차례로 바쳤으나 옥이 아니라는 죄목으로 좌우(左右)의 발꿈치 베는 형을 당했다가 그 뒤 문왕(文王)에게 옥이라는 것을 인정받아 이전의 억울함을 씻었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회벽(懷璧)

벽옥(璧玉)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좌전(左傳)환공(桓公) 10년에 필부(匹夫)에게 죄가 없다. 그 벽옥을 가진 것만이 죄이다.” 하였다.

 

회벽시구나원여(懷璧是懼那願餘)

필부가 옥 구슬을 갖고 있다가, 그것을 탐낸 사람에 의해 죄목에 걸려 처벌을 받았다[匹夫無罪 懷璧其罪].”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桓公 10

 

회벽죄(懷璧罪)

좌전(左傳)환공(桓公) 십년(十年)우숙(虞叔)에게 옥()이 있었는데, 우공(虞公)이 요구하자 우숙이 주지 않았다가 뉘우치고 말하기를 필부(匹夫)가 죄()는 없지만 보물을 가진 것이 곧 죄이다.’ 하고는 그 옥을 우공에게 바쳤다.” 하였다.

 

회벽필부죄(懷璧匹夫罪)

춘추좌전(春秋左傳)환공(桓公) 10년에, 필부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구슬을 가지고 있자 이를 탐낸 사람이 구슬을 소지한 것을 죄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다.

 

회보(懷寶)

천하를 구제할 경륜이 있으면서도 나오지 않고 은둔함을 말한다. 양화(陽貨)는 벼슬하지 않는 공자(孔子)에게 보배를 품고도 나라의 혼란함을 내버려둔다[懷其寶而迷其邦, 可謂仁乎].” 하였다. 논어(論語)』 「양화(陽貨)

 

회봉(回俸)

3승포(升布)상목(商木)’이라 하고, 56승포를 회봉(回俸)’이라 한다. 그런데 무명, 즉 면포의 품질은 날 80올을 1(())로 하여 기준을 삼는데 새수가 많은 것일수록 곱다.

 

회북강남(淮北江南)

중국 양주(楊州)를 말한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는 회해는 오직 양주다[淮海惟楊州]”라 했고, 이아(爾雅)에는 강남을 양주라 한다[江南曰楊州]”라 하였다.

 

회비반야문종률(灰飛半夜聞鍾律)

황종(黃鍾)의 길이는 9촌이고, 12() 중에 동짓달에 해당한다. 황종을 땅에 세워서 묻고 그 관 속에 갈대 재를 채운 다음 흰 천을 덮어서 둔다. 밤중에 동지 기운이 오면 재가 천에 올라붙는데, 그것을 보아서 비로소 정확한 음률을 가늠한다. 만약 관이 짧거나 길면 재가 올라붙지 않는다고 한다.

 

회비제실황종동(灰飛緹室黃鍾動)

갈대 재(葭灰)를 악기(樂器)의 율관(律管) 속에 넣어서 기후(氣候)를 점치는 데 있어, 동지(冬至)에는 황종관(黃鐘管)의 갈대 재가 비동(飛動)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回寺)

산사(山寺)에 출입하면서 폐풍을 일으키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회사(懷沙)

초사(楚辭)가운데의 편명(篇名)으로, () 나라의 굴원(屈原)이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기 직전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후대에는 이를 인해 충분(忠憤)을 못 이겨서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회사(會査)

회동사문(會同査問). 두 사람 이상의 관원이 모여서 함께 죄상(罪狀)을 따져 물어 밝히는 것.

 

회사노겸명불후(會使老謙名不朽)

소식(蘇軾)이 지은 시 남병의 겸 스님을 전송하며(送南屛謙師)’내가 이에 뜻이 있어 다경의 뒤를 이어, 겸 스님의 이름을 불후하게 해 주려 하였다네[先生有意續茶經 會使老謙名不朽]”라는 구절이 있다. 소동파시집(蘇東坡詩集)31

 

회사부(懷沙賦)

회사는 모래와 자갈이 깔려 있는 곳으로, 굴원(屈原)은 더러운 세상과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멱라수(汩羅水)에 빠져 죽어 자신의 시신이 멱라수의 모래 위에 진열되기를 원하였다. 이에 회사부를 짓고 끝내 멱라수에 몸을 던져 익사하였다. 초사(楚辭)에 수록되어 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음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회산(檜山)

창원의 옛이름

 

회산(淮山)

()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의 산이라는 뜻으로, 사방의 선비를 초빙하여 극진하게 대우하며 글을 짓게 했던 고사가 전한다. 초사(楚辭)회남소산(淮南小山) 초은사(招隱士)

 

회상(迴翔)

돌아서 날다라는 뜻이다.

