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물아교감(物我交感)의 이지적(理智的) 흥취
일상은 행위 주체와 대상이 교섭하는 관계의 총체로서 ‘반복적’이고 ‘특별하지 않은’ 속성을 지닌다. 그런 까닭에 일상을 형상화한 시편 속에는 주체가 대상을 인식하고 교섭하는 특징적인 면모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백악시단의 ‘진시’는 창작에 있어 천부(天賦)의 상태로 수양된 주체가 대상의 진면목을 포착하고 거기서 발현된 정감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악시단이 자신들의 일상을 형상화한 시편들은 그들의 일상이 어떤 특징을 보이며, 그들의 ‘진시’가 어떤 지향을 보이는지 살펴볼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일상을 형상화한 작품들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발견되는 모습 중의 하나는 바로 ‘고요[靜]’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아래 김창흡의 시를 보자.
新春雲雪半陰晴 | 새 봄 되자 눈과 구름에 맑고 흐린 것이 반반 |
山欲開顔澗有聲 | 산이 얼굴 열려 하자 시내에는 졸졸 물소리. |
杖屧平臯舒局促 | 막대 짚고 야트막한 언덕에 가 답답한 마음 펼쳐보고 |
圖書小閣納昭明 | 도서 갖춘 작은 집엔 밝은 햇살도 들여 본단다. |
扶衰實荷陽和力 | 쇠한 이 몸 부지함은 실로 따뜻한 봄기운 덕이건만 |
處靜猶慚妙道行 | 고요히 살면서도 깊은 도를 실천 못해 부끄럽구나. |
筆硯未焚花鳥逼 | 붓과 벼루 못 태웠는데 꽃과 새가 다가오니 |
恐因吟哢杜權輕 | 시로 인해 두권(杜權)이 가벼워질까 걱정이구나. |
「순행이 보내온 시의 운자를 따라 짓고 다시 보내다[次純行寄來韻却寄]」, 金昌翕, 『三淵集』 권16
이 시는 김창흡에게는 족손이 되는 김시보의 아들 김순행에게 보낸 시로 김창흡이 영위했던 일상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작가는 겨울과 봄의 전환점에서 절서의 변화를 체인하고 있다. 새봄을 맞아 좁은 국량을 펴기 위해 가벼운 산책에 나서기도 하고, 서재의 문을 열어 봄날의 햇살을 들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김창흡은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김창흡은 경련에서 자신은 천지운행의 도움만 받을 뿐, 고요히 살면서도[處靜] 정작 천지운행의 묘리를 체인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며 반성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처정(處靜)’이 표피적인 상태에 머무른 채, 더 깊은 차원으로 고양되지 못함을 반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성은 미련으로 이어진다. 붓과 벼루를 태운다는 것은 『진서(晉書)』 「육기전(陸機傳)」에서 육기(陸機)의 빼어난 필력(筆力)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機天才秀逸, 辭藻宏麗, 張華嘗謂之曰: ‘人之爲文, 常恨才少, 而子更患其多.’ 弟雲嘗與書曰: ‘君苗見兄文, 輒欲燒其筆硯. -『晉書』 권54 「陸機傳」】, 여기서는 김창흡 자신의 필력이 육기에 못 미치니 붓과 벼루를 태워야 마땅하지만 아직 그러지 못했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권(杜權)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로【子之先生遇我也,有瘳矣,全然有生矣,吾見其杜權矣.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 닫혀서 막힌 가운데 진행되는 변화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아직 겨울인 듯하면서도 약동하는 봄의 기운, 즉 천지운행의 묘리를 가리킨다. 김창흡은 미련에서 이제 봄이 완연해져 꽃이 피고 새가 울면, 육기만한 재주도 없이 시나 읊조리면서 이 천지운행의 묘리를 가볍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경계를 표현하였다.
이 시의 핵심적 의사는 고요하게 살면서[處靜] 우주 질서의 원리를 체인하겠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정(處靜)은 내면의 정신적 고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백악시단이 일상을 형상화한 시편들을 살펴보면 홀로 있거나, 문을 닫은 채거나, 시간으로는 새벽에 지어진 시들이 많은데, 이것은 그들이 일상에서 고요[靜]를 대단히 중요한 가치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정(處靜)한 일상은 어떤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인가?
주자(周子)는 “성인은 중정인의(中正仁義)로써 만사(萬事)를 안정시키고, 고요함을 주로 삼아[主靜] 사람의 모범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성인은 천지와 덕을 함께 하시며, 일월과 그 밝음을 함께 하시며, 사계절과 그 질서를 함께 하시며, 귀신과 그 길흉을 함께 하신다[聖人定之以中正仁義, 而主靜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近思錄』 권1].”고 하였다. 그리고 주자(周子)의 이 말을 풀이하면서 주자(朱子)는 “고요[靜]는 성(誠)의 회복이요 성(性)의 참모습이다. 진실로 이 마음이 적연(寂然)하여 사욕 없이 고요[靜]하지 않다면, 어떻게 사물의 변화에 대응하여 천하의 움직임을 하나로 통일할 수 있겠는가[“然靜者, 誠之復而性之眞也. 苟非此心寂然無欲而靜, 則亦何以酬酢事物之變而一天下之動哉? 故聖人中正仁義動靜周流, 而其動也必主乎靜. -같은 글”. 번역은 이광호 역주, 『근사록 집해·1』. 아카넷, 2013 참조.]?”라고 하였다. 핵심적인 뜻을 간추려보면, 정(靜)은 현상적 존재로부터 본원적 이치를 마주할 수 있는 인식 주체의 내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김창흡이 시를 통해 부끄럽다며 스스로를 경계한 뜻은 결국 외형적 처정(處靜)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靜)의 경지에 오를 것을 다짐하는 것이 된다. 정(靜)을 중시하는 태도는 김창흡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래 김시보의 글 또한 정(靜)을 중시하는 인식을 보여준다.
무릇 마음이 안정[定]되면 고요[靜]해지고 고요해지면 비는[虛] 것, 이것은 그 이치가 그러하다. 청허재(靜虛齋)란 호칭은 처음부터 거처의 그윽함에서 취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젊었을 적, 지친(至親)들을 따라 운록(雲麓)에서 노닐 적에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평소부터 고요함을 좋아한다 하였더니 백씨(伯氏, 金時傑)가 ‘정(靜)’으로 내 집을 명명해주고 또한 ‘허(虛)’자도 내려주셨다. 이에 삼연께서 대단히 좋다 여기시고는 정허(靜虛)란 이름을 돌아보며 의(義)를 생각하도록 힘쓰라 당부하셨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 오십여 세에, 말할 만한 조금의 실효도 없으니 외딴 거처에서의 탄식이 어떻겠는가! 그 사이 개석장(介石莊)이 있는 호서(湖西)에서 한가로이 거처할 적에 운록(雲麓)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마침내 ‘청허(靜虛)’라는 이름으로 재(齋)에 편액(扁額)하니 흡족하기는 이를 데 없지만 누구와 더불어 이 의(義)를 강구하고 밝힐 것인가? 아! 정자(程子)께서 마음의 허(虛)에 대해 논하셨고 주자(周子)께는 주정(主靜)의 설(說)이 있으며 주선생(朱先生) 또한 그것을 상세하게 논하였으니 그 공력을 쓴 바를 가히 알 수 있다. 허나 나는 늙고 병들었구나! 만사(萬事)가 모두 그치려 하는데 그래도 고요[靜]를 익숙히 하고 그 허(虛)를 온전히 하여 허(虛)로써 천리(天理)를 완미(玩味)하는 것을 하루의 공부로 책임지우는 것, 그것은 그래도 가(可)할 것인저! 갑진년(1724) 10월 임오일에 쓰다.
夫心定則靜, 靜則虗, 卽其理然也. 是號也, 初非取其居之幽廓也. 余少也, 從懿親遊於雲麓, 各言其志, 而余素喜靜, 故伯氏以靜命余齋, 而又錫虗字, 三淵亟嗟賞, 勖以顧名思義矣. 乃今五十餘年, 無寸效之可言, 則窮廬之歎何如哉! 間居閒于介石之湖, 追記前事, 遂用是扁齋, 而賞心盡矣, 誰與講明斯義乎? 噫! 程子論心之虗, 而周子有主靜之說, 朱先生亦論之詳, 則其所用功可知也. 而吾老且病矣! 萬事都休, 然且習靜而全其虗, 虗以玩理, 責其一日之功, 庶或其可歟! 甲辰陽月壬午書. -金時保, 『茅洲集』 권9 「靜虗齋記」
백씨(伯氏) 김시걸(金時傑)이 지어 준 ‘청허(靜虛)’란 재명(齋名)을 김시보가 만년에 충청도 광천의 모도(茅島)에 물러나 살면서 그 의미를 되새긴 글이다. 김시보는 이 글에서 마음이 정(靜)해져야 허(虛)할 수 있으며 마음이 허(虛)해야 천리(天理)를 완미(玩味)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앞서 본 주자(周子)와 주자(朱子)의 견해를 따르는 것으로 글 가운데서도 이 사실을 밝혔다. 요컨대 김시보의 일상은 성리학적 세계 인식과 수양론 위에서 영위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여 노년의 자신도 처정(處靜), 전허(全虛), 완리(玩理)하는 삶을 살리라 다짐하였다. 여기서도 정(靜)이란 곧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됨을 확인할 수 있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처정(處靜)의 상태에서 자신들이 마주한 경물을 통해 본원적 이치를 탐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자세를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공유하고 있었음은 다음 시에 잘 드러나 있다.
병자년(1696) 섣달 보름 뒤에 나는 석실서원의 강당에서 중형[金昌協]을 모시고 여러 선비들과 초의 심지를 잘라가며 경전을 담론하였다. 이틀을 묵고 장차 돌아가려는데 하늘에서 대설이 내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하루 밤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오경에 졸고 있는데 창가에 하얀 빛이 비치고 소리가 이부자리에 스미는 것을 느끼고 마침내 나가 사방을 조망하였다. 눈과 구름이 아득하여 내인지 땅인지 모르겠고 밤기운과 새벽빛이 쌓인 눈 위에 충막(冲漠)한데 담연히 맑고도 빛났다. 내가 드디어 기둥을 두드리며 기이하다 감탄하니 재방(齋房)의 여러 군자들이 모두 책 읽기를 그만 두고 나와 모여들었다. 엄숙하게 옷을 여미고 동쪽을 향해 오래도록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서 바라보는데 이윽고 한 줄기 빛나는 기운이 덕포에서 불쑥 솟구쳐 양쪽 기슭으로 스며들면서 대양처럼 평평해졌다. 구산(龜山)이 그 사이에서 일렁이며 여러 차례 삼켜지고 뱉어지니 광경의 황홀함이 마치 여기에서 다 할 듯하면서도 아직도 미진함이 있는 듯하였다. 멀리 동쪽이 열리면서 서서히 햇무리를 보내자 이슬 같은 물기는 붉은 빛을 머금고 물결은 가늘게 주름지며 지는 달은 환히 빛났다. 서쪽 행랑과의 거리가 백여 척쯤인데 찬 광채가 더욱 사람을 쏘다가 섬돌을 따라 내려와 빈 정자를 빙 돌더니 다시 처음 보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잠깐 사이에 묘경(妙景)의 변태(變態)가 서로 이어지며 마치 서로 허여한 듯하였다. 조카 숭겸이 한쪽에 있다가 “용면(龍眠, 李公麟)의 솜씨로도 이것을 묘사하긴 어렵겠지요.”라고 하길래, 나는 “어찌 그리기만 어렵겠느냐? 고금의 시인들 또한 그 광경에 일구(一句)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고요함을 지켜 허명해지길 기다려야만 가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마침내 배회하다 아쉽게도 그만 두었다. 여기에 와서 몇 수의 시를 얻어 지난 종적을 기록하였지만 유독 이 한 장면을 빠뜨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송백당(松栢堂)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고요히 누우니 아직도 맑은 기운이 마음을 통철(洞澈)하게 하는데 이전의 광경과 서로 유전(流轉)하여 없앨 수가 없었다. 마침내 남은 맑음을 즐기며 오언율시 한 수를 지었다. 그 기이함과 맑음을 묘사한다는 것은 만부당한 줄 알지만 한번 중씨의 자리에 삼가 올려 가르침을 구한다. 문채 있는 여러 군자들과 나와 함께 새벽 경치를 본 자들도 이것을 이어 화답해도 좋다. 시를 주고받으며 전의 경지를 늦게라도 풀어내어 이 청명함을 마음에 보존시키고 그 깨끗함을 고결한 인품에 모을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나의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이 어찌 백설가(白雪歌)를 상화(相和)하자는 것이겠는가? 곧 야기(夜氣)의 강설(講說)이기 때문이다!
