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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장 예수의 이적 - 그대로의 성서 수용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장 예수의 이적 - 그대로의 성서 수용

건방진방랑자 2022. 2. 2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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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의 성서 수용

 

 

예수의 동정녀 탄생설화로부터 시작하여 그가 행한 수많은 기적들, 그리고 그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 등등, 예수라는 담론을 구성하는 모든 사건들이 한마디로 아니 땐 굴뚝의 연기들이다. 인간의 탄생은 반드시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 의하여, 그러니까 감수분열을 거쳐 46개가 아닌 23개의 크로모좀(chromosome, 염색체)을 가진 두 남녀 생식세포의 결합과 난할과 기관분화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시절에는,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복음서의 저자들이 활약하던 시대에는 이러한 생식세포들의 크로모좀과 발생과정에 관한 상세한 과학적 인식은 없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식적인 거시적 인과관계, 즉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성적 결합에 의하여 인체 내에 생식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는 인과적 사실에 대한 인식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동정녀 마리아 잉태사건은 그러한 통상적 인과를 거부한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사건은 크리스챤들에게 신화적 환상으로서가 아니라 사실로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혈우병환자의 피를 멈추게 하고, 신들린 자에게서 마귀를 쫓아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불과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빵으로 오천여 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호수 수면 위를 육지와 같이 태연히 걸어 다니며, 심지어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 지나 썩은 내음새가 펄펄 나는 송장을 멀쩡한 산 사람으로 불러일으킨다(11:1~44). 뿐만인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고 예언대로 그는 무덤에서 일어났고 부활의 사실을 가까운 제자들에게 알렸고, 산 인간의 모습으로 재림을 약속하면서 승천하였다.

 

이 너무도 드라마틱한 예수의 일생은 시작부터 끝까지, 탄생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아니 땐 굴뚝의 연기이다. 우리의 상식적 인과를 거부하는 지상의 사건인 것이다. 총면적이 불과 남한의 1/5밖에 되지 않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작은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서 복음서 저자들에 의하여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성서의 기술을 과학적·합리적 세계관을 지니지 못한, 아니, 그러한 세계관이 발생하기 이전의, 비이성적 세계관의 사람들의 특수한 인식체계로서, 그리고 그러한 인식체계의 특수한 문학장르의 표현기법으로서 합리적인 해석을 얼마든지 멋있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인간적이고(humanistic), 합리적이고(rationalistic), 온건하고, 상식적인 해석, 얼핏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라고 쉽게 말해버릴 수 있는 그러한 해석을 기독교에 대한 우리의 이해로서 받아들이는 순간, 기독교는 기독교됨을 상실해버린다. 그것은 멋있고 재미있는 인간의 문학이 되어버릴지언정 기독교는 아닌 것이다. 기독교는 오로지 상기의 이적적 사태를 나의 신앙과 신념체계로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출발하는 종교인 것이다. 예수라는 사건에서 십자가죽음과 부활을 신화학적인 해석을 통해 제거해버리는 순간,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바로 여기에 내가 이 글의 모두(冒頭)에 말한 바, 기독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통스러운 실존적 갈등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반드시 성서의 말씀의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떠한 자연주의적 해석도 차단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든 거룩하고도 진지한 성서주의의 출발이다. 나 조선의 사상가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성서주의의 입장을 한치도 이탈하지 않는다. 인간의 구원은 오로지 성서로부터 온다는 철저한 성서주의의 입장은 교회가 구원의 주체라고 하는 통속적 곁가지사상을 배제시킨다. 인간의 구원은 교회를 통해서 올 수가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올 수 있는 것이다. 세속적 사교집단인 교회조직을 신봉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나의 발언은 불편한 심기를 일으킬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나의 입장이 아니라 20세기 성서신학의 모든 정통주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를 비롯하여 오직 성서’(sola scriptura), ‘오직 예수 그리스도’(solus Christus)를 외치는 성서 정통주의자들의 확고한 입장인 것이다.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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