 

회서박적(淮西縛賊)

() 나라 헌종(憲宗) 때 장군 이소(李愬), 한밤중에 군사를 인솔하고 큰 눈을 맞으며 70여 리를 달려 채()에 당도해서 반적(叛賊) 오원제(吳元濟)를 사로잡아, 회서(淮西)를 평정하고 큰 공을 세웠던 일을 말한다. 당서(唐書)一百三十三 이소전(李愬傳)

 

회서훈업(淮西勳業)

() 나라 헌종(憲宗) 때 회서(淮西)에서 반란을 일으킨 오원제(吳元濟)의 도당을 평정한 배도(裵度)의 공을 말한다. 고문진보(古文眞寶)後集 평회서비(平淮西碑)

 

회석(懷石)

굴원(屈原)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충신이었는데, 참소를 받아 귀양을 가서 어부사(漁父辭)를 지어 깨끗한 자신은 탁한 무리들과 어울릴 수 없음을 말하였으며, 뒤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기(史記)굴원전(屈原傳)마침내 회사(懷沙)의 부()를 짓고 스스로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乃作懷沙之賦 遂自投汨以死].” 하였다. 회사의 부에는 굴원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자세히 밝혔으므로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를 지으면서 이 말을 썼던 것인데, 뒷사람들은 잘못 돌을 품고 물에 빠져 죽은 것으로 오인하고 사() 자를 석() 자로 바꾸어 회석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회석(回舃)

수령직을 마치고 다시 조정에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섭현(葉縣)의 수령이었던 왕교(王喬)가 물오리 두 마리를 타고서 서울에 올라오곤 하였는데, 이를 잡아서 살펴보니 옛날에 하사했던 상서성(尙書省)의 나막신 한 짝(一舃)이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方術列傳)왕교전(王喬傳)

 

회선(回仙)

() 나라 때의 선인(仙人) 여동빈(呂洞賓)의 별칭이다.

 

회설(回雪)

기녀(妓女)가 옷소매를 번득이며 춤추는 자태의 경묘(輕妙)함을 이른 말이다.

 

회소(懷素)

() 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특히 초서(草書)에 뛰어났다.

 

회소곡(會蘇曲)

신라(新羅) 유리왕(儒理王) 9년에 육부(六部)의 호칭을 정하고 중간을 나누어 둘로 만든 다음, 왕녀(王女) 2인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편을 나누어 7월 보름날로부터 매일 이른 아침부터 대부(大部)의 마당에 모아놓고 길쌈을 하여 이경(二更) 쯤에 일을 끝내곤 해서 8월 보름날까지 일을 계속하고 나서는 그 공()의 많고 적음을 상고하여, 진 쪽에서는 주식(酒食)을 마련하여 이긴 쪽에 사례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잔치에 가무(歌舞)와 백희(百戲)를 모두 베풀었으므로,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진 집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會蘇會蘇)’라 하였는바, 그 음조가 슬프고도 우아하였으므로, 후인들이 그 소리를 인하여 노래를 지어 회소곡이라 이름하였다. / 인용: 삼국사기, 동도악부

 

회수함풍상(懷袖含風霜)

어사대는 직책이 음살(陰殺)의 속성을 띠고 있는 관계로 문()이 북쪽 귀퉁이에 있었다 하며, 이와 함께 불법(不法)을 규탄하기 때문에 어사의 직책을 풍상(風霜)의 직임이라고 하였다 한다. 통전(通典)』 「직관(職官)어사대(御史臺)

 

회심(灰心)

불도를 닦는 마음을 말한다. 모든 망상(妄想)을 여의고 진여(眞如)의 경지에 도달함을 말한다.

 

회심지처불필재원(會心之處不必在遠)

자기 마음에 적합한 바는 반드시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님.

 

회안(淮安)

경기도 광주(廣州)의 고호이다.

 

회안봉(回雁峯)

중국 형산(衡山) 남쪽에 있는 봉우리, 이 봉우리가 매우 높으므로 기러기가 가을이면 이곳에 와서 이 봉우리를 넘지 못하고 그냥 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회암(晦庵)

주자(朱子)의 호이다.

 

회암감우시(晦庵感遇詩)

회암(晦庵)은 주희(朱熹)의 호(). 감우시는 원래 진자앙(陳子昂)이 지은 것으로 이것을 본따 재거감흥(齋居感興)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무엇 때문에 구양자가 붓을 잡으면서 지공한 것을 몰라 당경에다가 주기를 어지럽혔나. 이 범례를 그 누가 용납하리[云何歐陽子 秉筆迷至公 唐經亂周紀 凡例孰此容].” 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卷四

 

회암정(晦庵亭)

송 나라 주희(朱熹)가 강학(講學)하던 정자. 회암은 주희의 호요, 무이산(武夷山)은 그 정자가 있던 산이다.