丙子臈月之望後, 余往侍仲氏於石室之講堂, 兼與諸章甫, 剪燭談經. 信宿而將返, 則天下大雪, 乃爲所維縶, 因加留一夕焉. 五更睡間, 覺窓有白光, 韻透衾枕. 遂出而四望, 雪雲浩渺, 不分川陸, 夜氣曙色沖漠於積素之上, 而湛然澄且瑩也. 余遂扣楹稱奇, 則齋房諸君子皆輟讀來集. 儼然整襟, 東向而不瞬者良久, 俄有一道英英之氣滃然起自德浦, 浸滛乎兩岸而大瀛平焉. 龜山漾漾其間, 屢被其呑吐, 光景之幻若將窮於此而猶有未也. 遠東啓矣, 冉冉送暈, 沆瀣含赤, 洲渚微皺, 落月炯炯. 距西廂可百餘尺, 冷彩益射人, 循除而降, 步匝廣亭, 復歸於初縱目處, 盖須臾之間, 妙景之變態相嬗有如許者. 崇姪在隅曰: ‘雖龍眠之善畫, 殆難描此.’ 余曰: ‘豈惟難畫? 今古詩人亦難措一句於其間. 惟有靜挹而虗待爲可耳.’ 遂徊徨悵然而罷. 來時雖留得若干篇什, 以紀過從, 而獨以漏此一段爲耿耿也. 盖歸松栢堂, 閉戶靜卧, 猶覺有沁沁澄灝之氣 洞澈心肝, 與前際相流轉而不可泯遣也. 遂吟弄餘淸, 賦得五言律一首. 極知其於描奇寫淸萬一無當, 而試爲呈浼於仲氏席下以求敎焉. 斐然諸君子、凡同我曉望者亦不妨續此而和之也. 和來唱去, 因得追繹前境, 以存此淸明於靈㙜, 會其灑落於氷壺, 亦是一事. 斯豈白雪之相和歟? 乃夜氣之講說也! -金昌翕, 『三淵集拾遺』 권5
夜氣含冲漠 晨光渺合分 | 밤기운이 충막(冲漠)함을 머금더니 새벽빛이 아득하게 분합(分合)하누나. |
忽焉江變海 終是雪和雲 | 홀연 강이 바다로 변했나 싶었더니 끝내 눈과 구름이 엉긴 것. |
月岸輝輝動 風灘遠遠聞 | 달빛 아래 강가 언덕 반짝반짝 일렁이고 바람 부는 여울 소리 저 멀리서 들려오네. |
森羅講堂下 天不隱諸君 | 강당 아래 펼쳐진 삼라만상은 하늘이 그대들에게 숨기지 않으신 것이라네. |
김창흡의 이 시는 1696년에 지어진 것이다. 1696년은 기사환국(1689년)으로 몰락했던 노론이 갑술환국(1694)을 통해 신원, 복권된 시점이다. 이 시기에 김창협은 석실서원에서 강학을 재개하였고, 김창흡은 송백당과 석실서원을 오가면서 김창협과 함께 강학을 이끌었다. 김창흡의 이러한 행보는 기사년 이후 뜻을 두었던 성리학【信謙又問曰: ‘專意濂洛諸書, 始自何年?’ 曰: ‘己巳以後, 却專意四書.’ -金昌翕, 『三淵集拾遺』 권31「語錄」】이 서서히 학문적 심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석실서원의 강학 재개는 후배 문인들에게는 학문적 구심점이 다시 마련되었음을 의미했다. 백악시단의 문인들 가운데 이병연과 이병성은 재개된 강학을 통해 김창협, 김창흡과 사제의 의리를 맺게 되었다. 나머지 문인들의 경우, 재개된 석실 강학에 참여했는지 불분명하지만, 이 강학을 계기로 이병연 형제는 서울로 이사하게 되었고, 서울로 이사한 뒤로는 정용하, 권섭, 심봉의, 김상리 등 후기 백악시단의 주요 구성원들과 망형지교를 맺게 되었다. 이렇듯 1696년은 변화된 정치 상황 속에서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궁구하던 시기였으며, 후기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결집하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시점이다. 위 시는 재개된 석실 강학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443字로 이루어진 긴 제목은 대설(大雪)이 내린 새벽에 맞이한 일출 광경의 이미지와 이지적 흥취가 선명하게 표현된 한 편의 기문이라 할 수 있다. 김창흡이 섬세하게 묘사한 눈빛과 햇무리의 신비로운 조화는 곧 특별하게 노출된 하늘의 기밀, 즉 천기(天機)이다. 김창흡은 밤기운과 새벽빛이 눈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충막(冲漠)’이라 형용하였는데, 충막(冲漠)은 만물 발생 이전의 본원적 천리(天理)의 상태를 의미하는 충막무짐(冲漠無朕)【冲漠無朕, 萬象森然已具. 未應不是先, 已應不是後. -『近思錄』 권1】327)에 근거한 표현이다. 야기(夜氣)와 서색(瑞色)이 대설(大雪)과 엉겨 분명하지 않은 모습에서 태초의 홍몽(鴻濛)을 떠올리고 그 홍몽을 가능케 한 본연지리(本然之理)를 추찰(推察)하고 있기 때문이다. 폭설이라는 특별한 자연현상이 빚어낸 새벽 경관의 묘(妙, 天機)에서 김창흡은 오묘한 천리를 체인하게 된다. 천기와 조우하여 얻은 마음의 상태를 ‘통철(洞澈)’로 형용한 것이 체인을 상태를 보여준다. 통철(洞澈)은 태초의 인간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마음의 상태로【榦曰: ‘竊嘗思之, 天地間萬物之生, 莫非氣之所爲, 而唯人也得其氣之秀, 人之一身, 五臟百骸莫非氣之所成, 而唯心也尤是氣之秀. 是故其爲物 自然虛靈洞澈, 而於其所具之理, 無所蔽隔. 然則所謂虛靈者, 只是稟氣淸明故也, 不是理與氣合然後方爲虛靈. 今且將自家去體察吾心, 一時間身氣淸爽, 則心便惺惺, 一時怠惰了, 便昏昏. 此處亦見心之虛靈是氣.’ 先生曰: ‘然. 故栗谷先生嘗以心爲氣.’ -宋時烈, 『宋子大全』 「附錄」권15 「語錄·2」】 미발시의 ‘허령불매(虛靈不昧)’, ‘허명정일(虛明靜一)’과 통하는 말이다. 즉, 김창흡은 눈 내린 새벽이 선사한 천기와 조우함으로써 미발의 마음 상태로 고양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제목에 담긴 내용은 단지 눈 내린 새벽의 서정을 표현한 데 그치지 않는다. 단지 그런 서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긴 제목을 붙일 필요가 없다. 김창흡이 443자나 되는 긴 제목을 통해 자신이 본 경관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은 자신이 천기와 조우하여 체인한 바, 말로 형언하긴 어렵지만 그 오묘한 깨달음을 강학했던 동학들, 그리고 강호의 여러 현사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김창흡은 글의 마지막에 자신의 상화(相和) 제안을 두고 “이 어찌 백설가(白雪歌)를 상화(相和)하자는 것이겠는가? 이것은 곧 야기(夜氣)의 강설(講說)이다!”라며 역설(力說)했던 것이다. 곧 김창흡의 상화(相和) 제안은 백설가(白雪歌)처럼 심오한 뜻으로 화창하기 곤란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야기(夜氣)의 ‘강설(講說)’이기 때문에 함께 ‘추역(追繹)’하여 그 경지를 공유하자는 취지였던 것이다【백설가는 따라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말한다. “客有歌於郢中者, 其始曰下里巴人, 國中屬而和者數千人; 其爲陽阿薤露, 國中屬而和者數百人; 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數十人. 引商刻羽, 雜以流徵, 國中屬而和者不過數人而已. 是其曲彌高, 其和彌寡. -『文選』 권23 「對楚王問[宋玉]」” 본고는 ‘斯豈白雪之相和歟?’의 ‘白雪’을 백설가로 보았다. 김창흡의 상화 제안이 상대방에게 곤란함을 주려는 게 아니고 함께 이치를 궁구해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시된 시의 경련까지는 자신이 조우한 천기를 형사한 것이다. 형사된 내용은 제목에서 상세하게 밝힌 바를 요약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시의 묘미는 미련에 있다. 김창흡은 미련을 통해, 삼라만상의 특별한 이치[천기]가 자신들의 강학 공간에 펼쳐진 것은, 천리를 체인하라는 하늘의 특별한 배려니 이것을 함께 궁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는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자신들의 눈앞에 현현된 경물을 어떤 입장에서 감수했던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처정(處靜)을 중시하는 태도는 그들의 천기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처정(處靜)과 천기(天機) 인식의 관계는 다음 김창흡의 시에 명징하게 드러나 있다.
荏苒芳華事 猶殘小圃春 | 고운 꽃 핀 봄날 풍경 사라지는데 작은 밭엔 봄이 아직 남아있구나. |
愁中紅日駐 睡起綠陰新 | 시름할 땐 붉은 태양 꼼짝 안더니 자고 나니 녹음이 싱그럽구나. |
樊竹通雞逕 蔬花化蝶身 | 대밭엔 닭이 다녀 길이 생겼고 배추꽃엔 나비가 알을 붙였네. |
靜看機出入 忘却我爲人 | 고요 속에 천기(天機)의 출입을 보다가 내 자신이 사람인 줄도 잊게 되었네. |
「십구 일에[十九日]」, 金昌翕, 『三淵集』 권4
김창흡은 ‘고요 속에 천기의 출입을 본다[靜看機出入]’고 하였다. 김창흡이 본 천기의 출입은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만물의 교체, 변화상이었다. 겨울을 이겨낸 씨앗이 고운 꽃으로 피었다가 다시 스러지고, 진 꽃을 대신하여 왕성한 생명활동이 또다시 나타난다. 경련에 제시된 모습이 꽃을 대신하여 펼쳐진 생명활동의 현장인데, 대밭으로 길을 낼 만치 분주한 닭의 발걸음은 여름으로 접어드는 대밭의 왕성한 생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나비는 배추꽃에 생명의 씨앗을 붙였다. 미련에서 김창흡은 이렇듯 생장소멸(生長消滅)하는 만물의 조화를 보노라니 자신이 사람인 줄도 잊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천기와의 조우를 통해 김창흡의 정신이 망아(忘我)의 경지로까지 고양되었음을 말한다. 김창흡의 이 시는 일상의 범상한 경물 속에서 유행불식(流行不息)하는 천리(天理)를 체인한 작품으로 백악시단의 시론인 천기론을 실천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김창흡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경물 속에서 천기(天機)를 조우하고 천리(天理) 체인의 이취(理趣)를 노래하는 모습은 다음 두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長夏林亭興不違 | 긴 여름 숲 속 정자 흥이 아직 남았는데 |
苔深一尺客來稀 | 객들이 찾지 않아 이끼가 한 자나 자랐네. |
薄雲漏日纔成映 | 얇은 구름 햇살 새어 이제 막 비추는데 |
細雨隨風忽作霏 | 가랑비가 바람 따라 갑작스레 뿌려지네. |
鬪巧蜘蛛空裡颺 | 솜씨 자랑하던 거미는 허공 속에 흔들리고 |
試輕蝴蝶草間飛 | 경쾌함을 시험하던 나비도 풀 사이로 날아드네. |
閑中物理看親切 | 한가한 가운데 물리(物理)의 친절(親切)함을 보게 될지니 |
已向頭頭括妙機 | 만물마다 오묘한 천기(天機) 담겨있구나. |
「어느 여름날에 있은 일[夏日卽事]」, 李夏坤, 『頭陀草』책6
蓬頭短褐爾云誰 | 짧은 갈옷, 봉두난발 너는 누구냐? |
盡日終宵何事爲 | 날 가도록 밤새도록 무얼 하느냐? |
獨立頹階叢竹外 | 대밭 저 편 낡은 계단에 홀로 섰더니 |
午來風雨長新枝 | 낮이 되자 비바람에 새 가지가 쑥 자랐네. |
「홀로 서서[獨立]」, 權燮, 『玉所稿』 「詩·9」
이하곤과 권섭의 시 두 편을 보였다. 두 시는 천기와 조우하는 장면을 형상화함에 있어 말하기와 보여주기라는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하였다. 먼저, 이하곤의 작품을 보자. 이하곤이 일상에서 목도한 장면은, 여우비가 내린 어느 여름날의 일이었다. 구름 사이로 환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바람을 타고 가랑비가 뿌려진다. 그러자 날이 갠 줄 알고 공교로운 솜씨로 집을 짓던 거미는 거미줄에 달라붙은 채 바람에 흔들리고, 경쾌한 비행을 시험하던 나비들도 비를 피해 풀숲으로 날아든다. 여우비와 그로 인해 벌어진 거미와 나비의 모습, 이것이 이하곤이 조우한 천기이다. 그리고 미련에서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경물마다 오묘한 천리(天理)가 천기(天機)를 통해 유로되고 있음을 말하였다.
