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즉정견경 정의핍진(卽情見景, 情意逼眞)
시경(詩經) 이래로 전통적인 인식은 ‘시언지(詩言志)’를 시의 본령으로 삼아왔다. 시란 무엇인가? 뜻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뜻이란 무엇인가? 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이르면 다소 복잡해지지만 고대 위진(魏晉) 이전의 시들은 영물(詠物)보다는 영회(詠懷)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다. 뜻이란 마음이 가는 바이다. 이런 까닭에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詩者, 心之發氣之充, 古人以謂讀其詩, 可以知其人].”고 하였다. 장계(張戒)가 『세한당시화(歲寒堂詩話)』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 시인의 본의(本意)이니, 물건을 읊조리는 것은 다만 시인의 여사(餘事)일 뿐이다”라 한 것은 정곡을 뚫은 말이다.
이제 경물(景物)에 대한 묘사 없이 정경(情意)의 표출만으로 이루어진 시를 몇 수 감상해 보기로 하자.
抱兒兒莫啼 杏花開籬側 | 자장자장 우리 아가 울지 말아라 울타리 바로 옆에 살구꽃 폈다. |
花落應結子 吾與爾共食 | 꽃 지고 살구가 곱게 익으면 너랑 나랑 둘이서 같이 따먹자. |
이양연(李亮淵)의 「아막제(兒莫啼)」이다. 자장자장 자장가에 울던 아기가 방긋 웃는다. 아기의 웃음이 활짝 핀 살구꽃 같다. 저 꽃같이 예쁘게 무럭무럭 자라서 토실토실 건강하게 성장해다오. 손주를 안고 어르는 할아버지의 흐뭇한 꿈이 꽃처럼 벙긋 피어올라 살구처럼 영글어 간다. 아기는 쌔근쌔근 꿈나라 속이다. 한시에서도 이런 호흡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목욕탕을 나서며 쐬는 바람처럼 시원하고 상쾌하다.
이 시를 읽다보니 필자가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독일시 한수가 떠오른다. 쉬토름(Theodor Storm, 1817~1888)의 「칠월(JULI)」이란 작품이다.
은은히 바람결에 자장가가 들린다.
덤불에 익어 얽힌 빠알간 딸기.
온 들은 축복에 가득 차 있어
무엇을 생각는가 젊은 아내여.
Klingt im Wind ein Wiegenlied,
Sonne warm herniedersieht,
Seine Ahren senkt das Korn,
Rote Beere schwillt am Dorn,
Schwer von Segen ist die Flur.
Junge Frau, was sinnst du nur?
행복한 풍경이다. 시인은 처음에 바람결에 흥얼흥얼 들려오는 나직한 자장가를 들었다. 자장가를 듣는 그의 시선에 문득 덤불 아래 황량한 풀 더미 속에 빠알갛게 익어 얽힌 딸기가 들어온다. 자장가와 딸기는 시인의 의경 속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황량한 풀 더미 속에서 싱싱한 딸기가 열매 맺듯 나의 황량하던 삶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행복이 있다. 그 행복을 시인은 ‘온 들에 가득한 축복’으로 미루어 버린다. 행복한 것은 자신인데, 축복은 온 들에 가득하다고 한다. 자장가는 누가 불렀던가. 이제는 자장가를 멈추고 잠든 아기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아내다. 젊은 아내라 했으니 그가 늙은 신랑임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가시덤불 속에 열매 맺은 빠알간 딸기처럼 경이롭게 노년에 찾아든 감당키 어려운 행복을 그는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아름답다.
八年七歲病 歸臥爾應安 | 여덟 살에 일곱 해를 병 앓았으니 돌아가 누움이 외려 편하겠구나. |
只憐今夜雪 離母不知寒 | 흰 눈이 펄펄 오는 오늘 이 밤에 제 어미 떠나고도 추운 줄 모르니 가슴 아프다. |
이필운(李弼運)의 부인 남씨(南氏)가 지은 죽은 손녀를 애도하는 시다. 여덟 살 박이 손녀는 일곱 해를 병마에 시달리다 훌쩍 떠났다. 아프다고 보채며 울던 어린 손녀는 영원한 안식이 오히려 행복하겠지. 그러나 이 겨울, 꽁꽁 언 땅 속에서 그 어린 것이 추운 줄도 모르고 누워 있을 생각을 하니, 금이야 옥이야 안스럽던 할머니의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물어진다.
임천당(任天常)의 『시필(試筆)』에서는 이 시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시는 정에서 나오고, 정은 시에서 생겨난다. 경(境)과 더불어 함께 이르매 글자마다 눈물을 흘릴 만하니, 참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시의 가작이라 하겠다. 그러나 평일에 비록 친척조차도 부인이 시에 능한 줄을 알지 못하였으니, 또한 규방에 모범이 될 만하다.
슬픔이 지극하면 외물(外物)을 끌어들일 여유도 없는 법이다. 대저 4구가 모두 정(情)의 술회임에도 그 감정의 절절함이 비탄에 빠지지는 않아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경계를 얻었다.