 

회양(淮陽)

한 무제(漢武帝)의 특명으로 회양 태수(淮陽太守)에 부임했던 급암(汲黯)을 말한다. 한서(漢書)50 급정열전(汲鄭列傳)

 

회양와십년(淮陽臥十年)

한 무제(漢武帝) 때에 급암(汲黯)이 울적한 심정을 안고 회양 태수(淮陽太守)로 부임하여 맑은 정사를 펼치다가 급기야는 10년 만에 그곳에서 죽었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50 급정열전(汲鄭列傳)

 

회여(晦汝)

김광현(金光炫)의 자()이다. 인조 10년에, 사친을 추숭하려는 인조에게 아부하는 대사간 유백증(兪伯曾)을 탄핵했다가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다.

 

회옹(淮翁)

호가 동회거사(東淮居士)인 신익성(申翊聖)을 말한다.

 

회옹(晦翁)

송 나라 주희(朱熹)의 호이다. 중국 건녕부(建寧府) 숭안현(崇安縣)에 있는 무이산(武夷山)에 주자가 무이정사(武夷精舍)라는 강학(講學)의 장소를 조성하고 그 경내에 한서관(寒棲館)을 지었으며, 그 곳에서 지은 반초은조(反招隱操)나는야 양지쪽 숲에 봄날의 붉은 꽃을 사랑하고[我愛陽林春葩晝紅]”라 하였다. 주자대전(朱子大全)卷九 무이정사잡영(武夷精舍雜詠)

 

회왕노회운(淮王蘆灰暈)

회왕(淮王)은 한 나라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다. 유안은 한 나라 고제(高帝)의 손자로 도술(道術)에 뛰어났는데, 그가 지은 회남자(淮南子)갈대를 태운 재로 그렸는데, 달무리가 이지러졌다[畫蘆灰而月暈闕].”하였다.

 

회요검빈(回夭黔貧)

청빈한 생활을 고수하다가 일찍 죽고 말았다는 말이다. 회요는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요절(夭折)한 것을 말하고, 검빈은 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의 은사(隱士)인 검루(黔婁)가 죽은 뒤에 시신(屍身)을 덮을 이불이 없을 정도로 청빈하게 살았던 것을 말한다.

 

회우(回愚)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顔回)는 나와 말할 때에는 시종 , 하기만 하여 어리석은 줄 알았더니, 나가서 하는 것을 보면 잘 발휘하니, 어리석은 것이 아니로다[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하였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회우당이문(會友當以文)

논어(論語)』 「안연(顔淵)군자는 학문을 통해 벗을 모은다.(君子 以文會友)”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실려 있다.

 

회원(檜原)

회산(檜山), 즉 창원의 옛 이름이다.

 

회위(會圍)

회시(會試)의 별칭이다.

 

회유렵(會有獵)

임금으로부터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주 문왕(周文王)이 위수(渭水) 가로 사냥을 나갔는데, 강 태공(姜太公)이 곧은 낚시로 반계(磻溪)에서 고기를 낚다가 문왕을 만났다 한다.

 

회윤대(悔輪臺)

무제가 만년(晩年)에 국경에서 윤대(輪臺)를 개척하다가 뉘우치고 파하는 조서(詔書), “세상에 어찌 신선이 있으랴.” 하는 구절이 있다.

 

회음표모(淮陰漂母)

회음은 강소성(江蘇省) 회안현(淮安縣)의 서북쪽에 있었던 지명. 표모(漂母)는 빨래하는 부인으로 한신(韓信)에게 밥을 주었던 부인을 말한다. 한신(韓信)이 젊었을 때 집이 가난하여 굶고서 회음성(淮陰城) 밑에서 고기를 낚고 있었는데, 빨래하는 부인(漂母)이 그를 동정(同情)하여 여러 날 밥을 먹였다. 한신이 감사하여, “내가 성공하면 부인에게 후히 갚겠습니다.” 하니, 부인이, “내가 왕손(王孫)을 동정한 것이지, 어찌 뒷날의 갚음을 받기를 바란 것입니까.” 하였다. 그 뒤에 한신이 초왕(楚王)이 되어서 빨래하던 부인을 찾아서 금 천 근을 주었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인용: 淮陰漂母墳(이제현), 過淮陰 有感漂母事(이숭인)

 

회음후(淮陰侯)