권섭의 작품은 자문자답의 형식을 빌어 천기와 조우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봉두난발에 댕강한 옷을 걸친 사람은 화자 자신이다. 이러한 모습은 실제의 것일 수도 있지만, 일체의 속박을 벗어난 일사(逸士)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종일토록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이렇게 시의 전반부를 통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 화자는 시의 후반부에 답을 제시하였다. 그 사람은 대밭을 관조하고 있다. 대밭을 관조하고 있노라니 홀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쏟아진다. 그리고 비에 씻겨 청신해진 대나무에는 어느새 새 가지가 쑥 자라나 있다. 화자는 바로 관조를 통해 생명의 활기(活氣)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에는 천기와 천리와 같은 관념어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럼에도 시를 읽으면 작가의 의사가 비 갠 뒤의 청신한 경물을 말하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권섭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활발(活潑)한 생명력의 신비요, 생명의 조화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적 화자의 몰입은 일종의 이지적이고 심미적인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권섭은 시적 화자의 행위와 경물의 모습만으로 작가의 깊은 깨달음과 이취(理趣)를 표현함은 물론 깊은 여운까지 담아내었다.
우리는 두 작품을 통해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처정(處靜)하여 경물을 마주할 때면 포착된 경물을 매개로 본원적 사유를 전개하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일상 속의 경물을 감각적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시작(詩作)을 경계하여 김시민은 심봉의에게 보낸 시에서 “군자는 원래 독실하게 수신(修身)하고, 성현은 스스로 타고난 성[成性]을 보존하네. 우리들은 가소롭게도 마음을 허비하여, 눈 속의 달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꽃만 부질없이 읊고 있구려[君子修身元慥慥, 聖賢成性自存存. 吾儕可笑心虛用, 雪月風花漫浪言].”【金時敏, 『東圃集』 권5 「三疊示沈聖韶」의 경련과 미련.】라며 그저 경물의 흥취나 노래하지 말고 수양에 힘쓸 것을 다짐하였다. 또한 김창흡의 「갈역잡영(葛驛雜詠)」을 읽고서는 “이치를 밝히심은 주역을 보신 뒤에 깊어지셨고, 마음을 쓰시기는 산에 계셨을 때가 많으셨지. 눈 속의 달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꽃은 공안(公案)이 아니었음을, 갈역(葛驛)서 지은 여러 시편 읽고서 비로소 알게 되었네[燭理深於觀易後, 用心多在處山時. 風花雪月非公案, 葛驛諸篇讀始知].”【金時敏, 『東圃集』 권5 「再疊閱葛驛雜詠」의 경련과 미련.】라고 하면서 경물의 흥취를 넘어 고도의 사유까지 겸비한 김창흡의 시를 본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높은 정신성을 중시하는 작시 태도가 경물을 통해 얻게 되는 심미적 흥취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섬세한 포착을 통한 심미적 흥취에 심오한 정신적 이취(理趣)를 아우르는 것, 이것이 백악시단의 ‘진시’가 추구하던 방향이었다. 그런 까닭에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작시에 있어 높은 정신성을 강조하면서도 대상 경물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래 김창흡의 시를 예로 심미성과 정신성의 결합 양상을 확인해 보기로 한다.
呀作淸池廣 涵來遠嶺奇 | 우묵하게 파놓으니 맑은 못 참으로 넓어 젖어 들어온 먼 산봉우리 참으로 기이한데 |
魚潛雲影住 燕掠浪花隨 | 물고기가 물에 들자 구름 그림자 머무르고 제비가 스치자 물보라가 따른다. |
우연히 삼연 어른신의 「대지(大池)」란 작품을 보고는 그 기이한 곳을 깨달았습니다. ‘우묵하게 파놓으니 맑은 못 참으로 넓다’는 것은 체(體)요, ‘젖어 들어온 먼 산봉우리 기이하다’는 것은 용(用)이며, ‘물고기가 물에 들자 구름 그림자 머무른다’는 것은 정(靜)이요, ‘제비가 스치자 물보라가 따른다’는 것은 동(動)입니다. 한 편의 시 속에 체용(體用)과 동정(動靜)을 동시에 갖추었으니 이는 지금껏 시인들에겐 없었던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이 작품을 전에 이렇게 보셨는지요?
偶見淵丈大池詩, 益覺其奇處. 其曰‘呀作淸池廣’, 卽體也; 其曰‘涵來遠嶺奇’, 卽用也; 其曰‘魚潛雲影住’, 卽靜也; 其曰‘燕掠浪花隨’, 卽動也. 一詩中兼具體用、動靜, 此從古詩人之所無. 未知亦嘗如此看否? -申靖夏, 『恕菴集』 권8 「與金進士」
인용문에서 시의 형식을 갖추어 제시한 작품은 김창흡의 문집에는 남아있지 않다. 이 시는 신정하가 김창흡의 「대지(大池)」를 비평하는 편지 속에 소개된 작품이다. 신정하의 이 편지글은 이들의 독시(讀詩) 방식과 관련하여 좋은 참조가 된다. 신정하는 봄날 연못의 풍경을 섬세하게 형상화한 시구에서 체용(體用)과 동정(動靜)이라는 철리적(哲理的) 사유를 읽어내고 있다. 김창흡은 지금 자그마한 연못을 바라보고 있다. 한가로이 연못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안에는 저 먼 산도 와서 담겨있고 드넓은 하늘도 담겨있다. 신정하의 말대로 연못과 산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산은 못을 매개로 자신을 드러내었으니 못은 곧 체(體)가 되며 도영(倒影)된 산봉우리는 못이 드러낸 하나의 상이 되니 곧 체(體)의 용(用)이다.
후반부는 산과 못이 어우러진 하나의 세계, 그 속에서 일어난 변화의 상을 그렸다. 수면에 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물고기와 수면을 스치며 날아가는 제비는 연못으로 표상된 우주의 또 다른 존재들이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물고기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구름이 고요히 떠있는 모습은 신정하의 말처럼 동(動)에서 정(靜)으로의 변화를 말하고 제비가 물을 스치자 물보라가 이는 모습은 정(靜)에서 동(動)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김창흡이 이처럼 동(動)과 정(靜)의 무한한 순환을 연속적으로 형상화한 것은 유행불식(流行不息)하는 천리(天理)와 만유의 존재양태에 대한 김창흡의 깊은 이해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은 이 작품은 작가가 관조한 하나의 경관 속에 성리학적 우주 인식, 존재 인식을 담아낸 대단히 철리적(哲理的)이고 이지적(理智的)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성취는 심오한 사변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에 그려진 모습들을 다시 떠올려보자. 맑은 연못에 산봉우리가 거꾸러져 잠겨있고, 물고기는 자유로이 헤엄치며, 구름은 한가로이 떠있다. 그리고 제비가 경쾌하게 날며 수면을 스치자 물보라가 일어난다. 김창흡이 포착해낸 봄날 연못의 한 장면은 그 자체로 평화롭고 청신한 미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연못을 거울로 삼아 진(眞)과 환(幻)을 역전시킨 ― 제비의 하강은 기실 연못을 하늘로 알고 날아오르는 것이다 ― 결구는 이 시의 심미성이 빛나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정신성과 심미성을 하나의 작품 속에 수준 높게 용융시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창흡이 보인 이와 같은 성취는 공히 이치를 드러내고자 했지만 대상보다는 이치를 밝히는데 주력했던 전대 도학자들의 시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도학자들의 시를 일괄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도학자들의 시는 대체로 자기 의사가 주가 되어 대상이 종속적으로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는 가야산을 조망하며 쓴 「숙야재망야산(夙夜齋望倻山)」라는 시에서, “몸과 얼굴을 다 드러내지 않고, 어렴풋이 한 귀퉁이만 내어놓았네. 이제 조화(造化)의 뜻을 알겠거니, 천기(天機)를 다 드러내려 않으신 게지[未出全身面, 微呈一角奇. 方知造化意, 不欲露天機. -鄭逑, 『寒岡集』 권1].”라고 하였다. 이 시에 대해 송준호는 산의 전체는 하늘의 도, 하늘의 마음을 함묵하고 있는 심의적(心意的) 존재이며, 시적 주체는 그런 산을 통해 생장소멸, 유행불식(流行不息)하는 정대(正大)한 천리(天理)를 체인하고 그 경외감으로 “불욕로천기(不欲露天機)”라 읊었다고 하였다.(송준호, 「寒岡 鄭逑의 詩文學에 대하여-거울로서의 詩-」, 『東方漢文學』제10집, 1994), 38~40면.) 이 시를 통해 우리는 대상 경물 속에서 천지운행(天地運行)의 묘(妙)를 읽어내는 작자의 구도적(求道的) 자세와 경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작자의 느낀 바와 의도한 바가 철학적 사유를 드러내는 데 맞추어져 있어 가야산과 구름 등 그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현실적 경물들은 시 속에서 그 자체로서의 의의가 현저하게 약화되어 존재한다. 그에 비해 김창흡의 시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경물 자체가 지닌 심미적 형상 또한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김창흡의 이 작품은 백악시단이 일상에서의 이지적 흥취를 형상화한 작품을 감상할 때 하나의 지침이 된다. 곧,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을 읽으면서 동시에 형상화 이면에 저류하는 작가의 정신성까지 감지할 때 백악시단의 ‘진시’는 그 실상을 온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일상의 이취(理趣)를 형상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관조(觀照)였다. 백악시단이 일상을 영위하며 관조를 중시하는 태도는 산수 유람을 하면서도 산을 오래도록 집중해서 봐야한다고 강조하던, 즉 시적 대상의 의의를 중시하던 창작논리가 자신들의 일상에서도 여전히 관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이러한 관조를 통해 작품 안에 심미성과 정신성을 아우를 수 있었다. 다음 김창업(金昌業)의 시는 관조의 모습과 관조의 결과가 어떤 형상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石梁俯小池 楓陰水常靜 | 돌다리에서 작은 못을 굽어보니 붉은 단풍 그늘 속에 물은 늘 고요한데 |
鯈魚戱從容 故觸丹書影 | 피라미란 놈 조용함을 희롱하여 짐짓 붉은 글씨 그림자를 건드리누나. |
「작은 못에 호미를 씻으려다[洗鋤小池]」, 金昌業, 『老稼齋集』 권2
寒房掩卷坐如癡 | 찬 방에서 책을 덮고 천치(天癡)처럼 멍하니 앉아 |
靜看窓欞日影移 | 고요히 바라보니 창문으로 해 그림자가 옮겨간다. |
羣雀每憎傷我稼 | 참새란 놈 내 곡식 망칠 적엔 매번 얄밉더니 |
却憐簷外凍相依 | 도리어 안쓰럽구나, 꽁꽁 언 채 처마 끝에서 기대 있으니 |
「홀로 앉아서[獨坐]」, 金昌業, 『老稼齋集』 권3
김창업은 지금의 성북구 장위동 인근의 송계(松溪)에 동장(東庄)을 마련하고 37세 이후로 생을 마칠 때까지 동장(東庄)에서 은거를 실천한 인물이다. ‘노가재(老稼齋)’란 호가 보여주듯 그는 평생을 농부로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동장에 마련한 석뢰정(釋耒亭), 출거문(出耟門), 음독교(飮犢橋), 세서대(洗鋤臺)와 같은 건물명이 말해주듯, 그의 은거는 ‘농(農)’을 이상적으로 포장한 낭만적 은거가 아니었다. 스스로 농사를 짓고 아이들에게 쟁기 끄는 법을 가르쳤으며 농서를 지어 자손들이 대대로 농부로 살길 희망하였을【爲稼不知老, 高齋卧兀如. 眼看驅雀兒, 今年已把犂.(其一) 學稼須學拙, 此道老始知. 思欲著一書, 丁寧遺我兒.(其二) -金昌業, 『老稼齋集』 「老稼齋」】 만큼 그에게 농부로서의 삶은 참된 인간성을 실천해 갈 수 있는 하나의 자구책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가은(稼隱)’은 김창흡의 ‘산수은(山水隱)’, 이병연의 ‘리은(吏隱)’과는 또 다른 성격의 삶이었다【김창업의 동장(東庄) 경영과 문학에 대해서는 구본현의 「老稼齋 金昌業의 東庄에 대하여」 『退溪學論叢』제14집, 2008 참조.】. 김창업은 이곳 동장(東庄)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일상을 영위하였다. 인용된 두 편의 시는 모두 송계(松溪)의 동장(東庄)에서 지어진 작품들이다. 김창업은 농사를 마치고 나면 처정(處靜)하여 일상의 경물들을 관조하였는데, 그러한 관조를 통해 대단히 섬세하고 사실적인 풍광들을 포착해 내었다.