平生性癖似嵇康 | 평생의 성벽이 혜강 같아서 |
懶弔人喪六十霜 | 육십 평생 초상 위문 게을렀었네. |
曾未識公何事哭 | 공을 전혀 모르는데 어찌 곡하나 |
亂邦當日守綱常 | 어지럽던 그날에 강상(綱常)을 지켜설세. |
오억령(吳億齡)은 광해 계축년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의 논의가 있었을 때 분연히 일어나 그 부당함을 논단하였던 기개 있는 인물이었다. 뒤에 물러나서도 이따금 천정을 우러르며, “어찌 어미 없는 나라에 처하여 구차히 살겠는가?”하는 탄식을 발하였다고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은 전한다.
당초 그의 무덤은 원주(原州)에 있었는데, 무덤을 쓴 후 두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자 묘자리가 좋지 않다 하여 배천(白川) 선영으로 천장하였다. 이때는 광해의 난정(亂政)이 인조반정으로 종식되었던 때라 오억령의 천장에는 그를 사모하던 선비들이 모여 들었다. 그 자리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있었는데, 때마침 살아 생전 망자와는 일면식도 없던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문상을 왔다. 상주가 이정구에게 가서 “선인께서는 동악공(東岳公)과는 평소 서로 알지 못하셨는데도 조문하여 주시니 감격스럽습니다. 동악공(東岳公)은 당대의 거수(鉅手)이시니 만시로 황천길을 빛내고 싶사오나 감히 청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월사(月沙)가 동악(東岳)에게 이 뜻을 전하고 운을 불렀다. 위 시는 그때 월사(月沙)가 부른 운에 따라 동악(東岳)이 지었다는 「오참판만사(吳參判挽詞)」라는 시이다. 평소에 아는 이의 문상조차 게으르던 그가 왜 평생 면식도 없던 이를 조문 왔던가. 폭군의 서슬에 누구도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강상(綱常)으로 제 자리를 굳게 지켰던 그 정신을 사모해서라는 것이다. 옛 선비의 늠연(凜然)한 기개가 장하다. 이 시가 나오자 그때 지은 여러 만시 중에 가장 으뜸이라 하였다. 오억령(吳億齡)의 이름 석자가 이 한 수로 세상에 더욱 드러났다. 위대할 손 시의 힘이여. 홍만종(洪萬宗)의 『시평보유(詩評補遺)』에는 오억령의 초상 때 지은 시로 잘못 나와 있다.
我兄顔髮曾誰似 |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가 |
每憶先君看我兄 | 아버님 생각나면 형님을 뵈었었네. |
今日思兄何處見 | 오늘 형님 보고파도 어데가 만나볼까 |
自將巾袂映溪行 | 의관을 정제하고 시내가로 나가보네. |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억선형(燕巖憶先兄)」이다. 형님은 이제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아버님 뵙듯 형님을 따랐는데, 이제 형님마저 훌쩍 세상을 뜨니, 어데 가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가만히 의관을 갖춰 입고 시내가로 나가본다. 시내에 비친 제 모습을 비춰 보려 함이다. 덤덤한 듯 별 말하지 않았으되, 그리움이 메아리 쳐 긴 울림을 남긴다.
이상 크게 다섯 가지 경우로 나누어 한시에서의 정(情)과 경(景)의 어울림을 살펴보았다. 이들 범주 사이에 우열은 없다. 시인의 그때그때 감정 상태나 놓인 환경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뿐이다. 그래서 청(淸)의 유희재(劉熙載)는 『예개(藝槪)』에서 “시는 혹 경(景)이 앞서고 정(情)이 뒤따르거나, 혹 정(情)이 먼저고 경(景)이 나중하거나, 혹 정(情)과 경(景)이 나란히 이르기도 하는데, 서로 떨어진 듯 서로 융합하니 각기 그 묘가 있다”고 하였다. 그 미묘한 저울질에 대해 김시습(金時習)은 「학시(學詩)」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客言詩可學 詩法似寒泉 | 객(客)은 시를 배울 수 있다 말을 하지만 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은 거라. |
觸石多嗚咽 盈潭靜不喧 | 돌에 부딪치면 목메어 울다가도 연못에 가득차면 고요해 소리 없네. |
屈莊多慷慨 魏晉漸拏煩 | 굴원과 장자는 강개함 많았는데 위진(魏晉)에 이르러선 점차 번다해졌지. |
勦斷尋常格 玄關未易言 | 심상(尋常)한 격조야 끊어 없앤다 해도 묘한 이치 말로는 전하기 어렵다오. |
시는 찬 샘물이다[詩法似寒泉]. 시를 잘 쓰려면 물의 선변(善變)을 배워야 한다. 굴원(屈原)의 시와 장자(莊子)의 산문에는 모두 강개(慷慨)의 비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강개는 어디까지나 돌에 부딪쳐 난 여울의 소리였지, 악악대며 떠들어대는 왜가리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내려올수록 시의 법은 점차 시끄럽고 번다하게 되어 옛 사람의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고, 수다스럽게 말하고 아프다고 끙끙대는 소리가 시의 내용으로 되고 말았다. 심상(尋常)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말아라. 그러나 진정한 시법(詩法)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최후의 ‘현관(玄關)’이 있다. 그 현관(玄關) 앞에 서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도 그 문을 여는 법은 일러 줄 수가 없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열고 들어가야 한다.
인용
1. 가장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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