한 패공(漢沛公)의 대장이었던 한신(韓信)의 봉호이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회의유모귀(懷宜遺母歸)

삼국(三國) 시대 육적(陸績)이 나이 6세에 원술(袁術)의 집에 갔다가 그가 주는 귤 3개를 품고 작별 인사를 하다가 땅에 떨어뜨리자 원술이 네가 손님으로서 어찌 귤을 품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가져다가 모친에게 드리려 합니다.” 한 고사이다. 삼국지(三國志)卷五十七 吳志 육적전(陸績傳)

 

회인탈(恢刃奪)

백정(庖丁) ()의 문혜군(文惠君) 앞에서 소를 가르는데(), 칼을 척척 놀려 힘줄과 관절(關節) 사이를 도려내어도 뼈는 다치지 않는 신기(神技)를 부리며 문혜군에게 설명하는 말이, “저 뼈는 틈이 있고 칼날은 부피가 없으니, 없는 부피로써 있는 틈에 집어넣으면 휑하게(恢恢)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하였다.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

 

회자(膾炙)

잘게 썬 회와 구운 고기. 시가 아름다워 음미할 만한 것을 비유한다.

 

회자(回刺)

승문원의 신진이 귀복(鬼服)을 입고 밤에 선진을 찾아보고 사진(仕進)의 허락을 얻어내는 일이다.

 

회자인구(膾炙人口)

칭찬받는 화제거리로서 널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을 이르는 말이다. 날고기 회와 구운 고기처럼 사람의 입에 오르내림.

 

회자정리(會者定離)

한 번 만나는 이는 반드시 이별하는 것이 정한 이치라는 것.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호이다. 김안로(金安老) 일당에게 축출된 뒤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한동안 전념하였다.

 

회적오시(晦迹吳市)

오시문졸(吳市門卒)의 약칭으로 오현(吳縣) 저자의 문지기인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는 것을 말한다. () 매복(梅福)왕망(王莽)이 나라의 권력을 독단하자 처자를 버리고 숨어 성명을 바꾸고 오현 저자의 문지기가 되었다는 설에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六十七

 

회조슬(懷祖膝)

동진(東晋) 왕술(王述)의 자()가 회조(懷祖)인데, 그의 아들 탄지(坦之)와 함께 부자(父子)가 명사(名士)이었다. 탄지를 사랑하여 장성(長成)한 뒤에도 무릎 위에 앉혔다.

 

회조청명(會朝淸明)

시경(詩經)대아(大雅) 대명(大明)에 있는 말로 무왕(武王)이 주()와 회전(會戰)하던 날 아침이 청명했으므로 한 말인데, 지극히 인()한 자가 지극히 불인(不仁)한 자를 치기 때문에 하늘도 도와서 날씨마저 청명하다는 뜻이다.

 

회주(回周)

두루 돌아다니며 둘러 보다.

 

회중물(懷中物)

감귤을 가리킨다. 후한(後漢) 때 육적(陸績)이 나이 6세 때에 구강(九江)의 원술(袁術)을 찾아가 뵈었는데, 원술이 감귤을 내놓자, 육적이 세 개를 품속에 넣고는 작별인사를 하다가 감귤이 땅에 떨어지므로, 원술이 말하기를 육랑(陸郞)은 손님으로서 감귤을 품속에 넣었단 말이냐?”하니, 육적이 꿇어앉아 대답하기를 돌아가서 어머니께 드리려고 합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육적전(陸績傳)

 

회차질어(回車叱馭)

() 나라 왕양(王陽)과 왕존(王尊)이 서로 앞뒤로 익주 자사(益州刺史)가 되었는데, 왕양은 험준하기로 유명한 구절판(九折阪)을 넘을 때 어버이가 주신 소중한 이 몸을 받들고서 어떻게 자주 이 고개를 넘어다닐 수 있겠는가.” 하면서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서 돌아갔고, 왕존은 이와 반대로 왕양은 효자(孝子)이지만 나는 충신(忠臣)이다.”라고 하면서 마부를 재촉하여 급히 넘어갔던 고사가 전한다. 한서(漢書)76 왕존전(王尊傳)

 

회창(會昌)

당 무종(唐武宗)의 연호이다.