첫 번째 시는 관조량(觀鯈梁)이라 이름 붙인 돌다리에서 관조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그는 농사를 마치고 작은 연못에 호미를 씻으려 했던 듯하다. 호미를 씻으러 못에 내려가기 전에 그는 관조량(觀鯈梁)에서 연못을 관조하였다. 바라본 연못에는 가을을 맞아 붉게 물든 단풍이 고요한 수면을 수놓고 피라미들은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고요히 관조하던 작가는 섬세한 장면 하나를 포착하게 된다. 그가 포착한 장면은 피라미들이 붉게 비친 글자를 톡톡 건드리듯 스치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포착한 작가는 여기에 절묘한 생각을 붙였다. 단서(丹書)가 곧 돌다리에 새긴 ‘관조량(觀鯈梁)’이란 글자임을 염두에 두면, 피라미들이 일부러 ‘관조량(觀鯈梁)’이란 글자를 스치며 글자를 흐리는 것은 곧 ‘뭘 봐?’라는 심사를 표현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기에 작가는 피라미의 행위를 ‘희(戱)’라고 하였다. 고요한 수면을 조용히 관조하는 작가에게 피라미는 뭘 그리 심각할 것 있냐며 장난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앞서 본 김창흡의 시처럼 작은 연못을 하나의 소우주로 구성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정(靜)과 동(動)의 변환을 통해 존재의 의의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세계 인식이 구현된 작품이다. 그러나 김창업의 인식은 피라미의 장난을 통해 한층 더 심화되어 나타난다. 관어(觀魚)는 성리학자들이 천기를 느끼기 위해 취하는 관습적 행위이다. 김창업이 ‘관조량(觀鯈梁)’이란 이름을 다리에 새긴 것도 아마 그런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의 유영으로 ‘관조량(觀鯈梁)’이란 글자가 흐릿해지는 모습에서 김창업은 자신의 관습적 행위를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성찰은 ‘관조량(觀鯈梁)’이란 글자를 새기고 거기서 물고기를 봐야 천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즉 천기는 물 속 고기만이 아니라 만유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반성적 자각에 이르게 된다. 김창흡이 피라미가 붉은 글자를 건드리는 장면을 ‘고(故)’자를 써가며 시 속에 형상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각을 표현한기 위한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관조를 통해 포착한 섬세한 장면을 통해 청신하고 생생한 장면이 주는 심미적 쾌감과 그 장면에서 느낀 작가의 이지적 흥취를 수준 높게 온축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에도 관조를 통한 대상과의 교감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는 휴경기인 겨울철에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을 덮고 천치(天癡)처럼 멍하게 앉아 사방을 돌아보았다. 여기서 책을 덮고 관조를 행하는 모습은 실제의 행위이면서 이치를 책에서만 구하지 않겠다는 의식적 행위이기도 하다【백악시단의 작품들 가운데는 작가 자신이 마주한 자연이 곧 책이라는 ‘천지자연지문(天地自然之文)’ 혹은 ‘자연경(自然經)’ 의식을 표출한 작품들이 있다. 가령, 홍세태는 「술지(述志)」, 『유하집(柳下集)』 권2에서 “십년을 궁액 속에 허명에 매여, 부끄럽게도 길을 잃고 잘못 살아왔구나. / 요사이 도 속에 묘미 있음을 알아, 점차 몸 밖의 일엔 정을 잊으려 하네. / 갑자기 내린 비에 씻겨 산은 도리어 깨끗해졌고, 뜬 구름 지나가자 물이 비로소 맑아졌네. / 오늘 성현의 책 눈에 가득 들어오니, 어디서부터 나의 성(誠)을 붙여볼까?[十年窮厄坐虛名, 慙恨迷途枉此生. 近向道中知有味, 漸於身外欲忘情. 洗來急雨山還靜, 過盡浮雲水始淸. 今日聖賢書滿眼, 試從何處着吾誠.]”라고 하였는데, 미련의 눈에 가득한 성현의 책[聖賢書滿眼]이란 곧 경련에서 제시된 비에 씻긴 산, 맑아진 물과 같이 청신해진 자연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구에서 “어디서부터 나의 성(誠)을 붙여볼까”라고 한 것이다. 또한 김시민은 「乘舟呼韻」, 『東圃集』 권4이라는 시에서, 배에서 조망한 바다의 모습을 제시한 뒤[又被漁翁起, 乘舟午睡餘. 滄波同泛鳥, 白日見跳魚. 望海帆如簇, 經村樹不疎], 미련에서 “천풍이 수면에서 불어와서, 내 손의 책을 흩날리는구나[天風來水面, 飜我手中書].”라고 하였는데, 천풍이 책을 흩날리는 장면은 자신이 본 자연이 곧 책인데, 문자문(文字文)이 무슨 의미냐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김창업의 책을 덮는 행위가 곧 관조로 이어지는 것도 이러한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김창협은 처정(處靜)의 순간에, “만약 지금처럼 고요히 앉아 있는 기회에 책을 펼쳐 읽는 공부를 줄이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본원을 함양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그 효과가 반드시 독서보다 진일보하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今若因此靜坐, 省却繙閱工夫, 一意致養於本原, 則其效必有進於書者矣. -金昌協, 『農巖集』 권13 「答林德涵」].”라고 하면서 독서를 벗어난 이치 탐색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김창업이 제시한 바보처럼 앉아있는 모습[坐如癡]은 관조가 삼매의 경지에 들었음을 의미한다. 김창업이 해가 지도록 오랫동안 관조한 것은 참새였다. 작가는 참새를 관조하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가을철에 참새들이 애써 지은 곡식들을 따먹을 때는 얄밉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찬 겨울이 되어 먹을 게 없는 참새들이 추위라도 면해보겠다고 처마 끝에 앉아 털을 부풀리고 목을 파묻은 채 서로 기대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시는 겨울철이면 농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적 장면을 형상화하면서 대상과 교감하는 작가의 마음을 정감 있게 담아냈는데, 이러한 성취는 오랜 관조를 통한 대상과의 깊은 교감의 결과였다.
관조를 통해 대상의 진면목을 탐색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物과 我가 하나로 고양되는 물아무간(物我無間)의 이지적 흥취로 고양되었다. 먼저 김창흡의 시부터 살펴보자.
滌池如有待 纖月送飛光 | 정갈한 저 연못 누굴 기다리나 초승달이 한 줄기 빛을 보내네. |
潛魚松檻底 聽我誦詩長 | 숨은 물고기는 솔 난간 아래에서 밤늦도록 시 읊는 소리를 듣나보다. |
「갈역(葛驛)에서 이것저것을 읊다[葛驛雜詠]·102」, 金昌翕, 『三淵集』 권15
경물과 시인의 교감이 작품에 전면화된 시이다. 깨끗한 못에 초승달이 어리는 광경은 누구나 흥을 붙일 만한 호젓하고 운치 있는 광경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절로 시가 터져 나온다. 이 아름답고 조화로운 한밤의 흥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상식의 안쪽일 뿐이다. 마지막 구에 잠자러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 물고기를 두고 시인은 절묘한 상상을 붙였는데 이로써 한밤의 맑은 흥취는 절정에 이른다. 연못과 초승달의 운치 있는 야연(夜宴)에 참석한 시인은 잔치를 빛내기라도 하듯 목을 골라 시를 읊조렸는데 그 소리가 또 너무 좋아 이제는 물고기까지도 이 야연(夜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 구의 상상은 물아일체의 흥을 한 차원 더 높게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밤 시인의 낭송은 물고기가 흥을 붙여 듣는 순간 세속을 초월하고 작위를 넘어선 자연(自然)의 음(音)으로 상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는 한밤에 펼쳐진 맑은 잔치에 시인과 만유가 함께 참여하여 물아의 경계를 허물고 조화의 흥취를 즐기는 장면을 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아래 김시보의 시에도 음악을 매개로 한 물아일체의 경지가 잘 나타나있다.
夜冷霜生竹 樓虗月上琴 | 밤이 차서 서리가 대나무에 엉기고 누대는 비어 달만 거문고 위로 떠오르는데 |
泠然廣灘水 流入大餘音 | 차가운 광탄의 물 대여음(大餘音)으로 흘러드누나. |
「달밤의 거문고 소리[月夜琴韻]」, 金時保, 『茅洲集』 권7
김시보는 거문고에 조예가 있었던 듯하다. 「숙야(肅也)와 함께 거문고를 타다[與肅也鼓琴]」, 『茅洲集』 권7)라는 시에서 “내가 중대엽(中大葉)을 놀리니, 그대는 북전조(北殿操)로 받는구려. 북전(北殿)이 비록 굳세고 높다지만, 나는야 느긋한 소리만 못한 듯하구려[我弄中大葉, 爾受北殿操. 北殿雖激越, 不如緩聲好].”라고 한 것을 보면 조예가 상당했던 듯하다. 이 시에서도 거문고를 매개로 물아(物我)가 하나 되는 경지가 그려져 있다. 대나무에 서리가 엉길 만큼 차가운 밤, 텅 빈 누대에 시인은 거문고를 무릎에 올린 채 앉아있고 마침 달이 떠올랐다. 고요한 밤 사위(四圍)를 울리는 맑고 찬 물소리, 그리고 물소리와 조화(調和)하여 울리는 거문고 소리. 그런 조화를 시인은 차가운 물소리가 거문고의 대여음(大餘音)으로 흘러든다고 하였다. 대여음(大餘音)은 연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악기의 여음을 뜻하는데【무릇 속악에서는 거문고와 생황 등의 악기소리가 노랫가락의 반주가 된다. 3장(章)을 마치면 가창자가 잠시 쉬게 되는데 그 때 악기는 여성(餘聲)을 연주하여 사이를 벌어주니 이것을 중여음(中餘音)이라 한다. 4장과 5장은 또 노래에 맞춰 반주가 되었다가 5장을 마치면 가창자가 다시 멈추고 악기가 여성(餘聲)을 연주하며 속악을 마치게 되니 이것을 대여음(大餘音)이라 이른다[凡俗樂, 琴笙諸聲與歌聲相和. 過三章, 則歌者少歇, 樂奏餘聲以間之, 謂之中餘音. 四章、五章又與歌曲相和, 五章畢, 歌者又止, 樂奏餘聲以終之, 謂之大餘音. -李圭景, 『五洲衍文長箋散稿』 「經史篇·經傳類」「俗樂辨證說」]】, 이를 통해 마지막 구절을 이해해 보면 화자가 거문고 연주를 마치자 물소리가 여음처럼 연주의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달을 청중으로, 물과 금객(琴客)인 시인이 벌인 한밤의 콘서트를 형상화한 것으로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소리가 하나의 음악으로서 앙상블을 이루는 고양된 경지를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에 제시된 시어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시에 제시된 차갑고[夜冷, 泠然] 빈[樓虗] 심상의 시어들은 실재 경물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정화되고 각성된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김시보는 달과 밤과 물소리에서 밝고, 차갑고, 맑은 정신적 가치들을 교감하고 그런 존재로 고양된 것이다. 그렇기에 광탄의 물소리가 협연하여 한 곡의 연주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음악을 매개로 작가와 경물이 하나의 정신적 경지로 승화되었음을 보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펼치는 한밤의 향연이 듣는 이의 귀마저 맑게 씻어주는 듯한 작품이다.
長閒只是睡眠爲 | 오래도록 한가하여 그저 졸다 자다했는데 |
今日頗欣事適宜 | 오늘 자못 마음에 맞는 일 참 좋구나. |
半醉桃花三盞酒 | 복사꽃 뜬 석 잔 술에 반쯤 취하고 |
爛評楓嶽百篇詩 | 풍악산 백 편 시를 멋대로 품평하노라. |
簾前落蘂高吟散 | 주렴 앞 떨어진 꽃술은 시 높이 읊자 흩어지고 |
檻外濃陰久坐移 | 난간 밖 짙은 그늘은 오래 앉아 있으니 저만치 가네. |
忽有飛來雙燕子 | 갑자기 날아온 두 마리 제비가 |
似探人意硯床窺 | 사람의 뜻 탐색하듯 벼루 놓인 상을 엿보네. |
「군거(君擧)가 술을 보내오고 치화(稚和)가 시를 논하여 자못 쓸쓸함을 달래주기에[君擧送酒稚和論詩頗慰愁寂]」, 金時敏, 『東圃集』 권6
이 시는 김시민이 58세 되던 1738년에 지은 시이다. 제목에 보이는 군거(君擧)는 홍현보(洪鉉輔)의 자(字)이고, 치화(稚和)는 이중협(李重協)의 자(字)이다. 수련(首聯)에는 시인의 무료한 일상이 진솔하면서도 운치 있게 그려졌고 함련(頷聯)에는 벗이 보내준 술과 시를 입과 마음으로 음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경련(頸聯)에서는 시인의 고조된 흥을 내보였는데 경물을 이용한 솜씨가 공교롭다. 흥이 오른 시인이 벗이 보내준 시를 뽑아 소리 높이 읊조리자 ‘꽃잎이 흩어진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인의 흥이 떨어진 꽃잎을 흩날릴 만큼 고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은 시인의 높이 읊는 가락에 꽃잎이 춤사위로 수응(酬應)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흥취를 즐기고 있노라니 앉아있었던 그늘은 어느새 저만치로 옮겨갔다. 미련(尾聯)에는 제비와 시인의 교감이 그려졌다. 시인은 시간가는 줄도 모를 만큼 흥이 올랐다.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제비 두 마리가 시인이 앉은 자리를 엿본다. 제비가 벼루 놓인 상을 엿보는 행위는 곧 시인의 청흥(淸興)에 동참의 의사를 보낸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이 시의 미련은 제비와 시인이 물아무간(物我無間)의 흥취로 고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는 마지막 구절의 심미적 마무리 덕에 시적 묘미가 한층 살아날 수 있었다. 마지막 구절에 자신의 감탄흥을 발설하지 않고 의미를 함축한 특징적 장면을 보여주기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시적 여운이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다음은 이병연의 시를 살펴보자.