 

회창이상국(會昌李相國)

회창(會昌)은 당 무종(唐武宗)의 연호이다. 이 상국(李相國)은 곧 회창연간에 재상이 되었던 명상 이덕유(李德裕)를 말한다. 선종(宣宗) 즉위 후 이덕유가 참소를 받아 애주사호참군사(崖州司戶參軍事)로 폄척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당서(唐書)卷一百八十

 

회채(淮蔡)

회서(淮西)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당 헌종(唐憲宗) 때 회서 절도사(淮西節度使) 오원제(吳元濟)가 모반하여 그를 토벌할 적에 장군(將軍) 이소(李愬)가 마침 큰 눈이 내리던 밤에 회서를 쳐들어가서 오원제를 사로잡고 끝내 회서를 평정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회청대(懷淸臺)

파촉(巴蜀)의 과부(寡婦) ()이란 여인이 자기 선업(先業)을 잘 지켜 재물로써 자신을 보호하여 침범을 당하지 않았으므로, 진시황(秦始皇)이 그녀를 정부(貞婦)라 하여 회청대(懷淸臺)를 지어 표창하였다 한다.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회총시위(懷寵尸位)

임금의 총애를 믿고 물러가야 할 때에 물러가지 않고 벼슬자리만 헛되이 차지함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추(會推)

회동추문(會同推問). 두 사람 이상의 관원이 모여서 함께 죄상(罪狀)을 따져 물어 밝히는 것.

 

회태(恢台)

넓고 큰 모양. 거대한 것.

 

회태(恢台)

만물을 크게 길러 주는 첫 여름을 말한 것이다.

 

회퇴(灰堆)잿더미.

 

회풍(回風)회오리바람.

 

회풍(檜風)

시경(詩經)국풍(國風) 가운데 하나인 망국(亡國)의 풍인데, 그 나라 이름이 회()이다.

 

회피조제기(薈彼朝隮氣)

임금이 군자(君子)를 멀리하고 소인배만 가까이 하는 것을 풍자한 내용. 시경(詩經)조풍(曹風) 후인(候人), “뭉게뭉게 뭉게구름이 남산을 아침에 기어오르네[薈兮蔚兮南山朝隮].”하여, 남산에 비록 아침 구름이 피어오르더라도 그것이 큰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실 수는 없다는 뜻으로, 소인배가 아무리 임금의 신임을 받더라도 끝내 국가에 도움될 일은 하지 못한다는 비유를 한 것이다.

 

회해진등(淮海陳登)

회해(淮海)는 강해(江海) 혹은 호해(湖海)와 같은 뜻으로서, 뜻이 원대하고 호방하여 속인들과 왕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위() 나라 진등(陳登)이 허사(許汜)의 방문을 받았을 때, 말 상대도 해 주지 않으면서 자기는 높은 침상 위에서 자고 허사는 낮은 곳에 눕게 하였는데, 뒤에 허사가 유표(劉表) 및 유비(劉備)와 얘기하면서 陳元龍湖海之士 豪氣不除라고 불평했던 고사가 전해 온다. 원룡(元龍)은 진등의 자()이다. 삼국지(三國志)7

 

회핵(懷核)

대궐에서 임금이 하사한 과실을 먹었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임금 앞에서 과실을 하사받았을 때, 과실에 씨가 있으면 그 씨를 품안에 간직해야 한다.”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임금이 하사한 것을 공경하여 과실의 씨를 감히 임금 앞에서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현방(會賢坊)

오늘날의 서울 중구 회현동 일대이다.

 

회화묵(懷化墨)

좋은 먹을 지칭하는 말이다. 고미(顧微)의 광주기(廣州記)회화군에서 해자를 파서 많은 석묵(石墨)을 캐내는데 먹이 매우 좋아서 글씨를 쓰기에 알맞다.” 하였다.

 

회화본후소(繪畫本後素)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다.”고 한 공자(孔子)의 말에서 온 것으로, 즉 사람도 아름다운 바탕이 있은 다음에야 문식(文飾)을 가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논어(論語)』 「팔일(八佾)

 

회회(恢恢)

넓고 큰 모양, 여유가 많은 모양

 

회회(回回)

돌고 도는 모양, 빛나는 모양, 마음이 어지러운 모양, 원망하는 소리의 형용, 큰 모양, 언제나, 회회교의 준말

 

회회(洄洄)

물이 흐르는 모양, 어리석은 모양, 마음이 어두운 모양

 

회회(晦晦)

어두운 모양

 

회회(徊徊)

일정한 목적 없이 걸어서 왔다갔다 함

 

회회호(恢恢乎)

넓고 큰 모양.

 

회흘입포도(回紇入蒲萄)

() 나라 사신이 또 서울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포도궁(葡萄宮)은 한() 나라 궁전 이름으로, 애제(哀帝) 때 흉노의 선우(單于)가 중국에 오면 이 궁전에 거하게 하였다. 한서(漢書)』 「흉노전(匈奴傳)두보(杜甫)의 시 세병마행(洗兵馬行)京師皆騎汗血馬 回紇餧肉葡萄宮이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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