蛙朝鳴 蛙暮明 | 아침에도 개굴개굴, 저녁에도 개굴개굴 |
或有喧喧起白晝 | 때로는 왁자지껄 대낮에도 개굴개굴 |
蛙一鳴 蛙二鳴 | 개구리 한 마리 울고 개구리 두 마리 울더니 |
忽復千萬如相鬪 | 갑자기 또 천만 마리 다툼이나 하는 양 |
低仰往復中律呂 | 오르락내리락 주거니 받거니 가락이 맞아 |
靜聽其音疑節奏 | 고요히 듣노라면 그 소리가 꼭 연주하는 듯 |
方其作也誰爲勸 | 그 시작은 뉘라서 권했던가? |
霎然而止被誰肘 | 갑자기 멈추는 건 또 누가 말려 선가? |
寂乎方息如雷收 | 고요하게 자자드니 우레가 걷힌 듯 |
嫋嫋孤吟猶殿後 | 가녀린 울음 하나 맨 뒤까지 이어지네. |
前潭後潭山月白 | 앞 못이며 뒤 못에 산월(山月)이 하얗고 |
草遠沙明六七畝 | 풀밭 멀고 모래 환한 예닐곱 이랑 |
幽人高枕松簷下 | 숨은 이 높이 누운 소나무 처마 아래 |
自然之樂蛙兩部 | 자연의 음악 소리 개구리 특별 공연. |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賦蛙聲]」, 李秉淵, 『槎川詩抄』卷上
여름철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조선조 문인들이 애용하던 시적 소재였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대한 작가들의 입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개구리를 한밤의 고요를 깨는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입장이고【“小齋如舫曲池淸, 獨坐無言睡晩晴. 頗厭邇來人聒耳, 亂蛙莫更送繁聲. -徐居正, 『四佳詩集』 권28 「小齋聞蛙」”; “黃梅時節雨霪霪, 平陸成川尺許深. 水面亂浮眞得意, 草根群吠更何心. 雖乘夏潦唇能鼓, 直到秋霜口自瘖. 別有羈窓堪惡處, 闇中偸入汚衣衾. -李承召, 『三灘集』 권4 「憎吠蛙」”; “聒聒群蛙吠, 終宵苦不禁. 乍停如有待, 齊唱更何心. 未暇官私問, 休方鼓吹音. 唯當塡小沼, 蒲葦莫敎深. -南龍翼, 『壺谷集』 권5 「憎蛙鳴」”】, 하나는 개구리의 울음을 천기 조우의 매개로 여기는 입장이다. 인용된 작품은 두 번째 입장에서 창작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개구리의 울음을 천기와 연결시켜 형상화한 다른 시들과는 그 시적 성취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개구리의 울음을 형상화한 시편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장유의 「와명부(蛙鳴賦)」라는 작품이다. 장유는 장편의 부(賦)를 통해 개구리 울음을 시끄럽게 여기던 묵소자(黙所子)가 인간의 허위와 천기대로의 개구리를 대조하며 본원적 차원에서 도를 궁구해야 한다는 객(客)의 주장을 통해 사유를 전환하게 된 과정을 서술하였다【仲夏之月, 霪霖浹旬. 潢潦汎濫, 后土沈湮. 默所子屛居于西郭之委巷, 環堵之宮翳于蓬藋, 連以幽藪, 帶以汚瀆, 奧草薈蔚, 泥濘漠漠, 群蛙據焉, 爲其窟宅. 生育繁息, 厥麗不億, 乘時得意, 叫呶自嬉, 命儔引類, 張頷樹頤, 齊聲合響, 若訌若爭, 閤閤殷殷, 靡晦靡明, 蓋似夫萬戶之聚梁齊之都, 轂擊肩摩, 喧闐乎九衢. 又如昆陽之戰, 涿鹿之師, 鼓譟轟天, 車騰馬馳. 蓋默所子方避喧習靜, 自適乎牢騷闃寂之域, 卒然聞此, 形神不攝, 視聽煩惑, 絃歌中輟, 佔畢廢閣, 瞑不安榻, 坐不怗席, 若狂若酲瞀亂陫側. 方將命蟈氏勅健僕, 試洒灰之方, 兼箠抶之策, 悉群醜以殱殄, 靡易種以遺育, 去所憎於耳目, 然后得以婾快, 事固有不如意者, 獨沈吟而永喟. 客有過而哂者曰, 甚矣子之惑也. 蓋未通乎人理之變, 與夫物性之適者也. 芒蕩大包, 萬類竝生, 稟形受氣, 天機自鳴, 各率其性而宣其情, 非以供乎吾人之瞻聆. 等是人也, 好惡亦殊, 彼咸池九韶之要妙, 猶見非於墨氏之徒. 子安能使蠢動之夥聲形之繁, 擧以充子之娛樂, 彼又安能易已之性枉己之天, 惟以悅子之耳目. 且夫最靈之族, 衿裾之列, 心聲所發, 可惡非一, 子胡不察, 蛙黽是誅. 略擧梗槩, 可推其餘. 道烏乎隱, 躗言滋起. 澤僞亂眞, 飾似混是. 祗園之敎, 稷下之辯, 百氏競馳, 雷犇浪卷, 簧鼓宇宙, 眩亂黝堊, 蛙有是哉, 乃蟊乃賊. 神徂聖伏, 大雅委地, 妖音促響, 衒淫售異, 雕鎪月露, 啽哢飛走, 竊華屛實, 傳譌襲陋, 嘲啾聒亂, 正聲以斁, 蛙有是哉, 乃蠱乃蠹. 讒人罔極, 緝緝翩翩, 謠諑是工, 敗類戕賢, 顚倒正邪, 變亂是非, 文姦濟惡, 以逞其私, 止棘之蠅, 詩人所疾, 蛙有是哉, 乃鬼乃蜮. 凡茲數者, 亂之源而僞之的, 大足以混淆道術, 小足以覆敗家國, 仁人志士痛心切骨, 思欲拔本塞源, 已其禍亂而不可得者也. 若蛙者陰陽賦其氣, 造化成其質, 生於泥淖, 處於汚澤, 跳梁乎井榦之上, 入休乎缺甃之隙, 自在而鳴, 群和互答, 無求於人, 不忤於物, 縱喧鬧之可厭, 亦何異夫吾人之叫呼而讙謔. 蓋物我之一致, 各自安其所而樂其適. 在昔達者, 知魚之樂, 亦有先正若張朱氏喜驢鳴而愜心, 聞蟬聲而醒耳, 樂吾之樂, 而與物同, 蓋默通乎至理. 今子本身而異物, 滯根而厭塵, 不知夫天籟之均寓通塞之同源, 必欲殄天物而逞吾志, 無乃蔽於理而傷於仁者耶. 抑且翫細娛而遺大患, 除小惱而恬巨害, 徒知惡蛙鳴之鬧吾耳, 不念夫大蛙大鬧之爲可惡之大者. 類之不充, 何其昧耶. 言未卒默所子矍然意下, 形慹神癡, 搭然無語, 穆然深思. -張維, 『谿谷集』 권1 「蛙鳴賦」】. 개구리 울음소리를 매개로 존재에 대한 우주적 성찰을 도도하게 전개하여 개구리의 울음을 대상으로 한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명편이 되었지만, 의론을 펼치는 것이 주가 된 까닭에 시인과 개구리와의 직접적인 교감은 형상화되지 못했다. 백악시단의 김창흡은 개구리의 울음을 음악소리로 형상화하였지만 개구리의 울음소리에서 근면함을 읽어내고 태평을 읽어내는 등, 여전히 개구리의 울음을 의론적 입장에서 보고 있어 역시 교감을 전면화 시키지 못하였다【自我池荒, 蛙日鳴止. 鳴止如何, 閤閤不已. 雲雨之會, 得以陸梁. 嘯群鼓侶, 厥聲滿坑. 鷄鳴而作, 通夜未央. 誠有不息, 哿矣其勤. 嗟爾繁蛙, 異乎吾聞. 噰噰喈喈, 萬歲南薰. -金昌翕, 『三淵集拾遺』 권2】. 홍세태 또한 개구리의 울음에서 무위(無爲)와 천기(天機)를 읽어내었다【蛙鳴自物性, 不必問公私. 高柳多風處, 靑山欲雨時. 短長如有節, 動息本無爲. 寂寞幽人宅, 天機在小池. -洪世泰, 『柳下集』 권11 「與李處士論蛙鳴」】. 이처럼 개구리 울음은 이치를 궁구하는 의론적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병연의 시는 의론적으로 말하는 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병연의 시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개구리 울음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이다. 밤새 개구리 울음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게 되는 사실성도 갖추었다. 개구리 울음은 대개 해가 저물 무렵부터 시작된다. 한 마리가 개굴거리기 시작하면 그 소리는 하나 둘 늘어나 수천의 소리로 확대된다. 이병연은 이러한 모습을 3구와 4구에서 묘사하였다. 다음에는 개구리 울음의 특징을 묘사하였다. 실제로 높은 톤으로 울어대는 개구리가 있는가하면 낮은 톤으로 울어대는 개구리도 있는데, 이들의 울음은 이쪽에서 울면 저쪽에서 화답하듯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요란하게 울기도 한다. 이병연은 이러한 울음의 양상을 연주에 비유하였다. 단순하게 ‘연주 같다’는 비유적 표현에 그친 것이 아니고 개구리의 울음을 한 곡의 연주 과정으로 묘사하였다. 한 마리 개구리가 연주를 시작하자 서서히 다른 개구리들이 화음을 더해 참여한다. 연주는 서서히 고조되어 고음과 저음의 현란한 화성이 우레가 치는 듯 절정에 이른 뒤 고요하게 잦아든다. 마지막까지 가녀리게 이어지는 울음 하나는 연주의 마지막을 알리는 대여음(大餘音)이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뒤에는 공연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앞 못, 뒤 못에 달이 하얀 장면은 연주가 끝난 무대에 불이 들어온 모습과 흡사하다. 그리고 불 켜진 공연장에 청중도 보인다. 그 청중은 소나무 아래 작은 집에 숨어사는 사람이다. 이처럼 이 시는 개구리 울음을 기승전결이 갖추어진 한 편의 공연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다.
이병연은 일반적으로 개구리 울음을 천기(天機)라는 의론적 소재로 활용하는 시편들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하였다. 이병연은 의도적으로 의론적 표현을 배제하였다. 개구리 울음을 두고 심오한 의론을 개진하는 것은 이미 장유가 그 극단을 보였다. 이미 이루어진 성취를 비슷한 논조의 시로 다시 형상화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의론에 가려 소홀히 되었던 개구리와의 진정한 교감 자체를 형상화하는 것이 이병연이 택한 전략이었다. 개구리 울음을 소재로 한 시적 전통에서 이병연은 이미 성취된 의론성을 토대로 삼으면서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대상과의 교감 자체를 전면화했던 것이다.
소나무 아래 작은 집에서 개구리 울음을 한 편의 음악으로 들을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은 곧 장유의 시 속에서 묵소자의 생각을 깨우쳤던 객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장유의 시구를 빌리면, 즉 속세의 편협한 사유를 넘어 미물과도 즐거움을 함께 하며[樂吾之樂而與物同] 유별(有別)한 현재태들이 본래 하나의 천리(天理)에서 비롯된 것임을 체인한[知夫天籟之均寓、通塞之同源] 높은 정신의 소유자인 것이다. 이병연은 교감의 이러한 경지를 ‘특별 공연[兩部]’이란 시어로 함축하였다. 양부(兩部)는 임금이 특별히 내리는 성대한 음악인데, 여기서는 남조(南朝) 제(齊)나라 공규(孔珪, 447~501)의 고사와 연관되어 구사되었다. 『남사(南史)』 「공규전(孔珪傳)」에는 “집안에 잡풀을 베지 않아 그 가운데서 개구리가 울자 어떤 사람이 ‘진번(陳蕃)처럼 하시려는 것입니까?’ 하고 묻자, 공규가 웃으며 ‘나는 개구리 울음을 양부(兩部)의 연주와 같다고 여기는데, 하필 진번을 따르겠는가?’[門庭之内草萊不翦, 中有蛙鳴, 或問之曰: ‘欲爲陳蕃乎?’ 珪笑答曰: ‘我以此當兩部鼓吹, 何必効蕃?’ -『南史』 권49 「孔珪傳」]”라고 대답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진번은 집안 청소를 왜 안하느냐는 물음에 “대장부가 세상에 처하여 응당 천하를 소제해야지, 어찌 하나의 집을 일 삼겠습니까?[大丈夫處世當掃除天下, 安事一室乎?]”라고 대답했던 인물이다. 이렇게 보면 일화 속 공규의 대답은 개구리와의 교감이 진번의 경세(經世) 포부보다 더 높은 경지임을 강조하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병연은 이처럼 다단한 의론들을 모두 온축한 채 ‘양부(兩部)’라는 두 글자로 여물동락(與物同樂)의 높은 경지를 밝혔다. 이병연의 이 시는 개구리 울음이라는 관습적 소재를 상투적인 천기(天機)라는 개념어로 뭉뚱그리지 않고, 구구한 의론 개진도 피하면서, 물아교감의 이지적 흥취를 다정다감하고 재미나게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가로운 정은 고요 속에 있다[閒情在寂寥]”【金時敏, 『東圃集』 권5 「除夕詠閒」】는 김시민의 시구처럼 처정(處靜)한 일상의 이취(理趣)는 한가로운 일상의 아취(雅趣)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微雪山齋禽語譁 | 산재에 가랑눈 온다고 산새들 조잘대는데 |
巷西人到巷南家 | 마을 서쪽 사람이 마을 남쪽 집에 왔구나. |
身閒擬和潘安賦 | 몸이 한가하니 반악(潘岳)처럼 한거부(閑居賦)를 짓고 |
喉渴堪評陸羽茶 | 목이 마르면 육우(陸羽)【육우(陸羽, 733~804)는 당(唐)의 경릉(竟陵) 사람으로 차를 좋아하여 세 편의 다경(茶經)을 저술했고, 차를 팔던 사람들은 그를 다신(茶神)이라 추존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新唐書』 권196)】처럼 차 맛을 품평하네. |
菊意留盆一叢卧 | 국화는 마음을 화분에 남겼는지 한 떨기 누워있고 |
梅香粘袖數枝斜 | 매화는 향기를 소매에 붙이려는지 두어 가지 기우뚱하네. |
饕風未必欺衰骨 | 모진 바람도 이 늙은이 얕볼 수만은 없으니 |
有興休嫌蹋月華 | 흥이 일자 마다 않고 달빛을 밟아보네. |
「가랑눈[微雪]」, 洪重聖, 『芸窩集』 권2
苔色閑來碧 蟬聲睡後凉 | 한가하니 이끼는 더욱 푸르고 매미 소리 잠깨고 나니 더욱 시원해. |
蕭然聊隱几 寂爾卽禪房 | 한가하니 그저 자리에 기대고 고요하니 곧 선방(禪房)과 다름없네. |
山水忘憂物 文章却老方 | 산수(山水)는 시름을 잊는 물건이요 문장(文章)은 늙음을 물리치는 비방이라. |
心無關一事 幽味似茶長 | 마음에 한 가지도 걸리는 게 없으니 그윽한 이 맛 차 맛처럼 길구나. |
「한가한 생활[閑居]」, 李夏坤, 『頭陀草』책6
홍중성과 이하곤의 시 두 편을 보였다. 두 시 모두 고요 속에 이루어지는 한아한 일상을 그렸다. 홍중성의 시에는 가랑눈이 내리자 자신을 찾아온 벗과 시를 짓고 차를 마시며 국화와 매화를 감상하다 청흥을 따라 달빛 아래 산책을 나서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하곤의 시에는 선방(禪房)처럼 고요한 집에서 짙어진 이끼를 보고 매미 소리를 듣는 화자가 제시되어 있다. 작가는 이렇듯 고요한 일상에서 산수를 찾아 시름을 잊고 시문을 지으며 문학적 열정을 발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홀로 즐기는 한가한 아취를 차 맛처럼 담백하고 깊은 것으로 비유하였다.
백악시단의 한아(閒雅)한 일상을 대표하는 소재는 꽃이었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꽃에 대한 애호가 각별하였다. 전통적인 사대부의 꽃이었던 매화는 물론이요, 왜철쭉, 해당화, 작약, 장미, 모란 등등의 각종 꽃을 기르며 한아한 흥취를 즐겼다. 조정만은 「작년에 화훼 20종에 대한 시를 지었는데 지금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곳 설성(雪城)에 온 이래로 저것들과 떨어져 온 몸이 물만 두르고 있으니 실로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는 그것이다. 천애에서 홀로 앉아 있자니 각종 화훼들을 실로 면면이 마주하고픈 생각이 들어 다시 여러 수를 짓는다. 그러나 근래의 여러 작품은 득실이 있으니 전후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昔年有花卉二十詠, 而今不得記焉. 來玆雪城, 與彼界隔一衣帶水, 儘是胡地無花草者. 天涯孤坐, 各種花卉, 實有面面之思, 更賦諸詠. 而年來諸品有得有失, 不無前後之異., 『寤齋集』 권2]라는 시에서 죽(竹), 국(菊), 송병(松屛), 백매(白梅), 홍매(紅梅), 영산홍(映山紅), 왜척촉(倭躑躅), 연화목란(蓮花牧丹), 백색작약(白色芍藥), 춘동백(春冬柏), 월사계(月四桂), 치자(梔子), 석류(石榴), 벽오동(碧梧桐), 백길경(白桔梗), 삼색도(三色桃), 홍벽도(紅碧桃), 전추라(剪秋羅), 목정향(木丁香), 분송(盆松), 분삼(盆蔘) 등 21가지 화훼를 연작시로 짓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두 수를 예시한다.
第一奇花高丈餘 | 가장 기이한 꽃이 높이가 한 길 남짓이니 |
剪霞裁錦較誰如 | 노을을 자르고 비단을 자른대도 어찌 비교하랴 |
風來紅暎靑山色 | 바람 불자 붉은 꽃잎에 푸른 산 빛이 비치니 |
實與其名信不虛 | 그 이름과 실상이 헛된 게 아니로다. [영산홍[右映山紅]] |
東風巧剪蜀羅紅 | 봄바람이 촉나라 붉은 비단 공교롭게 가위질하였으니 |
裁出秋芳石竹同 | 마름질한 듯 나온 가을 꽃잎 패랭이꽃과 같구나. |
華萼茁莖開次第 | 꽃과 꽃받침 싹과 줄기 차례로 열리니 |
娟娟獨冠草花中 | 고운 자태 화초 중에 으뜸이구나.[전추라[右剪秋羅]] |
조정만은 각각의 꽃을 형상화하면서 그 꽃이 지닌 특징적인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영산홍은 길게 자란 모습이 푸른 산과 겹쳐지는 모습을 이름과 연결시켜 형상화하였고, 전추라는 긴 고깔 같은 꽃의 모양과 꽃이 먼저 피는 생태적 특징을 형상화하였다. 조정만의 시는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꽃을 각별히 애호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꽃이 피면 벗들과 함께 시를 지었고【“躑躅花開二大叢, 寤齋西北小園中.[定而] 墻高影透巖雲碧, 島遠光偸海日紅.[子益] 絶艶向人咸動色, 衆芳回首揔成空.[定而] 洛城車馬誰來賞, 雨裡閒看獨兩翁.[子益] -趙正萬, 『寤齋集』 권2 「倭紅二樹方盛開, 三淵冐雨來過, 仍與聯句」”; 姨兄宅裏牡丹花, 每到春歸獨擅奢. 幽砌種來元國色, 新詩題品盡名家. 輕風有意翻雕珮, 小雨無端濕絳霞. 堪笑欄頭叢芍藥, 後時應亦避繁華. -申靖夏, 『恕菴集』 권2 「士相弼夏族兄亦爲姨從宅賞牡丹次羅鄴韻」】 화분을 빌려 감상하기도 했으며【久雨愁人欲放歌, 草生庭院亂如麻. 山中活計三升酒, 天下風流一樹花. 巷僻誰尋東圃老, 泥深亦阻北鄰家. 竹皮團席茅簷畔, 朝坐悠然到夕鴉. -金時敏, 『東圃集』 권3 「雨中借來北隣四季花」】 심지어는 지는 꽃이 아쉬워 비단을 잘라 직접 조화를 만들기도 하였다【蕉影桐陰㧾絶奇, 石盆何以假花爲. 隋園剪彩君休詑, 可笑吾儂却見欺. -金令行, 『弼雲稿』 권2 「槎川剪彩爲花, 逢人輒曰紅桃, 余亦見欺, 賦詩矣. 今知其假, 又寄一絶要和」】. 이들이 꽃을 두고 한아한 흥취를 즐기는 모습은 아래 이병연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첫 번째(其一)
宛轉幽禽囀 窺簾去復廻 | 예쁜 새 요란하게 지저귀면서 주렴을 쳐다보며 날아갔다 날아오네. |
重重勤報說 屋角杏花開 | 자꾸자꾸 부지런히 말을 전하니 집 모퉁이 살구꽃이 피었나 보다. |
세 번째(其三)
紅杏臨池發 池中寫綵霞 | 붉은 살구꽃 못가에 피어나니 못에는 고운 노을 그려져 있네. |
幽人携稚子 指與倒看花 | 숨어사는 사람은 아이 손을 붙잡고 손으로 가리키며 비친 꽃을 바라보네. |
네 번째(其四)
辛夷杜鵑落 縞李碧桃開 | 개나리 진달래 지고난 뒤에 하얀 배꽃 하얀 도화(桃花) 피어났구나. |
我是花盟主 朝朝點檢來 | 나는야 꽃동산의 맹주(盟主)라 아침마다 점검하려 여기 오노라. |
다섯 번째(其五)
白白紅紅艶 春光誰淺深 | 희고 붉은 고운 꽃들 봄 경치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쁘랴. |
詩人妄題品 傷我化翁心 | 시인이 망령되이 품제(品題)해서 조화옹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 |
「꽃밭에서[花園]」, 李秉淵, 『槎川詩抄』卷上
이 시는 모두 7수로 된 작품인데, 그 가운데 일부를 보였다. 첫 번째 수는 이 시의 서장(序章)인데 어떤 새가 재잘재잘 우는 소리에 살구꽃이 폈나보다며 꽃밭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렸다. 세 번째 수는 살구꽃이 마치 노을처럼 연못에 도영된 모습을 형상화하였는데 손주와 손을 잡고 하나하나 가리키며 감상하는 모습이 다정하게 그려졌다. 네 번째 수는 철철이 이어지는 꽃의 향연을 말하였다. 자신을 꽃동산의 맹주(盟主)라 하면서 아침마다 무슨 꽃이 사라지고 무슨 꽃이 나왔는지 점검한다고 하였다. 재치 있는 표현이 돋보인다. 다섯 번째 수에서는 모든 꽃이 봄날을 구성하는 아름다운 존재임을 말하였다. 망령된 시인의 경솔한 품평이 조화옹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구절은 가볍게 말한 듯하지만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본원적 존재 인식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 미운 꽃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병연의 시는 새와 교감하고 꽃과 교감하며 꽃밭에서의 아취를 산뜻하게 그려냈다.
앞서 많은 꽃들을 언급했지만 백악시단이 애호한 꽃을 꼽으라면 단연 매화를 꼽아야 한다. 매화가 사대부 꽃으로 여겨졌던 조선조의 통념을 감안하면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이들의 매화시는 전대 문인들의 작품과 비교하면 양과 질에서 빼어난 성취를 보여준다. 백악시단 이전의 문인들 또한 매화를 애호하여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런데 전대의 매화시는 대체로 매화 자체보다는 매화에 결부된 절개, 지조, 결백 등의 정신성을 원용하여 형상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전대의 매화시는 매화 자체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드물다. 그에 비해 백악시단의 매화시는 연작시를 통해 매화의 모습, 매화의 존재론적 의미, 매화의 정신 등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조명한다. 백악시단의 매화시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매화를 인식하는 태도이다. 먼저 김창흡의 매화시를 살펴보자.
두 번째(其二)
玄化氤氳不輟溫 | 현묘한 조화의 성한 기운 그치지 않아 |
菊籬凋後又梅盆 | 울 옆 국화 시든 뒤에 다시 매화 화분으로. |
雪氷滿目嚴威缺 | 눈과 얼음 온 천지라 위엄은 이지러지고 |
天地無心苦癖存 | 천지(天地)는 무심하여 괴로운 벽(癖)만 남기더니 |
貞上一元流素蕊 | 정(貞) 위의 일원(一元)이 하얀 꽃술에서 흘러나오고 |
虗中妙色發玄根 | 허(虛) 가운데 오묘한 빛 검은 뿌리에서 피었구나. |
深房坐討眞消息 | 깊은 방에 틀어 앉아 참된 소식(消息) 궁구하니 |
床榻蕭然卽小園 | 책상이 호젓한 게 바로 곧 작은 동산. |
아홉 번째(其九)
半綻輕英數瓣懸 | 반쯤 터진 작은 꽃망울 두어 송이 달렸는데 |
冷槎何自著嬋娟 | 찬 가지 그 어디서 고운 자태 붙였는가? |
神精不盡枝梢內 | 정신이 가지 속에서 다하지 않아 |
影韻常流几案前 | 꽃 그림자, 맑은 운취 서안(書案) 앞에 늘 흐르네. |
遙夜懷羣應大庾 | 긴 밤 그리는 벗은 응당 대유령(大庾嶺) 매화일 테고 |
淸晨鍊氣自先天 | 맑은 새벽 정련된 기(氣)는 선천(先天)으로부터 나온 것. |
周旋轉覺吾形穢 | 함께 할수록 내 몸의 더러움을 알게 되니 |
頭白相看已閱年 | 흰 머리로 바라보며 지난 세월 반추하네. |
열세 번째(其十三)
染筆東牕旭日初 | 동창에 해 오를 적 붓을 적셔서 |
臨花方欲著形模 | 꽃을 보며 그 모양을 그리려 하니 |
輕綃剪素華而潔 | 가벼운 깁, 자른 명주처럼 곱고도 정결하고 |
密玉含溫冷不枯 | 촘촘한 옥 윤기 머금어 차면서도 생생하네. |
天上綠華猜淑骨 | 천상의 악록화(萼綠華)도 맑은 풍골 시기할 만하고 |
僊中杜子愧淸膚 | 신선계의 두자(杜子)도 깨끗한 피부엔 부끄러워할 만하네. |
神情別在忘言處 | 신묘한 정은 말을 잊은 곳에 따로 있으니 |
月曉羅浮影有無 | 달빛 두른 나부산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
「송백당영매(松栢堂詠梅)를 이어 짓다[又賦]」, 金昌翕, 『三淵集』 권6
인용된 두 번째 수는 개화의 순간을 형상화한 것이다. 김창흡은 매화의 개화를 현묘한 우주의 조화로 인식한다. 현묘한 우주의 조화는 하나의 생명이 다하면 또 다른 생명체로 현현하며 유행불식한다. 국화도 없는 자리 고벽(苦癖)만 남아 애타게 다른 생명을 기다리니 매화가 처음으로 응답을 보낸다. 하얀 꽃술이 이제 조금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김창흡은 이 장면을 ‘정상일원류소예(貞上一元流素蕊)’이라 하였다. 정(貞)과 일원(一元)의 관계는 순음(純陰)과 일양(一陽)의 관계로 우주 순환의 원리를 顯示한 것이다. 원형이정의 맨 극단[貞]에서 다시 하나의 元이 시작되는 것은 무한한 생명의 순환을 의미한다. 경련 상구는 그런 생명의 재개가 매화의 하얀 꽃술에서 그 기미를 보인다는 의미이다. 경련 하구는 절묘한 빛깔을 띤 매화라는 존재가 없음[虛]과 검음[玄]에서 나온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매화의 뿌리를 현근(玄根)으로 표현함으로써 천지운행의 오묘함을 더하였다. 미련의 참된 소식[眞消息] 또한 일차적으로는 매화의 개화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매화를 매개로 진행되는 생장소멸의 이치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
아홉 번째 수에서는 매화의 고결함을 형상화하였다. 수련에서 매화의 모습에 경이감을 표한 뒤, 함련에서 매화의 본질이 정신(精神)임을 분명히 하였다. 여기서의 정신(精神)은 관념으로서의 정신이면서 정수(精髓)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련에서는 송백당의 매화를 대유령의 매화와 등치키시고, 매화의 정결함을 선천(先天)의 것으로 소급하였다. 대유령은 매화의 고향이요, 선천(先天)은 우주의 본체,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혼돈 이전의 절대 순수를 의미한다. 미련에서는 매화를 성찰의 계기로 삼았다. 절대 순수 앞에서 자신의 속물스러움을 반성하고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는 계기로 삼았다. 아홉 번째 수는 매화시의 일반적 전통처럼 매화로부터 정신성을 취하는 내용인데, 이 경우에도 매화와의 정신적 교감을 전면화할 뿐, 매화의 정신적 속성을 자기 의사 표현을 위한 매개물로 삼지 않는【이것은 “옥인(玉人)의 하고많은 한을 알고 싶거든, 붉은 눈물이 향그런 뺨 적시는 것을 보게나[欲識玉人多少恨, 試看紅淚染香腮].”라는 시구처럼, 매화라는 시적 대상[붉은 매화에 이슬이 맺힌 모습]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활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열세 번째 수는 매화의 맑고 고운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비단과 명주를 병치하여 화려하면서도 정결한 모습을 그렸고, 이슬 맺힌 매화를 옥이 윤기를 머금은 것으로 형상화였다. 신선인 악록화(萼綠華)와 두자(杜子)를 끌어들여 맑은 자태를 한껏 고조한 뒤 그 모습을 나부산의 매화선녀에 비하였다.
김창흡의 이 시는 석실서원의 강학이 재개된 무렵, 석실 인근의 송백당에서 지은 작품이다. 이 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매화를 인식하는 작가의 태도이다. 김창흡은 두 번째 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매화를 생명의 신비, 존재의 본질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것은 곧 매화를 천기론의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흡은 매화를 통해 천기와 조우하고 매화를 통해 생명의 오묘한 조화[天理]를 체인하여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래서 김창흡의 시는 전대의 매화시와 달라지게 되었다. 전대의 매화시가 매화의 관념적 상징을 활용하여 매화를 부분적이거나 부수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 비해 김창흡은 매화를 시적 대상으로 전면화하고 매화의 이런 속성, 저런 특징들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다만, 김창흡의 이 시는 매화의 모든 면을 정신으로 포착하겠다는 작가의식이 다소 과잉된 폐단을 보인다. 매화를 형용하려는 의식이 강해 비유가 남발되고 있고, 거기에 존재의 본질을 철학과 문학을 겸하여 표현하려다 보니 심오하게 구성한 의미망이 사변적 시어에 구속된 채 문학적 여운을 주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김창흡의 이 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매화를 생명의 신비, 존재의 본질로 대하는 백악시단의 기본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후기 백악시단의 이병연은 이러한 인식태도를 이어받으면서도 형상화에 있어서 특유의 심미성을 발휘하였다.
첫 번째
春風誰送寂寥濱 | 누가 봄바람을 이 고요한 물가로 보냈나? |
老樹深深斷問津 | 묵은 숲 깊고 깊어 문진(問津)할 길도 끊겼는데. |
田地纔從封埴得 | 밭에서 겨우 배양할 흙 얻었건만 |
胚胎已屬發生新 | 생명의 태 어느덧 맺혀 새 꽃망울 틔웠구나. |
欲知一氣神明處 | 일기(一氣)【일기(一氣)는 혼돈(混沌)의 기(氣)로서 천지만물의 본원을 의미한다. “彼方且與造物者爲人, 而遊乎天地之一氣.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의 신명한 곳 알고 싶다면 |
須驗元功接續辰 | 원(元)의 공(功)이 이어질 때 징험해야하리. |
花到開時詩亦就 | 꽃이 와서 피어날 적 시도 이룸 있으리니 |
分明天意餉斯人 | 분명 하늘은 이 사람 배불리 먹일 뜻이로구나. |
네 번째
從君結臘久成言 | 자네가 섣달에 맺힌 후로 오랜 약속을 맺어 |
寢食相通一氣溫 | 잘 때나 먹을 때나 서로 통하니 일기(一氣)가 온윤(溫潤)하네. |
歲暮天寒新紙屋 | 세모의 날씨는 새로 바른 종이 집에 차갑고 |
苔封土皺古陶盆 | 이끼 돋은 흙은 오랜 화분에 주름졌네. |
安身立命元幽獨 | 안신입명(安身立命)은 원래 그윽하고 고독한 것이지만 |
沃水焚香自早昏 | 물 대고 향 사르길 새벽부터 저녁까지 한다네. |
何處凍吟林逸士 | 숲 속의 일사(逸士) 언 입으로 시 읊는 곳 어디인가? |
澗邊籬落雪中園 | 개울가 울도 해진 눈 내린 정원이네. |
스무 번째
高處難將套語傳 | 높은 경지 상투어론 전신(傳神)하기 어려우니 |
暗香踈影未超然 | ‘암향(暗香)’이니 ‘소영(踈影)’으론 넘어서지 못하네. |
顔愚獨立三千上 | 안우(顔愚)는 삼천 제자 위에 홀로 섰고 |
茂叔初拈太極圜 | 무숙(茂叔)은 태극의 하늘을 처음으로 보였다네. |
要見胚胎存至妙 | 배태(胚胎) 속에 지극한 묘가 있음을 보아야하니 |
直須文字罷多緣 | 섣부른 문자로는 많은 연기(緣起) 흩고 말 뿐. |
深知渠亦專時晦 | 그도 또한 전일하다 때로 감추니 |
誰復鋪陳入譜編 | 누가 다시 펼쳐서 매화보(梅花譜)에 들이겠는가? |
「화분 매화[盆梅]」, 李秉淵, 『槎川詩抄』卷下
이병연은 백악시단의 문인들 가운데 매화 연작을 가장 많이 남긴 인물이다. 현전하는 그의 매화 연작은 「분매(盆梅)」, 이십수(二十首), 「송매(送梅)」, 십수(十首), 「매화오율(梅花五律)」, 「분매이십절(盆梅二十絶)」 등 모두 55수이다. 이병연의 매화시 창작열은 당대에도 인상적인 것으로 여겨져, 조관빈(趙觀彬, 1691~1757)은 「이백천매화시서(李白川梅花詩序)」이라는 글에서 이병연의 매화시가 전인의 투식을 벗어나 기(奇)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고평하면서 성취의 원인을 이병연의 매화벽(梅花癖)에서 찾기도 하였다【辛亥春, 余在龍山, 始得李君梅花詩三十律, 誠一壯觀也. 自古詩家之詠梅者, 不勝其紛然, 而自有林逋月黃昏一句, 不復有佳作之對稱者. 近世詩人, 雖或有詠, 不出於踏襲前套, 過數篇則只益露醜而已. 一筆三十詠, 逾出逾奇, 能令人開眼者, 獨於李君見之矣. 余聞李君癖於詩, 一生用力, 所作不知幾千篇, 可想其無景不吟無物不詠. 而觀乎此詩, 則其所癖於梅者, 反甚於詩, 豈不淸且高哉? -趙觀彬, 『悔軒集』 권15 「李白川梅花詩序」】. 시를 살펴보면 조관빈의 기록처럼 이병연의 대단한 매화 사랑을 읽을 수 있다. 매화가 필 때부터 매화가 질 때까지 순간순간을 20수의 시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그 자체가 이병연의 매화벽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수는 매화의 개화를 읊은 것이다. 좋은 흙도 구하지 못했건만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를 보고 이병연은 이내 생명에의 외경(畏敬)에 빠져든다. 이병연은 그 외경감을 경련에서 말하였는데, 매화는 일기(一氣)의 신명한 조화가 산생시킨 존재론적 본질의 표상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입장은 앞서 본 김창흡의 인식태도와 같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시를 지으며 매화와 본격적인 교감을 나누겠다는 뜻을 보였는데 매화를 보내어 시를 쓰게 해준 하늘의 호의를 “분명 하늘은 이 사람 배불리 먹일 뜻이로구나.”라고 재미나게 표현하였다.
네 번째 수는 매화를 정성스럽게 가꾸며 교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병연은 매화를 인격화하여 ‘군(君)’이라고 불렀다. 매화가 피면 정성을 다하겠다는 약속처럼 침식(寢食)간에도 늘 보살피니 매화는 윤기가 돌고 생기어린 모습이 되었다. 그럼에도 차가운 날씨가 걱정되어 매화 감실에 새 종이를 발라주고, 흙이 미어질 정도로 이끼도 얹어주었다. 경련의 안신입명(安身立命)은 안택(安宅)에서 몸을 편안히 하고 명(命)을 세운다는 말인데【주자는 문인에게 보낸 답장에서 “비로소 드넓은 大化의 가운데 일가마다 하나의 안택이 있음을 알겠으니 바로 스스로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세워 지각을 주재하는 곳입니다[乃知浩浩大化之中, 一家自有一箇安宅, 正是自家安身立命主宰知覺處. -『晦菴集』 권32 「答張敬夫」]라고 하면서 안택(安宅)을 안신입명(安身立命)하고 지각을 주재하는 곳으로 보았다. 한편, 안택(安宅)은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상(上)」에 “夫仁天之尊爵也, 人之安宅也”라 하여 인(仁)의 비유로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서는 감실(龕室, 安宅)에서 이루어지는 開花의 생명활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경련은 매화의 생명활동이야 홀로 신비스럽게 진행되는 것이지만 혹시나 싶어 새벽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물을 길어다 주고 향을 사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화의 신비로운 생명활동에 경외를 표하고 정성을 다하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련에는 작가의 이러한 모습이 더욱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숲 속의 일사(逸士)는 곧 작가 자신인 동시에 임처사(林處士) 임포(林逋)를 환기시킨다. 작가는 지금 눈을 맞으며 감실을 지킨 채 시를 읊고 있다. 눈을 뒤집어 쓴 채 꽁꽁 언 입으로 시를 읊조리는 모습은 어찌 보면 별나고, 측은하기도 하며,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습에 담긴 의미는 자못 심장하다. 우스꽝스러워 보이지만 지금 작가는 우주의 조화를 최초로 전하는 하늘과 지상 사이의 메신저로서 생명 태동의 현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천천히 음미해보면 깊은 의미가 우러나오는 이병연 시의 매력이 잘 드러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스무 번째 수는 지는 꽃을 보면서 매화시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밝힌 것이다. 매화와의 교감이 지극했던 이병연에게 매화가 생명을 발하는 조화의 순간은 대단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병연은 그것을 ‘고처(高處)’라고 하였다. 그런데 매화를 두고 지어진 대부분의 시는 임포의 시구를 좇아 ‘암향(暗香)’이니 ‘소영(踈影)’이니 하는 상투어만 남발할 뿐 매화와 일체되어 그 높은 경지로 올라서지 못한다. 이병연의 판단에 이러한 고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학문이었다. 함련의 상구는 안자(顔子)의 호학(好學)이 삼천 제자 가운데 으뜸이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하구는 주자(周子)의 학문이 우주 운행의 비밀을 밝혔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병연은 이러한 깊은 학문을 바탕으로 매화가 배태(胚胎)되는 그 속에 지극한 우주의 묘리가 있음을 보아야 하지 섣부른 창작으로 우주 운행의 총체적 질서를 파편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이병연에게 매화시 창작은 여타의 영물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매화시 창작의 어려움에 대해 이덕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매화시는 진(陳)나라 음갱(陰鏗)과ㆍ남조(南朝) 하손(何遜) 이래로 대개 또한 짓기 어려웠다. 당나라는 시의 나라로 불리지만 두보, 제기 몇 사람뿐이다. 무릇 매화시는 송나라에서 넘쳐났지만 임포를 제외하고는 내가 알지 못한다. 그러니 하물며 우리들이겠는가? 지금 열 수의 시를 읊고 그 반을 깎아버렸는데도 역시 수준이 낮다. 노담씨가 ‘덜고 또 덜어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하였으니 나의 시는 이 방법을 쓰는 것이 마땅하리라[梅花詩, 自陰、何以來, 盖亦難矣. 唐惟號稱詩國, 而杜甫、齊己數子而已. 夫梅詩濫觴於趙宋, 而林君復以外, 僕未知也. 况吾輩哉? 今旣咏十許首, 剗其半, 猶卑卑也. 老聃氏曰‘損之又損, 以至於無’, 僕之詩用此法宜哉. -李德懋, 『靑莊館全書』 권2「嬰處詩稿·2」「酬曾若梅花詩韻」의 幷序]】. 이병연의 이 시는 이병연의 매화벽이 단순한 완물의 차원이 아니었음을 잘 보여준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매화를 형상화함에 있어 성리학적 우주론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고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사변적 의론을 온축하기도 하였다. 작가의 특성에 따라 주된 형상화 양상이 조금씩 차이를 보였지만, 매화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정신으로 감수하는 입장은 모두 같았다. 아래 김시민의 작품은 이런 두 가지 형상화 방식이 병존했음을 보여준다.
於人默相契 靜室與同留 | 사람과 말없이도 마음이 맞아 고요한 방에서 함께 있구나. |
珠蕾春光蘊 苔楂古意幽 | 구슬 같은 꽃봉오리 봄빛 머금고 이끼 낀 등걸에는 고의(古意)가 그윽. |
窮陰都膜外 太極是枝頭 | 궁음(窮陰)에 모두 막을 뚫고 나왔으니 가지 끝에 달린 건 태극(太極)이구나. |
驗得先天妙 分明一氣流 | 선천(先天)의 오묘함을 증험하노니 일기(一氣)의 유행(流行)임이 분명하구나. |
「영매시(詠梅詩)【原韻이 된 시는 『東圃集』 권5 「詠梅. 梅是困巖兄得於李仲久者, 而今爲余所蓄」이다.】에 세 번째로 첩운하여 짓다[三疊]」, 金時敏, 『東圃集』 권5
肺病冬常苦 宵寒未御盃 | 폐병은 겨울이면 늘 심해지니 차가운 밤 술잔도 들지 못하네. |
已知盈尺雪 先念在龕梅 | 한 자 넘게 눈이 온 걸 알자마자 생각이 감실 매화로 먼저 간다네. |
櫪馬蹄頻鼓 窓童鼾卽雷 | 마구간의 말발굽 자주 또각거리고 창가 아이 코골이는 천둥 같은데 |
心明眼故闔 點檢一生來 | 심지 밝히고 낡은 문짝에 눈을 붙인 채 한 생명 예 왔는지 살펴본다네. |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夜半睡覺]」, 金時敏, 『東圃集』 권6
첫 번째 시는 사변성이 강한 작품으로, 방안에서 분매와 말없이 마주한 채 관조(觀照)와 묵계(黙契)의 정신적 경지를 보였다. 궁음(窮陰), 태극(太極), 선천(先天), 일기(一氣)라는 시어가 말해주듯, 이 시는 성리학적 우주론을 토대로 매화를 읊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앞서 본 김창흡의 인식과 같은 것이다. 다만, 고사의 사용을 줄이고 화려한 수식을 배제함으로써 순조롭고 질박한 미감을 준다. 두 번째 시는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사변적 의론을 온축한 작품이다. 작가는 기침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술을 한 잔 마시려 했지만 기침 때문에 여의치 않다. 밖을 내다보니 한 자 넘게 눈이 내렸는데, 불현듯 감실의 매화 걱정이 든다. 날이 하도 추워 말도 발을 동동 구르는데, 천진한 아이는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작가는 주섬주섬 등불을 찾아 불을 밝힌 뒤 감실 문짝에 눈을 대고서 매화가 폈는지 살펴본다. 실제 체험의 형상인 까닭에 시상이 순조로우면서 시적 생동감이 있다. 특히 경련의 다소 코믹한 묘사는 미련에서의 행위와 어우러지면서 시적 묘미를 준다. 이는 앞서 본 이병연의 형상화를 닮아 있다. 말은 또각거리고 아이는 드르렁거리는데 고요히 숨을 죽여 문틈으로 매화를 살피는 작가. 매화를 보는 작가의 내면은 첫 번째 시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의 행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작가의 생명에 대한 외경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었다.
김시민의 시에 나타난 두 가지 형상화 양상은 김창흡 방식의 철리적 매화시가 이병연 방식의 문학적 매화시로 변화해 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하나를 배제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철리적 매화시도 쓰면서 문학적 매화시도 쓰는 확대로서의 변화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변화는 자칫 후기 백악시단에 이르러 ‘진시’의 정신성이 약화되고 심미성만 강화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시단의 매화시는 전대의 매화시가 매화의 관습적 상징을 매화 외적 사건이나 상황을 드러내는 데 원용하는 것과는 달리 매화와 작가의 직접적 교감을 형상화하였다. 매화의 개화에서부터 낙화에 이르기까지 연작의 형식을 통해 매화의 다양한 면모를 형상화한 것은 매화를 시적 대상으로 한층 전면화하였음을 보여준다. 백악시단의 매화시가 보이는 이러한 특징은 ‘진시’의 이론인 천기론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매화를 생명 조화의 표상으로 여기고 매화 자체에 집중한 것은 대상의 천기와 조우하여 천리를 체인하기 위해 대상 자체를 면밀하게 관조하던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관조를 통해 매화라는 생명체와 한층 깊어진 교감을 이루었고 그 결과 매화의 모양새로부터 존재론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산생된 시편들은 매화시의 질적 수준을 고양시켰다.
한편, 대상의 의의를 중시했던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일상의 평범한 기물들도 운치 있는 시적 소재로 끌어들였다.
病眼能看細字文 | 병든 눈으론 작은 글자 볼 수가 없었는데 |
賴玆雙鏡度朝曛 | 두 알 안경 이것으로 아침저녁 보낸다네. |
竹床烏几渾閑物 | 대나무상 오피궤 죄다 한가한 물건인데 |
獨策衰年第一勳 | 홀로 면려(勉勵)하니 노년의 제일가는 공신이로다. |
「안경(眼鏡)」, 趙正萬, 『寤齋集』 권2
一本大如股 其種來燕市 | 한 포기가 넓적다리만큼 큰데 그 종자가 중국 시장에서 온 것. |
濯濯靑玉莖 經齒忽無滓 | 깨끗하게 푸른 옥 같은 줄기는 이로 씹으면 앙금도 없다네. |
「배추[菘]」, 金昌業, 『老稼齋集』 권2
첫 번째 시는 조정만이 안경을 읊은 것이다. 노안(老眼)으로 작은 글씨를 볼 수 없었던 조정만에게 안경은 아침저녁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물건이었다. 조정만은 그런 안경에 깊은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나이가 들면 대개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공부도 안하면서 대나무 상을 놓고 오피궤에 기댄 채 학자연(學者然)한 외양만 갖추는데, 안경 덕분에 게으름과 허위를 물리치고 부지런히 독서할 수 있으니 안경은 노년의 제일가는 공신이라 하였다. 두 번째 시는 김창업의 작품이다. 농부처럼 살고자 했던 김창업은 손수 심은 수십 종의 나무에 하나하나 시를 지어 붙이고, 채마밭의 채소 25종에도 시를 지어 붙였는데【이종묵, 「김창업(金昌業)의 채소류 연작시와 조선후기 한시사(漢詩史)의 한 국면」, 『한국한시연구(韓國漢詩硏究)』 권 18, 2010, 30~32면 참조.】 인용한 작품은 배추를 형상화한 것이다. 김창업은 농사가 잘 되어 큼지막한 배추를 넓적다리만하다고 비유한 뒤, 그 종자가 중국에서 온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배춧잎의 신선한 맛을 입에 살살 녹는다며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두 작품은 모두 일상의 평범한 기물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시에서 주목할 것은 이들이 평범한 사물을 그저 형태적으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심미적 아취(雅趣)까지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정만의 시는 안경을 의인화하여 안경이 늘그막의 게으름을 홀로 채찍질한다(獨策衰年)고 표현하였는데, 표현의 재미에 더해 늘그막까지 안경을 끼고 독서에 열중하는 조정만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게 하였다. 김창업의 시도 그러하다. 시를 읽어보면 수확한 배추를 보며 흐뭇해하는 작가의 모습, 싱싱한 배춧잎 하나를 뚝 떼어 맛을 보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연상을 통해 독자는 심미적 흥취를 느끼게 된다. 9년을 산 닭【我有九年鷄, 盖亦鷄之長. 雖無宋窓談, 尙作秦關唱. 諸塒方寂寞, 一聲初引吭. 山月未半窓, 斷 續來枕上. 昏昏夢囈間, 灑然生虛曠. 那不珍惜渠, 每如良友况. 初從何處得, 族孫偶所養. 爾名靑藪皮, 風神亦可尙. 或言久則恠, 吾知此言妄. 中林一茅簷, 風雨無相忘. 丁寧守一信, 與人相無恙. -李秉淵, 『槎川詩抄』卷下 「九年鷄」】, 늙은 역마【背有瘡㾗鞭不辭, 牽夫說馬少年時. 燕行上駟曾能走, 十日龍灣五日馳. -李秉淵, 『槎川詩選批』卷下 「老驛馬」】를 형상화한 이병연의 시도 대상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정신적 깨달음이나 인생살이에 대한 깊은 성찰을 수준 높게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존재하는 것들은 저마다 의의를 지닌다고 여겼다. 그랬기에 심상하고 소소한 대상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지적이고 심미적인 형상화를 할 수 있었다. 대상[物]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작시에 있어 소재를 더욱 확대시키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상에서 백악시단이 일상 속의 다양한 대상들을 소재로 깊이 있는 교감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고요한 삶을 지향하였다. 그들이 고요함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한 것은 세계와 존재에 대한 본원적 이해가 고요함을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의 고요한 순간을 맞이하면 관조를 통해 일상의 여러 대상들과 교감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궁구하였다. 절서의 변화 속에서 천지운행의 묘리를 체인하고, 눈 내린 새벽의 한 장면에서 천기를 조우하며, 피라미·냇물소리·제비·개구리 등과 정신적 교감을 이루며 물아일체의 경지로 고양되었던 그들의 일상은 한 편의 시 속에 이지적이고도 심미적인 형상으로 아로새겨졌다. 또한 대상과의 교감을 중시하던 그들의 인식태도는 더욱 다양한 대상들을 형상화하면서 시적 소재의 확대를 불러왔다.
대상과의 교감을 형상화한 백악시단의 시편들은 그들의 시론인 천기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천기론은 대상을 천리 체인의 매개로 여긴다. 그렇기에 대상은 감각적 감수를 넘어 심오한 사유의 대상으로 고양된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일상의 여러 대상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겼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천기론은 학문과 수양을 통해 천부의 수준으로 고양된 주체를 상정한다. 백악시단의 문인들이 처정(處靜)의 순간에 무언가를 관조하고 궁리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수양의 모습이다. 이처럼 백악시단의 문인들은 자신들의 천기론에 입각하여 자신과 대상을 하나의 경지로 고양시켜나갔다. 그래서 그들이 대상과의 교감을 형상화한 시편들은 대상을 형상화한 측면에서 보자면 감각적이고 심미적인 특징을 보이고, 대상을 감수하는 주체의 측면에서 보자면 대단히 이지적이고 정신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렇듯 백악시단의 ‘진시’는 주체와 대상간의 균형적 상호 지양을 통해 정(情)과 경(景)의 참됨[眞]을 확보하였고, 이를 통해 과잉된 감정을 앞세우고 대상과의 진지한 교감을 홀략(忽略)히 함으로써 정경(情景)이 부진(不眞)하여 허황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전대 시의 폐단을 극복해 갔다.
인용
Ⅰ. 서론
Ⅱ. 백악시단의 형성과 문학 활동
1. 백악시단의 주요 구성원
2. 동인들의 문학 활동
Ⅲ. 진시의 기저와 논리
Ⅳ. 진시의 정신적 깊이와 미학
3. 물아교감의 이지적 흥취
Ⅴ. 진시의 시사적 의의
Ⅵ.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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